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의 소설 김미월 여덟 번째 방 배지영 오란씨 이지월 변두리 괴수전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
펴내며 민음의 소설 01 민음의 소설 은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한 실험적인 무 료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민음사가 발간하는 연 100종 안팎의 소설들 중에서 특 별히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들을 골라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단편의 경우에는 전편을, 중 장편의 경우에는 가장 문학적인 부분을 소개할 것입니다. 작가 인터뷰나 짤막한 질의응답 등도 독자들에게 작은 기쁨을 줄 것입니다. 프랑스의 NRF 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문예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 으로 작품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편의 장편을 한 번에 독자들에게 소 개하기에 적합한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장편소 설이 주로 연재소설 형태로 독자들을 찾아갔던 것과 차별화되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문학은 이미 장편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독자들 쪽에서는 한참 전부터 장편을 선호해 왔습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합니다. 이 실험적 인 잡지는 일차로 민음사에서 펴내는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뜻을 품 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편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예지의 형식을 시도해 보려 는 야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김미월, 배지영, 이지월 등 세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세 작가 모두 한국문학에서 가장 젊은 쪽에 속하는 작가들입니다. 이들의 작품에는 패기 와 실험이 넘치고, 도발과 응전이 난무합니다. 모쪼록 이들의 작품을 독자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민음의 소설 은 독자들이 원하는 대로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전자책은 민음사 홈페이지(www.minumsa.com)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 습니다. 민음사 편집부 차례 김미월 여덟 번째 방 3 서평 30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32 작가 인터뷰 36 배지영 오란씨 46 서평 64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66 이지월 변두리 괴수전 72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92 2
여덟 번째 방 김미월 1 대문에 전단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잠만 자는 방 전단의 문구는 그러했다. 잠만 자는 방? 영대는 자꾸만 팔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크 로스백을 어깨로 끌어올렸다. 이보다 쌀 수는 없다며 현수가 소개 해 준 방이었다. 방세 월 10만 원. 그 정도면 캘빈 클라인 청바지 한 벌 값도 안 됐다. 청바지를 사려고 꿍쳐 놓은 돈 20만 원이면 다리 한 짝에 한 달씩 이 방에서 도합 두 달을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잠만 자는 방이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이 방에선 오로 웅숭깊고 따스한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작가 김미월의 첫 번째 장편소설 여 덟 번째 방 은 자기만의 동굴로 숨어 버린 상처 받은 영혼들의 골방 탈출기이자 어른아이들의 성장소설이다. 청춘들의 꿈과 상처를 방이라는 소재와 엮어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발랄하고 따뜻하게 그려 낸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곳곳에 포진된 유머들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도, 밑줄 긋게 만드는 감동적인 문장들로 자신의 청춘을 떠올리며 코끝이 찡해지게 된다. 청춘 의 애환과 소소한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이건 바로 내 이야기, 라며 무릎을 치게 만든다. 지 잠만 자야 되고 섹스는 하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세입자의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아무렴. 하 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뜻이지? 그는 국어 시험에서 다음 시 구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같은 문제를 대했을 때처럼 곤혹 스러웠다. 중학교 때 시를 배우면서부터 느꼈던 거지만 그는 내포니 2 김미월 여덟 번째 방 3
은유니 상징이니 이런 것들이 딱 질색이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알아듣기 쉽게 하면 되지, 왜 빙빙 돌리고 요리조리 꼬고 쓸데없이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가 말이다. 좀 전에 전화했던 총각이오? 중년 사내가 열린 대문 틈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집주인인 듯 했다. 영대는 머리부터 꾸벅 숙였다. 가방이 또 어깨에서 흘러내렸 다. 그가 숙였던 머리를 채 들기도 전에 사내가 말했다. 잠만 자는 방이 뭔고 하니 그 방에선 잠만 잘 수 있단 거요. 밥 해 먹고 볼일 보고 그런 건 못해요. 부엌이랑 화장실이 방 밖에 따로 있 거든. 공용이야. 그러니까 원룸은 아니고 딱 방 하나만 있다는 거지. 아, 예. 하기야 집주인은 방 보러 온 이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영대가 묻고자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이전부터 얼마나 많이 받아 보았겠는가. 잠만 자는 방 이 대체 뭐냐고, 내포와 은유와 상징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죄다 물어보았을 테니 말이다. 영대는 가방을 고쳐 멨다. 부엌과 화장실 이 공용이면 몇 명이나 같이 써야 하는 건지 물어보려는 참이었다. 부엌이랑 변소는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총각까지 셋이 써요. 딱 좋지 뭘. 이번에도 주인 사내는 영대가 묻기도 전에 일렀다. 존댓말과 반 말을 요괴의 팔다리처럼 유연하게 놀려 가면서. 아, 예. 그러네요. 대꾸할 때마다 서두에 아, 예 를 붙이는 것은 영대의 오랜 말버 릇이었다. 사내가 방부터 보러 가자고 했다. 영대는 머리숱이 가난 한 사내의 뒤통수를 좇아 걸음을 옮겼다. 집은 구조가 여느 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 지하층, 1층, 2층으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이었는데 2층은 주인집이 쓰고 1층은 하숙집으 로 쓰였다. 영대가 보려는 방은 지하층에 있었다. 층이 낮아질수록 해당 층 입주자의 경제적 층 또한 낮아지는 셈이었다. 사내는 세 개 층의 구조가 거의 똑같다고 했다. 다만 지하층은 세면장에 변기가 없는 게 다르다나. 용변을 보려면 마당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 해야 한다고 했다. 아, 예. 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실외에 있다면 요즘 같은 한 겨울에는 사용하기가 꽤 성가시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지하층은 방 세 개와 공용 세면장과 주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대가 살 방은 가운데 방이었다. 현관을 기준으로 왼쪽 방에 여자 가 살고 오른쪽 방에 남자가 산다고 했다. 주인 사내가 주방의 형광 등을 켠다는 것이 이미 켜져 있던 등을 실수로 꺼 버렸다. 순식간에 암흑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곳이 문자 그대로 지하임을 영대는 실감했다. 어둠 속에서 전등 스위치 올리는 소리가 났다. 불이 켜진 주방 안이 불을 껐다 켜기 전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 다. 문짝의 도색이 벗겨진 냉장고 옆에 모서리가 우그러진 개수대가 있고 그 위에 군데군데 녹이 슨 휴대용 버너가 있었다. 냉장고의 상 표는 십수 년 전에 엘지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태양계에서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금성 이었다. 버너 옆에 찌그러진 채 나뒹굴고 있는 4 김미월 여덟 번째 방 5
빨간색 깡통은 이제 세상의 어느 슈퍼마켓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815 콜라 캔. 이건 뭐 추억의 박물관이 따로 없었다. 영대는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틀어 보았다. 냉수가 나 왔다. 왼쪽으로 틀어 보았다. 냉수가 나왔다. 그는 젖은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 닦았다. 개수대 옆에 투명 접착테이프로 입구를 봉한 라면 상자가 네댓 개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척 봐도 이 삿짐 꾸러미가 분명했다. 요번에 방을 뺀 아가씨가 사정이 생겨서 짐을 다 못 가져갔어. 삼사 일만 맡아 달라고 해서 내 특별히 봐주고 있는 거요. 크게 손해 보는 일이라도 된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었다. 영대는 그 아가씨가 나가면서 비게 되었다는 가운데 방의 문을 열었다. 아.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영대는 물어보고 싶었다. 이게 뭔가요? 진짜 방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곳인가요? 아하하하. 그것은 방이 아니라 상자 속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법한 공 간이었다. 정육면체 모양의 커다란 상자. 한 변의 길이가 2미터 조 금 넘을까. 이런 곳을 과연 방이라 해도 좋을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최홍만은 그 방에서 다리 뻗고 잘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영대 는 가방끈만 만지작거렸다. 결정적으로 짐을 들여놓으면 사람이 들 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래 봬도 짐 들어가고 사람 들어가고 다 들어가요.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대사. 주인 사내가 아무래도 독심술을 하는 것 같다고 그 와중에도 영대는 신기해했다. 돌아다녀 봐.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방도 드물지. 아, 예. 그렇긴 한데. 드물게 평등한 방이긴 했다. 아랫목도 없고 윗목도 없고.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고. 벼룩의 머리 가슴 배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듯 이 말이다. 좋은 점은 또 있었다. 들어가지도 않겠지만 침대를 들여 놓는다면 자다가 방바닥으로 떨어질 염려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면 이 벽으로 막혀 있으니. 주인 사내가 영대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동시에 왼쪽 방의 문이 열렸다. 그래, 어떡할 거요? 영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말하려 했다. 왼쪽 방에서 한 여자 가 나왔다. 스물두어 살쯤 됐을까. 긴 생머리에 얼굴이 희고 눈이 큰 그녀와 영대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예뻤다. 아, 예. 영대는 숨을 한 번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즉시 입주 가능하죠? 왼쪽 방 여자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뒷모습마저 저렇게 예쁜 여자가 이런 집에 산다니. 영대는 마치 초등학교 앞 분 식집 메뉴판에서 거위 간 요리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방이 팔목에 걸쳐져 있는 줄도 모르고 눈만 끔벅거렸다. 그렇게 영대는 잠만 자는 방에서 살게 되었다. 이사 온 첫날. 잠 만 자는 방이라는데 잠만 안 왔다. 그는 낮밤을 꼬박 깨어 있었다. 6 김미월 여덟 번째 방 7
왼쪽 방 여자와 오른쪽 방 남자는 둘 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때 가 연말이니만큼 약속이 많겠지 싶었다. 종일 방바닥에 드러누워 위층에서 양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의 방에서 두 다리를 쭉 뻗으려면 미스코리아의 어깨띠처럼 대각선으로 누워야 했다. 지하 방은 하루 종일 컴컴해서 낮과 밤의 경계가 없었다. 낮 에는 지금이 밤인가 싶어 몸이 축 늘어졌다. 밤에는 낮 동안 한 일 도 없는데 극도로 피로하여 꼼짝도 하기 싫었다. 영대는 만사가 귀 찮아 택배로 받은 이삿짐도 방으로 들이지 않고 현관문 안쪽에 그 대로 내버려 두었다. 끼니는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짜파게티 컵라 면으로 때웠다. 이틀째 되던 날에도 그는 누워서 하염없이 위층의 양변기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뒤 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부터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 군 시절 관물대 위에 두 발을 올려놓은 상태로 엎드려뻗쳐 얼차려를 받았 던 일, 싱싱한 해물이 듬뿍 얹힌 따끈따끈한 삼선 자장면, 언제 잃 어버렸는지 모를 MLB 야구모자. 그러나 모든 생각의 끝은 내 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생각할수 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원래 사람들은 평소 방에 있을 때 자신이 어 떤 방에 있는지를 자각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방이니 까. 그러나 이 방은 시시각각 끊임없이 영대에게 그가 어떤 방에 있 는지를 환기시켜 주었다. 내가 이렇게 좁고 어두운 방에 살고 있구 나 하고.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선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제대를 했다. 머리카락이 가르마를 탈 수 있을 만큼 자라자 입대 전부터 짝사랑해 왔던 같은 과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에 선배는 순순히 나왔다. 그녀는 영 대가 입은 푸른색 후드 티셔츠가 세련돼 보인다고 했다. 영대는 어 머니가 제대 기념으로 사 준 새 옷을 입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 다.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있지, 넌 꿈이 뭐니? 순간 그는 선배의 질문을 제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꿈이 뭐냐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군대까지 갔다 온 예비역 청년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그건 마치 아흔 살 먹은 노인에게 장차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묻는 것과 같지 않은가. 영대는 제 앞에 놓인 핫 초코 잔에서 빼빼로를 꺼냈다. 아, 예 누나의 꿈은 뭔데요? 대답이 궁하니 질문을 돌려줄 수밖에. 빼빼로가 바삭바삭했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거야. 선배는 정색을 하고 있었다. 영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불현듯 행복 이라는 낱말이 생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복. 행복이라. 그것은 마치 초특급 호텔 스위트룸의 대리석 욕조처럼, 평양 시 내 대동강 구역의 사거리처럼, 500년 후 인류의 운명처럼, 제 손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속해 있는 말 같았다. 영대는 선배가 교사가 되고 싶다든가 신혼여행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든가 혹은 로 또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왜 다들 꿈꾸는 것 있잖은가. 그녀가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답을 했 8 김미월 여덟 번째 방 9
다면 영대도 기꺼이 맞장구를 쳐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는 느 닷없이 행복을 말했고 그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영대는 불행했다. 행복하다는 게 어떤 건데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알 수 있는 건. 선배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었다. 너랑 있으면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는 거야. 영대는 빼빼로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쳐들었다. 앞으로도, 너랑은 전혀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아. 누 누나. 답답해.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를 보면 가슴이 콱 막혀. 그녀는 영대를 불 위에서 오그라드는 오징어 보듯 내려다보았다. 넌 주관이 없어. 뭐든지 남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것도 금방 포기해 버리잖아. 니가 아직도 고등학생인 줄 아니? 니 인생에 좀 더 진지해져 봐.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찾아야지. 인생은 남이 대신 살아 주는 게 아니니까. 카페를 나가기 직전에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영대는 가슴이 오 징어처럼 오그라든 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한마디 로 그는 차인 것이었다. 차고 차일 만큼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본 적도 없지만 그런 객관적인 판단까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수치스러웠다. 그는 반쯤 얼 이 빠진 표정으로 먹다 만 빼빼로를 마저 씹었다. 선배의 말은 맞았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온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중학교를 졸업하 면 고등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아파트를 사고 자신의 삶이 내 비게이션을 장착한 자동차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순탄하게 굴러가 리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친구들이 하라는 대로, 선생이 하라는 대로 따라온 삶이었다. 그의 자동차는 안전선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행복해진다는 건 어떤 걸까. 영대는 궁금했다. 아니, 나의 꿈은 무엇일까. 나에게도 꿈이란 게 있기는 한가. 당장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대는 고민하기 귀찮아 그 질문을 의식적 으로 잊으려 했다. 그러나 이튿날 어머니가 백화점에서 사 왔다며 그에게 거위털 파카를 건네주었을 때 그는 선배를 만났던 날을 떠 올렸다. 뒤늦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꿈이 무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한 것이 창피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사 준 옷을 입고 왔노라 떠 벌린 것이 창피해서였다. 앞으로는 옷을 스스로 사 입으리라 결심했다. 첫 번째 목표는 캘 빈 클라인 청바지였다. 그러나 20만 원이 수중에 들어왔을 때 마음 이 바뀌었다. 옷만 제 손으로 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모든 면에 서 독립이 필요한 시기였다. 영대는 분연히 집을 나왔다. 그답지 않 게 충동적인 결정이었으나 그답지 않게, 이전과는 좀 다르게, 그렇 게 사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나의 꿈 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 10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1
는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싶었다. 아직 복학을 한 것도 아니니 그는 이제 아무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뜻에서 내친김에 휴대폰 번호까지 바꾸었다. 그 휴대폰이 처음 울린 것은 그가 잠만 자는 방에 깃든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야, 이사는 잘했냐? 현수였다. 영대의 바뀐 휴대폰 번호를 아는 유일한 사람. 넌 짐이나 좀 날라 주고 그런 말을 해라. 영대는 오랜만에 자신의 목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것 을 들었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말해 보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새꺄. 대신 널 위해 준비한 게 있다. 뭔데? 그는 이불 위에 드러누운 채 벽에 두 다리를 걸쳤다. 소개팅. 시멘트 벽에서 올라온 찬 기운이 맨발바닥에 스미자 몸이 선득 했다. 벽지는 온통 모기들의 묘지였다. 영대는 벽에 짓눌려 죽은 채 로 붙어 있는 모기 사체들의 개수를 셌다. 일곱, 여덟, 아홉. 우리 같은 놈들은 학교 다닐 때 소개팅 실컷 해 봐야 돼. 졸업 하면 여자 만나기도 힘들다고. 우리 같은 놈들 이라는 게 어떤 놈들을 의미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는 벽에 걸쳤던 다리를 도로 내렸다. 묻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들은 취직 못하면 시집이나 가야겠다고 하지. 남잔 절대 못 그러잖아. 취직도 안 되는데 장가나 가야지, 어떤 새끼가 이딴 말을 하냐? 그러게. 장가나 가면 좋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현수는 지금 여 자 친구를 만들어 놓아야 얼마 후에 있을 동창회 때에도 쪽팔리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 동창회. 잊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열리는 동창회였다. 그 자리에 가면 혹시 정환을 만날 수 있을 까. 영대는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정환은 고등학교 때 그의 짝이었 다. 컨디션이 최악일 때 전교 2등을 하는 수재라 영대와는 사는 세 계가 생판 달랐고 그래서인지 졸업 후로 한 번도 연락이 되지 않았 지만, 녀석의 근황이 영대는 늘 궁금했다. 정환도 내 안부를 궁금해 할까. 그것도 영대가 가진 궁금증 중의 하나였다. 십팔. 죽은 모기는 모두 열여덟 마리였다. 전화를 끊었다. 소개 팅은 안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 엇인지를 알아내기 전에는 소개팅이고 뭐고 하지 않겠노라고 비장 하게 각오를 밝히려 했지만, 정말 그랬다가는 현수로부터 돌았느냐 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었으므로, 그저 당분간은 여자를 만날 생 각이 없노라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게 말했는데도 현수는 영대더러 돌았느냐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똥이 마려웠다. 생각해 보니 사흘 동안 대변을 못 보았다.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소 변은 세면장에서 몰래 해결해 왔으니까. 파카를 걸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때가 낮인지 밤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밖은 한 12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3
밤중인 듯 캄캄했다. 골목에서 담을 타고 마당으로 넘어온 가로등 불빛이 화장실의 슬레이트 지붕을 비추고 있었다. 그 샛노란 불빛 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 낯선 공간에서 꿋꿋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를 뿌듯하게 했다. 화장실은 규모가 의외로 커서 칸이 세 개나 되었다. 왼쪽에서 첫 번째 칸의 문을 열었다. 변기에 똥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얼어 있 었다. 물을 내려도 내려가지 않았다. 두 번째 칸의 문을 열었다. 변 기에 똥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얼어 있었다. 물을 내려도 내려가지 않았다. 세 번째 칸의 문을 열었다. 변기에 똥이 들어 있었다. 그것 이 얼어 있고 그래서 물을 내려도 내려가지 않는지 알아보기 전에 영대는 냅다 문을 닫았다. 변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였다.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갈 수 없 는 이 거지 같은 집에서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 하며 그는 실내로 다시 들어왔다. 개수대 옆의 라면 상자들이 발에 차였다. 그의 방에 살았던 여자가 아직 찾아가지 않은 상자와 엊그 제 택배로 온 그의 상자 들이 함께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의 짐이 자 칫하면 서로 섞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대는 생각난 김에 제 짐들 을 하나씩 방으로 옮겼다. 사흘 내내 잠을 못 잔 터라 팔다리가 어 항 속의 물풀처럼 흐느적거렸다. 허리를 굽혔다 펼 때마다 머릿속 이 핑핑 돌기까지 했다. 잠을 자고 싶었다. 이거야 원, 잠만 자는 방 이라더니 잠만 못 자고 있는 꼴이 아닌가. 짐을 들여놓으니 방이 꽉 찼다. 상자 하나를 열어 보았다. 탁상시 계가 먼저 손끝에 딸려 나왔다. 술집에서 개업 기념품으로 받거나 길거리에서 연말 행사 판촉물로 받았을 소형 라디오며 저금통, 달력 등이 연이어 손에 잡혔다. 영대는 그것들을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니들은 좋겠다, 뇌가 없어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탁상시계를 비롯한 방 안의 모든 생명 없는 것들에 그는 잠시나 마 부러움을 느꼈다. 라디오의 전원을 켜 보았다.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올 드 랭 사인.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스코틀랜드어 가사에 맞춰 영 대는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 세. 디제이가 목청을 높였다. 청취자 여러분, 이제 1분 후면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옵니다! 앗, 그럼 오늘이 12월 31일이라는 건가. 게다가 지금 시각이 자정 이라는 건가. 탁상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과연 시침과 분침과 초침 세 개의 시 곗바늘이 숫자 12 밑에서 하나로 뭉치기 직전이었다. 그는 시계를 도로 상자에 던져 넣었다. 사실 1분 후라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59분과 00분의 세 상이 어떻게 다르겠는가. 전이나 후나 그는 변함없이 월 10만 원 골 방에 세든 할 일 없는 예비역 휴학생일 뿐이었다. 시간은 하나로 이 어져 흐르는데 언어는 그것을 연월일로 나누고 자르고 구획한다. 하지만 그뿐. 언어가 세상을 규정해도 세상은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다. 묵은해가 새해로 바뀌는 이 순간에도 세상 도처에서는 쉼 없이 잭팟이 터지고 소년의 키가 자라고 여고생들이 굴러가는 낙엽을 보 며 웃고 군인들이 휴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대가 지금 이곳 14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5
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듯 곳곳에서 저마다의 귀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어디에선가는 전쟁이 발발하고 임부가 유산을 하 고 연인들이 헤어지고 수험생이 답안지를 밀려 쓰고 있겠지. 여기서 누군가 웃고 있으면 저기서 누군가는 울고 있는 게 세상사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웃고 있는 것일까, 울고 있는 것일까. 영대가 마음속으로 답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자정을 알리는 차 임이 울렸다. 새해였다. 울다가 웃는 것처럼 애매한 표정으로 그는 생애 또 한 번의 1월 1일을 맞이했다. 거리에서 폭죽이 터졌다. 문자 메시지 전송량이 급증했다. 연인들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모두 잔 을 높이 들고 맞부딪쳤다. 위하여! 영대는 상자 옆에 나뒹굴고 있던 새 달력에 시선을 주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시간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365개의 순결한 숫자들 앞에서 그는 잠시 경건해졌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나이 이제 스물다섯이었다. 새해 첫 아침, 지난 사흘간 잠도 못 자고 대변도 못 본 이 스물다 섯 살짜리 청년에게, 마침내 잠 귀신이 찾아왔다. 영대는 잤다. 자고 또 잤다. 사흘 동안 꼭꼭 싸매 두었던 잠의 매 듭이 스르륵 풀려나가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렀다. 잠 속에서 그는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듣고도 눈을 뜨지 못했다. 그는 잤 다. 자고 또 잤다. 얼마나 더 잤을까. 마침내 그의 잠을 깨운 것은 요의였다. 눈을 떴다. 사방이 시커멨다. 사흘 내내 켜 놓았던 형광등을 자기 전에 본능적으로 끈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누워 있 었던 탓인지 등이 욱신거렸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이윽 고 형광등이 켜졌다. 그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그의 손이 닿아 있는 형광등 스위치 부분만 빼놓고 온 방 전체가 바퀴벌레 떼 로 뒤덮여 있었다. 크기가 대추알만 한 놈에서부터 수박씨만 한 놈 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가 놀란 것은 놈들의 수가 어마어마하 기 때문이 아니었다. 잠 덜 깬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10여 초 사 이에 놈들이 전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때문이었 다. 가히 놀랄 만한 민첩성이요, 기동력이 아닌가. 세면장에서 소변을 누었다. 바지 지퍼를 올리고 나니 비로소 한 기가 느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영대는 문틀과 아귀가 잘 맞 지 않는 세면장의 문을 발로 차서 닫았다. 어둠에 잠긴 주방은 고 요했다. 그의 방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분위기가 뭔가 휑했다. 아아, 그는 곧 휑함의 이유를 알아차렸다. 개수대와 현관문 사이 좁다란 공간에 쌓여 있었던 라면 상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자는 틈을 타 예전에 그의 방에 살 았다던 여자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이불 속에 발부터 밀어 넣었다. 잠 든 사이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세 개나 들어와 있었다. 첫 번째 메 시지는 현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전화 좀 받아. 이 문자 보면 연락해. 두 번째 메시지도 현수가 보낸 것이었다. 내 맘대로 소개팅 날짜 잡았다. 무조건 하는 거다. 16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7
세 번째 메시지도 현수에게서 온 것이려니 했다. 이제는 당신을 용서하려 합니다. 어라? 그것은 현수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발신번호 7814. 물론 영대에게 보내진 것도 아니었다. 7814는 그의 휴대폰 주소록에 등 록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잘못 온 메시지를 그는 한참 동안 들여 다보았다. 이제는 당신을 용서하려 합니다. 영대는 자신이 누군가 에게 용서받아야 할 일이 있나 떠올려 보았다.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딱 잘라 없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그는 메시지 삭제 버 튼을 누르지 않았다. 오전 9시였다. 무려 스물네 시간 가까이 잔 것이었다. 뒷머리가 못 견디게 간지러웠다. 그러고 보니 이사 온 후 머리를 한 번도 감지 않았다. 영대는 손가락을 세워 머리를 긁적거렸다. 좀 씻어야 했다. 엊그제 열었던 상자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탁상시계며 달력 외에 도 두루마리 화장지와 슬리퍼, 엠피스리 플레이어, 수건, 투명 접착 테이프, 면도 크림, 종합 비타민, 숟가락 등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 었지만 샴푸는 없었다. 다른 상자를 개봉했다. 속에 겨울 옷가지들 이 들어 있었다. 두피가 점점 더 가려워졌다. 세 번째 상자에 든 것 은 속옷과 양말과 비니, 노트북과 휴대폰 충전기. 네 번째 상자를 열어젖혔다. 속에 두툼한 스프링 노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또 허탕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상자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말고 불현듯 동작을 멈추었다. 처음 보는 노트들이었다. 영대는 스프링 노트 같은 것을 전혀 갖 고 있지 않았다. 산 적도 없고 쓴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네 번째 상자 앞으로 다가앉았다. 노트는 총 일곱 권. 모두 새것 이 아니었다. 겉장에 구김이 가고 종이 사이가 들뜬 것이 한눈에도 누군가 이미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영대는 미간을 찌푸렸다. 주방에서 상자가 섞였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 노트 상자는 영대의 방에 살았던 여자의 것일 터. 이걸 어쩐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상자를 원래의 자리에 도로 내놓는 것이 었다. 중요한 노트들이라면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올 테니까. 그러면 상황 완료인 것이다. 영대는 벽 쪽으로 밀쳐놓았던 두 번째 상자에 서 접착테이프를 꺼냈다. 우선은 문제의 노트 상자를 원상태로 복 구시켜 놓아야 했다. 그러나 테이프를 자르려고 보니 가위가 없었 다. 조금 전에 개봉하려다 만 다섯 번째 상자를 열었다. 가위는 없 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샴푸는 있었지만. 낙담한 영대는 노트 상 자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별생각 없이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앞에 서부터 주르륵 넘겨 보았다. 마지막 장까지 손으로 쓴 글씨가 빼곡 하게 들어차 있었다. 여덟 번째 방 첫 장에는 달랑 다섯 자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제목이리라. 책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장부터 본문이 나왔다. 서체가 또박또박하고 반듯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첫머리가 그렇게 시작되는 글이었다. 애초에 그것을 읽을 생각은 없었다. 영대는 그냥 앞부분만 슬쩍 훑어보고 도로 상자에 넣을 생 각이었다. 18 김미월 여덟 번째 방 19
12 (전략) 몸이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발아래 조 그맣게 집이 보였다. 집 속에는 방이 많았다. 그것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나는 고도를 낮추었다. 각 방마다 전기장판과 앉은뱅이책상과 변비약과 한방 파스, 발볼이 늘어난 하이힐, 유행을 타지 않는 디 자인의 가방, 그리고 읽거나 읽지 않은 책들이 가득했다. 그 낯익은 물건들 속에 나만 없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그것이 못내 서운했다.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벽지도 눈에 설었다. 천장 바로 아래 벽면, 내가 서서 팔을 머리 위로 뻗으면 손끝이 닿을 만한 위 치에 까만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벌레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 방에서 어젯밤을 보낸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제자리를 못 찾은 집기들로 방 전체가 어수선했다. 성형에 실패한 연예인의 얼굴 같달까. 보기 좋게 바로잡으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암담했다. 나는 침 대 발치에 패잔병이 버리고 간 창처럼 나뒹구는 쇠막대 하나를 집 어 들었다. 조립식 행어의 부속품이었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 용 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것들을 나는 침대에 앉은 채로 하나씩 끼 웠다. 짐을 싸고 또 짐을 풀 때마다 생각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반복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반복하는데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이사를 다니는 것은 몇 번을 되풀이해도 언제나 처음 겪어 보는 일처럼 힘겹게 느껴진다. 방을 옮긴다는 것 이 곧 몸과 마음을 부려 놓는 터를 바꾼다는 의미이기 때문일까. 방은 단순히 개념으로서의 공간, 건축물의 일부로서의 공간이 아니 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육신과 정신이 깃드는 곳이다. 그의 일상이 알알이 스미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니 그 자체로서 방은 곧 방 주인 의 삶이다. 이사를 하는 것이 힘겨운 것은 그것이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일이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 그에 따라 방 주인의 삶도 바뀌 리라는 예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방에서 내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조립이 덜 끝난 행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았 다. 전기장판과 앉은뱅이책상과 변비약과 한방 파스, 발볼이 늘어 난 하이힐,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가방, 그리고 읽거나 읽지 않은 책들이 아직 풀지 않은 짐 꾸러미 속에 들어 있을 거라고 생 각하니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스라해졌다. 새집은 어때, 괜찮아? 석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본격적으로 짐 정리를 시작했을 때 20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1
였다. 괜찮지 그럼. 누가 소개해 준 방인데. 나의 아홉 번째 방. 이곳을 내게 소개해 준 것은 석이었다. 여덟 번째 방도, 일곱 번째 방도, 그가 소개해 주었다. 그는 정규직 아르 바이트를 비정규직 대우를 받고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소설을 쓰 던 나에게,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정규직 대우를 받으며 할 수 있 도록 배려해 주기도 했다. 사용자로서의 그가 나를 노동자로서 고 용했던 것이다. 학창 시절 내내 학점 관리, 각종 자격증 취득, 봉사 활동, 토플 토 익 시험 성적표, 어학연수 등 취업을 위해 대학생이 준비해야 할 모 든 것들을 외면해 온 나와 달리 석은 그것들에 두루 신경을 썼다. 그러나 취업이 안 되긴 그나 나나 매한가지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 도 취업하기가 힘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내던져져 있었 다. 신의 직장이야 애초부터 신의 아들만 들어가는 곳이겠지만, 인 간의 직장에도 못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는 증거라며 석은 분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똑똑하고 잘 나고 재주 많은 짐승들이었다. 그러나 석의 천직은 따로 있었다. 부모의 권유로 공인중개사 자 격증을 따더니 승승에 장구를 거듭하여 결국은 서른도 안 된 나이 에 제 명의의 회사를 차리지 않았는가. 그의 수려한 용모와 화려한 언변이 책상 위의 서류보다 거리 위의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빛을 발 함은 당연한 이치였다. 내가 그의 부동산 사무실에 출근하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공 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잡일이 나의 주 업무였다. 주 업무 중에서도 특히 주된 업무는 매물로 나온 집들의 내부를 찍은 사진 파일들을 부동산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JPG 파일들을 상대했다. 눈알이 뻑뻑하고 팔다 리도 쑤셨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사진들은 눈이 없고 입도 없고 귀 도 없어서 서로 오해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것들은 대개 현관에서 실내 전체를 조망하는 컷과 욕실, 주방, 거실 등 각각의 방 내부를 단독으로 찍은 컷들로 나뉘었다. 방 청소와 정리 정돈을 완벽하게 끝낸 후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었다. 물론 성격 탓인지 고객마다 보내온 사진들에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다. 부주의한 고객은 사적인 정보가 은연중 노출된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고, 세심한 고객은 방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밖의 풍경 사진까지 보내오기도 했다. 방을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사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는 앉아서 서울 시내 수십 군데의 방 들을 방문했다. 어떤 방은 꼭 한 번쯤 살아 보고 싶었고 또 어떤 방 은 절대 살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방은 내가 살아 본 적이 있음 직했고 또 어떤 방은 완전히 생경하게 느껴졌다. 눈에 띄게 깔끔하 고 세련된 매물은 대부분 아무도 산 적이 없는 신축 건물의 방이었 다. 그러나 그런 방들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생활이 빠져 있었으므 로. 방 주인의 일상이 보이지 않는 방은 진짜 방이 아니라 단지 바 닥과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육면체 공간에 불과했으므로. 피곤할 텐데. 내일 정시에 출근할 수 있겠냐? 석과 내가 노사 관계라는 것을 간혹 의식하게 될 때가 있다. 22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3
오전에 별로 할 일도 없을 거야. 늦게 출근해. 이런 친구를 내 직장의 사장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었다. 아냐. 제시간에 갈게. 괜찮다니까 그러네. 괜찮다. 그러고 보니 그건 석이 참 잘 쓰는 말이었다. 괜찮다는 단어만큼 너그러운 표현도 드물 것이다. 괜찮다는 말만큼 무심한 표현도 드물 거고. 석과 나의 관계가 딱 그랬다. 무심하기에 너그러 울 수 있고, 너그럽기에 무심할 수 있는 관계. 서로에게 적당히 무 심하고 적당히 너그러움으로써 항상 괜찮기만 한 친구가 있다는 것 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아마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우리의 관계는 딱 이 정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내일이 벌써 월요일인가. 전화를 끊고 나서 달력을 보려고 무의 식적으로 벽을 쳐다보았다. 눈앞의 벽에 아까의 그 까만 벌레 한 마 리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다시 보니 그것은 벌레가 아니라 못을 박았다가 뺀 자국이었다. 이 빠진 자리처럼 검은 구멍. 이 방 의 전 주인은 저 자리에 무엇을 걸어 놓았을까 헤아려 보다가 아차 싶었다. 맞다, 내 달력! 칠칠치 못하게도 먼저 살던 집의 벽에 달력을 걸어 놓은 채 그냥 와 버렸던 것이다. 우리별 1호의 사진이 박혀 있는 달력. 너무 오랫 동안 한자리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벽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여 이삿짐을 꾸릴 때 떼어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할 일이 많았다. 집 근처 어디쯤에 할인 마트 가 있는지, 세탁소와 미용실은 어디에 있고, 은행과 동사무소는 또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러나 그보다 앞서 나는 예전 에 살던 집에 다녀와야 했다. 막상 벽에 걸어 놓고 있을 때는 별로 소중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서 왜 그 달력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스무 살 시절부터 지금까지 의 나를, 내가 살았던 방들을, 옆에서 모두 말없이 지켜보았던 존 재이기 때문일까. 겉옷을 걸쳐 입었다. 지금 그 방에 새로 이사했을 사람에게 달력을, 그것도 여러 해 묵은 달력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나의 옛 방을 찾아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탔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낯익은 사거리가 나타났다. 나는 눈을 감고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사거리 를 지나면 공원이 나오고 실내 야구장이 나오고 교회가 나온다. 큰 길을 따라 아파트 단지 쪽으로 가다 보면 독일베이커리와 하라주쿠 패션과 이태리가구점과 몽마르뜨카페와 북경반점을 지나가게 된다. 그 뒤쪽의 골목이 주택가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지물포와 편의점과 운동화 빨래방까지 나는 기억하고 있 다. 그런데도 내가 더 이상 이 동네에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아주 오래전에 등졌던 고향을 다시 찾아온 듯한 심정이었다. 바로 어제 이 동네를 떠났는데 하루 만에 아주 긴 세월이 흘러간 것 같았다. 어제도 지나갔던 길을, 그제도 들락거렸던 슈퍼마켓을, 편의점과 24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5
약국과 카페를 나는 여행지에 막 도착한 이방인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자주 이용했던 약국의 주인 여자가 점포 입구를 빗자루로 쓸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봐요? 네에. 안녕하세요? 그녀가 알은척을 해 준 것이 반가워서 나는 하마터면 인사말 뒤 에 저 이제는 이 동네 안 살아요. 하고 덧붙일 뻔했다. 주택가로 접 어들었다. 저만치 내가 살던 원룸 건물이 나타났다. 걸음을 재게 놀 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옆 골목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춤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세금 고지서를 들고 은행으로 갔다.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서 나왔 다.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그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 소포 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그녀. 그녀는 바로 지난날의 나였다. 순간 어쩌면 내가 옛 방에서 정말로 찾고 싶었던 것은 달력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력은 그저 핑계였을지도. 서울에 올라와 스무 살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방들. 그러니까 삼촌 댁 문간방에서부터 학교 앞 하숙방과 시장통 골목 의 자취방, 재개발 지구의 옥탑방, 반지하 셋방, 번화가의 원룸과 그 밖의 또 다른 방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것들이 문득 그리웠다. 내 추억 속의 낡은 방들, 잘 있을까. 이왕 옛 방을 찾아 나선 김에 그곳들을 모두 한 군데씩 순회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방을 잇는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나는 상상해 보았다. 옛날의 방들을 다시 찾아간다면 그곳에서 옛날의 나를 만날 수도 있지 않 을까 하고. 그 시절 무수히 내 옆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도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텐데. 여러 명의 나를 지나쳐 건물의 입구에 다다랐다. 계단에 발을 올 려놓았다. 천장의 센서 등에 조명이 반짝 켜졌다. 순간 왜인지는 모 르겠으나 해변서점의 전경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 내 고향 바닷가 마을에는 서점이 한 군데도 없다. 엊그제 해변서점이 결국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30년간 책들이 버티고 서 있었던 그 자리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들이 들어앉게 되었다. 피시 방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처리하지 못한 많은 책과 책장 들은 누군가에게 양도되지도 못하고 폐기되어 버렸다. 부모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나는 뒤늦게 기억해 냈다. 버려진 책장 들 어딘가에 아마도 그 책이 꽂혀 있었으리라는 것을. 여덟 번째 방. 어린 시절 관이 숨겨 놓았다던 책. 그것을 나는 끝끝내 찾아보지 못했다. 찾아서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 놓으려고 했는데. 그런 다음 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해 주려 했는 데. 하기야 이제는 그를 만날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여덟 번째 방. 드디어 그 현관 앞에 섰다. 완강하게 입을 다 물고 있는 철문 한복판에 도어 뷰의 렌즈가 보였다. 안에서는 밖을 26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7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 지만, 그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면 무엇인가 보일 것 같았다. 여덟 번째 방 속에 나의 일곱 번째 방이 있고 그 속에 다시 여섯 번째 방 이, 다시 그 속에 다섯 번째 방이, 그렇게 첩첩이 들어 있을 것만 같 은 생각이 들었다. 그 방들을 역순으로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마침 내 스무 살 시절의 나 자신과 조우할 수도 있으리라. 그때가 그리운 것인지 어떤 것인지 지금의 내 심정을 잘은 모르겠으나, 그때의 나 를 만나면 할 말이 무척 많을 것 같기는 하다. 일단은 안부부터 물 어야겠지만.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 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 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 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구태여 해 주지 않아 도 되겠지.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28 김미월 여덟 번째 방 29
서평 30 김미월 여덟 번째 방 31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혈액형은? A형. 첫 장편소설을 출간한 소감은? 좌우명은?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별명은? 김 군. 습관은? 양말을 신을 때 서서 신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FM 라디오를 켠다. 거울 앞에 서면 생각나는 것은? 너 참 웃기게 생겼구나. 노래방 18번은? 015B의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 부끄럽다. 단편집까지 합하면 두 번째 책인데, 첫 책을 낼 때는 첫 책이라 부끄러운 줄 알았더니 이번이 더 부끄럽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럼 에도 이 책이 내게 특별한 것은 물론 첫 장편인 까닭도 있겠지만, 쓰는 동안 몸이 많 이 아팠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 덕분에 울고 웃으며 버텼다. 탈고할 때는 껍질을 한 꺼풀 벗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소설보다도 이 소설을 쓰던 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다. 술버릇은? 나도 궁금하다.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취해 본 적이 없다. 이사를 많이 다니신 걸로 아는데, 기억에 남는 방이 있다면? 콤플렉스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쓸 수가 없다. 가방 속 필수 아이템은? 하이테크 포인트 0.5mm 수성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글쎄, 아무튼 김 군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친하게 지내는 문인은? 이원 시인과 조용미 시인을 친밀하게 여긴다. 보물 1호는? 없다. 보물 2호는 자전거. 내 인생의 영화는? 가위손, 터미네이터 2, 일 포스티노, 콘택트 등 많다. 문에 잠금장치가 없던 하숙방. 어느 날부터 도둑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야구 모자며 수성펜, 초코파이, 서태지 시디 등 온갖 자잘한 물건들이 차례로 없어지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던 중 절판되어 다시 살 수도 없는 로맹 롤랑의 책이 사라졌다. 나는 도둑에게 책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썼다. 며칠 후 학교에 다녀오니 책상 위의 편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답장 대신 그 옆에 얌전히 놓여 있던 책. 침입자의 존재가 비로소 실감 나서 뒤늦게 공포에 떨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어느 여름 혼자 충동적으로 떠났던 스페인 여행. 내 평생 가장 큰 거짓말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가장 최근에 운 일은? 비밀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소설이 술술 잘 쓰이던 순간들. 현재 고민은? 3년째 잘 키우고 있는 화초가 얼마 전부터 갑자기 시들어 가고 있다. 사랑이란?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로다. 하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지영이 석에게 한 질문, 당신의 20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 나도 지영처럼 이사 다녔던 방들이 떠오른다. 짝사랑하는 옆방 선배의 발소리만 들 어도 설레던 하숙방, 놀러 온 친구에게 이불로 비행기 접는 법을 가르쳐 주며 즐거워 하던 자취방, 옆방에서 들려오는 여자 울음소리에 나도 괜히 눈물이 나던 고시원 방. 그리고 그 방들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던 길도 생각난다. 소요 시간 5분의 짧은 길 위 에서 학교에 갈까 땡땡이를 칠까 망설였던 순간들도. 지금 가지고 싶은 것 세 가지는? 도미노피자 쿠폰 14장, 식물도감, 노란 우산. 신에게 묻고 싶은 세 가지는? 종교가 있으신가요? 몇 개 국어를 하시나요?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3년 동안 멀쩡히 잘 크다가 갑자기 시들어 가는 화초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무인도에 한 권의 책만 들고 갈 수 있다면? 수학의 정석. 볼 때마다 새로워서 절대 질리지 않을 것이다. 중고교 시절 운동 잘하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명랑 쾌활한 학생이었다면, 대학 때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학생이었다.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빌렸고, 이따금 자 전거를 타고 동대문 화훼 시장에 꽃나무를 구경하러 갔다. 머리는 늘 커트 아니면 뒤 로 질끈 묶은 꽁지머리, 옷은 단추를 목까지 채워 입는 셔츠에 청바지, 신발은 무조건 32 김미월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33
운동화. 외양도 행동거지도 윤리 교과서의 목차처럼 답답하고 고루한 촌뜨기 유학생이 었다. 한다. 글이 잘 안 쓰이면 옥상에 올라가 콧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리다가 내려온다. 그래도 안 쓰이면 자전거를 타고 아무 데나 돌아다닌다. 정환처럼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누구? 그 이유는? 다음 작품은? 춘천여고 동창생 허정현. 내게 기성 시인이 아닌 또래 학생의 시가 그토록 큰 감동과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아이. 당시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영 어 사전을 들고 다녔는데, 정현이는 국어사전을 들고 다녔다. 손때로 새카매져 있던 그 사전, 대상에 대한 독창적이고도 섬세한 안목과 말맛을 살린 해학적인 표현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편들, 지금도 기억난다. 오직 시 때문에 나는 정현이를 흠모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올해 가 경술국치 100년인데, 그 말뜻은 알아도 그 속에서 짓밟히고 뒤틀린 인간 개개인 의 삶에 대한 것까지는 알려 하는 이가 드물다. 케케묵은 옛날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이다. 그러나 상처는 케케묵어도 고통은 늘 새것 같을 수 있음을, 위안부 할머니들의 과거가 아닌 그 과거가 빚어낸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싶다.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한 말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되 지금보다 너그럽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기를 바란다.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소설을 쓰고자 노력하고, 좋은 사람 들과 만나며 행복해하는 삶. 원하는 때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달릴 수 있고, A형 급 구 종이가 나붙은 혈액원을 지날 때마다 퇴짜 맞는 일 없이 즉각 헌혈을 할 수 있으 며, 이사 갈 때 트럭 짐칸이 휑할 정도로 살림이 간소한, 그런 삶이면 족하지 않을까. 이 작품 속에서 작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면? 두 명을 꼽고 싶다. 첫째는 영대. 심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점에서 나와 닮았다. 둘 째는 정환. 성적이 뛰어나고 품행이 점잖은 모범생이라는 점은 나와 판이하게 다르지 만, 어린 나이에 허무를 탐한다는 것이 남 이야기 같지가 않다. 드러난 부분 말고 감 추어진 부분에 정환의 진짜 면면이 들어 있을 텐데, 이 소설에서는 불필요해서 다루 지 않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포기라는 말은 배추 셀 때나 쓰세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찾아보세요. 그것에 대한 열망을 끝까지 놓지 마세요. 원하는 것에 한 번은 다 걸어 야, 한 번은 다 바쳐야, 훗날 생애 가장 빛나는 시기인 청춘을 돌아볼 때 후회가 없을 거예요. 삶은 달리기처럼 1등 2등 3등이 있는 게 아니라 그림물감처럼 빨간색 노란 색 파란색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남들에 비해 못난 게 아니라, 남들과 색 깔이 다른 거지요. 당신의 색깔은 세상에서 오직 당신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믿어요. 당장은 삶이 보잘것없고 남루해 보여도 당신은 당신 삶이라는 책의 유 일한 주인공이고, 당신 세계의 유일한 주인이고, 그러므로 전부이며 최고라고요. 후 회투성이 20대를 돌아보며 어리석은 30대가 감히 한 말씀 드리는 거랍니다. 독특한 집필 습관이 있다면? 독특한지는 모르겠으나, 방 청소와 정리 정돈을 완벽하게 하고 노트북 옆에 화분을 가져다 놓은 후 FM 라디오를 끄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는 중간에 수시로 차 를 마신다. 즐겨 마시는 차는 마테와 철관음과 캐모마일. 우유를 넣은 코코아도 좋아 34 김미월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35
작가 인터뷰 가나 의식 모두 셀 수 있는 테두리를 가진, 닫힌 구조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방식과 그 소설을 읽는 방식 사이의 함수엔 소설 가의 경험과 독자의 경험이라는 변수가 존재하고 이 변수에 의해 언제 나 독서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 비가산 무한 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작가와의 인터뷰는 저 변수의 값을 조금 줄여 보자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변수의 값을 크게 만들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경 험의 공유는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아비의 원수를 갚은 검객처럼 홀 가분 ( 정원에 길을 묻다 )한 일일 수도 있지만 죽은 줄 알았던 아비의 원수가 되살아난 것처럼 황망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황망한 쪽에 보 투명한 큐브 속의 그녀 다 무게를 두고 인터뷰를 옮기고자 한다. 최하연 김미월에겐 오빠와 남동생이 있다. 그녀는 언제나 김 씨네 집 삼 남 매의 둘째 아들이었다. 수시로 오빠와 남동생을 끌고 나가 마을 공터에 서 공차기를 즐겼으며 사내아이들이 하는 거의 모든 놀이를 섭렵했다. 100미터를 14초에 뛰는 여중생이 있었다. 그녀는 학교 육상부의 기 대주였다. 달리는 것을 그만둔 그녀를 점찍은 것은 교내 펜싱 코치였 다. 우아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의 궤적에 매료된 그녀는 그러나 지독한 하체 근력 훈련만 종일 이어지자 펜싱을 그만두었다. 훈련이 힘들어서 라기보다는 진짜 펜싱 선수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녀는 자라서 소설가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 소설을 쓴다.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 새기자 면, 무언가와 의식 사이의 함수는 좌표 상에서 언제나 일대일로 대응 한다. 이를 수학적으로 가산 무한 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되면 무언 그녀는 씩씩했고 행복했다. 아버지가 사 놓은 한 트럭 분량의 동화책에 파묻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점 하나에서 출발한 상상의 나래를 세상 모든 선분을 긋고도 남을 만큼의 선으로 늘이는 재미를 붙였고, 거기에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때론 다른 은하의 뒤편까지 그을 수도 있었다. 그 능력이 원고지로 옮겨지면 상이 하나씩 딸려 왔다. 교장이 주는 상을 받다가 나중에는 시장이 주는 상, 도지사가 주는 상을 받았 으며 스물여덟 살에는 세계일보 사장이 주는 상도 받았다. 동굴주의자인 김미월은 동시에 나들이주의자이기도 하다. 국내 여 행은 물론이거니와 스페인, 프랑스, 터키, 미국, 캐나다, 캄보디아, 중 36 김미월 작가 인터뷰 37
국, 대만 등 해외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녀는 석 달간의 미국 여행 중 한 달을 뉴욕에서 살았다. 묵고 있던 숙소를 나와 지은 지 30년 된 낡은 아파트에 방 한 칸을 빌려 집주인인 중국인 할머니와 한 달을 함 께 살았다. 말벗을 해 드리고 아침을 얻어먹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엔 비닐봉지에 간식거리도 사 날랐다. 돌아오는 날엔 주머니에 있던 달 러를 모두 할머니께 내 드렸다. 할머니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모나코 왕 자를 만나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연으로 세기의 행운의 지폐가 된 2달러짜리 지폐를 당신의 거래 은행에서 손수 구해 와 그녀에게 귀 국 선물로 주었다. 지금 그 지폐는 그녀보다 더 절실히 행운을 필요로 하는 그녀의 친구에게 있다. 그녀에게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 소원이 있다. 그렇다고 그 말을 그녀가 동화를 쓰고 싶어 한다고 들으면 곤란하다. 그녀가 말하 는 동화는 세상 모든 이야기를 응축한, 어떤 내러티브도 빠져나올 수 없는 소설 성단의 블랙홀 같은 것이다. 그녀는 여러 고시원에서 여러 날을 살았다. 어느 날 나갔다 들어오 니 누군가 다녀간 느낌이 들었다. 없어진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었 지만 그게 그런 게 아니었다. 며칠 뒤 또 누군가 다녀갔다는 느낌이 들 었다. 이번에도 없어진 것은 없었으나 컴퓨터 바탕 화면이 바뀌어 있었 다. 그날로 짐을 싸서 그곳에서 나왔다. 그녀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도 했다. 제가요, 소설을 쓰는데요, 피시 방 이야기를 쓰려구요, 무보수로 일주일만 일해 드리면 안 될까요? 네? 그러나 소설 너클 을 쓰면서 정작 필요한 정보는 피시방 장롱인 동생 에게 다 들었다. 동생은 피시방의 모든 것을 줄줄 꿰고 있었다. 근무자 가 언제 교대를 하고, 어떤 종류의 손님들이 언제 왔다 가며, 어떤 게임 을 하는지, 또 어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지는지 다 받아 적었다. 슈 퍼마켓 아르바이트, 신문 배달도 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인지 방세를 내기 위해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김미월은 좁고 어두운 방의 대가다. 자발적인 동굴주의자다. 고려대 학교에 입학한 해 서울로 이주한 후부터 지금까지 수십 번 이사를 다 녔다. 고시원, 하숙, 월세, 전세, 더부살이를 거쳤다. 어둡고 컴컴한 곳 은 그녀에게 안락을 선사한다. 어쩌다 남향의 방을 얻게 되면 거기에 딸려 오는 번잡한 것들이 모두 부담스럽다. 요즘 약간 변화가 찾아왔 다. 바람이 있다면, 다음 방은 조금 넓고 어두침침한 곳이었으면 좋겠 다. 좁고 어두침침한 곳에서 한 단계 발전한 셈이다. 그녀의 소설에도 온갖 방들이 등장한다. 그 방들은 하나같이 작고 어둡다. 아니면 단절되어 있거나. 그렇게 그녀는 혹은 그녀의 소설은 출구가 없는 자기 완결 구조물인 큐브에 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큐브는 투명하며, 팽창하고 또 수축한다. 그런데 이 팽창과 수축은 외 부로부터의 작용이나 다른 물질과의 관계 맺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스스로 팽창하고 스스로 수축하는 그 모든 요인이 이미 큐브에 내재되 어 있다. 예를 들어 입방체의 내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상정하는 것과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한 입방체만을 상정하는 것 사이의 의미 값은 같 다. 한쪽이 플러스이면 한쪽이 마이너스일 터이고 그 반대면 그 반대 일 터이기에 처음부터 출구나 입구는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렇다면 큐브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 차이의 재현으로 그것 38 김미월 작가 인터뷰 39
이 가능하다. 무협지의 분신술처럼 큐브는 재생의 재생을 거쳐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환영에겐 트라우마를 대응시키 고 유토피아에 사로잡힌 환영에겐 유토피아를 대응시키면서 큐브는 팽 창과 수축을 계속해 나간다. 큐브가 투명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큐브를 부재로 인식하면 공포를 낳을 것이다. 또 누군가 큐브에 집착하면 그는 정신 분열을 낳을 것이다. 그녀는 노트북컴퓨터 한 대를 가지고 있다. 바탕 화면에 있는 아이 콘은 단 두 개다. 휴지통과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담긴 문서 파일. 그 게 하나로 통합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소설이 안 써지거나 뭔가 답답한 일이 생기면 그녀는 독경을 한다. 그녀는 경을 좋아한다. 유마 경, 법구경, 화엄경, 육조단경 같은 것들. 그렇게 경 자가 들어가는 책 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도덕경이다. 그녀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없앤 날을 정확 히 기억하고 있다. 1996년 1월 31일. 그날은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하고 모든 공식 활동을 접은 날이다. 서태지를 잡아 두지 못한 브라운관은 그날로 그녀의 인생에서 빠졌다. 지금은 FM 라디오를 줄기차게 듣는 다. 그녀는 쇼 프로를 안 보는 대신 연극이나 비보이 공연을 보러 다닌 다. 재래시장에도 자주 놀러 간다. 특히 생선 가게를 좋아한다. 생선은 다른 고기와는 달리 정육되지 않은 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다. 그 원형 그대로의 날것에 그녀는 늘 꽂힌다. 김미월은 성격이 좋고 밝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뒷면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날 속이 아파 도무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의사를 찾 아갔다. 내시경검사를 마치고 의사와 마주 앉았다. 바탕 화면에 배 속 풍경을 띄워 놓고 대화를 나눴다. 술을 얼마나 먹어서 속이 다 이 지경 입니까? 네? 아! 저 술 전혀 안 마시는데요. ( 아! 는 그녀의 대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추임새다.) 그럼 도대체 뭘 먹어서 위장에 구멍이 숭숭, 자 봐요 봐. 아! 그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요? 엥? 스트레스 하나 도 없게 생겼구먼 무슨 스트레스? 그녀의 겉모습은 투명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전화상에서도 진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람이다. 받을 때 한 번 끊을 때 한 번. 뉴욕에 서 지낼 때 우연히 한인이 운영하는 네일 아트 미용실에 들렀다. 일을 배우면서 3개월 무보수로 일을 하면 취업을 시켜 주겠다는 말에 덜컥 눌러앉았다. 그러나 약품이 독해 알레르기가 생기는 바람에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3개월 후 취업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정황임에도 지금도 그녀는 불법체류자의 약점을 노린 사장보다 자신의 무능을 탓 한다. 강원도 어느 절에 머무를 때의 일이다. 그녀와 허물없이 이야기 를 주고받던 스무 살짜리 스님이 그랬다. 보살 님은 여자로 안 보여요. 남자 같고 소년 같고 그래서 너무 편해요.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한번은 친한 친구와 터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터키어로 촉 은 매우 라는 뜻이고 규젤 은 예쁘다 라는 뜻이란다. 그 녀는 규젤 이었고 그녀의 친구는 촉촉촉 규젤 로 통했다. 이 촉촉촉 덕분에 그녀와 친구는 여행 내내 터키 남자들로부터 거의 여왕 대접을 받았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엔 앙심은 꼭 빠져 있다. 누구나 그녀 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몇 초 내에 즐거워진다. 그러나 그녀의 페르소 나 뒤에 감춰진 내면은 단단하고 서늘하다. 섣불리 그 실상을 가늠하 40 김미월 작가 인터뷰 41
기 어렵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활극은 오직 소설의 한 귀퉁이에서 만 흔적을 남길 뿐이지 절대 그 누구 에게도, 어떤 타자에게도 발톱을 드 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지루한 영화를 싫어한다.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무섭거나 감동 적이거나 하는, 뭔가 확실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녀에게 소설은 이야기다. 재미없으면 꽝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 신의 소설이 재미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강도를 두 번 만났다. 지금 도 가끔 후유증을 앓는다. 대학 1학년 초여름 새벽 골목. 그녀는 야자 수가 그려진 면 티셔츠를 입은 괴한에게 결박당한 채 주차장으로 끌려 갔다. 괴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녀를 풀어 주고 나서 한마디 했 다. 가라! 그녀는 얼어붙어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가라니까! 그녀는 역시 움직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괴한이 골목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정 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아끼던 공일오비 6집 테이프가 깨져 못 쓰게 된 사실을 알았다. 그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끔찍한 무서움이 밀려왔다. 두 주 동안 집 밖으 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기말고사도 치르지 못했다. 그녀에게 큐브는 그녀를 보호하는 동시에 잊혀져야 하는 어떤 것이 다. 그것은 마치 감옥의 벽이나 군영 내무반의 벽 혹은 책상 위의 모니 터와 같다. 공간을 분할하는 빈 벽은 보호 혹은 억압의 도구이지만 거 기에 벽화를 그리거나 여배우의 사진을 붙이거나 새 이름의 폴더를 만 들면, 이제 벽은 지워지고 잊혀진다. 이 낙서의 행위는 존재의 확인과 지움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그녀에게 세상만사는 두 가지로 분류되 었다. 확신할 수 없는 것과 확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 가을 팬터마 임 )처럼 말이다. 그러나 때로 강박이 있을 수도 있다. 소풍 에는 바탕 화면 가득 새 폴더를 만들 때마다 조류 이름으로 된 폴더명이 자동 생 성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온갖 새들이 다 등장하고 난 후 어느 순간 제 발 그만 좀 만들어 라는 폴더명이 뜬다. 폴더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자 부탁이야, 그만 좀 만들어, 정 그렇게 나온다면 과 같은 폴더명이 계 속해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을 바꿈으로 해서 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방을 명명하는 방식, 낙서의 방식을 죄다 바꿈으로 해서 방의 정체성에 구멍을 낸다. 그러고는 태연자약 그 어둡고 좁은 방에 누워 은하 저편까지 도달하고도 남을 이야기의 선분을 뽑아낸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원래는 걸으며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노래를 부르면서 걸어 다 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고, 사람들을 피하다 보면 걸음걸이가 불규칙해져 음정을 맞추기도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자전거 위에서라 면 문제없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한도 끝도 없이 달린 다. 제부도까지 간 적도 있고 춘천까지 간 적도 있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북한을 가로질러 중국, 유럽까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러야 할까. 그녀는 대학 4학년 때 학교 근처 2층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42 김미월 작가 인터뷰 43
여기서 두 번째 강도를 만났다. 금전 출납기를 열었더니 5만 원이 전부 였다. 강도는 출납기 서랍도 들어 보라고 시켰다. 서랍 안에는 50만 원 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돈이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고 믿 는다. 경찰서에서 그녀는 4252명의 사진을 보았다. 이 중에 그자가 있 습니까? 그녀는 강도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형사는 인상착의를 말하라고 했다. 임권택 감독을 닮았는데요. 형사가 말했다. 임권택이 누굽니까? 똑같은 진술을 세 번 되풀이하고 일주일을 경찰서로 출근했 다. 그러나 잡히면 연락 준다던 그 전화는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그녀 는 지금도 그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녀는 이처럼 일 어날 수 없지만 있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쓴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부동산 중개인에게 걸려 오는 전화를 받기에 바 쁘다. 이사할 방을 구하는 중이다. 혹시 현실의 방을 하나씩 바꿀 때 마다 소설을 하나씩 쓰는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좁고 어둡 지만 한없이 투명한 큐브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그 즐거운 소설의 세계로 독자들을 끊임없이 끌어당길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란씨 배지영 21세기 한국소설의 새로운 리얼리즘의 부활을 예고한 작가 배지영의 첫 소설집 오란씨 는 익 숙한 일상의 작은 틈에서 흐르는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어둠과 광기를 기발한 상상력과 생생 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그려 낸 작품이다. 그가 보여 주는 공포의 공간은 특별한 곳이 아닌, 늘 우리가 이용하는 버스, 안식처인 집, 일하는 회사, 퇴근길에 한잔하기 위해 들른 술집 등 지극 히 평범한 일상적 공간이다. 그런 공간 안에서 공중변소, 개백정, 덜 죽어 날뛰는 개, 창녀, 학대 받는 아이들, 근친상간, 동성연애, 간악하게 속이는 인간과 순진하게 속는 인간 등 현실에서 외 면하고자 하는 어두운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신예다운 참신함과 신예답지 않은 성찰 최하연 1971년 서울 출생. 200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피아노 가 있다. 의 깊이가 매혹적으로 뒤섞인 오란씨 는 21세기 한국소설에 시원하고 상큼한 청량제가 될 것 이다. 44 배지영 오란씨 45
오란씨 (전략) 부와와왕 부와왕 왕 와와왕. 하야부사와 닌자보스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그의 덤프트럭이 올 때까지 헤드라이트를 끄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왔 다. 순간적으로 그는 핸들을 옆으로 돌리며 속도를 줄였다. 가드레 일을 가볍게 받은 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야부사는 자신들의 계획에 잘 넘어 가 준 그의 덤프트럭 주위를 겅충대며 맴돌았다. 회색 머리의 닌자 보스는 곡예를 하듯 오토바이 뒤를 뾰족하게 내밀고 어지러이 흔 들어 대며 도망쳤다. 멀어지는 녀석들의 모습은 흡사 궁둥이를 내 밀고 희롱하는 것 같았다. 그는 후진 기어를 넣고 덤프트럭을 출발시켰다. 퍽, 퍽, 퍽. 한동안 잊었던 소리가 또 그의 귓전을 때리듯 울려 왔다. 퍽, 퍽, 퍽, 팡팡팡. 이른 가을 해 질 녘, 옥상에 널어놓은 눅눅한 캐시밀론 이불을 빗자루로 터는 소리처럼 그 소리는 무심하고도 나른했다. 어쩌면 그 시절로부터 들려오는 폭죽 소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소리만으 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살인을 하기 위해 몽둥이질을 하는 소리도 멀리서 들릴 때는 평화로울 수 있다. 개를 잡고 있었다. 개를 잡는 일은 모래내에선 낯선 광경이 아니 었다. 원산지 충남 청양 글자가 인쇄된, 노란 고추씨가 껴 있는 나 일론 자루 안엔 개 한 마리가 들어 있다. 흑염소집 간판이 걸린 기 둥 아래로 위쪽이 초록색 나일론 끈으로 단단하게 묶인, 버둥거리 는 자루가 매여 있다. 머리를 짧게 깎은 소년은 손에 잘 익은 팔뚝 두께의 몽둥이로 자루를 퍽퍽 쳐 댔다.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 고 빙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무표정한 낯빛의 소년은 힘도 그리 쓰 지 않았다. 흡사 배팅 연습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소년은 그의 형 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이복형이지만 그를 낳은 어미도 형을 낳 은 어미도 없기에 똑 닮은 둘의 얼굴은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무색 하게 만들었다. 형의 눈은 가늘었고 이마는 명민하게 튀어나와 있 었다. 단단하게 다물어진 약간 돌출된 입매와 광대뼈로 형의 표정 은 더욱 매워 보였다. 그런 형의 곁엔 복이 저절로 빠져나갈 것같 이 축 처진 입꼬리를 가진 노파가 신경질적인 눈매로 정육점 마크 가 인쇄된 하얀색 나일론 부대를 손에 들고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바짝 마른 노파는 그들 형제의 고모였지만, 형제의 이름을 한 번 도 부른 적이 없었다. 걸핏하면 개새끼 였고 미친놈 이고 시러벨놈 46 배지영 오란씨 47
이었다. 그들 형제 역시 고모를 고모 라 부른 적이 없었다. 할매 라 불렀고 고모가 없을 때엔 할멈 이거나 염소 할멈 이었다. 그는 구경꾼들 틈에서 감탄의 눈빛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구경꾼 들은 더러 땅바닥에 침을 쩍 뱉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능숙하게 개 를 잡는 형에 대한 시시껄렁한 농을 쳐 댔다. 더러 저 소년은 흑염 소집 손자인지 아니면 부리는 아이인지 궁금증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엔 이런 구경꾼들의 반응이나 모습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프로다운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는 형과 형의 몽둥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들릴 듯 말 듯 낮은 탄성을 지으며 거칠 게 버둥거리다가 형의 잘 다듬어진 몽둥이질 몇 번에 금세 축 늘어 지는, 자루 안에서 눅진눅진 부드러워질 개의 살코기를 생각했다. 일이 다 끝나자 형은 아무 말 없이 몽둥이를 내려놓더니 구석에 있는 노란색 빈 플라스틱 상자를 발로 밀었다. 상자엔 오란씨 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형은 상자 위로 올라가서는 자루의 끈을 풀어 내 렸다. 두 팔을 치켜들고 뒤꿈치를 살짝 든 형의 모습은 앳되어 보였 다. 열일곱 살 형의 보송보송한 귀밑 털이 바람에 흔들렸다. 짧게 깎 은 형의 상고머리털 사이 하얀 두피가 언뜻 보였고 그 위로 땀방울 이 흘러내렸다. 할멈은 넋을 놓고 서 있던 그를 불렀다. 그는 다람쥐 처럼 달려가 할멈의 맞은편에 서서 정육점에서 얻어 온 부대의 귀 를 마주 잡았다. 형은 이미 불긋하게 피가 새어 나오는 자루를 번쩍 들어 정육점 마크가 새겨진 부대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안에 있던, 죽었 으리라 예상했던 개가 별안간 강한 힘으로 버둥거렸다. 예기치 않은 반응에 형은 놀랐다. 형의 발밑에 받쳐 있던 오란씨 플라스틱 상자 가 옆으로 기우뚱 기울어지면서 개의 몸뚱이가 자루 밖으로 비집 고 나와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구경하던 무리들이 순식간에 흩 어졌다. 1.5초나 됐을까. 짧은 순간, 땅바닥은 피로 물들었다. 할멈은 소리를 질렀다. 똑바로 못해? 할멈의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카랑카랑했다. 자루 밖 으로 반쯤 몸뚱이를 드러낸 개의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 다. 한쪽 눈알은 빠진 채 피가 흘렀고 콧잔등은 뭉개져 있었다. 비 루먹은 듯 윤기 잃은 듬성듬성한 누런 털은 피로 뭉쳐 엉겨 붙어 있 었다. 날카로운 송곳니 밖으로 길게 늘어진 빨간 혀가 부글거리는 침 아래로 펄떡거렸다. 비릿한 핏내가 그의 콧속을 타고 올랐다. 형에겐 실수란 없었다. 형이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형은 몽둥이를 손에 쥘 수 있을 무렵부터 개를 잡았다. 주로 모 래내의 개천 다리 아래나 뒷산에서 잡곤 했다. 형의 개 잡는 모습 을 본 사람들은 형을 잔인한 놈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형은 다만 힘이 좋을 뿐이었다. 그런 형에겐 떨치 기 힘든 유혹이 일찌감치 들어왔다. 모래내엔 매밋집만큼이나 스탠 드바니 성인 나이트, 디스코텍들이 많았다. 그에 맞춰 출입문을 지 키는 기도나 웨이터가 필요했다. 웨이터야 어느 정도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기도는 그렇지 않았다. 평소 형의 주먹 실력 을 눈여겨보던 88스탠드바의 영업 실장은 형을 볼 때마다 그냥 지 48 배지영 오란씨 49
나치는 법이 없었고, 형 또한 그를 보면 허리를 굽혀 넙죽 인사를 하곤 했다. 시간문제였다. 싸움깨나 한다는 모래내 소년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형 또한 그 길로 들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비는 변 사장이었다. 물론 아비의 성은 변 씨가 아니다. 다름 아닌 유료 공중변소의 사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아 비를 변( 便 ) 사장이라 불렀다. 집마다 변소가 없는 인근 시장 상인들이나 가정집에서 달거리로 돈을 대며 변소를 이용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없었다면 그와 형은 일찌감치 거리로 나가 구걸로 연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 고 그들 삶이 넉넉한 건 아니었다. 기실 늘 쪼들렸고 정부미도 풍족 하게 먹질 못했다. 원래 변소는 그의 형을 낳은 어미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를 낳은 어미는 그를 낳자마자 도망갔다. 이에 반해 형 의 어미는 아비가 염치없이 바람피워 낳은 자식인 그까지 거둬 주 었다. 시장 사람들은 이런 형의 어미를 보살 이라 불렀다. 하지만 보 살은 술 취한 아비에게 늘 얻어맞았고 머리를 심하게 맞은 어느 날 부터는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다. 온몸에 든 울긋불긋한 멍 자국 에도 불구하고 어미의 사망진단서에는 급성 뇌출혈이라 기록되었을 뿐 아비는 아무런 혐의도 받지 않았다. 보살이 죽을 당시 형의 나이 는 열한 살이었고, 그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그는 당연히 기억할 수 없었으나, 형은 아비가 어미를 때려죽인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 었다. 흑염소집 할멈과 아비도 내력인 양 배가 달랐다. 그러나 그와 형 과는 달리, 그들은 형제애도 뭣도 없었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 를 이용하며 살아갔다. 아비는 보신탕을 자주 해다 먹었고 그 대가로 형은 흑염소집의 허드렛일이나 막일을 해야 했다. 그 바람에 형은 줄곧 개를 잡게 되 었고, 가끔 아비와 함께 길 잃은 개나 남의 집 마당에 묶어 놓은 개 를 훔쳐 오는 일에 투입되곤 했다. 그해는 88올림픽이 있던 해였다. 대통령은 개고기를 금지함으로 써 미개한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 리하여 많은 개고깃집은 흑염소나 사철탕으로 간판을 바꿔야 했고 한쪽에 마련되었던 한 평 남짓한 개 도살장도 대외적으론 없애야 했다.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매스컴 에서 난리를 치니까 도리어 값은 올랐고 장사는 더 잘됐다. 모래내 시장은 재래식 시장으로선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 다음으로 큰 시장이었다. 하지만 워낙 좁고 불쑥불쑥 나 있는 수많 은 좁은 길들이 제멋대로 얽혀 있는 데다 연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잡화상들과 노점상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 명성도 개성도 찾 아볼 수 없었다. 속옷 가게가 있다 싶으면 그 옆으로는 일산서 온 할매들이 오종종 앉아 각자의 텃밭에서 농사를 지은 상추며 풋고 추며 오이며 가지 등속을 보자기나 골판지 박스 위에다 펼쳐 놓고 팔았다. 일산 할매들이 있는 그 길을 따로 일산 시장 이라 불렀다. 일산 시장을 뒤돌아 가면 비단 두루마리가 울긋불긋 세워져 있는 한복집들이 즐비했다. 옷을 파는 곳인가 싶으면 별안간 순대나 떡 을 파는 먹거리 노점상들이 나왔고 맞은편에는 미제 물건이나 액세 50 배지영 오란씨 51
서리를 파는 성냥갑같이 네모반듯한 노점상들이 나왔다. 이렇듯 모 래내 시장은 난데없고 어처구니없었으며 이것저것 마구 팔아 대는, 특성 없는 재래시장이었다. 시장 구석마다 자리한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모래내 시장길은 미로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러다 모래내와 인접한 시내에 백화점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모래내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깔끔하고 주차 시설이 완비된 백화점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1988년도를 맞이하면서 모래내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분주해졌다. 올 림픽 개최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갖기 충분할 만큼 경기가 좋아졌 고, 백화점 가격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얼추 비슷한 물건을 비교 적 싸게 구입하기에 모래내 시장은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비탈길로 접어들면서 차 뒤쪽에서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욱 커졌다. 며칠 전에 한 과적 때문인지 바퀴가 또 나갔다. 바퀴 하 나 값으로 50만 원이나 써야 했다. 정비소에선 뒷바퀴 모두 쇼바가 나가서 바꾸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새차나 다름없다던 신 씨의 덤프트럭은 걸핏하면 고장을 일으켰다. 대출금을 다 갚고 나면 또 다시 신차를 뽑아야 할지 몰랐다. IMF 직후부터다. 회사는 별안간 지입차를 요구했다. 제 돈 내고 차를 구입해서 기름값이며 보험비를 자비로 충당하라는 거였다. 그 는 보험 접부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차주에 부과되는 세금을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한때 그의 덤프트럭 사수였던 신 씨의 도 움으로 빚을 얻어 그의 중고 15톤 덤프트럭을 받아 냈다. 신 씨는 사고로 다리 하나를 다쳤는데 제때 치료를 안 받는 바람에 절름발 이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신 씨는 덤프쟁이들이 한창 수입을 올릴 때 여러 대를 굴려서 이미 작은 슈퍼가 딸린 3층 건물의 소유주가 되어 있었다. 신 씨는 덤프쟁이 수입이 막 하향 곡선을 긋기 시작할 때 차를 팔았고 마지막 남은 차마저 그에게 적지 않은 가격으로 넘 겼다. 신 씨는 기막히게 운이 좋은 셈이었다. 신 씨에 반해 덤프쟁이로 겨우 막차를 탄 그는 회사 차를 임대하 여 몰고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운전을 하는데도 갈수록 빚이 늘었 다. 신 씨의 중고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다달이 붓는 대출금과 이 자도 벅찬 데다, 그나마 비수기에 받던 지원금이나 장거리 뛸 때마 다 기름값으로 받던 추가 운임도 없어져 버렸으니 죽을 맛이었다. 경유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는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그런데도 운임 은 자꾸 덤핑이 됐다. 빈 차로 돌아갈 수 없어 알선소나 운송사를 통해 배차를 받아야 했는데 거기로 들어가는 지입료가 수입의 절 반은 됐다. 일거리는 계속 줄어드는데 수금까지 안 됐다. 손바닥에 서 고린내가 날 정도로 핸들을 잡았는데도 그의 빚은 늘어만 갔다. 오늘부터 파업 디데이다. 분회장이 내린 지침은 2년 전보다 더욱 단호했다. 덤프트럭 앞머리에 파업 포스터를 붙이고 국회로 가야 했 다. 만일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운전대를 못 잡게 할 것이 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고작 며칠 운전대 놓고 그 시절 대학생들처럼 데모를 해 봐야 달라질 게 없다고 그는 생각했 다. 게다가 그저께 받아 낸 어음만 할인하면 밀린 할부금도 갚을 수 있게 됐다. 이제 그의 나이, 보험 접부비의 부담을 더는 만 26세가 52 배지영 오란씨 53
되는 마당에 파업 투쟁같이 골치 아픈 일엔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바야흐로 15톤 덤프트럭의 온전한 명의자. 그의 평생 꿈 아니던가. 그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한 가지만 제외하고. 바로 여자 문제였다. 한때 도박에 빠졌던 것 이상으로 그는 여자를 사는 데 열중했다. 그가 주로 갔던 곳은 매밋집이었다. 묵은 맥주 곰팡내가 피어오르는 허름한 방석집은 걸핏하면 바가지요금을 씌워 대기 일 쑤였다. 하지만 허연 살을 드러내 놓고 술을 따르는 통통한 여자가 있는 붉은 조명의 매밋집을 가야 그의 남성은 제힘을 발휘하곤 했 다. 가끔 그는 술에 취하면 백보지 여자가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 니기도 했지만 까다로운 그의 남성은 백보지 앞에선 한없이 진지해 지고 우울해져서 하염없이 그곳을 쓰다듬다가 욕을 얻어먹고 쫓겨 나곤 했다. 그에게 매밋집은 미상불 고향집 같은 곳이었다. 아비의 공중변소 옆으로는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야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다. 그 길로 10미터만 들어가면 매밋집촌이 나왔다. 매밋집은 밤이면 붉은 전구로 불을 밝혔고 맥주와 양주를 팔았다. 네모반듯한 가게 안에는 언제나 맥주 썩는 시큼한 냄새가 싸구려 향수 냄새와 섞여 났다. 엉덩이가 큼지막한 중년 여자들이 부석거리는 파마머리를 긁 적이며 방석에 앉아 술을 팔던 그곳은 1988년도가 시작되면서 변화 의 바람이 불었다. 젊은 여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 부집, 촛불 두 곳에 불과했던 그곳은 오란씨, 에티켓, 첫사랑 이 개업을 하면서 분주해졌다. 그곳은 시장통 상인들보다는 뜨내기나 노가다꾼, 휴가 나온 군인들이 들르곤 했고 가끔 흑인과 백인들도 드나들었다. 그즈음 오란씨에 엄청난 미인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 자는 어느 지방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입상했는데 전국 미스코리아 예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고배를 마셨다고 했다. 여자가 떨어진 이유 는 다름 아닌 보지에 털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이 해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 전에 은밀하게 털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규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 자의 이름은 설희였다. 설희는 이름처럼 눈같이 하얀 피부를 가지 고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설희에게 정말 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여자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 는 것이 신사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에티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오란씨 바로 옆엔 에티켓 이 있었다. 어쩌면 설희에게 털 이 없다는 소문은 에티켓 에 있는 노랑머리 여자가 지어낸 것인지 도 몰랐다. 노랑머리는 오란씨 에 새로 들어온 미스코리아 예선 탈 락자, 설희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쪽 찢어진 눈,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축 늘어진 볼, 왼쪽에 털이 숭숭 나 있는 콩알만 한 검정 점이 박힌 노랑머리 얼굴은 가히 밉상이었다. 술집에서 남는 맥주로 머 리를 감아 노랗게 염색했다는 노랑머리는 그런데도 인기가 좋았다. 거대하게 출렁거리는 젖 때문이었다. 자신의 젖가슴에 대단한 자부 심을 품고 있던 노랑머리는 머지않아 강리나나 이보희처럼 예술을 표방한 에로 영화에서 멋진 배역을 따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실 노랑머리는 영화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나영희가 나오는 매춘 이라는 영화였다. 거기서 노랑머리는 그녀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54 배지영 오란씨 55
매춘녀의 역할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고 했다. 비록 영화에는 편 집되어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육감적인 몸만은 무려 5초 동안이 나 나왔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때마침 분장을 고치고 있던 배우 나 영희가 그녀의 연기를 보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는 것이 노랑머리 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믿을 수 없었으나 어쨌든 그런 소문은 노 랑머리의 입을 통해 돌았고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항상 가슴을 불쑥 내밀고 걸어 다녔다. 시장 사람들은 잠에서 덜 깬 노랑머리가 변소를 가기 위해 좁은 길을 지날 때면 꼭 그 앞에다 지갑이나 담 배 따위를 떨어뜨렸다. 노랑머리가 몸을 숙여 물건을 집어 올려 주 면 사내들은 젖이 너무 커서 메리야스 가게의 비비안 아저씨한테 미제를 따로 부탁한다는 그녀의 거대한 젖가슴을 넌지시 들여다보 곤 했다. 더 짓궂은 사내들은 일부러 노랑머리와 정면으로 부딪쳐 그녀의 가슴을 슬쩍 만지거나 몸을 안기도 했다. 형은 노랑머리가 술집 여자가 된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그런 여자애들은 어렸을 때 부터 젖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분명 동네 양아치들의 눈에 띄었을 것 이고, 머리 나쁜 노랑머리는 그러는 걸 자기를 좋아해서 그런 줄 알 고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결국 술집으로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랑머리는 변비가 심해서 남들보다 오랫동안 변소에 앉아 있어 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가장 구석진 변소간을 자 주 이용하곤 했는데 그 칸은 시멘트가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안이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노랑머리는 그 틈으로 눈을 바짝 대고 들여 다보는 까까머리에서부터 헐떡거리며 자위를 하는 아저씨들에게까 지 뭇남성들의 좋은 눈요깃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공중변소는 남녀 공용이었다. 남자들이 소변을 보는 곳은 시멘트 로 칸을 발라 만들었고 문이 있는 변소의 맞은편이었다. 남자들이 소변을 볼 때 이용하는 변소엔 문이 따로 있지 않았다. 소변을 보는 남자의 뒤가 보여도 모래내 여자들은 거리낌 없이 남자의 뒤통수를 지나 맞은편에 자리한 변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 오 줌통 뒤편이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 변소인데 역시 하늘색 페인트 가 칠해진 다섯 개의 나무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멘트 로 바른 직사각형 구멍을 낸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똥을 누다가 아 래를 내려다보면 부글거리며 끓는 똥과 하얗게 오글거리는 구더기가 보였다. 달거리로 돈을 내지 않고 변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변을 볼 땐 30원, 대변은 50원을 내야 했다. 휴지도 따로 팔았다. 두루마 리 휴지를 넉넉하게 끊어서 비닐에 넣고 50원에 팔았다. 아비는 술을 먹으러 돌아다니기 일쑤여서 화장실을 지키는 것 은 대개 그와 형이었다. 30원만 내고 소변을 보는 척하다가 똥을 누 러 들어가는 남자를 잡아내야 했고 무엇보다 달거리 사용료를 내지 않는 뜨내기들이 그냥 들어가는 것도 잡아내야 했다. 소변을 본다고 들어간 여자들이 똥을 누는지 오줌을 누는지 확인하긴 힘들었지만, 시간을 계산해서 너무 오래 있다 싶으면 20원을 더 달라고도 했다. 50원을 내고 들어갔다가 변비여서 똥을 누지 않았다며 20원을 거 슬러 달라는 치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 받은 돈은 절대 뱉어 내지 않았다. 노랑머리가 변소에 들어가면 그는 재빨리 뛰어가서 전직 공무원 56 배지영 오란씨 57
이었던 치킨집 아저씨나 고등학교 1학년인 국숫집 아들에게 일러 주었고, 그들에게 500원을 받고 네 번째 칸에 들어가게 했다. 국숫 집 아들과 나이가 같았던 형은 노랑머리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에 게 형은 우상이었기에 형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해서 내심 무관심 한 척했으나, 몇 번 노랑머리의 커다란 궁둥이를 엿본 적은 있었다. 물론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노랑머리의 궁둥짝도, 여자를 엿보는 일에도 모든 관심을 끊었다. 형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란씨였다. 오란씨는 오렌지 맛만 내 는 환타와는 달랐다. 환타처럼 오렌지 맛을 내면서도 파인 향이나 애플 향이 났다. 오란씨가 등장하면서 당시 가장 잘 팔렸던 환타가 제일 큰 타격을 입었다. 오란씨 광고에 나오는 청순하고 하얀 피부 의 모델은 인기가 좋았다. 긴 머리카락을 내려뜨린 얼굴은 누구보다 도 청순했으며 허리를 돌리며 하와이언 춤을 출 때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섹시했다. 그러나 형은 누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과 달 리 유별나게 구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형은 국숫집 아들처럼 영화 위험한 정사 의 글렌 클로즈 사진이나 붙여 놓는 놈들이나 아비처럼 벌거벗은 거나 다 름없는 비키니 여자들 달력을 걸어 놓는 치들도 우습게 보았다. 자고로 여자는 오란씨 같은 거야. 맛있게 먹고 이렇게 버리는 거지. 형은 오란씨 캔을 바닥에다 버리곤 발로 뭉갰다. 오란씨에 그려 진 여자의 얼굴도 따라서 뭉개졌다. 그랬다. 오란씨 캔은 맥주 캔과 달리 쉽게 찌그러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형은 늘 쉽게 캔을 우그러 뜨렸다. 형의 엄청난 힘에 대해선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였다. 형을 화나게 해선 안 됐다. 형은 화가 나면 흡사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괴물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아니 어른들조차 형을 함부로 화나 게 하진 않았다. 그러나 모래내에서 힘이 좋다는 것은 가랑이를 잘 벌리는 창녀나 다름없었다. 그저 그런 뒷골목으로 늪처럼 빠질 가 능성만 커지는 것이었다. 원래 모래내는 깨끗하고 하얀 모래가 많은 냇가라는 뜻에서 붙 여진 이름이라 했다. 아비가 그의 형을 낳은 어미와 결혼할 때만 해 도 믿기지 않지만 모래내 개천엔 정말 깨끗한 물이 흘렀다. 아이들 은 내에서 멱을 감았고 부녀자들은 빨래를 했다. 가재나 송사리 같 은 것도 잡았으며 모래내의 하얀 모래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찌개 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그땐 형을 낳은 어미가 그와 형을 위해 따 뜻한 밥과 역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찌개를 삼시 세끼, 밥상 위 에 올려 주었다. 그 시절엔 그런대로 살 만했다. 형도 그럭저럭 귀염 을 받았으며, 아주 가끔은 김밥 같은 것도 싸서 가까운 능이나 공 원으로 놀러 가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라고 어린 그는 생각했다. 그가 태어나면서 모래내 개천은 시커먼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똥물 이 흘러넘쳤고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 얗던 모래는 부석부석한 먼지와 흙, 끈적한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 다. 그러나 모래내가 더러워진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모래내 사람들은 모두 개천의 모래만큼이나 더러워졌고 어디서나 그런 대접을 받았다. 58 배지영 오란씨 59
개천 다리 아래엔 부랑자들이 살았다. 그들은 쓰레기를 줍거나 시장을 돌면서 종이 박스나 병을 얻어다 팔았고 더러는 구걸을 했 으며 가끔은 아이들이나 부녀자들의 돈을 뺏곤 했다. 그러다 불어 닥친 사회 정화 운동은 이들의 자취를 감추게 했다. 거반 병신이 되 거나 바보가 되어 돌아와 시장을 돌며 구걸을 하는 이를 가리키며 형은 그에게 말해 주었다. 모래내의 다리를 건너고 언덕배기를 하나 넘으면 연희동이 나왔 다. 연희동은 대통령이 줄줄이 나온 곳이어서 사람들은 연궁( 宮 ) 이 라 불렀다. 언젠가 연궁을 다녀왔던 형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절대 연희동으로는 걸음 하지 않았다. 약간이라도 수상쩍은 사람이 출몰 하면 숨어 있던 경찰과 군인들이 튀어나와 검문을 했고 조금이라도 불량해 보이면 그대로 어디론가 끌고 가 고문을 한다고 했다. 그는 불량했고 가난했고 늘 수상쩍어 보였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다. 연궁엔 으리으리하게 큰 저택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텔레비 전 만화영화에서나 보는 털이 복슬복슬한 커다란 개가 있다고 했 다. 미국 대통령이나 탄다는 링컨 타운카가 즐비하고 쓰레기통에는 한 번 입고 버린 옷이며 한 번 베어 물고 버린 외제 과자가 잔뜩 있 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 전해까지만 해도 모래내 아이들은 인근 대학에서 매일같이 터지는 최루탄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일단 대학 에만 들어가면 간첩과 내통하여 김일성을 찬양하게 되고 순진한 노 동자들을 속여 파업을 하게 만들어 나라를 망치는 데 앞장선다며 아비는 핏대를 세웠다. 연궁에도 과연 이 매운맛이 전해졌을까 의 문이지만, 모래내는 날마다 최루가스로 눈물 흘려야 했다. 하지만 88올림픽은 데모도 잠재웠다. 대학생들은 화염병 대신 스포츠 신 문을 집어 들었으며 낮이고 밤이고 텔레비전 수상기 앞으로 모여들 었다. 극장에선 약속이나 한 듯 에로 영화들이 넘쳐 났으며 사내아 이들은 담벼락마다 붙여 놓은 영화 포스터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 르고 서 있었다. 아비는 대학생들과 걸핏하면 파업을 한다고 을러대는 노동자들 을 욕했다. 공부를 시켜 봐야 머리에 빨갱이 물만 들어 데모나 한다 고 말했다. 애국심이 많았던 그의 아비는 이런 까닭으로 형을 딱 중 학교까지만 공부시키려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형은 그나마 중 학교도 중퇴를 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 역시 중학교까 지만 다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교육에 관한 한 아비 의 선택에 만족했다. 학교란 그를 고통스럽게만 하는 곳이었다. 그 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구구단이었다. 그는 한 학년이 올라갈 때 마다 한 단씩 겨우 외워 3학년이 끝날 무렵에야 3단을 외웠다. 4학 년이 되어서는 모든 게 더 힘들어졌다. 다른 애들처럼 구구단을 노 래 부르듯 하질 못하고 더듬더듬 자신 없는 목소리로 외우곤 했다. 네가 이러는 걸 너희 부모는 신경도 안 쓰니? 선생은 깍쟁이 같은 목소리로 지휘봉을 까닥이며 혀를 찼다. 그는 운전을 하다가 종종 구구단을 외우곤 했다. 특히 졸릴 때는 구구단을 거꾸로 외웠는데 나름대로 구성진 가락을 곁들이면 잠이 달아났다. 동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평소 셈 이 정확하고 빨라서 웬만한 계산은 암산으로 했다. 중학교 1학년이 60 배지영 오란씨 61
돼서야 겨우 구구단을 외웠던 과거를 동료들은 알지 못했다. 셈이 정확하고 빠른 그는 덤프트럭 할부금을 붓고 수리비와 지입 료를 내 가며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쩔 때는 많이 날라 댈수록 나가는 돈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그냥 차 를 세워 두고 노가다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 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웠다. 할부금을 내 가며 마련한 덤프트럭이 아까웠고 면허를 따기까지의 설움이 아까웠다. 그렇게 견뎠던 그다. 이제 마지막 밀린 3개월 치 할부금만 부으면 그의 차가 됐다. 그 러나 갑자기 돈이 딱 떨어졌다. 도저히 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그는 똥줄이 탔다. 그러던 차에 하늘이 도왔을까. 운비를 안 주고 이리저리 피해 다 니던 업주가 밀린 돈을 어음으로 끊어 주었다. 어음깡을 하게 되면 남은 할부금을 다 치러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대운휴게소에 있 는 순희를 데려가겠다고 식당 여주인에게 말할 작정이었다. 얼마의 돈만 쥐여 주면 식당 주인은 쌍수를 들고 반길 터였다. 순희도 말끔 하게 씻기고 집에 앉혀 놓으면 저대로 알아서 빨래도 하고 김이 설 설 나는 밥도 지을 것이다. 오히려 약간 모자라니까 몇 년 전 동거 했던 술집 계집처럼 그의 통장을 들고 도망갈 일도 없어 좋았다. 그는 순희 앞에서는 이상스럽게도 순해지고 너그러워졌다. 순희 가 계모인 식당 주인 여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식당 앞 개똥나무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그의 마음도 따라 우울해졌고 그러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는 순희를 보면 영락없이 백치구나, 싶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울다가 웃으면 거시기에 털 난다고 하든디. 순희는 저 혼자 이렇게 말하고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크윽 크윽 트림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즐거워했다. 순희는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콜라 사 달라, 껌 사 달라, 아이스크림 사 달라 졸라 대곤 했다. 순희 때문에 식당 여 주인은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식당은 앵벌이를 고 용해 놓고 있는 거냐며 항의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서른은 좋이 되어 보이는 야릇한 여자가 식탁 주위를 맴돌며 교태 부리는 모습 에 놀라 기겁하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순희를 적당히 놀리 면서 콜라나 껌을 미끼로 그녀의 숙성된 몸을 더듬는 치들도 많았 다. 대개 트럭이나 레미콘, 고속버스를 운전하는 이들로 식당의 단 골이었다. 식당 여주인은 그들이 순희의 허벅지나 엉덩이를 더듬거 나 가슴을 은근슬쩍 만지는 것을 보고도 굳이 말리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순희에게 먹을 것을 사 주면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왜 낯선 사내들에게 교태를 부리며 군것질거리를 조르면 안 되는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어휘와 표현을 총동원해서 점잖게 타 일러도 보고 윽박질러 보기도 했다. 그러나 순희에겐 통하지 않았다. 순희는 그가 무슨 말만 하면 헤벌쭉 웃어 대기만 했다. 이제 그는 외 려 순희가 콜라를 마시며 가늘게 눈을 뜬 채 맛을 음미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즐겼다. 순희에게 콜라를 사 주기 위해 그는 멀리 돌아가 는 한이 있어도 부러 대운휴게소까지 오곤 했다. 이미 밥을 먹고 왔 어도 그는 식당에 오면 국과 밥을 시켜서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후략) 62 배지영 오란씨 63
서평 64 배지영 오란씨 65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혈액형은? O형. 첫 소설집을 출간한 소감은? 좌우명은? 네 꿈은 너의 성실을 통해 이루어진다. 별명은? 초등학교 때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들이 전부예요. 가령 베지밀, 지렁이. 습관은? 길 가다가 어떤 생각에 잠기면 종종 웃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해서 맞은편에서 제겐 첫 시작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집에 나오는 소설 속 인물, 에 피소드, 소재, 혹은 주제 등은 다음에 제가 쓸 소설의 모티프나 중요한 복선이 될 거 예요. 그런 의미에서도 시작 이고요. 오는 사람에게 괜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꿈을 자주 꾸는데, 지난밤 꾼 꿈을 정리하기 위해 방송 작가 생활 중 에피소드? 발딱 일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뒹굴거려요. 꿈을 꾸지 않은 아침엔 라디오를 들으며, 아, 역시 빈둥거리네요. 거울 앞에 서면 생각나는 것은? 어제 분명 세수하고 잤는데 도대체 왜? 노래방 18번은? 노래방에 거의 안 가지만, 그래도 굳이 부를 일이 생기면, 주로 이문세 노래를 불러요. CBS 아침 음악 방송 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 의 구성 작가를 할 때, 함께 일 했던 사람들도 좋았지만 멋진 청취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누군가 어렵다는 사연이 방 송을 통해 나가면 (자신들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대의 도움을 주더라고요. 또 청취자들끼리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 성금을 모아 기 부하기도 하고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스트레스 해소법은? 영화 보기, 잠자기 콤플렉스는? 열정.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가방 속 필수 아이템은? 물통.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훗! 보물 1호는? 노트북. 내 인생의 영화는? 새, 28일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예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 개편하면서 잘리고 난 뒤 안동에 간 것이 (여행다운) 최초의 여행인 셈이 됐어요. 그곳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가서 며칠 민폐 끼치다 돌아왔지만 (마음을) 비우는 것이 여행이라는 걸 알게 돼서 기억에 남네요. 내 평생 가장 큰 거짓말은? 거짓말 못해요.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가뜩이나 기억력 감퇴로 괴로워요. 가장 최근에 운 일은? 천안함 실종자 가족 인터뷰 보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장 힘들고 슬펐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행복했던 순간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행복의 순간이 따로 있다거나 경중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가 라고 하면 예상되는 학창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책벌레도, 우울한 몽상 가도, 폼나는 아웃사이더도 아니었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뒷길로 다니는 걸 좋아 했는데, 따지고 보면 그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소심한 선택 일 뿐이었죠. 중고등학교 때는 지각을 참 많이 했는데, 반대로 대학교 땐 지각하지 않으려 헐레벌 떡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가 정작 수업 시간엔 꾸벅꾸벅 졸곤 했어요. 어쨌든 출석 체크에만 신경쓰는 매우 멋없는 대학생이었죠. 또 당시 명지대 문예창작학과가 용인 에 있어서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걸 놓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어요. 제가 아주 심각한 길치여서 고속버스를 타고 학교 가는 방법을 몰랐거든요. 처음 스쿨버 스를 놓친 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헤매다 겨우 물어물어 타고 갔는데, 도착하니 이 미 수업은 다 끝났더군요. 허탈했지만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대학교를 참 시시 하게 다니고 있구나. 하고 말이죠. 현재 고민은? 지금 장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민이에요. 사랑이란? 해피엔딩을 꿈꾸게 하는 것.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섬뜩하게 그렸는데, 작가 본인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지금 가지고 싶은 것 세 가지는? 튼튼한 필력과 체력, 긍정적 사고. 한 케이블 방송국 구성 작가로 일하던 시절, 일이 너무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갔어 무인도에 한 권의 책만 들고 갈 수 있다면? 성경책. 66 배지영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67
요. 뒷자리에 여자 두 명이 앉아 있었고 전 합승을 한 셈이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 독특한 집필 습관이 있다면? 다는 건 타고 나서야 알았어요. 운전사는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해 대고 있었어요. 더 구나 앞에 붙은 택시 자격증은 볼펜으로 마구 그어져 있어 기사의 이름도 사진도 보 기 힘들었죠. 그는 (생전 처음 들어 본 아주 창의적이고 섬뜩한) 육두문자를 써 가며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었어요. 그런데 잘 들어 보니 늦은 시각 택시를 탄 저에 대한 질 책(!)이었어요. 아마 제가 타기 전엔 뒷자리에 앉은 두 여자에게 그 욕을 해 댔던 모 양이에요. 공포에 질린 그녀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앉아 있더군요. 결국 그 여자들 이 내릴 때 무서웠던 저도 얼른 따라 내렸지만 가는 내내 그야말로 공포 택시 였어 요. 택시를 운전하면서 왜 그런 욕설을 손님들에게 퍼붓는 건지, 그리고 과연 그 아 저씨가 택시 기사는 맞는지 모를 일이에요. 집이나 너무 조용한 곳에선 잘 안 써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약간 복닥거리는 도서관 이나 카페가 집중이 잘돼 좋아요. 하지만 그게 또 문제가 있더라고요. 도서관은 자리 맡기가 힘들고 카페는 돈이 많이 들고.(요즘 커피 값 너무 비싸요!) 또 옆에 물이 담긴 물통도 있어야 해요.(어찌나 목이 자주 마르던지.) 참, 녹차 티백도 갖고 다니고요. 근데 사실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도 제 집필 습관이라면 습관이죠. 그건 마치 시험 공부 하려면 책상 정리하고 방 청소하다가 급 피로해져서 잠들고 마는 수험생과 같 다고나 할까요.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발등에 불 떨어지면 그곳이 어디든, 옆에 물이 있든 없든 그냥 써지더라고요. 작품이 영화화될 경우 주인공들에 대해 가상 캐스팅을 해 본다면? 반대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행복했던 순간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여유 라는 걸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지난해 가을 토지문화관에서 4개월 정도 있었거든요. 제 방 책상에 앉으면 단풍나무가 보 이는 커다란 창이 있었죠. 시시각각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도 멋진 일이었어요. 글을 쓰기보다는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침대에 누우면 별과 달이 보이는 작은 창이 옆에 있었죠. 그 창으론 달이 부 풀었다가 차츰 몸집을 줄여 나가는 모습,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달빛과 별빛이 침대 위 로 어떻게 내려앉는지 볼 수 있었어요. 토지문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해야 했는데, 그렇게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린다는 것이, 또 완벽하게 멍 하니 앉아 있어도 괜찮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어요. 내 마음대로 시간을 마음껏 부 려도 된다는, 그 상황만으로도 참 좋았어요. 어쩌면 모르고 지나쳤을, 나의 결핍도 깨닫게 됐고요.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여 원주 란 멋진 장소에 환상적인 집필 실을 만들어 주신 고 박경리 선생님을 향한 고마움도 무럭무럭 피어오르더군요.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랑을 넉넉히 받는 경험이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나도 누군가에 게 그 사랑을 되돌려 줘야겠다는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이렇게 유쾌 한 빚도 있구나, 싶었어요. 가상이라니까 (사심을 잔뜩 담아 오직) 강동원! 그 밖에 딱히 떠오르는 배우가 없네요.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소설을 쓰고 있겠죠. 지금보다는 더 즐기면서 쓰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꿈이 하나 있다면, 제가 오랜 기간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느낀 건데요, 공공 도서관은 죄다 큰(!) 동네에 있더라고요. 교통도 안 좋고 좁은 골목도 많고 맞벌이 가 정이 대부분이어서 아이들이 놀 곳은 PC방이 전부인 동네에서 도서관 한번 가려면 마을버스 타고 전철 타고 아주 힘들게 가야 해요. 그래서 그런 작은 동네에 사는 아 이들, 청년들, 주부들, 노인들이 아주 쉽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을 곳곳에 만들고 싶어요. 시간 제약 없이 개방하고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모임을 갖 든 자기 집 서재나 거실처럼 혹은 놀이터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그런 도서관 말이죠. 10년 뒤엔 그 꿈이 실현되지 않을까요. 다음 작품은? 오란씨 에 나온 배경과 몇몇 인물들이 찬조 출연하는 장편소설 링컨타운카 베이 비 가 이르면 올해 나올 것 같아요. 68 배지영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것들 69
변두리 괴수전 이지월 신예 이지월의 도발적인 성장소설 변두리 괴수전 은 왕년에 17대1로 위대한 승리를 거둔 적 있는 모든 불량한 소년 소녀들에게 바쳐진 불온한 헌사다. 이지월이 그려 낸 학원 잔혹사에서 싸움 잘하는 친구는 신화의 괴수가 되고 운동권 여학생은 강림한 여신이 되며 세상에 뒤통수 를 맞기 전에 어떻게든 한 대 미리 쳐 볼까 고민하던 고삐리들은 은강의 전설 이 된다. 무협소 설과 성장소설이, 사회소설과 학원소설이 절묘하게 이종교배되는 가운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종 소설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아직 헤비메탈을 듣고 교복을 줄여 입으며 세상의 적 이고자 했던 시절, 하나쯤 갖고 싶 어 했던 바로 그 전설. 불량한 어른아이 이지월의, 질풍노도 학원 잔혹사 변두리 괴수전 은 불 량해서 더 맛있는 청량 과자의 맛이다. 70 이지월 변두리 괴수전 71
때문에 그녀의 모든 인적 사항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내게는 팽이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투투도, 징글이 도, 베일에 싸인 여인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돌아간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린 팽이 말고 무엇이 내 관심을 끌 수 있었겠는가. 팽이를 알아 가는 과정은 온전히 기쁨만으로 충만한 것이었다. 힘이 다해 쓰러져 가는 팽이를 끈으로 후려쳐서 바로 세우는 것, 힘차게 돌아가는 팽이 위로 모래를 끼얹으며 그 화려한 비산을 관 찰하는 것, 끈을 두 겹으로 겹쳐서 돌고 있는 팽이를 들어 올리는 (전략) 나를 쓰러뜨렸던 자는 투투란 별명으로 불리는 녀석이었다. 철로 변의 광폭한 지배자인 그는, 많은 이들에게 패배를 안겨 준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투투란 당시 인기 있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악당 두목의 이름이었다. 그는 별명에 어울리게도 큰 체 격과 큰 주먹, 그리고 검은 피부와 들창코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내게 과자를 던진 것은 투투의 오른팔 격인 징글이라는 녀석이 었다. 별명에 어울리게도 더럽기 짝이 없는 걸로 유명했는데, 제 딴 에는 그걸 큰 무기로 알고 지내는 녀석이었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 기라도 하면, 침을 뱉고 도망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신비로운 미소를 지닌 계집아이는 투투의 여자였다. 양가 부모 의 동의하에 결정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어쨌든 둘은 장래를 기약한 사이라고 했다. 그래서 투투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용서치 않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왔다. 것, 들어 올린 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묵직한 간지러움에 깔깔 거리는 것, 물이 고인 웅덩이에 팽이를 돌리며 거친 파문을 바라보 는 것.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들이었다. 우리는,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평생 팽이만 돌리며 보낸다 해 도, 인생은 너무나 즐거울 것이란 당연한 사실에 대해, 아무런 논의 없이도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었다. 어때, 잘 돌지?, 스승은 물었 고, 나는 웃었다. 우리는 거룩한 회전을 추구하는 수도자들이었다. 팽이와 맞닿은 작은 한 점이 세상의 중심임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팽이 아닌 그 무엇도 필요치 않았다. 어머니의 진절머리 나는 노랫 가락도, 마침내 등장한 네 번째 생선 토막도, 세 번의 비웃음이 남 긴 지워지지 않을 상처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힘차게 도 는 팽이와, 친구에게 지어 줄 해맑은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72 이지월 변두리 괴수전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