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0일간의 드라마 여행 흐르는강물처럼
소개글 로케이션매니저의 자전적 에세이 스크린 테마기행
목차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6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0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4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6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왕초 따라가기(왕초) 27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2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5 소광리 숲으로의 여행 (영웅시대) 38 무섬마을 강가에서(추노) 41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 44 주산지의 사계(봄여름가을겨울) 49 탄광촌 꼴두바우의 전설 (에덴의동쪽) 51 들리잖니! 보이잖니! 보길도 여행 54 아내와의 첫 만남과 신혼여행 59 농촌총각과 연변처녀 64
겨울 소나타 (겨울연가) 69 시린 강가의 추억 (엽기적인그녀) 71 계곡 트레킹, 산간 오지마을 74 옛 추억의 골목길, 8월의 크리스마스 77 타임머신 여행(빛과그림자) 83 첫사랑, 벚꽃향기 바람에 날리우고 89 순천만 안개여행 92 가을날의 동화 (가을동화) 97 무지개를 이은 왕비(대장금) 100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02 한류 바람 부는 서울 골목길 106 남양만의 시린 풍경들 109 갱갱이( 江 景 ), 근대건축물 기행 113 설매재와 진돗개(왕의남자) 116 내 흐린 기억속의 섬 여행 118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왕릉 편) 121 내가 만난 경주 천년의 이야기(마을 편) 125
경천호의 작은 학교 131 소나기, 비갠 오후 135 화순, 적벽을 찾아서(쌍화점) 137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절 141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재빵왕 김탁구) 146 기차는 밤8시에 떠나가네 149 소설 마당깊은집 탐방 (꽃보다 남자) 153 예쁜 수목원 이야기 (미남이시네요) 156 천국으로 가는 길 159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2014.11.24 18:02 1997년 그해 여름, 난 해안길을 따라서 인천 서해안을 기점으로 남해안과 동해안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행을 했다. 보름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은 동해의 어촌마을인 강구 항이었다. 강구항은 경북 영덕에 있는 항 구로서 예로부터 울진, 영덕 앞바다에서 대게가 잡히면 이곳에 와서 집하되고 경매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갈 만큼 꽤 번성했던 항구였다. 그러나 근래에 교통중심의 변방으로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해 어두운 먹구름이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국가 외환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국제적인 신인도 는 땅에 떨어졌다. 급기야 외국에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치게 된 것이다. 가장들은 실직의 고통을 맛보았고 거리로 내 몰렸다. 취업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이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나 규범들이 암 울한 현실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당시 희망의 끈을 놓아야 했던 이런 현실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억 누르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족이 해체 되고나면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일까! 꿈도 희망도 없 는 그 허망함이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때 눈앞의 펼쳐진 바다를 보았다. 그때 내가 만난 포구와 바닷가 마을들, 한 무리의 갈매기 떼들이 갑판 뱃머리를 맴돌고 있었고 넘실대는 파도가 뱃전을 움직이고 있었다. 수평선 저 멀리 작은 등대가 보이고 언덕 위 옹기종기 모여선 집들은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파도가 넘실대는 작은 배 위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곳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바다내음을 온 몸으로 맡으면서 조심 스럽게 발걸음을 항구로 내 디뎠다. 난 이곳을 알기 이전까지는 동해안 바닷가는 경포대의 아름다운 해변만을 생각했다. 또 내 기억 속에는 깡통을 매단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6
철책 분단의 상처 난 해안선만이 내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그간의 통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 다. 그것은 삶의 활력이 넘치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았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이곳 항구의 생기를 불어 넣은 듯 풍만함으로 다가온 첫 만남이었다. 난 그들의 강인한 몸짓에서 어두운 현실의 장막이 걷 히고 밝은 햇살이 비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해 MBC 주말연속극 그대그리고나 란 드라마가 기획됐다. 극중 주인공 재천(최불암 분)은 작은 배 한 척을 갖고 고기를 잡으며 사는 홀아비다. 그는 아들 3형제와 딸을 키우면서 고향 바닷가 마을을 지킨다. 큰아들 동규(박상원 분) 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말썽꾸러기 둘째 아들 영규(치인표 분)는 군 휴가를 받아 고향마을로 돌아온다. 배 다른 막내아들 민규(송승헌 분)는 오늘도 도꾸(진돗개)를 데리고 등대로 나간다. 그리고는 끝없는 망망대해 푸른 바다 를 보며 고향을 떠난 어머니(이경진 분)를 그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조그만 바닷가 동네에 동규와 결혼하겠다 며 수경(최진실 분)이 찾아온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낭만이 아닌 상심의 바다 그것이었다. 당시 외환 위기로 온 국민이 우울해 있을 때 주말 저녁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끈 드라마가 그대그리고나 이다. 시 놉 상, 극중 무대가 되는 바닷가는 원래 인천의 조그마한 어촌 정도로 설정했다. 왜냐하면 주말드라마 특성상 먼 거 리를 갈수 없다는 현실적인 계산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유명배우를 멀리 장기이동하면서 촬영하는 것에 대한 내부 반 발도 있었고, 현실적인 제작비도 또한 고려할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 영덕에 가려면 최소한 다섯 시간 이 상을 길에 허비해야 한다. 가는 길도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동해안으로 연결되는 7번 해안 국도를 따라서 지겹도록 가야한다. 아니면 국 도를 따라 단양, 봉화를 거쳐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가야만 하는 곳이 경북 영덕인 것이다. 차 드라이브를 미친 듯 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웬만한 사람은 좀처럼 가지 않는 그런 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촬영지로 선 택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좋은 훌륭한 풍광이 있는 촬영지라 하더라도 바쁜 스 케줄로 움직이는 촬영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방송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체력은 급격히 저하될 것이고 사기는 땅에 떨어져 드라마 제작환경이 먹구름 같을 것이 라고 누구든 쉽게 예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앞의 예측 가능한 현실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의 변수와 의외성이 있는 것이 인생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생각할 때 그것은 암울한 현실과 맞닿아 있을 뿐이었다. 난 여행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전국을 여행하면서 내가 느꼈던 바닷가 분위기를 연출자에서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내가 우려했던 것 이상의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당혹해 하면서도 선뜻 나의 결정을 받아주었다. 내부적으 로도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우린 장고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촬영지를 경북 영덕으로 정했다. 그해 가을, 방송 개편에 맞혀 이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전파를 타면서 실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영덕대게 로만 알려져 왔던 작은 어촌마을을 순식간에 관광지로 만들어버렸다. 이 한 편의 드라마로 이곳이 알려지게 되면서 영덕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시청자들은 아름답고 조용한 그러면서도 삶의 활력이 넘치는 풍광을 보며 환호했다. 그것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려는 우리의 희망과도 같은 열망이었으리라!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는 영덕의 많은 곳에서 촬영되었는데 극중 재천(최불암 분)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장면 은 주로 강구 항에서 촬영했다. 지금도 강구 항에 가보면 당시 촬영했던 사진들이 기념비처럼 세워져 있어 이곳이 드 라마 그대그리고나 촬영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재천의 딸 상옥(서유정 분)이 가수가 되겠다며 아버지를 찾아와 생떼를 쓰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재천이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뱃사람으로 돌아가던 장면과 합쭉이(양택조 분)가 재천에게 소주잔을 권하는 정감 있는 장면도 이곳 강구항 물양장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부잣집 딸인 시연(이본 분)이 바닷가 마을로 찾아 와 민규(송승헌분)의 아픔을 달래주며 추억을 만들던 곳도 강구항 오포 등대이다. 낮은 구릉이 있는 언덕에서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면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고 항구 저편 배 갑판위로 갈매기 떼가 허공을 맴돌고 있다. 어느 날,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민규의 친어머니(이경진 분)가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그는 자식을 버린 죄책감에 차 마 집으로 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옛 추억의 시린 눈 맞춤 하던 곳이 항이 내려다보이 는 강구 다리이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7
재천의 큰아들 동규와 수경(최진실 분)이 고향마을 언덕 억새밭에서 결혼을 약속하던 그 무덤가는 영해면에 있는 대 진항 뒷산이었다, 또 영규와 미숙(김지영 분)이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하던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그들은 동해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억새꽃 만발한 친엄마 무덤 앞에서 미래를 다짐했던 것이다. 드라마가 성공리에 끝나고 난 스크린테마기행 을 기획했었다. 드라마촬영지를 로케이션매니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울진 후포 항에 있는 재천(최불암 분)의 집과 무덤가를 포함한 영덕의 촬영지를 돌아보는 코스로 짜여 있었는데 그때의 여행객들은 이런 관광 상품에 무척 신기해했다. 이런 곳도 여행지가 될 수 있음에 허실한 웃음을 띠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영덕 강구 항은 뱃사람 재천의 꿈과 희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베인 삶의 터전이다. 거센 파도와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 도 재천은 격랑을 헤치며 오늘도 먼 바다로 나갈 채비를 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끈질긴 생명력일 것이다. 내가 이곳 강구 항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삶의 치열한 역동성 그것이었다. 그 어떤 말로도 표 현할 수 없는 인간 생존의 근원적인 문제, 그 절실함으로 우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탓에 우린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 용광로와도 같은 뜨거운 열기로 우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는 영덕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촬영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촬영지는 울진이라고 해도 크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덕과 울진 이렇게 양분돼서 촬영됐지만 중요도나 촬영 빈도에 있어서보면 울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공개하면,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드라마가 갖는 관광자원으로서의 파급력을 별로 인식하지 못한 시기였다. 근래에는 지자체가 드라마나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지만 그 당시의 상황과 인식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영덕군 공보실은 우리 드라마 촬영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차량을 제공하고 길 안내를 마다하 지 않았으며, 그 지역특산물로 가끔은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다. 울진에서의 촬영 빈도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 하고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촬영지의 공은 영덕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울진군은 드라마의 파급력을 간과하고 있었다. 금강송 군락지인 소광리 숲을 비롯하여 성류굴, 불영계곡, 사찰 불영 사. 행곡리 대나무숲 마을 등 수려한 자연경관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그 자리를 영덕에 빼앗겼다고나 할까! 드라마촬영지 영덕을 보기 위해 혹은 영덕대게를 먹기 위해 주말이면 7번 국도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영덕은 호황 인데 울진은 파리만 날리고 있으니 그 지역 주민들로서는 어찌 울화가 치미지 않겠는가! 더구나 실제 극중 재천의 집 과 바닷가 월송정에서의 촬영이 대부분 울진 지역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주민들은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 지차제장 선거가 있었는데 군수가 재선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드라마로 인해서 군수가 재선에 실패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울진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극 중 재천이 사는 언덕 위에 있는 집은 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울진 후포 항이다. 이 집 뒤편에는 등기산 등대공 원이 있고 이 집으로 가려면 96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한참 오르다보면 힘도 들지만 이 집에서 내려다보이 는 후포항의 조망은 뛰어나다. 우린 이곳에서 많은 촬영을 했다. 원래 극중 재천의 집 설정은 합쭉이(양택조 분)가 오 토바이를 타고 재천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많았다. 난 촬영장소를 물색하면서 이 같은 조건에 맞추려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결론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역동적인 모습보다는 바다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을 적극 추천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촬영지가 정해졌는데 촬영스텝의 불만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거운 촬영, 조명장비를 매고 무려 96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그 어디 쉬운 일이겠는 가! 그럼에도 촬영팀이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후포항의 모습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곳 후포항에 촬영 왔을 때 유명 연예인을 보기위해 이 지역 중고등학생 수 십 여명이 수업을 빼먹고 촬영장 으로 찾아와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들을 찾느라 애태우는 진풍경이 벌어졌었다. 영규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동생들과 함께 고향 앞바다에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춤을 춰대던 곳은 울진 월송정이었 다.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혀지던 명승지인데 난 드라마 그대그리고나 가 끝나고 여행상품 스크린테 마기행 을 기획했을 때 첫 기착지로 이곳을 선정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관광버스는 국도를 따라 불영계곡을 거쳐 울 진 백암온천에서 여장을 풀게 된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8
다음 날, 동틀 무렵 떠오르는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월송정에 오게 되는데 새벽안개에 휩싸인 들판은 한 폭의 수채 화 같다.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를 맡으며 갈대숲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안개 속에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낸 노란 창포가 물가에 피어 있다. 하늘의 여명이 움터오는 들판을 따라 걷다가 바닷가에 서면 붉은 해가 바다 한가운데서 쑥 떠오른다. 사람들은 떠오 르는 해를 바라보며 모두 저마다의 소망을 얘기한다. 그 눈빛엔 고향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마음으 로 첫 출발을 다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희망을 꿈꾸며 소박한 삶이 경건하게 이어지기를 소망했을 것이 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고 돌아오는 그 길엔 환한 미소가 뿜어져 나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또 있을까 라고 말이다. 그렇다! 이곳은 길게 드리워진 철책 말 고는 사람들로부터 방해받는 그 무엇도 없다. 하늘을 날고 있는 갈매기와 파도와 소나무와 들꽃 그것이 전부이다. 아 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의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병든 마음까지도 치유해 줄 것으로 굳게 믿고 싶었다. 극중 재천의 고향마을 앞바다인 월송정! 저 수평선 너머 갈매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고 넘실대는 파도는 이곳 월송정 과 맞닿은 평해천을 타고 넘쳐흘렀다. 그때 고향 앞바다에서 신나게 춤을 춰대던 이들의 모습은 갈매기 떼와 어우러 져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몸짓에서 푸른 희망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드라마 첫 회가 방송될 때, 마지막 장면에 배경으로 흐르 던 루 크리스티 의 Beyond The Blue Horizon<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음악이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 아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려는 듯했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른다네! 우리의 희망이 넘쳐흐른다 네! 저 푸른 수평선 너머로(그대그리고나) 9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2014.11.24 17:56 그 어느 해, 감독으로부터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성당을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의 크고 작 은 여러 해안 도시들과 시골구석까지 곳곳을 누비고 다녀 봤지만, 바닷가와 성당이 한 프레임으로 들어오는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꿈이 아니면 환상일 것이다. 그 누가 자연 경관만을 고집해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그림 같은 성당을 짓겠는가 말이다. 드라마 촬영 목적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면 애당초 그것은 기대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SBS 미니시리즈 올인 이 방송됐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버린 갬블러의 인생을 극화한 것인데 주인공인 인하 (이병헌 분)와 수연(송혜교 분)의 역할로 이들 두 사람이 내정되었다는 감독의 말과 함께 수연의 생활공간인 성당을 찾아 나섰다. 김포~제주간 비행기를 탔다. 구름 위를 떠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도박에 운명을 걸었던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all in..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도박의 세계로 이끌었는지 난 시높시스를 보면서 심연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도박도, 사랑도, 인생 도 어쩌면 냉혹한 현실이 되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승부를 걸어야 했던 그의 세계에서 과연 내 인생의 승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내 인생의 그토록 갈망했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줄곧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학 교 다닐 때 틈만 나면 기타를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것 이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항상 전교에서 밑바닥을 맴돌았고 난 커서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포부와 이상은 그냥 꿈같은 이야기로만 남아 있 을 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고교 진학문제로 엄마가 입시상담을 받으러 학교로 찾아왔다. 그때 내겐 고교진학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작고 볼품없는 엄마를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이 내겐 더 큰 관심사였다. 난 그렇게도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0
철이 없었다. 당시 국내 산업계는 공업육성 정책을 목표로 정부에서는 실업계 고교 진학을 적극 장려했다. 공업계로 진학하면 곧 취직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는데 엄마는 담임선생의 말을 듣고 별다른 저항 없이 나를 공업계로 보냈다. 그때 입시상담 받으면서 잊히질 않는 것은 담임선생 왈, 얘는 말 수가 적어 전기과가 적성에 딱 맞을 것이라는 그 말 이 떠올라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는 정말 그런 것인가라고 난 생각했었다. 전기는 엄연히 도선을 따라 빛의 에너 지로 바뀌는 소통의 매개체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토당토하지 않은 무지몽매한 발언이라 생각했다. 난 그렇게 공업계 학교에 진학했고 적성에도 맞 지 않은 학교생활로 학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졸업 후 공고를 나와 취직을 하려해도 찌질이인 내겐 그 어떤 기회 나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공장에서 용접하는 일이거나 건설현장에서 배선 파이프를 나 르는 말고는 없었다. 내가 좀 더 안정된 일터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고, 또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는 여자를 만나 가정의 이루는 일이 내겐 꿈같은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고에 대한 선호와 사회적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남 들보다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일하는 것 이외엔 없었다. 그것을 외면하는 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선택이란 가혹하고 차디찬 현실 그것이었다. 내 젊은 날의 방황과 꿈! 이루고자하는 목표, 그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로케이션매니저로서 의 도전과 열정 바로 그것이었다. 잠시 후 이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에 난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면 그때 내려도 충분한대도 난 남들보다 빨리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행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어차피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해도 한참 을 기다려야 되는데도 말이다. 난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인상이나 말씨 억양을 보면 행동이 무척 느긋한 것 같지만 엘리베이터에서 타고내리는 일이나 커피자판기의 컵에 담기는 커피가 쏟아져 나오는 시간을 참치 못하고 답답해한 다. 공항을 빠져나와 제주의 먼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고 금방이라도 한 차례 빗줄기를 퍼부 을 것 같은 기세다. 제주도 날씨는 내가 올 때마다 매번 그랬다.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내가 제주도에 올 때 만 큼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것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운이라고 해야 하는 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다. 걸어서 여행 하다보면 간혹 예고 없는 비를 만날 때처럼 당황스러운 것도 없다. 그 누가 여행 중 우산도 없이 허허벌 판에서 비를 맞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빗줄기는 시야에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비는 내 옷 속에 젖어들어 쓸쓸함이 배어나올 것이다. 난 벌판에서 혹은 산길에서 비를 만나야 했던 경험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여름 우기 때 는 항상 배낭에 우비를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막상 어디로든 가야겠는데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드물 것이다. 난 제주도에 꽤 많이 왔다. 그럼에도 선뜻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 것은 여행자의 오만함인가! 아니면 신중함인가! 차라리 초행길 이라면 내 직관에 떠밀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그냥 떠나면 그만인 것을. 성당이 세워지는 촬영지를 섭지코지로 할까! 아니면 제동목장의 숲길은 또 어떨까! 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파편처 럼 튀었다. 제주도에는 실제 예쁜 성당이 여럿 있고 또 대충 그런 곳에서 촬영하면 그만인데 연출자는 왜 성당을 지 으려고만 하는지 그가 원망스럽기 조차했고 또 의아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산포행 버스를 타고 스쳐가는 해안마을들과 이국적인 풍광의 새로 생긴 건 물들을 바라보았다. 제주도의 웬만한 도로들이며 명소들은 대개 낯익은 풍경들이다. 멀리 솟아있는 한라산이 희미하 게 보일듯하다가 이내 사라지고 하면서 난 성산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가는 배편은 15-20분 간 격으로 출발해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섬은 배가 출항해 접근하면서 섬의 실체가 드러내는 법인데 우도는 성산 항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눈에 소가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여 붙인 이름임을 알 수 있었다. 우도 항에 도착했다. 섬은 한적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복잡하거나 번잡함은 느낄 수 없었다. 길을 묻고 싶은데 사람 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도봉은 132 미터의 높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우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섬을 둘러싼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과 일직선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꼭대기엔 습습한 바람이 불어 겨울이 가시지 않은 마른 풀밭이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1
바람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우도봉 정상 한쪽에 멀리 보이는 하얀 등대가 눈앞에 보였다. 난 등대를 바라볼 때는 항상 경이로운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막연한 그리움, 아련함,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열망은 절대자에 대한 맹신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컴컴하고 막막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에 있어 등대는 희망이요 든든 한 버팀목이다. 등대는 어두운 밤바다의 뱃길을 안내하는 친구요 반려자인 것이다. 난 등대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글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등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항상 아련한 그리움과 마주하 게 된다. 그래! 하얀 등대가 보이는 배경으로 예쁜 성당을 지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우도봉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말을 풀어놓아 키운 곳 이었다. 이곳 우도봉에서 말을 관리하는 듯한 사내가 내 앞을 지 나갔다. 난 이곳 등대 말고 다른 곳에도 등대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여기 말고도 서넛이 있는데 등대를 중심으로 서편은 천진동이라 일러 주었고 동편은 영일동이라 했다. 맑은 날 여기서 보면 제주 전경이 까마득히 멀리 점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동편은 이곳 우도 사람들이 모여 사 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난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거기에 인간이 없다면 그것은 그림엽서에 불과 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드라마는 어차피 인간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므로.. 내 발걸음은 당연히 해가 뜨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돌로 담장을 한 마을을 지나면서 어쩌면 돌담들이 그리도 앙증맞을까 라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의 맑은 눈처럼 티 없이 수수롭다. 제주에 이런 소박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라 생각했다. 제주는 천혜의 아 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이런 돌담의 소박함, 투박함의 정서마저 없었다면 우린 제주의 허상을 본 것이리라. 돌담길을 따라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 발길을 멈춰야 했다. 내가 그리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중에 주민들 을 통해 이곳이 우도 속의 섬인 비양도임을 알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앞바다에서 전복을 캐는데 많은 해산물이 이곳에서 잡힌다고 했다. 그것을 영등 할미의 축복이라고 도 했다. 마을과 바다를 있는 조그만 다리가 연결돼 있어 섬이라고 부르기엔 머쓱한 감이 있지만 섬 끝자락 붉은 색 깔의 등대 너머로 해가 솟구칠 때는 섬마을 전체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환상적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매일 보는 풍경이겠지만 나로선 생경하다. 아니 경이롭다. 이곳에 등대를 배경으로 성당을 지으면 환상적일거야! 수연(송혜교 분)이 성당으로 가기 위해선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고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좁은 다리를 건너 성당이 있는 문으로 들어설 때의 모습을 상상해보 면서 내 마음속에 그 풍경을 담아 보았다. 우도가 제주 속의 섬이라면, 비양도는 우도 속의 섬이다. 우도에는 3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영일동에 위치한 검멀레 해안은 백사장이 검은 모래로 이뤄진 것이 특이하다. 백사장을 둘러싼 절벽도 검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절벽의 경치가 주변을 압도한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얇게 갈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 다. 석벽으로 가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굴은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빠져나간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동 안경굴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도 여행의 백미는 산호사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처럼 백사장이 산호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홍조류가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생긴 것이다. 흰빛을 띠고 있어 산호로 착각한 셈이다. 산호사 해수욕장과 반대편에 있 는 하고수동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비양도와 가깝게 있어 더한층 친밀하게 느껴진다. 난 제주의 우도속의 또 하나의 섬인 비양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감독에게 메일로 보내주었다. 다음날 난 우도에서 성산항으로 나와서 제주 서쪽 협재 해수욕장과 마주 보고 있는 같은 이름의 섬 비양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도 속의 섬 비양도와는 어떻게 다른지 어떤 차이가 있는 지 말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보면 두 섬이 이름처럼 양 날개가 되어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믿어 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누가 이름을 갖다 붙였는지 놀라운 관찰력이다.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난 결코 이름처럼 날아가는 형상을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협재에서 바라본 비양도를 해지는 비양도, 우도측 비양도를 해 뜨는 비양도라고 구분해 부른다고 한다. 바다의 재앙을 막아준다는 영등할미가 음력 2월 뭍으로 올라올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 비양도 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연출자를 비롯한 촬영 스텝들이 우도 속의 섬 비양도를 방문했고 우린 모두 그 풍광에 매료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2
아무리 이곳의 풍광이 뛰어나다고 해도 드라마 제작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을 선택하기는 큰 모험이다. 만일에 풍랑으로 성당이 있는 우도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없다면 또 꼼작 못하고 섬 안에 갇혀 버린다면 우린 큰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비교적 촬영조건이 좋은 신양 해수욕장 부근 섭지코지에 성당을 짓 기로 했다. 제주도 방언처럼 바다가 보이는 해안 끝자락 섭지코지에 말이다. 드라마가 방송되면서 섭지코지는 관광명소로 부각됐다. 연일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고 극중 주인공인 두 사람은 실제 연인이 되어 매스컴에 집중 조명 받았다. 그 어느 해인가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하고 내가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섭지코지 언덕에 세워진 성당을 보려는 사람 은 별로 없었다. 다만 넓은 초지에 신혼여행객들에게 말을 태워주는 마부만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비싼 입장료와 상품을 파는 성당 올인하우스! 너무 상업적인 것에만 치우치다보면 올인 이라는 드라마와 함께 우리 기억 속에 조 금씩 잊혀져갈 것이다. 우도속의 섬, 비양도(올인) 13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2014.11.24 17:52 그 누가 앞서 가던 길! 난 그 길을 걷고 있네. 그리움 가슴에 안고 한숨에 달려가던 길 난 그 길을 혼자 걸었네. 바람이 나를 찾아와 준 길, 그 길에 흔들리는 갈대의 흐느낌이 남았네. 인생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길! 그 누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픈 길! 난 그 길을 말없이 걷고 있네. 이동통신 광고회사에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녀와 비구니 편>광고 제작하는데 그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 달라는 연락이 왔다. 광고는 단 한 컷으로 끝장내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장면이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임팩트하게 한 컷으로 모든 것을 승부해야하는 광고는 그래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난 감독을 만나보기위해 광고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콘티작화 스토리보드를 내밀면서 미루나무가 길게 늘어선 포장이 안 된 흙길을 찾아달라고 했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는 미루나무가 있는 시골마을 길은 제법 많았다. 우리의 동요나 그림책에서도 보면 미루나무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인 나무이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찬바람이 몰고 와서 감춰놓고 도망갔어요!"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따라 부르던 동요 속에도 그려지는 풍 경이었다. 미루나무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의 모습을 대신해주었다. 우리는 마을 입구 전봇대보다도 높게 솟은 미루나무를 보면서 고향마을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내 기억 속엔 이런 모습이 자취를 감추었다. 새마을운동 근대화과정에서 마을길, 초가집, 미루나무들이 모습을 감춘 것 이다. 난 이런 미루나무가 있는 흙길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시골 마을의 드문드문 몇 그루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길게 이어진 미루나무 길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여행을 떠났는데 경북 영덕으로, 충북 영동 으로, 경남 창녕으로 길이 있는 나 있는 미루나무가 서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어디에도 내 눈과 마주쳤다. 그러나 기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4
대했던 풍광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난 광고회사에서 제시한 이 풍경을 결국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광고회사로부터 다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광고주로부터 심한 독촉 때문에 제품이미지 광 고를 빨리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촬영장소를 빨리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난 앨범을 뒤적거리다 오래된 빛바 랜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다음 날, 난 광고회사를 찾아가서 그 사진 한 컷을 내밀었다.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내가 찍은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 라보며 빙그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답사 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곳 보성 차밭으로 촬영지를 낙점했다. 길을 가던 비구니와 자전거를 탄 수녀가 길에서 서로 만난다. 그들을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울창한 초록의 숲길을 지나 간다. 비구니와 수녀와의 만남.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녀와 비구니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환상적인 절묘함 의 극치이다. 이 장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의 소통이다. 서로의 마음과 생각들이 각기 다르지만 결국 소통해야 하는 것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카피문구가 나오며 종교를 초월한 만남과 마음의 연결을 잘 표현한 SK텔 레콤 수녀와 비구니 편이다. 이 광고는 그 해 한국방송광고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을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광고가 전파를 타고 세상에 나왔을 때 보성 차밭을 찾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길게 뻗은 삼나무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온통 초록빛의 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안개 낀 차밭의 풍경도 좋지만 차밭 너머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검푸른 바닷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을 배경 으로 광고가 나가고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와 본 것은 이보다도 훨씬 더 아주 오래전이 었다. 그 해가 아마 1994년도 여름이었을 것이다. 난 MBC기획으로 구한말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다. 배경이 되는 장소가 일본 대마도였기 때문에 시대적인 건축물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일본식 적산가옥이며 학교건물, 경찰서 등 구한말의 시대적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다. 경남 하동 악양면에 있는 일본강점기 산림조합 관사로 쓰였던 집을 찾고. 그다음엔 덕혜가 살았던 일본 대마도의 어 느 풍광 좋은 집을 찾아야 했다. 난 경남 하동을 벗어나 남쪽 득량만 바닷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우연히 들른 곳이 보성의 차밭이었다. 사실 일본의 대마도를 연상케 하는 지형적 조건이며 집을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차밭 한쪽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일본식 창고를 짓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초록의 차밭을 담는 그것이었다. 그 배경 을 대마도에 있는 덕혜의 집으로 설정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시청자들은 일본에서 현지로케이션 한 장면인 줄 착 각했다. 방송 관계자들조차도 잘 몰랐다. 이곳 풍광이 당시로서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감쪽같이 눈속임을 했다. 그 후에도 난 문근영이 주연한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만큼 이곳은 그 누가 보아도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소이다. 차밭은 서 있는 위치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등고선을 이루는 차밭 한가운데 위치한 전 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좋은 사진을 찍기에 적당한 촬영 포인트이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차밭과 짙은 녹색의 삼나무 숲은 인상적인데 이른 아침 안개가 살짝 드리운 고즈넉한 분위기의 차밭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길게 뻗은 삼나무 사이로 스며들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때 차밭의 연초록 잎은 더욱 짙푸르다. 이 동통신회사 광고에서 수녀와 비구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은 이런 특징을 잘 살려 촬영했다. 차밭을 배경으로 S자를 그리는 삼나무 길을 화면에 넣으려면 길 건너 차밭이 촬영 포인트이다. 난 이곳을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감흥은 예전만 못하다. 그만큼 여행자 들의 수도 늘어나 복잡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슬을 머금은 차밭의 청아함 과 안개 낀 풍광은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한다. 길은 차밭으로 통한다(SK텔레콤) 15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2014.11.24 17:47 강원도 깊은 산 속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집에 아빠와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는 두 자매가 있다. 아빠는 빚쟁이 들을 피해 중소 도시에서 이곳으로 도망 와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산지 벌써 6년째, 먹을 것이 없어서 칡뿌리로 연명하지만 산골에서의 삶은 오순도순 행복했다. 어느 날 낯선 청년들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우연히 신애와 마주친다. 원시적인 소녀의 모습으로 청년들과 마주친 신애는 그들이 건네준 콜 라를 마셔보며 그 맛에 황홀한 충격을 경험한다. 신애는 이들에게 하룻밤을 묵게 할 생각으로 이곳 외딴집으로 데려 온다. 외딴 집 텃밭에서 쟁기를 갈고 있던 아빠는 이들을 보며 황급히 도망가려 하지만 세경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청년들이라면서 아빠를 안심시킨다. 다음 날, 이 산골 외딴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청년들은 떠나가고 헤어지면서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유 포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며칠 후 이 첩첩 산골에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들이닥친다. 이들 부녀는 서울로 도망치 기로 약속하고 자매는 방목 염소 트럭에 숨어 산속을 빠져나온다. 아빠는 빚쟁이들에게 잡히고, 절박한 순간에 아빠 가 외친다. 서울로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남산 시계탑에서 만나! 라고 외친다. 자매는 빚쟁이들에 잡힌 아빠를 애 처롭게 바라보며 염소 트럭에 숨어 서울로 상경한다. 우여곡절 끝에 상경한 스물두 살 세경(신세경 분)과 아홉 살 신애(서신애 분)는 극심한 문명적 충격을 겪는다. 서울의 네온 휘황찬란한 빌딩숲, 백화점, 초고층아파트, 지하철, 심지어 핸드폰 등 생전 처음 본 신애는 꿈같은 환상이면서 도 이해 못 할 일들 천지다. 두 자매는 처음에는 놀이시설에 온 것처럼 신났지만, 돈이 떨어지자 서울에서의 생활은 곤혹스럽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길에서 만난 지훈(최다니엘 분)의 도움으로 순재(이순재 분)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게 된다. 산골 오지에서 살았던 자매에게 평창동 주택에 있는 컴퓨터, 벽걸이 TV, 냉장고, 가스레인지, 에어컨, 심지어는 좌변기까지 문명의 이기는 전부 생경하고 놀랍다. 또한 그 집에는 범상치 않은 가족들이 모여살고 있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6
저물어 가던 삶의 어느 순간, 앞뒤 못 가리고 열애에 빠진 중소 식품회사 사장 순재, 아침마다 변비로 울부짖는 여덟 살 손녀 해리까지 이 집 식구들은 약간씩 뭔가 문제가 있다. 평창동에서 가장 무능하고 존재감 없는 사위, EQ가 한없이 낮은 의사, 변태 여선생, 이 드라마는 두 자매가 평창동 순재네 집 식모로 들어오면서 이 집 식구들과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를 담은 시트콤이다. 산골 소녀 두 자매가 사랑을 통해서 삶에 눈뜨는 성장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시츄에이션 드라마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두자매가 생활하는 산골 외딴집을 찾으면서 가졌던 의구심은 과연 현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 을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전기가 배전반 두꺼비집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 원시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 다. 빨래도 전기세탁기로 하고 밥도 전기밥솥으로 하고 TV를 보면서 또 세상과도 소통하는 매개가 된다. 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 오지마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경북 청송 내원 마을이 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제외하기로 했다. 주왕산이 꽤 여성적인 산이라서 깊은 산골짝의 느낌이 들 수 없을뿐더러 전기 없는 내원 마을의 집들은 꾸며 놓은 듯한 가공의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척박한 땅에 화전을 일구 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집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이다. 강원도 너와집의 묘미는 참나무 껍질과 굴피 또는 억새로 지붕을 잇고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데 있다. 방안 에서 올려다보면 송송 뚫린 구멍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무언가 미완성의 작품 같다. 언뜻 보기에 눈비가 내리면 천 장 곳곳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지만 너와 지붕은 강원도 산골의 환경에 적응된 건축법이다. 습기를 받으면 차분 히 가라앉는 성질 때문에 너와집은 비가 새지 않는다. 또한,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오고 가니 환기도 잘되고 적당한 습도도 유지되는 것이다. 강원도에는 아직 남아 있는 너와집이며, 굴피집, 샛집들이 제법 있다. 삼척 신기면 환선굴 주변에 관광 자원 목적으로 꾸며 놓은 몇 채의 너와집들이 있다. 이러한 집들은 아무래도 청송 내원마을의 집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 이곳은 화전을 일구던 첩첩산중 이었지만 지금은 향토음식점이 며 민박집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기 때문이다. 난 발길을 돌려 오래전 KBS-TV 인간시대 다큐멘터리에 소개되었고, 이동통신회사 광고에도 나왔던 영자네 집으 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을 찾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현지 사람들조차도 영자네 집은 잘 알지 못했고, 시청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걸어 겨우 그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영자네 집은 삼척에서 도계역으로 넘어 가기 전 대평리 사무곡이라는 곳에 있다. 난 삼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기 사도 영자네를 잘 알지 못했고 다만 대평리 어느 시멘트공장 앞 다리 앞에 나를 내려 줄 뿐이었다. 시멘트로 된 다리 를 건너 길은 삼거리로 나 있는데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영자네 가는 길을 또 물어보았다. 그는 시멘트 공 장 쪽을 가리키며 그리로 가보라고 일러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공장의 초소가 보였고 그 공장의 경비원인 듯한 사 내가 내게 다가와 어디에 가느냐는 묻는 것이었다. 난 영자네 집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사내는 공장 사무실 옆길 소로를 따라 산으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면서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산길은 질퍽질퍽했고 개울물도 불어나 산길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 길로 들 어서면 영자네 집이 나올 것 같은데 여러 번 다른 길로 들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무성한 잡초들 사이로 지붕 이며 마당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외딴 집을 발견했다. 나는 여기가 영자네 집임을 직감했다. 영자네는 산 계곡 비교적 평평한 지대에 있는 양철 지붕의 외딴 집이었다. 난 영자가 옷가지를 빨래했을 개울가에 서서 폐허가 된 영자네 집을 바라보았다. 무성한 잡초가 녹슨 양철 지붕 위며 마 당 툇마루를 무성하게 뒤덮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개울가 주위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수줍은 듯 흩어 져 피어 있었는데 이 빨래터 개울가에서 친구가 되어준 영자를 목매어 기다리는 듯했다. 영자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가 비구니가 되어 속세를 떠났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아주 오래전의 일들로 기억된다. KBS-TV 인간시대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 외딴집인 영 자네를 보여줬다. 이 방송을 본 많은 사람이 영자에게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모 이동통 신회사가 이곳에 사는 산골 소녀를 광고에 출연시켰다. 영자네 산골 외딴집은 친구나 혹은 가까운 친척에게 전화하려 면 마을로 내려가야만 했던 불편을 통신회사는 간파했고, 그들의 광고 전략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세를 탄 산골 소녀 영자는 여러 후원인의 주선으로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를 벗 삼던 산골을 떠 나 서울에 왔다. 산골의 애환을 소녀의 감성으로 담아낸 글을 모아 '꽃이 피는 작은 나라'를 펴내기도 했다. 검정고시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7
를 공부해 대학에 갈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전초였음을 영자는 알지 못했다. 다만, 먼 훗날 세월이 그 것을 말해 줄 뿐이었다. 외동딸이 도시로 나가고 산골에 홀로 살던 아버지는 어느 날 숨진 채로 발견됐다. 누군가의 소행으로 타살된 흔적이 있고 아마도 범인은 딸이 받은 광고 출연료를 탐낸 강도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신문기 사를 읽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아버지처럼 믿었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해 구속됐다는 소식 도 들려왔다. 소녀는 이 도시가 무섭다 며 속세를 떠나갔다. 이것이 당시 내가 아는 산골 소녀에 대한 실체이다. 누 가 이 소녀를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 알량한 문명과 만나지 않았다면 부녀는 산골에 묻혀 도란도란 살았을 것이다. 결국 TV가 소녀를 도시로 끌어내고, 통신회사가 상업목적에 이용하면서 인면수심의 추악한 인간들이 그들을 나락에 빠뜨린 것이다. 난 잡초더미 무성한 영자네 집을 바라보며 그를 생각했다. 순박한 산골 소녀 영자의 한 맺힌 사연을 훌훌 털어내고 마음의 고요함을 찾을 때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길 바랐다. 그것이 진정 영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자네 집에서 개울 길을 따라 좀 더 오르니 문필봉 8부 능선에 굴피(투비)집이 들어서 있다. 집주인인 정씨 할아버 지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굴피집 주변에는 작은 논밭이 있고. 탐 실한 자두 열매의 과수가 몇 그루 있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식용작물이 있었는데 이 집을 지키는 노인은 어데 오간데 없고 길손인 내가 이 자리에 홀로 서 있었다. 난 삼척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후덥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지 한 밤에도 에어컨을 켜고 버스는 밤길을 달 리고 있었다.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반지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지골은 양양군 서면 내현리에 있는데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다가 모두 동네로 내려오면서 빈집들이 있었다 해서 반지골이라는 이름 이 붙여졌다. 이곳엔 아주 오래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굴피집이 한 채 남아 있다. 버스는 마을 경계를 이루는 다리에서 나를 내려놓았다. 난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계곡에는 근사하게 꾸며 놓은 민박집들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었다. 피서철 이용하게 될 민박집들이다. 난 개울가를 가로 질러 나있는 작은 콘 크리트를 건너자 덩그렇게 양지바른 곳에 볼품없이 지어놓은 양옥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내가 찾던 굴피집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양옥집을 지나 조금 더 발길을 위쪽으 로 옮겼더니 한쪽 구석에 쓰러져 갈 듯한 굴피집이 버려져 있었다. 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부엌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소가 여물을 씹고 있었다. 강원도에는 가축을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고 혹독한 겨울에 도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소를 집안에 가두어 기른다. 현재 이 굴피집에는 어미 소와 집을 지키는 강아지뿐이다. 이 굴피집은 참나무껍질을 지붕에 엮어 만들어졌고 벽은 귀틀집 형태다. 굴피집은 겨울에는 소복하게 내린 눈이 지붕을 덮어 보온 효과도 있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의 열기는 구들장을 돌고 돌아 방안을 따듯하게 한다. 그래서 혹한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시트콤 지붕뚫고하이킥 극중 주인공 세경(신세경 분)이 사는 집을 난 이 굴피집으로 결정했다. 현재 노부부는 정 들었던 이 굴피집을 남겨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멋없게 보이는 양옥집을 짓고 산다. 할머니는 파킨스씨 병을 얻어 거 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양옥집을 새로 지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난 이곳 반지골 굴피집에서 시트콤 지붕뚫고하이 킥 을 촬영하면서 잠시 웃어른 뵙기 위해 이곳 양옥 거실에 들렀었다. 웃어른은 출타 중이셨고 할머니만 집을 지키 고 계셨는데 난 햇볕이 들어오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예전에 이곳 굴피집에서의 생활이 어떠셨어요? 라고 물었는데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것은 지난 옛일에 대한 알 수 없는 회한일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때가 더 행복했었다는 그리움이 새록새록도 묻어나는 것이라 생각했 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잠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장롱에서 꺼내 온 것은 낡은 한 권의 사진첩이었다. 그 사진첩에는 젊은 시절 그들이 굴피집에서 살아온 애환과 꿈과 인생의 그 모든 것들이 녹아 있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엔 눈이 펑 펑 내리면 며칠간 계속해서 내린다. 그러면 굴피집은 한순간에 고립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굴피집에서의 어느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엄청난 양의 눈과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집채만 한 눈을 치우고 아궁이엔 장작불을 지피고 기나긴 혹독한 겨울을 봄이 되어 눈이 녹을 때까지 이 굴피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곰 이 겨울 동안 동면하는 것처럼...그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 그 자체다. 무욕의 삶 바로 그것이다. 그때의 애환과 아 니 서정이 담긴 낡은 사진첩을 보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생각했다. 어쩌면, 할머니는 삶의 고단함은 있을지 언정 단란하고 행복했던 그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8
우리는 이곳 양양군 서면 내현리 반지골 굴피집에서 두 자매의 산골 집을 촬영했다. 과거 이곳은 화전을 일구던 오지 였지만 지금은 개울을 따라 잘 지어 놓은 펜션이 들어차 있다. 산 중 깊은 맛은 덜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 려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신애와 세경 두 자매의 산골 외딴 집은 용대리 마장터의 샛집이었다. 이곳을 가려면 인제 원통을 지나서 용대리로 가야 한다. 예전에 이곳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 고 회자되던 아주 먼 오지이다. 난 원통터미널에 내렸을 때 휴가를 나와 귀대하는 군인들을 보고 전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만큼 교통이 편리해졌고 군대도 민주화 되었다고나 할까!! 용대리의 마장터는 이 곳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한다. 과거 말에 물건을 싣고 와 물물교환 하던 장터가 있었다는 유래로 마장터라 불릴 뿐이 다. 이곳은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의 옛길인 대간령인데, 과거엔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물교환 하던 왕래가 잦았던 고개다. 비교적 산길 경사가 완만한데 인제 북면 용대리에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로 연결되는 가장 짧은 길이다. 지금 이 길 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 됐지만 호젓하게 여행하기엔 안성맞춤의 길이다. 이곳은 결코 네 바퀴가 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개울을 건너고 좁은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가야 하는 길이다. 개울을 건너면 이내 또 개울이 나타나 건너기를 반복하면서 한참을 걸어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도 산길을 40분 이상 가야 한다. 내가 대간령 고갯길 마장터 샛집을 찾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장마가 끝나기도 전인 6월 중순이었다. 이곳에 처 음 도착했을 때 밤사이 내린 비로 계곡물은 불어나 있었다. 용대리에서 대간령으로 가려면 초입에 넓은 개울물을 건 너야하는데 물살이 빠르고 허리춤까지 물이 불어나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옆길로 돌아가야 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 길도 만만찮은 길이었다. 수풀 더미를 헤집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장맛비에 개울물이 불어나 조 심스레 신발을 몇 번씩 벗어가며 내를 건넜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내가 찾는 외딴 집은 보이지 않았다. 울창한 전나무 숲을 지나고 산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직감할 때 화닥닥 숲 속에서 커다란 물체가 움직였다. 멧돼지였 다. 난 멧돼지가 동작이 민첩한 동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더 늦기 전에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여행 중에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만큼 세상에 지겨운 것이 더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되돌아가는 길은 익숙 해서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생각해보니, 올 때 삼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야 했는데 그냥 지나쳐 더 깊은 산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 길로 계속 가면 고성 알프스 스키장으로 연결되는 길이라는 것을 나중에 그곳 주민을 통해 서 알 수 있었다.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면서 세 갈래로 나누어지는 길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조금 들어 서니 억새로 지붕을 얹은 샛집이 보였다. 부엌 아궁이에는 먹다가 만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는 솥이 걸려 있었고, 방 문에 덕지덕지 붙인 창호지의 색깔이 벗겨져 있었다. 마당엔 긴 고무장화며 구멍 뚫린 운동화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전기 없는 산골 살림살이는 궁색하게 보였다. 확실히 부엌에는 여자들의 손길이 닿아야 윤택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산골 외딴 집에 부부가 함께 산다면 그래도 버틸 수도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난 언젠가 아 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집에 나와 단둘이 살 수 있느냐 라고..아내는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병원도 없고 슈퍼마켓도 없고 학교도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하긴 내가 가 본 심산유곡의 주인 대부분은 남자 그것도 노인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의 문명은 이글거리는 욕망의 활화산과 같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첩첩산중의 외딴 집 은 더욱 마음의 오아시스로 남아 있다. 빵꾸 똥꾸 산골소녀(지붕뚫고하이킼) 19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14.11.24 17:31 밤이 이슥해지자 하늘에선 총총한 별들이 내 어깨위에 쏟아져 내렸다. 고요한 강위로 바람이 불어왔고 그 아래 물줄 기는 잠시 숨이 멈춰진 듯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난 우포 강가에서 촬영 팀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곳 강둑에 나와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순수함이라는 것은 밤하늘 무수한 별을 바라보았을 때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 각했다. 그리고는 태곳적 원시의 숨결, 순수와 생명의 원시성이 강하게 살아 숨 쉬는 곳은 어디일까! 라고 곰곰이 되 씹어보았다. 그런 곳이 있다면 지금 강둑에 나와 앉아 있는 이곳 창녕의 늪지대 '우포'가 아닐까! 내가 처음 우포를 찾았던 것은 드라마 왕초 촬영지를 찾아 나설 때였다. 그때 난 우연히 이곳 우포에서 영화 촬영 팀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촬영 중이던 이광모 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신분의 신예감 독이라서 그에 대한 존재감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난 그가 우포 너른 공터에서 학교운동회 장면을 찍는 것에 대해 유독 관심을 갖고 먼발치에서 구경꾼처럼 그를 지켜보았다. 그 너른 공터는 양파 밭을 갈아엎고 만든 간이운동장인데 흔히 학교운동장이라고 하면 건물이 있고 철봉과 미끄럼틀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 은 일반적인 관념에 전혀 구애됨 없이 우포의 너른 공터를 주목했다. 이는 영화에 있어서 창조적 공간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난 그때 그렇게 해석했다. 로케이션 매니저란 이러한 시공간적 배경을 대신해서 일을 하는 어찌 보면 전쟁터 의 첨병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난 영화나 TV드라마, 광고 등에 나오는 여러 특징적인 장면을 이곳 우포를 통해 보여줬다. 워낙 많은 작품을 이곳 우 포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구석구석 많은 사진촬영의 포인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오만일 것이다. 우포 의 면적이 아주 방대하려니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의 숨결을 내 어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광 활한 대자연 앞에 인간도 그 일부분이고 작은 개체의 하나일 뿐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대자연 속의 엑스트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0
라일 뿐인 것이다. 그 언젠가, 난 문근영이 주연한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에서 가장 로맨틱하게 그려질 수 있는 강가 분위기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곳 우포에 왔다. 이른 아침, 난 창녕읍에서 첫 차를 타고 이방면 장재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내 가 큰 강가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막 솟아오르며 물안개가 강 위로 넓게 퍼져 있을 때였다. 난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왕버들 나무가 군락을 이룬 풍경에 시선을 뺏겼는데 그것은 가늘고 투영한 햇살에 안개가 걷히면서 왕버들 이 기지개켜며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새벽안개에 휩싸인 왕버들의 실체가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며 발가벗게 되 는 모습은 모든 생명의 역동성을 알리는 서막인 셈이다. 난 강가를 따라 걸으면서 소목마을 주차장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소목나룻터에 도착했다. 강가에는 배가 둥실 떠있는 것이 보였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나무배를 얻어 타고 사진을 찍던 일이 생각났다. 그 배는 이곳 우포를 지키고 있는 환경감시원이 타고 다니는 자그마한 목선인데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긴 나무로 노를 젓는다기보다는 물속을 내리눌리고서 움직이는 그런 배였다. 그는 이 배를 타고 자연환경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우포의 침입자인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사랑따윈필요없어 의 환상적인 장면은 이곳 소목마을 나루터에서 촬영했다. 극중 눈먼 소녀인 류민(문근영 분)은 가짜 오빠 행세를 하는 줄리앙(김주혁 분)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 그가 보았던 반딧불이를 찾아 이곳 우포를 찾아온다. 류민의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남아 있는 강가에서 줄리앙은 아름다운 풍경을 거짓으로 전하지만 그 순간 기적처 럼 반딧불이가 우포 강가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류민의 엄청난 유산 상속을 노린 줄리앙은 류민에게 반딧불이를 선물하기위해 물가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재산 을 노린 거짓 행동임은 류민을 알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슬픈 명장면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랑따윈필요없어 라는 말의 의미는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을 간절히 원한다는 패러독스 한 표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난 이곳 우포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촬영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깨끗함으로 표현되는 광고 칠성사이 다 개구리편 이었다. 이 장면은 미루나무가 병풍처럼 드리어진 사지포(모래벌)늪에서 촬영했다. 당시 허벅지 끼는 장화를 신고 물속 생명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그들을 놀라게 했는데 꼭 그렇게 촬영해야만 하느지 알듯 모를 듯하 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청량음료 사이다와 우포는 왠지 매칭 되지 않는 조합인 것 같은데 우포늪과 개구리는 더불 어 살아 갈만한 숨 쉬는 공간이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뭔가 여러 생명들이 살아 꿈틀대는 것은 그 모든 힘의 원천인 것이다. 사지포 늪은 규모면에서 그리 크지 않지만 수생식물 물옥잠이 피어있고 이곳 제방에서 해 뜨고 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드라마 영웅시대 서울1945 등도 우포 소목마을에서 목포(나무 갯벌)로 가다보면 붉디붉은 자운영 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에서 촬영 했는데 이 시기는 신록의 푸르름이 더해가는 5월 초에 촬영하면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 자운영 꽃이 붉은 색조를 띠면서 초록빛 신록과의 절묘한 풍광을 선사해준 다. 난 이곳 우포늪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다양성과 전혀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남아있어 이곳을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난 주로 창녕 이방면 우만 마을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강가를 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가장 먼저 만 나게 되는 것이 물안개에 수줍은 듯 자태를 뽐내고 있는 왕버들 군락의 멋진 풍경이다. 가수 비 가 출연했던 화장 품 광고도 이곳 왕버들 나무에 화장품을 얹어놓고 그 배경으로 가수 비 가 서있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 길을 따라 십 여분 걸으면 푸른우포지킴이 건물을 지나 소목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이동통신 철탑이 있는 산길을 따라 목포 제방과 쪽지벌로 갈 수도 있고, 또 좌측 강가를 따라 걸으면 소목나룻터를 지나 사지포를 거쳐 대대제방이 있는 우포 로도 갈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포 전망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사초군락지를 지나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이 길로 목포제방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쪽지벌로 연결되는 코스로 우포늪 생명길 탐방로가 짜여 져 있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주로 탐방로 시작점은 우포늪 생태관이 있는 곳에서 출발하는데 여행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계절마다 찾는 우포의 얼 굴은 그 어느 코스를 택하든 언제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의 불꽃과 도 같은 역동성이 넘쳐나기도 한다. 어느 봄날, 이른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웅장하게 떠오르는 생명은 생장하고픈 욕망으로 가득하다. 하늘과 늪, 나무,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1
온 세상을 짙은 초록으로 만든다. 따뜻한 빛을 쏟아내며 이 늪에 하루가 다르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꽃이 피기 시 작하는 봄이 오고 초목이 무성해지면 자주색을 띤 자운영 꽃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늪을 수놓는다. 좀처럼 모습을 드 러내지 않던 수생식물도 이제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물가 왕버들은 아름드리 자태를 뽐낸다. 잎의 지름이 1m나 되고 온몸에 가시가 나있는 가시연꽃은 이곳 우포의 지배자가 된다. 우포에 여름이 왔다. 온 세상이 푸르름으로 덮이더니 몰래 보게 녹음이 짙어져 갔다. 여름 한나절, 해가 우포의 하늘 에 높이 솟아오르면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쬐고 있다. 한낮의 더위는 이곳 생명들을 늪으로 숨어들게 하고 쉬어가 게 했다. 그러면서 맹렬하게 성장한다. 비포장 도로 길을 따라 길게 뻗은 미루나무는 가지마다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 라나 초록으로 짙어가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냈다. 서쪽에서 미풍이 불어 왔다. 그 바람 속에는 부드러움이 듬뿍 실려 있었다. 새들은 땅 아래를 낮게 날고 있었다. 먹구 름이 몰려오고 우중충한 잿빛 하늘은 먹물로 뿌려 놓은 듯 했다. 그리고는 이내 후두둑 빗방울이 늪으로 떨어지며 원 형의 파문이 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슬을 머금은 수풀도 아름답다. 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가 싶더니 일렁이는 갈대 잎에 한줄기 바람이 휑하고 지나간다. 계절이 어느새 성큼 가을로 접어들면 우포늪 제방을 따라 늪 주위에 피어난 갈대를 볼 수 있다. 가을의 전령처럼 갈 대는 이곳 우포에도 찾아오고 눈부신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의 흐느낌이 나를 유혹한다. 초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계절이 지나간 자리, 황량한 우포늪에 손님들이 찾아온다. 왜가리며 청둥오리와 같 은 철새들은 소리 없이 이곳을 찾아들고 벌레들의 생존을 위한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강가 위를 미끄러지듯 날 갯짓 하던 청둥오리들은 밤이 이슥해서야 날갯짓을 멈춘다. 밤은 생명을 잉태하고 안개에 휩싸여 새벽을 맞는 이곳, 우포는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 다시금 생명의 원시성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포만이 갖는 진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스스로의 억누름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행길에 난 고독을 맛보았 고 자연의 숨결을 들었으며 또 자연과 교감하는 법도 배웠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의 세계에 귀 기울여 보면 그 아 름다움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태곳적 원시의 숨결과 강렬한 생명의 역동성 그 어떤 기운에 취해보고 싶다면 이 붉은 강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 우포 강가에 앉다(사랑따윈필요없어) 22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014.11.24 17:23 남해 미조항, 통통통 요란한 뱃고동을 울리며 출어를 나간 고깃배가 어판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갈매기는 고깃배 갑판 위를 빙빙 돌며 날고 있고, 어판장이 내려다보이는 길모퉁이에는 허름한 여관 금화장 이 있다. 주인공 수철 (김수근 분)과 철부지 누나 수경(장영남 분)은 중풍에 걸린 아버지 권씨와 여관을 운영하며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 다. 수경은 어린 시절 뇌수술로 정신지체 상태이고 권씨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수철은 이런 답답한 현실에 힘들어 하지만 그를 더욱 짓누르는 건 누나와 아버지 권씨가 자신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경은 서른 이 다 된 나이지만 말괄량이 삐삐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나무를 타고 부엌에서 팬케이크를 만든다며 온통 난리법석 이다. 그래서 수철은 어디에 가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수철은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날 서울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것이 그에겐 소원이다. 한편 진주(김혜나 분)는 마을 아 줌마들과 어판장에서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간다. 수철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진주가 부모 없이 어촌에서 젊음을 허 비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수철을 대하는 진주의 마음은 남다르지만 수철은 진주를 친동생으로만 대한다. 진주는 수철의 생일날 그가 서울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대신 여관 일을 맡아주겠다는 제의를 하는데, 경남 남해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 드라마는 극중 주인공의 단조로운 일상을 수채화처럼 그려냈 다. 이 작품은 MBC 베스트극장 떠나요삐삐롱스타킹 으로 황인뢰 PD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난 이 대본 을 읽으면서 내 젊은 날의 숨기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암울했던 내 젊은 날의 이지러진 자화상이기도하 다. 난 군에서 제대한 뒤 종로3가 뒷골목 두 평 남짓한 구멍가게에서 아버지 일을 도우며 지냈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동 안 이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팔며 3남 1녀인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내가 군 제대 후에도 아버지는 이 일을 계속하셨는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3
데 난 제대하고 나서도 별다른 일도 없고 해서 이 구멍가게를 거들면서 지냈다. 그 담배가게 옆에는 리어카를 맡아주 는 보관소가 딸려 있었고 그 보관소 마당 한쪽에는 베니어판으로 임시로 꾸민 방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골방에서 난 아침을 맞고 구멍가게로 가서는 담배를 팔았다. 밤이면 리어카를 보관하는 일을 맡으면서 몇 년 간 이곳에서 보냈었다. 리어카 보관소가 있는 종로3가 부근에는 영화관이 많아 노점상하는 대부분의 상인들은 자정이 훨씬 넘은 늦은 시간 에 보관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난 늘 설친 잠을 자기 일쑤였다. 벌이도 시원찮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내가 보관소에서 이런 모습으로 젊음을 허비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고통스런 생활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이런 암울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은 온통 먹구름 같은 것이 었다. 내 젊음은 무기력하게 또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암울한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꿈을 향한 도전이었는데 난 틈 틈이 시간을 내어 무조건 영어단어를 외고 수학문제를 풀면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하늘 높이 나는 갈매기 처럼 허공을 멀리 날아 내 꿈을 펼쳐갔다. 이곳 담배가게에 딸린 보관소에서 그렇게 공부하면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 었다. 대학에 진학하고서도 난 이곳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희망을 안고서 지냈다. 내가 참고 일하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서 학업을 병행하면서 그 일을 지속해나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 젊은 날의 신념과 용기는 찾아볼 수 없고 초라하기만 했던 패배주의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것이 내 젊은 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내게 큰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난 그것을 값진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기차는 어느새 종착역인 진주역을 도착한다는 안내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난 읽고 있던 대본을 배낭에 주섬주섬 챙겨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 광장엔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아 짙은 어둠이 깔렸다. 난 경남 진주역에 서 남해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되도록 남해로 가서 여장을 푸는 것이 여러모로 낫 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해로 가는 버스는 좌석이 꽉 차 있었는데 버스 안은 사람들로 왁자지껄 했다. 난 버스 안에서도 짓눌러있던 마음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탄 버스는 한 시간 쯤 지나서야 남해읍에 도착했다. 난 또 다시 미조항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는데 남해읍에서 미조항까지의 거리도 꽤 멀었다. 차창 밖을 통해 멀리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고 바다의 차가운 밤공 기가 온 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버스는 네온사인 불빛이 희멀건 남아있는 미조항에 나를 내려놓았다.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판장 부근으로 갔는데 삼거리의 허름한 여관 간판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품 내용에 맞는 장소라는 것을 직감하고 난 여관 문을 들 어섰다. 난 이곳에 숙박하면서 여관 주인에게 이곳을 촬영지로 빌려 줄 것을 제안했는데 그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금화장이라고 쓰여 있는 여관은 실제로도 허름해서 극중 분위기와도 부합되는 곳이었다. 건물은 배네 통 칼라처럼 원색적으로 빨간색을 칠해 놓았는데 바닷바람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탈색돼서 촌스러움이 물씬 풍겨나왔 다. 카운터 옆으로 난 복도 천정에는 백열전구룰 갈아 낀 지 오래된 듯 어두침침한 것이 여행객들이 묵는 여관이라기 보다는 배를 타고 먼곳으로 나기기 전 선원들이 임시로 묵는 그런 여관인 듯 했다. 난 대본 속의 내용을 상기하면서 여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극중 주인공 수철은 여관방 카운터에 앉아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상상한다. 겨울바다를 보러 온 신혼부부 행복해 보이고, 방학이라 친구들끼리 놀러온 여대생 들 행복해보이고, 부모님한테 거짓말하고 놀러 다니는 고등학생들도 행복해보이고, 수철은 여관이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곧 바로 여관카운터가 보였고 주인공 수철의 감정을 표 현하기에 내부 공간도 적당한 규모의 여관이었다. 다음날 아침, 난 해안도로를 따라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는 가천 다랑이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곳인데 100 여 층 곡선형태의 논이 그 기하학적인 문양을 이뤄 검푸른 바다 와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난 해안도로에서 탁 트인 바다와 기하학적 문양의 다랑이 논 풍경을 광각과 망원렌즈를 두 루 사용해 그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극중 진주가 사는 마을을 이곳 가천 다랑이 마을로 설정한 것은 순전히 다랑이 논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평지에 직선으로 펼쳐져 있는 논은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곡선을 이루며 바다와 맞닿은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4
다랑이논의 구도는 미장센이 있다. 극중 주인공 진주가 다랑이 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려보며 난 이곳 다랑이 마을에서 보다 멋진 풍광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극중 진주가 사는 동네 가천 다랑이 마을로 수철이 찾아온다. 수철은 진주에게 이집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는데 진주는 여긴 엄마와 함께 살았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말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곳으로 이사 와서 엄 마하고 처음으로 오순도순 재밌게 살던 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집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주가 사는 이집은 가천 다랑이마을 느티나무가 있는 골목 초입에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바닷가로 가까이가면 가천 암수바위의 기묘한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이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종족보존과 마을의 풍요 를 위한 기원 그것이다. 극중 금화장 여관에 사는 수경은 서른이 다된 나이지만 외모는 말괄량이 삐삐 같다. 머리는 두 갈래로 따고 긴 스타 킹 양말에 남자구두를 신고 옆에는 작은 강아지 인형을 안은 닐슨씨가 있다. 어느 날이었다, 수경의 뗏목 사건이 발 생한다. 삐삐처럼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고 바지선을 타고 방파제 밖으로 나갔는데 해양경찰까지 출동하고 조용했던 어촌마을은 온통 난리이다. 결국 배를 동원해서 수경을 구조하지만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경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날 밤 수철은 미조항 등대가 서있는 방파제에 앉아서 먼 밤바다를 바라본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막막한 현실을 괴로워하며 그 누군가에게 구원을 손길을 뻗친다. 그리고는 독백처럼 저는 남해바닷가에 있는 여관 금화장에 삽니 다. 제 생일은 12월23일 입니다. 그날 저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수가 없습니다. 당신 은 저를 구해줄 수 있나요. 당신은 저를 서울로 데려가 줄 수 있나요. 데려가 줄 수 있다면. 수철은 빈 소주병에 사 연을 적은 편지를 담고서는 칠흑 같은 밤바다에 멀리 내던진다. 그리고는 풀썩 주저앉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 아침, 바다 저편 태양이 떠오르고 아침 햇살이 여관 금화장에 퍼져나간다. 수철의 친구인 현두가 운전하는 봉 고차가 여관 앞에 도착한다. 밝은 캐쥬얼 차림의 가방을 멘 수철과 진주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권씨와 그의 친구 재 국이 두 사람을 배웅한다. 아침 햇살이 바다 속으로 부셔지는 남해대교, 바람처럼 스쳐가는 바다풍경들. 차안의 나란히 앉은 수철과 진주는 흐 뭇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난 듯 수경이 준 도시락을 풀어보는 수철. 그 안에는 갖가지 모양을 한 쿠키 들이 수북이 담겨 있다. 삐삐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 모양 쿠키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모양이 하나같이 삐뚤삐 뚤 제멋대로다. 웃으면서 쿠키 맛을 보는 두 사람을 태운 봉고차가 남해 대교를 건넌다. 어판장이 내려다보이는 금화 장 여관 건물엔 어느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조명불이 들어오고 하늘에선 눈송이 같은 흰 눈이 펑펑 내린다. 수철은 답답한 현실에 떠나려 했던 남해 바닷가 마을 미조항! 그 어느 해 난 문득 그곳이 가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 다. 그때 난 이틀정도 남해에 머물면서 곳곳을 여행했는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은 남해 미조항이었다. 그 기 억의 흔적이 지금 나로 하여금 미조항을 다시 찾게끔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등대가 나란히 먼 바다를 향해 서있는 항구는 옹기종기 모여선 마을이며 어판장으로 들어오는 고깃배의 모습, 그때 그 기억을 되살려 난 이곳을 촬영지로 결정한 것이다. 난 어판장 어느 후미진 뒷골목 한 식당에서 갈치회 무침을 매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남았다. 난 미조 항을 거쳐 금산 보리암을 찾아갔는데 보리암 정상에서 바라보는 상주해수욕장 검푸른 바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 리고 또 찾아갔던 기억중의 하나는 삼동면의 물건어부방조림이었다. 이곳은 오백여 년 전에 조성된 숲인데 울창한 고 목 사이로 검푸른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오래전 태풍 미사가 남해안을 강타했을 때 피해가 가장 적은 곳이 이곳 물건 어부방조림이었다. 태풍의 위력에도 마을을 굳건하게 지켜주고 있는 방조림 후면으로는 산 아래 예쁜 집들이 옹기종 기 모여선 독일인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최근 MBC 드라마 환상의커플 을 촬영했다. 지금 이곳에는 나와 여러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된 중견연기자 박원숙씨의 집도 이곳에 있다. 그는 빛과그림자 촬영스튜디오에서 녹화할 때 남 해에 오면 꼭 한 번 들러달라며 내게 말하면서 가천다랑이마을 입구에 또 커피전문점을 개업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남해를 자주올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내게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이 삼동면 물건어부방조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에 지족해협 원시어업죽방렴이 나타난다. 이 원시어업죽방렴은 참나무 말목과 대나무를 주재료로 발처럼 엮어 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의 형태를 말한 다. 이것을 시야의 중심에 두고 지족해협 붉게 물든 해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광경을 바라보면 먼 훗날 더없이 소 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덧칠될 것이다. 그때 난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잠시 머뭇거렸었는데 최 근에 남해 창선과 사천을 잇는 다리가 생겨 삼천포로 쉽게 갈 수 있다고 하니 다음에 이곳을 들르게 되면 어디 한 번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5
삼천포로 빠져 볼까나! 떠나요 삐삐롱스타킹 26
왕초 따라가기(왕초) 2014.11.24 17:13 1999년 방송되었던 MBC특별기획 드라마 왕초 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거지왕 김춘삼의 일대기를 극화한 것이 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거지란 육교나 전철 안에서의 구걸행위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진 것 이 전부일 것이다. 거지왕 김춘삼으로 알려져 왔던 실제 그의 이면에는 당시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 거지왕 김춘삼은 해방이 되고 6,25전쟁 후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운 다. 또한 고아원 합심원 에 계속적인 조력을 아끼지 않던 영국여왕의 조카딸과도 염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도 공식초청을 받게 되고 그 후 정치 세력과도 친분을 맺게 되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펼쳐진 다. 그의 어린 시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강원도 장성 외가 집에 살던 어린 춘삼(안재홍 분)과 그의 누나는 길을 나선다. 재가한 엄마(선우은숙 분)를 찾아 대 구로 가는 두 남매는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말을 탄 괴한들은 누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 고 춘삼은 호랑이 먹잇감으로 커다란 구덩이에 내던져진다. 드라마 왕초 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S#산길(어린 춘삼이 누나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다), S#움막(어린 춘삼이 거지들과 함께 기거하는 곳) 드라마 대본상 엔 장소와 관련된 추상적인 표현은 장소를 선정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난 춘삼과 그의 누나가 산길 을 넘어 엄마를 찾아나서는 장면에서 또 춘삼이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인 움막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난감 했다. 드라마 공간상 인물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진다. 극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선 구 도상의 미장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길이 중심이 되는 이미지는 내게 풀리지 않는 수학공식처럼 어렵다. 길은 사람 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그 어떤 곳도 길이 되는 것이다. 또 길은 모든 정서의 중심으로 통하는 것이다. 어린 춘삼이 누나와 걷는 길은 나무 숲길일수도 있고 마을 신작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사실적인 것보다는 동화 왕초 따라가기(왕초) 27
적인 이미지의 표현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자칫 거지들 생활공간이 행여 어둡게 보여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비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난 두 남매가 걷는 길은 억새가 햇빛을 받아 반 짝이는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로 방향을 잡았다. 전국에는 꽤 여러 곳의 억새평원이 있다. 내가 드라마 왕초 의 대본을 들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강원도 정선 남 면에 있는 민둥산이었다. 난 청량리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영동선 기차를 타고 정선 증산역에서 내렸다. 증산역은 정 선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분기역인데 평일이라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난 증산역을 빠져나와 정선과 사북, 고한을 잇는 59번 국도를 따라 민둥산 방면으로 걸었다. 민둥산 등산은 삼내약수에서 갈림길을 거쳐 정 상에 올랐다가 증산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아예 북쪽의 화암 약수에서 시작해 증산까지 산행할 수도 있는데 난 경사 가 완만한 밭구덕마을로 방향을 잡았다. 이곳 밭구덕마을은 석회암 지대에서 나타나는 카르스트로 지형으로 되어 있 어서 큰 구덩이의 땅이 움푹 꺼져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난 이곳 발구덕마을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8부 능 선부터 억새평원이 펼쳐진 능선을 따라갔다. 민둥산 정상에 오르니 드넓은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산 에 나무가 없이 둥그런 봉우리가 대부분 억새밭으로 덮여 있었다.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억새길을 따라 이곳에서 촬영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쉽게 결정하기엔 다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촬영장비 차량이 밭구덕 까 지는 접근할 수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무거운 촬영장비를 정상으로 옮기라고 한다면 스텝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 를 것이 뻔하다. 산 정상까지 장비를 실은 차량이 올라가는 경우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억새평원의 산꼭대기는 더더욱 그렇다. 난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민둥산에서 내려와 제천역에서 동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다음 목적지는 경남 창녕으로 방향을 정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화왕산 정상 일대 억새평전에서 달맞이와 억새태우기 행사가 열린다는 오래전의 신문기사가 얼 핏 생각났기 때문이다. 경남 창녕 화왕산을 가려면 동대구역에서 내려 서부터미널로 가서 또 다시 창녕으로 가는 버 스를 갈아타야만 한다. << 왕초가 그의 누이와 걷던 산길, 억새밭 >> 화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은 창녕 여자중학교 옆길을 거쳐 자하골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가파른 환장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난 이 길을 택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차량 접근이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길이 비교적 완만한 옥천계곡을 따라 관룡사를 거쳐 올라가는 코스를 택했다. 옥천리 매표소를 거쳐 관룡사로 가 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 산행하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이 길로 차량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하 늘은 티 없이 맑고 투명해 산행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관룡사에 이르렀을 때 절 마당에는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빛으로 물들면서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창녕 화왕산은 억새가 피어 있는 산길을 촬영하는데 최적의 장소다. 당시 우리는 촬영용 발전차량과 여러 필의 말을 끌고 와 이곳 화왕산 정상에서 촬영했다. 억새가 바람결에 나부끼는 산길로 말을 탄 도적 떼가 나타난다. 겁을 먹은 어린 춘삼과 그의 누나가 억새평원을 내달리는 장면을 우린 헬기로 고공 촬영했다. 산 정상은 밋밋한 분지로 되어 있 고 관룡산과 영취산이 아주 가까이 있다. 낙동강을 낀 평야와 영남알프스의 산들이 멀리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경남 창녕 화왕산은 억새 평원을 촬영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그 후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 됐다.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나 영화만 해도 허준 상도 다모 조폭마누라 등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전국에는 크고 작은 억새평원과 갈대숲이 많다. 유행가 가사 중에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가사 내용 중에 서 으악새는 경상도 방언 억새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억새는 우리의 생활 속에 친근한 대상물이면서 삶의 회한 같은 정서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판 강가에는 억새와 갈대들이 많다. 갈대는 주로 강이나 늪지 대에 주로 널리 분포되어 있고 억새는 산 능선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나로서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국내의 대표적인 억새밭은 누가 뭐래도 영남 알프스이다. 울산과 경남의 경계에 있는 신불산 평원과 밀양의 사자평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영남알프스와 인접한 양산 천성산 화엄벌이나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제주 도의 산굼부리 일대, 충남 홍성의 오서산,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황학산, 서울의 하늘공원 등도 억새밭으로 이름이 왕초 따라가기(왕초) 28
높다. 갈대로 유명한 부산 을숙도나 전남 순천만, 보성만, 충남의 천수만, JSA공동경비구역 을 촬영한 서천 금강 어귀도 갈대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영화 서편제 에서 바람 부는 갈대숲 길을 따라 유랑하는 장면을 촬영했던 해남 고천암 간척지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담양 대나무 숲과 거지들의 움막>> 담양 하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나무이다. 드라마 왕초 는 전남 담양 여러 곳에서 어린 춘 삼의 활약상을 주로 촬영했다. 시외버스는 순창 24번 국도에서 담양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창 밖을 스치며 지나가는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햇빛 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이 나무는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데 지자체에서 오래전 이곳에 나무를 심은 건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라 생각했다.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나 어느새 담양을 대표하는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 다. 버스는 오후가 되어서야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주변엔 떡갈비며 대나무 통밥. 압뽕 순대 등 담양을 대표하는 간판 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난 전라도 지방에 오면 왠지 맛있는 음식을 만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마음이 즐거워진 다. 때를 놓친 점심때라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렸다. 외관은 볼품없지만 왠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찾아 들어갔 는데 기대와는 딴판으로 차려진 음식 맛은 별로였다. 난 식당 문을 나와 길모퉁이를 돌아 버스를 타고 대전면 행성리 라는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마을입구 돌담길을 따라 조금 들어서니 한빛학교 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대나무울타리 너머 앙증맞은 흰색 건물이 드러났는데 난 당시 편견의 눈으로 이 학교를 바라보았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학교생활에 많은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 큰 애가 제도권의 학 교에 적응하지 못해 한때 나도 이런 대안학교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난 그때 사물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견의 잣대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난 학교 건물을 뒤로한 채 마을길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마을 담장 길을 따라 높게 솟은 대나무들이 담장 안으로 몸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집 대나무 사립문으로 들어서니 어둑함이 밀려왔다. 어둑한 대나무 숲 사이로 간간이 한 줄기 빛이 새어들어 올 뿐, 한낮인데도 컴컴하고 냉랭한 기운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대나 무 잎사귀에 스며들어 바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대나무 숲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올 때면 윙윙 소리를 내며 운다. 그 소리는 비통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처럼 들려오 는 것이다. 길게 뻗은 대나무 숲길은 미로처럼 나 있고 난 이 공간 그 어디쯤 거지들의 생활공간인 움막을 정해야겠 다고 생각했다. 난 비교적 햇볕이 잘 들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움막 지을 곳을 결정했다. 우린 드라마 왕초 를 촬영하면서 움막에 인공강우기로 비를 뿌리기도 하고 또 조명으로 대나무밭에 빛이 새어들 게 하면서 동화처럼 거지들의 생활을 그려냈다. 당시 방송됐던 드라마 왕초 는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이곳에 서의 장면 또한 인상적이어서 그 후 많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조선시대 여형사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 다모 첫 회에서 대나무 숲에서의 칼싸움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세 상사 모든 인연을 끊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나무 숲이다. <<왕초가 재가한 그의 어머니를 찾아 만나던 곳, 소쇄원>> 남면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은 어린 춘삼이 재가한 엄마(선우은숙 분)를 찾아가 마을 어귀 징검다리에서 만나는 장면 을 연출했다. 춘삼과 엄마와의 오랜 이별과 만남을 이 소쇄원 나무 징검다리에서 그 회한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이곳 에서 촬영할 당시 집주인은 촬영을 완강히 거부해 이를 설득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그래서인지 소쇄원 나무 징검다 리에서의 장면은 남달리 애착이 간다. 소쇄원은 1,500평 규모의 정원에 계곡, 작은 폭포, 연못, 정자, 누각, 꽃 등의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어 전형적인 한 국 정원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소쇄원의 창건자는 성리학의 대가 조광조 선생의 제자인 소쇄 양산보이다. 조선조 기묘사화 때 그의 스승인 조광조가 사약을 받자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둔했다. 풍수지리에 따른 간택, 팔괘 와 음양오행등 유교사상에 정통한 학자답게 수목과 건축물을 적절하게 배치한 놓았다. 소쇄원의 정자 누각에 올라 자 연의 시간에 내 몸을 맡기면 이곳 소쇄원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야 만다. <<왕초가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리는 장면, 관방제림 >> 왕초 따라가기(왕초) 29
<<왕초가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리는 장면, 관방제림 >> 어린 춘삼과 앵무새(최상학 분)가 가마니로 덮은 친구의 시체를 손수레에 싣고 저자 거리를 벗어난다. 검은 하늘 비 내리는 시장 길을 비통한 마음으로 걷고 있다. 이 같은 장면을 이곳 담양시장에서 촬영했는데 이 부근엔 천변 관방제 림이 있다. 담양 읍내로 들어서면 시장 부근 제방을 따라 길게 뻗은 숲길이다. 이곳은 메타쉐콰이어 나무와 함께 담 양의 대표적인 숲길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관방제림은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 북쪽에 제방을 보호하고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이다. 관방제림 둑에 앉아 어린 춘삼과 앵무새가 춘삼이 짝사랑하는 연지를 기다린다. 여학생 연지는 거지 춘삼을 거들떠보 지도 않고 숲 속 길을 빠져나간다. 둑 길 양쪽으로 느티나무, 푸조나무, 벚나무, 팽나무 등의 오래된 고목이 숲길을 이루고 있다. 해가 추월산 마루에 걸리고 단풍은 이곳 관방제림을 타고 내려와 붉은 단풍으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제방을 따라 길게 뻗은 숲길은 잎이 떨어져 아주 부드러운 빛깔을 띠고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구르몽의 낙엽 밟는 소리 와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수필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가을의 서정이 관방제림 숲으 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들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데 관방제림 천 변에 있는 진우네 식당은 음식 맛이 색달랐다. 내가 국수를 유독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비빔국수와 진한 멸치 국물 맛이 일품이다. 또 멸치 국물에 푹 삶은 찐 계란은 내 미각을 자극했다. 난 제방 식당 한쪽 구석에 마련된 평상에 앉 아 관방제림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국물을 곁들인 찐 계란을 먹었다. 국민학교 때 소풍을 가서 사이다와 찐 계란을 먹 던 기분으로, <왕초가 재가한 엄마를 찾아가는 돌담길, 창평 삼지천 마을 >>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은 전통 한과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을인데 소박한 돌담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삼지천 마 을의 담장은 전형적인 토석담에 일부는 돌담인데 담쟁이넝쿨이 향토색 돌담에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드라마 왕초 에서 어린 춘삼이 재가한 엄마 집을 찾아 마을 돌담길을 서성이며 담장 안을 기웃거리는 장면을 이 곳에서 촬영했다. 어린 춘삼은 막상 재가한 엄마를 찾아갔지만, 선뜻 대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다지 높지 않 은 돌담장 안으로 얼핏 보이는 장독대와 졸린 듯 느릿느릿한 삽살개가 마당을 지키고 있다. 춘삼이 찾아갔던 재가한 엄마 집은 고재환 가옥으로 소박한 돌담길 따라 한가로이 거니는 뒷짐 진 촌로의 걸음처럼 느릿함이 느껴지는 곳이 다. 담양 창평 삼지천 돌담길 마을은 고풍스러운 옛 고가들과 낮은 돌담길이 잘 어울려 정겨운 그림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돌담길은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경남 고성 학동마을 돌담은 마을 뒤편 수태산 줄기에서 채취한 납작 돌과 황토를 섞어 쌓은 돌담으로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멋진 경관 을 보여 주고 있다. 전남 강진 병영마을 돌담길은 2m가량 되는 높은 담장이 직선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 마을이 계획에 의해 조성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경북 성주 한개 마을 돌담길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옥과 어우러져 아늑한 느낌이 든다. 경북 군위 부계 한밤마을 돌담길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특징이 있으며 규모 또한 방대한 것이 특징이다. 영.호남 지역 10개 마을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됐는데 경남 거창 황산마을, 산청 단계마을,경북 군위 부계 한밤마을, 성주 한개마을 전북 무주 지전마을, 익산 함라마을, 전남 강진 병영마을,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대구 옻골마을 돌담길 등이다. 그 밖의 드라마 왕초 에서 거지들 세력다툼에서 패싸움 장면은 담양 고북면 어느 허름한 정미소에서 촬영했다. 또한, 왕초가 거지들의 두목인 발가락과 담력을 겨루던 철길은 경남 밀양 삼랑진 철교 부근이었다. 당시 우리는 서울에서 이곳 삼랑진역까지 증기기관차를 끌고 와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춘삼과 거지들 우두머리인 발가락은 철길에 누 워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어린 춘삼은 끝 까지 버텨 그 담력을 인정받아 거지 세계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하는 순간이다. 드라마 왕초 는 불우했지만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던 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만큼이나 절망에서 희망으로 승화되는 그의 삶에 난 경건한 마음으로 찬사를 보낸다. 거지왕 왕초 가 걷는 길은 어두운 그늘에서 밝은 내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희망의 길이었음을 난 기억한다. 왕초 따라가기(왕초) 30
왕초 따라가기(왕초) 31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2014.11.24 17:09 MBC 창사특별기획드라마 빛과그림자 에서 극중 빛나라쇼단 이 여수에 극장 공연하러 오는 장면이 있었다. 여 수지역 갑부 아들로 출연한 아이돌 그룹 빅뱅 의 승리가 사는 집을 헌팅하기 위해 난 여수를 찾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무전여행 비슷하게 찾아왔던 곳이 전남 여수였다. 누구나 그렇듯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와서 구경하는 곳이 향일암인 것처럼 나 또한 그때 별 느낌 없이 향일암에 갔었다. 또 그때의 기억 아니 미각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먹어봤던 돌산 갓김치의 씁스름한 그 맛이 여수에서 떠오르는 것의 전부인데, 이번 드라 마 헌팅을 빌미로 여수를 제대로 한번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레었다. 여수에는 '봉소당 이라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다. 난 영화를 통해서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화 가문의 영광 에서 극중 쓰리제이 가문으로 나왔던 집이다. 여수로 오기 전날, 난 봉소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곳을 방문해도 괜찮은지 여쭤보았다. 그는 흔쾌히 허락하며 전 라도 사투리가 다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가 칠십이 넘은 노인인데 여수 전 역인 순천역쯤에서 연 락을 하면 나를 마중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난 기차가 순천역쯤에 도착할 때쯤 전날 그와 통화했던 그 말이 생각났지만 무심코 받아넘겼다. 종착역인 여수 엑스포역 내려 그 집을 찾아갔는데 소슬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선뜻 벨을 누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기를 십 여분! 난 휴대폰 다이얼을 눌러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가 높아져 흘러나왔다. 자신이 지금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오느냐는 거였다. 오 마이 갓! 설마 그 가 기다리라고는 난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뿔사! 이런 대단한 실례가 또 어디 있담! 그는 집에 전화를 해놓을 테니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란다. 잠시 후 집안일을 봐주는 한 아줌마가 나와서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안내하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봉소당의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2
웅대함에 난 움츠러들었다. 그 집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족히 수 천 평은 되어보였다. 마당 한 쪽에 있는 정자위로 올라가보니 여수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자 난간에 걸터앉아 여수항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윽 고 그가 나타났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는데 그는 반가 이 나를 맞이하며 집안 곳곳을 안내했다. 그는 건물의 경계를 이루는 곳을 가리키며 예전엔 저 앞까지 자신의 땅이라 고 했다. 그리고는 영화 가문의영광 을 이곳에서 촬영하게 된 일화를 내게 들려줬다. 영화감독이 촬영장소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을 통해 여수 지역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감독이 봉소당을 방문했는데 처음엔 촬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기꺼이 촬영 장소를 빌려 주었는데 이게 웬걸, 한 마디로 난장판 또 다른 말로 아수라장이라는 것이다. 그 후에도 예능프로그램 인 1박2일 제작진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또 장소섭외를 부탁했는데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하긴 촬영 인원만 해도 거의 백 여 명 또 차량대수만 해도 수 십대가 넘는 촬영매카니즘을 모르는 그로선 조금 과장되게 표현 하면 생애 최대의 실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빌려줬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촬영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이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흔쾌히 촬영장소로 빌려주는 것이 내게 그 저 눈물 나도록 고마울 뿐이다. 사실 대저택 소위 갑부들이 사는 집을 촬영장소로 빌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 로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내겐 있었다. 오래전, MBC 드라마 이브의모든것 에서 극중 주인공(장동건 분)이 사는 고급빌라를 섭외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빌라 거주자의 동의로 쉽게 촬영장소를 빌리는가 싶었는데 빌라를 대표하는 회장과 몇몇 주민들이 반대해 촬영장 소를 빌릴 수 없게 되었다. 촬영이 당장 코앞인데 느닷없는 상황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때 대표자를 설득하기 위해 빌라단지 앞에서 밤낮을 서성거렸다. 의도적으로 날 피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 빌라를 찾아갔다. 또 한 번은 이 작품의 공동연출자(제2연출)와 함께 빌라단지를 찾아가 제발 도와달라 고 읍소하러갔는데 그 대표자는 우릴 만나주지 않는 것이었다. 우린 빌라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 었는데 삐삐 호출기에서 진동음이 울려왔다. 그 삐삐 무선 호출기의 내용은 나와 함께 기다리던 연출자의 부친이 돌 아가셨다는 부음소식이었다. 그는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남아있으면서 내 등 뒤로 뒤돌아서서 울고 있는 듯했다. 두 뺨을 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던 그 모습이 난 잊히질 않는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장소 섭외해야 할 일을 그가 대 신하게 된 것이 내겐 평생 짐으로 남아있다. 그때 어둠속에서 울고 있는 그를 보며 도대체 촬영이 뭔지! 도대체 잘 사는 부류의 인간들의 논리란 것이 고작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번거롭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난 밤 하늘의 별들을 보며 원망했었다. 그래서 난 살아가면서 그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 누가 내게 손을 내밀 면 도와주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양평에 있는 고급빌라를 빌리지 못하고 용인 전원주택으로 그 장소를 바꿨다. 그 전원주택에는 우연히 연기자 강부자씨가 그 단지 안에 살고 있었다. 대개 고급저택은 촬영장소를 빌리기가 워낙 까다로워 드라마를 보면 이전 드라마에 나왔던 집들이 또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장소렌탈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작품 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저택을 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에 여수 봉소당 주인은 내겐 구세주와도 같 은 것이다. 봉소당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던 그는 점심시간이 다 되자 여객터미널 부근의 봉정식당으로 날 데려갔다. 이 식당은 허 름하지만 서대기 요리를 기막히게 잘하는 집이라면서 보통 서대기보다 몇 배나 큰 용서대 를 주문하는 것이다. 그 리고는 자신은 먹지 않고 일일이 생선가시를 발라 내 밥그릇에 올려놓는다. 자신은 따로 점심 선약이 있기 때문에 함 께 식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내게 여수의 참 맛을 보여주려 이리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선약 된 점심약속을 마치고나서 함께 자신의 벤츠 승용차로 여수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약속대로 한 시간쯤 지나 서야 내게로 왔다. 그리고는 맨 먼저 여수 향일암으로 날 안내했는데 솔직히 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오래전에 가보았던 경험도 있고 또 드라마 내용상 불필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의 호의를 져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서 향일암 말고도 오동도는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 했다. 오동도는 봄날 흐드러진 동백꽃 을 볼 수 있는 섬인데 이 섬에 새로 비렁길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렁길은 가파르지 않고 다도해 풍광을 나란 히 하면서 걷는 길이라 그 어느 길보다도 아름답다고 했다.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3
우린 향일암으로 가는 일주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겨우 빠져 나올 만한 바위틈을 벗어나자 눈앞 에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대웅전을 끼고 오르자 이내 관음전과 해수관음상이 보였다. 주변에 는 돌로 새겨놓은 수많은 거북상들이 바다를 향해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 향일암에 거북상이 많은 이유는 하 늘에서 보면 향일암은 거북이 엉덩이 부분이고 임포항이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리고 향일암이 있는 자리는 금오산인데, 금오는 쇠 금 자와 큰바위거북 오 자를 써서 황금빛 커다란 거북 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유래중 의 한 가지는 주변의 돌이 마치 거북껍질처럼 문양이 많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기 동자 조각상들이 향일암에는 없다. 그 대신 거북상이 유독 많은 것이 향일암의 특징이다. 다음날에도 그는 자신의 영빈관에서 날 하룻밤 더 묵게 하면서 여수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백야도 마을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학교 또 그가 즐겨 찾는 손두부 집으로 나를 데려가며 내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아름다운 고장 여수를 자신이 운전기사가 돼서 날 안내해주는 것이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날 순천시외버스터미 널까지 바래다주는 것이었다. 난 여수에서 그와 그렇게 만났고 또 그와 순천에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난 먼 훗날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와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을 또 그가 내게 베풀었던 온정에 감사해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와 같이 남에게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난 여수를 떠올릴 때면 늘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며칠 후, 우린 여수항을 배경으로 드라마 촬영을 했다. 구 어판장과 여수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돌산공원에서 촬 영했는데 그 느낌은 새로웠다. 돌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여수항의 모습은 시야가 한 눈에 들어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 은 청량감으로 다가왔다. 바다 한 가운데 작은 고깃배가 통통통 연기를 뿜어내며 항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아래 펼쳐진 돌산대교 위에서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후의 눈부신 햇살아래 바다 수면으로 은 은하게 부셔지는 햇살이 역광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런 풍경들 어딘가에 따뜻하고 아늑한 향기가 바다바람을 타고 내 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여수는 물빛이 고운 아름다운 이름의 고장이다. 난 여수라는 이름의 어감이 아련한 그리움의 향수처럼 느껴진다. 난 돌산공원에서 내려와 하멜등대로 발길을 옮겼다. 붉디붉은 색조를 띤 하멜등대는 하멜이 여수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 리기 위해 세워진 것인데, 사실 말이 방문이지 억류생활이 아니었을까! 난 이 하멜등대가 왠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 가온다. 독창성이 있기보다는 왠지 우리 피부색과는 다른 코쟁이 외국인 같은 모습이어서 난 이곳에서의 촬영을 포기 했다. 그 대신 여수항이 내려다보이는 돌산공원으로 장소를 옮겨서 촬영했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하멜표류기 를 통 해서 조선을 유럽에 처음 알린 콜롬버스와 같은 인물이다. 난 그의 방문을 통해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게 된 긍정적 측면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이었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조선이 유럽 열강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침탈의 역사과정을 겪은 것이 근대화과정이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의 방문을 기념한 하멜등대가 내겐 철거된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과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난 여수항을 보았다. 하늘에선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천천히 태양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투명한 햇살이 바다를 비 치고 있는 여수항은 더욱 눈부셨다. 난 멀리 봉소당이 보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여수에 헌팅 왔을 때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진심으로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라고 되뇌었다. 가문의 영광이로소이다(가문의영광) 34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2014.11.24 17:02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잔뜩 찌푸려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벌거벗은 나무들은 시야에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또 점점이 내게 멀어진다. 옹기종기 모여선 몇 개의 마을을 지나자 요선정, 요선암이라는 큼직한 관광안내 표지판이 휙 하며 스쳐 지나갔다. 몇 해 전 기묘한 바위들이 널 부려진 이곳 강가에서 드라마 촬영하던 때를 기억했는데 그때 마 을 주민으로부터 섶다리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영월에 오게되면 꼭 가봐야겠다고 내심 생각했던 터였 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섶다리가 있는 판운리 마을을 찾아가려면 주천면 소재지에서 내려야 한다. 주천방향으로 가다가 아침치 고개를 넘어 유목정 마을임을 알리는 표석에서 판운리 마을을 바라보면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앞 섶다리가 원경으로 보인다. 판운리 마을 섶다리에 다다랐을 때 한 노파가 손에 지팡이를 의지한 채 다리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절룩절룩 걷는 모습이 몹시 불안해 보였는데 노파는 익숙하게 다리를 건너간다. 고요함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하늘에서 싸락눈이라도 흩날린다면 강변 마을 섶다리 풍경은 운치를 더할 것이다. 그 을씨년스러움이 눈발에 반쯤 드러낸 섶다리에 차곡차곡 쌓여 가면 환상적일 것으로 생각하면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 다. 망원렌즈로 화각을 최대한으로 끌어당겨서는 눈발이 허공에 흩어지는 모습을 연상하며 30분의 1 느린 셔터속도로 한 컷 한 컷 셔터를 눌러 본다. 참 편리한 것은 디지털카메라여서 일일이 현상, 인화해야 하는 부담감으로부터의 해 방이기도 하려니와 예전 같으면 필름 가격이 너무 비싸 카메라 셔터를 쉽게 눌러 댈 수 없었는데 세상 참 격세지감 이라고 해야 할까!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난 노파가 건넜던 섶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가 보았다. 마을 입구에는 옹기종기 여러 집이 모여 있었는데 조금 전 다리를 건너갔던 노파가 커다란 나무 밑 평상에 걸터앉아 동강이 흐르는 젊은 날의 추억(라디오스타)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