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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The Aesthetics of Prose by Yong-Ju Jo, Kyung( 龍 洲 趙 絅 ) - Centering around the Comparison with the Prose by Nong-Am Kim, Chang-Hyup( 農 巖 金 昌 協 ) - 저자 (Authors) 申 承 勳 Shin Seung-hun 출처 (Source) 인문학논총 25, 2011.2, 259-290 (32 pages) The Journal of Humanities 25, 2011.2, 259-290 (32 pages) 발행처 (Publisher)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Research Institute for Humanities URL http://www.dbpia.co.kr/article/node01612196 APA Style 申 承 勳 (2011).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인문학논총, 25, 259-290. 이용정보 (Accessed) 경성대학교 210.110.173.171 2016/04/01 16:33 (KST) 저작권 안내 DBpia에서 제공되는 모든 저작물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누리미디어는 각 저작물의 내용을 보증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자료를 원저작자와의 협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 및 관련법령에 따라 민, 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Information The copyright of all works provided by DBpia belongs to the original author(s). Nurimedia is not responsible for contents of each work. Nor does it guarantee the contents. You might take civil and criminal liabilities according to copyright and other relevant laws if you publish the contents without consultation with the original author(s).

인문학논총 제25집 2011.2. 259~290.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 **2) 申 承 勳 조경은 산문작품에서 字 句 를 간략히 하는 서술적 특징과 규범과 전범을 강조하는 성향을 보였다. 또 三 長 과 五 難 을 중심으로 文 筆 家 의 자질을 논함으로써 일종의 散 文 論 을 펴기도 하였다. 字 句 를 간략히 하는 서술적 특징은 관계사를 비롯한 허사의 사용을 절제하는 實 辭 위주의 함축적 행문으로 나타났다. 字 句 는 간결하면서 의미 는 충분히 전달되게 함은 한문산문이 지향하는 대전제인데, 이는 한편으로 先 秦 의 語 法 을 模 擬 한 秦 漢 古 文 이 갖는 特 長 이기도 하며, 字 와 句 의 생략과 절제를 통한 簡 의 문예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김창협의 詳 於 大 體 의 미학과는 구별된다. 또 조경의 산문작품에는 莊 子 의 문장에 보이는 轉 折 의 특징도 여실히 나타난다. 이 는 그가 詩 에서 莊 子 를 논평한 말인 萬 變 奇 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變 의 문예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직접화법을 통한 引 用 法 은 문법과 수사학에서 그 역할과 기 능을 적시한바, 문장의 활기와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轉 折 은 인용과 직접화법의 표현기법을 통해 추구된 문예미학이며, 轉 折 을 통해 느끼는 審 美 的 感 應 은 生 動 感 이다. 이는 活 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이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 기에 이르는 시기에 성행했던 진한고문에의 성향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 산문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경은 명대 전후칠자의 문학노선에 공감하고 실천 했던 조선 문단의 秦 漢 古 文 派 였다. 주제어: 趙 絅, 秦 漢 古 文, 唐 宋 古 文, 文 藝 美 學, 簡, 變, 活. * 이 논문은 2010학년도 경성대학교의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신승훈 / 경성대학교 한문학과 조교수 / E-mail: dlsubom@ks.ac.kr 259

2 申 承 勳 I. 서 론 龍 洲 趙 絅 (1586 1669)은 인조 효종 현종의 三 朝 에 걸쳐 淸 要 의 仕 宦 을 거쳐 대제학으로서 당대의 문풍을 이끌던 文 衡 이며, 經 學 과 禮 學 에 깊었던 學 人 이다. 그는 인조반정 이후 西 人 이 집권하면서 光 海 朝 의 大 北 勢 力 에 함께 핍 박받던 남인들을 정계에 참여시키면서 등장한 近 畿 南 人 출신이다. 1) 하지만 그 의 當 代 的 聲 價 文 學 的 成 就 學 問 的 位 相 을 고려하면 현재 학계의 관심은 소홀하다고 할 수 있다. 2) 본고는 趙 絅 의 산문을 문예미학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조경의 산문에 어떤 특질이 있으며, 그 특질은 어떤 성향인지, 그 정도는 어떤지를 밝힌다. 이를 위 해 對 比 의 방식도 겸한다. 대비의 대상은 農 巖 金 昌 協 (1651 1708)의 산문이 다. 김창협은 조선의 문단에서 韓 歐 正 脈 의 精 髓 를 얻은 작가로 평가된다. 한구 정맥이라고 일컬어지는 당송고문의 대표적 작가인 김창협의 산문작품과 조경 의 산문작품을 대비한다면, 그의 산문에 어떤 특징이 있고, 그것이 대척적으로 는 당송고문과는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더 잘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주 제나 소재로 작성된 이 두 작가의 작품을 대비하는 방식을 통해 조경의 산문에 나타난 진한고문의 특징과 성향을 확인하고, 그 토대를 이루는 정신적 문예 적 지향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조경은 산문작품에 특정한 글쓰기 방식을 구현한바 나름의 문예미학을 추구 하였다. 문체는 제각기 다르며, 세상만사는 한 가지로 헤아릴 수 없다. 때로 문 장의 법도를 벗어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形 과 相 을 궁구해야 한다. 그런고로 1 ) 허권수(1996), 龍 洲 趙 絅 과 嶺 南 南 人 과의 교류에 관한 연구, 韓 國 의 經 學 과 漢 文 學 ( 竹 夫 李 篪 衡 敎 授 停 年 退 職 紀 念 論 叢 ), 서울: 태학사, 41 42면. 2 ) 趙 絅 의 문학에 관한 논문은 허권수(1996)와 정경훈(2004), 龍 洲 趙 絅 文 學 觀 에 대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34집, 한국한문학회. 과 申 承 勳 (2010), 龍 洲 趙 絅 散 文 論 一 考, 고전과 해석 제9집,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가 현재까지 전부이 다. 260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3 문장의 修 辭 를 숭상하는 사람은 찬란하게 나타내려 하며, 理 致 를 절실히 나타 내어 마음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설득력을 소중히 여긴다. 궁극적인 진 리를 얘기하려는 사람은 거리낌 없이 표현해내고, 넓게 따지려는 사람은 포괄 적으로 된다. 3) 그러므로 산문에서는 글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글쓰기의 방식에 도 작가의 세계관이 투영된다. 본고가 조경의 산문에서 글쓰기의 방식에 주목 하는 이유는 글쓰기 방식 즉 문체에도 그의 정신이 지향하는 바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산문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한 가지 태도 4) 이기 때문이다. 서술문학 의 예술적 기법은 서술의 근원상황 즉 서술되어지는 사건의 존재와 서술되어 지는 청중의 존재, 그리고 그 양자 사이를 어느 정도 중개해 주는 서술가의 존 재에 좌우되는 것 5) 이기 때문에 서술하는 자의 세계관은 사건 그 자체의 전달 만이 아니라 전달의 방식을 통해서도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한 윤색을 가한다. 본고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윤색의 방법과 정도이다. 또 한 시대의 문학의 형식과 내용은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며, 그것은 경 제적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조건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6) 따라서 글쓰 기 방식과 주제 곧 내용과 형식에는 작가의 정신뿐만 아니라 당대의 시대정신 과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상황이 투영된다. 조경의 산문을 분석하 고 이해함은 작품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의 시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도 된다. 이를 위해 當 代 문단의 동향을 검토하고, 그 좌표 위에 조경이 위상을 가졌는지를 살피며, 이어서 조경이 산문작품에 어 떤 기법을 썼는지를 분석한다. 3 ) 토마스 먼로, 백기수(2002), 동양미학, 열화당, 78면. 4 ) 장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2000년),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28면. 5 ) 볼프강 카이저, 김윤섭(1999), 언어예술작품론, 예림기획, 299면. 6 ) 토마스 먼로, 백기수(2002), 동양미학, 열화당, 80면. 261

4 申 承 勳 Ⅱ. 산 문 사 적 위 상 과 문 예 미 학 1. 秦 漢 古 文 과 唐 宋 古 文 趙 絅 의 산문사적 위상을 논하려면 우선 진한고문과 당송고문에 대한 개념정 의가 필요하다. 심경호(1998)는 이렇게 정의했다. 한문산문의 문체 가운데 당 송 이후의 일부 산문을 한정하여 고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의 문학성 을 지 닌 한문산문도 모두 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유와 유종원이 고대의 문법으로 당시의 일을 서술하여 성공함으로써 문장의 예술적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이후 송의 歐 陽 脩 王 安 石 蘇 洵 蘇 軾 蘇 轍 曾 鞏 을 그 두 사람과 아 울러 唐 宋 八 家 라 부르게 되었다. 당송팔가의 문장과 그것을 모범으로 삼아 이 루어진 문체를 특히 당송고문이라고 한다. 당송 고문은 경전에 근원을 두고 道 統 을 밝힌다는 내용면을 강조하여 한문산문 가운데서 특이한 위치에 놓인다. 단락과 글 전체의 구조인 篇 章 을 조직하는 방법을 강구하였고, 리듬감과 음악 성을 중시하여 散 句 속에 對 偶 나 排 比 의 정제된 구법을 삽입함으로써 구의 길 이에 변화를 주었다. 즉 그 나름의 언어미학을 추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러한 언어미학을 추구한 경향과 그 문학적 지향을 추종하는 계열을 당송고문 파라고 부른다. 명의 弘 治 嘉 靖 연간에 李 夢 陽 何 景 明 등 前 七 子 와 李 攀 龍 王 世 貞 등 後 七 子 는 종전의 무미건조한 臺 閣 體 에 반발하고 문장은 반드시 진한 시대의 것을 따라야 한다[ 文 必 秦 漢 ]. 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들은 당송을 배격 하고 위진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는다고 표방하면서 일부러 문맥을 쪼개어 어 렵고 껄끄럽게 하였다. 그 문체를 擬 古 文 古 文 辭 古 文 詞 라고 부른다. 그 문체 는 자세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자세히 하고 생략할 수 없는 것을 생략하며, 단락 구성에서 일부러 커다란 轉 折 이 있게 하려고 중간 어구나 접속사를 생략하여 문맥이 통하지 않게 하였다. 7) 7 ) 심경호(1998), 한문산문과 고문, 한문산문의 미학,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262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5 당송고문의 경우 文 章 을 짓는 방식으로서 단락을 구성하고 서술을 안배하는 것을 篇 法 이라 했다. 金 昌 協 은 옛 사람들은 전체에서 각 단락이 어떻게 기능 할 것인지를 考 慮 하여 構 成 하고, 그 단락의 서술 분량의 여하에 따른 簡 略 함을 추구하였지만, 명나라 사람들은 단지 字 句 를 간략히 서술함에 머물렀다고 했 다. 또 옛 사람은 敍 事 내지 立 傳 의 대상인 인물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 즉 大 體 를 상세히 하였던 반면에 명나라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일까지 세세하게 서 술하여 拙 劣 하다고 비판하였다. 8) 또 김창협은 산문의 창작에서 簡 嚴 을 강조하 였는데, 바로 篇 法 을 간략하게 構 成 하고 大 體 를 상세하게 敍 述 함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例 로 歐 陽 修 와 그의 작품을 거론했는데, 歐 陽 修 는 인물을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그 人 物 의 가장 核 心 的 인 面 貌 를 集 中 的 으로 부각시키고 기타 의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방식을 택하여, 范 仲 淹 의 神 道 碑 를 撰 述 하며 비 록 비중 있게 다룰 법한 일화도 과감하게 생략하고 出 處 間 에 행하였던 事 業 과 평생토록 일관하였던 節 義 만 서술했다고 평가했고, 9) 王 曾 (978 1038) 胡 曾 (약 877년 전후) 梅 堯 臣 (1002 1060)에 대해서도 가장 특징적인 한 가지의 면 모만을 敍 述 했다고 평했다. 10) 한편, 전후칠자의 문학노선에 공감했던 조선 문단의 문학유파가 진한고문 11 16면, 발췌인용. 8 ) 金 昌 協, 雜 識 外 篇, 農 巖 集 卷 34, 韓 國 文 集 叢 刊 162, 민족문화추진회, 1996년, 374면. 古 人 之 簡, 簡 於 篇 法, 明 人 之 簡, 簡 於 句 字 ; 古 人 之 詳, 詳 於 大 體, 明 人 之 詳, 詳 於 小 事. 故 歐 陽 公 作 < 王 范 二 文 正 碑 >, 其 文 不 滿 二 千 言, 而 其 作 相 事 業 與 平 生 大 節, 描 寫 殆 盡. 弇 州 作 < 商 販 婦 女 誌 傳 >, 其 人 無 足 記, 而 其 文 動 累 百 千 言, 此 可 見 工 拙 之 辨 也. 9 ) 金 昌 協, 雜 識 外 篇, 農 巖 集 卷 34, 韓 國 文 集 叢 刊 162, 민족문화추진회, 1996년, 374 375면. 范 文 正 公, 宋 朝 第 一 人 物 也. 其 平 生 行 事, 可 爲 後 世 法 者 極 多, 而 歐 陽 公 作 神 道 碑, 只 敍 其 出 處 事 業 終 始 大 節, 而 其 餘 嘉 言 善 行, 皆 略 之. 如 義 田 及 麥 舟 事, 尤 古 人 所 難 能, 而 碑 猶 不 載 也, 其 敍 事 簡 嚴 不 苟 如 此 矣. 後 來 碑 誌, 雖 名 賢 偉 人 有 大 事 業 大 名 節, 亦 必 俱 載 其 細 行, 至 於 筆 翰 小 事, 亦 皆 不 遺. 不 如 此 則 得 者 不 滿, 而 作 者 亦 不 安, 習 俗 之 弊 久 矣, 其 難 變 也. 1 0) 金 昌 協, 雜 識 外 篇, 農 巖 集 卷 34, 韓 國 文 集 叢 刊 162, 민족문화추진회, 1996 년, 373면. 歐 文 < 王 文 正 碑 >, 專 敍 相 業, < 胡 安 定 表 >, 專 敍 師 道, < 梅 聖 兪 誌 >, 專 敍 詩 學, 他 事 行 皆 略 之. 其 敍 事 有 體 要, 如 此. 263

6 申 承 勳 파 11) 인데, 그들은 선진양한의 산문을 존숭하여 그 어법과 자구마저도 모의하 려고 했다. 12) 진한고문파가 모의하려한 선진양한산문의 중핵은 역사서이다. 조경은 역사를 짓는 데에 三 長 과 五 難 이 있다는 散 文 論 을 편다. 그 내용은 주 로 사관의 자질에 대한 언급이지만, 적극적으로 보자면 文 筆 에 종사하는 사람 이 갖출 문학적 자질이다. 옛 사람은 역사를 짓는 데에 반드시 세 가지 장점이 필요하니 재주와 식견 과 학문이다. 말했습니다. 신은 이 세 가지에 하나도 가까운 것이 없으니, 그 것을 단지 신 스스로가 알뿐만 아니라 비록 온 나라 사람들이라도 누군들 모르 겠습니까? 옛 사람이 또 역사를 기록함에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번거롭 기만 하고 정돈되지 않음이 첫째이다. 속되고 전아하지 않음이 둘째이다. 기록 한 것이 사실이 아님이 셋째이다. 상과 벌이 맞지 않음이 넷째이다. 문식이 본 바탕을 넘지 못함이 다섯째이다. 라 하였습니다. 옛 사람은 실로 세 가지 장점 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히려 이 다섯 가지를 어려움으로 여겼습니다. 만일 신으 로 하여금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면 그 어려움이 어찌 다만 백배에 그치겠습니까? 대저 국사를 修 正 하는 일은 얼마나 큰일입니까? 전대에 합당한 사람을 신중히 간택함은 또 어떠하였습니까? 13) 핵심은 三 長 과 五 難 이다. 三 長 은 才 識 學 이고, 五 難 은 煩 而 不 整 俗 而 不 典 書 不 實 録 賞 罰 不 中 文 不 勝 質 이다. 그런데 三 長 14) 과 五 難 15) 은 조경의 독 1 1) 이때 진한고문파라는 용어는 그들이 규범 내지 典 範 으로 삼는 대상으로써 지칭 하는 사실적 용어이지만, 의고문파라는 명칭은 郭 紹 虞 이래로 주관적이고 부정 적인 평가를 담고 있는 비판적 용어이기 때문에 우리 조선의 문단에 적용시키기 에 적절하지 않다. 1 2) 신승훈(2010), 龍 洲 趙 絅 散 文 論 一 考, 고전과 해석 제9집, 고전문학한문학연 구학회, 234 243면. 1 3) 趙 絅, < 辭 大 提 學 疏 >, 龍 洲 遺 稿 권8,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추진회, 1992, 136면. 古 人 言, 作 史 必 待 三 長, 才 識 學 也. 臣 於 是 三 者, 無 一 少 近 焉, 不 唯 臣 自 知 之, 雖 擧 國 之 人, 誰 不 知 之? 古 人 又 言, 作 史 有 五 難, 煩 而 不 整 一 也. 俗 而 不 典 二 也. 書 不 實 錄 三 也. 賞 罰 不 中 四 也. 文 不 勝 質 五 也. 古 人 實 有 三 長, 而 猶 以 此 五 者 爲 難, 如 使 臣 當 之, 則 其 難 豈 特 百 而 止 哉. 大 抵 修 正 國 史, 何 等 大 事 也. 前 代 愼 簡 其 人 何 如 也. 14) 文 淵 閣 四 庫 全 書 電 子 版, 迪 志 文 化 公 事, 唐 書 卷 一 百 三 十 二, 列 傳 第 五 十 七, 264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7 창은 아니다. 재주 또는 재능으로 풀이할 수 있는 才 는 고전 문예이론에서 통 상 氣 라고 일컬어 왔던 것의 하나이다. 氣 란 문면의 기세를 넘어서 작가의 내 면에 축적된 志 趣 品 格 個 性 才 能 등의 정신역량으로부터 독자를 정서적 미적 으로 고양시키는 예술적 역량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문학 전반에 걸친 핵심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16) 그러므로 才 란 작가가 함양한 氣 이며, 선천적 획득 형질로서 자질과 재능에 다름 아니다. 學 도 비평용어로서 박학을 통한 학력의 배양과 師 友 와의 질정을 통한 식견의 제고, 부단한 체험과 수련의 공정을 의미 한다. 이는 창작의 기초와 기반이 된다. 일찍이 許 筠 이 우리나라 사람이 박학 하지 않아서 학력이 없다고 지적한 것 17) 도 창작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기에 의미가 상통한다. 즉, 學 이란 박학을 통한 창작의 기초 확립과 체험과 수련을 통한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함이다. 識 見 이란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학식과 견해를 합친 말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반드시 기록 하여 驕 君 과 賊 臣 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줄 알게 하는 능력인데, 좋은 일과 나 쁜 일을 빠짐없이 전부 기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고 나쁜 일을 각각 鑑 戒 가 되도록 기록함을 말한다. 허균은 스승을 찾아가지 않아 식견이 없다 18) 고도 했는데, 이는 자신의 견해가 정당한지 편파적인지를 질정해줄 객관적 자문이 < 劉 吳 韋 蔣 沈 >. 子 元 領 國 史, 且 三 十 年 官 雖 徙 職 常 如 舊. 禮 部 尙 書 鄭 惟 忠 嘗 問, 自 古 文 士 多, 史 才 少 何 耶? 對 曰, 史 有 三 長, 才 學 識, 世 罕 兼 之, 故 史 者 少. 夫 有 學 無 才, 猶 愚 賈 操 金, 不 能 殖 貨. 有 才 無 學, 猶 巧 匠 無 楩 柟 斧 斤, 弗 能 成 室. 善 惡 必 書, 使 驕 君 賊 臣 知 懼, 此 爲 無 可 加 者. 時 以 爲 篤 論. 15) 文 淵 閣 四 庫 全 書 電 子 版, 迪 志 文 化 公 事, 劉 知 幾, 史 通 卷 八, 内 篇, < 模 擬 > 第 二 十 八. 袁 山 松 云, 書 之 爲 難 也 有 五, 煩 而 不 整, 一 難 也. 俗 而 不 典, 二 難 也. 書 不 實 録, 三 難 也. 賞 罰 不 中, 四 難 也. 文 不 勝 質, 五 難 也. 夫 擬 古 而 不 類 此, 乃 難 之 極 者, 何 爲 獨 闕 其 目 乎? 嗚 呼! 自 子 長 已 還, 似 皆 未 覩 斯 義. 後 來 明 達, 其 鑒 之 哉. 1 6) 송혁기(2006), 17세기말 18세기초 산문이론의 전개양상, 조선후기 한문산문 의 이론과 비평, 월인, 2006년. 1 7) 許 筠, < 答 李 生 書 >, 文 部 7, 惺 所 覆 瓿 藁 卷 10, 許 筠 全 書, 아세아문화사, 1980 년, 122면. 文 章 雖 曰 小 技, 無 學 力 無 識 見 無 功 程, 不 可 臻 其 極. 所 臻 雖 有 大 小 高 下, 及 其 妙 則 一 也. 我 東 人 不 博, 故 無 學 力, 不 就 師, 故 無 識 見, 不 溫 習, 故 無 功 程. 無 此 三 者, 而 妄 自 標 榜 以 爲 可 軼 古 人 名 後 世, 吾 不 敢 信 也. 1 8) 許 筠, 위의 글. 265

8 申 承 勳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다면 독단에 빠진 기록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 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공정한 식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五 難 에서 煩 而 不 整 이란 기록이 두서가 없이 번잡하여 쉽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가 파악되지 않음이다. 기록하는 사람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사료 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반영할 경우에 발생하며, 핵심을 찌르는 서술을 할 수 없는 筆 力 의 부재에도 기인한다. 俗 而 不 典 은 표현의 문제이다. 같은 사안을 서술할지라도 법도에 맞는 전아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속된 표현을 동원 한 경우이다. 이는 학식의 고하에 관련된다. 書 不 實 録 은 사실의 은폐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사관의 자질과도 관련되는데, 자신이나 자기 당파의 이해관계 가 얽혔을 경우 저지르기 쉬운 과오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하게 사실을 기 록해야함을 환기시킨다. 賞 罰 不 中 은 褒 貶 의 문제이다. 사관이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기록하는지는 사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대상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이다. 기리는 경우에도 정도의 문제가 있고, 폄하의 경우에도 강도의 문제가 있다. 이 모두를 적절히 해야 함을 말한다. 文 不 勝 質 은 표면적 수식과 내용적 바탕의 문제이다. 이는 사관의 자질로서의 文 質 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는 기록한 일에 대해 적절한 문식이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곧 본질보다 과도한 문식이 가해진 부정적인 경우를 지적한 말이다. 19) 三 長 과 五 難 은 조경이 대 제학으로서 실록을 편수하는 사관을 이끌어야하는 책임을 면하고자 올린 상소 에서 부득이 사퇴할 수밖에 없음을 강변하기 위해 끌어온 말이다. 이것이 중요 한 점은 散 文 論 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자를 비롯한 孔 門 의 인생을 위한 예술정 신은 唐 이전에는 시경 의 계통을 이어받아 발전되었으나 당나라 때부터는 韓 愈 등이 정립한 고문운동의 계보를 이어받아 발전되었다. 20) 진한고문과 당 송고문은 방법론의 차이는 있으나, 文 以 載 道 를 통해 인생과 사회에 대한 일정 한 공헌을 의도했다는 대전제는 동일하다. 쟁점은 방법론의 차이다. 조경과 김 1 9) 신승훈(2010). 龍 洲 趙 絅 散 文 論 一 考, 고전과 해석 제9집, 고전문학한문학연 구학회. 2 0) 徐 復 觀 지음, 權 德 周 외 옮김(1993), 중국예술정신, 동문선, 70면, 발췌인용. 266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9 창협은 방법론이 달랐던 것이다. 조경은 역사서술의 방식을 차용한 산문미학 을 추구한 것이다. 조경이 활동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기는 왜란과 호란의 외환과 明 淸 의 교체에 기인한 국제정세의 혼란으로 총체적 변화를 겪었다. 21) 전후 칠자와 공안파를 비롯한 중국의 문학운동의 전래수용도 이러한 관점에서 수많 은 변화를 증폭하는 도화선이었다. 축적해온 문학적 역량을 비판적으로 검토 하는 계기로서 명의 문학적 동향이 작용하였지만, 당대의 文 學 과 文 學 理 論 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轉 變 의 動 因 은 아니었다. 22) 그래서 조경의 전후칠자에 의 관심과 이해는 조선 문단의 동향 중 하나이다. 문학이론의 변화에는 그에 상응하는 필연적인 동인이 있어야한다.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자극에 기인하는 요인과 내부의 역량 성숙이라는 동인이 그것이다. 23) 조경은 외부의 자극과 성 숙한 내재적 요인을 한 몸에 받으면서 성장한 문인이다. 2. 簡, 變, 活 의 文 藝 美 學 산문작품을 문예미학의 관점에서 논하려면 표현기법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 2 1) 안으로는 외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반성과 자각이 있었고, 사회의 혼란을 안정 시키는 과정에서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도 있었다. 이 시기의 문학이론은 당대의 사회 문화의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조경은 바로 이러한 시 기를 산 인물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明 의 문화 수준으로 조선의 문 화 문물을 유지하는 것은 强 迫 觀 念 에 가까웠다. 文 化 文 物 의 기준으로 認 識 하 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오면 조선의 文 人 學 者 들은 문화의 기준으 로 인식하였던 明 의 쇠퇴와 멸망을 지켜보게 된다. 당대 지식인들의 혼란은 기본 적으로 이러한 국제상황의 변화에 기인하는 면이 있다. 2 2) 다만 이 시기 문학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고의 단서는 明 代 의 문학적 지향에서 영향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특히 文 必 秦 漢 이란 전후칠자의 선 명한 기치는 당대의 산문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문학이론의 변화를 논의한다면, 明 代 전후칠자의 文 學 的 志 向 을 중요한 동인의 하나로 보아 야 한다. 2 3) 신승훈(2004). 16 世 紀 後 半 17 世 紀 前 半 期 文 學 理 論 의 多 邊 化 樣 相,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3 5면. 267

10 申 承 勳 다. 言 語 는 表 現 의 目 的 을 위해 音 節 化 되고 制 限 되어 組 織 化 된 音 聲 으로서 本 質 的 으로 表 現 的 인 것인데, 言 語 의 그러한 表 現 性 은 本 質 的 으로 美 的 事 實 인 表 現 性 과 同 一 한 것이므로, 美 學 과 言 語 學 은 根 本 的 으로 一 致 24)되기 때문이 다. 산문작품에 나타난 표현은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 경향을 갖춘 것이다. 그러므로 표현기법의 분석은 文 藝 美 學 的 접 근에 다름 아니다. 산문작품은 무엇보다 하나의 언어예술이고, 언어예술의 문예미학에 접근하 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분석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허사의 생략이 어느 정도이며, 작품에 나타난 轉 折 이 무엇이며 그 정도는 어떤지, 그 리고 직접화법의 적극적 활용에 대해 고찰한다. 또 그것이 작품의 성향을 어떻 게 결정짓는지를 고찰하기 위해 金 昌 協 의 산문과 대비시킨다. 25) 가. 省 略 - 簡 먼저 볼 조경의 작품은 < 竹 窓 集 跋 >이며, 대비시킬 작품은 김창협의 < 息 菴 集 序 >이다. 두 작가가 先 進 의 文 集 에 써준 序 와 跋 이라는 양식적 공통점이 있 어 對 比 한다. 序 는 산문 문체의 일종으로 敍, 書 錄, 序 略, 引 ( 小 序 의 의미로 서) 등의 異 稱 이 있다. 서의 유래에 대해서는 문헌의 연대 고증의 어려움과 필 자의 불확실함 등의 이유로 통일된 학설이 마련되지 않고 흔히 詩 序 由 來 說 과 公 子 十 翼 由 來 說 로 축약한다. 서가 하나의 문체로 정식으로 출현한 것은 司 馬 遷 의 史 記 太 史 公 自 序, 班 固 의 漢 書 敍 傳, 揚 雄 의 法 言 法 言 序 등으 로 거론된다. 또한 서는 주로 저작물이나 시문학 작품의 앞부분에 자리하여 저 자 소개, 저작 과정 및 저작 의도 저작 내용, 저작 체제, 목차 등에 대해 서술 하거나 논의하며, 간혹 서정성이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두 가지의 특성이 동시 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跋 은 後 序, 後 敍, 題 後, 題 跋, 跋 尾 등으로 불리는 2 4) 白 琪 洙 (1994). 美 學 序 說, 서울대학교 출판부, 46면. 2 5) 아래 각 항의 표제와 문예미학의 대표적 美 를 내세웠지만, 각 항의 분석에서 중 첩됨이 있다. 어느 작품이건 그 작품의 문예미학은 중첩되어 나타나며, 표현방식 은 한 가지의 분석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268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1 데, 발 의 명칭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은 歐 陽 脩 의 集 古 錄 跋 尾 이다. 발은 주로 저작물이나 시문학 작품의 뒤에 위치하며 특성은 거의 차이가 없다. 26) 아 래에서는 산문작품의 표현에 주목하기 위해 원문을 인용하고 번역은 생략한다. 가 不 佞 少, 與 竹 老 阿 咸 鶴 年 氏 游, 聞 竹 老 好 讀 書, 性 也. 父 母 恐 其 生 疾, 禁 之 不 得, 晝 則 渴 飮 飢 食 輒 忘 于 懷, 雖 馨 香 嘉 味 在 前 不 顧, 心 目 唯 在 簡 篇 上, 夜 則 竭 心 力 置 繼 晷, 懸 髻 屋 梁 以 禦 睡, 心 固 奇 之. 나 其 後, 與 今 畿 伯 公, 同 寀 龍 喉, 益 聞 所 不 聞, 亡 論 盛 壯 事, 踰 七 之 后, 恒 誦 二 典 大 誥 等 篇, 史 記 大 者 八 九 傳, 日 課 讀 爲 常 云. 다 余 迺 起 而 歎 曰 : 古 之 業 文 之 士, 穿 木 榻, 服 熊 膽, 此 必 血 氣 方 強 時 事. 今 竹 老 髦 期 之 日, 告 存 不 暇, 暇 於 伊 吾, 嗜 讀 眞 性 也. 求 之 於 古, 亦 未 見 其 倫, 蓋 古 若 今 一 人 哉! 라 其 爲 詩 若 文, 奇 逸 悲 壯, 鄭 許 序 跋 盡 矣, 吾 何 騈 拇 焉. 戊 申 杪 秋, 謹 跋 27). 우리 散 文 史 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漢 代 의 문장을 숭상하며 宋 代 의 문장에 비판적 28) 이었던 竹 窓 姜 籒 (1567 1650)의 문학에 대한 평이다. 그가 죽고 18년 뒤에 문집 竹 窓 集 이 간행된 것이기에 이 글에서 말한 무신년이란 1668년이 다. 이 글은 조경이 강주의 조카 復 泉 姜 學 年 (1585 1647)에게 들었던 傳 言 과 2 6) 김영주(2007), 序 跋 文 의 특징과 전개양상, 한국한문학의 이론 산문, 동방한 문학회, 서울: 보고사, 39 40면. 2 7) 趙 絅, < 竹 窓 集 跋 >, 龍 洲 遺 稿 권12, 韓 國 文 集 叢 刊 90집, 민족문화추진회, 1992 년, 200 201면. 2 8) 金 得 臣, < 竹 窓 集 跋 >, 柏 谷 集 文 集 冊 五, 韓 國 文 集 叢 刊 104집, 1993년, 165면. 大 凡 爲 文 之 道, 有 學 漢 學 宋 者, 而 學 漢 難 學 宋 易, 何 則? 漢 之 文, 古 而 其 學 也 難, 宋 之 文, 俚 而 其 學 也 易. 蓋 世 代 殺 而 氣 數 衰, 故 宋 之 文 體 之 俚, 不 亦 宜 乎? 惟 我 竹 牕 先 生, 知 其 然 也. 於 文 眼 高 心 亢, 竊 欲 絀 宋 學 漢, 見 宋 之 文, 手 撝 之 喙 唾 之, 必 取 漢 之 文 而 專 治 者, 自 少 至 老, 不 爲 惰 窳. 其 文 之 源, 汩 汩 然 湧, 當 其 放 筆 爲 文 也, 懼 其 雜 而 愼 之, 慮 其 弭 而 結 之, 奇 而 奇, 簡 則 簡, 枿 去 死 語, 不 至 蒼 鹵. 其 爲 氣 也 遒, 其 爲 格 也 邵, 旣 得 漢 之 文 體 之 古 而 脫 於 宋 之 文 體 之 俚. 由 是 觀 之, 世 代 雖 降, 極 博 古 文, 盡 其 用 功 則 不 患 體 古 文 之 難, 何 論 學 宋 之 文 哉? 然 則 氣 數 雖 衰, 文 體 之 古, 在 人 之 用 功 之 如 何 爾. 粤 自 麗 代 以 還, 名 卿 雋 哲 之 文 章, 雖 雄 渾 彬 彬, 亦 皆 不 古, 何? 蓋 捨 漢 文 取 宋 文 而 尙 之, 故 學 漢 則 難, 學 宋 則 易 而 然 耶! 先 生 之 詩, 亦 不 用 俗 下 文 字, 務 以 奇 警, 蓋 出 於 翰 墨 之 畦 逕 爾. 次 胤 刑 部 左 侍 郞 某, 囑 余 爲 跋, 余 乃 辭 曰 : 以 鄙 拙 之 文, 何 爲 不 朽 之 托. 侍 郞 公 曰 : 此 非 取 子 之 文. 子 曾 問 字 於 先 君 故 請. 不 敢 辭, 是 爲 跋. 269

12 申 承 勳 그 전언을 들었을 때 자신이 했던 말을 회고하며 쓴 것이다. 그런데 조카인 강 학년이 숙부인 강주보다 3년 먼저 죽었으니, 조경과 강학년의 마지막 대화는 아무리 하한선을 내려 잡아도 1647년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조경이 직 접화법으로 쓴 자신의 말에 죽로는 80세의 연세이니 라는 구절도 있으니 1647 년 즈음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연대고증부터 먼저 하는 이유는 이 작품 의 話 法 과 時 制 가 매우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서는 우선 주변적인 상황의 포착이 긴요할 정도로 이 작품은 문맥의 연결이 파악하기 쉽지 않다. 왜 그런가? 우선 이 작품에는 虛 辭 의 사용이 극히 절제되어 있다. 허사는 통상 品 詞 와 品 詞 또는 句 文 과 句 文 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關 係 詞 와 語 勢 또는 語 氣 를 나타내는 語 氣 詞 로 나눌 수 있다. 관계사는 품사이든 구문이든 그 관계를 나타 내주는 기능을 하기에 문맥을 파악하며 문장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다. 어기 사는 놀람이나 慨 嘆, 희망이나 讚 賞, 의문이나 긍정 등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기 에 문장에서 語 感 [뉘앙스]를 파악하는 데 긴요하다. 요컨대 허사의 사용은 문 맥과 어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이다. 29) 그런데 위의 작품에서 허사로 볼 수 있는 글자는 也, 于, 而 외에는 없다. 그것도 각각 한 번씩만 쓰였다. 之 가 6번 쓰였지만, 踰 七 之 后, 古 之 業 文 之 士 를 제외하면 나머지 3번은 모 두 지시대명사 겸 목적어로서 그것을 에 해당한다. 이는 의도된 行 文 이라고 밖 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의도된 행문이란 무슨 의미인가? 조경이 산문 을 秦 漢 古 文 에 가깝게 쓰려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 진한고문은 조선 문 단에서 明 代 前 後 七 子 수용을 계기로 촉발되었다. 상술한 바처럼 명의 弘 治 嘉 靖 연간에 李 夢 陽 何 景 明 등 前 七 子 와 李 攀 龍 王 世 貞 등 後 七 子 는 종전의 무미건조한 臺 閣 體 에 반발하면서 文 必 秦 漢 의 기치를 걸고 당송을 배격하고 위 진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는다고 표방하면서 일부러 문맥을 쪼개어 어렵고 껄 끄럽게 하였는데, 그 문체는 擬 古 文 古 文 辭 古 文 詞 라 부른다. 그 行 文 은 자 세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자세히 하고 생략할 수 없는 것을 생략하며, 단락 구성 2 9) 洪 寅 杓 (1985), 漢 文 文 法, 신아사, 28면. 270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3 에서 일부러 커다란 轉 折 이 있게 하려고 중간 어구나 접속사를 생략하여 문맥 이 통하지 않게 하였다. 30) 위의 작품에서 話 法 과 時 制 에 유의해야 문맥이 통할 정도로 어렵고 껄끄러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작품이 지 향하는 文 藝 美 學 은 무엇이고,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 轉 折 은 뒤에서 논의 하고 여기서는 주로 省 略 에 집중한다. 아래는 김창협의 < 息 庵 集 序 >이다. ᄀ 國 朝 近 世 文 章, 最 推 谿 谷 澤 堂 爲 作 家. 余 嘗 妄 論 二 氏 之 文, 以 謂 谿 谷 近 於 天 成, 澤 堂 深 於 人 工, 比 之 於 古, 蓋 髣 髴 韓 柳 焉. 二 氏 以 後, 作 者 多 矣. 然 其 能 追 踵 前 軌, 卓 然 名 世 者 亦 少. 最 後 乃 始 得 息 菴 金 公 焉. 公 之 文, 雖 天 成 不 若 谿 谷, 而 人 工 所 造, 殆 可 與 澤 堂 相 埒, 乃 其 瑰 奇 泬 之 致, 鼓 鑄 淘 洗 之 妙, 則 又 獨 擅 其 勝 云. ᄂ 蓋 嘗 謂 我 東 之 文, 其 不 及 中 國 者 有 三. 膚 率 而 不 能 切 深 也, 俚 俗 而 不 能 雅 麗 也, 冗 靡 而 不 能 簡 整 也. 以 故 其 情 理 未 晰, 風 神 未 暢, 而 典 則 無 可 觀. 若 是 者, 豈 盡 其 才 之 罪? 亦 其 所 蓄 積 者 薄, 所 因 襲 者 近, 而 功 力 不 深 至 耳. 公 旣 才 素 高, 於 學 又 甚 博, 而 尤 好 深 湛 之 思, 鑱 畫 之 旨. 自 少 攻 詞 賦, 已 能 一 掃 近 世 陳 腐 熟 爛 之 習, 而 自 刱 新 格, 每 試 輒 驚 其 主 司, 而 一 時 操 觚 之 士, 競 相 慕 效, 以 求 肖 似.ᄃ 及 其 爲 古 文 辭, 上 溯 秦 漢, 下 沿 唐 宋, 以 放 於 皇 明 諸 大 家, 參 互 擬 議, 究 極 其 變, 用 成 一 家 言. 大 抵 本 之 以 意 匠 而 幹 之 以 筋 骨, 締 之 以 材 植 而 傅 之 以 華 藻, 卒 引 之 於 規 矩 繩 墨, 森 如 也. 章 箚, 尤 精 覈 工 篤, 其 指 事 陳 情, 論 利 害 辨 得 失, 能 曲 寫 人 所 不 能 言, 往 往 刺 骨 洞 髓. 而 要 不 失 古 人 氣 格. 詩 律 亦 沈 健 而 麗 絶, 不 作 浮 聲 慢 調. 蓋 其 爲 稿 者 凡 二 十 五 卷, 而 試 求 其 一 篇, 近 於 膚 率 俚 俗 而 冗 靡 者, 無 有 焉. ᄅ 嗚 呼! 公 之 於 文 章, 其 人 工 至 到, 雖 謂 之 奪 天 巧, 可 也. 而 於 以 接 武 谿 澤 也, 其 可 以 無 愧 矣. 然 公 蚤 被 枋 用, 身 總 軍 國 之 重, 鉛 槧 之 業, 太 半 爲 籌 畫 韜 鈐 所 奪, 卒 又 限 以 中 身, 不 得 大 肆 志 於 結 撰, 而 其 所 成 就, 猶 足 以 跨 越 一 世, 焜 耀 後 來, 此 豈 不 尤 難 也 哉?ᄆ 始 公 旣 沒, 嗣 子 都 事 道 淵, 用 鐵 字 印 公 全 稿 若 干 本, 旣 行 於 世 矣. 今 靈 光 守 洪 侯, 卽 公 侯 芭, 謂 公 文 宜 百 世 不 朽, 而 集 無 板 刻, 難 保 於 傳 遠. 甫 上 官, 卽 鳩 工 鋟 榟, 來 問 序 於 余. 余 竊 念 自 公 沒 未 幾, 己 巳 之 禍 作, 都 事 君 以 憂 死, 夫 人 竄 海 島, 室 家 蕩 析, 爲 世 所 悲. 今 雖 世 道 更 化, 幽 枉 畢 伸, 而 公 家 乃 無 一 遺 胤 以 尸 其 後 事, 洪 侯 獨 以 舊 門 生, 能 惓 惓 致 力 於 遺 籍, 以 爲 永 久 圖, 其 義 良 足 感 人. 是 不 可 無 一 語 以 相 其 役. 且 自 以 3 0) 沈 慶 昊 (1998), 한문산문의 미학, 고려대학교 출판부, 16면. 271

14 申 承 勳 平 生 素 慕 公 文, 而 又 嘗 辱 片 言 之 奬, 顧 不 得 一 奉 藝 苑 緖 論, 以 爲 沒 世 恨. 今 而 託 名 卷 端, 以 效 其 區 區 之 私, 實 與 有 幸. 輒 敢 不 辭, 而 爲 之 序 如 此. 若 公 事 業 勳 伐 之 盛, 國 史 自 有 紀, 玆 不 具 論 云. 31) 우선 虛 辭 의 사용을 보자면, 이 작품은 趙 絅 의 < 竹 窓 集 跋 >에 비해 상당히 많다. ᄀ만 놓고 보더라도 之, 以, 於, 焉, 而, 與, 乃 등이 최소 1번 이상에 서 3번까지 쓰이고 있다. 於 의 경우는 焉 이 於 此 의 축약형이기에 4번 쓰인 것이다. 나머지의 단락까지 센다면 < 息 庵 集 序 >의 虛 辭 사용량은 < 竹 窓 集 跋 > 보다 可 謂 폭발적이다. 필요한 虛 辭 를 충분히 활용하여 문맥을 平 順 明 白 하게 함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집중적인 서술과 논의를 가하는 방식이다. 특히 관 계사[ 接 續 詞 ]로 볼 수 있는 虛 辭 의 사용이 빈번하다. 32) 김창협의 경우는 접속 의 구실만 하는 접속사도 많이 활용하지만, 副 詞 의 구실을 겸한 것을 많이 쓰 고 있다. 이 점도 작품에 悠 長 한 미학을 형성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는 당송고문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息 庵 集 序 >는 < 竹 窓 集 跋 >에 비해 편폭이 길다. 물론 여기에는 작가마다 그리고 작품마다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한요소가 있다. 또한 작 품에 담고 있는 사안이나 작품의 창작과 관련한 외부적 상황 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일정하게 포착되는 두 작품 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서술의 방식이다. 즉 <식암집서>는 ᄀ에서 ᄆ까지 오 직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곧 金 錫 冑 의 文 學 이다. ᄀ에서는 金 錫 冑 의 문학적 성취를 張 維 나 李 植 에 견준다. ᄂ은 功 力 의 측면에서 김석주가 일찍부 터 각고의 노력을 했음을 말한다. ᄃ은 김석주가 古 文 辭 를 지음에 古 人 의 氣 格 을 잃지 않았음을 말한다. ᄅ은 문학적인 성취에 부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래 도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음을 칭송한다. ᄆ은 문집의 간행과 관련한 洪 의 헌 3 1) 金 昌 協, < 息 庵 集 序 >, 農 巖 集 권22, 한국문집총간 162집, 민족문화추진회, 1996년, 152 153면. 3 2) 李 家 源 (1987), 漢 文 新 講, 신구문화사, 53면. 이때 單 語 와 單 語, 句 와 句, 文 과 文 을 접속한다든지, 또는 文 을 일으키는 말을 接 續 詞 라 한다. 接 續 詞 에는 다만 접속의 구실만을 하는 것과 副 詞 의 구실을 겸한 것이 있다. 272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5 신과 자신이 序 를 쓰게 된 경위이다. 곧 각 단락마다 그 주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상세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창협 자신이 말한 詳 於 大 體 에 다름 아니다. 김창협은 문장의 기축이 되는 단락과 일화 등을 상세히 하는 반 면 그 이외의 것은 간략하게 함이다. 곧 詳 於 大 體 를 簡 으로 인식하는 것이 다. 33) 앞서 보았듯 <식암집서>에서도 김석주의 문학에 관한 일들은 상세한 반 면 나머지는 모두 생략하거나 매우 간략하게 서술된다. 반면 조경의 <죽창집 발>은 짧은 편폭에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포괄하면서도 허사의 사용을 극도 로 절제하여 다소 껄끄럽다. <식암집서>는 김석주의 문학에 대한 김창협 자신의 평가와 견해가 상당부 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ᄀ에서 余 嘗 妄 論 二 氏 之 文, 以 謂 谿 谷 近 於 天 成, 澤 堂 深 於 人 工, 比 之 於 古, 蓋 髣 髴 韓 柳 焉. 과 公 之 文, 雖 天 成 不 若 谿 谷, 而 人 工 所 造, 殆 可 與 澤 堂 相 埒, 乃 其 瑰 奇 泬 之 致, 鼓 鑄 淘 洗 之 妙, 則 又 獨 擅 其 勝 云. 과 ᄂ ᄃ ᄅ 전체와 ᄆ의 今 雖 世 道 更 化, 幽 枉 畢 伸, 而 公 家 乃 無 一 遺 胤 以 尸 其 後 事, 洪 侯 獨 以 舊 門 生, 能 惓 惓 致 力 於 遺 籍, 以 爲 永 久 圖, 其 義 良 足 感 人. 은 김창협의 논평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대부분은 김창협이 김석주의 문학을 평가 하고 있는 논평인 것이다. 김창협은 <식암집서>를 통해 김석주의 문학적 위상 과 그 성취를 평가하고, 아울러 그의 한계도 분명히 짚고 있다. ᄅ의 然 公 蚤 被 枋 用, 身 總 軍 國 之 重, 鉛 槧 之 業, 太 半 爲 籌 畫 韜 鈐 所 奪, 卒 又 限 以 中 身, 不 得 大 肆 志 於 結 撰, 이 그것이다. 虛 辭 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장한 문체 속에 전체를 하 나로 꿰는 치밀한 논리를 장착하여 김석주의 문학에 관해서는 남김없이 말하 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김창협은 文 藝 美 學 으로서 문체의 悠 長 함과 논리의 緻 密 함을 작품에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죽창집발>은 虛 辭 의 사용을 절제함으로서 문맥이 다소 껄끄럽다. 예컨대 3 3) 金 昌 協, 雜 識 外 篇, 農 巖 集 卷 34, 韓 國 文 集 叢 刊 162, 민족문화추진회, 374면. 古 人 之 簡, 簡 於 篇 法, 明 人 之 簡, 簡 於 句 字. 古 人 之 詳, 詳 於 大 體, 明 人 之 詳, 詳 於 小 事. 故 歐 陽 公 作 王 范 二 文 正 碑, 其 文 不 滿 二 千 言, 而 其 作 相 事 業 與 平 生 大 節, 摸 寫 殆 盡. 弇 州 作 商 販 婦 女 誌 傳, 其 人 瑣 瑣 無 足 記, 而 其 文 動 累 百 千 言, 此 可 見 工 拙 之 辨 也. 273

16 申 承 勳 가의 父 母 恐 其 生 疾, 禁 之 不 得, 은 반드시 앞 문장을 면밀히 살펴야만 姜 鶴 年 이 전한 말을 조경이 옮기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부모 가 姜 籒 의 부모임도 명확해 진다. 곧 竹 老 公 之 정도의 수식어가 있어야 문맥이 평이해질 것이다. 또 心 固 奇 之. 는 문맥을 잘 좇아야 조경이 강주가 학문에 용왕매진했던 일화를 기이하 게 여긴 것으로 알 수 있다.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을 한 문장 안에서 넘나들다 보니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즉 虛 辭 와 語 句 의 과감한 생략을 통해 文 脈 은 簡 澁 해졌으나, 반면 文 意 가 응축되어 緊 張 을 조성한다. 이러한 사례는 조경의 산 문에서 一 般 이다. 序 로서만 몇 가지 예를 든다. < 玄 谷 集 序 >도 이에 해당한다. 번역과 인용은 이 작품의 앞부분이다. 昌 黎 氏 論 文 章 曰, 水 氣 也, 言 浮 物 也. 水 大 而 物 之 浮 者, 大 小 畢 浮. 蘇 長 公 亦 曰, 昌 詩 不 如 昌 其 氣. 不 佞 於 是, 迺 知 文 章 以 氣 爲 主 之 說, 古 今 不 可 易 也. 吾 宗 人 玄 谷 翁, 生 當 隆 萬 盛 際, 稟 氣 固 厚, 才 結 髮, 喜 文 章, 文 非 先 秦 兩 漢 不 讀 也, 詩 非 開 天 大 家 數 不 眼 之 也. 其 所 嚌 胾, 最 深 於 太 史 氏 及 戰 國 弘 辯 之 說, 以 助 其 氣, 以 資 其 筆 勢. 由 是 名 噪 一 國, 人 不 敢 顏 行 抗 其 氣. 34) 특히 吾 宗 人 玄 谷 翁, 生 當 隆 萬 盛 際, 稟 氣 固 厚, 才 結 髮, 喜 文 章, 文 非 先 秦 兩 漢 不 讀 也, 詩 非 開 天 大 家 數 不 眼 之 也. 에서 也, 之 를 제외한 虛 辭 는 없는데, 之 가 開 耀 天 授 연간의 대가들의 시를 의미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也 뿐이다. 또한 句 와 句 사이의 연결에 있어 촉급한 전환이 있어서 轉 折 의 예가 될 것이 다. 더욱이 과 은 내용상으로 긴밀히 연결되지만, 은 조경 자신의 문학 에 대한 견해이고 은 조위한의 문학적 지향이기에 文 意 의 轉 折 이 크다. 이는 字 句 에 있어서 省 略 을 통한 簡 을 추구한 것이며, 轉 折 을 통한 文 意 의 전환이라 는 관점에서 變 의 문예미학을 추구했다할 수 있다. < 鶴 峯 先 生 集 序 >도 마찬가지이다. 3 4) 趙 絅, < 玄 谷 集 序 >, 龍 洲 遺 稿 卷 11,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추진회, 1992, 188면. 274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7 上 之 二 十 年 春, 乏 使. 不 佞 以 貳 价 奉 使 海 外, 路 過 嶺 左, 貣 海 槎 錄 於 金 鶴 峯 先 生 后 孫 所. 柁 樓 上 日 讀 數 篇, 擊 節 愉 快, 不 知 舟 颿 風 上 下 出 沒 於 鯨 濤 鮫 窟 之 中 也. 後 七 年, 金 學 士 孝 徵 氏 手 鶴 峯 全 集 來, 請 不 佞 序 引 甚 勤. 不 佞 於 文 業, 縱 非 其 人, 生 平 慨 然 慕 先 生 之 爲 人, 願 爲 執 鞭 則 有 之, 遂 作 而 稱 曰 : - 下 略 - 35) 는 각각 조정에서 일본에 사신을 보낼 때 조경이 사신의 일행이 되어 내려가다가 김성일의 손자에게 海 槎 錄 을 빌린 일, 배에서 海 槎 錄 을 읽던 기억, 그 7년 뒤 김성일의 문집을 간행할 때 序 를 부탁받아 쓴 일을 서술 하고 있다. 문장 안에서 句 와 句 사이의 의미 맥락에 轉 換 과 進 展 이 클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의미 맥락의 轉 換 과 進 展 은 더욱 크다. 이는 바로 轉 折 을 작품에 빈번히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轉 折 을 통한 文 意 의 변화를 추 구한 것이다. 요컨대 조경이 省 略 의 簡 과 變 을 문예미학으로 선택했다. 轉 折 을 통한 變 의 문예미학은 아래에서 상론한다. 나. 轉 折 - 變 趙 絅 의 산문은 김창협의 경우와는 또 하나 다른 特 長 으로 變 의 美 學 이 있 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趙 絅 의 < 茅 谿 文 先 生 墓 誌 銘 >과 金 昌 協 의 < 六 弟 墓 誌 銘 >을 대비시킨다. < 茅 谿 文 先 生 墓 誌 銘 >은 趙 絅 이 스승인 茅 谿 文 緯 (1555 1632)를 위해 쓴 묘지명이다. < 六 弟 墓 誌 銘 >은 작가가 자신의 막내 동생 澤 齋 金 昌 立 (1666 1683)을 여의고 그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묘지명이 라는 공통된 양식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하였다. 묘지명은 墓 道 文 字 이다. 그래 서 墓 主 의 일생을 총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기 에 記 人 文 學 이란 용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36) 이 두 작품은 친족의 묘지명과 스 승의 묘지명이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양식의 글에 나타난 서사방식 을 통해 조경이 산문작품에서 어떤 미학을 보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5) 趙 絅, < 鶴 峯 先 生 集 序 >, 龍 洲 遺 稿 卷 11,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추진회, 1992, 182면. 3 6) 황의열(2007), 碑 誌 文 의 특징과 변천 양상, 한국한문학의 이론 산문, 동방한 문학회, 서울: 보고사, 189 194면. 275

18 申 承 勳 이번에는 김창협의 < 六 弟 墓 誌 銘 >을 먼저 본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막내 동생 金 昌 立 이 병으로 요절하자 그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형상과 서술 의 조화란 관점에서 늘 高 評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각주의 번역인용은 < 六 弟 墓 誌 銘 >의 부분이다. 吾 弟 昌 立, 安 東 人. 先 君 子 領 議 政 諱 壽 恒 第 六 男 也. 年 十 六, 老 峰 閔 公 鼎 重, 冠 而 字 之 曰 卓 而. 十 七, 西 河 李 公 敏 敍, 歸 以 女. 十 八, 死. 死 後 七 年, 而 有 己 巳 之 禍. 禍 之 日, 先 君 子 顧 語 昌 協 曰 : 而 弟 之 墓, 余 欲 誌 焉 久 矣. 顧 哀 甚 不 能 文, 今 已 矣, 汝 宜 卒 誌 之. 昌 協 旣 涕 泣 受 命 而 哀 益 甚, 愈 不 能 文. 蓋 又 七 年 而 始 克, 敍 而 銘 之 云. 가 君 爲 人 美 晳 俊 朗, 幼 卽 勃 勃 露 鋒 鍔. 十 歲, 隨 先 君 子 南 遷, 已 能 控 一 驢, 獨 馳 千 里. 及 長, 乃 更 折 節 爲 舒 緩, 然 其 意 氣 高 厲, 常 慨 然 有 矯 世 拔 俗 之 志. 나 少 從 諸 兄 學, 則 已 聞 風 雅 源 流, 古 今 聲 律 高 下 之 辨, 知 所 取 舍, 而 其 識 解 透 悟, 所 自 得 者 多 矣. 於 是 悉 棄 去 平 日 狗 馬 博 雜 之 好, 專 用 力 於 文 辭. 旣 壹 以 叔 兄 昌 翕 子 益 爲 師, 而 倡 率 里 中 同 志 五 六 人, 日 夜 游 處, 相 切 劘 爲 事. 盖 自 三 百 篇 楚 辭 文 選 古 樂 府, 以 及 盛 唐 諸 家, 無 不 沈 浸 酣 飫, 以 放 於 歌 詩. 尤 好 太 史 公 書, 每 讀 至 慶 卿 高 漸 離 擊 笻 悲 歌 事, 輒 歔 欷 慷 慨 泣 下, 顧 謂 同 學 者 曰 : 吾 欲 與 若 輩 日 飮 酒, 吟 諷 離 騷, 以 終 吾 年, 足 矣. 盖 其 意, 於 世 俗 富 貴 功 名, 視 之 蔑 如. 間 出 游 庠 序, 屢 捷 課 試 而 亦 不 屑 也. 다 然 君 慈 良 泛 愛, 居 家 孝 謹, 與 人 交 有 信 義, 尤 篤 於 朋 友. 以 故 從 其 游 者, 莫 不 誠 心 愛 慕, 哭 其 死 如 喪 同 氣, 至 有 加 麻 者. 癸 亥 正 月, 君 輒 大 書 于 壁 曰 : 我 年 十 八. 盖 自 勵 之 辭 也, 而 竟 以 是 歲 十 二 月 卄 六 日 死, 人 以 爲 讖. 君 病 時, 傍 人 竊 聽 其 啽 囈 語, 盖 文 字 間 事. 間 忽 喟 然 曰 : 至 高 之 志, 而 不 能 了 其 語, 然 知 其 自 歎 矣. 又 見 父 母 焦 勞, 輒 嗟 吁 隱 痛 曰 : 吾 何 貽 此 憂 也! 其 孝 心 至 死 如 此. 嗚 呼! 以 君 之 才 與 志, 不 幸 短 命, 不 得 有 所 成 就, 斯 誠 終 古 之 恨 矣. 然 以 其 孝 心 之 篤, 則 亦 幸 而 蚤 死, 不 及 見 己 巳 之 禍 也. 悲 夫! 君 爲 詩 歌, 淸 婉 豪 宕, 格 高 而 饒 情 致. 旣 沒, 同 志 胠 其 篋, 得 數 十 篇, 就 子 益 删 定, 因 其 所 嘗 講 習 之 室 而 名 之 曰 澤 齋 稿. 先 輩 諸 公 見 者, 皆 歎 息 以 爲 可 傳. 墓 在 楊 州 栗 北 里, 距 石 室 先 壟 數 里. 先 君 子 之 藏, 在 其 東 數 十 步. 我 金 肇 自 高 麗 太 師 諱 宣 平, 曾 祖 考 諱 尙 憲, 左 議 政 文 正 公 淸 陰 先 生. 祖 考 諱 光 燦, 同 知 中 樞 府 事. 外 祖, 海 州 牧 使 羅 公 星 斗, 安 定 望 族 也. 君 有 一 女 無 子, 子 益 以 其 子 厚 謙, 與 君 爲 後, 今 九 歲 矣. 銘 曰 : 其 死 也, 前 先 君 之 禍. 其 藏 也, 近 先 君 之 宅. 嗟 爾 之 夭, 可 樂 非 戚. 是 頑 然 者, 以 生 爲 毒, 涕 漬 爾 銘, 唯 哀 是 告 37). 276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19 우선 작품전체에서 敍 事 의 분량만으로 보아도 인물의 형상을 敍 事 하고 있는 위 인용문이 이 작품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敍 事 의 內 容 에서 보면 위의 a b c가 김창협이 말한바 大 體 임을 알 수 있다. 大 體 는 상세하게 서술하고 여타의 서술은 간결하게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작 품에서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문에 따르면 김창협이 주로 김창립 의 인간적 면모의 특징을 그리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어려서는 곧잘 불끈하며 성깔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열 살에 선친께서 남쪽으로 고을 살 러 가시는 길을 따라갔는데 이미 나귀 한 마리를 다룰 수 있어서 혼자서 천리 를 달렸다. 는 대목을 통해 김창립이 남에게 의존하거나 지는 것을 싫어하는 性 格 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 형들에게서 배우고부터는 평소에 좋아하던 자질구레한 것들은 버리고 오로지 文 辭 에 힘을 쏟았다는 대목에서는 그가 대단한 집중력을 가졌던 人 物 임을 볼 수 있다. 또 김창립이 司 馬 遷 의 史 記 를 읽다가 < 刺 客 列 傳 >의 高 漸 離 가 荊 軻 를 위 해 秦 始 皇 앞에서 축을 타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한 말을 直 接 話 法 으로 서술한 나는 너희들과 날마다 술을 마시고, < 離 騷 >를 읊조리며 내 생을 마칠 수 있으 면 족하다. 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가 義 俠 心 이 강하고, 氣 象 이 높고 매서웠으며 벗들과 교유함을 좋아하는 인물임을 잘 그려내고 있다. 아울러 병이 위독하게 되어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자신을 걱정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내가 어쩌다 이 런 근심을 끼쳐드리는가! 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昌 立 이 돈독한 효심을 지녔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김창협은 동생 김창립의 인간적 형상을 집중적으로 묘사 하여,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그리고 그의 정신세계는 어떤 것인지를 생 생하게 그려 내었다. 요컨대 당송고문은 篇 法 과 章 法 을 통한 詳 於 大 體 의 추구 를 문예미학으로 형상화하였다. 김창협의 문예미학은 詳 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조경의 < 茅 谿 文 先 生 墓 誌 銘 >를 대비시켜 본다. 3 7) 金 昌 協, < 六 弟 墓 誌 銘 >, 碑 誌, 農 巖 集 卷 34, 韓 國 文 集 叢 刊 162, 민족문화추 진회, 1996년, 245면. 277

20 申 承 勳 1 當 光 海 時, 群 小 騈 集 于 朝, 爲 鬼 爲 蜮, 炫 熿 閃 鑠, 凡 可 以 斁 人 倫 栽 善 類 者, 惟 不 足 日 爲 事, 而 借 助 山 林 聲 勢, 引 以 爲 魁, 則 仁 弘 是 已. 弘 故 嶺 之 陜 人, 環 陜 六 七 邑 所 謂 人 士 者, 咸 景 從 仁 弘, 大 者 竊 顯 仕, 小 者 賭 一 第, 間 必 以 齮 齕 異 己 者, 爲 媚 承 群 小 資. 于 時, 茅 谿 公 棄 官 屛 居 于 娥 之 故 里, 去 仁 弘 處 僅 一 舍, 而 公 於 仁 弘, 舊 也. 其 徒 益 怒, 且 患 公 之 一 朝 與 之 絶 而 不 相 聞 也. 飛 謀 釣 謗, 靡 所 不 至, 因 誣 告 獄 起, 圖 染 公 不 得, 則 又 嗾 臺 諫, 劾 以 謗 訕, 遂 削 仕 版. 人 皆 知 公 之 握 禍 無 日, 而 不 知 公 者, 或 勸 公 脩 舊 好. 公 曰 : 我 生 平 不 識 貴 人 門. 閉 門 日 講 讀 朱 程 書, 時 與 會 心 者 過, 逢 必 劇 論 義 理 邪 正 之 別, 雖 觸 時 諱 無 所 顧. 於 是 四 方 慕 義 之 士, 皆 願 一 識 公 面, 而 公 之 門 下 士 趙 溭, 以 布 衣 抗 疏, 勸 光 海 盡 孝 大 妃, 言 甚 切 直, 遂 下 理 杖 流 絶 島, 公 之 扶 植 綱 常 之 道 益 明. 2 公 諱 緯, 字 某, 茅 谿 其 號 也. 其 先 丹 城 人, 其 上 四 代 祖 粹 恭, 自 丹 移 居 居 昌 縣 龍 山 村, 遂 世 爲 居 昌 人. 考 諱 山 斗, 通 政 大 夫, 自 幼 樹 惇 而 辯 於 文, 且 深 於 禮 家 言, 鄕 里 宗 師 之. 娶 咸 陽 宣 敎 郞 吳 世 平 之 女, 嘉 靖 甲 寅 生 公. 公 六 七 歲, 則 知 讀 書. 九 歲, 能 授 尙 書. 甫 弱 冠, 已 自 成 人, 有 求 道 之 志, 謁 南 冥 曺 先 生 于 德 山, 授 大 易 于 吳 德 溪 士 強 所. 所 與 游, 皆 當 世 聞 人. 及 德 溪 歿, 又 從 寒 岡 鄭 先 生 講 業, 樂 爲 勤 苦, 以 深 造 自 得 爲 期. 3 至 壬 辰, 公 年 三 十 九 歲, 簽 鄕 兵 若 干, 與 義 兵 大 將 金 沔 合, 遏 倭 寇 於 弁 巖 間, 籌 畫 居 多. 其 後 癸 巳, 沔 以 癘 病 卒 于 軍, 公 能 任 後 事, 且 治 其 喪 以 禮, 士 卒 忘 亡. 其 歲 五 月, 母 夫 人 卒, 丁 酉 十 月, 通 政 公 亦 卒. 公 遭 前 後 喪, 咸 處 大 難 大 侵 中, 而 無 一 事 不 自 盡 者, 不 脫 衰 經 終 三 年, 人 以 爲 難. 4 服 除, 築 室 于 茅 谿 里, 敎 授 弟 子 十 餘 年, 戶 外 之 屨 恒 滿. 副 提 學 金 東 岡 宇 顒, 以 經 幄 宿 儒, 望 臨 一 時, 聞 公 之 篤 行, 薦 于 朝. 宰 相 柳 西 厓 成 龍 公, 亦 薦 公 賢 可 堪 字 牧. 甲 辰, 乃 除 童 蒙 敎 官, 未 至 京 師, 大 夫 士 有 子 弟 者, 交 口 而 賀. 旣 至, 鼓 篋 者, 繈 至. 公 先 設 敎 誨 科 條, 動 以 禮 法, 爲 諸 生 率, 一 時 洽 然 化 之. 人 見 童 丱 有 禮 容 者, 不 問 知 某 弟 子. 丁 未, 以 考 滿 例 陞 爲 繕 工 監 主 簿, 冬 遷 司 憲 府 監 察. 戊 申, 宣 廟 昇 遐, 賊 臣 柄 用, 寒 岡 鄭 先 生 坐 言 事 見 逐. 舐 糠 之 漸, 將 及 公 矣. 己 酉, 公 遂 棄 官 而 歸. 於 是 仁 弘 之 黨, 必 欲 中 公 以 密 綱, 而 公 無 少 挫 焉. 5 天 啓 癸 亥 三 月, 今 上 反 正, 收 拾 儁 賢 之 自 守 者. 四 月, 除 公 以 高 靈 縣 監, 公 年 已 七 十 矣. 不 得 已 就 官, 居 數 月, 謝 病 去 官. 朝 之 賢 公 卿, 有 以 公 名 行 稱 說 于 上 前 者, 公 之 門 生 在 朝 者, 咸 願 公 一 至 京 師, 悶 公 之 老 而 止. 辛 未 十 二 月 廿 三 日 壬 辰, 以 病 卒 于 適 寢, 享 年 七 十 八. 臨 逝, 自 正 衣 冠 而 坐, 少 無 變 易 常 節 者, 戒 婦 人 不 得 居 前, 君 子 之 正 終 也. 卜 葬 得 明 年 二 月 庚 寅, 卽 葬 于 居 昌 縣 北 多 發 山 子 坐 午 向 之 原. 未 葬 之 前 一 月, 278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21 公 之 第 二 孤 敬 後 纍 然 喪 服, 以 迺 兄 命 授 狀 于 不 佞 絅 曰 : 敢 以 先 君 子 不 朽 請. 不 佞 謝 非 嫺 於 辭, 而 不 獲 命 則 曰 : 先 先 生, 孝 悌 行 於 家, 忠 信 著 於 鄕, 至 其 爲 己 之 學, 白 首 如 一 日. 刺 見 理 氣 優 入 光 明 之 域, 則 有 座 右 銘, 有 自 省 錄, 奚 待 夫 人 之 一 二 擧? 若 迺 不 在 其 位, 而 處 濁 世 觸 豺 牙, 扶 植 綱 常 而 人 莫 之 知 也, 則 不 知 古 君 子 亦 有 如 公 者 否? 不 佞 惡 得 不 以 是 揚? 公 凡 三 娶, 元 配 星 山 李 氏, 參 奉 德 裕 之 女, 早 卒 無 子. 次 配 密 陽 朴 氏, 處 士 斯 立 之 女, 生 一 男 曰 誠 後, 擧 人, 靳 靳 致 孝, 嗣 其 家 風. 末 配 居 昌 愼 氏, 贈 通 政 希 讓 之 女, 生 二 男 一 女, 曰 敬 後, 曰 忠 後, 皆 好 學. 女 適 士 人 羅. 廁 室 有 子 女 皆 幼. 不 佞 始 以 故 人 稚 子 拜 公, 而 中 以 師 事 公. 不 佞 今 髮 種 種 矣, 未 嘗 見 公 惰 容, 未 嘗 見 公 憂 歎 色, 未 嘗 聞 公 一 語 非 勉 人 爲 學 者, 公 可 謂 篤 實 仁 厚 君 子 者 矣. 銘 曰 : 擧 世 坌 濁, 色 斯 而 擧. 君 子 之 明, 綱 常 隳 地. 手 援 有 力, 哲 人 之 貞, 質 仁 秉 義, 壯 耄 如 一. 爲 學 之 誠, 來 時 去 順. 詔 後 有 語, 百 歲 之 聲 38). 이 작품의 특징은 典 故 가 많아 字 句 가 매우 함축적이란 점과 생략이 많아 의미를 문맥에 맞게 보충하며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1에서 爲 鬼 爲 蜮, 炫 熿 閃 鑠 은 광해조에 조정을 장악한 북인세력을 두고 한 말인데, 모두 함축적 인 비유라서 풀어 설명해야만 하고 그렇게 하면 문장이 길어진다. 또 簽 鄕 兵 若 干 은 풀이하자면 고을의 병사 약간을 모아 그들의 서명을 받고서 의병을 일으 켰다. 인데, 이 句 는 생략된 文 意 가 많아 쉽게 읽히지 않는다. 鼓 篋 者 는 문호를 연 선생이 북을 쳐서 제자를 일깨우고 책 상자를 열어 책을 꺼내 수업을 시작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典 故 를 사용하여 함축을 제고시킨 경우이다. 뜻이 통하 지 않을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전고의 사용과 생략을 통해 緊 縮 한 文 意 를 만들 고 있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이는 先 秦 에 이루어진 고한어의 어법을 그대로 字 句 속에 가져와 모의하는 진한고문의 특징적 부면을 일부 보이는 것이라 하겠 다. 관계사를 비롯한 허사의 사용이 절제되었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앞서 < 竹 窓 集 跋 >에서 확인한바, 이는 조경 산문의 공통적 특색이라 할 만하다. 사실 관계사를 비롯한 虛 辭 는 독자로 하여금 誤 讀 하지 않게 하는 기능 3 8) 趙 絅, < 茅 谿 文 先 生 墓 誌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4,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 추진회, 1992, 250면. 279

22 申 承 勳 이 있다. 39) 따라서 허사의 사용이 절제되면 독자는 자칫 오독할 수도 있게 된 다. 이때 오독에 빠지지 않는 독자라도 자구와 자구 사이 내지 문장과 문장 사 이 또는 단락의 구성에서 의미의 전환이 크게 일어나 문맥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文 意 의 전환이 커서 騰 落 하기 때문이다. 이를 轉 折 이라 한 다. 擬 古 文 [ 秦 漢 古 文 ]에서는 일부러 커다란 轉 折 이 있게 하려고 중간 어구나 접속사[관계사]를 생략하여 문맥이 통하지 않게 하였다. 40) 그러므로 관계사는 의미의 轉 折 이 있음을 나타내고, 休 止 의 여백을 주어 독자에게 悠 長 한 미감을 느끼도록 기능한다. 반면 연결사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한 것은 의도적으로 촉 급한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간결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요컨대 연결 사의 적절한 사용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轉 折 은 문법에서 轉 折 連 詞 를 활용한 문장을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41) 이 항에서 말하는 轉 折 의 의미에는 관계사 또는 連 詞 의 문법적 기능이 포함된다. 다만 전절의 의미를 連 詞 의 문법적 기능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구와 구 내지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의미맥락의 전환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적 극적으로 본다. 1에서 而 비롯한 관계사 내지 連 詞 의 사용한 매우 절제되어 있다. 예로 들 수 있는 문장은 많지만 두 문장만 제시한다면, 弘 故 嶺 之 陜 人, 環 陜 六 七 邑 所 謂 人 士 者, 咸 景 從 仁 弘, 大 者 竊 顯 仕, 小 者 賭 一 第, 間 必 以 齮 齕 異 己 者, 爲 媚 承 群 小 資. 에서 연결사는 하나도 없다. 服 除, 築 室 于 茅 谿 里, 敎 授 弟 子 十 餘 年, 戶 外 之 屨 恒 滿. 副 提 學 金 東 岡 宇 顒, 以 經 幄 宿 儒, 望 臨 一 時, 聞 公 之 篤 行, 薦 于 朝. 宰 相 柳 西 厓 成 龍 公, 亦 薦 公 賢 可 堪 字 牧. 에서도 명확하게 연결사로 볼 3 9) 조종업(1982), 漢 文 通 釋, 서울 : 형설출판사, 110면. 4 0) 심경호(1998), 한문산문의 미학, 고려대학교 출판부, 16면. 4 1) 楊 伯 峻 지음, 윤화중 옮김(1989). 중국문언문법, 서울 : 청년사, 150 152면. 轉 折 連 詞 는 反 轉, 他 轉, 急 轉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反 轉 중에서 전절의 뜻이 강 하지 않은 것은 보통 而, 顧, 抑 등을 쓰며, 전절의 뜻이 비교적 강한 것은 보 통 然, 然 而 등을 쓴다. 但 은 절절의 뜻이 강한 것과 약한 것의 중간 정도이다. 이런 연사들은 주로 구와 구를 연결하는 데 쓰인다. 他 轉 은 A라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B의 말로 이야기를 옮기는 것인데, 至 于, 若 夫 등을 쓴다. 셋째로는 急 轉 이 있는데, 보통 况, 矧 등을 쓴다. 280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23 수 있는 字 는 없다. 이는 조경이 진한고문에서 실사의 사용을 극대화하여 의미 의 함축과 긴장을 준다는 한 特 長 을 여실히 보여주는 實 例 이다. 또 하나, 단락사이의 의미의 맥락이 매우 비약적이다. 특히 1과 234는 시간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1과 2 사이의 맥락의 공백은 34를 읽고 난 뒤에야 채워진다. 이러한 것을 轉 折 이라고 하는데, 정조가 조경의 산 문을 두고 莊 子 를 닮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단락간의 轉 折 이 莊 子 문 체의 한 특징인바, 그것을 조경의 산문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조경 의 산문은 莊 子 의 전절의 변화를 잘 본받아 작품에 구현한 것이다. 5는 문 위가 인조반정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손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서술하 는 부분이다. 문예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1 4에 나타나는 특징이 반복되 기에 번역과 설명은 생략한다. 이러한 사례는 조경의 산문작품 중 墓 道 文 字 에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개별 적 분석은 지면관계로 생략하고 간략히 작품과 특징적인 부분만 소개한다. < 南 冥 曺 先 生 神 道 碑 銘 >의 先 生 嶺 之 三 嘉 人 也. 隱 於 頭 流 山 下, 踐 蹈 矩 矱, 佩 服 仁 義, 必 嚌 胾 準 繩, 學 以 顏 子 爲 準 繩, 志 以 伊 尹 爲 標 的, 陋 巷 之 不 知, 單 瓢 之 不 憂, 千 駟 之 不 顧, 萬 鍾 之 不 受, 囂 囂 自 得, 絶 未 有 舍 所 樂 爲 世 意. 42) 에서 관계사로 볼 수 있는 허사는 也, 之, 以 뿐이다. 이는 의도적으로 행문을 簡 奧 하게 한 사 례이다. 또 < 領 議 政 漢 陰 李 公 神 道 碑 銘 >의 公 生 於 嘉 靖 辛 酉, 生 有 異 質, 沈 毅 醇 謹, 不 喜 嬉 戲. 八 歲 入 學, 刺 口 難 疑, 非 孺 子 爲 者, 未 舞 象, 卓 然 早 成. 楊 蓬 萊 士 彥 携 遊 山 水 間, 有 唱 斯 和, 愈 出 愈 佳, 蓬 萊 嗟 賞 曰 : 子 我 師 也. 公 所 吟 綠 陰 白 煙 等 四 4 2) 趙 絅, < 南 冥 曺 先 生 神 道 碑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8,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 화추진회, 1992, 322면. 吾 道 之 東 久 矣. 本 朝 列 聖 率 先 登 道 岸, 斥 異 端 尊 孔 軌, 以 菁 莪 棫 樸 養 庠 膠, 以 玄 纁 禮 幣 聘 嵒 穴. 至 中 仁 明 三 世, 尤 加 意 斯 術. 於 是 松 都 得 徐 花 潭, 湖 西 得 成 大 谷, 湖 南 得 李 一 齋, 南 冥 先 生 竝 峙 于 嶺 南, 實 拔 乎 其 萃. 先 生 嶺 之 三 嘉 人 也. 隱 於 頭 流 山 下, 踐 蹈 矩 矱, 佩 服 仁 義, 必 嚌 胾 準 繩, 學 以 顏 子 爲 準 繩, 志 以 伊 尹 爲 標 的, 陋 巷 之 不 知, 單 瓢 之 不 憂, 千 駟 之 不 顧, 萬 鍾 之 不 受, 囂 囂 自 得, 絶 未 有 舍 所 樂 爲 世 意. 徵 招 之 禮, 歷 三 聖 不 解 益 勤, 先 生 不 得 已 而 起 赴 闕 下. 上 賜 對 前 殿, 卽 明 廟 時 也. 上 首 問 爲 治 爲 學 之 方, 俱 質 言 理 對, 又 問 三 顧 草 廬 事, 先 生 對 曰 : 圖 復 漢 室, 必 資 英 雄, 故 至 於 三 顧. 上 稱 善, 翌 日 還 山. 281

24 申 承 勳 句, 刻 之 錦 水 溪 石, 至 今 宛 然. 43) 은 虛 辭 가 之 하나 뿐이다. 조경의 산문 중에 가장 편폭이 긴 작품 가운데 하나인 < 愚 伏 鄭 先 生 神 道 碑 銘 >의 崇 禎 庚 午, 愚 伏 堂 鄭 先 生 以 疾 賜 告 歸 鄕, 拜 左 參 贊, 不 赴 朝 已. 壬 申, 據 禮 乞 致 仕 不 報. 明 年 六 月 丁 丑, 卒 于 尙 之 墨 谷 田 舍. 訃 聞, 上 恫 傷, 輟 朝 二 日, 賵 賻 如 禮, 特 贈 議 政 府 左 贊 成. 用 其 年 八 月 甲 申, 卜 竁 于 咸 昌 縣 檢 湖 西 卯 向 之 原, 葬 事 官 庀 焉. 44) 에서 虛 辭 는 焉 이 한번 쓰인 것이 전부이다. 요컨대, 轉 折 을 통해 나타난 조경 산문의 미학 4 3) 趙 絅, < 領 議 政 漢 領 議 政 漢 陰 李 公 神 道 碑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8,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추진회, 1992년, 324면. 故 大 匡 輔 國 崇 祿 大 夫, 議 政 府 領 議 政 兼 領 經 筵 弘 文 館 藝 文 館 春 秋 館 觀 象 監 事 世 子 師, 漢 陰 李 公, 葬 在 楊 根 之 龍 津 江 上. 漢 陽 趙 絅 刻 其 墓 碑 曰 : 昔 我 宣 祖 大 王 平 夷 難 還 舊 都, 以 恢 中 興 之 業, 聽 輿 人 之 誦. 咸 曰 : 姓 李 三 相 輔 之 翼 之, 左 之 右 之, 以 有 今 日. 云. 三 相 卽 李 完 平 李 鼇 城 漢 陰 公 也. 公 於 三 相 中 年 最 少 才 最 雋, 協 心 同 德, 與 俱 上 下, 知 有 國 而 不 知 有 身, 公 實 爲 最. 公 諱 德 馨, 字 明 甫, 其 居 在 漢 山 陰, 故 自 號 漢 陰. 其 先 廣 州 人, 有 諱 集, 以 文 行 致 大 名. 當 恭 愍 世, 賊 僧 旽 惡 而 欲 害 之, 負 其 父 唐, 逃 隱 永 川. 旽 誅, 仕 爲 判 典 校 寺 事, 事 載 麗 史. 與 鄭 圃 隱 相 善, 及 卒, 圃 隱 以 詩 哭, 遁 村 是 也. 入 我 朝, 曰 仁 孫, 曰 克 均, 父 子 爲 相, 李 氏 遂 大 顯. 克 均 被 燕 山 甲 子 禍, 於 公 五 代 祖 也. 諱 世 俊, 府 使 爲 公 高 祖, 諱 守 忠, 贈 吏 部 尙 書 爲 公 曾 祖, 諱 振 慶, 賢 而 蚤 世 贈 貳 公 爲 公 祖 考, 考 諱 民 聖, 知 中 樞 贈 領 議 政. 室 文 化 柳 氏, 縣 令 禮 善 之 女. 公 生 於 嘉 靖 辛 酉, 生 有 異 質, 沈 毅 醇 謹, 不 喜 嬉 戲. 八 歲 入 學, 刺 口 難 疑, 非 孺 子 爲 者, 未 舞 象, 卓 然 早 成. 楊 蓬 萊 士 彥 携 遊 山 水 間, 有 唱 斯 和, 愈 出 愈 佳, 蓬 萊 嗟 賞 曰 : 子 我 師 也. 公 所 吟 綠 陰 白 煙 等 四 句, 刻 之 錦 水 溪 石, 至 今 宛 然. 二 十, 對 策 登 上 第, 由 槐 院 薦 史 苑. 時 外 舅 鵝 溪 公 方 主 中 祕 書, 公 嫌 不 應 講. 宣 廟 將 講 綱 目, 命 選 備 顧 問 才 臣 五 人, 出 御 府 冊 界 之, 公 與 焉, 一 時 榮 之. 4 4) 趙 絅, < 愚 伏 鄭 先 生 神 道 碑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8,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 화추진회, 1992년, 330면. 崇 禎 庚 午, 愚 伏 堂 鄭 先 生 以 疾 賜 告 歸 鄕, 拜 左 參 贊, 不 赴 朝 已. 壬 申, 據 禮 乞 致 仕 不 報. 明 年 六 月 丁 丑, 卒 于 尙 之 墨 谷 田 舍. 訃 聞, 上 恫 傷, 輟 朝 二 日, 賵 賻 如 禮, 特 贈 議 政 府 左 贊 成. 用 其 年 八 月 甲 申, 卜 竁 于 咸 昌 縣 檢 湖 西 卯 向 之 原, 葬 事 官 庀 焉. 上 又 遣 郞, 文 以 祭 之. 粤 廿 一 年 甲 午, 嗣 孫 侍 講 院 咨 議 道 應, 謀 諸 公 門 下 士 若 而 人, 依 令 式 將 樹 碑 于 原, 手 故 副 學 蒼 石 公 之 狀 授 漢 陽 趙 某 曰 : 吾 大 父 始 雖 以 科 目 進, 匪 躬 之 晷, 靡 非 格 致 之 學, 立 朝 五 十 有 餘 年, 雖 處 艱 難 顚 沛 中, 何 嘗 不 以 是 勉 吾 君? 斯 可 謂 有 始 有 卒, 宜 得 直 而 不 華 者 銘 傳 於 後. 顧 與 大 父 竝 世 而 生, 知 大 父 平 生 者, 已 作 陳 人, 無 一 人 在, 唯 執 事 寔 吾 大 父 愼 簡 之 寮. 且 知 大 父 深, 敦 屬 以 顯 刻. 某 對 曰 : 唯 唯 否 否! 某 以 郞 寮 事 公, 覿 德 心 醉 者 有 年. 今 於 公 幽 隧 事, 宜 無 待 子 之 請 之 勤 禮 之 恭. 言 之 不 文, 行 而 不 遠, 夫 子 之 訓 也. 吾 敢 違 之! 某 實 雕 篆 之 不 足, 曷 能 形 容 大 君 子 事 業 文 章, 子 盍 改 圖? 道 應 氏 更 跽 爲 禮, 執 而 不 移, 終 日 無 倦 色. 某 累 辭 不 獲, 而 疾 病 間 之, 歷 歲 于 茲. 282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25 은 變 의 문예미학이다. 다. 引 用 - 活 앞에서 김창협은 인물을 형상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大 體 즉 형상 화되는 인물의 총체적 면모를 貫 徹 하는 한 가지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서술할 것을 주장했음을 보았다. 그 방식은 篇 法 과 章 法 의 치밀한 組 織 곧 구성의 측 면에서의 簡 嚴 을 추구함이었다. 여기서는 그 사례는 생략한다. 다만 김창협 산 문의 이러한 특징은 조경과 대비시켜보면 매우 다른 차원에서의 논의임을 확 인할 수 있다. 즉 두 작가의 문예미학의 지평은 構 成 의 층위와 表 現 의 층위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통해 독자가 感 得 하는 美 學 이 전혀 다른 층위의 것이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게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조경이 유독 빈번하게 활용하는 표현기법의 하나인 직접화 법의 적극적 활용에 주목한다. 직접화법은 간접화법과 함께 문법에서 말하는 인용법이다. 이는 修 辭 學 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는바 어떤 표현적 효 과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여 말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45) 직 접화법은 話 者 의 말을 직접 청중이나 독자가 듣는 방식이므로 문장에서 구사 될 때는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소위 風 神 生 色 이다. 세 작품만 예로 든다. 絅 始 弱 冠, 以 文 爲 贄, 拜 月 汀 先 生 于 新 門 里 第. 時 先 生 以 大 耋 爲 朝 廷 蓍 龜, 緗 篋 之 所 遺 亡, 宗 祝 之 所 醉 心, 咸 質 其 門, 曁 學 士 大 夫 執 經 考 疑 者 麇 至, 先 生 左 右 讎 酢 之 暇, 過 視 韙 絅 曰, 孺 子 可 讀 史 記. 遂 授 以 史 纂 目 錄, 且 開 爲 學 之 方. 雖 絅 之 蓬 心, 固 有 聽 瑩 而 警 焉. 46) 밑줄 친 부분은 윤근수가 조경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계기로 조경은 윤근 수의 문하에서 역사서를 중심으로 문장수업을 한다. 그리고 이때의 영향은 조 4 5) 김욱동(2005).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370면. 4 6) 趙 絅, < 月 汀 先 生 迎 諡 讌 詩 帖 小 序 >, 龍 洲 遺 稿 卷 3,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 추진회, 1992년, 39면. 283

26 申 承 勳 경의 산문론의 기축이 되어 만년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47) 실로 결정적인 한 마디인 것이다. 桐 溪 鄭 公 旣 卒 之 葬 而 喪 之 卒 若 而 年. 嗣 子 前 縣 監 昌 詩, 自 安 陰 西 走 六 百 里, 至 洪 陽 海 上, 手 家 狀 一 卷, 授 漢 陽 趙 絅, 泣 而 言 曰 : 先 人 之 墓 木 拱 矣, 不 肖 蚤 夜 以 思, 斤 斤 自 祗 力 治 牲 繫 石, 敢 以 不 朽 屬 執 事, 惟 執 事 賜 之 銘. 絅 禮 辭 曰 : 惡! 不 佞 惡 敢 當. 子 之 先 君 子 于 癸 丑 抗 疏, 于 丁 丑 蹈 烈, 赫 赫 照 人 耳 目, 況 修 齊 之 學 樹 惇 而 文 者 爲 之 本 哉! 將 太 史 氏 書 諸 筴 不 一 書, 序 庠 塾 俎 豆 之 矣, 傖 父 語 惡 敢 慁 其 間, 子 其 愼 哉! 昌 詩 又 作 而 泣 曰 : 不 肖 之 爲 先 人 道, 惟 在 於 是, 世 且 知 吾 先 人 之 深, 疇 出 執 事 外 而 文 之? 於 是 愴 然, 不 敢 復 辭, 遂 盥 而 按 狀 48). 밑줄 친 는 모두 직접화법으로 서술되었다. 이 작품은 桐 溪 鄭 蘊 (1569 1641)의 神 道 碑 銘 을 부탁하러 온 嗣 子 鄭 昌 詩 와 조경의 문답이다. 이 글을 읽으면 마치 두 사람이 목전에서 대화를 나누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생동 감 있는 표현일 뿐만 아니라 대화체 속에 담긴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의사전 달 방식이 산문의 문면을 통해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직접화법과 인용에 주목하여 작품 한 편을 더 본다. 故 大 匡 輔 國 崇 祿 大 夫, 議 政 府 領 議 政 兼 領 經 筵, 弘 文 館, 藝 文 館, 春 秋 館, 觀 象 監 事, 世 子 師 漢 陰 李 公, 葬 在 楊 根 之 龍 津 江 上. 漢 陽 趙 絅 刻 其 墓 碑 曰 : 昔 我 宣 祖 大 王, 平 夷 難 還 舊 都, 以 恢 中 興 之 業, 聽 輿 人 之 誦, 咸 曰 : 가 姓 李 三 相, 輔 之 翼 之, 左 之 右 之, 以 有 今 日. 云. 三 相 卽 李 完 平 李 鼇 城 漢 陰 公 也. 公 於 三 相 中 年 最 少 才 最 雋, 協 心 同 德, 與 俱 上 下, 知 有 國 而 不 知 有 身, 公 實 爲 最. 公 諱 德 馨, 字 明 甫, 其 居 在 漢 山 陰, 故 自 號 漢 陰. 其 先 廣 州 人, 有 諱 集, 以 文 行 致 大 名. 當 恭 愍 世, 賊 僧 旽 惡 而 欲 害 之, 負 其 父 唐, 逃 隱 永 川. 旽 誅, 仕 爲 判 典 校 寺 事, 事 載 麗 史. 與 鄭 圃 隱 相 善, 及 卒, 圃 隱 以 詩 哭, 遁 村 是 也. 入 我 朝, 曰 仁 孫, 曰 克 均, 父 子 爲 相, 李 氏 遂 大 4 7) 신승훈(2010), 龍 洲 趙 絅 散 文 論 一 考, 고전과 해석 제9집, 고전문학한문학연 구학회, 2010년, 270면. 4 8) 趙 絅, < 桐 溪 鄭 先 生 神 道 碑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9,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 추진회, 1992년, 338면. 284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27 顯. 克 均 被 燕 山 甲 子 禍, 於 公 五 代 祖 也. 諱 世 俊, 府 使, 爲 公 高 祖. 諱 守 忠, 贈 吏 部 尙 書, 爲 公 曾 祖. 諱 振 慶, 賢 而 蚤 世, 贈 貳 公, 爲 公 祖 考. 考 諱 民 聖, 知 中 樞. 贈 領 議 政, 室 文 化 柳 氏, 縣 令 禮 善 之 女. 公 生 於 嘉 靖 辛 酉, 生 有 異 質, 沈 毅 醇 謹, 不 喜 嬉 戲. 八 歲 入 學, 刺 口 難 疑, 非 孺 子 爲 者, 未 舞 象, 卓 然 早 成. 楊 蓬 萊 士 彥 携 遊 山 水 間, 有 唱 斯 和, 愈 出 愈 佳. 蓬 萊 嗟 賞 曰 : 나 子 我 師 也! 公 所 吟 綠 陰 白 煙 等 四 句, 刻 之 錦 水 溪 石, 至 今 宛 然. 二 十, 對 策 登 上 第. 由 槐 院 薦 史 苑, 時 外 舅 鵝 溪 公 方 主 中 祕 書, 公 嫌 不 應 講. 宣 廟 將 講 綱 目, 命 選 備 顧 問 才 臣 五 人, 出 御 府 冊 界 之, 公 與 焉, 一 時 榮 之. 壬 午, 詔 使 王 敬 民 來 游 漢 江 曰 : 다 聞 東 國 李 某 好 人, 得 見 不. 公 以 外 臣 無 私 交 辭, 王 公 書 贈 一 絶, 敍 曰 : 라 聞 君 風 度 出 乎 類. 余 雖 未 獲 交 贄, 贈 此 以 爲 神 交. 云. 俄 拜 弘 文 正 字, 且 賜 暇, 與 白 沙 同 升, 淸 選 之 極. 栗 谷 公 方 握 文 衡 主 是 選, 有 一 宰 夜 抵 栗 谷 所 曰 : 마 兩 李 果 人 望, 公 如 未 諳 意 向 薦 之, 恐 壞 了 時 事. 栗 谷 曰 : 바 薦 人 在 得 人, 胡 論 意 向. 其 人 爭 之 不 得, 夜 深 乃 去. 49) 가는 宣 祖 가 임진왜란 이후에 전란의 극복과 향후 수습에 대한 말을 구하여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했다는 말이다. 이는 조경에게도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옛일이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이 들은 말처럼 옮기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 을 읽을 때 현장의 생동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양사언이 어린 이덕 형의 손을 잡고 산수 유람을 하며 시를 창화하던 때, 이덕형의 詩 才 에 감탄하 여 한 말을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옮기고 있다. 이 역시 생동감 곧 風 神 生 色 이 느껴진다. 다 라는 임오년에 온 중국사신 왕경민이 이덕형을 만나고 싶다 고 만남을 주선해달라며 한 말과 왕경민이 이덕형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이덕형의 명성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역시 조경은 이 말을 들을 수 있지는 않 았기에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이 대목 에서 이덕형의 聲 價 를 왕경민의 입을 통해 듣는 효과를 느끼게 된다. 마는 이 덕형과 이항복이 모두 사가독서에 피선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宰 臣 이 李 珥 에게 항의하는 말이다. 여기에도 조경의 문학적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독자는 그 현장 속에 있게 된다. 바는 이이가 다투려는 재신에게 이치로써 해 4 9) 趙 絅, < 領 議 政 漢 陰 李 公 神 道 碑 銘 幷 序 >, 龍 洲 遺 稿 卷 18,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 족문화추진회, 1992년, 324면. 285

28 申 承 勳 명하는 대목이다. 간결한 말투지만 매우 생동감이 느껴지는 화법으로 이이가 우리 앞에서 이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조경의 산문에서 이러한 직접화법에 의한 표현을 한 사례는 하나하나 거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서 轉 折 을 논하였는데, 대화체 또는 직접화법의 인용 또한 문장마다 화자나 내용이 바뀌는 방식이기 에 문맥의 전환이라는 의미에서 轉 折 의 일례가 된다. 직접화법을 활용한 수사 법 곧 引 用 도 轉 折 과 무관한 것은 아닌 것이다. 여하튼 인용의 수사법을 활용 한 표현의 문예미학에 속할 것이다. 이때 독자로서 느낄 수 있는 審 美 的 感 應 은 生 動 感 이라 할 수 있고, 이는 活 의 美 學 이라 할 수 있다. Ⅲ. 결 론 趙 絅 은 文 必 秦 漢 이란 明 代 前 後 七 子 의 문학적 기치에 공명하고, 그 외부적 자극을 받아들여 內 化 시킬만큼 내재적으로 성숙했던 문학적 토양에서 자란 문 인이었다. 그러므로 조경의 산문작품과 그 시대의 문학이론의 변화를 논의한 다면, 明 代 전후칠자의 文 學 的 志 向 을 중요한 동인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조경은 산문작품에서 관계사를 비롯한 허사의 사용을 절제함으로써 의도적 으로 자구를 간결하게 구성했다. 자구를 간결하게 하면서도 의미는 충분히 전 달되도록 함은 한문산문이 지향하는 대전제인데, 이는 先 秦 의 어법을 모의한 진한고문이 갖는 특장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는 字 와 句 의 생략과 절제를 통한 簡 의 문예미학이다. 이는 김창협의 산문작품에 나타난 詳 於 大 體 의 특징과는 뚜렷이 구별되었다. 또한 조경의 산문작품은 莊 子 의 문장에 보이는 轉 折 의 특징도 여실히 보이고 있다. 이는 조경 자신이 시에서 莊 子 를 논평한 말인 萬 變 奇 에 다름 아니며, 變 의 문예미학이다. 직접화법을 통한 인용법도 의미 맥락의 轉 折 을 추구한 문예미학에 한다. 여기서 독자가 느끼는 審 美 的 感 應 은 生 動 感 이다. 이는 活 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조경은 산문작품에 簡, 286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29 變, 活 의 문예미학을 구현한 진한고문파의 문인이다. 參 考 文 獻 文 集 및 原 典 金 得 臣, < 竹 窓 集 跋 >, 柏 谷 集 文 集 冊 五, 韓 國 文 集 叢 刊 104집, 민족문화추 진회, 1993년( 影 印 ). 金 昌 協, 農 巖 集, 韓 國 文 集 叢 刊 161 162, 민족문화추진회, 1996년( 影 印 ). 趙 絅, 龍 洲 遺 稿, 韓 國 文 集 叢 刊 90, 민족문화추진회, 1992년( 影 印 ). 許 筠, < 答 李 生 書 >, 文 部 7, 惺 所 覆 瓿 藁 卷 10, 許 筠 全 書, 아세아문화사, 1980 년(영인). 劉 知 幾, < 模 擬 > 第 二 十 八, 史 通 卷 八, 内 篇, 文 淵 閣 四 庫 全 書 電 子 版, 迪 志 文 化 公 事. 唐 書 卷 一 百 三 十 二, 列 傳 第 五 十 七, < 劉 吳 韋 蔣 沈 >, 文 淵 閣 四 庫 全 書 電 子 版, 迪 志 文 化 公 事. 論 著 김영주(2007). 序 跋 文 의 특징과 전개양상, 한국한문학의 이론 산문, 동방 한문학회, 서울 보고사. 김욱동(2005). 수사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白 琪 洙 (2000). 美 學,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白 琪 洙 (1994). 美 學 序 說,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볼프강 카이저 저, 김윤섭 역(1999). 언어예술작품론, 서울: 예림기획. 徐 復 觀 지음, 權 德 周 외 옮김(1993). 중국예술정신, 서울: 동문선. 송혁기(2006). 17세기말 18세기초 산문이론의 전개양상, 조선후기 한문 산문의 이론과 비평, 서울: 월인. 신승훈(2004). 16 世 紀 後 半 17 世 紀 前 半 期 文 學 理 論 의 多 邊 化 樣 相, 고 287

30 申 承 勳 려대 박사학위논문. 신승훈(2010). 龍 洲 趙 絅 散 文 論 一 考, 고전과 해석 제9집, 고전문학한문 학연구학회. 심경호(1998). 한문산문의 미학, 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楊 伯 峻 지음, 윤화중 옮김(1989). 중국문언문법, 서울: 청년사. 李 家 源 (1987). 漢 文 新 講, 서울: 신구문화사. 장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2000).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민음사. 정경훈(2004). 龍 洲 趙 絅 文 學 觀 에 대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34집, 한국한문학회. 조종업(1982). 漢 文 通 釋, 서울: 형설출판사. 토마스 먼로, 백기수(2002). 동양미학, 서울: 열화당. 황의열(2007). 碑 誌 文 의 특징과 변천 양상, 한국한문학의 이론 산문, 동 방한문학회, 보고사. 허권수(1996). 龍 洲 趙 絅 과 嶺 南 南 人 과의 교류에 관한 연구, 韓 國 의 經 學 과 漢 文 學 ( 竹 夫 李 篪 衡 敎 授 停 年 退 職 紀 念 論 叢 ), 서울: 태학사. 洪 寅 杓 (1985). 漢 文 文 法, 서울: 신아사. 원고접수일 : 2010. 12. 15. 수정원고접수일 : 2011. 2. 10. 게재확정일 : 2011. 2. 11. 288

龍 洲 趙 絅 散 文 의 美 學 31 A b s tr a c t The A es theti c s o f Pr o s e b y Yo ng- Ju Jo, Kyu ng( 龍 洲 趙 絅 ) - Center i ng a r o u nd the Co m pa r i s o n wi th the Pr o s e b y No ng- A m Ki m, Cha ng- Hyu p( 農 巖 金 昌 協 ) - Shin, Seung-hun (Kyungsung University) Jo, Kyung( 趙 絅 ) sympathized with the literary line of Ming dynasty( 明 代 ) Jeon-Hu-Chil-Ja( 前 後 七 子 ). Therefore he can be said that the prose writer of Jin-Han-Ko-Mun-Pa( 秦 漢 古 文 派 :the school of ancient writing style for Jin-Han). Jin-Han-Ko-Mun-Pa( 秦 漢 古 文 派 ) was one of the literary schools in Cho-Sun( 朝 鮮 ) Dynasty from the la ter 1 6 th c entu r i es to the ea r li er 1 7 th c entur i es. In his prose writing, Jo, Kyung( 趙 絅 ) had an inclination that made the l etter a nd phr a se b e si m pl e, tha t s tr es s ed on the r ul e a nd pattern. Jo, Kyung( 趙 絅 ) controlled the use of expletives like relative pronouns in his prose. And he made the letter and phrase be simple intentionally. This can be called by an aesthetics of Gan ( 簡 :simplicity) that can be gained by ellipsis and controlling the letter and phrase. His aesthetics of Gan( 簡 :simplicity) was very different from the aesthetics of Sang-Eo-Dae-Che( 詳 於 大 體 :detail in whole principal) by Kim, Chang-Hyup( 金 昌 協 ). And in his prose, Jo, Kyung( 趙 絅 ) vividly showed the feature of Jeon-Jeol( 轉 折 :s u d d en c ha nge of s entenc e m eani ng) that wa s a ppea red i n the pros e of Jang-Ja( 莊 子 ). This could correspond to 289

32 申 承 勳 Man-Byun-Gy( 萬 變 奇 ) that he criticized Jang-Ja( 莊 子 ) in his poet. Thi s c an b e c al led b y a n aes theti c s o f B yu n( 變 :c hange). And he used the direct narration positively in his prose. This can remind us of the spirit and liveliness. At reading time, the readers can sympathize with the aesthetic respond of spirit. So this can be c al led b y a n aes theti c s o f Wha l( 活 :s pi r i t). Key Words: Jin-Han-Ko-Mun( 秦 漢 古 文 :the ancient writing style for Jin- Han), Dang-Song-Ko-Mun( 唐 宋 古 文 :the ancient writing style for Dang- Song), ellipsis, Jeon-Jeol( 轉 折 :sudden change of sentence meaning), quotation, Gan( 簡 :simplicity), Byun( 變 :change), Whal( 活 :spirit) 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