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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우리나라가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고 그토록 염원하던 광복을 맞이한 지 정확히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8대 무역강국,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한류문화의 중심, 모두가 우리나라를 수식하 는 자랑스러운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 문화의 발전과 70년간 이어온 분단의 문제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우리 위원회는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이라는 주제로 광복 이후 70년의 기간을 광복, 정부수립,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와 통일시대 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각각의 시기를 관통하는 통합가치에 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자칫 갈등과 혼돈의 시기로 보일 수 있는 각각의 시기에도 국민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가치, 신념을 가지고 자유 대한 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었음을 확인하고, 선진한국, 국민통합, 통일국가 달성 이라는 미완의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진정한 광복 으로 가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함께 하시어 고견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한 광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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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일시 (수) ~ 13.(목) 장소 - 세종문화회관 예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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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로그램 8월 12일(수) [주제 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09:30-10:00 등록 10:00-10:05 행사안내/국민의례 및 애국가 제창 10:05-10:10 개회사: 한광옥(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10:10-10:15 축 10:15-10:40 발제 1 _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허동현(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10:40-11:05 발제 2 _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냐, 대한민국 건국 이냐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 교수) 11:05-11:20 휴식 및 질문 수령 11:20-12:00 토론 12:00-12:30 질의응답 및 폐회 8월 12일(수) 사: 정종욱(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주제 2] 산업화 민주화 13:30-14:00 등록 14:00-14:05 행사안내 14:05-14:30 발제 1 _ 통합의 역사인식 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화해를 향하여 김세중(前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대정신 발행인) 14:30-14:55 발제 2 _ 시장질서 대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공화사회 윤평중(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14:55-15:10 휴식 및 질문 수령 15:10-15:50 토론 15:50-16:20 질의응답 및 폐회 8월 13일(목) [주제 3]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13:30-14:00 등록 14:00-14:05 행사안내 14:05-14:30 발제 1 _ 안보통일 정론을 통한 국민대통합 김태우(동국대학교 석좌교수) 14:30-14:55 발제 2 _ 선진화와 통일 이숙종(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14:55-15:10 휴식 및 질문 수령 15:10-15:50 토론 15:50-16:20 질의응답 및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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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월 12일(수) 10:00~12:30 주제 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좌장 이주영(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발제 1 허동현(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발제 2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 교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냐, 대한민국 건국 이냐 토론 1 토론 2 토론 3 토론 4 윤성이(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영조(군사편찬연구소 군사연구부장) 진경호(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 이종철(청년지식인포럼 Story 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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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발제 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허동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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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ㅇㅇㅇ Ⅰ. 21세기에 다시 보는 광복과 남북분단 1. 도둑처럼 찾아 온 광복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6시 하와이 진주만 북방 440km 해상에 숨어든 아카기( 赤 城 ) 등 6척의 항공모함에서 183대의 함재기( 艦 載 機 )가 날아올랐다. 도-도-도. 일본어 도쓰케키(돌격) 의 첫음절을 딴 공격 신호와 함께 일본의 제로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어뢰를 장전한 뇌격기들은 미태평양함대 주둔지인 하와이 진주만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캡션 : 일본 제로센(Zero Fighter)기의 폭격을 맞아 불타오르는 전함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진주만공습 후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 전역을 손에 넣었지만, 반 년 만인 1942년 6월 5일 미드웨이해전을 전환점으로 일본제국은 파멸의 길을 걸었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13

12 그러나 기선 제압을 노린 일제의 진주만 기습은 잠자는 공룡의 꼬리를 밟아 깨운 자충수였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영광스러운 고립 을 내세우 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한 발 빼고 바라만 보는 중립국에 머물 수 없었 다. 당신네들은 아직도 산불이 먼 곳의 일이라 생각하는가? 이래도 아 직 한국인 만주인 중국인들에게 일제와의 싸움은 우리 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가? 10달 전 이승만이 미국 뉴욕에서 간행한 일본 내막 기(Japan Inside Out: The Challenge of Today) 에서 미국의 참전을 촉구하며 올린 경종은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6개 월 만에 판세가 뒤집혔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이후 남태평양의 섬들을 차례로 잃어가면서도 일제는 전쟁의 광기를 거두지 않았다. 1945년 3월 10일 새벽 B-29 슈퍼포트리스폭격기 344대가 도쿄의 하 늘을 뒤덮었다. 글리세린과 기름을 섞어 만든 소이탄 2400톤이 마치 융 단을 짜듯 퍼부어져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화장로( 火 葬 爐 )였던 그날 10만 이 넘는 생령( 生 靈 )들이 잿더미로 사라졌다. 그러나 일제는 본토결전 과 1억 옥쇄( 玉 碎 ) 를 외치며 무모한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캡션 : 1945년 3월 10일 약 100만발의 소이탄의 소낙비가 내린 도쿄는 지상 30m까지 치솟 는 불기둥 속에서 집과 자동차는 물론 사람들도 숯처럼 검게 구워져 버렸다. 그때 단 한 차례의 폭격으로 대략 25만 동의 가옥이 파괴되었고 180만 명이 살 곳을 잃었다. 1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 7월 17일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다음 날, 베를린 교외에 위 치한 포츠담에 연합국의 세 거두인 트루먼, 처칠, 스탈린이 유럽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나치 독일이 항복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회담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이 핵무기라는 새 로운 협상카드를 손에 쥘 때까지 시간을 버는 지연외교를 펼쳤기 때문 이었다. 핵무기를 확보해 태평양전쟁의 조기 종결에 자신감을 얻은 트루 먼은 더 이상 소련의 참전에 목매지 않았다. 원폭에 의한 힘의 우위를 확보한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종전( 終 戰 )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우리 는 오랜 실험 끝에 어떤 무기보다 파괴력이 큰 신무기를 만들었고, 일본 이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사용할 것이다. 7월 24일 미 영 소 세 나라 수뇌의 공식회담 후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원폭 사용 계획을 통보했다. 26일 미 영 중 세 나라 수뇌들은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 을 요구하는 포 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29일 일본이 최후통첩 격인 무조건 항복을 거부하자 미국은 원폭 투 하를 결정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 (Little Boy)와 팻맨(Fat Man) 두 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캡션 :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폭발 직후 발생한 버섯구름. 34만여 명 중에서 약 7만 명이 사망, 13만 명이 피폭자가 되었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15

14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을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 이받아 울리 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민족시인 심훈이 1930년 3 1절을 맞아 몸부림치며 고대한 광복의 그 날은 15년 뒤 마치 도둑처럼 우리 곁에 다 가왔다. 그러나 광복군이 국내 진입작전을 감행하기 직전 갑작스레 찾아 온 일제 패망이 김구는 안타까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나 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다음 날인 10일 저녁 일제가 연합군에게 항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도 기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캡션 :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 나 광복의 감격을 온 몸으로 분출하는 독립투사들 8월 15일 정오 히로히토 일본 천왕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의사를 밝 히는 방송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이 땅의 사람들에게 최 대의 상처와 고통을 준 일제의 식민통치는 36년 만에 종언을 고했다. 아 이도 뛰며 만세/ 어른도 뛰며 만세/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까지/ 만 세 만세/ 산천도 빛이 나고/ 해까지도 새 빛이 난 듯/ 유난히 명랑하다. 그러나 희망 찬 기대와 달리 김구의 예상대로 일제 패망은 달콤하기보다 쓰디쓴 고통으로 다가왔다. 침략전쟁의 죗값으로 동서로 분단된 독일과 달리 일본이 아닌 우리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마는 비극이 벌어졌다. 1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5 2. 38선은 누가 그었나? 1945년 8월 14일 미국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빌미로 소련에 38도선 분할 점령을 제안했고, 다음날 스탈린은 이를 수락했다. 때문에 미국이 분단을 주도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까닭은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이 참전 가능 시점으로 말한 8월 15일 전에 전쟁을 끝내 아시아에서 소련의 팽창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일제의 패망이 가시화되자 동북아지역에서 이권 확보가 무산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단 스탈린은 첫 번째 원폭 이 투하된 지 하루 만인 7일 일본에 대한 공격명령에 황급히 서명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은 일본이 아닌 소련을 겨눈 것이었다 는 몰로 토프 소련 외상의 말마따나, 원폭 투하는 유럽은 물론 동북아에서 소련 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세 과시였다. 두 번째 원폭이 나가사키 에 떨어지기 하루 전인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소련군은 두만강 을 건넌 반면 미군은 1천 Km 남쪽 오키나와에 있었다. 스탈린은 당시 마음만 먹으면 한반도 전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궁여지 책에 불과한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캡션 : 사진은 광복의 환희가 채 가시지 않은 1945년 9월초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경을 담고 있다. 민초( 民 草 )들이 길 한 복판 자갈돌로 쓴 38이란 숫자 좌우로 그어진 선이 잉태 한 비극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17

16 스탈린에게 38도선이남 한반도 반쪽보다 중요했던 것은 소련의 극동 함대가 태평양으로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소야( 宗 谷, La Perouse)해 협을 확보할 수 있는 홋카이도 북부에 대한 통치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한 달도 못돼 9월 12일에 열린 전승국 외무상들이 전리품 처리 를 위해 모였던 런던 외상회의에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일본 항복에 공헌한 바 없는 소련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 다. 이에 분격한 스탈린은 9월 20일 북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지 령을 내렸으며, 이듬해 국공내전( 國 共 內 戰 )에서 패퇴한 중국 공산당군에 게 북한을 반격을 위한 후방기지로 제공하였다. 북한이 중국내전의 연장 지역으로 전략적 요충이 되자 남북분단은 마침표를 찍었다. 통념과 달리 분단의 주도자는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누가 분단을 주도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련이 남한과 홋카이도 반쪽을 교환 하려 했던 사실과 미국이 중국이 공산화되자 극동방위선에서 남한을 제 외했던 애치슨라인이 명증하듯,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벌인 바둑판에 서 한반도는 대마를 잡기위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석( 捨 石 )이었다 는 점이 38도선 분할의 아픈 역사를 우리가 곱씹어야 할 이유이다. 3. 남북협상은 이루어질 수 있었나? 이처럼 이승만(10월 16일)과 김구(11월 23일)가 귀국하기 전인 1945 년 9월 20일 스탈린이 북한에 단독정부 수립 지령을 내림으로써 남북의 분단은 이미 결정되고 말았다. 그해 12월 한반도에 대한 4개국 신탁통 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자 김구와 이승만은 임시 정부를 모태로 한 반탁운동의 선봉에 함께 나섰다. 반공 반소 반탁 노선 을 함께 취한 두 사람은 1946년 6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을 내면서 갈라섰다. 이후 김구는 단정 반대노선을 걸었으며, 5 10 총선거를 코앞에 둔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 連 席 )회의 에 참석하기 위해38 도선을 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그가 김일성에게 보낸 2월 16일자 서한에서 제안했 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정치지도자 간의 정치협상, 즉 책임 있 는 당국자끼리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는 구수( 鳩 首 )회담과는 거 1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 리가 멀었다. 1945년 말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우익탄압, 이듬해 6월 폴 란드공산당의 국민투표 결과조작, 그리고 1947년 8월 20%밖에 득표하 지 못한 공산당이 소련군의 비호 하에 정권을 강탈한 헝가리 사태를 고 려해 볼 때, 당시 남북협상은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용될 것이 명약 관화했다. 조국은 지금 독립의 길이냐, 예속의 길이냐, 통일의 길이냐, 분열의 길이냐 하는 분수령의 절정에 서있다. 우리의 지표와 진로는 가능 불가 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위( 可 爲 ) 불가위의 당위론인 것이니 올바른 길일 진대 사력을 다하여 진군할 뿐일 것이다. 북행 하루 전날 나온 문화인 108인의 지지성명처럼, 김구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민족통일의 대의를 위해 북으로 갔을 수 있다. 공산주의나 여하한 주의를 가진 것을 불문 하고 외각( 外 殼 )을 벗기면 동일한 피와 언어와 조상과 풍속을 가진 조 선민족이다. 북행 4일 전 연설의 한 대목이 잘 말해주듯이, 그는 남북 협상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민족은 주의를 초월한다 는 소박한 신념과 임정시절 중국에서 좌우연합전선을 결성한 경험이 그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캡션 : 2005년 북한이 보내온 1948년 4월 22일 연석회의장으로 김구를 안내하는 김일성 사 진. 대한민국 건국 한 달이 채 못 된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들어 섰다. 이미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북한에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 는 지령을 내렸으며, 1948년 2월에는 조선인민군 을 창설하고 헌법 초안도 공표한 상태였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19

18 그러나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결의문은 채택 되어 있었다. 4월 23일에 나온 결의문은 연석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김일성에게 충고를 제공할 데 대하여 라는 4월 12일자 스탈린의 지령을 토씨까지 그대로 베꼈다. 4월 28일과 29일에 열린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4김 회 담 과 30일에 나온 남북조선 제정당 및 사회단체 공동성명서 도 구속 력 없는 휴지조각과 다름없었다. 그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김일성과 김 두봉에게 자주적 결정권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북한은 사실상 소련 군정 치하였고 공산진영의 황제였던 스탈린의 지령은 불가침의 성헌 ( 成 憲 )이었다.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력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었지만, 김구의 북행으로 북한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한 소련의 정 치공작은 성공한 반면 대한민국 건국사는 큰 상처를 입었다. Ⅱ. 대한민국 건국과 국제적 승인 1. 이승만이 주도한 UN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 전략 새로운 사료의 발굴은 통념을 바꾼다. 종래 수정주의 사가( 史 家 )들은 미국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 한국을 분단했고, 이승만은 정 권욕에 눈이 멀어 미국의 반공보루 구축을 위한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 선 주구( 走 狗 )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즉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으며 분단 고착화의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소련의 문서고가 열리고 냉전시기 미국의 극비문서 들이 공개되면서 기존 해석은 무너져 내렸다. 1946년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터지자 소련은 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만주 장악을 위해 북한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소련과 달리 미국에게 있어 남한의 전략적 가치는 미지수였다. 한반도를 중국대륙 에 부수된 지역으로 본 미국의 전략가들은 중국 패권의 향배가 가려지 지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만을 고려한 전략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따 라서 중국내전의 승패가 안개 속에 쌓여 있던 1947년 초까지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현상유지에 초점을 맞춘 관망(Wait-and-See)정책 이었 다. 그해 3월에 나온 트루먼 닥트린(Truman Doctrine) 은 유럽에서의 소련 팽창을 저지하는 봉쇄(Containment)정책 이었지 한반도는 해당 2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9 사항이 없었다.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온 4월, 패터 슨(Robert P. Paterson) 육군장관은 미국이 한반도에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고 보아 미군 철수를 주장했으며, 합참본 부의 전략조사위원회도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단정했다. 마셜 플랜(Marshall Plan) 을 선포한 5월 이후 미국은 모든 재원을 유럽에 퍼부었으며, 반공의 보루로 삼으려 한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경비를 삭감했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지 4개 월 뒤인 1947년 9월, 미 국무부는 소련의 동시철병 제의를 받아들여 미군 철수와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을 결정했는데, 이는 미국이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한국 문제에서 발을 빼겠다는 신호였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남한이 공산화되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해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결론 때문이었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승만 은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한 달 뒤인 1946년 6월 3일 정읍선언 에서 미국보다 먼저 남한에 정부를 수립한 후 세계 공론에 호소해 통 일정부를 세우자고 제안했으며, 그해 12월 미국 방문 시에는 유엔에 의한 한국문제 해결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전략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사항을 준수한다. 는 공식입장을 미국이 폐기하 고 유엔을 통한 한국문제 해결로 정책을 바꾼 1947년 9월 보다 앞선 다. 이렇게 볼 때 이승만은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 변 화를 궁극적으로 이끌어 낸 주도자였다. 한국문제 해결이 유엔에 이관됨에 따라 1947년 11월 14일 유엔 소 총회는 미국이 제출한 유엔 주관 하의 남북한 동시선거 결의안을 채택 했다. 이 결의안에 따라 남북한에서 실시될 선거 감시를 목적으로 유 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입국한 1948년 1월, 이승만은 김구와 김규식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큰 시련에 봉착했다. 한국문제는 한국 사람들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며 5 10선거의 연기를 요구한 김구와 김규식의 주장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들에게 영 향을 주어 유엔의 총선거 결정이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이승만은 김구와 김규식을 만나 남북 통일선거가 불가능할 경 우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동의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그의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21

20 노력의 결실로 한위 대표들은 마음을 바꿨으며, 유엔 소총회는 2월 26 일 남한 단독 총선거 실시 결의안을 다시 채택했다. 마침내 유엔 감시 하에 실시된 5월 10일 총선에서 선출된 198명의 제헌의원이 만든 헌 법이 7월 17일에 공포되었으며, 8월 15일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취임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캡션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 선포식 모습 이승만이 김구 등의 5 10선거 연기요구를 반대한 이유는 권력욕에 눈멀어서가 아니었다. 1946년 3월 북한은 한 달 전 소련의 지령으로 세워진 임시인민위원회 주도로 소위 무상몰수 무상배분 의 토지개혁을 실시해 공산화의 물적 토대를 닥아 놓았으며, 1948년 2월 8일에는 조 선인민군이 창군되고 이틀 뒤에는 조선임시헌법 초안 이 발표된 상황 이었다. 이처럼 북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준비가 끝나고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가 확고해졌으며 미군철군은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도 미국의 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1948년 12월 국무부 극동국이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철병을 재 고 의견을 내 놓았지만, 그 시기를 일시 연기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1948년 10월 21자 뉴욕 타임즈가 서울의 미국 관리들은 대한민국이 이제 완전붕괴 직전에 도달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고 보도할 정도 로 당시 남한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2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1 타파하기 위해 이승만은 미군 철병 연기를 요청하는 한편,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2. 장면 수석대표가 이끈 건국외교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대한민국 건국이 공식 공표되기 나흘 전인 8월 11일 이승만 대통령 이 제헌국회의 외교통 의원이었던 장면( 張 勉 )을 제3차 유엔총회 파견 수석대표로 임명할 만큼 국제적 승인은 시급한 문제였다. 당시 소련 중심의 공산국 블록과 영연방측은 대한민국의 승인을 반대하고 있었으 며, 바티칸만이 대한민국을 국가로 승인했을 뿐 미국조차도 승인을 미 루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장면이 이끈 대표단이 넘어야 할 장애는 산 넘어 산이었다. 첫째, 대표단은 초청안이 가결된 12월 7일 이전에는 옵서버 자격으로 일반 방청석에서 회의를 참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교섭 상대국 대표들을 공적으로 만나 외교활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 둘째,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봉기와 그 진압을 위해 파견될 예정이었던 여 수 주둔 14연대의 반란 등 남로당의 파괴공작으로 인한 불안정한 국내 정국과 국론 분열도 심각했다. 셋째, 대한민국 승인 결의안이 회기 최 종기한인 12월 11일의 닷새 전인 12월 6일에야 제1위원회(정치위원 회)에서 토의를 시작할 만큼 소련과 그 위성국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넷째, 당시 호주와 인도 등 영연방 국가들은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 후 한국문제는 미 소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아랍권 국가들도 이스라엘 독립문제로 인해 미국이 지원하는 대한민국 승인을 반기지 않았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23

22 캡션 : 제3차 유엔총회에 임한 한국 대표단 (앞줄) 조병옥, 장면 수석, 장기영 (뒷줄) 정일형, 모윤숙, 김활란, 김진구, 김우평 우리 대표단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으므로 옵서버 자격으로 일반 방청석에서 회의를 참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개월이란 짧은 기 간에 대표단은 첩첩산중의 장애를 뚫었고, 그 결과 12월 12일 총회 마 지막 날 대한민국은 유엔의 승인을 획득하였다. 어떻게 승인을 얻어냈 을까? 먼저 대표단의 적절한 구성을 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바티칸의 후원 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한국문제에 이견을 보였던 유엔한국위원단 의 캐나다나 인도 대표도 반대하지 않을 장면을 수석대표로 임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전개된 막후 외교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함 으로서 국제 외교무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던 교황 비오 12세는 유엔총회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에 대한 지원을 바티칸의 국무 장관 몬트니(Giovanni Battista Montini)대주교와 재불 교황청 대표 론 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 대주교에게 명령하는 등 외교적 후원 을 아끼지 않았다. 2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3 캡션 : 제3차유엔총회 파견 수석대표 장면이 발급받은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1호의 앞면. 영 문으로 바티칸에 파견되는 특사임이 명기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교황청의 지 원은유엔 승인 획득에 있어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장면은 혜화동 본당 신부로 당시 파리에 와 있던 생제(Singer) 신부와 함께 파리 근처 성지 참배여행 도중 우연히 만난 오브라이언 (O'brien) 부주교의 도움으로 호주대표단의 한국문제 담당자 플린스컷 트(Jim Plinscott)를 만나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처럼 바티칸의 후원을 이끌어 내려 한 이승만의 전략이 주효해 바티칸은 대한민국 승인에 보 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캡션 :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1호의 뒷면. 장면 사진 옆 신장 5척 7촌, 모발 흑색, 안색 갈 색 이란 본 여권 소지인의 특징 란에 기재된 내용이 이채롭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25

24 캡션 : 유엔 총회 후 교황 비오 12세 예방차 바티칸 궁을 공식 방문한 장면 수석대표 또한 미국 특히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의 전폭적 지원활동도 중요했다. 장면은 후일 그를 대한민국의 건국과 국제적 승인을 위하여 서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동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아 찬연한 공훈을 세 움으로써 우리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거룩한 은인 으로 회고할 정도였다. 그는 유엔 총회 막전막후에서 유엔의 승인을 얻을 수 있도 록 외교 전략을 조언하는 한편 거수로 찬반을 표시하게 할 만큼 12월 12일 총회에서 승인 과정을 진두지휘하였다. 캡션 : 유엔 총회 표결을 앞두고 덜레스(John Foster Dulles)와 숙의( 熟 議 )하는 장면 수석 대표 2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5 한 마디로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에는 냉전체제 하에서 소련의 팽창 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바티칸의 도움이 크게 작용하였지만, 이 두 지 원세력의 협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견인차는 이승만이 구사한 외교 전략과 장면 등 유엔총회 파견 대표단의 헌신적 노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캡션 : 덜레스가 작성해 장면 대표에게 준 1948년 12월 12일 오후 5시 15분에 실시된 제3 차 유엔 총회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에 대한 표결 결과를 정리한 Voting Check List 장면은 이 문서에 관한 일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덜레스씨는 조금도 피로해 하지 않고 솔선하여 각국대표를 깨우쳐 협조를 요청하 기에 바빴으며 드디어 의장이 표결을 선언하자 몸소 일어나서 한국문 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거수가결을 하지 말고 각국대표를 호명하여 가 부를 하나씩 듣기로 하자 고 주장하여 그대로 되니까 종이를 앞에 펴 놓고 각국 대표의 예스 노 를 일일이 적었으며 48대 6의 다수로 가 결이 선포되자 덜레스씨는 그 기록에 사인을 해가지고 와서 그것을 나 에게 주며 이것을 한국독립 승인의 기념품으로 드리며 축하합니다 고 하면서 자신도 무척 기뻐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 기록을 지금도 꺼내 보고 다시금 그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27

26 3.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을 기억해야 할 이유 한 나라가 국민국가인지 여부는 자국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의해 판정된다. 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감시 하에 실시된 총선 결과 8월 15일에 건국된 대한민국은 그해 12월 12일 제 3차 유 엔총회에서 회원국 58개국 중 48개국의 찬성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 법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한 세기 전 서구열 강들이 국민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던 대한제국의 망국( 亡 國 ), 임시정부 가 펼쳤던 승인외교의 실패, 그리고 광복 후 연합국의 신탁통치 계획 에 비춰볼 때,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대 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승인과 더불어 유엔한국위원단을 재 파송해 통 일국가 건설에 힘쓸 것을 약속한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5 10총선 결과 폐기와 유엔한국위원단 해체를 주장한 소련측 결의안이 48개국의 반대 로 부결되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1) 왜냐하면 한반도에 들어선 두 개 의 국가가 유엔에서 벌인 인정( 認 定 )투쟁에서 대한민국이 쟁취한 국제 적 승인은 1950년 6 25전쟁 때 유엔군 파병의 근거가 되어 북한의 침 략에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Ⅲ.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요하다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우리 시민 사회의 기억은 긍부( 肯 否 )와 호오( 好 惡 )가 엇갈린다. 광복 후 대한민 국의 역사를 서구가 300년 걸려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불과 60년 만에 따라잡은 자랑스러운 역사 로 자긍하는 이들에게 시장경제와 민 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은 그 업적을 기려야 마땅한 건국의 아 버지 로 다가선다. 1) 당시 총회에서 표결된 미국측 결의안과 소련측 결의안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측 결의안은 1) 유엔은 대한민국의 위상과 권위를 국내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유엔의 후원 하에 행해진 일에 합법성을 보장할 것, 2) 유엔은 가능한 한 조속히 철군을 감시함으로서 신정부로 하여금 전시 군사점령을 종결시킬 수 있도록 위원단을 존속시킬 것, 3) 유엔위원단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재통일하고 경제적 혼란과 내란의 위협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지원할 것 등 이었으며, 소련측 결의안은 유엔임시위원단의 폐지, 한국을 독 립된 민주주의 국가로 재건하는 새로운 수단 마련, 그리고 남한 선거결과의 폐기 등 이었 다. 한국독립결의안이 통과된 뒤 표결에 부쳐진 소련측 결의안은 찬반 6대 48, 기권 1표 로 부결되었다. 2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7 그러나 김구는 냉전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소련의 기만 전술에 말려들고만 시대착오적 정치가 로 비칠 뿐이다. 반면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국가의 완성만이 살길이라 믿는 이들에게 김구는 그 당 위성을 일깨우는 상징인물로 우뚝 선지만, 이승만은 분단의 고착화 를 초래한 역사의 죄인 이자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로 비칠 뿐이다.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의 편차는 우리 시민사회의 정체성에 난 균열과 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갈가리 찢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줄 묘안은 없을까? 우리는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法 統 )을 계승한다 는 헌법 전문( 前 文 )의 정신을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가 채택한 민주공화국의 국가형태와 삼권분립 정신에 기초한 임시헌법이 오늘 우리가 지키고자하는 정치체제의 시원 임을 말이다. 또한 1941년 6월 김구가 이승만을 임정을 대표하는 주미외교위원장 겸 주미 전권대표로 임명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교활동과 무장투 쟁 독립운동 전략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그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손 을 마주 잡았다. 대한민국 건국사를 임정이 수행한 독립운동의 역사와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1919년부터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을 지낸 이승만과 1940년부터 5년간 주석을 맡은 김구 두 분 모두 건 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이라는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29

28 캡션 : 1946년 봄 민주의원 회의를 마친 후 악수를 나누는 사진 속 이승만과 김구처럼 우리 시민사회도 서로 부딪치는 역사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화해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 것이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건너야 할 화해의 강물에 놓인 징검다리의 첫 번째 디딤돌이 될 터이다. 3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9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1>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발제 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냐 대한민국 건국 이냐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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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냐 대한민국 건국 이냐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교수) I.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냐 대한민국 건국 이냐? 년 8월 15일: 해방인가 광복인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70년 전의 1945년 8 15를 광복절이라고 공식 호칭하며 북에서는 조국 해방 기념일 이라 부른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 8 15를 북에서는 해방 남에서는 광복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남북 모두 두 용어를 쓰고 있다. 단 북한에서는 광복이라는 말 앞에 조국이라는 용어를 첨가하여 광복보다는 조국광복 이라는 합 성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1945년을 조국광복의 해로 공식 호칭 하고 있으며 8월 15일을 조국광복의 날 이라고도 규정한다. 또한 1945 년 당시에는 남 북 좌 우 모두 해방이라고 불렀다. 1946년과 1947년 8-15는 좌우 모두 해방 1주년, 해방 2주년이라고 기념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 2조에 광복절 8월 15일 이라고 명기해 광복절을 국경일의 하나 로 제정했다. 그런데 이 법안의 신규제정 이유 에는 독립기념일( 獨 立 記 念 日 ) 로 되어 있어[1국경일은 3 1절, 헌법기념일, 독립기념일, 개천 절로 함] 1) 그 날이 1945년 8월 15일인지 아니면 1948년 8월 15일인 지 명확하지 않다. 1) ew&showchk=&s_lawmst=4167&l_jono=&l_josn=&l_bupubdt=&l_bupubno=&gubun =&history=&srchgb=&index=&down=(검색일: 2005년 7월 11일); lsrvsrsnlistp.do?lsiseqs=165523%2c72262%2c4167&chrclscd= (검색일: 2015년 3월 30일).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33

32 1949년 9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 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 서 초안에는 8 15가 독립기념일 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광복절로 그 명 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2) 정부가 작성해 1949년 6월 2일 국회로 회부 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안 에는 독립기념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49년 9월 제5회 임시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백관수)에서 광 복절 로 수정된 안을 마련했다. 이 안은 9월 22일 본회의에 상정되어 재석 108명에 가 81표 부 4표로 확정되었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는 헌법기념일과 독립기념일을 제헌절과 광복절 로 고치자고 주장해 관철시켰으며, 본회의에서 의원들은 독립이냐 광복 이냐의 의미를 논하기보다는 日, 節, 날과 같은 어미 자구에 집착했으 며, 3 1절, 개천절과 같이 절 자를 집어넣어 통일시키면서 제헌절, 광 복절이라는 조금 더 간결한 명칭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당시 속기 록을 검토했던 김효선 선생은 당시 제헌의원들이 1945년 해방이 아니 라 1948년 8 15를 광복절로 간주했었다고 주장했다. 3) 1945년 8 15가 아니라 1948년 8 15가 광복절이라는 소수의 견해는 다음 단락에서 상 술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 광복절을 Liberation Day 라고 번역했다. 4) 따라서 광복에 해당하는 대 한민국 정부의 공식 번역은 직역인 restoration이 아니라 해방의 번역 어인 liberation이다. 5) 한편 2005년 네이버영어사전에서는 광복절( 光 復 節 )을 Independence Day of Korea 라고 번역하다가, 6) 2015년에는 National Liberation Day 로 바뀌어 있다. 7) 따라서, 광복절은 1945년 2) 이영훈,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이승만 포럼 발표논문, 프레스센터, 2011 년 8월 10일, 이영찬, 대한민국은 왜 독립을 기념하지 않는가?: 이영훈 교수, "대한민국 정 부와 국민은 건국과 독립을 忘 却 의 방식으로 부정해 왔다," 코나스넷, 2011년 8월 11 일, (검색일: 2015년 3월 30일). 3) 김효선,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명칭 변경된 경위와 그 여파, 이주영 (편), 대한민국 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서울: 뉴데일리, 2011), p ) (검색일: 2005 년 8월 1일); Address by President Park Geun-hye on the 69th anniversary of Liberation, Aug 15, 2014, -Speeches/view?articleId= (검색일: 2015년 4월 25일). 5) 그런데 국가보훈처 산하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주최한 광복60주년기 념국제학술회의(주제: 세계 식민지 해방운동과 한국독립운동)에서는 광복60년을 the 60th Anniversary of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로 번역했다. 이렇듯 정부부처 사 이에서도 혼선이 있다. 6) (검색일: 2005년 8월 1일). 3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33 8월 15일 해방의 날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며, 1948년 8월 15일 정 부수립기념일은 독립기념일이다(미국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 식민지 이 전에 독립국이 존재했으므로 독립이라는 표현 보다 광복이 더 타당하다 는 의견도 있다). 진보적 학자들은 독립운동이라는 용어보다 민족해방운동 이라는 표현 을 선호한다. 이렇듯 해방이 다소 진보적인 어감을 가진 것처럼 간주되 기도 한다. 광복은 국권상실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하여 복고적이며 자강운동적-계몽운동적 지향이 보인다고 진보적 학자들은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8) 진보진영의 한홍구 교수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 서 광복이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 보적인 사람들은 해방을 선호했다고 평가한다. 9) 그러나 두 용어 사용자에 이데올로기적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두 용어를 혼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미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해방은 식민 상태 등 압제로부터 풀린다 는 뜻 이다. 연합국이 한국을 일제로부터 해방했다 거나 한국은 1945년 해 방되었다 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연합국이 주체가 된 표현이다. 또 한 노예(상태)를 해방 한다는 기분 좋지 않은 어감을 연상시킨다. 우 리 입장에서 해방은 다소 수동적 피동적인 표현이다. 이에 비해 광복은 주체적인 표현이다. 광복의 본 뜻은 빛나게 회복하 다, 힘이 줄어들거나 기울어진 것을 이전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사 전적으로 보면 빼앗긴(잃었던) 주권(국권; 빛)을 도로 찾는 것 을 의 미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등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광복이라고 하는 것 이다. 주역에서 复 은 원래 자리로 오는 것 을 의미하는데 원상태로 완 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광복은 빛나는 되돌림 혹은 빛을 되돌리는 상 태(주권 회복) 를 뜻한다. 그런데 광복은 일제가 우리를 병탄하기 이전 7) EB%B3%B5%EC%A0%88 (검색일: 2015년 4월 25일). 8) 임대식, 일제시기-해방 후 나라이름에 반영된 좌우갈등: 우 대한-좌 조선가 남 대한- 북 조선의 대립과 통일, 역사비평 제21호 (1993년 여름), p ) 한홍구, 건국절? 차라리 8 29를 '문명절'이라 해라: 그들이 '광복'을 싫어하는 이유, 프레시안, 2008년 8월 4일, article_num= (검색일: 2008년 8월 28일).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35

34 의 광명한[밝은] 역사를 회복한다는 과거 지향적이며 복고적[보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광복은 한마디로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이 다. 그러나 장준하가 1956년 사상계 에 문제제기한 바에 따르면 1945년은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계기였다는 것이 다. 10) 광복의 주체는 우리이며, 연합국이 우리를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시켰 으므로 해방의 주체는 연합국이며 우리는 객체이다. 우리 입장에서 해방 은 피동적인 용어이며 광복은 주체적인 뉘앙스를 가진 말이다. 또한 광 복은 이전 시기 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비해 해방은 이전에 주권국가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용어이다. 복고적이 라는 뉘앙스만 없다면 광복이 주체적이면서도 식민지 이전의 독립국가 의 존재도 부각시킬 수 있는 말이므로 피동적인 해방보다도 좋은 어감 의 용어이다. 그런데 과연 1945년 8 15에 주권을 찾았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 날은 단순한 해방절 이며, 광복은 1948년 8 15가 더 적절하 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 가능한데 단락을 나누어 상술하고자 한다 년 8 15가 광복절이라는 소수설: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1948년 광복 광복 을 주권(국권) 회복 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입각하면 해방보다는 독립 이라는 용어와 그 의미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술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정이유에도 광복절이 독립기념일로 나오므로 광복을 독립 과 등치시킬 근거가 있다. 이러한 등치론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에 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 되었을 뿐, 독립을 성취한 것은 아니므로 11) 1945년 광복을 해방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을 찾는다는 견지에서 보면 1945년에는 국권(주권)이 미국과 소련에게 있 었고, 12) 1948년에야 찾았으므로 광복은 19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 10) 이영훈, 건국 기억의 60년간의 발자취, 이주영 (편),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서울: 뉴데일리, 2011), pp ) 얄타회담에 임했던 영국의 기본적인 입장은 한반도를 해방은 시켜줄 수 있지만 독립은 시켜줄 수 없다 는 것이었고, 그러한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준 것은 얄타회담 이틀째인 1945년 1월 31일자로 올라온 토인비(Arnold J. Toynbee)의 보고서였다. 훗날 위대한 역사학자로 평가받은 그는 당시 옥스퍼드대를 졸업 하고 영국 외무부 조사국의 중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는 얄타회담을 위해 준비한 정책보고서 한국의 독립 능력: 그 역사적 배경(Korea s Capacity for Independence: Historical Background) 에서 한국은 독립할 수 없는 나라 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처칠은 회담장에서 그 보고서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3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35 이며 이는 현재까지는 소수설이다. 먼저 김효선 선생은 광복의 사전적 정의가 주권회복 이므로 1948년 8 15가 광복절이라고 주장했다. 광복절의 정확한 의미는 일제로부터 해방 된 날이 아니라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국권을 회복한 날 이라는 것이다. 1945년 8 15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일뿐 통치권이 미군정으로 넘 어갔으므로 광복의 날 이 아니며 독립의 날 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1948년 8 15는 광복의 날 이자 국권회복의 날, 독립의 날 이라고 주장 했다. 따라서 1945년 8 15에 우리 민족이 주권을 회복했다거나 독립을 이루 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라는 것이다. 13) 또한 2015년 1월 KBS공영노동조합 (기존 노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 수적임)도 김효선 선생의 주장에 의거해 1948년을 광복절의 기산으로 잡아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선언했다. 광복절이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국경일이 아닌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잘못 인식되게 된 것은 전쟁 와중인 1951년 8월 15일에 있었던 제 3회 광복절 기념식부터였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 은 기념사의 제목을 기념사(제3회 광복절을 맞이하여) 로 명기하여, 14)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부합하게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국경일 로서 광복절을 기념했다. 그런데 당시 신문 중 한 곳[ 조선일보 ; 인 12) 힐드링 (Hilldring) 미국 국무부차관보는 1947년 3월 한국인들의 참담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제 일본인들은 떠났다. 그러나 한 통치자가 떠난 자리에 한국인들은 두 통치자들을 가지게 되었다. 설상 가상 그들은 '두 개의 밀폐된 구획'(two hermetically sealed compartments)으로 국가를 분단시켰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제 치하에서보다 훨씬 못 살게 되었다고 느낀다. 식량 가격은 오르고 양은 줄어든다. 한국인 들은 우리 미국인들이 떠나기를 요구하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정하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이재봉, [문학예술 속의 반미] 1940년대 문학예술에 비추어진 미군정 (1): 해방 후 최초의 반미 데모는? 프레시안, :50:28, (검색일: 2015년 4월 6일). 당시 한국인들 중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미국의 정책 담당자조차 이런 고통을 인정했던 것이다. 한국인들 중 일부는 미군정에서의 생활이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의 삶만큼 비참하다고 느꼈으며 좌익들은 더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한편 채만식은 1948년 소설 낙조 를 통해 한반도는 외국 군대 아래서 허울뿐인 독립을 이루었다며 38선 이남을 미국의 보호령으로 간주했다. 박노갑은 1948년 소설 사 십년 에서 미군정은 일본 식민통치의 대체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봉, [문학예술 속의 반미] 1940년대 문학예술에 비추어진 미군정 (2):미군은 해방군? 소설 속 드러난 미군의 민낯, 프레시안, :26:21, (검색일: 2015년 4월 6일). 이런 맥락에서 1945년 해방은 모두가 기뻐만할 일은 아니었으며 단지 지배자의 교체에 불과 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13) 김효선,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명칭 변경된 경위와 그 여파, 이주영 (편),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 하지 않는가 (서울: 뉴데일리, 2011), pp. 154, ) 대통령 이승만박사 담화집 에 나와 있는 1950년 기념사(제2회 광복절을 맞이하여)도 같은 맥락에서 부제를 달고 수록되었다. 김효선,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명칭 변경된 경위와 그 여파, 이주영 (편), 대 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서울: 뉴데일리, 2011), p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37

36 용자]이 이날의 기념식을 광복 6주년 기념식 이라고 잘못 보도하면서 15) 문제가 생겼다. 1949년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간과한 다른 신문들이 이를 받아쓰고 1945년 8월 15일 즉,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 을 국경일로 오인한 것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 벌어진 신문사들의 광복절에 대한 착각은 이때부터 정부로 전파되었다. 제헌국회에서 결정한 1948년 8월 15일부터 시작되 는 광복절 기념일의 횟수를 산정함에 있어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과 광복 의 사전적 의미인 주권을 되찾은 날 을 외면하고 1945년을 기산 년도로 삼았으며, 현 정부에서도 그런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16) 한편 진보진영의 학자 서중석 교수도 1948년 8-15를 광복절이라고 호칭하는 소수설을 견지했다. 그는 1945년 8-15를 해방으로 규정했으 며 "1945년 8`15로 역사상 처음으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기본 권을 누릴 수 있게 되고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기 때문에 대단히 뜻 깊 지만 광복절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선포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아주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2008년에 뜨거웠던 건국절 제정 논쟁 (후술함)을 의식해 1948년 8-15가 건국절이 아니라 광복절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의 일환이었다. 17) 1945년 해방, 1948년 광복(건국)을 구분하여 기념하자는 김효선 선 생 KBS공영노동조합의 주장과 서중석 교수의 주장은 그 접점이 모색될 수 있다. 다만 서중석 교수는 1948년 광복이 건국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1945년 8-15를 광복절로, 1948년 8-15를 정부수 립기념일로 간주한다. 따라서 2005년에 광복60년 기념 사업추진위원회 가 발족되었다. 이에 반해 김효선 선생 KBS공영노조와 서중석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올해 2015년을 광복67주년으로 불러야 하는데 관행화된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5) 김효선,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명칭 변경된 경위와 그 여파, 이주영 (편),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서울: 뉴데일리, 2011), pp ) KBS공영노동조합, 공영방송 역사 바로 세우기 - 광복 70년, 횟수 논란, 2015년 1월 19일, 이보연, KBS공영노조 공영방송이 광복70년 이라니... : 공영노조, 해방, 광복, 건국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공영 방송 역사 바로 세우기 KBS <광복 70년 미래 30년, 대한민국 100년의 드라마> 슬로건 비판, 뉴스파인더, 2015년 1월19일, 년 3월 1일). 17) 서중석, 대한민국의 탄생 -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개정증보판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3), pp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37 이미 1945년 8 15를 광복절이라고 국가에서 공인했으며 일반인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마당에서 대중들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다소 문제가 있는 규정이라도 무리하게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 며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악법도 법 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할 수 는 없다. 잘못된 관행일지라도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부른다면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통용되고 있는 이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 도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1945년 8 15 직후 미 소양군의 지배로 인해 우리민족이 독립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완전한 해방 18) 완전한 광복(주권회복)은 아니었다. 19) 그렇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불완전한 해 방 20) 불완전한 광복(부분적 광복; 부분의 광복 21) )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수식어를 첨가하는 것으로 광복절 지칭의 대립 논쟁을 지 양하고자 한다. 즉 1945년 8 15를 부분의 광복절[1기 광복절] 로, 미군정의 지배로부 터 독립된 1948년 8 15를 2기 광복절[미완의 광복절] 로 장차 도래할 통일의 날을 완성된 광복절, 진정한 광복절 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한 다. 22) 분단되었다고 광복이 되지 않았다는 분단=부정된 광복 이라는 18) 송광성 교수는 1945년 8-15는 해방이 날이 아니라 분단의 날이라고 주장했다. 송광성, 8-15는 해방의 날이 아니다, 역사비평 계간6호 (1989년 가을), 쪽. 19) 시인 권환은 1946년 그대를 어떻게 맞을까 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과연 광복은 되었는가? / 오! 남녘땅 동포들아 / 다시 한 번 맞이하자 // 참다운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 새 8 15를 정말 8 15를 (...)." 이 재봉, [문학예술 속의 반미] 1940년대 문학예술에 비추어진 미군정 (3): 강화도 농민들이 미군캔디'를 거부 한 까닭은? 프레시안, :50:33, = (검 색일: 2015년 4월 6일). 20) 1981년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책 한국전쟁 의 기원 1권(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I, 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의 결론인 12장의 제목은 '부정된 해방(liberation denied)'이다. 그는 해방정국에서 해 방은 부정되었다고 평가했다. 필자는 해방이 완전히 부정되었다는 커밍스식의 급진적 평가에 대항하여 ' 불완 전한 해방' 정도는 된다는 중도적 해석을 견지하고자 한다. 21) 김인식, 대한민국 정부수립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4), p ) 2015년 3월 5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 창간 95주년 기념식의 주제는 민족과 함께한 95주년, 광복에서 통일로 였다. 이 자리에서 진정한 광복은 통일 이라는 기치가 내걸렸다. 배성규, 1920-민족과 함께 한 조선일보 95년 진정한 광복은 통일, 조선일보, 2015년 3월 6일 A1면. 또한 박세일 한반도선진 화재단 상임고문은 한반도 통일만이 우리가 완전한 독립국가이자 선진국가로 가는 길 이라고 했다. 김명성 윤동빈, 보수 진보 망라... 통일운동동단체 모두 참석, 조선일보, 2015년 3월 6일 A11면. 1948년 미국으로부터 독 립되었지만 아직도 미군이 우리 국방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완전한 자주독립은 아니라는 해석 이 가능하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39

38 논리는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되었던 사실과 1948년 독립된 사실을 지 나치게 과소평가한다. 일제에서 미국 소련으로 지배자가 교체된 것에 불 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잠정적으로 외세가 점령했던 미군정기와 소련 지배기(소군정기)를 식민지 시대로 보지는 않으므로, 단순한 식민 지배 권력의 교체라고 보는 견해는 당시 주권 결여 상황을 너무 과장한 단순 화 논리이다. 북한과 대한민국의 일부 민족해방(NL)파[친북 주체사상 파]는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미제의 식민지로 지배자만 교체되어 지금까지 식민지 상태라고 평가하고, 일부 민중민주주의(PD)-제헌의회 (CA)파는 일제 식민지에서 미국의 신식민지로 변화되었다고 주장하지 만 이도 역시 독립국가로서의 대한민국 출범을 폄하하는 급진적 극단적 인 견해이다. 그렇지만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한 이후 1950년 6 25전쟁이 발발하 자 미국의 지원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현재도 북한의 침략을 억제 하기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므로 자주독립국가라는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23) 따라서 통일된 후 우리 손으로 우리 를 지킬 수 있다면 완전한 자주의 실현에 한 걸음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24) 년 8월 15일을 보는 시각: 건국이냐 [단독]정부수립(단정/분단)이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8월 15일 광복63주년 대한민국 건국60년 중앙경축식 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 의 역사였다 고 평가했다. 이는 남한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 다. 남쪽만이라도 적화를 막은 성공적 조치로 1948년 나라세우기 를 평 23) 1970년대 닉슨 행정부(1971년 3월 27일)와 카터 행정부( 년)가 단행한 미군 감축의 와중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했다. 이 말은 당시 국방이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24) 완전한 광복은 그 시점에 달성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이 강대국에 의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미군 철수를 요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국제화시대에 과도한 민족주의적 감정은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자주라는 구호가 매력적이긴 해도 전세계적에서 자국만으로 안보를 책임지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영국, 독일 같은 선진국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EU의 국방도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독일 등이 자주국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러시아, 미국도 동맹국과 협조해 국방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핵무기로 무장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데 뿐만 아니라 북한의 급변사태 혹은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일시에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안전장치라는 측면도 있다. 4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39 가하면서 이를 선택한 이승만 노선에 호의적인 보수진영(그리고 당시 여권)의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남북한이 각각 정 부를 수립한 것이 오늘날의 분단으로 이어져 민족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분단시대의 개막은 성공시대의 개막이 아니라 실패 한 부정적 역사의 시작이며 극복해야 할 것으로 간주했다. 25) 1948년 8월 15일 우리는 임시정부가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가 를 우리나라 남쪽에 정식으로 만들었으며, 이 국가가 우리 민족의 구성 원들을 직접 통치한지 벌써 70년 가까이 되었다. 26) 이제 차분히 돌아보 며 우리 현대사를 반성할 시점이 도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논의가 분분했다. 1948년 8-15를 건국(국가 만들기, state-building)이 냐 아니면 (단독)정부수립(단정/분단)으로 보느냐에 따라 좌우가 갈리기 도 했다. 27) 오늘날 현대사학계가 건국-대한민국 발전을 중시하는 건국담론 과 해 방-분단을 강조하는 비판적인 분단담론 으로 대립적 양상을 보이고 있 는 것이다. 28) 한쪽에서는 2008년 8-15를 건국60년이라고 기념했는데 비해 다른 한편에서는 분단60년이라며 비판적으로 볼 것을 요구했다. 1948년 후 60년의 역사를 건국과 발전의 영광으로 보아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입장이 있고 이에 대해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좌절과 그 실현 을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보아 분단60년을 반성하는 입장이 대립했다. 이것이 2008년을 달구었던 건국절 논쟁 등장의 한 부분을 제공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현대사학계에서는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적 경 25) 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78), pp ) 홍석률, 대한민국 60년의 안과 밖, 그리고 정체성, 창작과 비평, 통권 139호 (2008년 여름). 27) 대한민국 건국 인가 정부수립 인가: 동북아역사재단 '건국 60주년' 학술대회, 연합뉴스, 2008년 5월 13일. chtext=%eb%8f%99%eb%b6%81%ec%95%84%ec%97%ad%ec%82%ac%ec%9e%ac%eb%8b%a8%20'%ea %b1%b4%ea%b5%ad%2060%ec%a3%bc%eb%85%84'%20%ed%95%99%ec%88%a0%eb%8c%80%ed%9a% 8c&contents_id=AKR (검색일 2008년 12월 26일)에서 김태식 기자는 건국 은 대한민 국 자체를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간주하는 것인 반면, 정부수립 은 대한민국 자체를 남한 으로 축소해 불완 전한 분단국을 표현하는 것 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정부수립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모두 분단이나 단정 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며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하는 입장에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다. 한편 이만열, 정당하 게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 한홍구 (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5인5색 한국 현대사 특강) (서울: 철 수와 영희, 2009)에서 건국이냐 정부수립 이냐의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28) 박명림, 이승만의 한국문제-동아시아-국제관계 인식과 구상: 악마화와 신화화, 건국 담론과 분단 담론의 대립을 넘어서, 역사비평 83 (2008년 여름), p. 58.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41

40 향이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건국의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지 않 았으나 2008년을 전후하여 건국사관을 담지한 그룹이 하나의 정치세력 으로 등장하여 기존의 연구경향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9) 이러한 역사인식의 대립을 다양한 의견표출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렇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과거 독재 치하처럼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 역사인식 획일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과거에는 그것이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능은 했으나 지금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립이 불필 요한 오해와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하거나 지나칠 정도여서 국론분열 이 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양극화는 지양될 조짐을 보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소통을 통한 토론은 가능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는 건국과 정부수립을 그때그 때 병행하여 사용해 왔고, 이를 구분하여 개념 짓는 게 큰 의미가 없다 고 보았다. 엄밀한 개념정의가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말 이다. 그렇다면 개념정의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건국준비위원회 30) 도 우파보다는 좌파가 주도했으며, 북에서도 건국사상총동원운동 등의 예에서 보듯이 김일성의 건국에 대해 찬양하 므로 양분법적인 구분에는 문제가 있다. 단지 국가를 부르주아계급이 인 민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인식(국가는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 에 지나지 않는다; 맑스주의에 대한 도구주의적 해석)이나 국가는 소멸 할 수밖에 없다는 국가소멸론(19세기 중반 엥겔스의 인식) 때문에 좌파 는 국가를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편이다. 이런 맥락에 기반하기 도 하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좌파는 대개 1948년 8 15를 건국보다는 정 부수립이라고 부른다. 또한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기 전에는 엄연히 나라가 있었으므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너무 강조하는 견해는 우리나라 역사가 60년밖 에 되지 않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따라 29) 김영호, 국가론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 건국의 특징과 의의,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0집 1호 (2008년 8월), p ) 1945년 8월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가반이 되었던 건국동맹은 당초 그 이름으로 해방동맹, 해방연맹을 생각하다가 년간 일제의 패망이 눈앞에 명백히 다가왔고 조선의 해방이 불을 보듯 명확해졌기 때문에 일제패망 시 즉각 건국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건국동맹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병준, 몽양 여운형 평전 (서울: 한울, 1995), p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41 서 건국이라는 용어를 쓸 때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명기해 대 한민국건국 이라고 정확하게 적어서 다소 평가절하 시키기도 했다. 신 국가 건설(새로운 건국)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고려건국, 조선건국도 있을 수 있으며 개천절에 최초 국가가 건국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물론 1948년 수립된 것은 왕정이 아닌 공화제 국가이므로 이 전 건국과는 다른 획기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 이전은 신대륙 발견기와 식민 지 시대였다. 조지 워싱턴은 국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로 추 앙받으며 다른 독립 운동가들도 새로운 국가의 건국자(founders of new nation)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과연 국부라고 할 수 있을까? 31) 그렇다면 단군은 어떻게 되나? 고려 이후 단군을 국조로 인 식했으며 1948년 9월 법제화했다. 대한민국을 일군 사람으로 이승만을 간주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조지 워싱턴에 비견되는 한국 국가의 최초 정초자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승만이 나라를 세우려 했을 때 미 국은 최고 지도자로서 다른 대안(예를 들면 김규식, 여운형, 서재필)을 고려했었으며 국내에도 좌파는 물론 우파 중에도 김구-김규식을 비롯해 단정이라며 반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32) (물론 이러한 반대를 무 릅쓰고 나라를 세운 이승만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조지 워싱턴과 이승만을 동격에 놓는 것은 우리의 반만년 역 사를 지나치게 협애화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건국은 대한민국 건국일 뿐이며 전체 한국사의 건국일은 아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건국도 1919 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대한제국과의 연결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반만년전의 (고)조선건국을 진정한 건국이자 31) 중국의 손문에 비견되는 인물이 한국에 없는 것은 우리의 경우 국망으로 나라를 망쳤으므로 나라를 잃은 어른들 중 국부로 추앙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한편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2008년 8 월 18일 참여사회연구소와 의제27, 코리아 연구원이 주최한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 공동 토론회에서 국부 라는 말은 국가를 하나의 가족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최고 통치자가 국민의 생존 여 부까지 결단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이승만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며 저항 가능성이 있는 대중 전 체를 목표 삼아 반공을 신념화하지 않은 사람들을 국민의 범주에서 추방하고 죽였다 고 말했다. 안수찬, 대한 민국은 민주공화국 헌법정신 되살려야 :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토론회, 한겨레, 2008년 8월 20일. 32)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로 대한민국 건립과정과 결과에 대해 누구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 권리를 부정한다면 그게 바로 위헌적 행태라는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지적이 있다. 이승만의 대한민 국 건국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내어놓은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는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선고와 관련해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 에 해당한다 고 도 했다. [이대근의 단언컨대] 의심만으로 단정 법리적 판단 아닌 정치적 판단, 경향신 문, 2014년 12월 19일, =910100&nv=stand (검색일: 2014년 12월 20일).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43

42 우리 역사의 유일한 건국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이후 많은 국가의 수립 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왕조나 정부수립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진보진영의 김세균 교수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정부수립으로 보는 한편,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은 대 한제국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와는 다른 형식면에서는 합법적인 건국절 차를 밟았으므로 건국이라는 주장이다. 그 이전의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유형의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33) 이렇듯 진보와 보수가 각각 정부수립과 건국의 치밀한 논리로 양극화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토론의 여지는 있다고 할 것이다. 4. 맺음말: 분단정부의 수립,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48년 8 15를 광복으로 여기는 소수설을 견지하고 있는 서중석 교수 는 2015년 7월 16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제8회 몽양 학술심포지엄의 종합토론 좌장을 보면서 광복절이라는 명칭은 통일민족 주의적 역사인식 인데 비해 건국절 제 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건국절 명칭 은 분단국가주의적 역사인식 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1948년 8 15는 광복이 아니므로 건국도 안 된다면 모를까, 광 복(주권회복)은 되는데 건국은 아니라는 인식은 모순이 아닌가 한다. 필 자는 1948년 8 15가 광복이라면 건국은 충분히 된다고 생각한다. 주권 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건국(독립)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분단되었으므로 완전한 건국에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 고 건국(독립, 광복)이 완전히 부정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에 분단국가가 수립되었다고 해도 국가가 수립되었다는 것은 엄 연한 사실이므로 국가 수립 즉 나라 세우기(건국)가 이루어진 것은 맞 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선포하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라고 한 것은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 남쪽의 우익도 모두 다 참여하지 않는 등 국민 총의에 의한 정부가 되지 못해 완전한 건국이라고 부르기 33) 김세균, "정부수립 60주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뉴라이트의 식민지시기와 대한민국 건국 및 초창기 해석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사단법인 아셈연구원(편), 한국 현대정치외교의 주요 쟁점과 논 의 (서울: 선인, 2009), pp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43 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정부가 곧 무너질 정도로 불안정하게 수립된 것은 아니었으 며 이제 67년이나 경과했으므로 미흡하나마 건국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렇게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분단[단독 34) ]정부의 수립: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라고 병기하면 분단시대의 부족한 점도 인식하 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역사인식도 포용하고 새 정부 출범의 긍정적인 면도 드러낼 수 있는 종합적[복합적]이고 균형적인 역사이해 가 도모되지 않을까 한다. 양립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분단담론과 건국담 론 양론을 지양해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34)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으므로 단독정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길은 단독정부라고 쓰기보다 분단정부라고 쓰는 것이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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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토론 1 윤성이(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 H. Carr의 책을 인용하자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역사가와 과거 사실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을 반추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역사적 사실은 현대적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또한 모든 역사는 생각의 역사이다. 즉 과거의 사건과 사실은 역사가의 새로운 해석과 가치가 부여되면서 역사 적 사실로 거듭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E. H. Carr의 역사관을 따르자면 오늘날 우리에게 해방정국의 역사가 중요 하고 광복 70주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금의 사회, 정치와 연결되어 있 고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해방과 좌익과 우익의 쟁투 그리고 남 북분단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진영정치를 통해 그 끈을 이어오고 있 다.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 세력은 사회정치적 쟁점이 생길 때 마다 그리고 우리 현대사를 평가할 때 마다 매번 이념적 불러내기 (ideological interpellation)에 의존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모두 해방정국의 역사와 이후 우리 현대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해석과 가치를 부여 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념적 불러내기 를 덧칠 하면서 해방정국의 역사 를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양상이 뚜렷하다는 것 이다. 해방정국의 역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교훈과 시사점을 주고 있는 지, 그리고 미래 한국의 방향을 잡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 민과 토론이 있을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허동현 교수님의 논문은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드러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승만, 장면 두 사람의 성공적인 외교 전 략과 헌신이 있었기에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이 가능하였다고 평가한다.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가 이승만과 김구 두 민족지도자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47

46 리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 두 분 모두에게 건국의 아버지들 이라는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허 교수님의 주장이다. 두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 는 치밀한 사료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E. H. Carr의 주장처럼 역사는 생각의 역사이다. 역사가들이 그리고 개인들이 자신 의 해석과 가치를 부여하면서 두 민족지도자를 평가할 것이다. 당장에 이완 범 교수님은 이승만을 국부로 자리매김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일군 사람으로 이승만을 간주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조지 워 싱턴에 비견되는 한국 국가의 최초 정초자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 라서 조지 워싱턴과 이승만을 동격에 놓는 것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지 나치게 협애화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건국은 대한민국 건국일뿐이며 전체 한국사의 건국일은 아니다. 두 지도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더 궁금한 것은 두 지도 자에 대한 평가가 현대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가이다. 즉 두 지도자가 건 국의 아버지들 이라는 자리를 찾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 며 미래 한국에 어떤 디딤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완범 교수님의 논문은 해방과 광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교수님의 주장에 따르면, 1945년 8 15 직후 미 소 양군의 지배로 인해 우리민족이 독 립되지는 못했다. 다. 따라서 완전한 해방 완전한 광복(주권회복)은 아니었 다. 그렇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음로 불완전한 해방 불완 전한 광복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거에 따라 이 교수님은 1945년 8 15를 부분의 광복절[1기 광복절]로, 미군정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1948년 8 15를 2기 광복절[미완의 광복절]로 장차 도래할 통일의 날을 완 성된 광복절, 진정한 광복절 로 부르는 것 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이 교수님은 역사에 대한 대립적이고 다양한 인식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과거 독재치하처럼 어떤 외부적 힘에 의해 역사인식 획일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과거에는 그것이 무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은 했으나 지금 은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역사인식의 획일화를 경계하면서 다양한 의견표출이 자연스럽고 나쁘지 않 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갖는 의문은 앞의 논문과 마찬가 지로 해방과 광복 논쟁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중요성이 무엇인가 4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47 라는 점이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해 방, 광복 논쟁의 필요성은 이해할 수 있으나 과거와 현대와의 대화라는 관점 에서 볼 때 이러한 논쟁을 통해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역사를 과거와 현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할 때,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발전적 미래를 위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고 할 때 해방정국의 역사에서 개 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사건은 제헌헌법 제정의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은 시대의 가장 중요한 현실적 요구를 담고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은 지난한 정 치적, 사회적 토론과 경쟁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 제헌헌법은 우리사 회의 역사적 경험과 이념적 토론을 반영하지 못한 채 밖으로부터 주어지고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헌법이 우리사회와 유리되어 만들어졌고 이러 한 점은 현재도 여전하다. 오늘날도 개헌을 논의할 때 마다 쟁점이 되는 것 은 오직 권력구조의 문제뿐이다.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회 적 합의를 헌법이 담지하지 못하고 있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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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토론 2 양영조(군사편찬연구소 군사연구부장) 허동현 교수님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먼저 토론에 앞서 오늘 광복 70주년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에 참가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주 최측에 저를 토론회에 위촉해주신데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토론은 대한민국 선진화와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통합가치를 찾아보는데 매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허동현 교수님의 발표는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비전을 제시해 주셨 다고 생각합니다. 허동현 교수님의 발표 중 21세기에서의 광복과 남북분단 문제, 대한민국 건국과 국제적 승인 문제, 그리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요하 다는 문제의식에서 접근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후의 문제들을 핵심적으 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토론자는 광복의 의미와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가치, 그리고 건국의 아버지의 필요성 등에 관해서는 대체로 허동현 교수님 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특히 이승만이 정읍선언에서부터 미국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내는 주도자였 다는 지적은 탁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미소의 대립, 처칠의 철의 장 막 선언 등 세계 냉전의 흐름을 간파하고 정읍선언을 했던 것이고, 나아가 정부수립 이후 그리스와 터키와 같은 냉전전략을 한반도에서 적용할 것을 초지일관 미국에 요구했습니다. 이승만은 정부 수립 과정이나, 반공전략, 그 리고 한미동맹 등 일련의 주요 과정에서 공히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였 으며, 그 결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변화에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유엔의 한국정부 승인에 관한 장면 대표의 역할에 관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 제를 제기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직후 내부 안정화와 함께 국제사 회로부터의 지지가 가장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허동현 교수님께서는 평소 장면에 관해 깊이 연구하시는 분으로서 이 문제에 관해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주셨습니다. 바티칸 정부 설득과정이나 그 역할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51

50 며, 유엔의 한국정부 승인이 기적과 같은 축복 이었다는 표현은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유엔총회에서의 한국대표단의 역할과 유엔의 승인 문제, 건국외교 문제는 앞으로도 더욱 연구가 심화되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허동현 교수님께서 오늘 발표하신 내용이 광복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후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제에 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학계에서 일반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논쟁중인 사안들도 상당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므로 토론자는 발표내용 가운데 보충적인 설명이 필요하거나 논의가 필요 한 부분에 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광복의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허동현 교수님께서는 광복을 도둑처럼 찾아 온 광복 이라는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물론 절 제목을 정하는데 허동 현 교수님께서 상당한 고심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도둑같이 찾 아 온 광복 이란 표현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광복 은 연합군의 전세에 따라 예견된 객관적인 조건이었고, 광복이 우리에게 갑 자기 찾아온 것은 우리의 지도자들이 미처 준비되지 못하여 갑자기 맞을 수 밖에 없었던 주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광복은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 서든 하루속히 이루어야할 민족적 대과제였고, 문자 그대로 우리민족에게는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광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의미의 도둑 처 럼 찾아왔다고 하는 것은 다소 수궁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둘째, 전시회담 시기 미국과 소련의 대외정책 평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 론 이 문제는 냉전의 기원과도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허동현 교수님께서는 미소의 관계를 사후적인, 냉전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시 회담 중 미국과 소련은 같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서 기능했고, 소련은 그들의 국가이해 관계 속에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면서 전쟁의 추이를 관망하고 대일참전의 타이 밍을 보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얄타협정 체결 당시에도 소련군 주력 대 부분은 동부전선 독일군과 대치되어 있었습니다. 셋째, 미국의 일반명령 제1호에 대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일반명령 제1호 는 한반도 남북에 배치된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관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 문제 역시 학계에서 여전히 다양한 논의로 갈리고 있습니다만, 5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51 38선 이북과 이남에 배치된 일본군 무장해제 과정이 냉전의 시작과 맞물리 면서 38선이 고착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 니다. 물론 종전 직후 소련은 동유럽지역에서의 공산화 정부수립을 지도하여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였고, 한반도에서도 광복 직후 북한 공산정부 수립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38선이 분단의 선으로 점차 고착화되었다 고 생각합니다. 넷째, 미국은 한반도를 포기할 수 있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미국은 대한 민국 정부수립 전후 내부 안정화를 위한 경제적으로 지원하였고,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NSC8, 48/2, 68의 한반도 정책은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그 결과 남침 직후 미국정부는 유엔군이 편성되기도 전에 신속 하게 미군을 투입하여 지원하였습니다. 미 육군부나 합참이 1947년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은 미군철수 문제를 두고 논의한 것이었으며, 미 지상군 부대를 한반도에 배치할 만큼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것이지 한국 자 체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 많은 연구에도 이 부분에 관해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국의 아버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허동현 교수님께서는 대한 민국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을 계승한다. 라는 것과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역 할 부분을 고려하여 두 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로 하는 것을 제안해 주셨 습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오늘날 학계를 포함한 우리사회에 첨예하게 대 립되는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도움일 될지는 모르나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임시정부시기의 독립운동의 역사도 매우 중요하지만, 건국의 아 버지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직접 역할을 수행한 부분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국부 문제를 논의해야 하 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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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토론 3 진경호(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 1970년대 중등교육을 받은 세대의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미지, 김구 선생에 대해서는 긍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 는 게 현실이다. 다시 말해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의 역할보다는 정 부 수립 이후 펼쳐온 독재적 집권 형태에 대한 부정적 역사 인식이 강조됐 고,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으로서의 항일 운동과 독립, 그리고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민족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강조됐다. 박정희 정부가 집권하고 있던 1970년대 초 중 고교의 역사 교육이 이처럼 이승만-부정, 김구-긍정 의 프레임으로 이뤄진 배경은 결국 5 16 군사정변 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5 16 정변은 장면 자유당 정부의 무능에 따른 극도의 국가적 혼란 때 문이며, 이 국가적 혼란은 결국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와 이에 따른 4 19 혁명이 촉발한 것이라는 구도를 부각하는 것으로 5 16 정변의 역사적 불가피 성 내지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한 까닭에 이승만-부정, 김구-긍정 프레임 이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역사인식의 구도는 이후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았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의 프레임이 강조되 는 상황에서 더더욱 강화됐다고 할 것이다. 가운데의 목소리는 없고 좌 우, 진보와 보수 양 극단의 목소리만 힘을 얻는 지금의 편향(polarization)의 시 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그 어떤 역사적 인물도 저마다의 공과 과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으나 우리는 그 둘을 함께 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서 있는 이념적,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55

54 정치적 자리에 따라 공과 과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바라보려 한다. 마치 이 념적, 정치적 외눈박이들만이 존재하는 세상인 듯하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 라 역사를 재단하고 사회를 가르는데 매몰된 정치권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겠으나, 이념적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는 사실조차 왜곡해 바라보는 학계의 잘 못도 적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무거운 책임의 일단은 우리 언론이 져야 할 일이다.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지금 사회를 갈라놓는 선봉에 서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통합의 기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길뿐더러 사회 갈등을 적극 소비하고 있는 게 지금 언론의 현실이다. 이는 지난 달로 서거 50년을 맞은 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보도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다. 진보 진영의 매체들은 저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고, 보수 진영 매체들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이 대통령의 업적을 부각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어떤 매체도 이 대통령의 공과를 균 형감 있게 보도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진보 진영의 무조건적인 이승만 깎아내리기 나 이에 대한 반동적 태도로 나타나는 보수 진영의 이승만 찬양 모두 우리 사회의 올바른 역시 인식 함 양과 국민 통합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과 역사적 공헌이 왜곡되고 후세에 잘못 가 르쳐져 온 것이 사실이라고 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펼쳐져 야 함은 당위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념적 또는 정치적 잣 대를 넘어서는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자칫 이승만 대통령을 바로보 기 위한 노력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우리 사회를 친 이승만 대 반 이승만, 보수 대 진보, 우파 대 좌파 식으로 갈라놓고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결과만 초래한다면 이승만 바로보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거 50 년을 맞아 전개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 작업도 공을 강조하되 과도 짚고 넘어가는 현명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 대통령의 과오 를 부각시키는 데 집착하는 세력 내지 진영과의 소모적 논쟁을 줄여 나가는 노력을 곁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5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55 토론 4 이종철(청년지식인포럼 Story K 대표) 허동현 교수는 광복이 미국의 참전이라는 변수 속에서 기인한 측면과 분단 의 책임자로 소련의 움직임 그리고 남북 협상의 현실적 한계 등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승만이 UN의 승인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던 전략과 UN 승인의 의미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허동현 교수가 초점을 두고 있는 내 용들은 요긴한 자료들을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허동현 교수는 광복 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서구가 300년 걸려 이룩한 산 업화와 민주화를 불과 60년 만에 따라잡은 자랑스러운 역사 로 자긍하는 이 들에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은 그 업적을 기려야 마 땅한 건국의 아버지 로 다가선다. 그러나 김구는 냉전체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소련의 기만전술에 말려들고만 시대착오적 정치가 로 비칠 뿐 이다. 반면 민족을 단위로 한 통일국가의 완성만이 살길이라 믿는 이들에게 김구는 그 당위성을 일깨우는 상징인물로 우뚝 서지만, 이승만은 분단의 고 착화 를 초래한 역사의 죄인 이자 민주주의를 압살한 독재자로 비칠 뿐이다.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의 편차는 우리 시민사회의 정체성에 난 균열과 골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고 기술한다. 그러면서 이승만과 김구 두 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자기 자리를 찾아 갈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 고 있다. 이승만과 김구를 공히 건국의 아버지들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허 동현 교수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며 설득력이 있다. 이완범 교수의 1945년 8월 15일에 대한 해석, 1948년 8월 15일에 대한 해석에 있어 다양한 견해들을 이해하기 쉽게 제시하고 설명해 주고 있다. 결 론적으로 (서중석은) 광복절이라는 명칭은 통일민족주의적 역사인식 인데 비해 건국절 제정론자들이 주장하는 건국절 명칭은 분단국가주의적 역사인 식 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1948년 8 15는 광복이 아니므로 건국도 안 된다 면 모를까, 광복(주권회복)은 되는데 건국은 아니라는 인식은 모순이 아닌가 한다. 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분단[단독 35) ]정부의 수립: 1948년 대한민국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57

56 건국 이라고 병기하면 분단시대의 부족한 점도 인식하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미래지향적 역사인식도 포용하고 새 정부 출범의 긍정적인 면도 드러낼 수 있는 종합적[복합적]이고 균형적인 역사이해가 도모되지 않을까 한다. 양립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분단담론과 건국담론 양론을 지양해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이완범의 견해는 일견 적절한 타협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를 분단정부 라고 설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 는 보다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부를 유엔이 승인한 바 한반 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한다면 그에 준해 접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분단담론과 건국담론을 극복하는 방향 역시 현상적인 접근과 해석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데 초점이 두어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건국과 정부의 수립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역사적 방향을 설정할 것이 냐 아니냐의 문제부터 정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북한과 대한민국을 양 립해서 볼 것이냐 아니면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자유 통일해야 할 대 상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기본적인 입장 정리가 필요한 대목인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인물을 중심으로 대별한다면 한반도에는 크게 세 가지 역사 관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김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 관,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역사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관 으로 구분 된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은 이승만을 크게 저평가하며 분단의 책임 자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북한 정권 수립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편향적인 인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저 평가 하다 보니 북한 정권 수립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객관적이지 못한 문 제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필자가 북한의 역사서를 분석한 결과 북한 역사학 계의 사관인 김일성 중심의 역사관은 김구 역시 저평가하며 이승만은 배타 적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2000년대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제로 바뀐 이후 지속된 이른바 한국사교과 서 논쟁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살펴보면 김구 중심의 역사관은 이승만의 복권 에 대해 극히 배타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에 서 가장 아쉬운 점은 북한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함과 한국에 대한 굴절된 35)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합법 정부로 승인 받았으므로 단독정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길은 단독정부라고 쓰기보다 분단정부라고 쓰는 것 이다. 5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57 이해-가령 반미주의 등-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론 김일성 중 심의 사관과 김구 중심의 사관이 혼동되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편향성을 극 복하고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이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의 귀결점은 결국 분단사관, 통일지상주의, 민중사관 등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해석 하는 데 머무를 것이냐 자유민주주의, 문명주의 관점으로 역사 해석을 확장 할 것이냐의 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두산동아 p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미래엔 p 광복, 대한민국 정부수립 l 59

58 위 두 사진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비슷한 형태로 모든 교과서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행 한국사의 교과서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주류 교과서들이 취하고 있는 관점은 결국 위 두 사진 의 내용을 통해 김구는 옳았을 뿐 아니라 순수하고 헌신적이었으며 이승만 은 분단의 책임자라는 인식이다. 결국 역사의 화해는 김구와 이승만을 알맞은 자리에 놓는 것이라 생각된다. 김구를 단지 시대착오적 정치가 로 저평가하며 그 진정성마저 도외시하는 것 은 지양되어야 한다. 반면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인식의 변화 역시 필요 하다. 김구 중심의 역사관은 통일지상주의와 민중주의적 관점에 매몰되어 당 시대의 현실적 상황을 도외시하고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역사적 평가까지 같이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은 극복이 되어야 한다. 이승만이 분단을 획책한 인물이 아니라 해당 시기 현실적으로 움직였으 며, 북한에서 정권 수립 작업이 이미 이루어진 상황에서 총선거 를 통해 한 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 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인정하거나 또는 그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정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승만의 의지로 6.25전쟁에서도 북한의 김일성 세력을 타승하고 대 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역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은 이런 부분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다. 이승만은 대 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이지만 독재로 나아감으로써 불행한 오점을 남겼다는 것이 이승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이승 만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뉴라이트 역사관 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왜곡되고 배제되고 있다. 김구와 이승만이 올바로 자리매김 되기 위해서는 열린 관점에서의 토론과 수용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학계가 이념의 도그마 에 사로잡힌 연구 가 아니라 보다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책임있는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역사 가다운 열린 자세와 관점이 절실한 것이다. 통일시대를 이끌기 위한 대한민 국 통합가치는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으로부터 시작된다 하 겠다. 6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59 8월 12일(수) 14:00~16:20 주제 2 산업화 민주화 좌장 김주성(한국교원대학교 총장) 발제 1 김세중( 前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대정신 발행인) 통합의 역사인식 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향하여 발제 2 윤평중(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장질서 대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공화사회 토론 1 토론 2 토론 3 토론 4 강규형(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 성한용(한겨레 선임기자) 황성준(문화일보 논설위원) 양건모(정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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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2> 산업화 민주화 발제 1 통합의 역사인식 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향하여 김세중 ( 前 연세대학교 교수, 현 계간 시대정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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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통합의 역사인식 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향하여 김세중( 前 연세대학교 교수, 현 계간 시대정신 발행인) Ⅰ. 통합의 역사인식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향하여 1) 1. 들어 가는말 1948년 건국이후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87년 6월 항쟁의 결과 지속가능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른바 87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무엇보다 그 체제아래서 결과가 불확실한 경쟁적 선거를 통한 정권이양이 누구도 도전할 수 없 는 규범으로 정착하고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확보한 민간정치인들이 권 위주의시대에 국가보위기구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정치과정의 주역으 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6월 항쟁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확실한 계기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른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전시대에 예측하지 못했던 또 다른 수준에서 문제점을 노출 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와 관련된 중요한 항목의 하나가 통합가치 확보와 사 회적 통합의 문제이다. 주지되듯 권위주의시대 한국사회는 치열한 갈등 과 균열로 점철된 시대였고 당시 균열을 야기한 최대의 쟁점은 이른바 민주, 반민주 를 둘러싼 것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되며 자연스럽게 민주와 반민 주를 둘러싼 갈등요인이 해소되며 전반적으로 통합의 시대가 열릴 것으 1) 본 발표문은 김세중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갈등과 상호의존 안병직편,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 시대정 신, 쪽. 김세중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와 외환위기 이태정 외,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 한울 아카테미, 2014, 김세중 유신시대 중화학공업과 정치변동 박기주 외, 한국 중화학 공업화와 사 회변동,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2014, 쪽의 논지를 이어가며 새롭게 첨삭한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l 65

64 로 기대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 균열양상은 더욱 다기화 되고 심 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무엇보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통합이 항시적 으로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부각되는 것은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 발표에서는 특히 정치사회의 주역에 해당하는 여야 정치세력 사이 에 심각한 양상을 띠며 전개되는 갈등양상에 주목한다. 그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서로를 광의의 국정동반자라고 하기보다는 적대적 상호불신과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대 체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포함 한 미래지향적 국정운영에 미치는 폐해가 가름하기 힘들 지경 이라는 것은 첨언할 필요도 없다. 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관계를 야기하는 원 인은 제도와 문화 혹은 행위자의 인격적 특징 그 외 사회변동 양식의 특수성 등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 될 것이나 본 발표에서는 정치사회균 열의 근본적 요인의 하나로 한국사회에 풍미하는 분열적 배제적 역사 인식 을 제시한다. 주지되듯 오늘날 한국정치사회에서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여야의 두 정치세력은 이른바 산업화 세력 과 민주화세력 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 조할 것은 이 두 세력은 민주화 이전 시대에 시종일관 적대적 긴장관계 아래 있었다는 점이다. 산업화세력은 민주화세력을 생산적 국정운영 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폄하했고 역으로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민주 주의를 파괴한 독재 권력집단 으로 치부하여 결과적으로 상대를 정치사 회에서 배제 되어야할 집단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사회가 민주화 이전의 적대적 균열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에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에 오랜 시간에 걸친 형 성된 뿌리 깊은 적대의식이 놓여 있다는 것이 이글의 기본전제다. 그러 나 이 발표문이 보여주듯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보적 입장에서 그들은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근대 국민 국 가체제를 갖추는데 결여될 수 없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에 대한 분 명한 인식은 오늘날 정치사회에서 대립 하는 세력이 대화합을 통해 미 래지향적 협력 체제를 갖추는데 매우 유용한 기초를 놓는 작업이 될 것 이다. 본 발표는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분열과 배제의 역사인식 을 극복하고 6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65 통합의 역사인식 의 관점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역할 재조명을 시 도한다. 이런 전제에서 본 연구는 1948년 이후 한국현대사전개의 주요한 매듭 을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로 규정하고 이것이 계기적으로 달성되는 과 정에서 산업화 국정주도세력과 민주화 대항세력의 역사적 역할을 논한 다. 이는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전개과정에서 큰 쟁점을 이루었던 주요 사건들, 예를 들어 이승만 권위주의 체제, 군부권위주의 체제와 압축산 업화, 박정희의 사망과 신 군부 지배질서의 등장과 6월 항쟁의 의미를 순차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업의 전제로 먼저 통합의 역 사 인식구조의 의미를 정리한다. 다음에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 건국과 관련된 쟁점을 고찰하는데, 이는 아직도 분단책임론과 관련하여 대한민 국 건국의 정당성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에 파열음을 야기하 는 쟁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 통합의 역사인식과 민주운동 사관의 한계 통합의 역사인식은 구체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주요 갈등 당사자였던 이른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은 결과적으로 2) 상보적 관계 속에서 한 국 사회발전에 불가결한 구성분자로서 기능해온 것으로 이해하는 역사 인식 태도이다. 통합의 역사인식은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다 는 의미와 함께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치유라는 실천적 의미도 지닌다. 이미 언급했듯 오늘날 한국 정치 사회갈등의 상 당부분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이 한국 현대사 속의 역할을 상호 배제적 인 것으로 인식 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배제적 역사 관을 넘어 통합의 역사인식을 모색하는 노력은 우선 근본주의적 민주운 동 사관 (이후 민주운동 사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민주운동 사관의 핵심적 특징은 민주주의를 어떤 상황 하에서도 타협 될 수 없는 지고( 至 高 )의 가치로 간주 하는 데에 있다. 이와 함께 민주 주의는 저발전의 해소 등 사회적 문제해결에도 가장 효율적 제도라는 2) 본 발표 에서는 정치적 행위의 의미는 결과에서 찾는다. 즉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역할을 그들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베버가 말하는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 가운데 책임의 윤리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막스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 2007, 쪽. 산업화 민주화 l 67

66 것을 믿는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의 실천은 한국 현대사에서 독점적 중 요성을 지니는 과제로 인식 된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위 한 투쟁사이고 민주, 반민주세력 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로 구성 된 다고 전제한다. 이 구도 아래서는 조건반사적으로 민주주의의 고양을 명 분으로 하는 집단과 운동은 역사의 선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집단과 행위는 악으로 규정 된다. 건국 이후 통치 집단으로 등장하여 국정운영을 주도해왔던 산업화세력 의 집권 시기는 일인 그리고 군부 중심의 권위주의 권력구조를 특징으 로 하였고, 실제로 이 권력구조 아래서 시민의 기본권, 3권 분리, 법치 주의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들이 때로는 심각하게 훼손 된다. 따라서 민주운동 사관에서는 한국의 산업화 세력은 악의 세력으로 치 부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집권기간도 국가발전이 저해된 시기로만 서 술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들의 집권기는 대한민국 건국 의 기틀이 마련되고 산업혁명을 통해 대한민국이 근대 국민국가로 정립 되는 토대가 놓인 시기이기도 하다. 민주운동 사관은 이런 측면을 조명 할 여지가 없으며, 이는 그것에 내포된 몇 가지 심각한 논리적, 실제적 취약점에서 비롯된다. 첫째, 국가과제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 결여이다. 물론 민주주의의 정착 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국가과제이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로 출범한 대 한민국은 그에 못지않은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안보체제의 구축이 그 하나이다.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때 어떤 여타의 가치추구도 어 려운 것이고, 따라서 안보체제 구축은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특히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운명이 되어버린 인류역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반인류적 북한체제와 생사를 건 대결 상황은 이 과 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했다. 경제발전은 또 다른 긴박한 과제이다. 적절한 국민적 후생의 보장은 근대국가의 통치정통성 확보를 위한 기 본조건이고 또 경제발전은 근대국가가 주권과 자주성확보는 물론 안보 체제 확립을 위해 불가결한 기본적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작업이기 때문 이다. 특히 절대빈곤이 풍미했던 한국적 상황에서 이 과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이와 함께 통일이라는 장기적 과제를 한민족의 미래 비전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체제와 정합성 있는 방향 6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67 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다. 둘째, 민주주의 실천에 대한 단순한 가정이다. 민주운동 사관은 민주주 의는 민주화 운동, 즉 정치적 투쟁만으로도 획득하고 확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주의는 엘리트 사이의 협약, 외부적 영향, 결의에 찬 소수의 투쟁을 통해 도입될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장 기 지속성을 띤 제도로 확립되기 위해서는 중산층 위주의 사회 계층구 조와 참여적이면서 극단이 배제되는 문화와 의식의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은 계층 구조변화와 새로운 의식 형성 을 위한 불가결한 기반이다. 3) 한국 현대사에서 국정주도 집단이었던 산업화세력은 안보체제의 구축 과 경제적 산업화의 추진을 주도했던 집단이다. 이런 역할의 중요성은 국가과제의 복합성에 비추어 자명한 일이다. 특히 경제발전이 장기지속 민주주의체제 확립을 위해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민주운동 사관의 2분법적 역사인식이 소홀히 했던 역 사적 과제의 수행을 통해 한국이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하는데 결정적 기여 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세력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적극적 인식 이 민주운동 세력의 역사적 의미를 배제하는 논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 니다. 왜냐하면 산업화 세력의 경우에도 집권이 장기화 되며 역사발전에 저 해요인으로 변질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 이였고, 민주화 세력은 그것에 도전하여 국면을 전환하고 한국사회의 또 다른 필수적 과제인 민주화를 진전 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즉 산업화 세력의 권위 주의 집권체제는 집권이 장기화 되면 예외 없이 권력구조가 경직화되고 권력의 악마적 속성이 강화되며 변화를 억제하여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 한 권력으로 전락 해왔다. 이는 구체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모두 가 대중봉기 혹은 대중적 저항이 배경이 된 폭력에 의해 무대에서 퇴장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시대착오적 권력으로 변질된 이들을 퇴장시 켜 새 시대 개막의 직접적 계기를 만든 것은 민주화세력의 과감한 투쟁 이었다. 이는 민주운동 세력의 제한된 역사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현 3) 자본주의경제발전과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논하는 연구는 산적해 있으나 여기서는 다음만 소개 한다. Seymour Martin Lipset "Some Social Requisites of Democracy"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54. No.1.(Mar.1959). Dietrich Rueschemeyer, Evelyne Huber Stephens, John D. Stephens, Capitalist Development&Democracy, University of Chicago,1992. 산업화 민주화 l 69

68 대사 전개에 적극적으로 인정 받아야할 역할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밖에 민주화세력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 실천이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주요요소라는 점에 비추어 그 존재 자체 로도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3. 단정노선의 불가피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당위성 해방 후 역사가 결국 분단으로 귀결된 것은 일단 원인과 배경을 떠나 비극적 사태진전 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가능성을 구조 적으로 제약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해방정국에서 단독 정 부수립의 필요성을 최초로 공개적으로 언급한 인물이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현실이 된다. 이에 따라 이승만은 분단 책임론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대개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계보가 이어지는 비판자들은 이승만의 단정론을 권력욕의 충족을 위해 남한에 친미정부를 세우려는 미국정책 에 앞장서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런 인식을 배경으 로 일부논자는 그가 건국을 주도했던 대한민국의 정통성 까지를 부정하 게 된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단정론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된 논의는 다음 두 가지로 압축 된다. 첫째, 분단을 주도한 것은 스타린과 그의 지배하에 있던 북한 이였다. 스타린은 이미 45년 9월에 명시적으로 북한에 브르조와 민주주의공화 국 의 형식을 가장한 독립된 정치체제를 수립할 것을 지시한다. 이 지 시의 유효성은 소련군 총정치국장의 같은 해 12월 보고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 된다. 그 후 소군정은 조만식의 제거(1946.1), 북조선임시 인민위원회 발족 (1946.2), 토지개혁(1946.3)등의 추진으로 실질적으로 북한지역을 단위 로 단순히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공산주의 원리에 따른 독자적 체제의 공고화 과정을 밟아 간다.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1946.6) 북한이 위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밟은 후에 나온 것이다. 특히 북한에 독자적 체제를 구축하는 일련의 작업이 모스 코바 3상 회담과 미소공동위원회 진전여부와 전혀 무관하게 소 군정에 의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7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69 둘째, 당시 미국은 종전 이전부터 한반도에 일방적 반공 친미정부보다 소련과 절충이 가능한 좌우합작정부의 수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종 전 후에도 미국은 상당기간 좌우합작노선을 견지하였다. 특기할 것은 냉전 징후의 가시화는 오히려 미국이 그에 의존하는 정부를 남한에 세 우는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적용했다는 점이다. 남한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4) 이승만의 반공적 대한민국 건국 노력은 적어도 47년까지는 이런 미국의 안이한 그리고 상이한 인식에 맞서는 고독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 은 좌우합작에는 공산주의로 가는 첫 단계로서의 의미 이외에는 부여 하지 않는다는 점, 또 이념으로 그리고 국가경영원리로서 공산주의가 지 닌 문제점을 일찍부터 숙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승만이 자유주 의와 자본주의 이념에 충실한 체제건설을 선호했던 것은 단순히 냉전시 대 국제적 권력관계 현실을 정치적으로 반영한 결과가 아니었음을 분명 하게 시사한다. 이상의 논의는 친소 공산주의체제를 수용하지 않는 한 남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은 불가피하고 필요한 선택이었음을 보여 준다. 더욱이 이후 역사전개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 건국의 당위성을 분명히 보여 준다. 물론 이 시점에서의 북한과의 우열을 따져 서 단정론의 정당성 주장하는 것은 결과론적 접근이 될 수도 있다. 그러 나 당시 이승만의 단정론은 냉전 상황에 대한 고려만이 아니고 공산주 의 이념의 비인도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도 기반하고 있었 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4. 이승만 권위주의 정치와 민주 반민주 인식의 한계 통합의 역사인식의 또 다른 주제는 이승만 집권기의 성격에 대한 이해 및 평가와 관련된 것이다. 12년간 지속된 이승만 집권기는 시기에 따른 진폭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일인 중심 권위주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 다. 가장 돌출된 표현은 52년, 54년 두 차례에 걸친 이승만의 계속집권 을 위한 폭력과 불법에 의존하는 헌법 개정 이다. 또 이승만과 관료, 경 찰, 군, 자유당 그 외 추종자들과의 관계는 근대적 계약관계 라기보다는 4) 이정식, 건국대통령 의로서의 이승만, 유영익 편, 이승만대통령재평가, 연세대학교출판부, 2006, 29-73쪽. 산업화 민주화 l 71

70 일종의 전 근대적 가부장적인 것에 가까 왔다. 통치후반부에 들어서며 선거과정에 대한 관( 官 )과 경찰, 심지어 일부 폭력집단까지 동원된 조작 적 간섭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이승만 정부가 민주주의 정 립을 주장하는 학생봉기에 의해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이승만정치의 권 위주의적 속성을 웅변한다. 이런 실상에 비추어 이승만 시기가 민주운동 사관에 의해 역사의 그늘진 시기로 제시되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 다. 5) 그러나 통합의 역사인식은 50년대에 내재된 역동성에도 주목할 필 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즉, 후반에 접어들며 권력의 퇴행현상이 두드러 지지만 50년대는 동시에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결정적 기초가 놓인 시대이기도하다. 이와 관련된 이승만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초기의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고 안보체제의 토대를 확립하고 정체성을 지닌 사회로 대한민국 을 정착시켰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건국 후에도 대한민국은 근대 국민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안보체 제의 미흡함이 그 하나이다. 건국직후 대한민국은 각계각층에 뿌리를 내 린 좌익으로부터의 정치적, 사상적 도전은 물론 일부지역에 자리 잡은 친북 게릴라의 폭력적 도전까지 노출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뒤이은 북한의 6.25 도발로 생존자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빠지기 도 한다. 이후 북한과의 생사를 건 대결상황은 국정운영의 기조를 결정 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안보체제의 확립이 최우선 국가과제로 자리 잡 는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위해 전 방위적 노력을 경주하는데, 가장 중 요한 성과는 미국의 협조를 유도하여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70만 군 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보체제는 단순한 군사력의 신장을 넘어서는 복합적 구성체이다. 즉, 70만 대군의 확보 외에 좌익의 준동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것을 가능하게 한 반공법의 제정, 세계최강의 미국과 동맹관계를 제도화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그밖에 강화된 이념교 육을 통한 반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확보 등이 포함 된다. 6) 5) 중요한 쟁점은 이승만 정치 권위주의화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분명히 지적할 것은 이승만 개인의 권력욕구가 작용한 결과만으로 그것을 설명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음 연구들은 예외 없이 이승 만 시대정치의 권위주의화는 이승만 개인의 인격적 요인뿐 아니라 역사적, 구조적, 상황적 요인에 비추어 불가 피한 사태진전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배호, 한국정치변동론, 법문사, 1994, 34-64,쪽. 김영명, 한국의 정치변동, 을유문화사, 2006, 쪽.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변 화, 나남출판, 1996, 20-22쪽. 6) 반공체제는 경직성을 띠게 되고 정파적 이익을 위해 남용되는 등 부작용도 동반하였다. 그럼에도 강력한 반공 체제의 확립은 최악의 반인류적 북한에 대응하기위해 불가피한 처사였다. 당시 북한전 체주의와의 치열한 대결 상황 아래 반공체제의 건설은 개인의 구원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고 이런 면에서도 최고의 국가윤리로 평 가되어야 한다. 7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71 안보체제의 기반확립과 함께 이승만 정부는 국민적 정체성의 배양을 통해 대한민국을 정체성 있는 정치공동체로 확립 시킨다. 해방과 건국 초기에 오랜기간 유지 되었던 단일 공동체가 분열되고 대한민국의 정통 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북한으로부터의 부단한 이념적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며, 적지 않은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 하 는데 적지 않은 혼란을 경험했을 것으로 짐작 된다. 이런 상황에 맞서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 자리 잡는 기본조건이고 동시에 안보체제의 기반을 놓는 작 업이기도하다. 이승만 정부는 교육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대대적으로 교 육기관의 확충을 도모하였고 반공과 민주주의를 중심하는 공민교육을 통해 북한과 확연이 구분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국민들 사이에 인지 시키는데 성공한다. 6.25경험은 물론 이 교육의 효율성을 높인 주요요인 이다. 덧붙여 농지개혁은 국민의 절대 다수였던 농민을 소작농에서 경작 지를 소유한 소농으로 변신시켜 대한민국에 소속감을 지니는 국민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였다. 7) 동시에 안보체제와 국민적 정체성의 확립 과정은 동시에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에 불가결한 기반이 놓이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 강조되 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미상호 방위조약은 단순한 안보적 의미만이 아 니고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문명권으로 편입되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실 천을 촉진하는 강한 외부적 압력에 항시적 그리고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위치에 놓이게 한다. 동시에 교육기관의 대량 확충에 의한 교육인구의 팽창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을 놓고 민주화 운동을 선도하는 학생집 단을 양성하는 결과를 동반한다. 그러나 5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이승 만 정부는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해 가고 민주화운동세력이 새 시대를 여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54년 11월 말 사사오입 이라는 불법을 통한 이승만의 계속 집권을 보 장하는 헌법 개정은 이승만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커다란 상처를 준 사 건 이였고, 이후 민심이반은 가속화 된다. 8) 무엇보다 무리한 사사오입 개헌은 민주당이라는 통합야당 탄생의 계기가 되어 자유당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의 구심점이 형성된다. 56년 대선에서 야당인 민주당후보가 부 7) 김일영, 통치자로서 이승만대통령, 유영익 편, 앞의 책, 87-88쪽. 8) 김일영, 위 의 논문, 쪽. 이완범, 1950년대 후반 한국정치사 연구, 문정인 김세중 편, 1950년대 한 국사의 재조명, 선인, 2004, 쪽. 산업화 민주화 l 73

72 통령으로 당선되고 58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비록 원내 제1당을 유지하 였으나 야당인 민주당은 도시부에서 압승을 거두고 전체적으로 출범당 시보다 두 배가 넘는 의석을 확보한다. 이승만정부의 정치적 위기상황은 50년대 후반 특히 미원조의 급속한 축소가 야기한 경제침체 현상에 의 해 가속된다. 그러나 50년대 후반 고령의 이승만을 대신하여 상당부분 의 국정운영의 대리인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경무대의 비서진과 자유당 지도부는 위기국면을 국정쇄신의 계기로 삼는 대신 억압적 통제법의 강 화를 통해 봉합할 것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58년 12월 비판적 언론에 대한 통제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보안법 개정안을 경호권의 발동아래 강 압적으로 통과 시킨다. 59년 4월에는 경향신문의 이승만 관련기사를 문 제 삼아 폐간시키고 대야 강경파 인사들이 선거관련부처 장관으로 임명 된다. 이승만 후기권력체제의 시대 역행성은 마지막까지 이승만의 직접 관할 하에 있던 외교영역 등에서도 나타난다. 즉 그는 끝까지 한일회담에 경 직된 태도로 임했고 새로운 화두로 회자되기 시작한 경제장기계획 도입 에 부정적 자세를 견지한다. 9) 장기집권 권력이 경직화되어 다양한 수준 에서 시대적 적실성을 상실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10) 그럼에도 자유당 정부는 60년 3.15대선 결과의 전면적 조작이라는 극단적 방법에 의존하 여 계속 집권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는 1961년 4월19일 이승만 정부 의 붕괴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유혈봉기를 야기한다. 주목할 것은 4.19를 주도한 직접적 힘은 학생세력으로부터 나왔으나 동시에 자유당정부에 대한 투쟁을 통해 민주화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 민주당의 활동이 봉 기의 배후에서 작용한 요인 이였다는 사실이다. 통합의 역사인식이 민주 화 대항세력의 역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5. 군부권위주의와 압축 산업화와 근대국가의 사회경제적 토대 건설 5.16 군사혁명은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된 군부권위주의 시대의 막을 여는 계기다.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시대로 이어지는 군부 권위주의 체 제는 이승만 권위주의보다 장기간 지속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9) 이기홍, 경제 근대화의 숨은 이야기, 보이스사, 1999, 265쪽. 10) 김세중, 전환기로서의 50년대 후반과 그 한계, 한국민족운동사연구, 45호, 쪽. 7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73 더 가혹한 형태를 띠게 된다. 따라서 이 시대는 특히 민주운동 사관에서 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 구도가 가장 치열하게 부각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민주운동 사관은 이시대의 의미를 주로 형극( 荊 棘 )의 상황 하에서 도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끝내 6월 항쟁으로 6.29선언을 도출해낸 민주 화 운동의 천착( 穿 鑿 )에서 도출한다. 실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이시기에 지속적 시련과 위기를 경험한다. 61 년 5월 군부의 권력 장악부터 63년 12월 민정이양까지는 일종의 군령 에 의한 통치기간 이였다. 민정이양 과 함께 헌정질서가 회복되고 정당 선거 국회와 같은 제도가 다시활성화 된다. 그러나 민정이양 후에도 중 앙정보부, 국군보안사령부, 청와대 경호실 등 국가보위기관들이 정치과 정에 깊게 개입하여 헌법 개정 권력구조개편 권력승계 같은 핵심적 정 치쟁점을 사실상 주도 하고 이 과정에서 3권분리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들, 예를 들어 국가보위기구에 의한 국회의원의 자의적 연행과 구금 그리고 폭행 같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특히 유신체제는 제도수준에서도 종신집권이 보장된 대통령에게 3권위에 군림하는 총통적 권력을 보장하 였고 긴급조치가 주요통치도구로 활용되어 많은 정치범을 양산한다. 11) 79년 10월 박정희의 사망은 또다시 신 군부 집권으로 이어졌고 이들 의 집권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비극적 결말이 보여주듯 난폭한 국가폭력 에 의존하는 것이다. 뒤이어 신 군부 지배에 대한 저항이 투신자살, 분 신, 주체사상 추종세력의 형성 등 극한적 형태를 띠게 되는데 이는 역으 로 신 군부 지배체제의 극단적 폭력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2) 이 상의 소묘적 제시는 군부 권위주의시대 정치의 억압성을 분명히 보여주 고 민주운동 사관에서 이시대의 의미가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적으로 규 정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억압 적 지배질서 아래서 산업혁명의 달성으로 근대국민 국가성립에 불가결 한 조건이 형성 된다는 사실을 통합의 역사인식은 지적한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정 우선순 위의 대전환에 있다. 박정희정부는 근본주의적 민주주의관을 국정운영의 11) 7년여 지속된 유신기간동안 5년 6개월간 긴급조치가 발동되었고 1140명이 이 조치에 의해 처벌 받는다. 긴급조치위반판결 분석보고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006년도 하반기 조사보고서, 2007, 쪽. 12) 김종찬 편, 죽음의 기록-민족민주제단에 바쳐진 민중의 아들 딸, 실천문학사, 김근태의 고백도 구체적으로 5공의 폭력성을 증언하는 예이다. 김근태, 남영동, 중원문화, 산업화 민주화 l 75

74 기본원칙으로 삼았던 2공 민주당정부와는 달리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국 정최우선과제로 설정한다. 13) 박정희는 민주주의 실천과 안보토대의 실 질적 구축을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확립이 필수적 과제임을 역설하였고 명시적으로 경제발전과정에서 민주주의원칙이 타협 될 수 있는 가능성 까지도 언급하였다 14). 이후 군부권위주의가 전두환 시기를 마지막으로, 퇴조하기 까지 이는 국정운영의 기조였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집권과 함께 경제기획원과 총무처 신설 등을 통한 관료제의 대대적 개혁,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채택, 금융과 노동통제 조 치의 도입, 수출지향 발전 전략으로의 전환, 한일회담타결 등과 같은 수 많은 제도적 정책적 개혁을 통해 일종의 산업화 체제를 구축하고 이른 바 한강의 기적 으로 지칭되는 성과를 거둔다. 특히 국내외의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유신시기에 추진된 중화학 공 업화 정책에 힘입어 한국사회는 정태적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동태적 근 대 산업사회로의 대전환을 달성한다. 79년 박정희가 암살된 후 과도기적 혼란 후에 전두환 중심의 신 군부 가 집권한 후에도 고도성장은 지속된다. 그러나 이는 신 군부가 안정화 시책의 강행으로 70년대 후반 한국경제의 심각한 애로요인으로 부상한 고물가 현상을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한다. 신 군부체제하에서 박정희 암살이라는 돌발사태도 겹쳐서 80년에는 -3.7%라는 충격적 침체를 경험했던 경제가 동력을 되찾고 마침 발생한 3저 현상에도 힘입어 85년에는 건국 이후 최초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 하게 된다. 이는 5.16혁명 이후 자립경제 체제 확립을 목표로 본격화된 산업화를 향한 대질주가 일단락되었음을 의미 하는 것 이기도하다. 군부 권위주의시대의 산업화가 근대국가체제 형성과 민주주의 실천과 관련해서 지닌 함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대한민국이 무엇보다 재정적 토대의 구축을 통해 근대적 관료제 와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국가로 재탄생한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이 근대국민국가의 불가결한 기본조건을 구비하게 된 것을 의 미한다. 13) 민주당도 경제제일주의를 내걸었지만 그것은 근본주의적 민주주의관에 기초한 것이다. 14) 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박정희전집 2권) 지문각,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75 둘째, 장기지속 민주주의를 위한 구조적 조건이 창출 되는데 이는 국 가와 시민사회 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은 근대적 국가 관료제 의 확립으로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법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역 량을 지니게 되었는데, 성숙한 민주주의는 효율적 국가체제를 필수적 조 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주목해야할 변화인 것이다. 시민사회 수준에 서는 산업화의 결과 높은 정치적 효능감과 자유주의적 가치 정향을 특 징으로 하는 중산층 중심의 계층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권위주의적 지배를 견제하고 급진이념과 급진운동을 주변화 할 수 있는, 따라서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세력관계와 문화가 형성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 민주화 세력의 도전과 군부권위주의 시대의 종언과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 군부 권위주의 지배체제 시기는 압축산업화를 통해 성숙된 근대국민국 가의 기초와 장기지속 민주주의의 기초가 놓인 때였다. 이는 민주운동 사관의 일면성과 그 역사관에 뒷받침된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운동세력은 다른 차원에서 군부권위 주의체제의 한계를 보완하여 역사발전에 기여 하게 되고 통합의 역사인식은 이점에도 주목한다. 박정희 군부권위주의 체제의 한계는 무엇보다 암살이라는 형식을 통해 박정희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 하게 되었다는 사실로 극명하게 표출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유신체제는 민주주의 원칙이 제도적 수준에서까 지 무시된 한국 현대사의 이질적 시기였고 대항세력의 통제를 위해 국 가폭력이 거의 항시적으로 동원 된다. 그러나 유신국가가 폭력국가와 함 께 발전국가 그리고 안보국가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바 있다. 예를 들어 유신체제하에서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중화학 공업의 강력하고 일관된 추진은 한국사회를 명실상부한 산업사회로 탈 바꿈 시키고 아울러 일인당 1000불 소득, 100억불 수출이라는 당시로는 환상에 가까운 목표가 계획보다 앞질러 달성 된다. 동시에 유신체제도입 무렵 철군 등 미국의 정책 변화로 커다란 안보위기상황이 야기 되었고 산업화 민주화 l 77

76 그것의 극복은 유신체제의 또 다른 최우선 과제였으며, 유신국가는 자주 국방의 기치 하에 중화학공업화와 율곡사업 등의 추진으로 이에 대비 한다. 15) 유신국가의 이런 다차원적 면모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내재화한 중산층의 유신체제의 폭력성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하고 그들로 부터 암 묵적 승인을 도출해낼 수 있게 했던 요인이다. 16) 70년대 후반에 접어들 며 군부 권위주의하의 압축 성장에 힘입어 한국 사회계층 구조의 중심 축으로 부상한 중산층의 정치적 태도에 변화를 야기한 몇 가지 요인이 발생한다. 첫째, 비상식적 형태의 대통령선거의 거듭된 실시는 중산층의 유신체 제에 대한 정당성에 회의를 야기하는 요인이 된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선 거에 정당과 국민의 직접참여를 금지 하였다. 이에 따라 박정희는 72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 되는 간선제 선거에서 대의원 99.9% 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일명 체육관선거로 일컬어지는 대선이 78년에 다시 실시되고 박정희는 동일한 득표율로 재선된다. 민주주의를 희화화( 戱 畵 化 ) 하는 이런 형태 선거의 되풀이되며 유신에 대한 중산층 의 의구심과 혐오감이 증폭된다. 17) 둘째, 장기 지속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국가주도로 추진된 산업화정책 은 시간이 경과하며, 정경유착현상의 심화로 부패를 확산 시켰고, 특히 유신 후반기에 접어들며 중화학공업의 의욕적 추구가 야기한 고인플레 와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출부진이 야기한 심각한 경기침체는 발전국 가의 신뢰성에 타격을 가하여 민심이반을 촉진 한다. 78년 12월13일 행 해진 총선에서 야당이 집권공화당을 사상유래가 없이 1.1%앞서 득표하 게 된 것은 중산층을 포함한 민심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 여 준다. 이런 배경적 요인도 원인이 되어 79년에 5월 강경파 김영삼이 제도권 야당의 지도자로 선출되며, 김대중 중심의 재야세력과 연합하여 체제에 15) 유신 시대는 박정희암살 미수사건(74.8), 휴전선땅굴 발견(74말,75초), 월남의 공산화(75.4), 판문점 도끼만 행사건(76.8), 82년까지 주한미군 완전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카터의 대통령취임(77.2)등 일련의 사태진전이 보여주듯 안보위기가 상시화된 시기였다. 16) 당시 사회의 활기찬 측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신한종합연구소, 7080 우리들, 고려원. 1991, 쪽. 17) 박정희 스스로도 이런 모습의 선거에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남덕우는 79년에 박정희가 다음과 같은 토로를 했음을 소개한다.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선거방식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수 있겠어? 헌법을 개정하고 나는 물러 날거야, 남덕우,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삼성경제연구소, 2009, 쪽. 7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77 대한 적극적 도전의지를 밝힌다. 유신후반부에 진입하면서 박정희의 통치행태에도 일종의 말기적 징후 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대통령 경호 실장에게 권한이 파격적 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조하고 심지어 민간인인 경호 실장에게 군 일부 병력의 지휘권까지 허용한다. 나아가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기사를 빌미 로 야당당수 김영삼에 대한 국회에서의 제명 조치를 강행하는데 이는 장기집권 권력의 피로가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18) 김영삼의 제명은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일차적으로 대학생들의 반유신 시위를 야기하였고 이는 유신체제도입 이후 처음으로 시민의 적 극적 동조와 참여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시위사태는 마산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었고, 정부는 계엄령과 위수령의 선포로 이를 통제한다. 이와 함 께 정국의 긴장이 절정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살 해사건이 발생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정희체제 종언의 직접적 계기 는 김재규의 암살 이였으나, 19) 좀 더 심층적이고 구조적요인은 김영삼 과 김대중 등 야당 지도자들의 타협 없는 투쟁과 그에 합세한 학생 시 민 등 범 민주세력의 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무렵 박정희 스스로도 유신체제를 원안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 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 박정희의 사망은 민주주의 질서의 도래에 대한 큰 여망을 낳았다. 그 러나 그의 사망은 결과적으로 신 군부의 집권으로 이어져 민주화에 대 한 기대는 다시 좌절된다. 전두환 중심의 신 군부 집권의 배경과 과정은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이 가능할 것이나, 본 발표문에서는 군부반 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중심 신 군부의 권력욕구와 함께 박정희 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대한 사회적 여망의 증폭되는 것과는 무 18) 이만섭, 5.16과 10.26_-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나남, 2009, 쪽. 19) 김재규는 법정증언에서 박정희 살해동기로 민주주의 회복을 내세우고 본인이 애초부터 자유민주주의자 였음을 주장하고 5.16까지 비판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는 5.16 이후 행적에 비추어 허구적 주장일 수 밖에 없다. 그의 이중성은 79년 8월 스위스주재 정보부요원에게 같은 해 11월 4일 박정희 생일에 맞춘 선물로 초고가 스 위스시계를 주문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배진영 사건뒤 박근혜에게 전달되다 월간조선 월호 쪽. 당시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그를 능멸하는 차지철 경호실장의 과도한 월권행사에 대한 불 만과 그런 차지철에 대한 박정희의 편애, 그리고 당시 시국통제 실패에 따른 박정희로부터의 신뢰상실과 그것 이 야기한 분노와 좌절이 박정희살해의 근본동기 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20) 1979년 1월 신직수를 청와대 법률특보로 지명하고 유신헌법개정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남덕우, 앞의책, 쪽. 김성진 인터뷰, 박정희, 신직수 씨를 청와대 법률특보로 임명, 퇴임준비, 월 간조선, 쪽. 산업화 민주화 l 79

78 관하게 이념과 이익 면에서 기존질서를 선호하는 군부배경 통치엘리트 와 관료와 대기업 집단을 주요구성 부분으로 하는 유신지배 연합체제가 온전한 결속체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이와 함께 이들의 준 동을 견제해야할 김대중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세력은 심하 게 분열되었고 동시에 악화되는 경제상황이 중산층을 과거와의 급속한 단절을 요구하는 민주화운동 세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신 군부의 등장이 시대정신에 반하는 것이었다는 점은 그들 의 집권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해야만 했 다는 사실이 잘 보여준다. 신 군부는 경제적으로는 안정화정책의 효율적 이고 강력한 집행을 통해 성장 동력을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3저 현 상에도 힘입어 이른바 단군이래의 호황을 창출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신 군부헌법 역시 체육관 선거체제를 유지하였고 전두환은 1981년 2월 개최된 간선제 대선에서 선거인 단표의 90.2%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는 신 군부체제가 유신체제의 아류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였고, 더구나 광주에서의 원죄도 작용하여 정당성 위기에서 벗어 날수가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순치된 야당을 대신하여 김영삼,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지도자 들은 비판적 야당을 창설하고 85년 2.12 총선을 통해 국 회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의 보편적 요구인 직선제 개헌을 위한 과감한 투쟁을 전개한다. 직선제개헌을 지지하는 민심의 표 출에도 불구하고 신 군부는 간선제 고수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들 역시 장기집권 권위주의 권력의 경직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 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국면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대항세력에게서 오게 된다. 즉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조직된 국민운동본부의 깃발아래 제도 권야당 재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화 최대연합이 결성되어 직선 제개헌을 내걸고 87년 6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6월 항쟁에 돌입한다. 20일 가까이 지속된 3.1운동 이래 최대의 인파를 동원한 것으로 평가되 는 항쟁은 시대정신에 순응 하는데 실패한 신 군부를 압박하여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노태우의 6.29 선언을 받아 내는 것으 로 마무리 된다.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당시 상황 전개과정에서 역사의 방향을 결정할 8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79 최대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중산층의 향방 이였다는 점이다. 군부권위주 의 시대의 속도전식 성장은 중산층계층구조 중심사회를 창출해 내었고, 산업사회운영의 중추부를 감당하는 이들의 지지는 체제유지에 매우 중 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근본으로 하는 계 층이지만 경제성장의 수혜자이기도하다는 점 때문에 신 군부에 반대하 기 위해 거리에서의 행동정치에 이르기까지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는 어 려운 성향을 지닌 집단이다. 민주화 운동집단의 자극과 동원은 중산층을 개헌정국에서 적극적 행위자로 전환시킨 촉매제가 되었고, 드디어 중산 층 시민까지 거리의 시위에 적극적 참여자가 되며 균형의 추는 민주화 세력 쪽으로 기울게 된다. 21) 흥미로운 것은 당시 전두환도 중산층의 향 배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으며, 애초에는 그들은 안정 지향적 집단이기 때문에 대정부 봉기로부터 거리를 둘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기 도 했다는 사실이다. 22) 그러나 그의 예측과는 상이하게 소위 넥타이부 대마저 직선제 시위에 적극적 참여자가 되며 전두환에게 직선제수용 이 외 다른 선택의 여지는 소멸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산층 중심계층구조 는 군부권위주의 시대에 달성된 산업혁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동시 에 강조한다 선언에 뒤를 이어 기본권을 강화 하고 직선제 대통령 제를 채택한 새 헌법이 채택되고, 이에 따라 6공정부가 출범하며 장기지 속 민주주의 시대가 개막 된다. 7. 결론 본 발표문은 통합의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현대사의 주요 행위자인 산 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결과적으로 상보적으로 한국사회가 건국이후 정치적민주화와 경제적 산업화를 통해 성숙한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하 는데 기여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 산업화 세력은 건국이후 87년까지 국정을 주도해온 세력이고 민주화 세력은 이들에 대항해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세력을 의미한다. 23) 21) 이인영, 학생운동: 선도 투쟁에서 대중성강화로, 역사비평,1997, 여름호,39호, 64-98쪽. 황인성, 투쟁 의 구심,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위의 책, 20-63쪽. 22) 전두환 육성증언, 김성익 편, 조선일보사, 1992, 388쪽, 433쪽. 23) 한국정치에서 광의의 민주화세력은 광주 민주화운동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한 인민민주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급진집단 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본 연구가 지칭하는 민주화세력은 산업화세력에 대한 대항세력 가운데도 계급혁명을 모색하는 집단을 제외한 일종의 제도권대항집단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다. 왜냐하면 급진집단은 통합의 역사인식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집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산업화 민주화 l 81

80 본 발표는 건국 이후 상당 기간 산업화 세력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 중시키고 대항세력에 대한 불법적 탄압을 특징으로 하는 권위주의체제 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지적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화세력은 국 정주도 세력으로 국내외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건국을 주도하고 안보체 제를 정비하고 산업혁명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대한민국이 성숙한 근대 국민국가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실천 하는데 불가결한 토대를 놓았 다는 사실도 강조하였다. 이와 함께 이는 대한민국이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수 있는 기초를 놓는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본 발표는 산업화세력의 권위주의적 집권체제는 예외 없이 집 권 후반부에 접어들면 권력정치의 타성에 빠져들어 시대적 적실성을 상 실한 권력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민주화세력은 적실성을 상실한 권력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계기를 만들어 내었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국정주도세력인 건국과 산업화 세력을 상징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퇴장배경과 과 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제시 되었다. 민주화세력은 특히 6월 항쟁을 주 도하여 민주주의로의 전환 24) 과정을 촉진한 공로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또 민주주의의 실천은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이기 때 문에 민주화 세력은 존재 그 자체로도 의미를 부여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통합의 역사인식은 성공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총 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 시점에서 현실정치에 나타나는 갈등을 해소에도 매우 유용한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논리라는 점을 다 시 한 번 지적한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지난 시절 한국현대사에서 두 집단의 역할 을 상호배제적으로 인식해왔던 것은 객관적 사실에도 반하는 것이다. 두 세력은 서로 다른 수준에서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과제 의 달성을 통해 근대국가로 발전해 오는데 결여될 수 없는 역할을 감당 해 왔던 것이다. 이는 지금이라도 두 집단이 통합의 역사인식의 관점에 24) 일부에서는 소위 87 체제의 이념적 보수성을 강조하며 절차적 민주화에 머문 체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87년 체제 안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고 민주노동당 등 좌파정당이 국회에 진출했고 적지 않은 사회적 입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8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81 서 과거의 적대적 기억을 극복하고, 통합과 화합의 길로 가는 모습을 보 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사를 두고 화해하는 차원 을 넘어, 이 시점의 한국정치를 타협과 통합으로 이끌어가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대립구도의 축을 형성하는 여야의 두 세력은 대부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에 그 원 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상보적 관계 속에서 이룩한 한국 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인의 경탄과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 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최근의 예를 소개한다....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정치 선진국이다. 단기간에 성숙한 민주주의 와 눈부신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2012년 이 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EIU에 따르면 한 국은 미국보다 한 단계 일본보다 세 단계 높은 전 세계 20위의 민주 주의 국가로 유럽국가와 비슷한 민주적 성숙도를 보인다. 25) 이밖에 경제학자 애스모글루 와 정치학자 로빈슨 의 권위 있는 저서는 후발국 가운데 한국을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 경우로 거론하고 있다 는 점도 부연한다. 26) 25) 다니엘 튜터 지음. 송정화 옮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서양좌파가 말하는 한국정치 (문학동네 2015). 13쪽 26) 대련 애스모글루. 제임스A. 로빈슨지음. 최완규 옮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쪽 산업화 민주화 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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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2> 산업화 민주화 발제 2 시장질서 대( 對 )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공화사회( 共 和 社 會 ) 윤평중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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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시장질서 대( 對 )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공화사회( 共 和 社 會 ) 윤평중(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 Ⅰ. 시장질서 대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공화사회 1.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시민정신의 빈곤 21세기 한국사회처럼 화려한 겉모습과 초라한 속살이 날카롭게 엇갈 리는 곳도 드물다.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 뒤안길에는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 최저수준의 국민적 행복지수가 교차한다. 세계 10 위권 경제 강국을 운위하는 국가 차원의 성취와, 보통사람들이 생활현장 에서 느끼는 일상적 불안 불만 불신 사이의 부조화가 하늘을 찌른다. 외 국에서는 우리를 선진국에 가까이 갔다고 평가하는 데 비해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를 지옥 같은 곳에 비유하는 헬 조선 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지경이다. 쌓여가는 사회적 긴장은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활활 타올라 특정인이나 특정 이슈에 대한 분노로 옮겨간다. 국민적 공 분을 불러일으켰던 대한항공 상속녀의 땅콩 파동은 물론이거니와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승계를 둘러 싼 현재진행형 막장 드라마는 2015년 현 재, 우리가 온전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대한항공이나 롯데 사태는 상류층이 솔선수범하기는커녕 상식인( 常 識 人 ) 수준의 판단력과 합리성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은 우리사회의 어두 운 얼굴이 아닐 수 없다. 왜곡된 가족경영제로 상징되는 재벌체제의 폐 해가 극적인 방식으로 폭로된 것이다. 부자가 부러움의 대상일지언정 존 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회적 통념도 재확인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 층이 시현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저한 부재와 맞물린 편법과 반칙, 책임회피와 甲 질, 원망과 남 탓하기의 아비투스가 평균적 한국인의 삶 의 문법에까지 깊고 넓게 침투했다는 사실에 우선 주목하려 한다. 산업화 민주화 l 87

86 이것은 땀과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체인 시민들의 노고 를 폄하하는 발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한국사 회가 한 단계 더 비약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표현일 따름이다. 시민정신의 빈곤과 그 왜곡된 전개야말로 현대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 대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나는 시민정신의 빈곤과 그 굴절 양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반 성취라는 한국적 이중혁명( 二 重 革 命 )의 도정과 서로 뗄 수 없이 결합되어있다고 본다.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길 자체에 대한 해명보다는 그런 이중혁명이 우리 삶의 공간 인 시민사회에 어떤 빛과 그림자를 낳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이 글의 주 된 관심사이다.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흥륭( 興 隆 )은 우리의 최대 자산 가운데 하나이 며 한국 민주주의의 동력이라고 상찬하는 것이 학계와 여론주도층의 관 행이다. 강한 한국적 국가에 맞서는 강한 시민사회라는 개념화가 대표적 인 경우일 것이다. 1) 본질적으로 적확한 지적이지만 나는 이 글에서 한 국적 시민과 시민사회의 빛과 동행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집중적으로 조 명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적 치우침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일대 도약을 위한 자기성찰의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시민정신과 시민윤리는 일종의 짝 개념으로서 번갈아 사용하지만 시민 정신이란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시민윤리가 더 비근한 용 례이긴 하나 권위주의 시대의 국민윤리 등의 사례로 적지 않게 오염되 었기 때문이다. 시민정신은 개인도덕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상호주 관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된 규범체계와 제도, 그리고 일상의 집합적 관습 을 지칭한다. 따라서 시민정신이라는 용어에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틈 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오히려 시민정신은 마음과 물체의 이분법을 넘 어 정신과 육체를 통전( 統 全 )한 사회문화적 산물로 표상된다. 이런 문맥 에서의 시민정신은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제도이자 상호주관적 규 범의 틀이며 사회적 관행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철학사적으로는 헤겔의 인륜성(Sittlichkeit) 개념으로 소급되며 사회학적으로는 토크빌과 벨라 의 마음의 습관 비슷한 사회자본 개념에 근접한다. 2) 1) 최장집 민중에서 시민으로 (서울: 돌베개, 2009) 2) 헤겔을 운위하면 당장 권위주의적 국가론자로서의 헤겔 아니냐는 표준적 해석에 빗댄 인상비평에 노출되기 쉽 다. 그러나 나는 정치사상가로서 헤겔의 핵심은 국가론보다는 시민사회론에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담론이론의 사회철학 (서울: 문예출판사, 1998) 제3장인 시민사회론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에서 헤겔 8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87 한국사회의 시민정신은 기본적으로 한국적 모더니티의 산물이며, 모더 니티(현대성)의 원천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소급 가능하다. 물론 시민정 신의 연원을 구한말이나 피식민 시대의 특정한 사건과 시점으로까지 소 급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논의의 경제성을 위해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삶에서 시민정신의 싹이 선명한 형태로 널리 발견되는 현대로 논의의 시평( 時 平 )을 제한하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주권재민의 이념을 현장에서 확인했던 4 19혁명의 의미는 그야말로 막중한 바 있다. 하지만 4 19에서 불꽃처럼 발화한 시민권 이념이 제대로 뿌리내리기엔 당대의 현실이 너무나 척박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민권의 자의식은 때로 퇴조 하기도 하고 때로 폭발적인 방식으로 분출하기도 하면서 한국현대사를 수놓게 된다. 한국 시민정신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안정된 마음의 습관으 로 공고히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적 문맥에서 시민정 신의 역동성과 휘발성이 모순적인 형태로 합체되었음을 뜻한다. 그리하 여 시민정신은 정치적 맥락에서 거리의 정치라는 방식으로 분출되기도 하며 선거철엔 쏠림의 미학을 과시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단 기간에 큰 파장을 부르는 선정적 사례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3) 분명한 것은 시민정신이 상황에 따라 과잉과 과소 사이를 위태롭게 넘나들며 사회적 에너지를 과잉 소진함으로써 긍정적 변화의 동력까지를 갉아먹 는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최근의 사례는 세월호의 경우이다. 돌이켜보면 한국현대 사를 통틀어 세월호 참사처럼 압도적인 단일 사건도 드물다. 폭발성과 장 기지속성의 두 측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압축성장과 뒤엉 킨 현대사의 모순이 배경에 있기도 하거니와, 그 비극성의 강도는 온 국 민이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함께 아파한 집단 공감을 낳았다. 시민사회론의 현대적 의미를 詳 論 하고 있다. 현대의 진보적 시민사회론자 들이 헤겔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우 연이 아니다. 대표적 텍스트로는 J. Cohen and A. Arato, Civil society and Political theory (MIT Press, 1992). 나아가 헤겔의 인륜성 개념은 칸트의 도덕성 이념과 생산적인 방식으로 갈등하면서 주체 형성의 길에 대한 심원한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철학사에서 독일관념론이 차지하는 의의를 관념론적 외피를 벗겨내 적극 적으로 수용하면 그 핵심은 주체 형성의 動 學 으로 압축 가능하다. 헤겔 변증법의 합리적 핵심도 그런 맥락에 서 독해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의 결론 부분인 시민교육(시민형성)을 헤겔철학의 맥락에서 집중적으로 사유했 다. 헤겔 변증법의 이런 함의에 주목한 대표적 현대철학자가 바로 데리다와 지젝이다. 마음의 습관에 대한 현대 적 연구의 효시로는 R. Bellah 외, Habits of the Hear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 3) 2015년 전반기 내내 큰 화제가 되면서 국민청원운동 비슷하게까지 확산되다가 거품처럼 꺼져버린 세모자 성폭 행 사건 은 한국시민사회의 감성지향성과 취약함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산업화 민주화 l 89

88 이런 점에서 세월호 는 특이성의 사건 이며 하나의 고유명사이다. 여 느 대형사고의 감정적 소구력이 채 1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망각사회 한 국 의 실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월호 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3백 명 가까운 학생들의 희생을 초래한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태일 수밖에 없다. 움직이지 말라 는 선내 방송이 계속되는 가운데 배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 들만 아는 통로로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위 기상황에서의 동물적 생존욕구의 발현이라는 말로 다 설명될 수 있는가? 변명과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보통의 한국인과 다른 별종의 인간들이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글은 세월호 이 준석 선장의 모습이 바로 평균적 한국인의 얼굴에 다름 아니라는 실존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모두가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 는 절대도 덕에서 비롯된 공허한 당위명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직접 적인 힘을 갖는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절박한 언명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 직업인으로서 취해야 할 최소한의 대응 조치조차 방기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드러낸 직업윤리의 완전한 결여 는 곧 바로 최악의 해양 참사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에는 복합적 배경 이 있었지만 당시 상황을 그렇게까지 키운 결정적 요인은 선장과 선원 들의 책임의식 부재였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직업윤리는 공화사회로의 지향성과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시민정신의 최대 기반으로 승화되어 가는 사회적 삶의 필수 자산이다.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행 위가 고대 희랍세계 같은 오이코스(oikos, 가정경제)의 사사성( 私 事 性 ) 을 훌쩍 뛰어넘는 질적 사회변화와 동행하기 때문이다. 근대 시장경제와 동행한 사회의 부상( 浮 上 ) 을 경계하는 아렌트(H. Arendt)의 입론은 근 대의 직업윤리와 시민정신 사이의 상관성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고 전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 세월호 선원들의 행적은 해외언론의 논평처럼 세계 해운인의 수치 임 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함의는 특정 개인이나 회사의 문제로 축 소되지 않으며 우리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키는 바, 오늘의 한국사회에는 우리의 항로를 인 도할 별, 9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89 즉 공통의 시민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가 될 정도로 삶의 기본적 규범이 무시되기 일쑤다. 맹골수로에 잠긴 세월호는 재난 디스토피아 대한민국호( 號 )의 축소판인 것이다. 가라앉는 배와 승 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 예술가 종교지도자인 척 하면서 협잡질을 일삼은 선주( 船 主 ), 그런 선주와 결탁해 공적 자산을 분탕질 친 관료 마피아가 활개 치는 곳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디 에도 기댈 데가 없는 각자도생( 各 自 圖 生 )의 지옥도( 地 獄 圖 )에 가깝다. 이런 사회에서 자살률이 세계최고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세월호 는 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우리에게 속삭이기 도 한다. 재난 디스토피아의 계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선장과 선원들이 도망칠 때 자신의 생명을 버린 승무원과 선생님이 있었으며 기 울어가는 세월호 안에서 목숨을 걸고 20여명을 구한 이도 있다. 위험천 만한 구조작업을 감행한 잠수사 수 백 여명과 전국에서 달려 온 연인원 수 만 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진도 팽목항을 메운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방방곡곡을 수놓았던 노란 리본의 물결을 상기해 보라. 미증유 의 재난상황에서 연대감이 분출해 우정의 공동체를 이루는 재난 유토피 아 가 출현한 순간이었다. 잠자던 시민정신이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 재난 유토피아가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생활 깊이 자리 잡은 부패와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된다. 노란 리본에 가 장 많이 새겨진 말은 미안하다 와 부끄럽다 였다. 어른의 말을 믿은 학 생들을 사지( 死 地 )에 내팽개쳤으므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서 있 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부끄럽다는 고백이었다. 매뉴얼이 없 어서가 아니라 매뉴얼을 실천할 시민정신의 부재가 참담하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핵심이었다. 여기에 국가의 무능과 기득권층의 부패에 대한 분 노가 더해져 재난 유토피아를 추동했던 것이다. 재난 유토피아를 낳은 집단적 자기성찰과 상호 공감은 자연발생적인 재난 공동체 로 이어진다. 역경에 빠진 타인들을 돕고자하는 열망이 샘솟는다. 위기의 순간에 사 람들은 서로를 챙기고 자신보다 공동체를 앞세운다. 삶에서 소중한 작은 것들과 기본적인 것의 가치를 절감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한민국을 휩쓴 노란 리본의 장관( 壯 觀 )이 바로 그 모습이었다. 세월호의 압도적인 비극성( 悲 劇 性 )이 지옥에서 만들어진 낙원 인 재난 유토피아를 잉태했 던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l 91

90 그러나 재난 유토피아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한계 가 있다. 그것은 불꽃처럼 솟아올랐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마련이다. 재난 디스토피아의 관성은 재난 유토피아를 잠식해 재난 공동체를 부단 히 증발시킨다. 자신이 창출한 재난 유토피아의 넓이와 깊이가 우리가 경험한 어떤 사건보다 컸던 특이성의 사건 세월호 조차도 일상성과 관 습성에 기초한 재난 디스토피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었다. 재난 디스 토피아를 견뎌내는 최대 면역력과 치유력은 재난 유토피아의 꿈에서 오 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되고 상설화( 常 設 化 )된 시민정신에서 오기 때문 이다. 이 대목이 핵심으로서 이 글의 테마와 직결된다. 유토피아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에게 마음의 중심은 직업윤리를 포함한 시민정신이라는 인륜성의 경험과 제도에서 비롯된다. 세월호 이 후 재난 디스토피아와 재난 유토피아의 엇갈린 교차, 즉 시민들의 일상 에서 세월호의 교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고 만 지금의 현실은 제도 화된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증언한다. 세월호가 정 치투쟁의 소재로 전락하고만 오늘의 현실은 거대한 특이성의 사건조차 쉬이 증발시켜버리는 시민정신의 부재에 대한 살아있는 보고서이다. 척박한 시민정신은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 이다.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룬 삶의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산업화와 민주화는 한국인의 삶에서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민정신이란 화두를 통한 한국의 역 사와 문화에 대한 관찰, 한국인의 가치관과 집단심성에 대한 조망은 우 리가 누구인가 를 거울처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앞서 얘기했듯이 한국인 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밑바닥을 치는 현상도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서 드러나는 시민정신의 빈곤에서 유래되는 측면이 크다. 우리 사 회가 열에 들뜬 상태 비슷하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식는 감정 인플레 현상이 나라 전체를 흔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 민주주의의 휘발성이 과잉 증폭되는 것은 한국인의 삶에서 마음의 중심, 곧 시민정신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적 이중혁명을 추동 한 한국 모더니티가 남긴 최대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9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91 2. 시장질서와 좌절된 경세제민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 가운데 산업화와 민 주화를 동반 성취한 거의 유일한 나라로 여겨진다. 우리 시대의 한국인 들은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라는 총체적 격변의 시대를 온 몸으 로 통과한 것이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게 마련이다.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을 맞는 2015년은 한국현대사의 명암을 짚 고 미래를 준비할 중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광복 70주년 기념 통 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는 건국에 이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70년에 대한 성찰을 날줄로 삼고 새로운 30년의 비전을 씨줄로 삼아 1세기에 걸친 나라 만들기의 길을 성찰하는 집단지성의 심포지움(향연)일 터이 다. 나는 그런 담론의 잔치에서 시민정신의 진화야말로 나라 만들기의 핵심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펼치려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이중혁명이 밟아갔던 한국적 행로를 추적해 재구성 하는 작업은 사회과학과 역사학 영역에서 이미 숱하게 수행되었으며 수 다한 성과를 낳은 바 있다. 현대사의 명암을 진단하는 보수 진보 진영의 시각차가 너무 큰 나머지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라는 개념 자체 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입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논쟁은 한국현대사 해석을 둘러싸고 서로 전투적으로 맞서는 진 영논리가 날카롭게 충돌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정희 평가 문제 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담론투쟁은 곧 치열한 권력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민감한 역사담론투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 글의 목표가 아 니며, 보수 진보나 좌우 역사관 사이의 통합을 섣불리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한국현대사를 현인( 賢 人 )의 위치에서 내 려다보는 듯한 자유부동( 自 由 浮 動 )하는 독립지식인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도 아니다. 담론과 권력이 뗄 수 없이 얽혀있는 현실세계에서 냉철한 중립적 판관( 判 官 )의 자화상이란 가능하지도 않은 데다 그런 시도 자체 가 또 다른 권력의지를 감추고 있거나 허위의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 이다.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변증법이 창출하는 시민정신의 진화 과정 에 대한 서술 작업에서 필자의 이념적 지향과 가치판단이 곳곳에 돌출 하는 건 불가피하다. 산업화 민주화 l 93

92 요사이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단연 경제 문제이다. 대다 수 보통사람에게 경제가 생활의 핵심이다 는 사실은 압도적인 삶의 경 험칙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단 한 세대 만에 놀라운 경제발전의 성과와 모순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경제문제가 주는 실감은 매우 강력하다. 전 지구를 관통하는 항상적 경제위기가 현재의 민생고로 악화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확산되면서 삶의 세계에서 다시금 경제가 가장 절박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적 화두에 가까웠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 자체가 이런 맥락의 산물이었 다고 나는 본다.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변증법과 시민정신과의 연계성이라는 테마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경제사를 거시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분단체제하의 일천한 자유민주주의와 한국적 중상주의 국가가 견인한 원시적 자본축적이라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그늘은 21세기에 들어서도 변함없이 우리를 강력히 규정한다. 막강한 자본의 힘에 비해 노동의 목 소리는 과소 대표되고 있으며 그나마도 대기업노조라는 또 다른 기득권 집단에게 편중되어 있다. 과다한 사회보장제도가 재정과 노동의 건전성 을 위협하기는커녕 한국의 상황은 그 반대에 가까워 인간의 존엄을 보 장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기본적 복지제도의 확보가 강력한 시대적 요 구로 떠오르는 지금의 흐름 자체가 한국의 엄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분 단체제의 현실에서 비롯된 과다한 국방비 지출비용을 감안해도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과 노인 빈곤률, 최저인 청소년 행복도,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 등은 21세기 한국사회가 중대한 내적 위기에 봉착했음을 증명한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 공약이 여야와 보수 진 보를 관통한 공동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신자 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에 노출된 다수의 노동자 실직자 실업자들을 위 한 사회안전망 구축조차 태부족이다. 발전국가의 일관된 압축성장 정책 의 결과 이제 국가를 넘보게 된 독점자본의 힘은 재벌공화국을 운위하 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자체를 위협한다. 부동산 문 제에서 집중적으로 발현되었던 투기적 거품경제의 적폐는 건전한 근로 와 투자의욕을 왜곡시켜 한국자본주의의 도덕적 기초를 흔든 바 있다. 한국의 자본이 외치는 것처럼 불필요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규제를 감 9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93 소시키며 시장의 기능을 투명화하고 사유재산권과 기업가 정신을 장려 하는 것은 참으로 정당하며 한국자본주의의 현 발전단계에서도 시의적 절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극단화한 일반이론의 차원으로 이전시 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실패 를 시정 하려는 처방이 시장의 실패 를 간과하는 오류로 이어지는 위험성이 엄 존한다. 재벌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릴 만큼 커졌으나 사회적 책임과 경영윤리에 는 소홀한 것이 대기업집단의 민얼굴이다.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롯 데 그룹 승계분쟁은 얼핏 돌출 사건으로 보이지만 사실 재벌기업의 봉 건적 사내 문화가 필연적으로 잉태한 산물이기도 하다. 물론 재벌이라 불리는 한국적 대기업집단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데는 소유주 가문의 뛰어난 기업가 정신과 경영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들의 전면적 희생이 동반하지 않았더라면 재벌의 성공은 원천적으 로 불가능했다. 대기업집단 자신만의 힘으로 오늘의 성취에 이르렀다는 일각의 주장은 한국현대사의 객관적 사실( 史 實 )에 어긋난다. 한국처럼 대기업의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제도화된 나라는 전 세계적 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유사 봉건세습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재벌의 선단 식 경영과, 총수의 무한권력에 반비례하는 무책임경영 행태도 크게 달라 지지 않았다. 경영 성과는 재벌과 총수일가가 독식하는 데 반해 그 비용 과 손실은 사회화 해서 국민 전체가 나눠 부담하는 불공정과 특혜의 관 행은 한국경제의 오래된 풍경이다. 국민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율 은 갈수록 높아만 간다. 이런 현실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왜곡할 뿐 아 니라 민주공화정 자체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재벌공화국 이란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한국 보수 블록의 이해관계를 대표했던 박근혜 후 보가 공약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는 시장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 회양극화를 줄여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의 합리적 노력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13명의 전직 경제장관들이 시 장경제체제 수호 차원에서 대기업이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고 요 청했던 것과 같은 문맥이다. 2013년 1월 15일에 발표된 바 있는 현대경 제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2012년 3분기 저소득 취약계층의 체감 생활 고는 악화일로였다.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추산된 소득하위 20%계층의 산업화 민주화 l 95

94 엥겔지수(소득대비 식료품비 지출비중)가 23.4%로 통계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전체가구의 평균엥겔지수(15.5%)와의 격차도 사상 최대로서 임 계점에 이른 양극화의 위태로움을 웅변한다. 여러 사회적 취약계층 중에 서도 노인가구의 엥겔지수가 최악(35.5%)이라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근래에 노인 자살률이 급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불행하게 도 이런 추세가 완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기초연금은 이런 참담한 현실에 처한 노인들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방안일 터이다. 무상보육 정책도 비록 만병통치약은 아니라 해 도 세계 최저출산율의 재앙을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며 4대 중증질환 관련 의료공약 등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우리 복지체제의 뼈대인 저부담 저복지제도에 일대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국민적 합의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GDP대비 10.4%인 데 과중한 국방비 부담을 감안해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 (OECD 평균은 21.6%)이며, 국민부담률도 24.3%로 역시 가장 낮은 편 에 속한다(OECD 평균은 34%). 2015년에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 의 하면 국민적 공론화와 합의의 과정을 거쳐 저부담 저복지에서 중부담 중복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대해 일반 시민과 전문가 집단의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이는 국민들의 불안 불만 불신이 총체적 분노로 폭발하 는 것을 막아 한국 경제를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는 기본 전제에 가 깝다고 나는 본다. 또 다른 통계자료를 보자. 국세 수입에서 가장 큰 것이 부가가치세 소 득세 법인세인데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최고율을 25%에서 22% 로 하향조정한데 비해 2011년 소득세 최고율은 35%에서 38%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강행한 법 인세 축소에도 불구하고 국내투자나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데 비해 20대 대기업들이 현금으로 쌓아놓은 사내유보금만 2008년 이후 5 년 동안 322조원에서 589조원으로 80% 수직 상승했다. 또 2013~2014 의 2년간 소득세수가 11조 더 걷힌 데 비해 법인세수는 2조 더 걷힌 데 불과했다. 세수증가 규모에서 소득세가 법인세에 비해 5배 이상 가파르 게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그전 39년 동안 부동의 세수 1위였던 부가 가치세를 제치고 2014년 기준으로 소득세가 국세 수입 1위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 5년간 탕감된 법인세가 30조원이고 그중 24조원이 대기업 9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95 으로 돌아갔다는 통계가 입증하듯이 이명박 정부 시대의 부자감세와 봉 급생활자 자영업자의 부담 폭증은 입증된 사실이며, 박근혜 정부는 그런 흐름을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사회는 복지와 상생 없이 더 이상의 경제성장 자체 가 어려운 한계점에 이르렀다. 대대적 복지확대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체제유지 비용이자 미래성장 동력이라는 발상전환이 절박 하다. 1977년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도입할 때나 1988년 노태우 정부가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도 관료집단과 국책연구기관의 반대는 극 심했다. 오늘의 복지강화와 증세 논쟁도 이런 맥락에서 조명되어야 마땅 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태풍 속으로 밀어 넣은 IMF의 부총재가 2015년 초 방한 당시 남긴 한국경제 에 대한 충고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국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양 극화 심화와 중산층 붕괴 추세에서 적극적 사회경제정책을 통해 하루 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IMF 지도부 조차 한국형 발전국가 모델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우려하고 있는 게 지금의 실정인 것이다. 한계상황에 이른 한국형 발전국가의 미래를 모색하는 데 있어 지금까 지 나는 그 성취보다는 문제점을 더 부각시키는 접근법을 썼다. 이런 종 류의 현실진단은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피해가기 어려운 사전 정지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세계사적 조망이 요구되는 바, 이와 관련된 의미심 장한 진단은 다보스 포럼에서 나온 바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이끄 는 주요 경영자들과 이론가들 수천 명이 1년에 한번 씩 모여 세계적 현 안을 다루는 대표적 모임이 다보스 포럼이다. 그런데 2012년 다보스 포 럼 의 주제는 大 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 이었다. 오늘의 자본주의가 중대한 위기에 빠졌다는 세간의 공감대를 반영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확신은 유럽 대륙을 휩 쓰는 재정위기의 폭풍 앞에서 파멸의 날 시나리오에 대한 집단적 우려 로 바뀌었다. 상당 부분 허구로 판명된 자기 조절적 시장경제 의 신화가 악마의 맷돌 이 되어 인간적 가치들을 갈아버리고 있는 총체적 도전 상황에 대해 다보스 포럼은 2013년 불굴의 역동성, 2014년 세계의 재 편, 2015년 새로운 지구적 맥락 이라는 주제로 응전하고 있는 중이다. 산업화 민주화 l 97

96 2008년 이래 구미 선진국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통타하고 있는 유사( 類 似 ) 경제공황이 그 생생한 증거일 것이다. 4) 칼 폴라니(K. Polanyi)는 반세기도 훨씬 전에 저술한 예언적 대저인 大 전환 에서 사회의 통제에 서 벗어난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폭주를 칼같이 규탄한 바 있다. 5) 현대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성소( 聖 所 )인 다보스 포럼이 자기반성의 시도로서 주류 자본주의 경제학의 영원한 비주류 였던 폴라니와 동일한 주제인 자본주의의 大 전환 을 운위하는 것보다 더 상징적인 사태변환도 드물 터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자본(특히 금융자본)의 유통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개별 민족국가나 지역 블록들의 경제 제어능력을 무 장해제 시켰다. 작은 정부, 큰 시장 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구호는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을 원활하게 해 이윤을 극대화시키기 위 한 논리에 다름 아니었다. 각국에서 추진된 형태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노동시장을 극단적으로 유연화하고 경제적 개인주의를 상 찬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무한경쟁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적극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획득된 생산성과 효율성이 미국 발 금융위기와 유럽 발 재 정위기의 회오리를 낳는 걸 우리는 현재진행형으로 목도하고 있다. 고용 불안정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경제의 열매는 자본가 와 금융 CEO, 극소수 전문층과 노동엘리트에게 집중되고 있다. 다수의 비숙련 임노동자들은 부분노동이나 서비스 관련 산업으로 내몰 리거나 장기 실업상태로 떨어짐으로써 잉여인간화 하고 있다. 산업구조 가 빠르게 개편될수록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마는 노동의 종말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은 항상적 불안정 상태에 놓여있다. 세계체제적 모순과 분단구조의 모순을 응축한 한반도의 상황도 위태롭 다. 돌진적 방식으로 추진된 압축성장이 특유의 한국형 위험사회를 만들 4) 투자가 중의 투자가 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2012년 당시의 세계경제상황이 1929년 미국 대공황 못지않게 심 각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세계 경제가 과거보다 훨씬 촘촘히 연동되어있는 데 비해 1930년대에 위력을 발휘했 던 개별 국민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그는 특히 우려하고 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를 오바마 정부가 헬리콥터로 돈을 쏟아 붓는 사상 최대의 구제금융을 투하해 급한 불을 끈 미국에 비해 통합된 정치적 리더십이 결여된 유럽의 재정위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에 들 어서도 그리스 발 위기로 EU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5)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도서출판 길, 2009년). 원저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은 1944년에 첫 출간되었다. 9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97 었다는 사실을 세월호 사태가 입증한다. 문제는 한국형 신자유주의 정책 이 보수와 진보 정부를 불문하고 별 다른 성찰 없이 단순 재생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최근의 두 보수 정부에서는 그런 흐름이 더욱 빨라지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적 발전국가 주도의 전면적 동원체제와 불균형 성장 정책과 맞물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노동 배제적이고 재벌 중심적인 천 민자본주의, 구조적 부정부패, 패거리 정치문화는 두 차례의 수평적 정 권교체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가 없었다. 발전국가 모델의 견인차로 여겨 진 과대국가 독점자본 연합이 만성적 경제위기의 구조적 원인이라는 인 식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정부 들어 더욱 광범위한 대중적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발전국가의 이런 행로가 세상을 경영하고 사람들을 위 한다 는 경제의 원래 뜻인 경세제민( 經 世 濟 民 )의 꿈을 크게 변질시키고 말았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3.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변증법 6) 카지노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적폐가 온 세계를 휩쓸고 전 지구적 경제위기의 책임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전횡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지금의 상황은 시장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요구한다. 그것은 경 세제민으로서의 경제를 되살리는 데 있어 필수적인 담론분석의 과정이 기도 하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라는 과잉과, 그 정반대 지점에 있는 非 자유주의 적 反 시장 정서의 과잉이라는 오늘날의 이중과잉 상황은 특히 한국사회 에서 시장에 대한 입체적 사유를 어렵게 만든다. 시장의 본질, 즉 시장 질서에 대한 철학적 논구는 서양에서도 희소하지만 특히 우리 학계에서 는 사회과학적 분석도 드물고 인문학적 논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는 한국 지식사회와 보통사람들의 생활세계에서 자유주의 일반에 대한 과소평가를 낳은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본다. 하지만 마르크스를 찬탄케 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생산력 창출능력 문제를 떠나서도 온전한 시장 없이는 현대적 삶의 핵심인 자율성의 공 간으로서의 공론장이 만들어지기 어렵고 시민정신도 생성될 수 없다. 시장이 부재한 모더니티(현대성) 자체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은 6) 이 주제는 시장의 철학 이라는 필자의 저서로 따로 출간될 예정이다. 산업화 민주화 l 99

98 이 때문이다.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건강한 시장과 건전한 민주정치는 복합 상관적으로 연계되어 공존하면서 갈등한다. 시장철학은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본성을 추출한 뒤 두 질서가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길항( 拮 抗 )함과 동시에 서로 공생하는지 밝히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바꿔 말하 면, 시장의 철학은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복합 상관성을 해명하려는 지 적 노력이 그 핵심인 것이다. 아래에서 시장철학은 3가지 테제 형태로 진술될 것이다. 시장철학의 시각에서 볼 때 오늘의 전면적 위기는 시장질서와 민주질 서 사이의 선택적 친화성과 긴장 관계가 적절한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주권국가가 자기조정능력과 상호견 제, 그리고 상호균형을 상실함으로써 단일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21 세기 세계사회의 질서 전체가 궤도를 일탈할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시 장질서가 전체주의화 해 나갈 때 민주질서는 전면적 위기를 맞는다. 위 기에 빠진 민주질서는 정치적인 것의 재생 을 통한 시장질서의 정상화 를 거쳐 복원될 수 있으며, 역으로 시장의 생명력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인 것의 토대를 굳건히 한다. 시장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시장질서, 민주 질서,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복합관계를 해명해야 그 구도와 지향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셋의 복합관계를 함축하는 21세기의 한국적 화 두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강화인 것 이다. 한국 보수가 시장의 입체성을 제대로 사유하지 못하고 자유방임 시장 의 물신화에 집착함으로써 균형 잡힌 시장의 철학에 이르지 못한 것처 럼, 진보진영도 시장의 복합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근본주의적 역사관에 함몰됨으로써 시장과 시민권 사이의 복합적 상관관계를 단선 적 적대관계로 환원시키는 경향을 노정해 왔다. 시장과 자본 일반에 대 한 한국사회 일각의 깊숙한 적대감은 사실 자유시장이 갖는 다면적 함 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사상적 편견은 우 리사회에 널리 퍼져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되고 2012년 유럽발 재정위기의 형태로 현재 계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 공황 때문에 더욱 힘을 받게 된 이런 편견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 시장질서와 민 주질서의 복합적 상관관계를 해부하려는 나의 시도는 일반이론의 수립 을 지향하기도 하지만, 자유주의와 건전한 시장경제의 가치를 폄하하는 10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99 경향이 있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형도에 대한 치유 효과를 겨냥한 것 이기도 하다. 대내외적인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조종( 弔 鐘 )은 서로 동행한다. 카지노자본주의로 명명된 신자유주의의 적폐가 온 세계를 휩쓸고 전 지구적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전횡에서 비롯된 지 금의 상황은 자유주의의 진보적 의미에 대한 논의 자체를 시대에 어긋 난 시도로 만드는 정세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기도 하다. 자유주의가 강 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퇴행적 이념으로 간주되거나 시대착오적인 반동 적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경향까지 존재한다. 한편으로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거니와 진보지식인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특히 낮게 평가 된다. 하지만 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빈곤과, 시장의 입체적 의미에 대 한 관심의 부재는 서로 긴밀히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에 대한 자기 성찰적 재구성의 시도가 긴급히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7) 이를 위해서도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관계라는 일반이 론의 틀을 탐색해보기로 하자. 흔히 시장의 논리는 1원1표인데 비해 민주주의의 논리는 1인1표라고 말해진다. 민주질서가 정치주체의 동등성을 전제하는 데 비해 시장질서 는 경제주체의 구조적 불평등성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는 이 정의는 시장철학의 핵심논제로서 훨씬 조심스럽게 분 석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질서가 공적 사안들을 모든 시민 이 동등하게 참여해 결정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데 비해 시장질서는 독 립된 경제주체들이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별적이고 자발적인 교환 관계를 맺는 시스템 으로 정의되지만, 둘 모두를 포괄하는 상위의 개념 정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서로 모여 상 호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주질서와 시장 질서 모두 자유와 평등, 재화와 용역 등을 포함한 광의의 의미에서 가 치의 생산과 분배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를 다루는 조직으로 이해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8)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결정적 차이는 가치의 생산과 분배를 다룰 때 이념형적 의미의 시장질서가 자발적 선택과 교환에 기초하는 데 비해, 7) 나는 이를 졸저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서울: 아카넷, 2009)에서 이미 상론한 바 있다. 8) 조홍식, 민주주의와 시장주의 (박영사, 2007), 21쪽. 산업화 민주화 l 101

100 민주질서는 일정한 강제력의 동원을 상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민주주의 는 강제력의 정당화 근거가 정치주체의 자발적 동의에 달려있다고 주장 한다. 양자의 본질적 차이점은 민주정을 포함한 정치체가 나의 의사로부터 발원했지만 나의 의지에 강제적 힘을 행사하는 권력 을 특정한 장소에서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국가의 권능을 필연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비해, 시 장질서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기초한다는 데서 생성된다. 그러나 폴라 니를 비롯한 시장비판가들은 시장질서에 대한 이런 정식화를 수용하지 않는다. 나아가 폴라니는 역사 현상으로서의 시장경제의 출현과 교환의 보편화에 대해서도 주류 이론과 궤를 달리 하는 입론을 전개함으로써 표준적 주류경제학으로 포섭되지 않는 경제인류학이나 경제사회학의 새 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폴라니와는 대극적으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의 집합으로서의 시장을 인 정하는 하이에크(F.A. Hayek)는 시장에 대한 표준적 일반이론을 전개함 으로써 시장철학의 원형적 모델을 확립한다. 하이에크는 다수결이 공동 체 전체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대의민주주 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그 근원 에서 동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는 하이에크의 민주주의론에 대한 나의 적극적 해석의 산물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동근원적이지만 하이에크 체계 내에서 굳이 선차성을 따지면 시장질서가 민주질서를 규 정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에크 시장론의 합리적 핵심은 사적 사율성과 공공적 자율성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침투적 이라는 사실을 시장철학의 기본 전제로서 입론하는 것이다. 하이에크에게 이는 역사적 현실로도 그렇거니와 구조 논리적으로도 적확한 평가로 여겨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상관성을 확신 했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에 근거한 경쟁체제를 뜻한 다면 그런 체제에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는 것이다. 9) 이런 논지는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의 자연적 친화성을 주장하는 시장옹호론의 원형 이 되었다. 시장옹호론에도 분분한 논의들이 있지만 그 핵심 주장은 다 음과 같이 간명하게 요약될 수 있다. 10) 첫째,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 9) F.A. Hayek, The Road to Serfdom (The Univ. of Chicago Press, 1944), 79쪽. 10) 임혁백,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세계화시대의 민주주의 (나남출판, 2005년), 102~104쪽. 10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01 유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채택한 국가 모두 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들이 예외 없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라는 사실은 적어도 이 명제를 지지하는 간접적 증거이다. 11) 둘째, 시장경제의 소비자주권과 민주주의 의 인민주권이 같은 작동원리에 입각해 있다는 주장이다. 둘 다 경제적 재화와 정치권력이라는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근본문제를 공유한 다는 것이다. 셋째, 시장경제가 창출한 경제적 풍요가 민주주의를 촉진 한다는 가설이다. 12) 시카고학파의 대부 프리드만은 시장옹호론을 단순 화시킴으로써 현대 신자유주의의 대중화에 앞선 인물이다. 그러나 시장옹호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이의 내재적 긴장을 강조 하는 반론에 즉각 부딪힌다. 시장비판론도 매우 다양하지만 그 원형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13) 첫째, 시장경제적 자원배분과 민주주 의적 자원배분의 목표는 동일하지 않다. 둘째, 시장적 교환이 주창하는 자발성에는 강제성이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 안에서의 불평등이 자본의 구조적 힘에 의해 갈수록 악화된다는 주장이다. 셋째, 시장의 의 사결정은 1인1표가 아니라 1원1표의 원칙에 의해 진행되므로 시장을 가 능하게 하는 사유재산배분의 불균형이 권력자원에 대한 동등한 접근이 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14) 오늘날 일반화되어있는 이런 시장비판론의 기초를 현대적 거대이론으로서 선취한 논자가 바로 폴라니이다. 폴라니의 시장이론을 살펴보고 그것을 하이에크의 시장철학 과 대비시켜 봄으로써, 우리는 시장옹호론과 시장비판론의 공과를 입체 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며,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상관성과 갈등관계 의 본질에 대한 이해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된다. 11) Vol.3. No.3 (1992), 9쪽. 12)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좀 더 상세한 국내 논의로는 이정전, 시장과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은 가능한 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한길사, 2002년) 참조. 이 논제에 대한 외국 학계의 논쟁구도 를 정리해 소개한 글로는 민경국, 현대 자유주의의 스펙트럼과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 철학연구 제71집 (철학연구회, 2005년 겨울), 27~57쪽을 보라. 주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사이의 대립구도 에서 바라본 시장에 대한 해석으로는 이 정전, 두 경제학의 이야기 : 주류경제학과 마르크 스경제학 (한길 사, 1993년) 참조. 13) 임혁백, 위의 책, 106~111쪽과 이정전,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263~326쪽 참조. 14) 1998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A. Sen)은 시장이 절차적 평등의 필수 요건인 익명성과 중립성을 충족 시키지 못하는 비민주적 의사수렴방법임을 논증했다고 주장한다. Sen, Collective Choice and Social Welfare (San Francisco: Holden-Day, Inc.,1970), 78~80쪽. 익명성은 찬성자와 반대자가 누구인지가 의사수렴 결과 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요건이며, 중립성은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과 결정의 대상이 되는 사안들 둘 다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요건이다. 센에 의하면 시장은 두 요건을 다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산업화 민주화 l 103

102 폴라니는 하이에크와는 정 반대로 현대경제학과 현대사회가 시장의 참 모습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폴라니적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의 진 면목을 하이에크의 시장철학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굴절시킨다고 할 수 도 있다. 폴라니 시장이론의 요체는 시장을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맥 락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인데, 이는 추상화되어 있는 시장에 역사적 지 평을 복원함으로써 시장의 참된 모습과 위상을 밝히려는 작업이다. 시장 의 얼굴에 구체성이 부여될 때 신자유주의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장근 본주의의 보편성과 제일성( 齊 一 性 )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추상화된 시장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작업은 시장보다 큰 개념 인 경제 에 대한 거시적 성찰로부터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 지점에서 하이에크의 카탈락시, 즉 자생적 질서 그 자체인 시장과 폴라니의 자기조절적 시장 사이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이에 크에게는 선( 善 )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시장에 대해 폴라니는 다분 히 유보적이다. 물론 폴라니가 시장경제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 며, 그는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해 서도 자유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폴라니가 집중 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기조절성이 끼치는 해악이다. 하이 에크적 시장의 자생성 체제에 대해서도 폴라니는 의미심장한 반론을 전 개한다. 시장에 대한 일반이론이 밝힌 것처럼 근대적 시장경제의 도래 이전에는 국민경제 자체가 부재했다. 국민국가 초기의 경제는 가계경제 와, 흩어져 있는 촌락공동체 단위의 지역적 바자르 시장으로 느슨하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생산수단으로서의 기계의 도입 공장제도의 확산과, 국민국가라 는 정치적 실체의 공고화는 상황을 일변시킨다. 하이에크의 시장론과 폴 라니 시장이론의 비판적 대면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국민국가가 중상주의 정책을 동원해 시장의 체계화와 전국화를 치밀하고 강력하게 추진했으 며 그에 필요한 제도와 법률 등을 앞장서 시행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근대의 자유시장이 가만히 두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비로소 만들어 진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목도한 시장경제의 종국적 탈구 현상 자체가 지속적이고, 중앙집권적이며 치밀하게 통제된 국가의 개입 을 출발 지 점에서 근원적으로 안고 있었다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15) 폴라니의 10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03 이런 통찰은 한국 상황을 조망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시장에 대한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대비는 시장옹호론과 시장비판론의 공과에 대한 잠정적 종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 자체가 마냥 자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 명확히 드러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함께 다시 대두한 큰 정부, 작은 시장 對 큰 시장, 작은 정부 의 대립구도는 일종의 사이비 문제이다. 근대적 의미의 시장, 즉 우리가 자연적 실체로 보는 시장 자 체가 국가의 강력한 개입에 의해 비로소 출범할 수 있었거니와, 조정과 통제기구로서의 국가 없이는 시장도 온전히 작동할 수 없으므로 시장의 무조건적 자율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집착은 독단론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과 정부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크던 작던 간에 시장과 정부 가 제대로 작동하느냐의 여부가 현대적 정치경제의 진정한 문제인 것이 다. 지금 우리가 세계적 차원에서 경험하고 있는 시장 실패가 다름 아닌 정부 실패이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의 철학에서 시장옹호론과 시장비판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 제의 형태로 잠정적으로 접합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필연적 상관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자유와 풍요의 증대는 경향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위한 공간과 기회를 증대시키는 것 같다. 이것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이념적으로 재단될 수 없고 경 험적으로 확증되어야 하는 차원을 반드시 내포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바꿔 말하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상관성은 경험적이고 사후적 인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을 뿐이며 이념적으로 재단되거나 선험적으로 선포될 수 없다. 둘째, 시장적 교환의 자발성의 이면에 엄존하는 강제성과 불평등성에 대한 지적은 비록 사실이기는 하지만 일면적인 사실이라는 점이다. 이른 바 1인1표와 1원1표 사이의 존재론적 불균등성은 복합적 논점을 제대로 짚지 못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점증하는 현대 대의민주제의 형 식화가 예증하는 것처럼 1인1표의 구호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에 불과 할 뿐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며, 나아가 시장적 교환이 상정하는 자발성 자체가 시민권의 강력한 물적 근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1인1표와 1원 1표 원리의 복합적 상관관계를 균형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근대인이 향 15)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139~140쪽. 산업화 민주화 l 105

104 유하는 자유의 물적 근거가 바로 사유재산권이라는 사실, 나아가 근대적 자유 자체가 사유권에 기초한 교환의 자유와 동행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개인도 사유재산권에 기초한 사회계약과 교환이라 는 토대 위에서 비로소 출현할 수 있었다. 교환의 자발성과 권리의 불평 등성의 개념 대립으로 축소된 시장질서와 민주질서 사이의 충돌구도는 둘을 매개하는 근대적 자유 이념의 동역학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시장경제의 자원배분과 민주주의적 자원배분은 완전히 동일한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아주 이질적인 것이라 할 수도 없다. 환언하면 두 영역은 상당한 정도 의 공통성과 중요한 차이점을 내포한다. 먼저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갈수록 시민주권과 소비자주권이 수렴되는 지점이 증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의 합리화 과정 자체가 시장질서의 합리화 도정과 궤를 같이하는 영역이 빈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적 자 원배분과 민주주의적 자원배분 사이의 큰 차이는, 시민주권에 정치적인 것 의 엄중하고 다원적인 계기가 필수적인 데 비해 소비자주권에는 그 계기가 부재한 경우도 있고 최소화되어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 있다. 시장의 철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명제이지만, 두 번 째 명제도 세 번째 명제와 가까이 이어지므로 이 둘을 입체적인 방식으 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것 의 이념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요 구된다.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긴장된 병행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긴장 구도 속에 정치적인 것의 이념을 대입해 작동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이념은 민주질서의 활성화에도 필수적인 개 념이다. 내가 보기에 정치적인 것 의 개념은 현대 자유주의의 질곡을 철학적으 로 돌파할 수 있는 유망한 이론적 자원이다. 16) 논의의 단초는 현대 자 유민주주의 정치가 형식화함으로써 정체( 政 體 )의 생사를 가르는 정치적 인 것 의 엄숙함에 대한 인식을 잃어 버렸다는 칼 슈미트의 입론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는 국가개념 자체가 정치적인 것에 의존하며, 정 치적인 것의 개념은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17) 슈 16) 여기서 나는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설명은 가능한 한 줄였다. 자유주의의 급진적 재구성 작업에서 정치적인 것 의 이념이 차지하는 몫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졸저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 의 제3장인 참고. 17) Carl Schmitt, Political Theology (MIT Press, 1985), 13쪽 및 칼 슈미트 지음/김효전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개념 (법문사, 1992), 31~33쪽. 10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05 미트의 견해는 시대착오적 결단주의와 몽매주의의 전형이라고 자유민주 주의자들에 의해 매도되어 왔다. 18) 하지만 슈미트 이론의 중핵은, 모든 법질서의 시원( 始 原 )에 정치가 자리하고 있으며 정치의 단초는 외침과 내란으로부터 특정한 정치체(the body politic)를 보위하는데 있다는 원 초적 명제이다. 국가의 정치적 실존 없이 헌법이 있을 수 없으며, 정치 적 통일성으로부터 나오는 국가주권 없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불가 능하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문제제기는 그 결과적 파탄과 관계없이 본원 적 의의를 지니며 시장과의 관계에서 국가의 역할을 야경국가로 축소하 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사이비 문제인 국가 또는 시 장 의 이분법적 논리를 폐기한 연후에 우리는 다원주의를 원천적으로 불 허하는 슈미트를 넘어 민주국가와 공정한 시장 의 상보논리 위에 시장 의 철학을 다시 정초해야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독자성과 통합성을 슈미트와 정반대 방향에서 천착한 아렌트의 활동유형론도 시장철학의 명제들에 큰 도움이 된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조응하는 생존활동(labor)과, 자연 환경과 상이한 인공세계를 만드는 제작행위인 생산활동(work)과 다 차 별화되는 인간활동(action)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 면서도 개성을 갖는다는 존재론적 복수성(multiplicity)으로부터 나온 다. 19) 인간이 말과 행동을 통해 노동이나 제작의 공간과 다른 정치의 지평을 창발적으로 생성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자기표현과 자기 향유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유적특질을 만들어가는 창조적 과정을 지칭 한다. 내가 볼 때 2008년 촛불 에 문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 그 것이 지닌 긍정적 함축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적 인간의 자기표현과 자기향유의 차원이다. 시민의 미학적 자기표현은 대중으로서의 시민이 공민으로 격상되어가는 실천과정이며 정치적 주체형성의 본질적 계기인 데, 촛불 의 경험은 시민주권과 소비자주권의 유기적 통합이 불가능한 18) The Challenge of Carl Schmitt, ed. C. Mouffe (Verso, 1999), 3쪽. 슈미트를 너무 안이하게 희화화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에 대항해 슈미트 이론이 자유주의적 법질서 의 근간에 대해 던지는 심중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천착은 W. E. Scheuerman, C. Schmitt : The End of Law(Oxford : Rowman & Littlefield, 1999) 참조. 19) H. Arendt, The Human Con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의 7~9쪽에서 일단 활동유형론의 시론이 제시되고 이어 Chapter 3~5에서 상론된다. 20) 촛불의 복합성에 대해 시평 형식으로 다룬 글이 졸고, 사실과 합리성의 관점에서 본 촛불, 철학과 현실 79호(2008년 겨울), 57~67쪽이다. 산업화 민주화 l 107

106 꿈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 준다. 특히 민주공화국의 존재이유에 대한 재조명이 소비자주권으로부터 촉발된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정 치의 미학화 가 일상적 생활정치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인 것의 계기가 최 대화되었고, 1인1표로 왜소화한 민주질서의 한계극복 전망이 열렸던 것 이다. 21) 수입쇠고기 시장의 불평등 구조도 국제적 교환의 산물이었지만, 부당하다고 간주된 시장적 교환에 대한 저항도 시장으로부터 비롯된 자 발성과 자유에 의해 추동되었다는 사실은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복합 상관성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제고시킨다. 이점에서 2008년 촛불 은 매우 다층적인 실천의 텍스트이다. 시장철학의 주요한 이론적 원천인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대립구도에 대 한 평가는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의 역사의 전체 지평위에서만 제대로 내려질 수 있다.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이 현재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 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자유주의가 원래 서양 의 소산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유주의가 근대 서양의 주요 이념 으로 등장하고 유럽 국가들의 국가통치와 운영체제의 핵심으로 구체화 된 이후 자유주의는 여러 번의 중대한 질적 전환을 경험했다. 이런 변화 의 과정은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러나 변화를 초래한 핵 심 동력가운데 하나를 개념적으로 압축하면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또는 시장과 시민권사이의 모순적 공존, 나아가 시장질 서와 민주질서의 변증법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하이에크와 폴라니는 모더니티의 이런 모순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였다. 하이에크의 두 적( 敵 )은 시장을 폐절시킨 국가사회주의와 시장을 국가 가 통제하는 국가 복지국가적 수정자유주의였다. 지식의 한계 로부터 발 원되는 인간 이성의 한계 를 망각하고 치명적 오만 에 빠져버린 나머지 몰락하고 만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의 기획을 일단 논외로 한 다면, 그의 기획은 서구복지국가의 주요모순, 즉 과대국가의 실패 에 대 한 대응 기획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하이에크적 진단과 처방의 물질적 기초는 성숙한 사회복지국가 체제의 현존인 것이다. 자유주의 담론의 역 사에서 하이에크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야만 가능하다. 21) 여기서 나는 정치의 미학화 라는 말을 유사한 표현(정치의 예술화)을 맨 처음 만든 벤 야민과는 정 반대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주지하다시피 벤야민에게 정치의 예술 화는 파시스트적 선전 선동의 맥락을 지칭한다. 10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07 하이에크의 길을 따라 불필요한 국가 개입을 줄이고 규제를 감소시키 며 시장의 기능을 투명화하고 사유재산권과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는 것 은 참으로 정당하며, 한국자본주의의 현 발전단계에서도 지극히 시의적 절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극단화된 일반이론의 차원으로 이전시 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실패 를 시정 하려는 하이에크의 진단과 처방이 시장의 실패 를 간과하는 오류로 이 어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구로부터 유래했 지만 그 맥락과 역사가 다른 한국의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에 하이에크 를 그대로 대입할 때 그 순기능은 줄어들고 역기능이 오히려 극대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하이에크 담론을 앞장서서 장려하는 사회 적 주체가 재벌과 그 대변조직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국내독점자 본이 국내 시장에서 해외 초국적 독점자본 때문에 위협을 느낄 때는 민 족주의라는 지극히 非 하이에크적인 전략에 호소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이다. 사유재산권이 자유의 기초이며, 인격과 자율성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통찰은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자 유주의에 비판적이었던 독일관념론자 들에게도 공통된 인식이었다. 사적 소유 없는 자생적 질서 의 창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성숙하고 자율적이며 민주적인 모든 삶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인 사 유재산권에 대한 하이에크의 논변은 오히려 분산 소유 (several property)를 강조한다. 가능한 한 소유를 분산시킴으로써 자유 경쟁을 촉발하고 특정인에 의한 소유의 배타적 집중 통제를 막는 것을 하이에 크가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적소유의 분산에 의한 지식의 확대와 의사결정의 분권화가 교환과 가격을 정착시켜 협업적 큰 사회 를 생성시킨다는 하이에크의 중심 테 제는 중요하다. 물론 예상할 수 있듯이 하이에크는 독점 그 자체나 독점 의 이념형이 자유주의와 직접 충돌한다고는 믿지 않았으며 독점에 대해 상당히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독점이 자유경쟁을 방해할 때는 비판해 마지않았다. 특히 그는 독점기업들의 집단을 비난했 는데 이는 조직화된 집단의 이기심 을 현대사회의 적으로 보았기 때문 이다. 독점기업의 상호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체결된 합의를 법률적으로 모두 무효화시키는 강경한 법 제정까지 하이에크가 제안했을 정도였다. 산업화 민주화 l 109

108 이는 이른바 재벌공화국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우리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바로 읽혀질 수 있다. 앞에서 논한 것처럼 폴라니의 시장철학은 이 지점에서 심중한 함의를 지닌다. 자기조절적 시장이 경제를 삼키려할 뿐만 아니라 왜소화한 자본 주의 경제 자체가 사회와 정치, 그리고 문화 영역까지를 식민화시키려하 는 상황에서 폴라니의 고발은 심대한 의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이에 크적 시장주의가 시장제일주의로 기울어지고 시장전체주의로 악화될 때 시장은 시장을 낳은 사회 전체를 분쇄해버리는 악마의 맷돌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인즈의 국가개입주의와 하이에크의 자유시장주의가 번갈아 현대의 경제 패러다임을 주도하면서 망각의 늪에 빠졌던 폴라니 의 얼굴이 21세기 금융공황의 파장 때문에 재조명되는 것이 단순한 우 연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질적으로 새로운, 깨어있고 자유로운 삶의 양식의 단초 가 사회, 즉 시장사회와 시민사회의 출현에 의해서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소유권 보장과 상거래의 자유로부터 솟 아난 계약법과 신용 정직의 덕목, 자생적 활력과 진취성, 천변만화( 千 變 萬 化 )하는 복합적 현실에 대한 유연한 대응으로부터 생겨나는 현장지 ( 現 場 知 )등은, 모든 종류의 민주적 정치 사회질서의 역동성과 안정성 확 립과 분리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도 시장이 근원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성숙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자유시장 경제는 결코 단순한 정책이나 도구적 수단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본질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절대화되고 근본화 되어가는 사태는 분명 심각한 편향이고 중대한 오류이지만,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 다른 제도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또 다른 편향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적 삶의 발현에 있어 시장이 차지하는 본원적 몫과 역할은 결코 축소되거 나 부인될 수 없다. 시장전체주의로 타락한 신자유주의가 파국 직전에 이른 지금의 상황도 시장의 본질적 중요성이라는 현대적 삶의 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은 결코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며, 시장질서와 민주질서는 상호공생관계에 있는 경쟁자라 할 수 있다. 11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09 4. 허생전 과 베니스의 상인 을 경세제민의 관점에서 읽다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긴장어린 공생관계라는 맥락에서 연암 박지원 의 열하일기 (1793년) 22) 에 수록된 허생전 과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1596년)을 읽어보자는 제안은 언뜻 생뚱맞게 보일 수 있다. 하지 만 시민정신의 궤적에 대한 인식론적 지도 그리기를 겨냥해 두 텍스트 를 교차시켜 읽어보는 인문학적 비약의 방법은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고 나는 확신한다. 한국사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접근을 우회해 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학( 動 學 ), 나아가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 해 심원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고전이 각기 18세기와 16세기의 작품이지만 지금, 그리고 여기 의 우리 자신을 되돌 아보는 데도 썩 유용한 것은 물론이다. 이 시도는 특히 한국적 산업혁명 과 민주혁명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치명적 공백으 로 남아있는 것들의 정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결국 이 두 텍스트 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문제를 포괄해 그 너머를 지향하는 문명론적 지 평을 가리킨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이 방법은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시도이지만 어떻게 수행하느냐 에 따라 생산적 논쟁의 공간이 크게 확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작품 의 집필 시기는 거의 200년의 시차가 있고 문화적 배경도 매우 상이한 텍스트이지만 각각 한반도 전통문명과 유럽 전래문명의 일반적 표상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연암이 열하일기를 펴낸 때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생명력이 최후의 불꽃을 피우 던 정조 말기였고 셰익스피어의 활동무대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의 영광을 예비해가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치세였다. 연암과 셰익스 피어는 각각 당대의 조선문명과 영국문명의 성취를 문화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존재로도 독해 가능하다. 물론 세계자본주의의 선두국가였던 영국과 그런 초기 산업지본주의에 서 격절( 隔 絶 )되었던 은둔의 왕국 조선을 단순 비교하는 건 부당하다 는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동일한 시간대를 비교한 게 아니라 연암의 활동기가 셰익스피어의 그것보다 200여년 뒤라는 점 22) 원작 박지원/ 글 허경진 열하일기 (서울: 현암사, 2014년) 산업화 민주화 l 111

110 에서 조선의 불리함이 시간적으로 상쇄된 측면이 있고, 당대 영국의 자 본주의 발전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시기인데 비해 조선은 개화의 영 향을 받기 시작한 단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간극은 많이 좁혀진 다. 그럼에도 이런 가설에는 곳곳에 허점이 있을 게 분명하고 과도한 일 반화의 오류 앞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현대 한국의 시민정신 이 그 특유의 역동성과 대조되는 고유의 빈곤함을 갖게 된 사정을 들여 다보는 데 상당한 쓸모가 있다. 조선 지도층에 유일무이한 문명의 표준이었던 청나라 사행 경험을 기 록으로 남긴 책은 현재까지 조사된 것만 해도 500여 편이 넘지만 연암 의 경우는 매우 예외적이었다. 연암은 조선조 불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공리공론적 성격에 대해 통렬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는데다 전성기의 당대 청나라가 서양 각국과 교류하면서 획득한 서양적 문물자 산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당대 조선 사대부로선 가 장 국제 감각을 지녔던 인물이었으며, 그 결과 지금 읽어도 열하일기 는 흥미진진하다. 연암의 북학은 나름대로 열려진 동아시아 읽기의 산물이 었으며 이런 연암의 선진성이 셰익스피어와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측 면이 있는 것이다. 박지원은 당시 조선의 잣대로는 가장 깨인 인물 가운 데 한 사람이었으며 유학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 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사농공상의 전통적 위계구 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던 인물임을 시사한다. 하지 만 그런 연암조차도 사( 士, 양반 사대부)와 농( 農 )과는 본질적으로 상이 한 상업과 자유시장의 문명사적 의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열하일기 에서 가장 널리 읽힌 단편 허생전 에서 우리는 그 증거를 무 수히 찾을 수 있다. 남산골 샌님 허생은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돈 벌이 에 나선다. 생면부지의 남루한 선비 허생의 한 마디에 조선 제일의 부자 변씨는 만 냥을 선뜻 빌려 준다. 허생은 그 돈으로 전국 물산의 집합처 인 안성 장의 모든 과일들을 시세의 두 배를 주고 매입한다. 이윽고 제 사 지낼 과일이 전국에서 사라져 과일 값이 폭등한 결과, 허생은 열 배 의 수익을 취하게 된다. 이어 허생은 제주도로 건너가 같은 방법으로 갓 의 재료가 되는 말총을 시세의 두 배를 주고 모두 매집한 뒤 열 배 값으 로 되팔아 천문학적 거액을 취득한다. 그 후 허생은 싼 값에 쌀을 사 비 축했다가 기근이 닥친 일본 구슈 지역에 되팔아 백만 냥의 부를 쌓는다. 11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11 물론 허생전 은 답답한 조선의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 교훈적 텍 스트다. 그러나 허생이 부를 쌓는 과정은 오늘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형 적인 매점매석 행위에 불과하다. 허생의 축재 과정은 기존에 없던 새로 운 물화( 物 貨 )를 창출하는 생산적 행위이자 의미 있는 사회규범이 형성 되는 창발적 통로라기보다는 마치 로또처럼 이미 산재해 있던 부를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일확천금의 투기행위에 가깝다. 이는 허생이, 나아가 연암이, 창조적 파괴와 상상력에 의해 추동되는 인간 주체성의 정립이 갖는 의미, 근면과 정직성, 그리고 장인정신의 발휘로 작동하는 근대 경 제행위와 자유시장의 본질에 대해 의외로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암시한 다. 하지만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소유하는 화폐가 증식된다는 결론만으로 축소되진 않는다. 경제는 부의 증대라는 결론을 당연히 포함하지만 훨씬 방대한 생활연 관성으로 확대 심화된다. 자발적인 나의 노동에서 비롯된 창조성과 시행 착오의 교차가 자유시장의 경제행위를 통해 확대재생산 됨으로써 재화 ( 財 貨 )가 축적될 뿐만 아니라 근대 시민의 존재 근거인 자율성과 상호 신뢰에 근거한 계약과 법치주의의 지평으로 확장된다. 적어도 허생전 의 지평에서 바라 본 연암의 생각에 자유시장 에서 가동되는 이런 근대 경 제의 복합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연암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박제가의 북학의 도 시장경제의 본질을 이해 하기에는 역부족인 쇄말적( 瑣 末 的 )인 텍스트여서 그가 청나라에서 목격 했으나 조선에는 부재한 효율적인 여러 생활기기( 器 機 )들의 제원( 諸 元 ) 에 대한 상세한 관찰보고서의 측면이 강하다. 23) 자유시장에 입각한 근 대 경제의 본질에 대한 실학파의 인식의 불충분함은 해외 무역의 중요 성을 깨달은 박제가의 선구적 혜안조차 빛이 바래게 만들고 말았다. 예 컨대 박제가는 국가의 가장 큰 병폐가 가난에 있다고 설파하면서 그 가 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중국과 통상하는 것뿐 이라고 웅변하지 만 24) 통상과 연계된 근대경제의 복합적 의미연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베니스의 상인 의 담론구조는 허생전 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고리 대금업자 샤일록에 대한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의 표피 밑을 들여다보면 23) 박제가 지음/박정주 옮김 북학의 (서울: 서해문집, 2013년). 실학사상 전반에 대한 풍부한 槪 觀 과 심층적 텍스트 분석으로 유용한 책으로는 길이가 일천 쪽이 넘는 기세춘 실학사상 (바이북스, 2012년) 참고할 것. 박제가에 대해서는 같은 책 561~597쪽 참고. 24) 박제가, 앞의 책, 174쪽. 산업화 민주화 l 113

112 당대 유럽 최고의 자유 상업도시였던 베니스의 속살,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맹아가 성숙되어가던 영국의 사회문화적 풍토를 우회적으로 엿볼 수 있다. 중세유럽 봉건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몇몇 상업도시들을 중심으로 길드 시스템의 분업생산이 체계화되고 무역과 상거래가 성황 을 이루면서 중세 봉건질서에 대항하는 근대 부르주아지 계층이 형성된 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부를 이룬 이들 유산자 계층은 왕과 영주들에게 세금을 내는 대가로 상거래와 인신( 人 身 )의 자유를 법의 이름으로 확보 해 간다. 세계사 최장인 일천 백년간의 시민공화정을 발전시킨 베니스는 유럽 자유 상업도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순수한 도시 부르주아지들 의 상업국가였다. 25) 베니스 자체가 석호( 潟 湖 ) 위에 건설된 인공 섬이 라는 드라마틱한 현실은 유럽대륙을 지배한 중세봉건질서에서 자유로운 상업도시 베니스의 패러다임적 독자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지리적 메타 포라 할 수 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이다 는 유럽의 오래된 금언은 이 런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베니스의 상인 의 줄거리, 즉 주인공인 베니스의 거상( 巨 商 ) 안토니오 가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고 약속 기한에 갚지 못 할 경우 자신의 가슴살 1파운드를 자른다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약속이 허생전 처럼 이심전심의 묵계나 말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식 채무계 약의 차용증서로 작성되고 법질서와 공권력으로 담보될 뿐만 아니라 확 립된 사회문화적 에토스로 이해당사자들에게 널리 당연시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6) 그것은 평등한 사회관계에서 상호이익을 목표로 거래하는 쌍방의 자유로운 합의를 법이 보장하고, 그 합의를 사회문화적으로 유효 한 것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는 데다, 필요한 경우 그 시행 여부를 공동체의 질서를 관장하는 실정법이 강제하는 상 호계약이었던 셈이다. 모든 이러한 과정에서 법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가히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넓고도 깊다. 예컨대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자른다는 인육계약(the bond of flesh) 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서 구에서의 법적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근현대 민법 차원에서 위 법성이 그렇게 반인륜적인 계약을 맺은 샤일록에게 간다기보다 안토니 오를 돕기 위해 법관으로 변장한 포샤의 자의적 판결에 귀속된다는 법 25) 로저 크롤리 지음/우태영 옮김, 富 의 도시 베네치아 (서울: 다른 세상, 2012년) 26)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완역판, (셰익스피어 연 구회 옮김, 아름다운 날, 2006년), 21~144쪽. 11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13 학자들의 다수설도 흥미롭다. 우리는 물론 베니스의 상인 의 결말을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글쓰 기가 상당 부분 제국주의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려 져 있다. 27) 그러나 샤일록의 악행(?)이 정죄되는 셰익스피어의 서술 과 정이 철저히 자발적 상호계약을 토대로 하는 법적 논변 위에 기초하며, 국가기구의 법집행이 시민들의 공감대 위에 건설되어 진행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다수는 법정을 무 대로 삼거나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 셰익스피어 자신이 숱한 법적 쟁송( 爭 訟 )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28) 셰익스피어 당대에 유럽의 평균적 시민들에게 그런 법적 다툼이 일상의 항다반사였다는 사실이 셰 익스피어 작품의 대중적 인기에 의해 우회적으로 증명된다. 베니스의 상인 의 경우 그 법은 상인, 무역업자, 은행가들이 채택한 국제적 규칙과 관습의 총화로서 상관습법 이나 상사법 으로 불렸는데, 현재에는 상법 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이 베니스를 포함 한 지중해 연안 도시 뿐만 아니라 16세기 영국에서도 일상적으로 수용 되었다는 사실이다. 29) 셰익스피어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허구적 장치들 을 동원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평등한 사회 구성원 상호간에 합의 된 계약법의 지엄함이라는 베니스의, 나아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회문화적 인식과 제도의 틀이다. 왕이나 바티칸조차도 그 계약법의 권 위를 함부로 허물 수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궁극적으로 그러한 법의 아 래에 있었다. 30) 최고 지배층조차 법체계의 위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대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유럽의 역사는 사실 그런 상호계약에 근거한 법을 도시의 평범한 시민들이 당대의 지배층에게까지 관철해나 간 역사이기도 했다.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유럽 중세의 이미지는 근대 계몽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과장된 측면이 크다.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봉건체제의 기득권층을 압박해 들어가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단체로 울려 퍼진 후 사회적 합의로 격상되어 계약법으로 성문화되는 27) 박홍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서울:청어람 미디어. 2005년), 60쪽. 28) 박홍규, 앞의 책, 60쪽. 29) 리처드 폴로 지음/유향란 옮김,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서울: 오브제, 2013년), 226쪽. 30) 한동일 지음, 유럽법의 기원 (서울: 문예림, 2012년) 산업화 민주화 l 115

114 과정은 곧 중세 盛 期 (11~13세기) 유럽대륙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관찰 되는 다양한 코뮌 운동에 의해 증명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적 코뮌 운동과 시민의 탄생은 분리 불가능하다. 31) 시민의 형성과 도시의 번성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도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 32)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숙한 공중적 시민의 활동무대인 공론 장에 대한 하버마스의 선구적 연구는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 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근대의 시민적 자유의 원천이 되는 재산권의 불 가침성은 이데올로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변적 명제가 아니라 치열한 사회경제적 요구가 날카롭게 맞부딪히는 현실적 갈등 해소과정에서 어 렵사리 창출된 것이다. 세계의 여러 문명 가운데서 계약법이 지닌 이런 자발적 상호구속성과 보편적 규범능력이 법체계의 대종인 보통법으로 착근되는 데 대한 일반 민중의 공감대는 유럽 문명에서 특징적으로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왕과 영주 같은 세속의 통치자조차 법의 아래에 있다는 유럽사회의 확신은 매 우 강력한 것이어서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의 절대성을 신앙의 이름으로 어느 정도 견제한 인도와 이슬람 문명과 비교해도 유럽문명에서 법이 차 지하는 독자적 특성이 도드라진다. 33) 유럽의 특성에 대한 논의가 쉽게 서양의 우월함에 대한 논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진 술이 유럽중심주의 또는 옥시덴탈리즘의 혐의를 받는 건 불가피하다. 동 시에 유럽중심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비록 정당하긴 하지만 옥시 덴탈리즘과 서구 식민주의의 연계성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명백한 역 사적 사실을 인식하는 걸 꺼려한다면 또 다른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법의 지배라는 원칙에 예외가 없으며 법이 오히려 인간존재를 자유롭 게 한다는 법치주의의 보편화와 일상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유럽문명과 가장 대극적 위치에 있는 건 이슬람과 인도문명이라기보다는 중국문명 이라 할 수 있다. 반만년 중국의 역사에서 통치자는 법 위에 있기 마련 이었으며 법이란 통치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경우 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이데올로기인 유교 경전 상에서 어떤 미사여귀로 분식( 扮 飾 )되었다 해도 역대 중국문명의 내용적 통치원리였 31) 크누트 슐츠 지음/박흥식 옮김, 중세 유럽의 코뮌 운동과 시민의 형성 (서울: 길, 2013) 32) 앙리 피렌느 지음/강일휴 옮김, 중세 유럽의 도시 (서울: 신서원, 1997년) 33) 프란시스 후쿠야마 지음/함규진 옮김, 정치질서의 기원 (서울: 웅진, 2012년) 11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15 던 법가가 말하는 법 정신과 법 실천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법치 주의의 대명제, 즉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는 근본 지향과는 매우 다 르다. 현대 중국에서도 이런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이는 장차 현 대 중국문명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나는 본다.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이 법치를 앞세 워 부패세력을 정화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지금의 상황은 중국 역사의 과도기적 상황을 예증한다. 현대에 들어서기 전 한반도의 역사와 조선문명 에서도 법과 관련된 실 제 사회상황은 중국과 대동소이했으며 비슷한 생활문법이 장기 지속되 었다. 현대와 중세를 평면 비교하는 건 물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법치 주의를 국가이념의 토대로 삼았다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조차 법원과 검찰은 특권계급화 되어 있으며 지배계급을 비롯한 힘 있는 자들이 법 의 보편적 강제력을 비웃기 일쑤인 관행은 현대 한국인의 생활세계조차 과거의 아비투스 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증명한다. 예컨대 대통령과 재벌, 국회의원과 법조권력 같은 이른바 사회지도층은 보통사람들과 나 란히 법 앞에 평등하기는커녕 마치 법 위에 서 있는 존재인 것처럼 보 인다. 대한항공 상속녀의 초법적 행태가 화산 같은 공분을 야기했던 것도 장 기간 온존되어 온 이런 부당한 관습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임계 점에 이르러 한꺼번에 폭발한 경우일 것이다. 그것은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빈곤함이라는 모순적 복합성을 한꺼번에 증명하는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허생전 과 베니스의 상인 을 동원한 나의 가설은 앞서 인정했듯이 곳곳 에 논리의 비약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징후적 독해가 현대 한 국인의 잠재의식과 우리 사회의 실상을 돌아보는데도 상당한 쓸모가 있다 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전래 문명, 특히 조선왕조는 근원적으로 사농공상 의 직업체계에서 공업과 상업이 빈약하거나 거의 결락된 문명이었다. 유교적 국가 이데올로기의 명분아래 공식적으로 상업을 불온시한 중국 문명에서조차 안정된 천하대치( 天 下 大 治 ) 시기의 경제생활에서 상업이 번성했던 것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34) 유가적 명분과는 달리 중국인의 34) D.H. 퍼킨스 지음/양필승 옮김, 중국경제사: 1368~1968 (서울: 신서원, 1997)와 리보중 지음/이화승 옮김, 중국 경제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 (서울: 책세상, 2006). 산업화 민주화 l 117

116 실용주의는 이미 사마천의 사기 끝 부분이 화식열전( 貨 殖 列 傳 ) 인 데서도 예증된다. 상업을 포함한 경제활동의 중요성이 예( 禮 )와 도( 道 ) 를 근거지우는 토대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을 사마천은 이미 그 어려운 시기에 유가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진했던 것이다. 35) 일본문명의 경우는 메이지 유신 이전 봉건시대에 이미 각 지역 번( 藩 ) 들이 경쟁적으로 상업을 장려하였고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임진왜란 이후 열도를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이 야만국가 왜( 倭 ) 에 대한 조선 인의 평균적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경제적 부요( 富 饒 )와 물산의 풍부함을 목격하고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여행기를 여럿 남길 정도였다. 도덕과 문화를 알지 못하는 무도( 無 道 )한 나라로만 알고 있었던 왜 열도에서 조선통신사 일행이 목도한 깨끗한 시가지와 화려한 도시풍경은 한국 선비들에게 착잡함과 우월감이 교차 하는 곤혹스러움 을 선사했다. 36)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당대 유럽 문화예술계를 강 타한 일본풍( 日 本 風, 야포니즘)은 에도 시대의 이런 상공업 번성과 밀접 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줄곧 상업을 국가이념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정책차원에서도 억누름으로써 잉여자산의 확대재생산 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만성적 저생산 상태에 있었다. 허생전 의 박지원 조차 이런 조선사회에 대해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서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진다 고 서술할 정도였다. 숨 막히는 전통사회에서 독자적 발언권을 지닌 상인계층이 출현해 기득권층에 도전하는 자생적 사회제도로 상승 해갈 여지가 매우 희박했음은 물론이다. 번성하는 상업이 중상국가를 만들고 전통적인 바자르식 장마당이 국민 경제로 변환되는 근대화와 산업화 혁명을 자발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사 회에서 시민정신의 뿌리는 상대적으로 척박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35) 이화승 지음, 상인이야기: 인의와 실리를 쫓아 천하를 밟은 중국 상인사 (서울: 행성, 2013) 36) 이는 우리 선조들의 여행기를 모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엮어 펴낸 조선사람의 세계여 행 (서울:글항아리, 2011년) 제3장인 착잡함과 우월함의 교차, 열두번의 사행길 의 표현 이다. 같은 책, 87쪽. 조선통신사에 대한 학술 연구로는 강재언 지음 조선통신사의 일본견 문록 (서울: 한길사, 2005)과 박화진 외 에도 공간 속의 일본통신사 (서울:한울사, 2010) 참고. 조선인이 남긴 일본 사행록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것은 영조 때인 1763~1764 년에 걸쳐 이루어진 제 11차 사행에서 서기( 書 記 )로 참가한 원중거( 元 重 擧 )가 남긴 승사록 ( 乘 槎 錄 )이다. 승사록의 번역본은 조선 후기 지식인, 일본과 만나다 (서울:소명출판, 2006 년) 참조. 원중거는 또한 일본에 대한 종합 관찰보고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화국지( 和 國 志 ) 도 남겼다. 화국지의 번역본은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일본을 기록하다 (서울:소명출판, 2006년). 승사록과 화국지 둘 다 500~600쪽에 이르는 대저( 大 著 )이다. 11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17 으로부터 거의 일천년 이전부터 상업활동을 기반으로 보통 사람들이 콤 뮨(자치도시)의 자유와 인권을 쟁취해가면서 법치주의와 시민정신의 탑 을 차근차근 쌓아온 유럽과, 길게 잡아 일백년에서 최소 반세기 미만의 시민적 삶을 체험한 한반도의 현실이 서로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유럽 도시들의 시민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학적 구조와 한국 도시들의 그것이 매우 상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는 우리네 시민윤리가 보통사람의 생활세계에서 견고한 정신사적 토대를 갖기가 그만큼 어려웠음을 의미한다. 이는 서양 추수주의적 진술이 아니 라 객관적 사실에 대한 건조한 언명에 불과하다. 이런 사회에서 법이 인민의 자유와 권리의 최후 보루이기는커녕 지배 계급의 통치수단으로 타자화되어 보통사람들에게 경원시되는 경향이 있 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터이다. 경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 벌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시민윤리와 동행하는 경세제민의 복 합행위라는 문명론적 지평도 그만큼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윤리와 합리성이 만들어지는 공간은 오랜 시간과 거대한 집합적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허세 부리고 甲 질 하는 졸부는 어느 문명, 어느 사회 에나 있지만 자본주의의 역사가 일천한데다 시민정신의 축적과정을 생략 한 우리 사회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데는 이런 정신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사회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외형적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신뢰 라는 사회적 자본이 매우 취약한 근본적 이유도 그 대종은 여기서 비롯 된다고 나는 본다. 사회적 신뢰의 근본이 합리적 교환과 정직한 상거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고 전통 시대 우리 네 삶의 현장에서도 정직성과 사회적 신뢰는 윤리적 덕목 리스트의 상 위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멜표류기 에서도 조선인들이 궁핍한 가운데서 인정은 많으나 거짓말 하는 것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관찰이 등장한다. 거짓말쟁이 라는 호칭이 갖는 공적 부담과 책임이 서양과 한국사회에서 매우 다르다는 문화인류학적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근대 시민의 존재 규범이 근대적 경제행위와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갖는다는 추가적 가설로 연결된다. 근대 시장경제의 제도화와 생활화와 결합했던 사회적 신뢰의 미숙함은 현대에 들어서 현대적 시장질서의 왜곡과 결을 같이하면서 확대 재생산된 다. 천민자본주의의 행태는 천민적 생활형태를 낳고 둘은 상호악순환 된다. 산업화 민주화 l 119

118 그 결과의 하나가 전형적인 저신뢰 사회의 출현이다.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37) 에 의하면 한국에서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의 질문에 그렇다 고 답한 사람은 2010년 26%였 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뢰수준이 1982년 38%, 1990년 34%, 1996년 30%, 2000년 27%에서 2010년에는 26%까지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사 실이다. 이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 기업들은 규 모의 차이만 다를 뿐 거의 모두 1인 지배의 주식회사다. 구미사회의 경 우에는 여러 사람이 유한책임을 지는 주주로서 경영에 동참하는 공동 경영의 합자회사가 매우 많은데, 이런 차이는 상당 부분 한국사회의 만 성적 신뢰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나 법원, 검찰과 청와 대 등의 공공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삼성과 현대 같은 회사에 대한 신 뢰보다 훨씬 낮은 것도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고 신뢰 사회에 비해 엄청난 부가 비용을 치르게 만든다. 시민정신의 태동과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 지만 지금부터는 직업윤리와 시민윤리의 상관성을 겨냥해서 논의를 더 진전시켜 보기로 하자. 근대를 규정하는 신분에서 계약으로의 전환 과 정에서 근대적 직업이 시민정신의 형성에 기여한 바는 참으로 막대하다 고 할 수 있다. 근대 직업이 가정경제 유지나 생산력 증대의 차원에 머 물지 않고 사회적 책임감과 역사의식 획득의 통로로 기능하면서 급속히 공적 성격을 추가해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업( 生 業 )과 직 업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생업의 사전적 의미는 살기 위해 하는 일 인데, 말뜻이 보여주는 것처럼 선택의 여지 가 없이 부과된 일을 하는 것 의 느낌이 강하다. 반면에 직업은 먹고 살 기 위해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생업과 같지만 일하는 사람의 자율적 선 택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생업과 차별화된다. 직업과 생업의 범주적 구별 이 이미 근대적 직업의 공공적 성격을 내포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일반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산업화 이전의 신분제 전통사회에서 직업과 생업은 다르지 않았다. 양반은 양반으로 태어나 살고 농민의 자식은 농 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정 신분에 특정한 종류의 일이 자 연스럽게 귀속되었으므로 왕조교체나 전쟁 등의 혼란기가 아니라면 전 통사회에서의 직업은 곧 생업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이웃 중국이나 37) 미국 미시간대가 5년마다 조사해 발표함. 12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19 일본의 역사와 비교해도 사회적 이동성이 그리 크지 않았던 한반도 전 통농업사회에서의 삶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출생 신분에 의해 생업이 규정되고, 그런 생업으로 산출하는 미미한 잉여자산 조차 관리들에 의해 대부분 합법의 탈을 쓰고 수탈되기 일쑤일 때 기층 민중의 차원에서 법과 법이 대표하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충성심 이 생겨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조선왕조 시대 외침과 전란의 시기에 농민과 노비 같은 하층 민중들의 상당수가 유가의 논리 에 배치되는 부역( 附 逆 )의 길을 간 까닭을 무겁게 새겨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착근한 뒤 직업과 연관된 사회적 풍경은 일변한 다.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이전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직업의 숫자가 폭증하고 직역이 분화되기 시작한다.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에게 이런 획기적 변화가 삶의 현장에서 실감나기 시작한 것이 대략 1970년 대 이후의 사정으로 짐작된다. 보통사람들 대부분이 현대적 의미의 직업 인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반 성취한 유일한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한국적 삶의 현장에서 는 근대적 직업인의 일반화 현상으로 번역가능하다. 한 인간이 자발적으 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타인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공공의식을 계발하며,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아 를 실현하는 근본 거소( 居 所 )인 근 현대적 의미의 직업사회의 출현이 갖 는 혁명적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실학을 예비한 북학파의 일원이었음에도 연암 박지원은 근대적 의미의 경제행위에 내재된 합리성과 윤리성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암에게 상업의 존재 이유란 아마도 풍부한 물산을 생산해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정도가 인식의 최대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허생전 의 말미에 허생이 쌓은 거부를 가지고 낙도에 농업 이상향을 건설하는 것도 이를 암시한다. 결국 연암의 인식체계에서 상업과 공업은 사대부가 나라를 다 스리는 통치체제를 보완하는 치부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특히 상업을 추동하는 자발성이 근대적 인간의 윤리적 토대인 도덕적 법적 자 율성의 기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세 인의 한계에 머물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조선문명의 가치관과 잠재의식에서 상인은 장사치에 지나지 않았고 공인( 工 人 )은 산업화 민주화 l 121

120 공돌이 에 불과한 천한 것들 인데, 성공적인 한국판 산업혁명으로 상황 이 180도 역전된 21세기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잠재의식에서는 과연 어 떠한가? 현대 한국사회가 재벌공화국이라 불릴 정도인데다 돈이 모든 것 이라는 물신주의적 가치관이 시대정신 비슷하게 수용되면서 몇 년 전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이 가장 인기 있는 새해 인사로 통용된 적이 있을 정도이므로 상업에 대한 편견은 영영 사라진 것일까? 현대 한국의 산업 혁명을 가능케 한 생산력 창출의 주요 분야가 공업이므로 공업전문가들 이 그에 비례한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사농공상의 위계적 인식체계가 종언을 고한 것일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나의 대답은 일단 회의적이거나 유보 적이다. 한국자본주의를 묘사할 때 천민자본주의라 칭하는 사례가 예증 하듯이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 다. 경제행위 본연의 창발성 및 합리성과, 재화창출의 결과로 애소화한 부가 거의 완전히 분리된 채 따로 노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철학사상 차원의 도저한 명분론과는 관계없이 한국인의 가치관과 행복의식에서 현세에서의 부귀영화가 삶의 최대 목표로 여겨져 왔으며 그런 현상이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현실과 긴밀히 조 응한다. 38) 이 때 부귀영화의 알파와 오메가는 나와 우리 가족이 현세에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 을 지칭한다. 상업의 입체성과 복합성이 건전한 시민정신을 동반해왔던 것과는 대조 적으로 시민윤리를 배제해버린 부의 나상( 裸 像 )에 대한 즉물적 추구만 이 횡행할 때 상업이 사회문화적으로 존중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바 로 21세기 한국의 압도적 현실이다. 국가 지도부에서 이공계 전문가의 비율이 매우 낮다는 통계도 한국인의 삶에서 사농공상의 위계서열이 아 직 완전히 불식되지 못했다는 하나의 증거일 터이다. 세계기능대회에서 우승하는 마이스터급 장인들이 과거에 비해 숫자가 부쩍 많아진 사정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일하는 회사와 공장의 울타리를 벗어나 汎 사회적 인정의 대상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현대 한국인은 여전히 중세적 사농공상의 가치관과 봉건적 직업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1세 기에 진입한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지배계층에 편입되는 지름길은 여전 히 현대적인 사대부의 길이다. 현대판 신분제도의 축소판인 대학입시제 38) 최정호 기복사상과 현대사회, 발전과 행복: 한국행동과학연구소 한국미래학회 제3회 학제간 학술포럼, 2014년). 12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21 도에서는 자연계보다 인문계가 상대적으로 선호되어 왔는데, 학생과 학 부모들이 인문학적 가치 를 존중해서가 아님을 한국인은 직관적으로 이 해한다. 법대에 가서 고시 패스해 판검사가 되거나 고급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직도 출세 의 첩경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정치가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과 인적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조계, 경제계, 언론계, 체육계, 예능계, 교육계 등 대부분의 직역에서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경력의 정점에서 정치 진입을 꿈꾼다. 무에서 유를 이 룬 신화적 재벌 총수들조차 정치에 투신한다. 장사치의 주홍글씨를 넘어 입신( 立 身 )하는 궁극의 길은 대통령이 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한 시대를 풍미한 멘토 도 전격적으로 대권 가도에 뛰어드는 풍경을 우리는 이미 목도한 바 있다. 서울대를 위시한 유수 대학의 총장 출신들 도 이름뿐인 총리 자리를 물리치기는커녕 자신과 가문의 광영( 光 榮 )으 로 받아들인다. 대선 때마다 수백 수천 여명의 교수와 지식인들이 유력 주자 캠프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한 몫 잡으려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 는 것도 유사한 사회문화적 맥락의 산물이다. 거버넌스의 시대에 민관이 협동해야 한다고 정부 관리들은 입버릇처럼 되뇌지만 공무원들의 행태에서 여전히 관은 갑이고 민은 을에 불과하다. 이는 일제 식민지 시절과 현대 한국의 발전국가 모델에서 정부가 과대 국가의 권한을 독점해 온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고급관료들의 심층 무의식에는 아직도 사대부 의식이 깊이 자리한다. 시민사회가 이토록 강 성해진 87년 체제의 한국사회에서도 시민사회의 힘과 매력지수는 관료 국가의 그것과 결코 대등하지 않다. 한국 시민운동의 전설적 지도자조차 도 단번에 정치의 블랙홀로 흡수해버릴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하다. 결국 한국에서 모든 길은 정치로 통한다. 조선문명에서 소수의 사대부들이 정 치를 독점하고 다수의 민중을 국가적 의사결정 과정의 바깥으로 밀어내 던 문명의 심층구조가, 여야 직업정치인들이 민의와 유리된 채 제도화된 과잉권력을 행사하는 현대 한국정치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면 지나친 표현일까? 역사는 진화하지만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의 논 리구조와 집단무의식은 의외로 완강히 지속되기도 한다. 민주다원사회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매우 단원 적( 單 元 的 )이다. 무릇 인재라면 출세 해야 하고 출세의 종착점은 벼슬 산업화 민주화 l 123

122 하는 것이며 정치에 있다고 운위된다. 직업 정치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긍정적 기여를 한다는 대중의 인식이 거의 부재함에도 수많은 훌 륭한 인재들이 꾸역꾸역 정치로 모여든다. 이런 의식과 무의식이 광범위 하게 퍼져있는 사회에서는 정치 영역의 이상 비대화와 소용돌이의 정 치 가 불가피하다. 현대 정당정치로 포장된 한국정치가 중세적 당쟁에 매몰되는 것에는 여러 현실적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 분석한 지배적 사회문화소( 素 )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몸 을 써서 일하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아주 낮 은 것도 비슷한 맥락의 소산이다. 노동자 란 명칭 자체가 멸칭( 蔑 稱 ) 비 슷하게 통용되는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회에 서 무노동 무임금 을 제안해 임무에 태만한 국회의원들을 압박했더니 국회의원들이 우리가 노동자냐 며 반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히 그들이 특권을 포기하길 거부해서라기보다 나랏일 하는 자신들은 결코 노동하는 자 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상업과 공업이 가치관의 위계 에서 현저히 열등한 처우를 받는 사회에서 진정으로 평등하고 다원적인 집단 심성( 心 性 )이 창출되기란 쉽지 않다. 나아가 전통적 농업사회에서 농자천하지대본 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합창되었음에도 지배층이 상징적 의례를 제외하고는 직접 농업노동에 종사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농업 상업 공업을 불문하고 몸을 써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아랫것들 의 몫이 고, 철학과 시문( 詩 文 )으로 포장한 권력투쟁으로 점철된 국사( 國 事 )야말 로 사대부들의 배타적 임무였기 때문이다. 당쟁에 가까운 여야의 격렬한 다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 제도정치권은 결정적인 지점에서 현대 적으로 변형된 사대부적 이해관계와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 인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모든 직업은 다 신성하고 평등하다 고 교과서적으 로 회자된다. 물론 인류의 역사현실은 교과서와 크게 다르다. 그러나 직 업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차별적이다 라는 사실을 한국인들보다 더 냉정하게 생활화한 경우도 드문 것으로 판단된 다. 우리 사회의 학벌 문제와 입시경쟁이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과열되 는 배경도 근원적으로 직업의 문제로 귀속된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 성 공한 삶을 살 수 있다 고 한국인은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입시제도의 변천사가 큰 것만 해도 수 십 차례 있었지만 입시경쟁 12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23 과 관련된 상황이 나빠지기만 하는 근본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대 학입시는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이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획득과 연계된 계급갈등으로 수렴되는 구조이므로 원천적으로 경쟁이 완화되기 어렵다. 이런 근인( 根 因 )을 짚지 않는 입시제도 개혁정책은 모두 언 발에 오줌 누는 격 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갖는 직업이란 어느 사회에서도 극히 희소할 수밖에 없는 터에 한국에서는 이 세 가지 자원이 비대칭적으로 정치권 력과 고위 관직에 집중되어있는 연유로 한국적 정치과잉 현상은 부단히 확대 재생산된다. 정치를 해서 현실적으로 얻는 게 별로 없다면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정치로 투신할 까닭이 없다. 정치와 공직이 갖는 이 런 막강한 위상이 공공을 위한다는 그 활동을 손쉽게 사사화( 私 事 化 )의 유혹에 빠트린다. 자고로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 한다. 돈과 권력, 명예를 결합해 삼위일체화한 현실의 권력보다 더 강력 한 유혹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과 선원들의 직업윤리 부재를 해운사 사주의 탐 욕과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논리의 결과로 분석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호소력이 있지만 그만큼 안이한 설명방식이기도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선장과 선원들이 임시직이 아니라 연안 해운업계 평균 수준의 처우가 보장되었다면 그들의 행태가 그토록 엉망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진단도 일정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비루한 행태는 전래의 사회적 상 호인정체계에서 어업 해운업 종사자들을 무지막지하게 비하해 온 관행 (이른바 뱃놈 이라는 명명의 방식)의 파괴적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세월호는 다양한 현상적 진단의 저 아래 버티고 있는 심층적 차원에서 한국적 직업윤리와 연결된 시민정신의 실 상에 대한 한 편의 비극적인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수 천 수 만 가지의 현대 직업이 서로 경쟁하고 분화하는 와중에서도 극소수의 직업이 사회적 인정을 독차지한 채 돈 권력 명예 등의 희소자 원을 독점하고 있다면 건강하고 성숙한 직업윤리와 시민윤리의 생성은 요원하다. 따라서 정치를 비롯한 공직에 너무나 많은 희소자원이 집중된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마땅하다. 돈과 권력, 명예가 한 군데 로 집중되는 사회적 메카니즘을 단호히 끊어내야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출발이 가능할 것이다. 돈, 권력, 명예에 대한 추구는 각각 자신의 영역 산업화 민주화 l 125

124 안에 머무르도록 민주적으로 통제되면서 사회적 감시 앞에 개방되어야 한다. 정치와 고위 관직( 官 職 )의 탈신화화야말로 한국사회가 한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한 필수적 초동 조치일 수밖에 없다. 끝이 뾰쪽한 피라미드형 위계구조를 허리가 불룩한 항아리형 구조로 바꾸는 건 소득 모형의 민주적 평등화에서만 요구되는 과업은 아니다. 직업의 위계구조를 항아리형 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균등한 소득분배와 긴밀히 연동되는 것과 동시에 독자적인 사회문화적 함의를 갖는다. 이것 이 지금까지 내가 집중적으로 점검해 보려한 대목이었으며 나름의 문명 사적 조망을 동반하기도 한 작업이었다. 한국적 가치관의 통폐 가운데 하나는 몸과 머리의 과도한 이분법이며 몸의 노동과 마음의 노동을 갈 라 몸의 노동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장구한 문화적 편견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전통적 조선문명에서 유교가 남긴 거대한 어둠의 발자취라 할 만 하다. 이런 맥락에서 장인( 匠 人 )의 현대적 중요성이 재조명되어야 마 땅하다. 타율적으로 주어졌다는 의미에서의 생업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 의 결과로서의 직업에 장인정신(craftsmanship)이 구현될 수 있는 사회 가 좋은 사회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각 직역에서 장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사회문화 적으로 중시하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유럽문명의 전통은 매우 시사적이 다. 우리와 특수한 애증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장인정신에 대한 사회적 승인의 정도가 매우 높은 예로서 일본문명도 빠트릴 수 없을 터이다. 앞 서 논의했듯 중세 유럽과 일본 둘 다 근대적 자유시장경제가 본격화되 기 이전 중세 때 이미 상업이 융성하고 독자적 상인윤리가 깊이 뿌리내 린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우리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일 본문명에 대한 서양의 평가가 매우 높은 데는 이런 문화적 배경이 한 몫을 담당해 왔다고 나는 본다. 세월호 참사 는 좋은 학교-좋은 직업-성공한 인생 이라는 단선( 單 線 ) 가치관의 구도를 다원화할 수 있는 집합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기존 구도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우리 모두의 실천으로 그것에 균 열을 내는 작업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섬광처럼 깨닫 게 되었다.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폭로한 기득권층의 총체적 무능과 책임회피 앞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이 진짜 좋은 직업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가 12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25 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사람들이 공공연히 질문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세월호 이후 한국인들은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집단 개안( 開 眼 )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 화와 민주화의 이중혁명이 과연 무엇을 위한 가치이며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문제의식은 정확히 이런 맥락에서 제시되었다. 5. 민주질서와 공론장 우리 모두가 대중사회인 현대에 이미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살고 있 다는 명제는 공론장에 대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며 귀착지이다. 하지 만 이 명제는 성찰적 시민사회론의 관점에서는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이 름 없는 다중으로 여겨져 온 무력한 대중이 독자적인 자신의 이름을 갖 는 공중적 시민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해 갈 수 있는 역동성과 가능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승에의 가능성은 추락의 위험성과 분 리될 수 없다. 우여곡절로 가득 찬 한국 현대사의 만화경은 이 점을 뚜 렷이 보여 준다. 대중과 공중의 변증법을 시현하는 최대 사례 가운데 하 나가 바로 2008년 촛불 이다. 미국산 수입쇠고기의 (인간)광우병 촉발 문제로 발화되어 대대적인 거리의 정치로 폭발한 촛불에는 성숙한 민주 시민의 자기표현과 정치적 주체형성이라는 빛의 차원과, 음모론의 선전 선동에 휘둘린 우중( 愚 衆 )적 대중의 대두라는 어두움의 차원이 한 동전 의 양면처럼 모순적으로 교차한다. 공중적 시민과 우중적 대중의 모순적 혼재 현상의 핵심은 이 두 가지 차원이 칼처럼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는 데 있다. 일반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시민의 공중적 차원을 극대화하고 우중적 측 면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훈련 무대이자 토론의 장( 場 )이 공론장으로 정 의된다. 모더니티의 특징이 국가와 시민사회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 가라는 공적 권위의 영역과 시민사회라는 사적 영역 사이에 독립적인 공론장이 형성되기 시작함으로써 두 영역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9) 따라서 공론장은 개인의 사생활 차원을 넘어서 사회화된 사람들 사이의 실천적 행위와 소통관계를 지칭한다. 근대 민주 주의 정치질서 구성에 공론장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음은 물론이다. 39) J. Habermas,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An Inquiry into a Category of Bourgeois Society (Cambridge: The MIT Press, 1989). 산업화 민주화 l 127

126 내가 보기에 근대 공론장의 혁신성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 나는 그 발화주체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는 공론장 의 소통구조가 쌍방향적이고 다면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공론장의 성격이 정치적으로 전화하면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그 독자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이제 부르주아 계급이 공론장에 적극 참 여함으로써 근대 국가의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의 한 주체로서 당당히 서게 된다. 이런 부르주아 공론장은 영국에서는 17세기 후반, 프랑스에 서는 18세기, 독일에서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은 곧 근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질서의 확립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공론장 연구는 앞서 논의된 중세 유럽 코 뮌 운동과 자유상업도시의 형성사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 정치적 공론장의 정립과, 대의제의 성립 법치주의 입헌국가 정당 의 태동 등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이 중세 자치도시와 시민의 형성이라 는 모태를 근원적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다. 어쨌든 개인의 자연권, 보통 선거권, 삼권분립에 의한 권력의 제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은 모두 공론장의 통로를 통해서 차근차근 확보될 수 있었다. 공론장과 공론장적 생활세계를 제도적 기반으로 삼는 하버마스의 담론 이론은 시민정신의 지평을 확대 심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정치적 참여와 의사결정과정의 민주화가 보다 나은 논증과 이성적 설득으로 평 결되는 성찰적 담론(소통적 행위)에서 정식화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 론장의 지평도 아렌트의 정치적인 것의 이념이나 자유민주주의 정치이 론의 세련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후기 롤즈의 작업보다 확장된다. 이것 은 자유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서 왜소화된 공화주의적 입헌정치가 강조 하는 풀뿌리 참여정치의 활력이 아렌트나 롤즈의 논의보다 하버마스의 담론이론에서 더 효과적으로 확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담론이 론의 성격이 공론장의 경계를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행위 유형에 참가 하는 모든 이들에게 원론적으로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집착 하는 말과 행동을 공유하는 폴리스의 엘리트적 위상과 공적 영역의 제 한적 성격이 무너지면서 자유민주주의적 공론장도 급진적으로 확대될 수 있게 된다. 하버마스 자신은 이 논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비판적 공론장의 원칙적 개방성은 부르주아 공론장과 경합적 공존관계에 있는 프롤레타리아 공론장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해서도 상도하게 만든다. 12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27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궁극적 동일성을 원칙으로 하는 민 주주의의 이상은 정치철학의 영원한 규범적 요청이지만 그것이 논리적 으로 극단화될 때 국가와 시민사회가 설 자리가 사라진다. 역으로, 정치 공동체의 통합성과 통일성을 전제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중우정치와 선 동정치의 위험 앞에 곧 바로 노출되어 자신의 존재 근거를 침식하기 마 련이다. 디지털 혁명의 가장 큰 정치적 가능성으로서 상찬되는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철학적 한계도 바로 이 부분에서 발견된다. 민주적 참여 없이 획득되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통합도 공허하고 정치적 존재인 인 간의 실천적 직관에 위배되며 민주주의의 이상에 反 한다는 교훈을 부인 하기 어렵다. 공론장의 지평이 극적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이 디지털 혁명 의 주된 의의 가운데 하나이다.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고 광범위한 디지털 혁명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여러 자료가 증명한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8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80.6% 로서 세계 최초로 80%를 넘어섰다. 2008년도 가구 당 컴퓨터 보유율도 80.9%로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2007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조사에서도 한국의 가구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금은 그 흐름이 훨씬 가속화 전면화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 다. 인구비율로 세계 최고수준인 네티즌들이 정치에 접근하는 방식의 변 화는 현실권력의 지형을 크게 바꾼다. 2008년 촛불도 기존의 운동정치 적 시각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한국적 전자민주주의와 이-폴리틱스의 폭발에 크게 힘입었다. 한국의 국가관료 기구나 정당들의 변화가 이런 이-폴리틱스의 흐름에 의해 일정 부분 강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민주정치의 지표인 공공성과 연결된 공론장의 또 다른 구조변화를 전자민주주의가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이론적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자공론장을 고전적 공론장의 대체공간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자공론장이 때로 현실공론장의 일면성을 경고하면서 대의민주제의 빈 터를 메우는 역할 을 하지만, 논의의 섬세함과 차분함에서 상대적 약세를 피하기 쉽지 않 은 전자공론장이 현실공론장 일각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재생산하거나 감성적 파편화의 길을 가고 있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40) 40)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로는 백선기, 정치담론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북스, 2003년), 319쪽 참조. 산업화 민주화 l 129

128 이른바 대중과 공중의 이분법이 전자공론장의 특성에 힘입어 확대 재 생산되는 것이다. 전자공론장의 이런 양면성은 고유의 정치철학적 난점 도 드러내는 바, 가장 심각한 도전은 다음과 같은 문제로 압축된다. 전 자민주주의가 형상화시킬 디지털 정치의 원형이 온라인 직접민주주의로 구체화될 때 중요한 국가현안을 국민이 직접 심의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공공의 이익)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여론) 사이의 자동적 일치를 전제하므로 그 자체 소박한 입론이거나 매우 위험한 정치적 결과를 초 래할 수 있다. 제도화된 전자공론장을 통해 항시적으로 작동하는 국민투표와 국민발 의를 거쳐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면 대의제가 더 이상 필 요치 않게 되며 상설여론조사 기관만 남게 된다. 41) 그 결과 국정수행과 여론조사는 투명하게 일치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아렌트적인 복수성( 複 數 性 )의 원칙과, 현대정치에서 결 코 삭제될 수 없는 우연성과 다원주의의 大 전제를 위협한다. 존 스튜어 트 밀이 그렇게 우려했던 다수의 전제 를 상설화시킬 개연성이 있는 것 이다. 42) 정치를 온라인 국민투표로 환원시켜도 된다는 생각에는 정치주 체 가운데 특정한 국가 현안에 대해 장기간 지속적으로 공감하면서 충 성을 바치는 다수의 시민이 존재한다는 낙관론이 자리한다. 그러나 우리 가 지금까지 논의해 온 한국사회에서의 시민정신의 빈곤함과 왜곡의 가 능성은 이런 낙관론에 심각한 그늘을 드리운다. 공론장과 전자공론장의 상호관계와 그 관계에서 잉태되는 시민적 존재의 중의성( 重 義 性 )은 성 숙한 공중적 시민이 지향해야 할 장소인 공화사회의 위상을 한층 복합 적인 것으로 만든다. 개인 자유의 과잉이나 공동체의 과소가 문제가 아니라 원자화한 개체 와 미성숙한 공동체가 엉겨 붙어 이성적 주체의 출현과 사회의 합리화 가 지체되는 형국이 한국 현실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공론장과 전자 공론장의 구조변화가 시민정신과 연결되는 방식도 이에 비례해 복잡다 기해진다.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 가운데 하나 41) 테드 할스테드-마이클 린드 공저, 정치의 미래 (바다, 2001), 151쪽 참조. 원저는 T. Halstead & M. Lind, The Radical Center : The Future of Politics, ) J. S. Mill, On Liberty and Other Writings, ed. S. Collini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8쪽. 13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29 는 바로 성찰적이면서도 책임 있는 주체의 등장, 즉 건전한 시민정신의 형성에 있다. 공동체적 가치를 포용하면서도 개체의 중요성을 앞세우고, 좋음의 중요성을 시인하면서도 옳음의 정립이 선결하는 것을 수용하는 시민적 주체의 형성이 현대 한국사회의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시민적 주체가 성숙한 시민정신의 소산임은 물론이며 그 역도 참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세월호 같은 대형 재난사건에서 시민정신이 전격적으 로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생활세계의 일상 에 뿌리내리지 않을 때 그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공동체 의식의 고 양과 확대에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은 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장기지속성 과 현실적합성을 확보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바로 제도와 이념의 복합 체로서의 시민정신의 문제인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과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의식이 옅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마디로 현대 한국은 원심력이 구심력을 압도하는 사회인 셈이다. 나아가 한국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갈등과 대립, 분 열과 적대, 분노와 폭력의 근저에는 시민들이 더불어 가는 공화사회의 부재가 자리한다. 따라서 분열과 갈등, 분노와 폭력을 완화시키는 왕도 ( 王 道 )는 명실상부한 공화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다. 6. 산업화와 민주화 그 너머~ 공화사회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공화사회 형성의 도정에서 핵심적 가치가 공공성 의 구현이다. 공공성의 실천은 민주적으로 변용된 선공후사의 공적 이성 을 엘리트 계층이 솔선수범하고 전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해 상호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참여와 훈련의 과정이 선순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구한 시간과 끈질긴 집합적 노력을 요구되는 사회적 과정이다. 더불어 조화롭게 의 미명아래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것도 공화사회의 필수 조건이다. 민주 시민들 스스로 정당한 것으로 동 의한 법질서 속에서 누리는 책임 있는 자유는 공화사회의 진면목이다. 자유와 법치가 공존하는 나라에 대해 시민들이 자부심과 애국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외부세계와 내부의 비주류 시민에 대해 서도 열려있고 관용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자발적인 나라사랑은 공화사 산업화 민주화 l 131

130 회의 시민정신에 부속되는 非 지배(non-domination)의 중핵이다. 공화사회의 미래는 자유로운 한국시민들의 실천에 달려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현재적 미래에 부응하는 집합적 실천임과 동시에 동북아와 세 계시민사회의 평화와 공존에 봉사한다. 43) 경제적으로 양극화되어 있고 사회정치적으로 찢겨져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통합 처방전이 바로 공화 사회인 것이다. 나아가 공화사회는 한반도의 남북을 정치철학적으로 아 우를 수 있는 미래지향형 통일의 이념적 틀로 승화될 수도 있다. 민주적 리더십과 주체적인 폴로우어십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질 때 공화사회가 가까워진다. 공공성으로 무장한 소통과 통합의 정치 리더십, 그리고 그 것과 수평적으로 어우러진 시민적 폴로우어십(followership)이 창출해내 는 역동성 속의 안정이야말로 좋은 나라의 핵심인 것이다. 공화사회의 원리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것이 정의 공정 공평의 원칙이 다. 여기서 정의, 공정성(fairness), 공평성(equity) 개념의 위상을 명확 히 할 필요가 있다. 일상언어의 문맥에서는 더욱 그렇거니와 학문 공동 체 안에서도 이들이 혼란스럽게 혼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의>공정>공평의 순서대로 그 외연과 내포에서 축차 적 위계관계를 갖는다고 본다. 롤스가 공정성으로서의 정의 를 정초한 이래 공정과 정의 개념이 거의 치환 가능하게 통용되지만 원래 정의는 공정성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롤스의 정의 개념을 복기( 復 碁 )해보면 금방 파악되는 사실이다. 공정성의 이념에 모 두 담겨지지는 않는 정의의 복합적 입체적 차원이 엄존한다. 나아가 공정과 공평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규정 가능하다. 공평은 사 회적 재화의 분배를 향한 경쟁의 출발과 과정이 투명하고(숨김없이 드 러낼 公 ), 균등해야 함(평평할 平 )을 뜻하며 산술적 비례에 가깝다. 이 에 비해 공정은 기회균등( 公 平 )에 더해 합당한 결과적 격차의 차이를 담아내야 정의에 더 가까워진다( 公 正 )는 개념이다. 너무 지나친 결과의 차이는 불공정한 것이지만 기여와 능력의 차이를 무시해 결과를 같게 하는 기계적 균등성도 공정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 로 공정은 동등함과 차이를 함께 담아냄으로써 공평보다 상위에 서는 43) 이런 시각에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국가이성 개념을 비교해 현대 한일관계 와 동아 아의 미래를 조망하는 글로는 졸고 헤겔과 마루야마 마사오로 본 국가이성, 정치, 역사, 한국일어일문학회 2014년 추계 국제학술심포지엄 13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1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공정성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경쟁의 출발점과 과정에 있어서의 공평이야말로 한국사회 진화의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 이다. 공평성이 부재한 공정성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으며 공정성이 결 여된 공평성도 일차원적이거나 일방적이다. 거시적 차원에서 공화사회로 나아가야 할 한국사회의 주요과제 두 가지는 첫째, 사회적 경쟁의 출발 과 과정에 있어서의 공평성 확보이며 둘째, 합당한 격차의 인정과 사회 적 약자 보호로 담보되는 공정성의 수립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성과 정 의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학문적 탐침( 探 針 ) 작업은 우리 지식인 사회 에서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조차 않았다. 나는 그 가능성의 일단을 대한 민국 헌법과의 연계에서 천착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공동체의 궁극적 목표가 정의 실현에 있고 그 목표의 최고법적 표현이 헌법이라는 사실 을 감안하면 정의 공정 공평과 헌법의 삼투관계는 심중히 주목되어야 마 땅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적으로 민주공화국 (제1조 1항)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제4조)를 천명한다. 정치 이념적으로 민 주주의, 공화정, 자유주의가 혼재하는 것이다. 세 이념은 인류보편사의 과정에서 상호 침투와 접합의 과정을 거쳤지만 이들의 역사적 연원과 지향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세 이념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토대로 해서 포스트 분단시대의 헌법에 대한 탐구와 통일시대의 정치철학에 대한 고 구( 考 究 )가 풍성하게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44) 정의와 공정성의 이 념이 민주주의, 공화정, 자유주의를 21세기적으로 통섭하고 차별화시키 는 화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정의와 공정성 개념이 헌법의 사회경제 조항과 접 맥될 여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 (제119조 1항)한다. 우리 정치공동체의 최고 법규범인 헌 법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 공정사회의 첫 부분 인 공평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우리 헌법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 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음 (제 ) 졸저 급진 자유주의 정치철학 제7장 국가와 헌법의 정치철학 참조. 산업화 민주화 l 133

132 조 2항)을 분명히 한다. 공정성의 사회경제적 지평을 환기시키는 대목이 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서도 국가는 패자부활전을 확립해야하고 사회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적 의무를 진다. 공화사회는 대한민국 헌 법질서와 부합하며 선진국의 규범적 표준이자 근본 가치인 정의론의 지 향과도 일치한다. 무릇 정의롭지 않은 국가는 제대로 된 국가라 할 수 없다는 교훈은 인류의 오래 된 직관이다. 불공정한 사회는 건강한 시민정신의 형성을 가로 막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불공정 사회에서 안개처럼 피어나는 르상티망이 성숙한 시민정신 의 토대를 근저에서부터 파괴한다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공화 사회는 한국사회를 도약케 할 무형의 가치이자 사회운영의 원리이며 공 동체적 삶의 질서일 게 분명하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도 오늘 의 우리 사회처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탈감과 중압 감을 호소하는 사회가 좋은 나라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시민적 우정과 신뢰대신 적의와 불신이 넘치는 나라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이기는 어렵다. 불공정한 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정신이 싹트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의 80%에 이르는 시민들이 한국사회가 불공정 사회라고 응답하고 있으나 역대 정부는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불공정은 스스로 미생 임을 뼈저리게 느끼 는 보통사람들의 분노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분노보다 훨씬 악성의 르 상티망을 양산한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원래 철학자 니체의 용 어로서 사회적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심과 승자에 대한 패자의 시기 심을 가리킨다. 45) 승자와 강자의 성취를 패자와 약자가 마음속으로는 인정치 않는 원망( 怨 望 )의 뜻도 담고 있다.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정신 적으로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약자의 자기정당화가 르상티망의 밑바 탕에 깔려있다. 기독교 문명에 대한 니체의 총체적 냉소를 인간성의 보 편적 그늘에 대한 사회존재론적 통찰로 읽는 것이 가능함은 물론이다. 배가 고픈 것보다 배가 아픈 것을 더 참기 어려워하는 사람들 마음속 의 비밀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이러한 마음의 악마성을 조금씩은 지니고 있다. 개인의 차원에 그칠 때 인격의 문제로 축소될 수도 있는 르상티망이 적절히 제어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45) F. Nietzsche, On the Genealogy of Morals, Second Essay, Sections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3 확산되고 집단무의식의 심층영역으로까지 번질 때 그것은 사회심리와 정치문화의 문제로 비화된다. 한국은 르상티망을 억제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조장하는 사회인가? 시 기심이 한 인격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르상티망의 사회적 만연은 시민정신의 빈곤과 국격( 國 格 )의 실체를 폭로한다. 잘 나가는 사람 발목 잡고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는 것 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문 제로 확대된다. 그 결과 갈등과 불신이 무한 재생산되는 것이다. 예컨대 인사철이나 선거철에는 각종 무기명 투서와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인사 때 마다 국정의 중심인 청와대는 고위관직 후보자들에 대한 음해성 투 서의 홍수로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행태는 민간기업과 지방 관공서에서도 全 방위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사정기관 관계 자에 의하면 인사철에 쏟아지는 투서는 대부분 허위로 판명되지만 그럴 듯한 내용을 담고 있기 일쑤여서 거명된 당사자와 조직 전체에 큰 상처 를 남긴다고 한다. 어떤 조직에서나 좋은 자리는 희소하므로 위로 올라 갈수록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인간사의 법칙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문제 는 경쟁자를 끌어내리려는 권력게임이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 해코지 로 비화하는 데 있다. 그 결과 만인이 만인에 대해 적이 되는 풍토가 조 성된다. 이를 입증하는 통계가 있다. 2007년 이후 무고 사건이 폭증하 고 있는데, 무고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숫자가 2007년에 819 명, 2008년에 1144명이었다. 참고로 몇 년 전 일본 전체에서 무고죄로 기소된 숫자가 그해 한 해에 총 2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전반적인 고소 고발 건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 지역경찰청 2003년 자료에 의하면 4만여 건의 고소사건 중 22%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불기소나 기소유예 되었지만 고소인들은 그런 경우에도 항고나 재항고로 끝까지 물고 늘어 진다고 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방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위한 목 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검찰에 접수된 고소나 고발의 95%는 주변의 가 까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으로 추산된다. 참고로 2004년도 국 가별 총 고소 사건은 한국이 60만건 이상, 일본은 1만여 건이었다. 양국 의 총 인구 수를 감안하면 한국사회의 고소 숫자가 비교가 어려울 정도 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산업화 민주화 l 135

134 르상티망의 문화에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고소 고발 투서에 사회적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내부비리 고발은 부정부패를 막고 사회 투명성을 높이기도 한다. 무기명 투서 자체가 사회적 약자에게 불가피한 저항수단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르상티망의 심리가 창조적으로 전환될 때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는 평등의식을 동 반할 수 있다. 질투가 좋은 의미의 경쟁을 촉발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민족사의 재앙이었지만 봉건적 계급사회의 잔재를 일소함 으로써 한국 시민들에게 동일한 출발점에서의 무한 경주를 가능하게 만 들었다. 그 결과 한반도의 오랜 유산인 헝그리 사회 를 한 세대 만에 넘 어선 한국적 산업혁명의 동력이 확보되고 모두가 남들처럼 동등하게 대 접받고 싶다는 한국적 민주혁명의 계기가 점화되었다. 하지만 질투와 원망의 사회적 만연은 전 국민이 항상적 불만족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 를 고착시킨다. 46)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털 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 인간성의 보편적 약점에다 한국적 르상티망 이 가세한 우리사회는 언제나 과열상태이다. 그 단적인 증거가 위에 제 시된 통계자료인 것이다. 르상티망의 심리가 이웃인 일본에서는 상대적 으로 통제되는데 비해 한국사회에서는 적절히 제어되지 않는 이유는 과 연 무엇 때문일까? IT 강국, 한국 의 인터넷 상에 창궐하는 악성 댓글 문화에도 르상티망의 그림자가 짙다. 한국인에게 널리 퍼져있는 르상티 망은 정의롭지 못한 정치, 극심한 경쟁과 양극화, 불공정한 경제사회적 관행, 미래에 대한 불안 등과 상호 연계되어 21세기 한국사회를 분노 스 트레스 피로 울분 혈기( 血 氣 )의 분출이 가득한 거대 울혈사회 로 만든 다. 47)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울혈사회의 폭력성을 시사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흥업의 全 방위적 팽창이나 갈 데 까지 가는 특유의 술 문화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국적 울혈사 회와 피로사회의 또 다른 단면일 것이다. 하지만 르상티망의 최대 문제 는 그것이 건강한 시민정신을 파괴하고 성숙한 주체형성을 가로막는 암 종( 癌 腫 )에 가까운 사회문화적 만성질환이라는 사실에 있다. 르상티망은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남 탓하기 의 관행을 정당화하는 사회심리적 기 46) 헝그리 사회 에서 앵그리 사회 로의 이행이라는 멋진 레토릭으로 현대사를 조망한 사회학자는 서울대의 전상인 교수다. 47) 연세대학교의 정치학자 박명림 교수가 필자와의 잡지 대담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13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5 제이다. 그것은 치유가 어려운 불신과 갈등을 전파하는 사회적 전염병의 숙주( 宿 主 )에 다름 아니다. 한국인의 습관적 남 탓하기는 우리 사회의 진화를 저해하는 치명적 장 애물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존재로 가는 길을 가로 막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기는커녕 불특정 다수인 남이나 사회, 그 리고 국가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한국인에게 또 다른 마음의 습관 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한 의미심장한 자료가 있다. 2014년 10월 9 일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 서치센터는 44개국 4만 86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회와 불평등에 대한 태도 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 성공은 외 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는 항목이 특히 흥미롭다. 이 질문에 그렇다 고 답한 한국인이 74%, 선진국 그룹의 평균 응답률은 51%였다. 성공의 원인이 내 안에 있지 않고 나의 바깥에 있다고 보는 한국인의 일반적 성향을 웅변하는 조사 결과다. 인생에서 앞서가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가 항목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오로지 한국인만이, 성공하는 데 있어 적절한 사람과 알고 지내는 것 (39%)이 근면(34%)과 교육(30%)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다 른 43개국 시민 모두 교육과 근면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주체적 이고 자발적인 요인을 더 중시한 것이다. 꽌시( 關 係 ) 로 유명한 중국인 조차 성공의 관건을 근면(27%)>교육(18%)> 적절한 사람과 알고 지 내는 것 (12%) 순서로 답했다. 이는 한국인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는 여론조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성공을 설명할 때조차 바깥 요인을 중시 하는 터에 자신의 부정이나 실패의 책임을 바깥에 돌리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그만큼 비주체적이다. 자기 일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과 나라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 하다. 내 탓이오 의 목소리는 드물어도 남 탓, 국가 탓 은 넘쳐나는 것 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네 삶의 지평에서 사람들은 끈끈하게 이어져서 실존한다. 강력하 고 효율적이었던 발전 국가적 근대화가 심대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과거 의 농촌 공동체적인 생산양식과 생활 세계적 관습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집단주의적인 한국인의 행태는 변용된 형태로 온존되어왔다. 자기정체성 을 홀로 정초하고 확인하는 사회문화적 훈련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 은 특징적으로 지연 학연 혈연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호명 받는다. 산업화 민주화 l 137

136 한국 정치의 병폐인 지역감정의 문제,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인 학벌의 계급화 현상, 수많은 부정부패의 모태 역할을 하는 온정주의적 집단주의 등은 우리네 삶의 원형적 실체에 해당된다. 연줄로부터 자유로 운 개인이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 실체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가족주의나 변용된 형태의 가족주의적 집단주의는 우리 사회에서의 법치주의의 무력화 현상과 연관해서 더 논의할 가치가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이 역설하는 것처럼 공동체에 대한 주체의 귀속감은 의 미 있는 삶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배경이며 공동선의 한 원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근원적 귀속의 장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가족이거나, 변형 되고 확대된 의사( 擬 似 )가족(회사나 이익집단, 공동체, 조직, 종교기관, 향우회, 동창회 등)이다.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소속집단의 성원으 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확인하고 자기가 속한 조직의 이익을 무엇 보다 앞세우며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의사가족은 가족의 사회 심리학적 확대판이다. 가족이나 의사가족은 급격한 압축성장이 초래한 총체적 아노미의 현실에서 우리를 지켜 주는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맡 아왔고 지연 학연 같은 집단주의 기제의 매개 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주의 의사 가족주의는 자기집단의 이 익이나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감과 의리 를 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합 리적 규범과 법질서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내 부비리 고발자가 우리 문화에서 환영받기는커녕 변절자 취급을 받는 이 유도 이런 사회문화적 습속에 기인한다. 우리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도 의사 가족주의의 횡포가 법의 지배를 압도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부과된 규범이나 집합적 규약에 의해 정해진 절차조차 제멋대로 무시하는 이익집단들의 제몫 찾기가 빈발하는 현상도, 사회경 제적 원인을 일단 배제하고 문화적 차원으로 논의를 제한하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의 충실성이라는 좋음 ( 善 )의 목표가 보편적 절차합리성 의 준수라는 옳음 의 원칙을 무력화시키는 데 주된 원인이 있다. 개인이 실체로서 착근된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과, 급격한 산업화로 전 래의 공동체정신이 공동화( 空 洞 化 )된 공동체 사이의 모순적 결합이 현 대 한국사회의 실체에 가깝다. 그 결과가 시민정신의 척박함이자 왜곡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라는 공허한 순환논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실천적 관점에서의 선택이 불가피한 13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7 지점에 우리 사회가 도달했다고 나는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현재 한국사회의 진화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시민정신의 철 학적 토대인 주체의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정신의 기초인 주체성을 갉아먹는 르상티망에 대항하는 내적 힘을 길러야 우리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시민정신의 창건은 곧 시민적 주체의 형성이자 시민 교육을 의미한다. 교육을 포괄한 시민교육에서의 핵심적 통찰은 시민의 덕목이 놀면서 얻어지기는커녕 단련과 노력 끝에 비로소 획득되는 귀한 자질과 소양이 라는 점이다. 교육의 본질이 노동을 통한 자기도야에 있다고 할 때 노동 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끊임없는 훈련과 땀 흘림, 하고 싶고 놀고 싶지 만 참는 금욕, 스스로를 가다듬는 절제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어린 아이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다.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로 타락할 수도 있는 극단의 가능성 앞에 열려진 과정적 존재인 것이다. 아이들 하 고 싶은 대로 놔둘 때 스스로 최대한의 발전을 이끌어 내리라는 기대는 소망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놀기 좋아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것을 기피한다. 바꿔 말하면 노는 건 달콤하고 쉬운데 반해 노 력은 쓰디 쓸 뿐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자라나는 아동의 경우 노동은 곧 공부를 뜻한다. 물론 이 때 공부는 현대 한국어에서처럼 국영수 중심의 교과 공부만으로 왜소화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 功 夫 )라는 말 자체가 중국 무술을 총칭하는 쿵푸를 뜻하 기도 하지만 원래 의미는 땀 흘려 닦는 기예( 技 藝 )를 지칭한다. 교육의 본질이 노동을 통한 자기형성이라는 우리의 주장과 상통한다. 자연과 대 비되는 문화의 라틴어 어원이 경작하다 인 것과 비교해 음미할 가치가 있다. 그냥 있는 것, 또는 스스로 그러한 것 인 자연과는 달리 뜨거운 햇볕아래 땀 흘려 씨 뿌리고 잡초를 뽑는 힘겨운 노동 끝에 비로소 얻 는 것이 바로 문화이자 교양으로서의 시민정신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부, 문화, 교양이 학교나 제도교육으로 제한되지 않고 삶과 사회 의 전체 국면을 포함하는 시민교육으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다. 이런 의미의 노동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몫을 지나치게 저평가하거나 너무 안이하게 처리하는 데 현대 진보주의 교육론의 맹점이 있다. 이러한 생각을 현실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즉 보통사람의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는 시민적 덕목의 집적( 集 積 )과 산업화 민주화 l 139

138 구조화가 곧 시민윤리의 정수인 것이다. 현대인의 마음은 고독한 인격수 양으로 닦아지지 않는다. 개인 차원의 도덕수련으로 고매한 인품을 획득 하는 경우는 큰 사회적 함의를 갖지 못한다. 사회적 문법으로 확장 가능 한 개인의 미덕만이 시민정신의 이름에 값하기 때문이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는 식의 감성적 한탄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민적 자유와 공동체의 통합이 유기적 조화를 이루는 곳 이 곧 공화사회이고 건전한 시민정신은 공화사회로 가는 거의 유일한 지름길임을 우리는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의식, 자유와 자율성, 권리와 의무의 일체성 실천하기, 평등의식, 법치와 민주질서의 생활화,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장인정신, 약자 배려, 나(우리)와 다른 것 을 관용하고 인정하기, 합리적 애국심, 정치 공동체의 최고준거로서의 공정과 공평에 대한 일상에서의 헌신, 자연 앞 에서의 겸허함, 사랑과 환대의 세계보편주의 등은 모두 현대 세계에서의 성숙한 시민정신의 구체적 사례 들일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가족의 사 밀성( 私 密 性 )을 보장하고, 국내 시민사회와 전지구적 시민사회의 확고한 정신적 기반을 이루며, 국가와 세계사회의 여러 제도들에까지 그 영향력 이 침투되는 시민윤리의 구체적 덕목들이다. 하지만 시민정신이 각 시대 와 문명에서 구현되는 방식과 양태는 일반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다종 다양할 것이 분명하다. 다시 직업윤리와 시민정신의 상관성으로 돌아가 보자. 직업은 나 자신 과 가족을 부양 가능케 하는 수입을 제공하며, 나의 노동으로써 공동체 에 기여하고, 그렇게 사회적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아를 실 현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직업을 바라보는 눈은 경제적 수입과 권력획득이라는 잣대로 과도히 편향되어 있었다. 수입과 권위는 직업 선택에서 물론 중요한 사안이지만 이 한 가지로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쏠릴 때 직업윤리가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경제행위가 이윤창출로 제한되지 않는 독자적 윤리성 과 합리성을 지닌다 는 명제도 공동체에 대한 기여와 시민윤리의 배양과 연계된 직업의 또 다른 의미에서 주로 창출된다. 물론 그 수준의 수입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건 사람과 사회에 따라 매 우 다를 수 있지만 만약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 수준의 수입이 확보 14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39 된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일과 삶에 자족하 는 것이다. 르상티망과 남에 대한 관심 비교의식이 유독 강한 한국사회 에서 안분지족( 安 分 知 足 )보다 희귀한 것도 드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이 현실로 닥쳐오는 사회에서 일 할 수 있다 는 사실 자체 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도 나름대로 소중하다. 나아가 자신의 일에 대 한 자족감이 현실에 대한 안주( 安 住 )로 퇴행하지 않게끔 자계( 自 戒 )하 는 습관이 필수적이다. 어떤 일에 자족하면서 자계하게 되면 이윽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자족하면서 자계하여 잘 할 수 있게 된 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행복감이다. 일 자체에 대한 몰입에서 나오는 행복감은 자기 충족적이어서 세상의 인정과 돈의 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 롭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족과 자계의 사이클이 만드는 고유의 뛰어남 (arete)은 모든 직업윤리와 성숙한 시민정신의 핵심이다. 그 뛰어남과 자족감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중심이야말로 오늘의 한국인에게 가장 필 요한 삶의 준칙이자 시민정신의 기반이 아닐 수 없다. 시민정신의 본령은 우리 스스로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로 수렴된다. 사회 지도층이 공적 의무를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지당 한 요구이며 공화사회를 지향하는 것도 공동체적 존재인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우리 스스로가 시민의 한 사람 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개인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모 든 창대한 것의 출발점이다. 자신과 관련된 공적인 일에서 사회에 먼저 책임을 돌리거나 남 탓만을 하는 것은 시민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시민 정신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 공화사회의 의젓한 주체라는 명징한 인식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결국 산업화와 민주 화, 선진화와 통일 등 그 어떤 것도 정치공동체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 다. 시장질서와 민주질서의 변증법은 평범한 시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로 우며 성숙한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바로 그것이 광복 100주년을 준비하는 공화사회의 구체화일 터이다. 산업화 민주화 l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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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토론 1 강규형(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 산업화 민주화 l 143

142 14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43 토론 2 성한용(한겨레 선임기자) 우리나라 현대사를 산업화의 측면과 민주화의 측면에서 제각각 설명하 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기간을 산업화 세력 집권기간으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 통령 재임기간을 민주화 세력 집권기간으로 규정하고, 우리나라 현대사 를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과 화해의 과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를 산업화 민주화 담론 이라고 지칭해 보기로 한다. 산업화 민주화 담론 이전에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주장과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민주화 주장이 시기에 따라 차례차례 출현했을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장기집권과 1972년 유신체제로의 변환이 근대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 이 후의 대통령들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과 특히 유신체제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물론이고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까지도 박정희 정권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전면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대통 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부 터 영남 지역,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화해를 시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런 시도는 자신의 취약한 집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한다 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위이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99년 7월 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또 자신의 최측근인 권 노갑 전 의원이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도록 했다. 이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5월 경북도청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지역인사 32명 산업화 민주화 l 145

144 과 비공식 만찬을 하면서 박정희 기념사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6 25 이후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 어 넣어 주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71년 대선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중이 좀 더 크기는 했지만 우리 두 사람은 한국정치의 양축을 이뤄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마음이 흡족할 것 이다. 오늘의 이 일이 국민화합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민주주의를 우선시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를 우선시했는 데 지금 생각해 보면 두 가지를 병행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이의근 경북지사는 근대화의 상징은 박정희, 민주화의 상 징은 김대중 이라고 화답했다. 오늘날 산업화 민주화 담론의 예고편인 셈이다. 산업화 민주화 담론을 누가 만들었는지 따져보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 든 산업화, 민주화 담론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고 대한민국 현 대사를 설명하는데 유익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화, 민주화 담론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빠지게 되는 오류의 가능성에 대 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 민주화 담론은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 단계를 거쳐 이제 선진화로 가야 한다는 정반합의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필연 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나치게 대립적인 개념으로 상정하는 잘못 을 저지를 수 있다. 세계사를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대립과 갈등으로 단순화해 설명할 경우 부닥치게 되는 곤혹스러움을 산업화 민주화 담론 도 맞닥뜨릴 수 있다고 본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국가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어느 한 가지 기준으 로 평가하고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민주화가 배제된 산업화는 존재할 수 없고 산업화를 배제한 민주화도 존재할 수 없다. 이승만, 박 정희 시대에도 민주화는 진행되었고,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도 산업화는 14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45 진행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에도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시에 진행되 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김대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면,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 것 인지 궁금하다. 또 박정희 정권에서 있었던 7.4 남북공동성명, 의료보험 제도 도입 등 매우 의미있는 통일과 복지 관련 정책을 설명하기도 어려 워진다. 산업화 민주화 담론은 특히 세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박정희 전두환 집권기에 벌어진 국민들의 생명권과 기본권 탄압 의 역사를 산업화를 위해 불가피했다 는 식으로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 다는 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유신헌법으로 도입된 유신체제는 어떤 이유로도 탄생하지 말았어야 하는 체제다. 둘째, 민주화를 추구하면 산업화를 할 수 없다거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웠던 사람들은 무능해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잘못 된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은 그 이전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절과 비교해 별 차이가 없 었다. 경제성장률도 그 뒤에 출현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비해 훨씬 더 높았다. 셋째,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어느 한쪽에 속한 정치인들이 상대 방을 악마화해서 자신의 존립기반을 강화하는 적대적 공존 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런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새누리당과 새정치 민 주연합 일부 의원들 사이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보수 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를 설명한 것은 매우 부적 절했다고 본다. 김무성 대표는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대한민 국뿐이다. 지금이 5000년 민족 역사의 최고 중흥기라고 본다. 진보와 좌파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죽었다 고 하는데 여러분은 동의하 시느냐.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 산업화 민주화 l 147

146 정이다. 우리 새누리당이 진보 좌파가 준동 못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걸 공고 히 하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더욱 선거에 이기는 것이다. 이승만을 대한 민국의 국부로 봐야 한다. 만약 대한민국이 좌파들의 주장대로 사회주의 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김무성 대표는 산업화, 민주화 담론보다 훨씬 치명적인 우파-좌파, 보 수-진보의 이분법으로 대한민국을 설명함으로써, 새누리당에 정치적으 로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진보좌파 로 매도하는 치명적 오류를 저지르 고 있다. 새정치 민주연합의 뿌리는 길게 보면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이라고 봐 야 한다. 민주당은 보수야당이었던 한민당과 자유당에서 이탈한 정치인 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새정치 민주연합의 뿌리를 1987년 창당된 평화민주당으로 봐도 마찬 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좌파가 아니다. 그는 보수야당의 보수 정치인이었다. 그를 용공 세력으로 몰아간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 희,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일부 측근들이었다. 따라서 새정치 민주연합을 비롯해 현재의 야권 전체를 진보좌파로 분류하는듯한 김무성 대표의 이 분법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매우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산업화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고 젊 은 층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화도 현재 진행형이다. 투표 참여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정당 참여율이 여전히 저조한 것은 민주화의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많은 산업화, 더많은 민주화 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선진화라고 정의한다면 그 런 의미에서는 선진화 담론에 찬성한다. 선진화 담론의 가장 중요한 내용물은 공존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다 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잘 사는 것이 바로 선진화다. 생각이 다른 사 람들을 쫓아내고 없애버리는 것은 선진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의 선진화 지수는 아직 매우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과 공화당 일부 강경세력은 칼 로브의 조언을 받아들 14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47 여 상대를 악마화하고 분노를 조직화하는 선거 전술로 집권에 성공했 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 선거전은 미국 사회를 양분시켰고 그 결과 공 화당을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빠뜨리고 말았다. 반면에 유럽은 보수와 진 보 정당의 구분이 어려워질 정도로 모든 정당이 정책정당 문제해결 정 당 으로 변화하고 정책연대와 연합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느 쪽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보수우파의 대통령이 아니고 산업화 대통령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으로, 산업화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산업화 민주화 l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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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토론 3 황성준(문화일보 논설위원) 1. 들어가는 글 해방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지난 간 역사를 뒤돌아보고, 미 래의 비전을 점검해 본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 고, 이로 인해 파생된 제반 문제점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방 향성을 제시한 윤평중 교수의 시장질서 對 민주질서의 변증법과 共 和 社 會 와 김세중 교수의 통합의 역사인식가치와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의 화 해를 향해서 는 많은 시사점과 혜안을 던져준다. 사실 두 석학의 글을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윤평중 교 수의 경우, 칼 폴라니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까지, 그리고 다시 칼 슈 미트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에 이르는, 좌우와 보수 진보를 넘나드는 거대 담론적 분석은 전공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독해 자체가 어려운 것이었 다. 또 김세중 교수의 논문도 1948년부터 짧게는 1987년까지, 길게는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종횡으로 분석하고 있어, 한국 현대사 사 실 관계에 대한 넓은 지식과 이를 들여다 볼 안목을 요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앞의 두 글을 정확하게 독해하고, 이를 통해 토론을 이끌어낸 다는 것은 필자의 역량을 뛰어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 구, 비판적 독해 (critical reading)을 시도한 것은 위 두 편의 글이 단순 히 아카데미 영역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광장 과 거리 의 담론이고 되 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그럼 학문적 시각이 아닌 기자적 관점 에서 옥의 티 를 찾아내고자 한다. 산업화 민주화 l 151

150 2. 윤평중 교수의 共 和 社 會 論 에 대한 비판적 접근 거대담론과 철학적 세밀성이 결합된 윤평중 교수의 글에 메스를 가한 다는 것은 자칫 무지 (ignorance)를 폭로하는 결과만을 낳게 될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 저자거리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항상 의혹 과 의 문 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입장에서 몇 가지 문제 제기를 시도해 보겠다. 우선 눈에 띤 사소한 팩트 확인으로 시작하겠다. 과도한 국방비 를 강 조하고 있는데, 일반 국민의 상식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7%로 분쟁국 평균인 4.7%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과거 70 80년대라면 맞지만, 21세 기에 들어온 이후 대한민국의 국방비 지출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높 은 편이 아니다. 둘째, 윤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더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에 지나치게 비관적 입장을 보이는 것 같다. 과대국가 독점자본 연합이 만성적 경제 위기의 구조적 원인 이란 지적도 일면적 분석이란 느낌을 갖게 만든다. 물론 윤 교수 자체가 비판적 입장 에서 바라보겠다고 서술하고 있긴 하 다. 그럼에도 불구, 전반적 기조는 마치 1960대와 1970년대에 일부 사 회과학계와 진보진영에서 유행하던 소련의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 기론 을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자본주의 종말론 은 19세기부터 계속 반복돼 왔다. 그러나 종말 은 오지 않았으며, 많은 예언자들은 거짓 선 지자 임이 들어났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일부 경제학계는 년 한국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했으며, 당 시 변혁 운동세력은 현실 운동 을 이론적 토대로 사용했다. 그러나 자본 주의의 생명력은 질겼으며, 위기 는 순환의 한 과정 으로 정리되는 경우 가 많았다. 2008년 금융위기 도 마찬가지다. 당시 마치 대공황이 다시 도래한 것 처럼 주장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파급이 그 정도엔 이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니 현재 다른 일부에서는 팍스 아메리카 3.0시대 를 운운하 고 있을 정도다. 자본주의 종말론적 진단 은 자칫 하루에 2번은 꼭 맞 는 고장 난 시계 를 추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우리에겐 멈춘 시 계보다는 차라리 1시간 쯤 빠르거나 느린 시계가 더 유효하다. 15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51 셋째, 내재적 분석에만 치우진 면이 없지 않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 화는 우리 내부의 동력에 의해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다.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빼더라도, 불과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북한의 존재를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는 한국 정치와 사회를 논할 수 없다. 과거 년대 진보진영은 半 國 的 사고 를 버리고 전국적 관점 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슬그머니 그런 주장이 사라지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 이란 존재를 망각한 한반도의 정치 사회 분석은 한계를 노정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지 않는다고, 혹은 보이지 않는다고 존 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엄연한 실체 다. 그리고 그 실체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 직 간접적으 로 개입 간섭해 왔다. 넷째, 조선시대 사농공상 체계의 유산으로 인한 한국 사회 가치관의 단선적 형태와 이에 따른 시민사회의 왜곡된 형태에 대한 윤 교수의 지 적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와 고위 관직의 탈신화화야말로 한국사회가 현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한 필수적 초동 조치일 수밖에 없다 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농공상 체제에 따른 士 林 중심의 물질적 기반을 5 16 이 혁파한 것이 아닌가 한다. 5 16으로 인해 한국 사농공상 체제와 이에 따른 士 林 중심 정치의 물적 토대는 붕괴됐다. 그러나 士 林 的 지배층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헤게모니는 강고했으며, 이념적 헤게모니를 갖 지 못한 신흥 軍 商 人 세력은 이들에게 다시 정치권력을 넘겨줘야 했다. 그렇기에 인재라면 출세 해야 하고 출세의 종착점은 벼슬 이라는 기형 적 구조가 재편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건전한 시민정신의 형성 에서 한국 사회가 직면 한 문제 해결의 해답을 찾고 있는데, 혹시 환원론적 오류 를 범하고 있 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또 共 和 社 會 를 주장하며, 정의 공정 공평의 가 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에 대한 개념 규정 자체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러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미 모더너티 (modernity)를 넘어 포스트 모던 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리와 도덕에 대한 기초적 합의 산업화 민주화 l 153

152 마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공선을 정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인지... 사회과학이 아닌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 神 學 으로 나아 가지 못한다면 해결될 수 없다는 논리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만약 철학 과 신학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경우, 철학자 지배의 사회 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3. 김세중 교수의 산업화 민주화 세력 화해론에 대한 문제 제기 김세중 교수의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화해론은 현 대한민국 사회의 정 치 사회 갈등 해소의 핵심을 찌르는 논지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양이 방울달기 라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해결 되지만, 과연 그렇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으며, 또 어떤 수단과 방법 으로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김 교수의 글을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산업화 세력 변호론 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948년부터 87체제 구축 시기까지의 산 업화 세력 의 오류(진짜든, 잘못 알려진 것이든)에 대해 옹호 변명하는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반면, 민주화 세력 에 대해선 필요했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둘째, 분열과 배제의 역사인식 을 극복하고 통합의 역사인식 의 관점 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역할을 재조명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필 요성과 당위성에 불구하고, 이것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지, 또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의가 부족해 보인다. 사실 두 역사인식은 근 본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서로 배제시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정치현실에서의 非 타협적 대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단순 관념 의 싸움이 아니라, 현실 정치세력의 역관계의 대립구도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담론과 토론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극히 회의적이다. 셋째, 87체제 에 대한 개념 규정이다. 87체제 는 1948년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단(?!) 완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음은 분명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은 87체제 의 발전이라기보다 15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53 는 양 세력의 대립에 의한 끊임없는 87체제의 위기 라고 생각한다. 대 통령 선거 때만 되면 재현되는 개헌 논의 가 이를 가리키는 하나의 지 표이기도 하다. 가장 기초적인 정치 문서인 헌법에 대해서조차 기본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87체제 는 하나의 과도 체제 일지도 모른다. 넷째, 앞의 윤 교수 논문평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국제정치 및 북한 변수에 대한 지적이 부족하다. 이 문제를 도외시하고 대한민국의 현대사 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정말 감히 두 석학을 비판하는 만용을 부려봤다. 학계와 떨어진 거리 의 외침 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두 가지 정도만 지적하는 것으로 결 론을 대신하겠다. 첫째, 대한민국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존재하고 있 는 외부 질서와 세력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한민국을 이해한다 는 것은 잘해야 반쪽짜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퇴행적 역사 회고가 아니기 위해선, 미래 산업구조 변화에 주목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듯, 현재 진행 중인 산업의 IT화, 그리고 곧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바이오 로봇 산업 등의 영향과 역할에 대해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변적 정치가 현실의 사회관계를 억 누르고 있긴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한국사회의 전반적 변화는 여전히 진 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민주화 l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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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토론 4 양건모(정의연대 공동대표) 광복70년 기념을 위한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의 2번째 토론 주제와 관련한 두 분의 발제 고맙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 대하 여 이전 역사까지 되돌아보며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조선시대 붕당, 산업화와 민주화세력간의 갈등, 자본과 노동의 갈등, 정당간의 분열 등 분열과 갈등이 우리나라 특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분열과 갈등이 심한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오천년의 장구한 역사에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기존 연구결과에 의하면 갈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갈등은 사회의 역동성을 강화시키고 발전에 필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갈등의 부정적인 점은 이미 많이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갈등 의 긍정적인 점에 초점을 두고 싶다. 조선시대 여러 당파의 존재는 왕 일변도의 통치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절대왕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진언을 하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집단을 형 성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세력간의 주장과 갈등 은 국정운영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민중들은 나라의 부정부패가 심하다거나, 외세의 침입으로 주권이 빼앗길 위험이 있을 때, 산업화의 명분 속에 민주주의가 심하게 훼손되었을 때 목숨을 걸고 동학혁명, 독립운동, 4.19혁명, 5.18항쟁, 1987년 민주화투쟁 등을 통해 저항에 나섰다.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 면서 중요한 시기마다 민중들이 대규모로 꾸준하게 저항해 왔던 역사를 산업화 민주화 l 157

156 지닌 나라는 흔치 않다. 서구의 시민의식의 개념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꾸준하게 이어진 대규모 민중의 저항들을 보면 우리나라 민중들의 의식 속에는 평등 과 자유 가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vs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1961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정부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산업화 경제화를 통해 가난을 극복시킨 대통령으 로 존경받을만하다는 인식이다. 부국강병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 나는 산업화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양극화의 단초인 재벌 중 심의 경제를 이끌었다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박정희정부의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50대 이하의 사람들은 박정희정 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집권한 박 정희 정부의 경우에도, 집권한 1962년부터 대통령이 김재규의 피격으로 사망하기 전인 1979년까지도 이런 저런 민주화 요구와 투쟁들은 있었 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을 바꿀 정도의 민중적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경제화 정책에 대해 많은 수의 민중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전에는 너 무도 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정희정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스코 건설, 이공계 지원 및 활성화 정책, 중화학공업 및 수출 정책들은 박정 희 정부의 성과이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치권, 관료와 같은 지도자들은 민중들이 이러한 생 각을 뛰어넘어 한발 더 앞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인 것이 다. 산업화 경제화를 위해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이 훼손될 때 중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훼 손은 헌법의 핵심가치인 삼권분립을 저해했고, 여러 사람들의 인권을 짓 밟았고, 정치권, 관료, 심지어 국민들에게도 법을 어겨도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15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57 그런데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랬겠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조차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라의 가난을 극복하고 부국강병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본인의 핵심소명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식민지 해방이후 다른 나라의 것을 참고해 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국민도 그 렇지만 대통령도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라고 전제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 해야 하는가.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평가기준이 필수적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헌법의 근본 가치인 자유, 평등, 공동체의 발전에 근거해서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예컨대, 박정 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를 통한 개인과 나라의 부를 축적시키는데 큰 기 여를 했다. 그리고 부의 축적은 결과적으로 자유의 신장을 가져오는 데 기여하였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도외시 하고 정책에 서 배제시켰다. 국민주권을 억압하고, 평등권을 침해하였다. 이는 결과적 으로 신뢰와 협력을 토대로 해야 할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등으로 말이다. 긍정적인 것은 긍정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전 대통 령의 평가를 보고 이런 점은 본받을 만하다, 이런 점은 역사에 누가 되 는구나 라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신의 평가를 강요하거 나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배제시키는 것은 생각과 사상의 자유 를 억압 하는 또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가 이루어져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vs 보수와 진보 vs 자유와 평등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의 논쟁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주장과 연결되어 있고 자유와 평등의 논의와 연결된다. 산업화는 자유의 신장 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주권재민과 연결되어 있는 민주 화는 평등 또는 사회적 형평성을 이룩하는데 필요하다. 자유와 평등은 산업화 민주화 l 159

158 서로 분리될 수도 없는 상호불가분성의 관계를 가지고 있고 같은 맥락 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역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불가분성의 관계 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익인간 의 이념이나 '인내천 사상 등을 보면 우리나라 민중들은 평 등 사상을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듯하다. 평등이나 자유의 가치가 훼손 되고 그것이 극에 달할 때, 우리 민중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저항하는 것 이 역사적으로 꾸준히 있어왔기 때문이다. 1950년 이후에도 이러한 정 신은 4.19혁명이나, 5.18민주항쟁,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집권 정당들은 이러한 민중들의 내재된 힘을 알지 못하고, 산 업화에만 집중한다거나 민주화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은 학생을 비롯한 민중의 4.19 혁명을 발생시 켰고 이는 제2공화국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화를 핵심가치 로 걸고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지만, 민주화 분위기에서 분출된 전국적 이고 각계각층에서 발생한 요구나 시위를 해결해 나갈 능력이 없었다. 결국 제2공화국은 산업화를 표방하는 박정희정부의 군사 쿠데타에 의 해 밀려났다. 민주화를 도외시한 박정희정부의 국정운영은 사회곳곳에 많은 문제점을 축적시켰다. 그리고 이전의 역사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 가지로 1987년 민중의 대대적 저항을 가져왔다. 민중들을 죽이고 집권 한 전두환 군부정부는 국민들의 경제생활을 향상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해도 집권과정 의 비정당성은 치욕적인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여 산업화를 위해 민주화를 배제시킨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에 의해 실격 당했다. 반면 민주화에 초점을 둔 제2공화국 이나 최근 진보진영의 집권은 민중들의 생활문제를 비롯해 민주화로 인 해 분출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실격 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놓고 볼 때, 경제와 자유 시장을 주장하는 보수진영이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와 사회적 평등의 핵심가치를 국정운영에 반영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복지와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진보진영이 16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59 집권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자유의 핵심가치를 국정운영에 반영시킬 필 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반영시킨다는 의미는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 두 가치를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경제문제를 추진할 때 이 내용 안에 평등의 가치를 어떻게 포함 시킬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사회적 평등과 복지정책을 추진할 때는 이 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책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동시에 추진해 야 한다. 나아가 자유와 평등의 창의적 결합이 요구된다. 현 박근혜 정부는 집 권하면서 창조적 경제 를 공약으로 제기하였다. 창조성은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창조성은 집단지성에서 나온다. 즉 경제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서는 각계각층과 해당 조직이나 기업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정 책에 반영해야 한다. 정책전문가나 일부 관료에 의해 나온 경제 아이디 어는 창조적 경제 와는 거리가 멀다. 창조적 경제 를 성공시키기 위해 서는 민주성을 내포한 창조적 경제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 을 배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여를 통해 민주성을 경제에 반 영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창조적 경제 문제를 맡 기는 것은 창조적 경제 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과 같다. 박정희 전 대 통령이 신중을 기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려고 했다는 점은 국정운 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진보진영은 민주화 및 사회적 평등을 핵심가치로 하고 있다. 민주화 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정책결정에 있어 국민의 참여를 기본으로 하 고 있다. 민주화는 제2공화국의 경험에서와 같이 각계각층의 요구를 분 출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사회적 갈등이 억눌러지지 않고 표면화된다는 것은 사회가 건강하다는 징표이다. 그런데 집권정부가 사 회적 갈등을 조정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때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동안 부정부패와 세월호와 같은 국정운영의 부실을 경험하면서 보수진영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사람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에 표를 던지지 않는 민중들이 많다. 이는 민중들이 진보 진영에 민주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가 부재 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 진보진영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진영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산업화 민주화 l 161

160 반영시키는 창조적 경제 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을 국정에 민주적으로 참여시킨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보수진영 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가 국민들에게 공감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헌법에 규정된 또 다른 중요한 가치의 하나는 공동체의 연대, 발전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 또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집중되어 있었다. 자유와 평등도 서로 각자 달려왔지만 말이다. 공동체 발전이 배제되다보니, 주변 사람이 어떻게 되든 개인이 잘살면 되는 사회가 조장되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또는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번 돈으로 백화점에 가서 하루에 수천만 원 을 물 쓰듯 모습이 방송국 드라마에 자랑스럽게 그리고 버젓이 나온다. 평등의 가치를 심각하게 헤치는 일인데도 말이다. 한편, 똑 같은 일을 하고도 어떤 사람은 연봉 8천~1억을 받는데, 다 른 사람은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에 비해 4~5배 적은 1500만원~3천만 원을 받는다. 사회적 평등을 위 해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라는 공동체 연대가치는 추진되어야 한다. 몇 일전 언론 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연봉은 세계 제1 위로 1억원이 넘는다. 1인당 GDP를 감안하면 서구 유럽의 국회의원들 보다 2~3배를 더 받고 우리나라 1인당 GDP의 4배이다. 국회의원의 연 봉이 1인당 GDP의 1~1.5배정도 되어야 국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더 열 심히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 평균과 비슷한 수입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조금은 더 책임감이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든다. 한편,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남들의 자유를 무시하면서 큰소리를 내거 나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 나이가 많다거나, 직위가 높다는 이 유로 무시하는 행위나, 여성(또는 부하남성)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무시 받는 행위 등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중받아야 하 는 기본적 권리들이 무시되어 왔다.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의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가치들은 등한시 되어 왔 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적 책임의식과 같이 발전된다는 사회적 공 감과 더불어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질 필 요가 있다. 16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61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약진, 세계화에 따른 무한 경쟁, 고령 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은 지난 시기 우리나라가 이룩한 급속한 경제발전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 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이 집권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우 리 민족은 숱한 어려움에서도 5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저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 등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산업화 또는 민주화와 같이 단기적인 관점도 중요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 가 치를 높이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 가치 추진할 수 있는 능력 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자유와 민주를 결합시 킨 창조적 경제 를 추진하고, 공동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산업화 민주화 l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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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8월 13일(목) 14:00~16:20 주제 3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좌장 좌승희(영남대학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발제 1 김태우(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안보통일 정론을 통한 국민대통합 발제 2 이숙종(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선진화와 통일 토론 1 염돈재(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토론 2 윤인진(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토론 3 안정식(SBS 북한전문기자) 토론 4 강철환(북한전략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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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3>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발제 1 안보통일 정론을 통한 국민대통합 김태우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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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안보통일 정론을 통한 국민대통합 김태우(동국대 석좌교수, 전 통일연구원 원장) Ⅰ. 안보통일 정론을 통한 국민대통합 1. 들어가며 스위스는 4만1천km²에 인구 800만 명을 가진 유럽의 소국이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상대적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국민은 독일 계(65%), 프랑스계(18%), 이탈리아계(10%), 로망쉬(1%)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로망 쉬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 이렇듯 스위스는 협소한 국토에 문화적 상이성을 가진 다양한 민족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공존하는 나라 이지만, 심각한 지역갈등이나 민족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민족 다언 어 다문화 국가인 스위스가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의 기저 에는 상호존중, 민주주의, 안보의식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스위스는 26개의 주(canton)로 구성된 연방국가로서 각 지역 또는 언어권이 스스 로의 특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단일국가의 정 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해왔다. 스위스 국민의 철저한 안보의식과 안보실천은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국민으로 묶어낸 원동력이었다. 스위스는 주변에 안보위 협국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상비군 운영 체제 하에서 20~26 세의 모든 남성을 현역으로 복무시키고 있으며, GDP의 0.8%를 국방비 로 사용한다. 스위스는 약 8만 명의 민방위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토전 역에 전 국민을 수용하고도 남는 30만 개가 넘는 핵대피소를 건설해 놓 았는데, 이를 위해 스위스 정부는 수십 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 아 부었다. 이렇듯 스위스가 안보를 위해 막대한 재정과 노력을 투입하 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이해집단 간 대립이나 이념갈등은 없으며, 안보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69

168 는 국민을 하나로 묶어 스위스를 일류 선진사회로 만드는 견인차가 되 어 왔다. 전형적인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도 국민대통합을 통해 다양성을 극복 한 사례다. 싱가포르 공화국은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서울 크기인 716km²의 면적에 5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국가이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개발한 소항구였지만, 1963년에는 말 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식민통치에서 벗어났고, 1965년에 말레이시 아 연방에서 퇴출당하면서 분리 독립했다. 독립당시 싱가포르는 인구 160만 명에 부존자원이 없는 가난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싱가포르 국민 은 번영을 향한 개발 을 위해 단결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민은 리콴유 총리의 개발독재와 위로부터 의 개혁 을 인용( 認 容 )하면서 경제기적을 이루어 500배 국토면적을 가 진 옛 종주국 말레이시아와 맞먹는 3,000억 달러의 GDP 규모를 자랑하 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국민소득 6만 달러에 일인당 외환보 유고 세계 1위의 경제부국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치안질서와 교육제도, 세계 3위의 정유산업, 세계 4위의 금융산업 등 다양한 자랑거 리를 보유하고 있다. 2차대전 패전 및 분단 이후 45년 만에 이루어진 독일통일 역시 안보 와 통일을 향한 국민적 합의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였다. 독일통일은 합 의통일의 외형을 갖춘 흡수통일이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붕괴 된 이후 동독은 1990년 3월 18일 최초의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독일연 맹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정부를 출범시켰고, 이 민주정부가 서독과의 화 폐 경제 사회 통합조약( ), 통일조약( ) 등을 체결하고 1990년 10월 2일 동독인민회의가 동독의 소멸을 의결함으로써 통일이 완성되었다. 이는 서독이 압도적인 경제 안보 우위를 바탕으로 꾸준하게 동독을 흡인( 吸 引 )하는 정책을 펼쳐온 결과였다. 서독 내에서도 정치세 력 간 또는 이해집단 간 동독정책을 놓고 이견과 논쟁이 있었지만, 통일 을 위해서는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꾸준하게 동독의 변화를 추동 강제 해야 한다는 기조에는 이견이 없었고, 서독의 막강한 흡인력 앞에 동독 국민은 스스로 동독의 패망을 결정하고 서독으로의 편입을 택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채 분단의 아픔까지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있 어 국민대통합은 싱가포르, 스위스, 통일 전 서독 등에 비해 훨씬 더 절 17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69 실한 과제이지만, 현실은 실망적이다.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경 제기적을 통하여 국부를 키우고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의 한국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었고, 그 결과 경제성장과 함께 지구 상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선진 일류사회로 탈바꿈한 싱가포르 와 크게 대비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경제성장, 부( 富 )의 분배, 노사문제, 세금 등 경제문제들을 둘러싸고 보혁간, 노사 간, 그리고 세대간 심각한 이념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스위스 국민이 연 방제와 민주주의라는 선진제도와 강력한 안보의식으로 통해 민족, 언어, 문화 등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성공한데 비해, 또는 서독 국민 이 정치성향, 이념성향, 세대 등의 차이를 불식하고 대동독 정책과 통일 정책에서 국민적 합의를 향유했던 사실에 비해, 한국은 단일민족, 단일 언어 그리고 단일문화를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안보, 통일, 정치, 경 제, 문화, 사회, 역사, 언론방송, 예술 등 각 분야에 보혁갈등이 파급되 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실망적인 것은 한국이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분단국 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한반도를 공 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통일문제에 있어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적어도 안보문제와 통일문제에 있어서 만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있는 한국이 이 분야에서 국민적 통합을 이 루지 못하고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국기념일이 없는 나라로 남아 있으며, 북한 군이 전쟁 발발 후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한달 만에 낙동강 이남의 영남지방을 제외한 전 국토를 점령했던 6,25 전쟁을 북침전쟁 으로 가 르치는 교사들이 강단에 서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지금부터라도 안보와 통일에 있어서의 국민대통합을 이루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여 타 분야에 있어서의 국민통합을 견인해나가야 한다. 요컨대, 안보와 통일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안보는 국가의 생존과 국민의 번영을 담보하는 지고( 至 高 )의 공공재( 公 共 財 )이며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최우선 전제조건이기에, 안보의 중 요성에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국민대통합을 위한 첫걸음이다. 통일은 한 국이 마침내 이루어내야 하는 수퍼골(super-goal)로서 이를 공감하는 1) 김태우, 통일정론과 통일궤변, 헌정 2014년 2월호 참조.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71

170 것 역시 국민대통합을 위한 또 하나의 출발점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북 한주민을 대한민국의 품안에 끌어안게 된다는 점에서 대통합의 귀결점 이다. 안보와 통일에 있어서 국민대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비전문가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비정론( 非 正 論 )들을 정리하 고 정론( 正 論 )을 확립하는 것이다. 본고는 이들 중에서 3대 비정론을 소 개하고 이를 정론으로 대체함으로써 국민대통합을 위한 단초로 삼고자 한다. 2. 남북상생( 相 生 )과 남북통일 맹자( 孟 子 )의 공손축장( 公 孫 丑 章 )에는 언유사병( 言 有 四 病 : 말 속에 들 어있는 네 가지 병) 을 통해 정론( 正 論 )이 아닌 비정론( 非 廷 論 )들을 설 명하고 있는 는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맹자는 네 가지 부류의 언병( 言 炳 )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피사( 詖 辭 ), 음사( 淫 辭 ), 사사( 邪 辭 ), 둔사( 遁 辭 ) 등이 그것이다. 詖 辭 란 속 마음을 숨겨놓고 하는 말이고, 淫 辭 는 누 군가를 모함하는 내용을 담은 말을 뜻하며, 邪 辭 는 사실과 이치에 어긋 나는 말을 의미한다. 遁 辭 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도발이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예방책 미비 만을 애써 강조하는 것은 북한정권을 두둔하고 싶은 속마음을 숨긴 詖 辭 이며, 공정하게 공과( 功 課 )를 따지지 않고 특정인의 나쁜 점만을 부각 시켜 말하면 淫 辭 가 된다 전쟁을 북침전쟁이라고 주장하거나 한국 의 인권문제가 북한의 인권문제보다 더 심각하다고 이치에 맞지 않는 邪 辭 이며, 특정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인사가 자신은 무관한 것 처럼 주장하면 遁 辭 가 된다. 맹자는 이 네 가지 言 炳 중에서 한 가지라 도 포함하는 말은 정론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안보통일과 관련하여 불필요하게 보혁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비 정론은 북한을 포용하여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통일을 앞 당기는 길이다 라는 것인데, 이는 북한정부를 자극하여 남북관계가 껄 끄러워지면 평화통일이 멀어진다 라는 주장과 동일한 논리라 할 수 있 다. 얼핏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논리에는 일반국민이 구 분해내기 어려운 邪 辭 와 淫 辭 가 내포되어 있다. 대북정책이란 한국정부가 북한을 향해 펼치는 모든 정책의 총합이며, 17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1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는 '상생'과 '북한 변화'로 압축될 수 있다. 상생( 相 生 )이라 함은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여 남북간 무력충돌과 소모적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협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남북의 국민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민생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대북정책의 중 요한 목표가 되어야 함은 매우 당연하다. 그럼에도 분단국인 한국에게는 통일이라는 수퍼골이 있기 때문에 대북정책을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한국이 추구하는 통일이란 북한이 원하는 수령독재 체제 하의 적화통일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통일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쪽으로 바뀌어야 가능한 통일이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정 책에는 '북한의 변화'라는 또 하나의 목표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리하 면, 한국의 대북정책은 상생 이라는 현실적 목표와 통일을 위한 북한의 변화 라는 이상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생 과 북한의 변화 는 통일의 그날까지 한국의 대북정책이 추구해야 할 불변 의 2대 목표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이 직면하는 불가피한 딜레마는 '상생'과 '북한 변화' 라는 두 개의 목표가 상호 상충적이라는 점이다. 무력충돌을 불식시키고 화해협력을 통해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북한정부를 인정해야 하며 북한이 고수하는 체제도 인정해야 한다. 북한정부를 대화의 파트너로 받 아들이고 경청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원도 제공하고 정상회담도 개최해야 한다. 북한정부가 북한군에 대한 지휘권을 포함한 북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북한군을 움직이는 주체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남북이 평화롭게 상생하는 길이다. 하지만, '북한의 변 화'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북한정권이 싫어하는 과제들을 수행해야 한다. 인권개선과 종교 및 언론의 자유를 촉구하고 민주화를 선도해야 하며, 북한주민에게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외부소식을 유입시켜야 한 다. 이렇듯 상충되는 두 가지의 일, 다시 말해 북한정부를 대화와 협상 의 상대방으로 존중하는 일과 그들에게 개선과 변화를 촉구하는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인 것이다. 두 목표 간 비중의 차이는 집권당과 정부의 교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두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 구해야 하는 당위성은 통일의 그날까지 달라질 수가 없다. 이것이 이 부 분에 있어서의 정론이다. 그렇다면, 상생을 중시하는 진보진영과 북한의 변화를 중시하는 보수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73

172 진영이 양패로 나누어져 서로 힐난하는 일은 없어야 마땅하다. 상생과 북한의 변화가 대북정책의 2대 목표인 이상 상생을 강조하는 진보와 북 한의 변화를 강조하는 보수는 제각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므로 상호 경청하고 존중해야 하며, 그것이 국민대통합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이 경우 진보와 보수는 통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당장 북 한과의 상생을 위해 북한정부를 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주장과 그래도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 북한정부에게 이런 저런 개혁을 촉구해야 한다 라는 주장으로 정책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며, 상대방 의 견을 백안시하지 않는 이런 논쟁은 나라를 분열시키지 않는다. 진보정부 하에서는 통일보다는 상생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대북정책을 그리고 보 수정부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통일에 두게 될 것이며, 이 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보혁갈등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진보세력 일각에서는 북한을 포용하여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유지해야 상생할 수 있다 라는 정론 대신에 북한을 포용하여 평화로운 남북관계 를 유지해야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라는 邪 辭 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상생론을 통일론으로 둔갑시키는 것인데, 이로 인한 폐해는 막중하다. 이 논리대로라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인권개선과 민주화를 촉구하 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노력하는 인사들은 북한정부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졸지에 반통일 세력 이 되어 버린다. 사실, 인권문제에 대한 올 바른 접근은 모든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이자 통일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통일의 귀결점이다.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면 주민 의 사회권과 자유권이 개선되고 민주화와 함께 언론 및 종교의 자유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민주화되어 주민의 의사에 따라 정부가 구 성되는 나라가 된다면 주민에게 고립과 궁핍을 강요하는 핵개발을 저절 로 포기하게 될 것이며, 통일을 향한 주민들의 열망도 축적될 것이다. 이렇듯 인권적 접근은 모든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알파요 오메가인데 도, 2)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북한정부가 경 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반통일 세력 으로 내모는 것이 한국에 서 벌어지는 보혁갈등의 현주소이다. 2) 김태우, 북한의 인권문제와 김정은 정권의 미래, 해병대전략연구소 세미나(2014년 10 월 22일)발표문 참조. 17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3 더욱 심각한 것은 친북종북 세력이 펼치는 淫 辭 이다. 헌법재판소의 판 결에 의해 2014년 12월 18일부로 강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는 해산을 청구한 정부를 향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의 뿌리를 뽑 아내려 한다 고 불만을 토로했었고, 말끝마다 통일 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았다.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종북토크쇼 논란을 일으킨 재미동포 신은미 씨 역시 경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언 행이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우기기를 멈추지 않았다. 2015년 3월 15일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테러공격을 감행한 김기종도 통일문화 연구소 대표 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었다. 북한 체제를 두둔하면서 그 것이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주도의 자유민주 주의 통일을 배제하고 북한이 원하는 남조선 혁명을 통한 주체통일 에 기여하는 것인데도, 이런 종류의 인사들은 늘 북한을 포용해야 평화통 일이 가능하다 라는 邪 辭 에 편승하면서도 어떤 통일인가 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들의 주장에는 국 민의 혼란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 하는 淫 辭 가 내포되어 있다. 3) 그럼에도 비전문가 국민이 이런 논리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 다. 엄밀히 말해, 대북 포용은 북한정부를 포용하는 것과 북한주민을 포 용하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북한정부를 포용하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 이 상생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북한의 집권세력을 인정해야 하고 북 한 내에서 정권과 체제의 권위 및 정통성을 고양시켜주는 것이 되므로 통일보다는 평화적 분단고착 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반대로 북한 주민을 포용한다는 것은 직접 북한주민과 접촉하거나 투 명성이 보장된 대북지원, 즉 북한주민이 지원의 제공자와 경로를 알 수 있는 대북지원을 의미하는데, 이런 종류의 화해협력은 북한주민으로 하 여금 외부세계를 배우게 하고 변화의 열망을 축적하도록 돕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와 통일의 밑거름이 된다. 북한정부가 이런 종류의 화해협력 사업을 경계하면서 투명성이 없는 대북지원, 즉 북한정부가 창구가 되어 분배권을 행사하는 대북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일 부 진조성향 정치세력이나 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북포용 은 주로 북 한정부와의 화해협력을 의미하지만 일반국민은 북한정부를 포용하는 것 3) 김태우, 從 北 이 부르는 統 一 의 노래, 조선일보 2014년 12월 24일자 칼럼 참조.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75

174 과 북한주민을 포용하는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북포용이 평화통일을 가져온다 는 주장에 내포된 邪 辭 나 淫 辭 를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에서는 서로 협력해야 할 진보와 보수가 통일 문제를 놓고 부질없는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종북주의자들은 국민의 혼 란과 무지에 편승하여 들어서 하자가 없을법한 그럴듯한 邪 辭 를 앞세워 정치적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지성인들이 앞장서서 邪 辭 와 淫 辭 를 걷어냄으로써 건전한 정책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에게는 있어 통일정책도 필요하고 상생정책도 필요하며, 한국사회에 는 통일론자도 필요하고 상생론자도 필요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이것 이 정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생을 통일 로 둔갑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생을 상생이라 부르고 통일을 통일이라 부르면서 시기와 여건에 따라 비중의 차이를 양측이 치열한 정책논쟁을 벌인다면 이는 민주국가 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며, 이런 논쟁으로 나라가 쪼개지는 일은 없다. 상 생론을 통일론으로 둔갑시키는 邪 辭 와 淫 辭 를 정리하는 것이야 말로 국 민대통합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3. 합의통일과 흡수통일 두 번째로 소개할 비정론은 합의통일은 좋고 흡수통일은 나쁘다 라는 것인데, 여기에도 통일문제와 관련한 보혁갈등을 확산시키는 邪 辭 가 내 포되어 있다. 진보 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이 논리를 통해 보수인사들을 위험한 흡수통일을 추구함으로써 합의통일 분위기를 해치는 세력 으로 비난함으로써 그리고 이에 대해 보수 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좌빨 비난 으로 맞섬으로써 갈등은 확대재생산 되어 왔다. 흡수통일 논리가 합의통일 분위기를 해친다는 비난은 합의통일은 옳은 통일목표이고 흡수통일은 틀린 목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이런 논 리는 통일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되는 邪 辭 을 내포한다. 邪 辭 의 확산으로 인하여 국민 중에는 합의통일과 흡수통일을 정반대 개 념의 상충되는 두 가지 통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이 지향하 는 모든 통일은 사실상 흡수통일이다. 통상 흡수통일 이란 북한이 스스 로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내폭( 內 爆 )이 발생하고 붕괴하여 한국이 평화 17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5 롭게 북한을 접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갑작스러운 통일을 의미하며, 합 의통일 이란 남북이 상생하다가 자연스럽게 합의에 의해 평화롭게 단일 체제로 통일되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합의통일이라는 것도 한국이 백두혈통 세습권력을 떠받드는 주체사회로 변하여 적화통일에 합의해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좋은 변화 를 지속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에 합의하는 경우를 말한다. 때문에 통 상 합의통일 이라고 하는 것도 그 결과는 북한체제의 소멸을 통한 흡수 통일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한다면 합의에 의한 점진적 흡수통일 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통일이나 흡수통일은 공히 자 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추구 를 명령한 헌법 제4조에 부합 하는 통일이다. 즉, 합의통일과 흡수통일은 정반대 개념의 통일이 아니 라 과정은 달라도 귀결점은 동일한 합헌적 통일방안들이다. 다만, 남과 북이 별개의 주권적 실체로 존재하는 현실에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여 대북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상생을 저해할 필 요가 없기 때문에 가급적 흡수 라는 표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독일통 일 과정에서도 동서독은 흡수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신 동 독이 스스로 소멸을 결의하고 서독연방 체제에 가입했다는 의미에서 가 입 또는 편입 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또한, 북한의 붕괴로 인한 흡수 를 추구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데다 상생 분위기를 해치는 측 면이 크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붕괴를 추구하기 보다는 북한이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붕괴하는 경우 평화적 흡수통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차분히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이 부분에서의 정 론은 북한의 변화를 통한 합의통일을 추구하되 예상치 못한 시점에 다 가오는 흡수통일의 기회에도 대비한다 라는 것이며, 이것이 정부의 교체 와 무관하게 통일의 그날까지 한국정부가 견지해야 할 불변의 정론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조용히 그리나 철저하게 갑작스러운 흡수통일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를 두고 합의통일 분위기를 해친다고 비난하는 것은 공연하게 보혁갈등을 조장하는 비정론일 수밖에 없다. 통 일에 반대하고 분단 상태에서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인사들이 합의통일 분위기 를 운위하면서 흡수통일 대비를 비난하는 것은 속마음을 숨긴 詖 辭 가 되며, 정말로 합의통일과 흡수통일이 정반대의 개념인 것으로 오해 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邪 辭 가 될 것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77

176 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즉 북한체제의 소멸을 전제한 것이므로 합의통일 가능성을 해친다는 사 회일각의 비난은 성립하지 않는다. 건전한 정책논의를 위해서는 노골적 으로 북한체제의 소멸을 나타내는 표현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상생을 해 칠 수 있으므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논리를 사 용해야 옳다. 통일대박론이 흡수통일을 전제한 것이어서 잘못되었다 라 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자 에게는 그렇다면 당신이 추구하는 통일은 자 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닌 적화통일인가 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이 헌법 제4조에 위배되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합의통일과 흡수통일 은 모두가 합헌적 통일방법으로서 이 부분에서의 정론은 합의통일을 추구하되 흡수통일도 대비한다 라는 것이며, 이러한 정론이 존중받는다면 이 문제를 둘러싼 정책논의가 나라를 쪼개는 이념 갈등으로 비화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흡수통일이라는 표현은 상생 분 위기를 해칠 수 있다 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는 맞는 정론이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흡수통일 언급이나 대비 작업을 자제해야 한다 고 한다 면 그 주장의 설득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정부가 통일대박 론을 거론하고 통일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에 대해 북한이 흡수통일 모략 이라고 비난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심하게 자극받을 수 있는 표현은 자제하고 흡수통일 대비는 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하 는 것이 상생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지만, 얼마나 자 제하고 얼마나 은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리가 존 재한다. 우선,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필요 한데,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개적 논의는 불가피하다. 둘째, 한국 이 북한정부의 주장을 의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등으로 대변되는 통일 3원 칙 을 공개적으로 내세우고 남조선 혁명을 통한 주체통일 을 추구해왔 다. 북한이 말하는 자주 는 외세의 개입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미 동맹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구호이며, 평화 란 6.25 전쟁의 당사 자인 북한과 미국이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17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7 뜻으로 한미동맹 철폐와 미군의 개입을 배제하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 다. 민족대단결 이라는 것도 남북의 제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 하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김일성-김정일 민족 이 합심해 야 한다는 것으로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안보장치들을 해체하기 위한 명 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 하에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민족 해방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여 한반도 전체를 김일성 김정일주의화한 다 는 남조선 혁명을 통한 흡수적화통일 을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으 며, 대남협상을 위해서는 흡수적화통일로 가는 중간단계를 염두에 둔 연 방제 통일을 제의해왔다. 그러면서도 간첩남파, 사이버 공격, 진보정당 구축, 친북종북 세력 지원 등 남조선 혁명을 위해 각종 대남사업 을 펼 쳐왔다. 북한의 이러한 통일기조는 유일영도 10대원칙, 노동당 규약, 형 법 등에도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다. 4) 이런 북한이 자유민주체제로의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의 통일목표에 대 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불성설( 語 不 成 說 )이며, 이런 북한을 의식하여 한국은 북한체제의 소멸을 의미하는 일체의 언급이나 대비책을 준비해 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무한정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 에서 일부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체제를 두둔하기 위해 상생 을 앞세우면 서 북한정부를 자극할 수 있는 일체의 언급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淫 辭 를 펼쳐왔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 부분에서의 정론은 불필 요하게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흡수통일을 죄악시하거나 나쁜 통 일로 매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4. 안보와 통일 그리고 상생 한국사회를 보혁으로 분열시키는데 기여하는 세 번째의 비정론은 안 보를 강화하면 통일이 후퇴한다 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안보와 통일이 4) 유일영도 10대원칙 제1조 4항은 조국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주체혁명 위 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한다 라고 명기하고 있으며, 조선노동당규약 서문은 조선로동 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한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 김정 일주의화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 고 명시하고 있음. 민족반 역죄를 규정한 북한형법 제67조는 민족해방운동과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을 탄압하였 거나 제국주의자들에게 조선민족의 리익을 팔아먹은 자는 10년 이상 로동교화형에 처하 고 정상이 특히 무거운 경우 무기 로동교화형 또는 사형 및 재산몰수형에 처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음.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79

178 반비례적인 관계에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논리는 시 민단체와 정계는 물론 학계에서까지 확산되어 있는데, 이로 인하여 안보 강조론자 들이나 안보에 종사하는 인사들은 졸지에 분단고착적 세력 으 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예를 들어, 세종연구소의 엄상윤 박사는 한국의 안보/통일 딜레마와 파생효과 감소방안 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정부가 통 일우선론적 대북정책을 펼치는 기간 동안 안보문제가 부차적으로 다루 어졌고 반대로 안보우선론적인 정책을 펼치는 동안 통일우선론적 정책 이 후퇴했다고 분석하고 이러한 현상이 정치사회 갈등의 양극화 치열화 라는 파생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주장했다. 5) 엄 박사의 이러한 논지는 양극화라는 효과를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안보와 통일을 반비례적인 관계로 설정한 것 자체가 안보중시는 통일을 저해한다 라는 비정론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의 정론은 확고한 안보는 통일을 위한 초석이다 라는 것이다. 국가(nation-state)체제의 출현 이후 근대사를 보더라도 안보적으로 열세인 국가가 우세한 국가를 극복하고 합의통일이나 흡수 통일을 성취한 사례는 없다. 가장 최근의 통일사례인 독일의 경우도 다 르지 않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1개월 후 통일이 선 포될 때까지 50만 명 이상의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탈출했지만, 21만 명에 달하는 동독군과 국경수비대와 9만5천 명에 달하는 비밀경찰 요원 들은 이들을 저지하지 않고 침묵했다. 동독군이 침묵을 지킨 것은 복합 적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서독의 국력우위와 안보우위가 가장 두드 러진 이유였다. 만약 동독군이 총칼로 이들을 저지했다면 독일통일은 지 연되었거나 엄청난 유혈을 동반할 수 있었지만, 동독 정부와 국민은 물 론 동독군 조차도 서독을 감당할 수 없는 우세한 국가로 인정했기 때문 에 무력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원 리는 한반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열세이나 군사 력에 있어 우위에 있는데다 핵무기 등 비대칭 능력을 앞세워 한국을 위 협할 수 있다고 믿는 상황에서 순순히 흡수통일을 허용할 리가 없으며, 한국이 주문하는 대로 변화하여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합의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6)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정론은 당연히 안보는 자유민 5) 엄상윤, 한국의 안보/통일 딜레마와 파생효과 감소방안, 세종연구소, 세종정책연구 ) 물론,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여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한다고 해서 합의통일이 보장되는 것도 아님. 그런 식이라면 동일한 정치경제 및 가치체계를 가진 18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79 주주의 통일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라는 것이며, 그 반대의 주장, 즉 통 일을 위해 안보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북한의 통일 흡인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되므로 북한주도의 주체통일에 대한 지지 의도를 숨긴 詖 辭 가 되고 만다. 이에 비해, 안보우선론적 정책은 남북상생을 해칠 수 있다 라는 주장 은 논리적으로 일정부분 설득력을 가진다. 즉, 국방비 증강, 신무기 도 입, 억제강화 등의 조치가 남북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생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은 당연히 설득력 을 가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술한 엄 박사의 논문에 오류가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엄 박사는 통일우선론적 정책 이 안보우선론적 정책의 후퇴를 가져와 정치사회 갈등을 증폭시켰다 고 주장하면서, 통일우선론적 대북정책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10.4 공 동선언 서명 등으로 대변되는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을 들고 있 다. 이를 통해 엄 박사의 논문이 상생론을 통일론으로 혼동한 오류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펼친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은 북한정부가 경계하는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북한정부 를 인정하고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정책으로서 통일보다는 남북간 평화로운 상생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엄 박사의 논문은 사 실상 안보와 상생 간의 반비례적 관계를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부분에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유의해야 할 것은 안보-상생 반비례성 의 설득력 역시 한계 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남과 북이 상대방에 대한 일정한 대응능력을 가 진 상태에서 어느 일방이 안보를 강화하게 되면 다른 일방이 대응하게 되어 이것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음은 전술한 바와 같지만, 현 격한 국력격차를 앞세워 안보적으로 상대방을 압도하게 되면 상대방은 도발과 대결을 포기하고 상생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보는 통일 뿐 아니라 안정적인 상생구도 정착 을 위해서도 초석이 된다 라는 것이 정론이 된다. 이것이 독일통일이 한국에게 제시하는 교훈일 것이다. 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과 캐나다 등은 이미 통일국가로 존재해야 마땅함. 국제정치 현실에서 이미 제반 요소들을 갖춘 주권국이 합의를 통해 다른 나라 로의 통합에 합의해준 사례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독의 경우는 체제가 붕괴하고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서독으로의 편입통일 에 합의한 것임.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이 북한의 변화를 통한 합의통일 을 공식적 통일방안으로 추진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없음.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81

180 와 관련해서는 오늘날 미국인들이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을 냉전을 종식 시킨 위대한 대통령 으로 꼽는 이유를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를 통해 레이건 대통령은 SDI (Star Wars Program) 등을 통해 가차없는 대소( 對 蘇 ) 핵군비경쟁을 벌렸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소 련은 맞대응을 포기했고 소련연방은 해체되었다. 안보와 통일이 반비례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 개 세 부류인데, 우자( 愚 者 ), 소인배( 小 人 輩 ) 그리고 종북주의자( 從 北 主 義 者 )가 그들이다. 우자는 시비( 是 非 )와 곡직( 曲 直 )을 잘 알지 못한 채 단순히 그렇게 믿고 邪 辭 를 말하며, 소인배는 시비와 곡직을 알면서도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이나 단체의 입장에 따라 詖 辭 를 멈추지 않는다. 종북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북한을 두둔하는 속마음을 품고 淫 辭 와 遁 辭 를 펼치고 있다. 이들을 계도 선도하여 안보에 관한 한 정론 이외의 주장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국민을 통합 시키는 길이다. 요컨대, 안보는 북한의 무력도발 억제와 평화, 안정적인 상생구도 정착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초석이며, 안보가 무너 지면 평화도 상생도 통일도 불가능하며 통일 후 국가생존도 토붕와해 ( 土 崩 瓦 解 )되고 만다. 안보에 관한 한 이것 이외 다른 정론이 있을 수 없다. 5. 결언 및 추가적 제언 안보통일과 관련한 비정론들은 논리를 펼치는 주체와 동기에 따라 詖 辭, 淫 辭, 邪 辭, 遁 辭 등의 형태로 확산되면서 보혁갈등 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강요해왔다. 특히, 친북 종북 세력들이 통일역군 을 자칭 ( 自 稱 )하고 정치권 일각이 여기에 동조하면서 안보의 중요성이나 통일 의 방향성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펼쳐온 비정론들로 말 미암아 적지 않은 국민은 북한 정권을 포용하고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로 오해하고 있으며, 이정희, 신은미, 김기종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일역군 으로 자칭하는 중에 자유민주의와 시장경 제에 입각한 통일 을 위해 북한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과 안보역군들 은 졸지에 북한을 자극하여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반통일 수구세력 으 로 매도당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18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81 이제는 정론이 아닌 것들을 바로잡고 정론을 중심으로 정책논쟁을 벌 이는 풍토를 확립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북한포용이 평화통일의 길 이 라는 邪 辭 를 자제하고 북한포용이 상생의 길 이라는 정론으로 정책대결 에 나서야 한다. 또한, 상생에 필요한 북한정부 포용 과 북한의 변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북한주민 포용 을 구분해서 말함으로써 국민을 올바르 게 계도해야 한다. 상생을 위한 북한정부와의 화해협력 이라는 정론을 주장할 때에도 그것이 통일의 길 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요구 에 부응하여 7) 북한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 운동가 들이나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공연히 반 통일 인사 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흡수통일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흡수통일은 나쁘다 라는 비정론을 접고 흡수통일도 합헌적 통일이지만 추구하기보다는 대비하는 것이 옳고, 남북상생을 위해서는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정론으로 돌아와야 한 다. 그래야 상생론과 통일론 간의 건설적인 정책논쟁이 가능해진다. 안 보에 관해서도 그렇다. 어떠한 보혁논쟁도 안보는 통일을 위한 초석 이 라는 부동의 공감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는 반 통일 이라는 비정론에서 탈피해야 하며, 그래야 한국의 안보여건, 안보 정책의 과다, 여타 분야와의 형평성 등을 놓고 상생론자들과 안보론자들 간의 건전한 안보논쟁이 가능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진영이 정부를 향해 상생을 위해 신뢰프로세스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변화와 체제소멸을 전제로 하는 통일대박론 을 개진하여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한다 라는 비난을 가하는 것도 부질 없다. 상생 과 통일을 위한 북한의 변화 가 대북정책의 2대 목표인 이 상, 정부가 양쪽을 동시에 추구함은 불가피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면, 북한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더욱 절실한 상생에 좀 더 비중 을 두어야 한다 라는 정론을 앞세워 정부를 추궁하고 정책대결을 펼쳐야 한다. 이제는 진보성향 매체와 단체들이 보수인사를 함부로 수골 이나 친일 로 매도하거나 보수성향 매체나 단체들이 근거없이 진보인사를 좌 7) 2013년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체계적이고(systematic) 광범위하며(widespread) 중대한(grave)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 는 결론 하에 유엔 북한인권 특별조사위원회 (COI)를 설립하여 북한의 인권실태를 조사했고, 2014년 2월 이 위원회가 유엔에 제출 한 보고서는 나치시대 버금가는 고문과 학살, 살인, 투옥, 실종 등이 자행되고 있고 주 범은 북한정부, 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군, 검찰소, 재판소 등 이라고 지적하면서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필요가 있다 고 제안함.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83

182 빨 로 매도하여 뭇매를 가하는 일도 사라져야 하며, 정치권이 이런 일에 앞장서는 후진적 정치행태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어야 한다. 복합적 민주주의(pluralistic democracy)를 실천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서 이견과 경쟁 그리고 논쟁은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상생 과 북한의 변화 가 대북정책의 양대 목표인 이상 진보적인 상생론자도 있어야 하고 보수적인 통일론자도 있어야 하는 것이 분단국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이견을 말하되 동시에 상대방을 경청해야 하고, 논쟁을 하되 상대방을 존중해야 하며, 다툼을 벌이되 분열하지 않아야 한다. 그 러면서도 모든 이견과 논쟁 그리고 다툼과 경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원칙의 틀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정 통성과 신성불가침성을 폄훼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진정 한 진보와 진정한 보수라면 공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는데 이견 이 없는 애국세력이어야 한다. 이들은 풍우동주( 風 雨 同 舟 )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북한체제를 숭모하는 양의 가면을 쓴 여우들( 狐 假 羊 頭 輩 ) 의 망동을 막는데 협력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적 다양성 속 에서 국민적 대통합을 이루는 길이다. 이에 본고는 안보통일 분야에서의 정론확립을 통해 국민대통합의 시대 를 열어가자는 취지에서 세 가지 추가적 제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진보-보수 양진영이 공동으로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종합기념관을 건립하여 후세들로 하여금 이승 만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 ( 功 課 )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통 령 기념관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다. 둘째, 정부에게는 통일부를 남북협력부 로 그리고 통일준비 위원회를 남북협력위원회 로 개칭할 것을 건의한다. 통일부는 통일업무와 상생업 무라는 상호간 상충적인 두 가지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이다. 다시 말해, 통일을 위해 북한의 변화를 선도 촉구하거나 흡수통일에 대비하는 것도 통일부의 업무이지만, 상생을 위해 남북대화와 화해협력을 도모하 는 것도 통일부의 업무이다. 통일업무는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지 지부진할 때가 많기 때문에, 국민에 눈에 비치는 통일부의 업무는 남북 대화, 정상회담, 경협협상 등 상생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외 교적 이유로 인하여 상생을 위한 업무에 통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18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83 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북대화 현장에서 남과 북의 대표들은 대 화를 잘 해서 평화통일 합시다 라는 덕담을 나누지만, 남북대화는 상생 을 위한 정책적 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지 않은 국민이 상생과 통일 을 혼동하는 것은 당연하며, 통일준비위원회가 남북대화를 제안한 것도 혼동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종북세력은 이런 혼란에 편승하여 북한을 포용해야 평화통일이 가능하다 라는 비정론을 펼쳐왔으며, 이것이 포함하는 詖 辭 나 淫 辭 를 구분해내지 못하는 국민의 무관심과 무지가 이들에게 정치적 생존공간을 제공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통일부로 남북협력부로 개칭하여 상생론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상생과 화해협력을 모색하도록 하고 통일업무는 국정원 등 여타 부처의 내부로 이관하여 조용하게 그러나 내실있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과 상생에 대한 국민적 혼란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남북협력부에서 공개적으로 상생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나 새로운 조직에서 조용히 통일업무를 기획 추진하는 공직자들은 공히 보혁갈등 으로부터 해방되어 당당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대해서는 고강도 개혁을 주문하고 싶다. 그 만큼 국민대통합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 의 국회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조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야간 논쟁과 정책대결은 필수이지만, 특정분야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의 공감 대를 공유하면서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정상이다. 스위스에 있어서 그러한 공감대는 국가안보 였고, 싱가포르의 경우는 개발과 번영 이었으 며, 서독의 정치권은 대동독 정책과 통일 에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애국, 안보 그리고 통일 이 여야로 막론한 모든 정 치인들이 공유해야 할 공감대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정치권은 그런 공감대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건전한 정 책대결을 통해 갈등을 치유 봉합 조정하기보다는 갈등을 조장 확대재생 산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있는데다, 정치권의 구성이 지역분할 구도 에 기반하고 있어 그 자체로 국민대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제1당과 제2당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구 제도를 고수하고 있어 정확한 대표(representation)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국회에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은 있어도 이들에 대항하는 애국세 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85

184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권에서는 안보통일 분야에 있어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일관성이 있는 대북정책이 어렵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뱃 지를 달고 있는 곳이 한국의 정치권이라면, 정치인들이 대북포용이 평 화통일의 길 이라는 비정론을 앞세워 북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공직 자들을 향해 반통일 로 비난한다면, 반대로 상생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을 향해 퍼주기 비난을 퍼붓는 식이라면, 그리고 그런 여야가 번갈아 집권하는 대한민국이라면, 한국의 대북정책은 물론 동맹정책마저도 어려 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치권 하에서 통일업무나 상생업무를 맡은 공직자들이 소신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기 어렵다. 북한은 한국의 변화요구를 수용하기 보다 는 한국사회의 분열을 노리는 대남사업 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 치권이 정반대의 대북기조를 가진 여야로 나누어져 번갈아 집권할 수 있는 구도라면, 북한은 한국이 주문하는 대북원칙이나 변화요구에 순응 할 이유를 느끼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정치인들이 북한체제를 인정하 고 포용하는 것이 통일의 길 이라는 비정론을 외치는 상황에서 북한은 사회주의 통일론을 포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 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집권세력의 교체에 따라 대북기조가 송두리째 바 뀌는 한국이라면, 그런 한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사실 에 회의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한국의 현 정치권 구도로는 대한민국이 안보문제와 통일문제 에 올바르게 대비하기 위한 국민대통합을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한국은 국민대통합을 위해 애국, 안보, 통일 이라는 공감대 위에서 건전한 진보 와 건전한 보수가 정책대결을 펼치는 그런 정치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한국 정치권은 천지개벽( 天 地 開 闢 )에 가까운 개혁이 필요 하다. 개혁을 통해 올곧은 진보이념과 올곧은 보수이념을 가진 정치인들 이 국회를 채우게 된다면, 국민 또한 올곧은 생각으로 그들의 정책대결 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를 만끽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대통합일 것이다. 자고로 곧은 나무아래 굽은 그림자는 없는 법이다( 直 木 之 下 無 曲 影 ). 그 럼에도 올곧은 정치인을 선택하고 건강한 정치권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 국민의 몫이다. (끝) 18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85 광복70년 기념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주제 3>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발제 2 선진화와 통일 이숙종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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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선진화와 통일 이숙종(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Ⅰ. 선진화와 통일 1. 미완의 선진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는 광복이후 지난 70년간 순차적인 국가목표였 다. 한국전쟁의 참화이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 발전은 여느 개발 도상국가와 마찬가지로 최우선적인 국가 목표였다. 전쟁이후 분단 상황 에서 북한의 도발로 인한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추진한 경제 발전 이란 점에서 여느 개도국과는 다른 독특한 경험이었다. 산업화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내건 때는 1960년대 초 수출주도형 산업화가 국가정책으로 추진되면서이다. 경공업 산업화의 성공은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 1990년대 정보통신산업 발전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의 문화 및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한국 산업화 국가목표를 계승하고 있다. 산업구조가 변화 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가 아닌 시장이 주도하는 산업화로 그 동력도 전환되었다. 경제 발전을 추진하면서 지연되었던 민주화는 1987년 민주주의 체제 로의 전환이후 본격화되었다. 권위주의 시대 이전에도 건국이후부터 한 동안 선거 민주주의가 지켜졌으므로 없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라 기보다는 선거 민주주의로의 복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후 한국은 선거 민주주의에서 나아가 자유, 평등, 복지 이념들을 제도화하고 심화 시키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발전하였고,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 인 민주주의 체제를 구현하고 있다. 의회나 정부에 대한 정치 불신이나 보수-진보 세력 간 비생산적인 대립 등 정치적 문제들이 있지만 활발한 시민참여를 통해 민주적 제도를 구축해 오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제반 제도들은 물론 문화적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89

188 으로나 시민정신으로나 선진국이 되자는 선진화 목표도 등장하였다. 한 국이 선진국 클럽이라 할 수 있는 OECD에 가입한 해가 1996년이지만 김영삼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세계화 는 한반도와 아시아를 넘어서 한국 의 위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선진화의 행보라 평가할 수 있다. 선진적 또는 선진화 라는 단어가 국가목표에 자주 등장하던 때는 이명 박 정부로 역시 이 시기 글로벌 코리아 슬로건 아래 세계화와 선진화 가 동시적으로 국가정책 목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나라도 국격 을 갖 추고 시민도 배려정신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자는 선진화 문화도 강조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선진화를 달성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어린 학생들을 학원가로 내모는 교육 여건, 대기업과 중소 기업간 경제 격차, 청년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높은 자살률, 심각한 노인 빈곤문제 등 많은 사회 문제들은 한국이 선진사회라고 말 하기 어렵게 만든다. 경제규모나 소득 면에서 선진국일지는 몰라도 한국 은 아직 미완의 선진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화 란 선진사회 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선진화란 선진사회 로 나아가는 과정이지만 문제가 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첫째, 선진화는 보다 나은 상태로 사회가 바뀐다는 것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국가 나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대개의 선진국들은 서구 국가들이다. 이 점에서 선진화라는 단어는 중견국가들이 서구 선진국들을 모델로 삼고 추격하려 발전의 하나로, 본질적으로 단선적 근대화론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서구 선진국들도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으 므로 추격형 선진화의 오류를 피하고자 한다면 선진사회를 구성하는 요 인들로 그 내용을 재구성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말할 수 있다. 선진화의 구성 요소들이 민주적 정치제도, 법치주의, 사회 안전, 교육받을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의 보장, 행복감의 충족 등 다양한 기준에서 현 재보다 나은 사회라 정의될 때 비로써 선진화를 논할 수 있다. 둘째는 선진화의 방법론이다. 보통 선진국에서는 선진화 와 같은 국가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 대개의 선진국들은 서구 국가들이고 이들 국가 들은 국가주의나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가치관과 시장주의적 제도 에 기반하고 있어 선진화와 같은 슬로건을 통째로 국가가 내걸기 보다 는 문제이슈의 해결에 정책목표를 두며, 포괄적인 국가 목표를 두는 경 19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89 우는 없다. 선진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가진 이질적 집단들이 자 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타협하는 사회이다. 다양성을 무시한 집단주 의적 가치를 실현하려든다면 반드시 저항에 부딪히고 갈등이 생기게 된 다. 선진국에서 개혁은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 할 수는 있어도 주체 는 민간이며 그래야만 효과가 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에서 볼 때 한국이 선진화를 국가목표로 삼는다면 그 목표는 어느 특정 국가상이나 제도를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 한 가치와 이상을 구현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선진화는 현재의 한국의 사회문제의 개선이자 혁신이다. 또한,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개선과 혁신 노력은 외국 제도의 위로부터의 도입이 아닌 한국 현실에 맞는 자생적 혁신이어야 하며 그 주체도 민간 이어야 한다. 개인이나 조직에서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사회혁신이 추 진되어야 선진화 효과가 나올 수 있다. 2. 선진사회의 통합가치 선진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이념,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들이 서로 를 존중하고 타협가고 조화를 도모하는 곳이다. 선진사회는 한 가지 색 깔이 아닌 여러 가지 색깔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사회 또는 모자이크사회 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공감하는 공유가치와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절차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통합가치라는 말은 사회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라는 말로 통용되는 경향이 있어 통합가치와 공유가치를 구별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다수가 공유하는 가치 즉 공유가치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 지가 있을 것이지만 상식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공유가치가 있다. 가 장 합의하기 쉬운 공유가치는 역시 자유 일 것이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 벨트 대통령이 말한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 포로부터의 자유 이른바 4대 자유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티아 센은 인간의 자유는 부자유(unfreedom) 로부터 해방 이며 이 점에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면 자신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능 력을 느낄 수 있도록 보건이나 교육 제도가 개선되어야 함은 물론 정치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91

190 적으로도 소외되지 않는 등 실질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 자유로서의 개발 (development as freedom) 론은 개 도국 빈민만이 아니라 세계화이후 선진국 내에서도 증대하는 상대적 빈 곤층에게도 적용된다. 두 번째 공유가치는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권리를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다는 평등한 인권(human rights)이 다. 이제 인권문제는 아동, 여성, 인종, 소수민족을 넘어 성소수자에 이 르기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인정되고 존중되기 에 이른 공유가치이다. 권리의 문제가 누가 에서 무엇 으로 접근되면 보 호받을 권리,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생존권을 보장받을 권리, 인간 다운 삶을 영유할 환경에의 권리 등으로 다양해진다. 세 번째 공유가치 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한국이 국가총생산 규모에 있어 세계 15위권 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은 2013년 기준으로 할 때 2 만4천 달러로 세계 33위에 그친다(구매력 기준으로 하면 세계 27위). 대개의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경제 안정과 높은 경제 성장과 같 은 경제적 성과를 개인의 자유 신장이나 환경문제 보다 여전히 더 중요 한 국가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산층 귀속의식이 약화되고 빈부격차 가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아래서 고용과 복지 등을 가능케 할 지속가능한 성장이 계속 중요한 공유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은 독자적으로 공유가치를 구성할 정도로 중요해졌다. 깨끗한 공기와 물, 오염되지 않은 생활환경을 보장하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차원을 넘어 환경문제는 이제 지구 전체 생태계를 위협하기 에 이르렀다. 환경문제는 잘 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를 도와줘야 할 뿐 만 아니라 현 세대가 후속세대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핵심적 가치로 등 장했다. 이러한 공유가치들에 대해 공감하더라도 이들 가치들이 갈등하는 경우 가 많다. 특히 선진국 정치형태인 다원주의 민주사회에서는 숫자의 힘으 로 다수가 소수를 밀어낼 수 없으므로 권위주의 사회보다 민주사회에서 사회갈등이 더 클 수 있다. 동성연애자 결혼의 합법화 이슈는 사회적 터 부를 붕괴시킨다며 큰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군대에 입대하지 않 겠다는 신앙을 가진 자의 자유는 징집제 형평성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전기 공급을 위해 발전소나 송전탑을 지어야 하는 것은 공공가치이지만 이것들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해치거나 재산권이 침해받는 또는 이주를 해야 하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권력의 횡포이다. 공유되는 것 19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91 같은 가치들이 이럴진대 다른 사람의 이익이 내게는 손해가 되는 이익 갈등은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공유가치 만으로는 선진사회를 구현하기 어렵다. 선진사회의 핵심은 시민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가치나 이념, 이 해 등을 넘어 보다 사회통합도가 높은 사회를 구현하느냐에 있을 것이 다. 사회를 통합시키는 가치를 통합가치 라고 정의한다면 통합가치는 본 질적으로 절차적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규칙과 법을 누구나 지키는 법치, 의견을 대표하고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관 여하는 참여, 공공문제의 해결을 돕는 신뢰와 협력 등은 사회통합을 높 이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조정하고 해결할 규 칙이나 법을 공정하게 만들고, 집행하며, 이를 시민들이 준수하는 법치 의 실현이 통합가치의 기본이다. 규칙과 법의 준수는 그것의 내용과 집 행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질 때 지켜지기 때문에 절차적, 결과적 정당성 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유전무죄라는 자조적 표현은 법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만 집행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한 법집행 에 책임이 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결과적으로 기본적 생활도 할 수 없다면 정부 정책이나 회사 규칙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법과 정책 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공직자 스스로의 부패는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 신으로 이어진다. 공정한 법의 지배는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다. 이러한 법치에 더하여 사회갈등을 줄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대두하는 것이 소통과 참여이다. 소통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공감과 신뢰를 가 져다주는 중요한 절차적 수단이다. 더욱이 소통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connectivity)은 네트워크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의 소외감을 줄일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고 리더와 팔로워 간에 신뢰감도 구축한다. 참여 역시 자신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무원을 선거로 뽑는 소 극적 참여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공공행정에 또한 공공담론에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다양한 의견을 모아가 사회적 어젠다로 만들 수 있어 보다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형태로 환영받고 있다. 법치, 소통, 참여, 신 뢰 등은 커다란 공유가치들을 세세하게 조정하고 타협시키는 중요한 통 합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원적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열거된 자유, 평등, 인권, 환경 등 기 본적인 민주적 가치들을 공유한다. 문제는 이들이 개별적 상황이나 사건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93

192 등에서 보다 공익적 차원에서 지켜지도록 개인간, 집단간 갈등을 줄이고 해결하는 절차적 통합가치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 한국 사회는 이러한 통합가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소통, 참여, 신뢰를 중 시하는 거버넌스 조정양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조정자로 서 이러한 통합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통치보다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다하고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3. 통일의 도전과 준비 남북한 통일은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 과정은 예측할 수 없다. 두 이질 적 체제가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하나의 국가가 되는 방식은 상대적 통일 비용을 낮추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도 개연성 높은 것이어서 통일의 방식은 준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수의 사람들은 통 일을 서두르기 보다는 속도를 조절해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통일이 되어도 현재의 남한식 체제일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되 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 정부는 통일을 중대한 국가목표로 삼고 세 가지 차원에서 통일정책 을 펼치고 있다. 첫째는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 원과 함께 경제협력을 도모해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쌓아가 궁 극적으로는 통일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통일에 대한 염원이 희석된 한국 사회에서 통일 논의를 활성화시키고 여러 가지 도전 과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조성해 가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셋째는 언 제 어떻게 통일이 올지 모르나 국제사회가 특히 미국과 중국이 남북한 통일을 지지하고 지원해 줄 수 있도록 이해와 협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아직 통일에 대해 미온 적인 편이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통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민족 동질성 상 필요하고 경제성장이나 외교력 신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일이 남한에 직접적 이익이 되기보다는 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사회적 통합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도 전망한다. 모두 합리적 생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주목할 점은 통일 비용 마련을 위한 세금을 내겠다는 의지 19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93 는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된다. 통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론은 환경변 화에 따라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북한 사이 아직 긴장과 적대시 정책이 별로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여론은 현재 의 시점에서 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협력, 문화 및 스포츠 교류 등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북한을 가깝게 느끼게 될 때 통일 의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볼 것이고 또한 통일 비용 부담 의지 역시 현재 보다 커질 것이다. 통일을 아무리 점진적이라 해도 남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어서 이 를 관리해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점진적 통일에 전제가 되는 것은 남북한 화해와 평화공존이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남한을 적대시하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핵을 버리고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 정책을 한국과 국제사회가 지난 20여 년 간 펼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통일을 말하는 것을 흡수통일이라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에 이해당사자 역시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불확실한 정세변화에 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해 나설 이유가 없다. 한국이 새롭고도 힘찬 대북 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통일은 염원이지 현실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급변사태로 인해 붕괴된다면 한 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통일과정을 관리할 가능 성은 커진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여러 가지 과제가 있다. 현재 군사분계 선과 중국 국경선 유지를 통한 대량 탈북 사태 통제(북한 주민들의 대 량 탈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입장도 있다), 식량 및 보건 등 대규모 인 도주의적 지원, 핵무기 통제, 인도주의적 범죄를 저지른 북한 지도자 처 벌 등 단기적인 안정화 과제들이 우선적이다. 이어서 이산가족 합류 문 제, 재산권 문제, 재교육 문제 등 사회적 과제들, 경제 인프라 구축 및 남북한 노동시장 통합의 문제 등 개방과 발전을 위한 과제들이 이후 본 격화될 것이다. 급변사태로 인한 통일일 경우 그 초기 과정은 혼란으로 시작할 것인데 이 때 한국 주도권을 인정하는 유엔과 미국의 지지 관철 은 가장 중대한 국제법적 외교적 과제일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에 이어 통일은 장래의 최우선적 국가목표임에 는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통일 과정이 진전된다 하여도 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사회통합보다는 분열을 가져올 전망이다. 경제적 격차를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95

194 해소하면서 경제 통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남한의 경제적 부담이 클 것이고, 오랜 분단이 가져 온 가치관과 문화적 차이를 줄이는 사회통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비하려면 남한이 공유하는 가치들을 북한 주민들과도 공유해야 한다는 큰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 다. 자유, 평등, 인권, 성장, 환경의 가치들도 통일 한국의 북한 주민들 도 똑같이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의 실현에 있어 어떤 절차와 제도를 구축해야 하느냐는 상당한 지혜를 필요로 한다. 남 한식 체제로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때 북한 주민이 이러한 체제로 편입되고 통합되는 과정은 수십 년이 소요 될 것이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다른 두 체제를 통합하기 위해 남한식 제 도를 갑자기 도입해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려 하기 보다는 북한 주민의 권리를 존중, 통일 한국의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에 적응을 돕고 그들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러한 합의를 남 한 사회는 준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19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95 토론 1 염돈재(성균관대 초빙교수, 전 국정원 1차장) 1. 들어가는 말 두 분의 발제내용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저는 두 분의 발제내용에 대한 저의 의견을 간단히 말씀 드린 후 선진 통일한국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국론통합의 과제와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해 몇 가지 추가해 보 려고 합니다. 2. 선진화와 통일 이숙종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광복 이후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 등 네 가지 순차적 과제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는 달성했으나 선진화 목표 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선진화 달성을 위해서는 1자유, 2인권, 3지속 가능한 성장, 4환경 등 네 가지 공유가치 와 이의 실현을 위한 1법치, 2소통과 참여, 3리더와 팔로워 간의 신뢰 등 세 가지 통합가치 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매우 시의성 있고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통일문제에 관한 이 교수님의 발표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단 한 가 지, 7쪽에서 지적하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새롭고도 힘찬 대북정책 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 설명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안보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 대통합 달성 김태우 교수님께서는 맹자를 인용, 안보 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1북 한의 변화보다는 상생만을 중시하는 태도, 2합의통일은 좋고 흡수통일 은 나쁘다는 주장, 3안보를 강화하면 통일이 후퇴한다는 생각 등 비정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97

196 론( 非 庭 論 )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민주사회에서 이견과 논쟁 은 존재해야 하지만 모든 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의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신성불가 침성이 폄하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김 교수님이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만이 통일의 길 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하신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일 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과거 서독은 동독과의 긴밀한 교류 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동독을 독립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오직 불가피한 대화의 상대 로 생각했다는 점을 덧 붙이고 싶습니다. 또 저는 김 교수님의 주장에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통일부를 남북협력 부 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남북협력위원회 로 개칭해야 된다는 주장에 대 해서는, 이렇게 되면 오히려 헌법 4조에 규정된 통일의무는 젖혀놓고 교 류 협력만을 중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 니다. 4. 통일을 위한 국론통합과 통일한국의 비전 끝으로 통일방안과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저의 생각을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통일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통일논의가 이념문제와도 결부되어 심각한 국론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 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통일방안을 마련하더라도, 또 어떤 뛰어난 협상 가가 나타나더라도 북한주민의 자유의사가 통치체제 결정과 지도자의 선택에 자유롭게 반영될 수 없다면, 즉 북한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 는다면 통일을 이룰 수도 없고 그런 통일은 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 됩니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주민의 인권신장과 북한의 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점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국민통합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아무리 통일준비를 잘 해도, 아무리 많은 통일기금을 비축 19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197 하더라도 나눔의 자세, 고통분담의 자세 없이는 순조로운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동독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 드메지어 총 리가 지적한 대로 분단(Teilung)은 분담(Teilung)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조선일보가 통일나눔 펀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의미 깊 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통일한국의 미래에 대해 더욱 높은 비전을 가질 필 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2009년 골드만 삭스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버금가는 중강국이 되며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지 게 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하버드대 폴 케네디 교수는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에는 대한민국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 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시대에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높은 수준의 도덕,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가진 민족만이 주역이 될 수 있는데 아시아 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민족은 한민족뿐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석학 자크 나탈리도 2050년 서울은 아시아연합국가의 수도가 될 것이라 전망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쯤이면 통일한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 어 안보부담에서 훨씬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해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지난 70여 년간의 노력을 계속한다면 그 꿈이 이루 어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2차 대전 후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이며, 침략전쟁을 일으킨 적도 없고 식민지를 가진 적도 없이 세계 지도국가로 발돋움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14년 현재 국민총소득(GNI)의 0.13%인 공적개 발원조(ODA)를 OECD 원조개발원조국(DAC) 평균인 0.29% 이상으로 높이고 국제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일본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온 국민이 이러한 민족적, 국가적 과제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이의 실현을 위해 각오를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 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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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토론 2 윤인진(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이숙종 교수는 발표문에서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가 광복 이후 지난 70년간 순차적인 국가목표였으며, 통일은 앞의 세 가지 목표와 함께 장 래의 최우선적인 국가목표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가 경제 발전에서 시 작해서 정치 발전, 그리고 사회 문화 발전의 궤적을 밟아온 것을 돌아보 면 타당한 진단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선진화를 단지 선진국의 발전 모 델을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정치제도, 법치주의, 사회 안전, 인 권 보장, 행복감의 충족 등 현재보다 나은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정 의한 것은 장래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선진화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더욱이 다원적인 선진사회에서 사회통합의 요건으로 공유가치 와 통합가치를 구분해서 제시한 것은 이론과 실천면에서 기여하는바가 크다. 하지만 이 교수의 주장이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교수가 제시 한 공유가치와 통합가치의 이론적 또는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선진사회에서 사회통합을 이 룰 수 있는 공유가치로 자유, 평등한 인권, 지속가능한 성장, 환경을 들 었는데 왜 이런 가치들이 핵심적인 공유가치로 선택되었는지 남들도 납 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로 알려진 자유, 평 등, 우애(또는 연대)는 이후 많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정신으로 수용되었 다. 1) 이 교수가 제시한 네 가지 가치에는 우애 대신 지속가능한 성장과 환경이 포함되었는데 어떤 근거에서 이 두 가지 가치가 공유가치로 인 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환경이 네 번째 공유가치로 포함된 것은 사회민주주의에서 자유, 평등, 우애의 3대 가치와 그것의 1)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fraternité를 박애 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fraternité는 혁명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 리의 동지애 또는 형제애를 의미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에 박애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런 면에서 fraternité 는 우애 또는 연대의 의미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01

200 확장으로서 생태와 평화가 포함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인상을 주 는데 이 교수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해서 공유가치를 설정하려고 하는 지 궁금하다. 연구자마다 사회의 핵심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 지만 그것이 전체 사회의 가치로 공유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 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상과 원리에 기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이 교수는 사회갈등이 만연하고 고질적인 현 상황에서 정부가 통치보 다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다하고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런 규범적인 제언뿐만 아니라 실재적인 정 책 제언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의 유형을 당사자 별로 구분하면 정부(중앙 및 지방정부)와 주민간의 갈등인 민관갈등이 전체 공공갈등의 65%를 차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갈등의 핵심적 특징은 사회갈등의 중심에 정부가 있고 정부가 갈등의 주체라는 것이다. 2) 이런 점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제3의 중개기구와 제도의 정비, 갈등전문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끝으로 지적할 것은 이 교수의 논문에서 선진화와 통일 간의 관계가 병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선진화는 장래 우리가 추구할 통일의 목표와 방향에 어떤 시사점과 함의를 주는지에 대해 보 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토론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통일은 한국의 제도와 사상으로의 획일적인 복제가 아니라 남북한 다양성의 조 화이다. 독일 통일의 경험에 기초해서 전성우(1997)는 통독과정에서 서 독의 자본주의적 가치와 행동원리를 동독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동독주민들이 심각한 자기정체성과 자긍심의 훼손을 경험했고 이런 경 험이 동독주민의 자율적인 변화를 저해했다고 보고했다. 3) 동서독간의 진정한 사회통합은 양 사회가 다함께 겪는 하나의 학습 및 개혁의 과정 으로 인식할 때 가능하며, 통일은 동독에게 단순히 뒤늦은(만회성) 근 대화 를 뜻한 뿐 아니라 서독의 경직된 사회구조들의 개혁과 기회로 이 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사회가 가진 강점과 약점에 대한 냉철한 2) 윤인진 한국인의 갈등의식 현황과 변화: 제1~3차 한국인의 갈등이식조사 결과 분석. 한국사회 16(1): ) 전성우 통일독일의 사회통합. 남북한 사회통합-비교사회론적 접근. 서울: 민족통일연구원, pp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01 통찰과 상호의 강점이 최대한 활용될 때 성공적인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남북통일과 그 이후의 사회통합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토론자는 선진화와 통일 간의 관계는 선진화는 통일 후 남북한 사회통 합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한국이 정치, 경제, 이데 올로기, 사회복지 등의 측면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역 량이 있어야 통일 후 사회혼란과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 자체가 내부적으로 사회통합 역량을 길 러야 한다.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약자층과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과 차별을 극복하고, 지역, 성, 인종/민족, 계층에 따른 불평등체계를 개 선해서 누구나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를 보다 성숙한 선진사 회로 만들게 되고 통일 후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 김태우 교수의 논문은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보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사회변화를 이끌려는 의도를 갖기 때문에 학술적인 토론을 하기 어렵다. 여기서 토론자는 김 교수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론을 제 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이념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 간에도 대화와 합의 가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 교수는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로 상생과 북한 변화를 두고, 이 두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상충되는 측면이 있고, 상생을 강조하는 진보 와 북한 변화를 강조하는 보수는 각자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주장을 하 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 은 상당히 타당하고 균형 감각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안보 통일 담론을 분석하면서 정론과 비정론을 구분하고 진 보측 주장의 상당 부분을 비정론으로 규정하는 데에서는 균형감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균형 있는 평가가 반드시 양비론으로 진보와 보수를 기 계적으로 동일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논의의 대부분은 진보 시 각을 비판하는데 할애했지 보수 시각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 이념갈등이 김대중 정부 이후 더욱 증폭 되고 첨예해진 데는 강성 보수 집단들이 북한에 대한 유연한 생각, 기득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03

202 권층에 대한 비판 등을 친북, 종북 좌파로 재단하고 선거 때마다 색깔논 쟁을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활용한 측면이 크다. 한국사회에 서 좌파, 친북,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더 이상 합리적인 사고판단과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 가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서로의 차이와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 하다. 또한 김 교수는 안보와 통일이 국민대통합의 기본 조건이고, 한국에서 애국, 안보, 통일은 여야를 막론한 모든 정치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라 고 주장했다. 물론 위의 가치들이 중요하고 모두가 공유해야 할 것이라 고 생각하지만 왜 반드시 안보와 통일이 국민대통합의 기본 조건이 되 어야 하는지, 그리고 애국, 안보, 통일 외에 다른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지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있다. 전 통일연구원장으로서 누구 보다 국민의 통일의식을 제고해야 할 사명감을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서 이숙종 교수의 논문에 대해서 토론자가 지적했듯이 사 회의 공유가치는 한 개인의 주관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 또는 원리에 기초해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김 교수가 스 위스와 독일의 사회통합이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과 절차를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주의는 사회 통합의 기본 조건인 동시에 안보와 통일을 위해 국민적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토양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안보의 식과 통일의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정론과 비정론을 구분 짓고 어느 한 쪽을 제거하는데 치중하기보다 합리적 의사소통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견해들이 공평하게 논의되고 상식을 가진 공중이 사려분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일부 종편 방송에서 편파적인 견해와 주장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전파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고 이 것이 진보-보수간 이념갈등을 증폭하기 때문에 시정이 필요하다. 끝으로 김 교수는 국민통합을 위한 정책 제언으로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이 공동으로 대통령기념관 건립을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제안했 는데 이런 제안에 대해서는 필요성과 현실성에 있어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논쟁적이고 아직 충분하게 20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03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 은 논쟁을 심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일 건립되더라도 껍데기만의 기념관이 될 수 있다.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 적인 것들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여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막중한데 현재 국내 언론이 얼마만큼 공정한 보 도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 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권력의 시녀 또는 유전무죄, 무전유 죄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과 사법기관의 독립성과 민주적 공정성 확보는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신뢰를 회복하여 국민을 통합하는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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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토론 3 안정식(SBS 기자)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적인 사회다. 여러 사회적 현안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고, 때로는 격한 논쟁이 오고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의 다원성은 다원의 차원을 넘어 심각한 분열 양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걱 정될 때가 많다. 상대 세력을 적대시하고 상대가 지고 내가 이겨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이다. 상대의 주장은 제대로 들으려하지도 않고 제3 자가 나서려 해도 제3자가 누구의 편 인지부터 먼저 따진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우리 사회의 논의구조는 모두에게 커다 란 피해로 다가오고 있다. 설사 내가 상대를 이겨 권력을 잡는다 해도 상대방이 또 극단적으로 반발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정책의 수행은 어렵 게 된다. 누가 권력을 잡든 상대가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오는 한 정책 수행은 커녕 사회적 에너지의 손실만 초래될 뿐이다. 민주주의가 다원적 인 사회지만, 분열적인 사회이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상에 대해 이숙종 교수는 통합가치 의 부족을 지적했 다. 우리 사회 내에서 통합가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소통, 참여, 신뢰 를 중시하는 거버넌스 조정양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태우 교수는 안보통일 문제에 있어서 비정론( 非 正 論 )을 정론( 正 論 )으로 대체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3대 비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숙종 교수가 총론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면, 김태우 교수는 보다 구 체적이고 각론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우리 사회가 심각한 분열상을 극복하고 국민대통 합의 방향을 모색해야 선진화의 길을 갈 수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집 권세력의 교체에 따라 대북기조가 송두리째 바뀌는 식이라면, 주기적으 로 정권이 바뀌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이 대내외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07

206 남북문제의 통합가치는... 그렇다면, 남북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통합가치를 만들어갈 것인가? 김태우 교수는 이에 대해 3가지 비정론( 非 正 論 )의 정론( 正 論 )으로의 대체를 주장했다. 대북정책에서 상생 과 북한의 변화 를 동시에 추구해 야 하며, 흡수통일이 나쁘다 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며, 확고한 안보는 통일을 위한 초석 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는 이미 국민들의 공유가치 로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누가 나서서 떠들지 는 않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 중에 북한 체제로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 중에 북한 체제를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 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소수에 불과할 뿐으로, 이미 우리 국민 대다 수의 머리 속에서 북한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다. 확고한 안보 가 필수적이라는 부분도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가치가 아닌 가 한다. 결국, 대북 접근법 논쟁의 핵심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반드시 선( 善 )인 가 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김태우 교수의 3대 비정론 중에 상생 과 통 일 의 갈등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북한의 무모하고 잔악한 행동에 대해 징벌을 가하고 강경하게 대처해야 하는 지, 아니면 어떠한 경우라도 남 북관계 진전이라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되는지 하는 부분의 논쟁이다. 이 부분은 또한 남북관계를 어떤 수준으로 가져갈 것인가라는 부분과 연결된다. 핵개발을 계속하고 주민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과 어 느 정도의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일부에서는 남북간 민족경제 공동체를 주장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수준의 남북관계만 을 주장한다. 대북 접근법은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따라 첨예하게 달라질 수 밖에 없 는 것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관점 이 아닌 사실 에 근거해 논의를 진행한다면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긴다. 먼저,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하는 한 남북간 전면적인 경제공동체 건 208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07 설은 어렵다. 북한 핵개발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이라는 점도 그렇 지만, 북한 핵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간 전면적 인 경제공동체 건설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지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 담도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 동참해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이 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지금과 같이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간 교류 협력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교류협력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인데, 여기 에 대해서는 보수정권도 남북간 교류협력을 전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진보정권과 보수정권 사이에 논의가 불가능할 정도의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북 접근법에 있어서도 진보와 보수세력이 기초적인 공감대는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분열상 극복해야 사실,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의 분열적 모습은 상당 부분 정치권에서 비롯된다. 정치권은 사회의 갈등 요소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사회 를 통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우리 정치권은 사회의 갈등을 보다 확 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대측 얘기는 일단 반대하고 상대가 죽어 야 내가 산다는 제로-섬의 생존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 니,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생산적인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말 추진됐던 통일항아리, 즉 남북협력기금법을 개정해 남북 협력기금이 사용되지 않더라도 계속 쌓아두게 하자는 법은 결국 무산됐 다. 통일기금을 모으는 것이 흡수통일을 추진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 다는 것인데, 통일이 어떤 방식으로 되든 유비무환 정신으로 필요한 돈 을 모아두자는 법이 무산된 것은 실용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법을 진보정권이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인 만큼 보수정권이 법안을 추진 했을 때 정치권 전체가 못이기는체 하고 동의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정치권의 비생산적인 분열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필자가 답변을 제시할 능력은 없지만, 다만 한가지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아줄 신망 있는 원로그룹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부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보다는 소통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09

208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남북관계의 진전이 반드시 선( 善 )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필자는 반드 시 선( 善 )은 아닌지 몰라도 꼭 필요한 일 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앞으로 통일의 시기가 언제 올 지 모르지만, 통일이 현실화되는 시기 우리가 주력해야 할 부분은 주변국과의 공조를 통해 우리 주도의 통일 을 이룩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국과의 공조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주변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통일 문 제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통일을 위한 국제적 통로 외에 또 하나의 통 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 남북간 통로이다. 남북간 소통을 통해 결정적인 시기에 북한이 남한과 한 나라가 되겠다 고 선언하게 되면 주 변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간섭할 여지는 적어진다. 통일의 시기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만큼, 우리는 주변국과의 공조 도 강화해야 하지만, 북한과의 소통의 통로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의 역사처럼, 우리의 뜻과는 관계없이 외세에 의해 조국이 분 단되는 뼈아픈 전철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210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09 토론 4 강철환(북한전략센터 대표) 분단 70년은 남과 북을 하늘과 땅차이로 변화시켰고 수많은 갈등 요 소들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면서 선진국 문턱까지 왔지 만 다른 선진국이나 중진국에 비해 심각한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 고 있다. 대한민국의 갈등 구조 속에 중요한 한 부분은 이념갈등인데 이 러한 갈등은 6.25 전쟁이라는 계급적, 이념적인 뿌리 깊은 갈등과 증오 로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진보세력이 지나치게 북한에 의호적인 입장과 거기에 반발하는 보수진영의 입장은 오랜 역사적 갈등 구조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한국사회에 두 가지 갈등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 고 있다. 첫 번째는 영호남 갈등구조다. 북한은 호남지역을 우군으로 흡 수해 경상도 지역을 고립 말살하는 전략을 지금껏 추구해오고 있다. 김 대중 전 대통령을 파격적으로 대우하고 깊은 연대감을 갖게 하면서 많 은 대북지원을 얻어냈는데 이러한 북한의 의도는 철저하게 지역감정을 활용한 대남갈등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수, 진보의 갈등에 항상 북한이 개입해왔다. 1980년대 주 사파를 확산시켜 한국 진보진영에 종북, 친북세력과 뒤섞이게 하면서 진 보세력 전체를 친북세력화 하기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북한은 보수 세력을 청산세력으로 진보세력을 흡수세력으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구조는 쉽게 해결되 지 않는 구도다. 여기에 북한주민이 갖는 남한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오랜 교육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11

210 북한은 대외정보의 북한 내 유입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면서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일방적인 정권의 주장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통일은 경제적 통합 이전에 이념적 갈등 구조를 반드시 풀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 민국의 선진화가 선행되고 북한주민의 동질성 회복을 통해 점진적, 또는 급진적으로 해결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정화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시민의식이 높아지면 이런 북한의 이간과 갈등 유발에 우리사회 가 흔들리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Ⅰ. 한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 해결과 선진화 과정 1. 종북( 從 北 )과 진보의 명확한 분리가 선행되어야 서독 정부가 분단이전 동독을 보는 관점은 여야, 진보, 보수가 다르지 않았고 특히 동독주민에 대한 인권문제는 항상 같은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동독 때문에 서독사회가 한국처럼 심각한 이념갈등을 겪지 않 았다. 이러한 이유는 독일이 분단이후 전쟁이라는 극단적 폐해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한국은 6.25 전쟁으로 인한 이념적 갈등이 워낙 심각해 극단적 종북세력이 한국 사회에 진보로 둔갑해 활동하는 현상까지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다. 한국 사회는 통일 전 서독의 진보, 보수 세력이 보여준 대동독 정책을 배워야하며 지금의 종북세력이 진보로 둔갑해있는 현실을 하루빨리 청 산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세력을 포함한 노골적 종북세력은 진보세력에서 확실하게 청산되거나 분리되어야한다. 212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11 2. 북한을 둘러싼 대북( 對 北 )정책의 일원화 한국 정치권은 북한에 대한 대북정책을 놓고도 극적으로 대립해있는데 대표적으로 북한인권법이 10년 넘게 방치돼 있는 것은 이념갈등의 얼마 나 깊은지 보여주고 있다. 서독의 대( 對 )동독 정책처럼 옳은 길은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하나의 길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어느 한 쪽은 현실과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햇볕정책이 남북한에 미친 영향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진보, 보수정 권을 대하는 북한정권의 태도가 극과 극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의 결 과를 놓고 한국 정치권은 항상 대립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북한지도부와 북한주민을 보는 입장은 서로 다를 수 없으며 하나의 입장과 목소리를 내는 여야, 진보, 보수의 입장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정책의 공과 과를 구분하고 옳은 길을 찾는 것은 북한주민들을 대 한민국 민주주의로 편입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3. 북한정권의 대남개입과 합리적 대응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북한은 우리정부의 자작극, 모략설 을 유포했는데 한국 사회의 진보진영에서는 상당부분 북한의 만행을 규 탄하기보다 북한의 모략설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러한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확산은 북한정권의 대 남개입의 여지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으며 스스로의 정화능력 이 없으면 이러한 갈등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Ⅱ. 남북한 이념적, 경제적 통합을 위한 미래비전 1. 남북한 국민의 탈이념, 남북한 선진화를 위한 경제통합을 유도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13

212 중국의 개혁 개방 노선은 중국사회에서 이념적 갈등구조를 해소시켰고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라는 사회주의적 노선과 이념 자체를 해소시켰 다. 중국의 이런 이념갈등 해소는 중국 지도부의 강력한 경제적 부흥노 력과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과거 사회주의적 노선에 편승한 진보진영의 가치관 때문 에 기업가와 노동자간에 착취 논리가 지속되어왔고 지금도 이런 유사한 갈등구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노사관계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구조로 한국 사회가 중국보다 더 이념적으로 후진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사가 함께 상생하는 문화와 경제 강국 건설은 대한민국이 남한을 넘 어 북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2. 통일비용과 한국사회의 무관심 극복 방안 남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격차 때문에 통일에 대한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북한은 경제적 초궁핍 국가이기 때문에 독일처 럼 북-한을 모두 떠않는 통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생각은 통 일과정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한다. 이념갈등 외에 지적, 문화적 격차도 남한 국민들이 북한 주민을 선입 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무한 경쟁시대에 한국사 회는 젊은 층으로 갈수록 통일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남북한 통합 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북한체제의 변화가 우리가 의도하는 점진적 변화가 아닌 급진적 변화 로 온다고 해서 그것을 회피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통합 이후의 경제 적 발전 시너지와 부흥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통합과 정을 순조롭게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적 통일 대박의 현실성을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있 는 통일 교육이 확산되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214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213 Ⅲ. 북한지역을 통합하기 위한 선진통일 방안 1. 북한 내부의 갈등구조와 통합방안 모색 현재 북한 내부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핵심계층과 비핵심계층간의 분리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특히 최근에는 엘리트 계층들의 이탈현상이 가속 화되고 있다. 군부, 보위부, 노동당의 핵심관료들은 기득권세력으로 분리돼 남북한 통합과정에서 청산대상으로 분리될 가능성 때문에 끝까지 북한체제를 고 수하려고 하겠지만 그 이하의 계층에서는 분리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에서 교수,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등 엘리트들은 한국사회로의 통합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더 유리함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엘리트들과 다수의 북한주민들이 남북한 통합과정에서 가장 큰 경제적 수혜자들임을 각인시켜 이들이 남북한 통합의 북측 주역으로 자리 잡도 록 유도해야 한다. 중국식 개혁, 개방 노선과 계급투쟁 타파는 북한주민에게 지금까지 계 급적 갈등구조를 만들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던 김씨 왕조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탈이념 체제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 록 한다. 2. 통일 이전에 선행되어야할 필요수단 북한주민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행과제로 볼 수 있다. 탈북자 가운데 북한에서 남한 라디오나 기타 수단을 통해 정보를 취득 했던 자들은 한국사회의 적응이 빠르고 거부반응이 없었던 반면, 외부의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급하게 탈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한국사회에 대 한 인식이 부족하고 심각한 부적응적인 상황을 보이고 있다. 남북한 통합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구조는 한 국내 현재 발생하는 갈 등과는 비교도 할 수없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오해에서 비 선진화와 통일시대 준비 l 215

214 롯되는 갈등들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북한주민들에게 외부의 정보를 지 속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북한주민에 대한 교육도 선진통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도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의 한축이 되어 문 제가 많다. 지금 북한의 청소년들은 왜곡된 김씨 왕조의 역사만 주입식 으로 배우다보니 심각한 이념 편향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씨 부자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자유대한민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북한청소년들이 통일이전에 접해야 할 근현대사 교과서를 한국 사회에 서 먼저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신속하게 북한내부에 유입시 켜야 한다. 3. 남북한 통합을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 남북한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세력 육성과 북한내부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시민단체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정부만의 몫으로는 감당할 수없는 문제이며 민간분야에서 활발 한 통합과정이 선행되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화합하는 길로 나아 갈 수 있다. 김씨 왕조의 붕괴는 이념적 갈등구조의 한 축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 이기 때문에 남북한 통합과정은 김씨 왕조의 소멸과정이고 북한의 기득 권층을 축소시켜 다수의 엘리트와 주민들이 통일의 주체로 일어나게 하 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줄 시민세력이 상당부분 힘을 키우고 준 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216 ㅣ 통합가치와 미래비전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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