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북한의개혁개방전망 김철 요녕사회과학원한반도연구센터비서장 북한노동당대표자회개최를앞두고김정일국방위원장이지난 8월말방중한지 4개월만에재차중국을방문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의이번방중목적을놓고여러가지추측을하는가운데북한이개혁 개방노선을채택하는준비라는분석이큰무게를싣고있다. 향후북한은과연개혁 개방을하게될것인가? 1. 김정일위원장방중의의미김정일위원장이금년 5월과 8월, 불과 4개월을사이에두고중국을연이어방문하였다. 이번방문에서후진타오 ( 胡錦濤 ) 중국국가주석은경제건설중심을견정불이 ( 堅定不移 ) 하게견지하면서사회주의현대화를전면적으로발전시키고끊임없이민생을보장 개선하는것이 30여년간진행해온중국개혁개방의기본경험이라고했다. 아울러경제를발전시키자면자력갱생은물론대외협력도떠날수없으며, 이는시대의흐름에순응하고나라발전을다그치는필요한길이라고지적하였다. 이에대해김정일위원장은 중국은개혁개방후신속한발전을가져왔으며도처에서생기가넘치고있다, 자신은 이역사과정의증인 이라고하면서개혁개방을높이평가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이이번방중노선으로동북지역을선택한것이특별한의미가있다고할수있다. 조선신보 는 동북지방은 1920년대부터김일성주석이항일투쟁을벌이고고장이며일제를반대하는공동투쟁속에서조 중친선의역사적뿌리가마련된곳 이라며, 두나라우호친선의시원은주석님께서동북의물과공기를마시며중국의혁명가, 인민들과손잡고싸우신 1920년대까지거슬러올라간다 고강조하였다. 1) 여기서볼수있듯이김정일위원장은이번방중에서두개의뿌리를찾은것이다. 하나는김일성주석의혁명의뿌리이고다른하나는중 북친선의뿌리이다. 우선, 북한은김일성주석의나라이며언제까지나김일성주석의노선을떠날수없다. 북한은이번방중에서선대수령이그초석을닦아놓았음을인민들이확인하게되었다고하였다. 즉 강성대국의대문 은 노선전환 이아닌전통계승의연장선위에있다고주장하고있다. 다음으로, 중 북친선은김일성주석이 1920년대에중국의혁명가, 인민들과손잡고싸우면서부터이루어지기시작했다. 중국공산당이 1921년에창립되었다는점을감안하면북한과중국은혁명의 1) 전통계승의지침을세운중국비공식방문, 2010 년 9 월 1 일. 2 www.kmi.re.kr
시작부터운명을함께했다는것을말해준다. 중국이모택동사상, 등소평이론, 3개대표, 과학적발전관으로이어지면서개혁개방정책으로사회주의건설에서큰성취를이룩하였다면, 북한역시강성대국건설을위하여 대담하고적극적인 결단을내려야할것이다. 2. 북한의개혁개방의가능성북한은과거 7.1 조치를비롯하여조심스럽게나마경제개혁조치를취해왔다. 워낙개혁개방에대해거부감이있는데다개혁의쓴맛만감수하였던북한의개혁개방이요절의운명을면치못한것은아주자연스러운일이다. 여기에는여러가지원인이있겠지만개혁의돌파구와대상이물질생산부문이아닌, 금융이나유통, 물가등높은발전단계에서나삼아야할대상을선택한것이핵심요인으로볼수있다. 이로인해북한은시장경제에대해부정적인인식을가지게됐다. 북한은현단계에있어서적대세력의제재속에서어떻게생존해나갈것인가가주요문제이라고인식하고있으며, 시장경제가자본주의요소를키웠고빈부격차를초래하는등부정적인역할을하였다고보고있다. 북한은국제경제교류와협력을위하여부정적영향을최소화하는전제로시장경제를활용할수있다고보고있다. 북한은자력갱생이번영의길이라면외세의존은망국의길로보고있다. 그럼에도북한은자력갱생에대하여새로운해석을하였다. 2001년 2월 28일 노동신문 에발표한 자력갱생에서나서는중요한 문제 라는문장에서, 새세기에자력갱생의원칙에따라독립자주의민족경제를건설하는것은경제건설에서대외관계를봉쇄하는것이아님을지적하였다. 다른한편, 자력갱생원칙을견지함에있어서반드시경제실리를따지는원칙을견지해야한다고주장하였다. 실리에부합된다면자력갱생과대외경제교류가모순되지않는다는해석이다. 하지만지속되는국제제재속에서북한의대외경제교류전략은진척이없었고부득불과거로돌아가야만했다. 과거의자력갱생은자각적인것이었다면오늘날북한의자력갱생은피동적이라고보아야할것이다. 3. 유연한개혁개방방향사회주의국가들에서추진되는경제개혁은체제전환적인개혁과체제내의개혁으로구분할수있다. 체제전환적인개혁은사회주의계획경제의기본틀자체를변경시키는것이며, 체제내의개혁은사회주의계획경제의기본원칙이나조직의틀을유지하면서합리적인요소의도입을통하여효율향상을도모하는것이라고할수있다. 북한의개혁은경제의효율성과경쟁력증대라는목표를성취하기위해추진하는조치로보다포괄적인개념으로부터시작될것이다. 이러한맥락에서곧개최하게될북한노동당대표자회에서경제발전을위한새로운노선과정책이채택될것으로기대된다. 본원고는김정일위원장의방중직후인 8월말접수된것으로다소시일이지나요약본을게재합니다. 필자의정확한원문은한국해양수산개발원홈페이지의해당파일을검색하시기바랍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3
북한해양수산어제와오늘 북한의수산협력제의와북한수산업개발지원방향 성숙경 KMI 부연구위원 1995년북한의국제사회에대한인도적지원요청을계기로시작된국제사회의대북지원은경제재건을위한개발지원으로점차변화되고있다. 북한에서활동하고있는국제 NGO 대표들의개발지원필요성제기와함께북한이인도적지원을거부하고개발지원을요구했기때문이다. 올해 3월북한의천안함피격사건으로인해 5월 24일부로개성공단을제외한대부분의남북경협이중단되었지만, 남한의대북지원역시식량, 비료등의긴급구호에서농업재건, 보건의료등개발지원으로변화하는과정에있다고할수있을것이다. 북한의국제사회에대한수산업지원요청북한이남한을비롯한국제사회에수산업재건을위한지원을요청한것은 1998년부터이다. 북한은 FAO에북한의수산업재건에필요한지원을요청함과동시에남한기업과의수산협력을추진하였다. FAO는 1998년 10월북한수산개발프로그램사업에착수하여북한수산개발을위한다양한프로젝트를제안하고이를수행할수있도록국제사회에지원을요청한바있다. 북한과남한기업과의협력사업추진은 1997년부터시작되었다. ( 주 ) 해주의수산물공동조업및반입판매사업, 미흥식품의수산가공협력사업, 태 영수산의가리비양식사업, 수협중앙회와전국어민총연합회의북측수역입어사업등이추진된바있다. 최근에는대동수산 (2008) 이북한과합영으로수산물가공사업을신청하였다. 남북수산협력회의와북한수산업현황수산부문남북당국자간협상은 2000년 12월 16 일제4차남북장관급회담에서북한의어업협력회담제의로시작되었다. 북한은이회담에서북측동해수역에서의남측어선의입어사업을제안하였으나실행되지는못하였다. 2005년 7월제1차남북수산협력실무협의회에서는서해공동어로, 수산물생산, 가공, 유통분야의협력, 우량품종개발, 기술교류, 제3국어장공동진출등이합의되었으나진전되지는못하였다. 2007년 11월제1차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에서는 2005년제1차남북수산협력실무협의회합의내용을적극추진하기로하고, 북측동해수역에서의입어, 수산물가공및우량품종개발, 양식협력사업등의추진과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개최를합의하였다. 2007년 12월제1차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에서는북측동해수역에서의남측어선입어사업추진, 4 www.kmi.re.kr
수산물생산과가공, 우량품종개발, 양식분야에서의협력및현지조사, 생산및가공된수산물의효율적유통등에대해합의하였으나국회비준을받지못하였다. 이상의남북수산협력회담내용을볼때, 북한의수산업생산기반은거의무너진것으로추정된다. 북한은어업생산뿐만아니라생산된수산물의가공, 유통, 우량품종개발, 기술교류등모든분야에서남한과의협력을원하고있다. 남북수산협력사업추진내용 1995년북한의국제사회에대한지원요청이후남한과북한의대표적인수산협력사업은 ( 주 ) 태영수산의가리비양식과강원도의연어자원보호증식사업이다. ( 주 ) 태영수산은국내에서급격히감소되고있는자연산가리비를대체하기위해 LG상사와협력하여 1998년북한나진에가리비양식사업을시작하였다. 이사업은 1999년북한에의해일방적으로중단되었지만, 현재남한이반입하고있는북한산가리비는동협력사업의결과물이다. 강원도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남북공동으로북고성남강지류 ( 후천강 ) 에서연어치어를방류하고, 2003년에는안변에연어부화장을건립하였으며, 2007년에는연어사료공장건립을지원하였다. 동사업은남한과북한이공유한동해의물고기자원을늘릴수있을뿐만아니라식량부족으로어려움을겪고있는북강원도주민들의대체식량공급에도기여할수있는사업이다. 북한수산업개발지원방향남한과북한은과거여러차례북한기업과남한기업과의합작사업추진및남북당국자간회의를통해남북수산협력사업의추진및실행을위해노력해왔으나, 남한어업인들간의이해관계조정실패, 북한의일방적사업취소, 남북관계의경색등으로제대로추진되지못하였다. 그러나가리비양식과연어자원보호증식사업의성공에비추어볼때, 북한수산업재건을위한남북협력사업이북한의수혜성사업에서부터시작하여점차호혜성사업으로확대되어간다면, 그성공가능성은매우높을것으로보인다. 북한수산업의재건을위해서는남한을비롯한국제사회의지원이절실하다. 국제사회의대북금융지원은핵문제가어느정도해결될때까지는어려울전망이지만, IMF와세계은행은각상임이사회의승인이있으면북한에기술지원을제공할수있음을수차례밝힌바있다. 국제사회의대북경제개발지원은기술지원에서부터시작될수있을것이다. 그러나국제사회가북한과의대화채널을확보하기어렵고, 북한역시국제사회의신뢰를얻지못하는현상황에서국제사회로부터기술지원을받는데는한계가있다. 남북이공동으로수산협력사업을추진하는가운데국제사회의협조를유도하는것이효과적일것이다. 따라서남북수산협력사업의추진은남북관계, 북핵문제, 북미관계, 북한의수용능력, 정부의비핵 개방 3000구상등을모두고려하여단계별로접근하는것이바람직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5
북한해양수산뉴스분석 북한해양수산뉴스분석 북한, 김정은후계체제공식화북한이 1966년 10월열린제2차당대표자회이후 44년만에노동당대표자회를열어김정은후계체제를공식화에시동을걸었다. 조선일보, 연합통신, 로이터, AFP 등국내외주요언론매체들은 9월 28일, 김정은에대장의군사칭호를올려주는명령을하달했다 는이날새벽에타전된조선중앙통신등북한매체의보도내용을인용하여이같이전했다. 아울러북한은같은날열린당대표자회에서김정은을당중앙군사위부위원장과당중앙위원회위원으로선임했다. 모두파격적이다. 로이터통신은안드레이란코프국민대교수등전문가의말을인용하여, 김정은에부여된대장칭호가김정은후계체제의공식화라고타전했다. 란코프는이기사에서 예상했던대로왕조의변동이공식화했다. 지금까지북한은김정일자신이새롭게 친애하는지도자 로변신했던 1970년대의패턴을따르고있다 고논평했다. 북한이김정은후계체제로방향을굳혔다는증거는비단김정은이대장군사칭호를받은것만으로국한되지않는다. 각종매체들은김정일국방위원장의여동생이자, 올해국방위원회부위원장으로승진한장성택의부인인김경희또한김정은, 최룡해, 현영철, 최부일등이함께권력핵심에진입 했다는데주목하고있다. 이는김정일이가장신뢰할수있는직계가족들과최측근에게권력을몰아주어아직은나이가어리고경험이부족한김정은의순조로운권력승계를위해강력한 후견체제 를구축하려는포석인것으로해석되고있다. 김경희의남편장성택은 2004년 분파행위 를했다는이유로좌천됐으나훗날노동당행정부장으로화려하게복귀했으며, 2009년북한의최고권력기구인국방위원회에진입한데이어올해다시국방위원회부위원장으로올라서며북한의 권력 2인자 로부상했다. 김경희또한남편과함께잠시공식무대에서사라졌다가지난해 6월부터활동을재개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의권력의 3대부자세습 은지난 8월김정일위원장의전격적인중국동북지방방문단행때이미감지되었다. 당시김정일위원장은, 중북기린성의지린 창춘, 헤이룽장성의하얼빈 무단장등중국동북지방여러곳에흩어진김일성 ( 항일무장투쟁 ) 관련유적지를방문했다. 그배경에김정일위원장이 김일성가계의 혁명적정통성 과 권위 를상징적으로보여주어 3대세습 을정당화하려는의도가깔려있었다는것이다. 한편김정일국방위원장은당대표자회에서북한노동당총비서에재추대되었다. 이로써북한은김정일의친정체제하에후견인그룹을구축해김정 6 www.kmi.re.kr
은에대한후계체계를공고히할것으로관측되고있다. 북한, 강석주내각부총리에임명지난 20년간북한외교를주도해온강석주외무성제1부상이당대표자회가열리기직전인 9월 23 일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정령에따라내각부총리에임명되었음을, 국내주요언론이조선중앙통신을인용하여보도했다. 이와더불어지난 2003 년이후 6자회담의북한측수석대표로활동했던김계관부상도한계단승진해강석주가맞았던제1 부상자리를차지했다. 강석주는지난 1994년봄, 전쟁위기로까지치달았던제1차북핵위기때대미협상을이끌었던인물로, 미국측상대였던당시로버트갈루치와함께같은해 10월의이른바북미제네바기본합의주역이다. 강석주는이후김정일의외교분야최측근이되어각종해외방문을수행했으며두터운신임을받아왔다. 북한, 대승호선원송환지난 8월 8일북한해역을침범해북한측배타적경제수역 (EEZ) 내 0.2 마일해상에서북한의어업지도선에의해나포된뒤김책항에억류되었던 55 대승호가 9월 7일, 납북한달여만에동해군사경계선 ( 동해북방한계선 ) 에서우리측해경에인계되어돌아왔다. 연합뉴스등주요매체는북측조선적십자회가 대승호송환 을우리측대한적십자사에통지한 9월 6일부터이같은소식을보도했다. 이들보도에따르면, 피랍됐던대승호선원들은귀환직후사흘간우리측군경합동조사반의조사를받았다. 이에따르면, 대승호는 8월 1일포항동빈항을출항에같은달 8월새벽북한 EEZ 밖에서조업중기관이상을점검하다북한해역으로들어간것으로드러났다. 대승호선원들은김책항에억류된뒤에는선상에서생활하면서 1명씩항구인근건물로불려가신원과 EEZ 월선경위에대해조사를받은것으로알려졌다. 보도에따르면, 이들은또한 9월 5일 송환 결정소식을처음들었으며, 이후김책항에서원산으로, 다시원산에서우리측해역으로이동할때까지대승호에는북한군장교와사병이함께승선했다. 남북이산가족상봉, 상봉장소 로진통남북의이산가족상봉을위한남북적십자간실무접촉이 금강산관광재개 라는북한측요구에가로막혀난항을겪고있다. 양측은 9월 17일이후이산가족상봉을위한실무접촉이후줄곧상봉장소로진통을겪었다. 북측이상봉장소로금강산을이용하자는데대해남측이 2008년박왕자씨피격사건이래북한의일방적인조처로폐쇄된금강산을상봉장소로하기어렵다고난색을보인것이다. 9월 25일, 국내주요언론은통일부가이에난색을표시한사실과함께 상봉가족명단교환날짜와상봉날짜등을양측이모두합의한내용을남측이모두뒤집었다 라는북한측주장을조선중앙통신을인용해보도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