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sungdae Institute of Economic Research Working Paper Series 20 세기우리나라혼인연령의추이 - 경남언양사례 박기주 김성남 Working Paper 2012-08 November, 2012 Naksungdae Institute of Economic Research 31gil 5, Bongcheon-ro, Kwanak-ku, Seoul, 151-843, South Korea
20 세기우리나라혼인연령의추이 - 경남언양사례 박기주 * 김성남 ** 이논문은한국인의혼인연령의장기추이를시야에두고 1940-50년대일제하전시기와한국전쟁이한국인의혼인연령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를구명하였다. 남성은 1940년대전반에크게하락한후 1960년대말까지상승하는추세였으며, 여성역시 1940년대전반에이전보다더빠르게하락하다가이후상승하였다. 배우자간연령차이평균은식민지기의 5-6세에서해방후 4-5세로감소하였다. 출생코호트별로남성은 1925-34년출생자사이에초혼연령이 3.6세상승하였고여성은 1927-41년에출생자사이에 4.8세상승하였다. 1940년대전반전시동원체제로인해징병을앞둔남성과처녀공출을피하기위한여성의조기결혼때문에남성의경우에줄어들고있던 20세미만에서결혼이크게늘었으며여성의경우도 20세미만의혼인비율이이전보다크게증가하였다. 한국전쟁을계기로하여실시된제2국민병과함께징병제도는 3-4년정도의복무기간만큼남성의평균초혼연령의상승시키는결과를가져왔다. 전시이전에는배우자간연령차이가매우크거나여성이연하남과결혼하는경우도드물지않았으나전시기를지나면서남녀모두혼인연령대가집중되면서배우자간연령차이가대체로일정해졌다. 핵심주제어 : 초혼연령, 전시기, 한국전쟁, 연령차이, 결혼패턴, 조혼 * 성신여대경제학과조교수, E-mail : kjpark@sungshin.ac.kr ** 서울대학교경제학과박사과정, E-mail : statesman81@gmail.com - 1 -
20 세기우리나라혼인연령의추이 - 경남언양사례 1. 머리말 맬서스는아무런장애가없다면인구는 25년마다두배로증가할것이며이런인구증가는식량부족에서오는기근이나질병등으로인해불가항력적으로감소하거나 (positive check) 결혼지연이나낮은결혼출산력에의해서증가가억제된다 (preventive check) 고하였다. 혼외출산도있지만대부분의출산이有配偶여성에의해이뤄진다는점에서결혼은인구증가라는동태적변화의출발이면서, 동시에인구조절의중요한기제로작용한다. 맬서스이후결혼은인구학뿐아니라경제학, 사회학의중요한주제였다. 결혼패턴에서중요한것은혼인율과혼인연령이다. 혼인율과혼인연령은, 반드시그런것은아니지만, 어느정도역의상관관계에있다. 즉, 혼인연령이낮으면 ( 높으면 ) 혼인율이높은 ( 낮은 ) 것이일반적이다. 배우자간연령의차이도포함하여, 결혼패턴에대한이해는다양한측면에서유의미하다. Talberg(2003) 는북서유럽을중심으로진행된 2차인구학적변천이현재서유럽외의다른지역으로확대되고있다고하였다. 그것은 1960년대중엽이후나타나고있는인구현상으로, 혼인율및출생율의감소, 이혼율및미혼동거율의증가, 미혼출생율의증가, 초혼연령및초산연령의상승이다. Saardchom and Lemaire(2005) 는 UN의 World marriage patterns의데이터를사용하여대부분의국가에서초혼연령이상승하고있다고하였으며, Mensch et al.(2005) 은지난 30년동안저개발국에서도혼인율이뚜렷하게감소하였음을밝혔다. 우리나라도근대이전에는조혼의관습이있었지만최근에는오히려초혼연령이지나치게높고혼인율도매우낮아져여러가지사회적문제가되고있다. Hajnal(1953) 이고안한방법에따라센서스를이용하여추계한평균초혼연령 (SMAM, Singulate Mean Age at Marrriage) 은장기에걸친꾸준히상승하였다. 1) 이방법의한계는모든출생코호트의크기가같고사망이나이동이없으며각연령계급내의연령간에는혼인율이균일함을가정하고있는점이다. 이와달리, 두시점의센서스를이용하여두시점사이의평균초혼연령을측정하는 Agarwala의방법이있는데, 그결과도 Hajnal에의한결과와거의대동소이하였다 ( 김남일 이지현 1995). Hajnal 방식에의하면, 우리나라의평균초혼연령은 1925년에남성 21.1세, 여자 16.6세이며, 1940-55년에남성 21.8세에서 24.7세, 여자 17.8세에서 20.5세로 3세가까이급상승하며, 이후에도지속적으로상승하여 2000년에는남성 29.3세, 여자 26.5세였다 ( 권태환김두섭 2002). 센서스를이용한초혼연령추계는매 5년간격이며 1925년이전과 1940-55년사이의기간이누락되었다. 족보를활용한초혼연령추정에의하면, 20세기전반에양반계층을기준으로한국인의평균초혼연령은남성 16.72세, 여자 16.58세여서 ( 박희진 2006), 남성의경우에상당한차이가있다. 조선인인구동태통계에의하면 20세미만에결혼하는비율이 1912-23년에남녀각각 0.43 0.39%, 0.68 0.64% 로변하였다 ( 善生永助 1925). 또한 1938 39년에평균혼인연령은남성이 25.8세이고여성은 20.3세였으며 ( 朝鮮厚生學會 1943), 10% 정도의재혼이포함된것을감안하더라도센서스로부터추계한평균초혼연령과는상당한차이가있다. 혼인연령은 1990년에남성 27.8세, 여성 24.8세이고, 2010년에남성 31.8세, 여성 29.8세 ( 統計廳 ) 이 1) Hajnal은특정연령코호트의 15세미만에서는결혼이없고 49세까지는모두결혼한다는가정하에이코호트가 49세까지미혼으로있을가능성으로부터평균초혼연령을추정하였다. 그것을산 식으로표현하면다음과같다., 는 x 연령의미혼율. - 2 -
며, 이는세계적으로도매우높은편이다. 본논문의목적은한국인의혼인연령 혼인율의장기추이를시야에두고 1940-50년대일제하전시기와한국전쟁이한국인의혼인율과혼인연령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를민적부의혼인기록을이용하여구명하는것이다. 즉, 전시기에혼인연령 혼인율은다른시기와뚜렷한차이가있는가? 있다면그이유는무엇이며, 전시기의동원이그것과어떤관련이있는가? 일제하戰時期와한국전쟁기간에는어떤차이가있었으며그이유는무엇인가? 본논문은자료상의한계로인해이론적분석보다는실태를밝히는데초점을두었으며, 혼인연령의장기추이는제시함으로써센서스를이용한기존추계를보완또는대체하는의미를갖고있다. 이하제II절에서혼인연령과혼인율에관한이론과본논문이이용한자료에대해설명하고제III절에서는초혼연령의장기추이를연도별코호트별로분석하며, 제IV절에서는 1940-50년대의전시기에초점을맞추어결혼패턴이달라지는것을설명하고제V절에서글을요약한다. II. 이론과자료 1. 이론 결혼패턴은다양한측면에서영향을미친다. 우선, 인구학적측면에서보면, 혼인율과초혼연령은출산율의가장중요한요인이다. 인위적인피임이용이하지않던전근대사회에서는물론, 근대사회에서도초혼연령은출산력을결정하는가장중요한요인이다. 영국은 18세기이후인구가급증하였는데그중요한요인은바로혼인율의증가 ( 즉, 미혼율이 1/4 1/10로감소 ) 와여성의초혼연령하락 (26세 23세) 이었다. 물론현대에는초혼연령이출산력에미치는영향이과거보다는상대적으로감소했지만초혼연령이낮을수록가임기간이길어질뿐아니라출산능력이커기때문에더많은자녀를가질가능성이커진다. 다음으로, 사회학적측면에서결혼은가족이재생산되는시작이며가족이구성되고기능하는방식을반영하며가족내의남녀관계에영향을미치는요소로서주목받고있다. 또한결혼은배우자로서의역할에관련된사회적규범에도영향을미치므로결혼패턴을통해여타의사회적변화에대해서도이해할수있다. 가령초혼연령은가족형성의시기에영향을미치고그것이높아질수록세대교체의간격이길어지는반면, 부부간에적응기간이짧아지는결과를가져온다는점에서중요한함의를갖는다. 마지막으로사회정책측면에서, 초혼연령과혼인율의변화는사회정책수립에중요한영향을미친다. 부부와자식으로구성된핵가족을일반으로하는사회에서는초혼연령패턴은주택시장의수요와노동시장의공급에영향을주며, 이들시장에대한정책과밀접한연관을갖고있다. 또한조혼또는만혼이질병이나출산에여러가지영향을미치므로초혼연령은보건위생정책과도관련있다. [ 그림 1] 결혼패턴의인과관계 - 3 -
일반적으로경제가성장하면서초혼연령은점차높아지고혼인율은낮아지는경향이있다. 저개발국은개발국보다초혼연령이낮고동일국가내에서는도시보다농촌이혼인연령이낮은경향이있다. 혼인율과초혼연령을결정하는요인을설명하는세가지방식이있다. 2) 첫째, 혼인은사회조직으로서의가족, 친족제도를유지하는중요한요소이다. 따라서혼인과관련한다양한관습및제도와지역, 문화, 시기에따라차이를보이는혼인에대한태도가혼인에영향을준다. 예컨대, 전근대사회에서아시아와유럽간에는결혼패턴에차이가있어, 전자에는조혼과보편적혼인풍습이있고후자에는만혼풍습이있었다. 혼인은당사자뿐아니라가족 친족제도에의해서도영향을받는다. 대가족제도하에서는조혼이나타날가능성이큰반면, 경제적자립을요구하는핵가족제도하에서는만혼의가능성이있다. 분할또는공동상속제도에서는조혼의가능성이큰반면, 단독상속제하에서는만혼의가능성이크다. 결혼지참금제도와종교및신분제가강한사회에서는조건에맞는배우자를찾기어렵기때문에초혼연령이상승하고혼인율이낮을가능성이크며, 종교적배경도결혼패턴에강한영향을미친다. 3) 남녀간에도차이가있어, 남성의초혼연령은경제적변수에더영향을받지만여성초혼연령은문화적요인에영향을받는다는연구도있다 (Li 1995). 둘째, 경제학적관점에서보면, 초혼연령이나혼인율은결혼에대한개인의합리적선택에의해결정된다고할수있다. Becker(1973) 로부터비롯된결혼에대한합리적선택모델은결혼시장에서좋은배우자가가져야할특질의중요성을강조한다. 결혼패턴은기본적으로가정에서의남녀간의분업에의해결정된다. 남성이생업을담당하는경우에는여성의인적자본은가사에특화되기때문에여성이남성보다빨리결혼한다. 그러나맞벌이의경우에는노동시장과가사에대한시간할당이남녀간에대칭적이고따라서분업화가생기지않고남녀의인적자본에대한투자도동일하기때문에결혼이주는기대소득이크지않아혼인율이하락하고여성의혼인연령이상승한다. 어떤경우이든간에남녀는결혼을통해기대수익을최대화하기위해배우자의특질을측정하고상호교환하며, 또한기대에부합하는배우자획득의전망에따라결혼을연기하거나포기한다. Keely(1979) 는 Becker의모델에따라결혼 ( 초혼연령 ) 패턴을다음과같이정리하였다. 초혼연령 탐색기간 혼인율 결혼에의한기대수익 - - + 배우자탐색직접비용 + - - 개인특성의편차 0 + 0 시간할인율 - - - 자료 : Keely(1979), p.532 < 표 2> 결혼의기대수익과비용이결혼패턴에미치는효과 예컨대여성임금의상승은남녀모두의결혼기대수익을낮추고탐색기간을연장하며, 혼인율을낮춘다. 혼인적령기남녀성비 ( 남 / 여 ) 의하락은남성 ( 여성 ) 의수익을높이며 ( 낮추며 ), 따라서 2) 세가지요인은 Dixon(1971) 이초혼연령과혼인율에영향을미치는요인으로지적한 availability of mates, feasibility of marriage, desirability of marriage 와도통한다. Dixon 은 feasibility 를주로거시지표로설명하고있지만, 대가족제가일반적인경우에는결혼이실행가능하며조기에이뤄진다고함으로써그것이제도나관습의영향을받는다고하였다. 3) 그러나 Saardchom and Lemaire(2005) 에의하면, 종교마다초혼연령이나혼인율에주는영향이다르며, 근대화와교육은초혼연령을높이고배우자간연령차이를줄이지만,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요인은여성의혼인연령을낮추고배우자간연령차이를증가시킨다고한다. - 4 -
남성의초혼연령은높아지고여성의초혼연령은낮아지며, 또한탐색기간과혼인율도남녀간에달라진다. 여성의교육증가는결혼의기대수익을낮추기때문에여성의교육증가는초혼연령을높이고혼인율을낮춘다. 그런데교육은탐색비용을낮추어주므로초혼연령을낮추고혼인율을높이는효과도있다. 도시화는탐색비용을낮추므로초혼연령은낮아지고탐색기간은길어지고혼인율은증가하게된다. 그러나 Ermisch(1981) 는여성의경제참여율 ( 과임금 ) 상승이결혼에부정적영향을미치지만소득증대가가족구성의경제적제약을감소시켜결혼을촉진할수도있기때문에경제적요인의효과가선험적으로반드시명확하지는않다고한다. Mensch et al.(2005) 는근대교육의보급과문맹율의하락은혼인연령을상승시키지만반대로결혼이늦어져학교를더오래다니거나결혼으로인해학교를중단할가능성도있기때문에학교교육과초혼연령의인과관계가명확하지않다고한다. 또한근대적부문에여성의취업기회가증가하면혼인율이낮아지고혼인연령이상승할가능성이크며따라서도시화가진행될수록혼인연령이상승할가능성이크지만, 저개발국의경우에는도시화가진행되더라도근대적부문의취업증가를의미하지않기때문에혼인연령에큰변화가없을수도있다고한다. 셋째, 경제학자들은기대수익을최대화할수있도록유도하는기회비용을강조하지만, 인구학자들은결혼 pool에서의연령구조, 즉혼인적령기에있는남녀의성비구성이혼인력에영향을미친다고본다. Glick et al.(1963) 는혼인적령기남녀의성비불균형을 marriage squeeze로표현하였다. 결혼시장에서의성별구성에영향을미치는것은출생 사망률이나인구이동과같은것이다. 예컨대전쟁은혼인적령기남성의감소를야기하여혼인율을낮추며적절한배우자를찾지못한남녀의평균초혼연령을높일가능성이있다. 그와반대로전근대중국이나일본에서행해졌던여아살해는혼인가능여성을감소시켜혼인율을낮추고초혼연령을높이게된다. 또한사망률이높은사회에서는인구의장기적인균형상태를유지하기위해혼인연령이낮아질가능성이크다. 결혼시장에서의성비불균형은동거, 이혼증가와도관련있다. 그런데성비불균형은혼인율에영향을주기보다는배우자연령에대한선호를바꾸도록하는경향이강하다 (Esteve et.al 2009, 174-175). Akers(1967) 는 marriage squeeze가초혼연령의변화를대부분설명한다고하고그것을측정하였으며, 과거출생율추세의변화와연관되어있는남녀연령별구성이 marriage squeeze를발생시킨다고하였다. Schoen(1983) 은 Akers의측정이남녀어느한쪽의연령구성만을고려하므로한계가있다고보고성과연령을모두고려한산식에의해 marriage squeeze를측정하였으며, 남녀배우자간연령차이가일정하게유지된다는가정하에서인구가증가할때는여성이, 그리고인구가감소할때는남성이 squeeze 상태에놓인다고하였다. Fraboni and Billari(2001) 는 Schoen의공식을이용하여 2차대전이후이탈리아에서나타난 marriage squeeze가출생률과국내이주에의해생겨난것이라고하였다. Gupta(1999) 는우리나라결혼시장에서의 mariage squeeze를세시기로구분하고있다. 한국전쟁기에출산율이하락했다가전쟁이후회복됨에따라 1950-54년생남성이결혼시장에서유리했던시기, 1960년부터시작된출산율하락과남아선호로인해혼인적령기여성의부족이발생하는시기, 출산율변천이끝나출산율감소로인한영향은줄어든후에도남아선호현상으로혼인적령기여성이부족해지는시기이다. 단, 마지막시기에는베이비붐세대에의해 1991-94년생출산이증가하였기때문에 1985-89년생남성에게는여성배우자의부족이완화되는면이있었다. 정창무 (2008) 는 1990-2006년의시계열자료를이용하여초혼연령상승에영향을미치는여러가지사회경제적요인을분석하였다. 그는회귀식을통해남성과여성 - 5 -
의초혼연령이양의상관관계를갖고있으며각각이전시기의초혼연령과는음의상관관계를갖고있음을밝히고있다. 2. 자료 본논문에서는현울산광역시울주군언양읍과삼동면을대상지역으로하여 1911년부터 1977년까지의 제적부 및 1975년, 77년의 재제부 에기재된혼인기록을분석한다. 제적부란말소된호적을모아편철한장부를말한다. 호의대표자인호주가사망하여호적내다른구성원으로호주가승계되거나, 호주승계자가없어절가가된경우, 호전체가다른행정관할구역 4) 으로본적지를바꾼경우 ( 전적 ) 등의사유가발생하면호적을말소하게되는데, 이때말소되어더이상사용하지않게된호적들을말소연도별로편철하여제적부라고부르고면사무소에보관하게된다. 5) 재제부란현재사용중인호적을새로운양식으로옮겨적은후구양식의호적을일제히말소하여편철한장부를말한다. 대상지역에서는 1975년과 1977년두차례에걸쳐식민지기부터사용하여온세로쓰기방식의구양식의호적을전부가로쓰기방식의신양식으로이기하면서재제부가만들어지게되었다. 호적자료를분석하는데있어서연도별제적부만을사용하게되면해당연도에말소되지않은호적들은분석에서제외되기때문에특정기간의인구동태정보중일부가누락되게된다. 예를들어 1945년이전의출생, 사망, 혼인등의인구동태정보를파악하기위해서는 1945년이전의제적부뿐만아니라 1945년시점에존재하다가그이후에말소되는호적까지도포함해야한다. 본논문에서는특정시점에서전체호적이일괄말소된재제부를분석에포함시킴으로써구양식으로된호적에기재된정보를전부파악하는것이가능하게되었다. 단 1970년부터는호주승계나분가혹은다른행정관할구역으로부터전적하여대상지역에서새로만들게되는호적은신양식으로작성하였기때문에, 재제부를포함했다는것이 1977년까지의인구동태정보를모두확보하였다는것을의미하지는않는다. 1개의호적에는호주를중심으로호주의직계존속, 배우자, 직계비속, 방계친족등이호의구성원으로서기재되어있으며, 이러한호적은호주승계나다른행정관할지역으로부터의전적등으로생성되어호적의말소시점까지존속하면서구성원의출생, 사망, 혼인등의인구동태정보를수록하였다. 호주승계로생성된새호적에는이전호적에기록된출생, 혼인등이동일하게기록된다. 단, 여성이출가로인해호적에서제적된경우에는단 1차례의기록만이남는다. 필자들은반복기재되어있는동일사건을 1개의사건으로정리하고그과정에서원문의오기나원문을전산화하는과정에서발생한입력오류를교정하였다. 남녀각각별도로기재된혼인기록을통합하여 1건으로하고초혼의경우만추출한결과, 혼인건수는 19,004건이고이중에서배우자양측의출생정보를모두파악할수있는것은 7,821건이었다. 나머지 11,183건중여성이지역밖으로출가하여제적된경우가 9,000여건으로대부분이며 1962년법정분가제도실시이후장남이외의자가다른행정구역으로분가한경우가 1,000여건, 기타배우자가호적에기록되기전에사망하였거나기재가누락된경우등이있다. 4) 식민지기에는부또는면이호적의행정관할구역이었다.( 조선호적령제 3 조 ) 5) 1909 년제정된민적법의시행세칙인 민적법집행심득 및후속법령에따르면제적부의보존기한은 50 년으로되어있으나언양읍및삼동면지역은 1911 년제적부까지폐기하지않고면사무소에서보관하고있다. - 6 -
호적과같은인구동태자료는당사자의신고에의존하는소극적파악방식으로정보를취합한다는점에유의하지않으면안된다. 따라서신고의성실성이담보되지않는한자료로서의가치가일정정도훼손될수밖에없다. 실제로행정, 사법당국으로서는적절한정책을수립하는데필요한근거자료의확보나민법을구체적으로실현하기위한부속제도라는측면에서호적제도의완비가중요한문제가되므로주기적으로일제신고기간을두어신고의무자의성실한신고를독려하고호적의완결성을높이려고한다. [ 그림 2] 혼인연도별혼인후첫자녀의출산까지의기간 불성실한신고에의한문제는본논문의분석대상인혼인사건의경우에도찾아볼수있다. 그림 2는자녀의출생정보까지파악할수있는혼인사건에대하여혼인후첫자녀의출산까지의기간을혼인연도별로산포도를그린것이다. 기간이음수인것은혼인연도보다첫자녀의출생연도가빠른것인데, 이는혼인신고를뒤늦게하였음을의미한다. 혼인연도와첫자녀의출생연도가같은것은첫자녀의출생신고를하면서본인의혼인신고를함께하였다는것을의미한다. 혼인신고의연기는시간이지날수록많아지고있는데그이유는불분명하다. 이런문제가있기때문에혼인당사자양측의정보가모두있는 7,821건중자녀의출생정보가있는 7,088건을분석대상으로하고혼인연도를첫자녀의출생정보에따라보정하였다. 혼인연도보다자녀출생연도가빠르거나같은경우에자녀출생연도보다 1년전에혼인을한것으로간주하였다. 자녀출생기록이없는경우는혼인연도를보정할수없기때문에일관성을위해제외하였다. 혼인연도를보정한후연도별혼인건수를나타낸것이그림 3의실선이다. 점선은보정하지않은상태의연도별혼인건수이며 1961년에특별히혼인건수가많았던것은그해 8-10월의인구통태조사신고강조기간을정해신고불성실에따른과태료를면제하면서신고가집중되었기때문이다. 첫자녀의출생연도로혼인연도를보정하면 1961년의혼인중상당수는그이전에혼인한것으로조정된다. 다음으로혼인건수가많은연도는 1944년과 1938년이다. 1944년은후술하듯이징병제의실시와관련된것으로보인다. 1938년에혼인건수가많은이유는아직불명확하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에제시된전국통계를보면 1933년부터 1937년간 5년동안연평균혼인건수가 12만여건인데비해 1938년에는 22만여건의혼 - 7 -
인이있었다고보고되고있는데, 이또한호적정비와연관이있지않을까생각된다. 1960년대후반이후혼인건수가감소하는것은, 법정분가제도에의해혼인과동시에제적되어다른행정구역으로분가한경우에는자녀의출생정보를알수없어제외되었기때문이다. 한편 1923 년이전은혼인건수가적은데, 민사령이개정되어법률혼주의가채택되지않았기때문으로생각된다. [ 그림 3] 연도별혼인건수 III. 초혼연령의장기추이 그림 4는매년도남녀별평균초혼연령의추이를제시한것이다. 혼인건수가 10건이채안되는 1910년대전반을제외하고보면, 초혼연령의장기추이를다음과같이정리할수있다. 1 남성은 1920년대초까지초혼연령이급상승하였으며, 여성역시 1920년대초까지상승추세였다. 2 남성의초혼연령은 1920-30년대에거의일정하였으나 1940년대전반에크게하락하였으며, 여성의초혼연령은 1930년대초부터계속하락하는추세였고 1940년대전반에더빠르게하락하였다. 3 남녀모두해방후 1960년대말까지초혼연령이상승하였으며, 여성이좀더빠르게상승하였다. 4 배우자간연령차이는 1910년대중엽에는평균 2-3세였으나 1920년대초까지 5-6세로증가하였으며, 1940-50년대를거치면서다시 4-5세로감소하였다. - 8 -
주 : 초혼연령분산의눈금은오른쪽, 나머지는왼쪽축 [ 그림 4] 혼인연도별평균초혼연령과초혼연령분산 이상의결과를센서스로부터 Hajnal의방법에의해추계한평균초혼연령 ( 그림에서점으로표시 ) 과비교하였다. 해방후인 1955-70년은언양의평균초혼연령과센서스로부터추계한초혼연령이거의일치하고있다. 그러나식민지기에는남녀모두에서언양의평균초혼연령이센서스로부터추계한결과를상회한다. 센서스로부터추계한평균초혼연령은전국평균초혼연령이고일반적으로도시의초혼연령이농촌보다상대적으로더높으며, SMAM이초혼연령을과대평가하는경향이있는 6) 것으로알려져있는점을감안하면, 언양의평균초혼연령이 SMAM보다더높다는것은의외의결과이다. 그런데앞서언급한 1938-39년의동태통계에의하면평균혼인연령이남성 25.8세, 여성 20.3세였다. 이동태통계에는재혼도포함되어있기때문에그것을감안하면평균초혼연령이남성 24세, 여성 19세내외였을것으로보인며, 7) 따라서언양의경우와비슷하다. 센서스와동태통계사이의이러한차이는다음과같은사정에기인하는것으로보인다. 즉, 센서스는사실상의혼인관계에있는상태를반영하고있다면, 동태통계는혼인신고에의해비로소부부가된상태를반영하고있다. 따라서후자에비해전자는초혼연령이낮게추계될가능성이있다. 한편, 전시기인 1940년전반과 1950년을전후한시기는초혼연령의추이에서서로뚜렷한차이를보인다. 즉, 1940년대전반에는초혼연령이하락하고있는반면, 1950년을전후한시기에는초혼연령이상승하였다. 앞시기에나타난평균초혼연령의감소는남성의경우에보다현저하였으며, 한국전쟁기의초혼연령상승은여성이보다현저하였다. 다음그림 5와그림6은매연도별로혼인연령구성의추이를보여준다. 이는혼인건수가 20 건이상인 1914-75년에매년도의혼인건수를 100으로하여작성한것이다. 언양에서는남성과여성모두 15세미만에서결혼하는사례는거의없거나미미한정도였다. 그림 4에서 1910년대중엽부터 1920년대초까지남성의초혼연령이상승한것은 20세미만남성의초혼 6) 이는 Hajnal 의방법이계급구간내연령간에는미혼율이동일하다고가정하기때문이다. 7) 혼인건수의 10% 를차지하는재혼남성의평균재혼연령이 40 세라면, 초 재혼평균연령이 25.8 세가되기위한평균초혼연령은 24.2 이다. - 9 -
이상대적으로감소한때문이었음을알수있다. 좀더상세히말하면 15-17세에혼인하는남성이감소하면서 20세미만자의비율이줄어들었으며, 대신 20-24세의비율이증가하였다. 조선총독부가혼인연령을법적으로규정한것은 1922년의조선민사령개정 (1923년 7월시행 ) 에서이지만, 이전부터혼인연령을제한하고있었다. 1912년제정된조선민사령제11조는능력, 친족, 상속에관하여는일본민법에의하지않고관습에의한다고규정하여혼인연령도그범주에속하는것으로하였다. 그러나혼인연령에관하여통감부가 1907년에 " 조혼금지에관한건 " 이라는조칙에의해남성 17세, 여성 15세이상을혼인이가능한연령으로규정한바있고, 병합이후에는해당조칙의법적효력은없어졌으나민적상의처리에서위의혼인연령규정을지키도록하였으며 ( 경무과장통첩 ), 민적부가경찰에서행정관서로이관된후통첩 " 민적사무취급에관한건 "(1915년) 을통해역시연령이미달할경우에혼인신고를수리하지않을것으로규정하였다. 따라서조선총독부가 1922년에제령 13호로조선민사령을개정하면서혼인연령에관한일본민법을적용하여 1923년 7월부터 남자는만 17세여자는만 15세에달해야한다. 고규정한것은이미행정처리차원에서이루어지고있던법적혼인연령규정을비로소성문화한것이라고할수있다. 법적혼인허가연령이하의결혼을조혼이라고한다면, 조혼관습은식민지초기에빠르게사라진것으로보인다. 여성의경우에도마찬가지이다. 혼인건수가적어제외한 1910년대전반에는혼인연령이 15세미만인경우가많았으나후반에는크게감소하였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의인구동태통계에의하면전국의결혼여성중에서 15세미만여성의비율은 1910년대전반에는평균 18% 였으나 1920년대전반에는 6% 였다. 대신 20세미만과 25세미만여성의비율이조금씩증가하였다. 통계연보 의혼인통계는재혼을포함하고있지만대부분초혼이므로언양의경우와비교해볼수있다. 그림 6에서보듯이여성의초혼연령이 20세미만인비율이 1910년대후반에 80% 정도였으나 1930년초의 60% 대로감소하였다가식민지기말까지다시증가하고있다. 이러한추이는 통계연보 의인구동태통계에서도비슷하게관찰된다. 즉, 1910년대전반에는 20세미만의비율이 80% 에가까웠으나 1930년대초에는 60% 였고이후다시증가하였다. 한편 1941-45년에혼인한남성의연령구성에서는 20세미만자와 20-24세의비중이크게증가하였다. 그러나해방후의혼인에서는 25세미만자는크게감소하고 25-29세의혼인이빠르게증가하면서초혼연령의급상승을가져왔다. 여성의경우에는해방후부터 1960년대초까지 20-24세의혼인이빠른속도로증가하면서평균초혼연령의상승을경험하였다. 초혼연령의구성을보면, 남성의초혼연령은넓게퍼져있는반면에여성은특정연령에집중되어있었다. 그러나식민지초기에남성의초혼연령분산은지속적으로감소하였으며 1960년대에이르러여성과비슷한정도가되었다 ( 그림4). 전국통계도마찬가지인데, 예컨대 1938 39 년에전국의혼인연령구성을보면, 여성의혼인은매우좁은연령구간에집중되어있는반면, 남성의혼인은넓은연령에분포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즉, 남성의경우에전체혼인건수중 19-24세가 45%, 17-25세가 62%, 17-29세가 79% 를차지하였으며, 여성의경우에는 17-19세가 42%, 16-20세가 63%, 15-22세가 81% 를차지하였다. - 10 -
주 : 범례에서 1500 은 15 세미만, 1519 는 15-19 세, 3000 은 30 세이상을의미한다. 이하동일. [ 그림 5] 혼인연도별초혼연령대의누적구성비 ( 남 ) [ 그림 6] 혼인당시연령별누적구성비 ( 여 ) 이상은단순평균에의해매년도의평균초혼연령을산출한것이다. 그런데출생코호트별로혼인연령에차이가있을때평균초혼연령은각코호트의크기, 즉인구의연령구조에따라영향을받기때문에, 이번에는코호트별평균초혼연령을살펴보기로한다. 이평균초혼연령은여러요인이작용한결과이며, 각코호트의결혼패턴을보여준다고할수있다. 1900년생부터 1950년생까지의출생코호트만을분석에포함하였다. 1900년생이전출생자의경우에는호적에자녀가등재되어있어혼인관계임이분명함에도혼인연도가기재되지않은경우가많아배제하였다. 또한 1950년이후출생자의경우에는본 DB가再製시점인 1977년에서기록이종료되므로이후에결혼한경우혼인여부자체를알수없는경우가많기때문에배제하였다. 다음그림 7에서 1940년대후반에출생한남성의경우에평균초혼연령이하락 - 11 -
하는것도이런이유에기인하는바크다. 그림 7에서보듯이, 1900년대에출생한남성은평균초혼연령이 24-26세이고여성은 19-20 세정도로상당히높은편이었다. 남성의경우에는만혼이적지않았으며남녀모두에서조혼이일반적인관행이었던것같지는않다. 남성은 1910년대말출생자까지, 그리고여성은 1920년대말출생자까지평균초혼연령이하락하는추세였으며이후남성은 1925년출생자부터 1934년출생자까지, 여성은 1928년출생자부터 1941년출생자까지상승하는추세였다가다시하락하고있다. 특히남성은 1925-34년출생자사이에초혼연령이 3.6세의상승이있었고, 여성은 1927-41년출생자사이에 4.8세의상승이있었다. 초혼연령이급격하게변하는시기에초혼연령의분산이남성의경우에는오히려작아졌으며여성의경우에는전후의시기에비해약간높아졌다. 주 : 분산의눈금은오른쪽, 평균초혼연령의눈금은왼쪽. [ 그림 7] 출생연도별평균초혼연령과초혼연평분산 코호트별로결혼패턴이어떻게변하는가를비교하기위해코호트별혼인건수를 100으로하여초혼연령의구성을보았다 ( 그림 8, 그림 9). 1900년대에출생한남성의경우에 50% 전후가 25세전에결혼하지만나머지반은 25세이상에서결혼하였으며, 1910년대출생자는 70% 가까이가 25세이전에결혼하였다. 이중 10대후반에결혼하는남성이매코호트에서 20% 전후를차지하였다. 그러나 1925-34년에출생한남성에서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크게감소하고 20대전반에결혼하는비율도감소하는대신, 2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크게증가하기시작하여전체혼인건수의 60% 이상을차지하였다. 여성의경우에는 1900년경출생자는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 60% 정도였으며 1927년출생자까지그비율이지속적으로증가하고대신 20대전반에결혼하는비율이감소하면서그림 7에서보듯이출생코호트별초혼연령이낮아졌다고할수있다.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가장높았던코호트는 1919-27년출생자였다. 그러나 1928-41년에출생한여성에서패턴이크게바뀌었다. 즉, 이기간에출생한여성들중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은크게감소하고대신 20대전반에결혼하는비율이 70% 이상을차지하는정도로크게증가하였다. - 12 -
이처럼 1920년대중엽에서 1930년대초사이에출생한남성과 1920년대말에서 1940년사이에출생한여성의결혼패턴에서급격한변화가있었다. 이런변화를가져온요인은무엇인가? 초등교육의확산이이런변화에영향을주었을것으로생각된다. 초등교육은 1920년대전반에확대된후정체하다가 1930년대초부터식민지기말까지급격하게확대되었다 ( 박기주 2012). 여성의초등교육도 1930년대초부터빠르게확대되었다. 도시화또한초혼연령의변화를설명하는하나의요인으로생각할수있다. 도시로직업을구하기위해이주하는경우가많아지면서늦게결혼하는경향이증가할가능성이있다. 본자료에서는외지이주여부를첫자녀의출생지로판단할수있다. 군외또는도외로의이동은대체로 15-30% 정도였던것으로생각된다. 이런외지로의이동이초혼연령에미치는효과를보기위해출생연도고정효과 (fixed effect) 를포함하는회귀분석을시도한결과, 외지로의이동을나타내는변수가초혼연령에통계적으로유의한영향을주고있는것으로나타났다. 8) 그러나초혼연령의변화에교육이나외지로의이동보다도더중요한영향을미친것은전쟁이었을것이다. [ 그림 8] 출생연도별초혼연령대누적구성비 ( 남 ) 8) 관측치수는 7,088 건중첫자녀의출생지가기재되는않은 70 건을제외한 7,018 건이며, 남녀각각에대해회귀분석하였다. - 13 -
[ 그림 9] 출생연도별초혼연령대누적구성비 ( 여 ) IV. 전시기의결혼시장 앞이그림 4에서확인했듯이, 초혼연령은 1910년대의상승, 1940년대전반의하락, 1940년대후반부터 1960년대까지의상승으로크게변하였다. 1940년대전반은일제하태평양전쟁기이며, 1940년대후반부터 1960년대전반은해방과한국전쟁, 그리고경제성장기가이어지는시기이다. 특히혼인연령의추이에큰변화가있었던시기는태평양전쟁기와한국전쟁기를포함하는 1940-50년대이다. 이시기에결혼을하게된출생코호트는 1920년대중엽에서 1930년대전반에출생한남성과 1920년대말에서 1930년대에출생한여성들이다. 앞의그림 8과그림9에서본것처럼, 남성의경우 1924-26년출생자는 10대후반과 2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높았으며, 이후출생자는 20대후반에주로결혼하였다. 여성의경우에 1920년대말출생자는 10대후반에혼인하는비율이이전출생자보다도더높았으나 1930 년대출생자에서그비율이급격히낮아졌다. 전쟁은결혼시장에가해지는외생적충격이다. 전쟁은혼인적령기의남성을동원함으로써결혼적령기의남녀성비를여성에게불리하게하며 (1차적효과 ), 또한다음세대의결혼시장에도영향을미친다 (2차적효과 ). 즉, 전시의남녀성비불균형이출생아의성비에영향을주고 (Bateman and Kvasnicka 2011), 전시의낮은혼인율과출생률, 그리고전후의혼인율과출생률회복은다음세대의결혼시장에성비불균형을야기한다. 전시에출생한남녀는결혼시장에서유리한입장이되는반면, 남성이여성배우자보다연령이높다면전전에출생한남성이나전후에출생한여성은결혼시장에서불리한입장에놓인다. 1940년대전반의결혼시장의변화는전시동원체제에기인한바가컸다. 1938년국가총동원법이공포된이후본격화된전시동원체제는혼인적령기에있는남녀가자원이나강제에의해외지로이동하는기회를확대시켰다. 특히 1944년의전면적인징용 징병과여자정신대에의해그것은피크에달하였다. 일제는 1938년 2월에 육군특별지원병령 에의해만 17세이상 20 세미만의조선인남성을현역또는제1보충역으로편입할수있도록하였다. 1938-43년에는지원병제도, 1944-45년에는징병제가실시되었으며 1943년 3월에징병대상을파악하기위해만 20세이하의조선인남성에대해서일제히조사하고 1943년 10월에신청을받아 1944년 - 14 -
4월부터징병검사를실시하였다. 강원도의사례에의하면징집연령은대체로 21세였으며, 해군의경우에는 22세가가장많고 18-20세도큰비중을차지하였다 ( 김영미 2006). 전시동원체제로인해결혼패턴에어떤변화가있었는가를초혼연령별구성을통해확인할수있다. 표2에서보듯이, 1941-44년은직전의시기와비교하여초혼연령이남성은 1살낮아졌으며, 여성도약간낮아졌다. 남성의경우, 줄어들고있던 20세미만연령에서결혼이크게늘었으며, 반면증가하던 25-29세의비율은감소하였다. 여성의경우도마찬가지로이전시기에비해 20세미만의비율이증가하고 20-24세의비율이줄었다, 특히 1944년만을보면남녀모두 20세미만의결혼비율이전체의크게높아지면서평균초혼연령을하락시켰음을알수있다. 결혼시장에서나타난이러한변화는, 다음과같은여러구술자료로부터확인할수있는바와같이, 징병을앞둔남성과처녀공출을피하기위한여성의조기결혼때문이었다. 나는 18살에장가를갔지요. 한참대동아전쟁중이었지요. 그전쟁바람에나도서둘러장가를간거구요. 우리부모님이내가군대가기전에장가를들일려고애를쓰셨지요. 우리집사람도나랑동갑이었는데그집에서도딸이정신대로끌려갈까봐서둘러서시집보낸거구요. 그래서내가좀일찍장가를갔지요. ( 한경혜 1993, 307-308) 남 1931 1935 1941 1944-34년 -38년 -44년 년 1946 1950 1956 1931 1935 1941 1944-49년 -53년 -59년 -34년 -38년 -44년 년 여 1946 1950 1956-49년 -53년 -59년 20세미만 0.20 0.14 0.20 0.26 0.14 0.06 0.04 0.67 0.74 0.85 0.91 0.76 0.52 0.25 20-24세 0.38 0.40 0.46 0.50 0.50 0.45 0.31 0.29 0.23 0.13 0.08 0.22 0.46 0.71 25-29세 0.27 0.34 0.25 0.18 0.28 0.40 0.55 0.03 0.02 0.02 0.01 0.02 0.02 0.03 30세이상 0.15 0.13 0.09 0.05 0.08 0.09 0.11 0.00 0.01 0.00 0.01 0.00 0.01 0.01 평균 24.1 24.6 23.6 22.4 23.7 24.7 25.6 18.9 18.5 17.9 17.5 18.1 19.4 20.8 < 표 3> 각시기혼인의연령별구성 일제하의징용 징병은해방후의결혼패턴에도큰영향을남겼다. 표 2에서 1946-49년의남성초혼연령을보면해방전과뚜렷한차이를보였다. 남성이 20세미만에결혼하는것은 4% 에불과하고 25-29세에결혼하는것이과반을넘는것으로나타났다. 반면여성은 1930년대와비슷한구성을보여주고있다. 남성은징용 징병으로결혼하지못하고떠나게되면해방후귀국할때까지결혼이연기될수밖에없었기때문에 20세중후반에결혼하게되는경우가많아졌다고할수있다. 9) 여성의동원은남성에훨씬미치지않았을뿐아니라, 가령정신대로동원되었더라도해방후귀국하기까지는 1년정도의짧은기간이었기때문에 1940 년후반의혼인연령의구성은 1930년대와큰차이가없었다고생각된다. 한국전쟁기의결혼패턴은일제하전시기의그것과전혀달랐다. 남성의초혼연령에서 20-24 세의비율이가장커졌고다음이비슷한정도의비율을차지한 25-29세였으며, 평균초혼연령은 1940년대전반에비해 1살더높아졌다. 여성의경우에는 15-19세와 20-24세의비율이거의비슷한정도가되면서 1940년대전반에있었던조기결혼의모습은상당히사라졌음을 9) 한구술자료는징용이늦은결혼의원인이었음을말하고있다. 나는 25 살에장가를갔어. 해방되고난다음해였지. 내가 20 살때에일본후꾸오카에있는탄광으로끌려갔어 거기서내가 4 년을있었네 나는내친구처제한테일본에서돌아와서일년쯤있다가장가를들었어. 장가를 25 살에갔으니정말늦었지요. 그렇지만전쟁터에끌려가고전쟁끝나고돌아와보니이미나이든노총각이된거지요. ( 한경혜 1983,p.304,308) - 15 -
알수있다. 20세미만자의비율이크게감소한것은해방직후에나타난변화와연속선상에있지만한국전쟁을통해더욱현저해졌다. 정부수립당시한국군병력규모는 10만명정도였다. 1949년 8월병역법공포로국민개병제에입각한징병제도를개시하였으나미군이한국군의규모를 10만명으로제한했기때문에징집의필요성이없어져징병검사를보류하고병무행정기구도해체하였다. 그러나한국전쟁이발발하자당시필요병력이약 30만명으로추정되었고따라서 20만명의신병보충이요청되었다. 그러나정상적인징집은불가능한상태였기때문에 20세이상 40세미만병역해당자를병역법제2조에의한제2국민병으로가두소집하였다. 1950년 11월에제2국민병등록을실시한결과약 240만명이등록하였다. 1952년 9월부터제2국민병소집과 20세남성의징집을병행하다가 1955년 8월말에제2국민병소집을종결하고병역법에따른징집과지원에의해서만신병을보충하였다. 병역법상의복무기간은육군이 2년, 해군이 3년이었으나전시또는사변시에는복무기간을연장할수있었다 ( 제18조 ). 연간징집가능한병역자원이 20만명을약간넘는상황에서 1953년 7월휴전당시 70만명의병력을유지한것으로보면, 사실상군복무기간은 3-4년이었던것으로추정되며휴전후에도 3년의복무기간이불법적으로유지되었다. 10) 이처럼한국전쟁을계기로하여실시된제2국민병과병역제도는복무기간동안결혼을연기시킴으로써남성의평균초혼연령이상승하는결과를가져왔다. 일제하전시기에는남성과여성모두조기결혼이많았던반면, 한국전쟁기에는결혼이연기되었다. 1944년과 1950-53년을비교하면평균초혼연령이남성은 2.3세, 여성은 1.9세가높아졌다 ( 표 2). 일제하전쟁은타국에서일어난것이고생존하여귀환할가능성도낮다고생각하여남성은전시동원에앞서후손을잇기위해, 여성은동원을피하기위해서둘러결혼할유인이있었다면, 한국전쟁은국내에서발발한전쟁이므로전쟁의혼란이있고또한갑작스런징집으로오히려약속된결혼도연기가불가피한상황이었다고할수있다. 결혼패턴의변화는출생코호트별로도뚜렷하게나타난다. 그림 10과그림 11은 5세간격의출생코호트별로연령별혼인구성비를누적하여도시한것이다. 곡선의최고점은 1이되며, 곡선의형태를결정하는것은결혼이시작되는연령, 혼인연령대이다. 11) 남성의경우 1925-29년출생자이전과이후가다르다. 즉, 이전에는낮은연령에서결혼이시작되어혼인연령대가비교적넓었던반면, 이후에는전보다시작연령이높아지고혼인연령대도좁아졌다. 1925-29년에출생한남성코호트는시작에서는이전코호트와비슷하고마치는지점에서는이후코호트에비슷하다. 즉, 이출생코호트는이전처럼혼인을일찍하는사람과전쟁으로인해혼인을늦춘사람들이혼재되어있는과도기적상태를보여주고있다. 여성의경우에는 1930-34년출생자이전과이후의곡선이차이가있으며, 남성과는달리, 이전에는혼인연령대가좁았으나이후에는혼인연령대가다소넓어지는변화가있었다. 각출생코호트에서혼인의 40-80% 가발생하는연령대를보면, 1910-24년에출생한남성의경우에는 22-26세인반면, 1930-34년에출생한남성은 25-28세, 1935-44년에출생한남성은 26-29세였다. 여성의경우에는 1910-24년에출생한여성이 17-19세인데반해, 1935-49 년에출생한여성은 20-23세였다. 결혼패턴변화의중간에해당하는 1925-29년에출생한 10) 복무기간은 1959 년에 33 개월로단축되고 1962 년에 30 개월로단축되었다가 1968 년무장공비의청와대습격사건으로다시 36 개월로환원되는변화가있었다 ( 蘇忠鎬 2003). 11) Coale(1911) 은혼인시작연령과혼인연령대 ( 즉, 혼인증가속도 ), 혼인율에따라혼인누적비율곡선의형태가다르지만, 그것을표준화하면대부분일치하는패턴을찾을수있다고한다. - 16 -
남성은 23-28세였으며, 1930-34년에출생한여성은 19-22세였다. 이처럼전시기에혼인적령기를맞이한코호트를기준으로하여이전과이후의결혼패턴에변화가있었다. 주 : 범례는출생연도를의미한다. 예컨대 1014는 1910-14년생이다. [ 그림 10] 각출생연도의연령별혼인누적비율 ( 남 ) 주 : 그림 10 과동일 [ 그림 11] 출생코호트의연령별혼인누적비율 ( 여 ) 코호트별혼인시점과혼인연령대가전시기를지나면서달라지고있음을확인하였지만, 변화는전시기를통해배우자간연령차이에도나타나고있었다. 다음그림 12는혼인건수가 20건이상되는 1914년부터배우자간연령차이별구성비의추이를보여준다. 남성연령에서여성연령을뺀차이가 0세미만, 0-2세, 3-6세, 7-9세, 10세이상인그룹으로구분하였다. 전기간으로두고볼때가장많은혼인은남성이여성배우자보다 3-6세많은그룹이며, 그다음이 0-2세및 7-9세의연령차이가있는그룹이었다. 1920년대초까지세그룹은큰차이를말하기어려울정도의비중을차지하였다. 1920-30년대에는 3-6세차이그룹이 30% 전후를차지하였으며 0-2세및 7-9세차이그룹이각각 20% 내외를 - 17 -
차지하였다. 12) 이세그룹의합하여 1930년대까지전체혼인건수의 60-70% 였으며, 따라서남성이여성보다 10세이상이거나여성이연하의남성과결혼하는경우가드물지않았다고할수있다. 그러나 1940-50년대를통해배우자간연령차이는크게바뀌었다. 전체혼인건수의 30% 에불과하던 3-6세그룹의구성비가점차증가하여 1960년대전반에 60% 에근접한반면, 다른그룹의구성비는감소하였다. 특히남성의연령이 10세이상많은그룹과여성의나이가많은그룹의비율은급격히감소하였으며, 0-2세및 7-9세그룹의구성비도줄어들었다. 즉, 전시기및이후의시기를통해남녀배우자간연령차이가어느정도일정한범위로좁혀진반면, 전시기이전에는드물지않았던연하남과의결혼이나연령이크게차이나는남성과결혼하는경우는줄어들었다. 배우자간연령차이의변화는결혼시장에서남녀의연령대별성비불균형 (age specific marriage squeeze) 과어느정도연관되어있다고할수있다. 전시이전에남성의연령은비교적넓은연령대에분포하고여성의연령은 20세미만의좁은연령대에집중되어있었다. 이런패턴이비교적장기간유지될수있었던것은인구가증가하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1940년대전반의전시기에남성과여성의조기결혼으로인해 16-18세의여성과 19-23세의남성간의결혼이많았다. 표 3은전시기인 1941-44년및 1950-53년을전후의다른시기와비교한것이다. 앞의그림 4에서이미확인한것이지만, 1941-44년에는이전보다남녀모두평균초혼연령이낮아지고분산도작아졌다. 주목되는것은배우자간연령차이의분산은크게작아지고혼인연령의상관관계는크게높아졌다는점이다. 이는그림 12에서보듯이배우자간연령차이 4-6세그룹의구성비가커지면서동시에배우자간연령차이가일정해지고있음을의미한다. 이는젊은남성들이결혼시장에많아지면서고연령의남성이저연령의여성배우자를구하기가쉽지않게되어고연령남성과저연령여성의결합이줄었기때문으로생각된다. 13) 한국전쟁기에는반대로징집으로인해젊은남성이상대적으로부족하였기때문에결혼시장에서남녀의평균초혼연령은이전보다높아졌다. 또한배우자간연령차이의분산은크게작아졌으며배우자간연령의상관관계가높아졌다. 이는혼인연령대가집중되면서배우자간연령차이가일정해지고있었음을의미한다. 한국전쟁이후에남성은병역을마친후에결혼하는것이일반화되었으며, 따라서남성의초혼연령은높아지고그에수반하여여성의초혼연령도높아졌으며, 혼인연령차이의분산도낮아지고남녀연령의상관관계도계속높아지고있었다. 남성은결혼연령대가넓게퍼져있고여성은비교적저연령대에집중되어있어고연령과저연령의혼인이만연하던식민지기의결혼시장과달리, 1940년대전반과 1950년대전반의전시기를통해혼인연령대가집중되고또한배우자간연령차이도일정해지는패턴이형성되었다고생각된다. 남성의결혼연령변화는가족제도의변화와도관련이있을것으로생각된다. 즉, 대가족제에서는자립이불가능한젊은남성의경우에도결혼이가능했지만, 전시기를통해대가족제가해체되면서남성의경제적자립능력이중요해졌기때문에어느정도자립의기반을가진남성의결혼가능성이높았다. 여성의경우에는식민지기의결혼시장에서남편과의지나친연령 12) 1920 년대초까지와그이후에연령차이의구성이조금변하는것은남성과여성의혼인가능연령에차이를둔조선민사령개정과도관련이있는것같다. 13) 해방전에젊은여성의혼인의증가는, 표 2 에서확인할수있듯이, 해방후결혼시장에서남녀간에혼인연령의상관관계를낮추는영향을준것으로생각된다. - 18 -
차이가가정내에서여성의지위에불리하게작용하였으나전시기에그런관습으로부터벗어나면서점차조기결혼을피할수있었다. 소설 자유부인 은가정내종속적인지위로부터여성이해방되고있음을말해준다고할수있다. 따라서어린여성의결혼연령은점차결혼시장에서사라지고남성과적절한연령차이를보이는 20대전반으로정착되어갔다. [ 그림 12] 배우자간연령차이별혼인수구성비 남성평균 여성평균 남성분산 여성분산 남녀차이 차이분산 남녀corr. 1931-34 24.1 18.9 27.6 6.1 5.2 27.8 0.2294 1935-38 24.6 18.5 25.2 6.8 6.1 26.4 0.2133 1941-44 23.4 17.9 22.2 6.2 5.6 20.8 0.3216 1946-49 23.7 18.2 17.7 5.3 5.5 18.6 0.2294 1950-53 24.7 19.5 13.9 5.5 5.3 13.2 0.3555 1956-59 25.6 20.8 12.5 5.2 4.8 11.8 0.3656 1961-64 26.4 22.1 10.1 7.5 4.3 9.4 0.4706 < 표 4> 시기별초혼연령및배우자간연령차이의평균과분산, 상관계수 V. 맺음말 이상에서언양의민적부의혼인기록을기초로하여장기에걸친초혼연령의추이를살펴보았다. 이는센서스를이용한초혼연령추계가안고있는여러가지한계를보완하거나대체하는의미를갖는다. 이하에서본논문의결과를요약한다. 평균초혼연령은남녀모두 1920년대초까지급상승하였으며, 이후일정하다가남성은 1940 년대전반에크게하락한후 1960년대말까지다시상승하는추세였으며, 여성은 1930년대초부터하락하고 1940년대전반에더빠르게하락하다가이후상승하였다. 배우자간연령차이는식민지기에 5-6세이다가해방후 4-5세로감소하였다. 연령대별로, 식민지초기에남녀모두에서법적혼인허가연령미만의조혼이감소하면서평균초혼연령이상승하였다. 남성 25세미만의결혼이 1940년대전반에증가하였으나해방후에급격히감소하였으며여성도혼인연령 20세미만자식민지기말까지크게증가하다가해방 - 19 -
후에급감하면서남녀모두초혼연령이크게상승하였다. 출생코호트별로초혼연령은남녀모두하락추세를보이다가남성은 1925-34년출생자에서, 여성은 1927-41년출생자에서상승하다가다시하락하고있다. 남성은 1925-34년출생자사이에초혼연령이 3.6세상승하였고여성은 1927-41년에출생자사이에 4.8세상승하였다. 이전코호트와결혼패턴이크게달라져, 1920년대중엽에서 1930년대초사이에출생한남성은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크게감소하고 2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증가하기시작하며, 1920년대말에서 1940년사이에출생한여성도 10대후반에결혼하는비율이크게감소하고 20대전반에결혼하는비율이크게증가하였다. 혼인연령의추이에큰변화가있었던시기는태평양전쟁기와한국전쟁기를포함하는 1940-50 년대이다. 이시기에결혼을하게된출생코호트는 1920년대중엽에서 1930년대전반에출생한남성과 1920년대말에서 1930년대에출생한여성들이었다. 1940년대전반에전시동원체제로인해징병을앞둔남성과처녀공출을피하기위한여성의조기결혼때문에남성의경우에줄어들고있던 20세미만에서결혼이크게늘었으며여성의경우도마찬가지로전후시기에비해 20세미만의혼인비율이증가하였다. 해방직후에는결혼하지못하고징용 징병으로떠난남성의귀환으로남성의경우에 20세중후반에결혼하게되는경우가많아졌으며, 여성의경우에는전시이전인 1930년대와비슷한상태로회복되었다. 뒤이어발생한한국전쟁을계기로하여실시된제2국민병과함께징병제도는 3-4년정도의복무기간만큼남성의평균초혼연령의상승시키는결과를가져왔다. 출생코호트별로는전시기에혼인적령기를맞이한남성 1925-29년출생자와여성 1930-35년출생자가결혼패턴변화의과도기적상황을보여주었다. 남성의경우에이전에는저연령층에서부터결혼이시작되어혼인연령대가비교적넓었던반면, 이후에는전보다시작연령이높아지고혼인연령대도좁아졌다. 여성의경우에는 1930-34년출생자이전과이후의곡선이차이가있으며, 이전에는혼인연령대가좁았으나이후에는혼인연령대가다소넓어지는변화가있었다. 변화는배우자간연령차이에서도나타나고있었다. 즉, 식민지기에는배우자간연령차이가매우크거나여성이연하남과결혼하는경우도드물지않았으나전시기를지나면서남녀모두혼인연령대가집중되면서배우자간연령차이도대체로일정해졌다.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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