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5.11. CO 16-12 북한은 5월 6일부터나흘간평양 4.25문화회관에서조선노동당제7차대회를진행하였다. 김정은은개회사에서이번당대회가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강화발전과사회주의위업의완성을위한투쟁에서새로운이정표를마련하는역사적인계기가될것이라고강조했다. 그런데제7차당대회가 김정은의북한, 김정은의조선노동당 임을대내외에선포하는장이자김정은장기집권의기반을구축하고자한자리였다고의미를둘수있겠지만, 북한이호언장담한 휘황한설계도 는기대에못미쳤고제6차당대회와달리그들만의잔치에머물렀다. 김정은이올해신년사를통해제7차당대회에서 휘황한설계도 가제시될것이라고선언함으로써이번행사에대내외의각별한관심이집중되었다. 그러나김정은의당중앙위사업총화보고를보면, 그들이말하는 휘황한설계도 에는새로운것도희망적인것도찾아보기가힘들다. 지도이념으로김일성김정일주의가, 국가전략으로서경제핵병진노선이재확인되었을뿐이다. 세계의비핵화, 평화협정체결, 자위적수단으로서의핵, 주한미군철수, 조국통일 3대헌장, 연방제통일등은북한의변함없는대외대남노선이다. 경제분야에선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제시했지만경제관리개선조치에대한전향적이고구체적인내용은없고기존에나왔던주장을정리한수준이었다. [06578] 서울특별시서초구반포대로 217 통일연구원 Tel. (02) 2023-8000 l (02) 2023-8037 www.kinu.or.kr
이번당대회에서그동안논란거리였던경제핵병진노선의 선핵이냐선경이냐 의쟁점이정리됐다. 김정은은북한이이미수소탄까지보유한천하무적의군사강국, 주체의우주강국이되었다고강변하면서 책임있는핵보유국 으로서국제사회의의무를성실히이행하겠다고언급했다. 그리고 현시기경제강국건설이총력을기울여야할기본전선 이라고설정했다. 이른바 선핵후경 ( 先核後經 ) 노선이공식화된것이다. 앞으로의관건은김정은이제4차핵실험을치적으로내세우면서 네차례의핵실험이성공적으로진행됨으로써세계적인핵강국의대열에올라섰고미국의핵위협역사에종지부를찍게한승리 였다고주장한부분에대한해석이다. 북한의주장대로, 핵고도화가벌써일정수준에도달했다면향후핵도발가능성은낮아질수도있기때문이다. 한편, 북한은작년말부터 자강력 을강조하고있다. 올해신년사에서도자강력이거론되었고제7차당대회즈음한당중앙위당중앙군사위공동구호에서도 자강력제일주의 가등장하였다. 이른바 고슴도치형 정세관이강화되고있는것이다. 국제제재가강화되고중국의대북압박이지속되는상황에대한반작용이라할수있다. 제7차당대회에서도 북한의역사는자강력으로개척되고승리한역사 라며자강력제일주의를강조하면서, 식량의자급자족과설비원료의국산화를통한경제의자립성과주체성, 대외무역에서일변도극복등을주장하였다. 또한개폐막식에서제6차당대회때의 인터내셔날 대신북한의 애국가 와 높이날려라우리의당기 가연주된것도눈여겨볼만한대목이다. 1980년이후변화된국내외정세를반영하듯, 북한이사회주의적연대성보다는우리식사회주의의독자성에매달리는것으로이해된다. 북한이제7차당대회준비와진행과정에서특히주안점을둔부분은김정은우상화를통한유일영도체계의확립이었다. 김정일시기에비해김정은시기에권력승계과정과상징조작이빠르게압축적으로진행되었다. 후계승계기간이짧고나이가어린김정은은 2012년 4월김일성생일 100돌행사, 2015년 10월당창건 70돌행사등대규모정치행사를통해 수령 으로서의자신의권위를급격히신장시켜왔는데, 이번당대회를통해서그효과를
배가시키고자한것이다. 김정은우상화의종착점은김일성김정일에버금가는 태양 과같은존재가되는것이다. 지난 2월 광명성 4호 발사기록영화에서김일성김정일의태양상과유사한김정은태양상이최초로등장하였다. 이제곧잘북한매체는김정은을 21세기의위대한태양 으로치켜세우고, 김정은강성대국, 김정은조선 등의단어를사용한다. 김정은의당중앙위사업총화보고에대한토론자전원은한결같이김정은에게최대한의경의를표하면서충성을다짐했다. 또한김정은은당위원장직을신설해명실상부한전당의최고지도자로서의권위와위상을확고히하고자하였다. 인격적리더십의부족을제도적리더십으로보완하려는의도다. 당제1비서는당규약상당의최고지도자이었지만기형적이고외발이직책명이었다. 참고로 1949년 6월남북노동당통합시김일성이당위원장에취임하였는데, 당위원장과는별도로당무전반을통괄하는제1비서허가이, 제2비서리승엽, 제3비서김삼룡등이있었다. 김정은의당위원장직취임은당의최고직책이실무집행형에서조직지도형으로바뀐것을의미하는데, 이는정치국 ( 상무위원, ( 후보 ) 위원총28명 ) 의확대와더불어 당 ( 협의체 ) 중시정치 를의미할수도있다. 그러나수령제 ( 김정은권력집중 ) 와당협의체는상호충돌할수밖에없기때문에, 당협의체의실질적작동은지켜봐야할것이다. 김정은은당사업총화에서반관료주의반부패투쟁을강조하면서청년을중심으로대대적인세대교체를단행할것을시사했다. 더구나 4월 23일노동신문에서는 고난의행군, 강행군시기에는혁명적군인정신과강계정신이창조되었다면, 오늘의어려운시기에는백두산영웅청년정신이창조되었다 며청년을당의후비대, 척후대, 익측부대로내세웠다. 그런데이번당대회에서는노장청배합정책을유지하는가운데단계적세대교체를추진하여인적충원에서안정과쇄신을절충하였다. 즉, 이번인사는최상층부의안정화, 상층부의친위화, 중상층부의세대교체등의기조로추진되어김정은장기집권의토대가구축되었을것이다. 특히당중앙위원 ( 후보위원 ) 은 2010년제3차당대표자회와비교하여 70% 이상이신규충원되었다.
원래북한은 1946년 8월 28일부터 31일까지진행된북조선노동당의당대회를제1차당대회라일컬었다. 그런데최근발간된북한월간지 조선 2016년 5월호는제1차당대회를 1945년 10월김일성이조선공산당서북5 도당책임자및열성자대회를열고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의결성을결정한대회로소개하였다. 당창건일과제1차당대회를통합시킴으로써당역사의일관성을제고하고백두혈통의정통성을강조하고자한것이다. 그리고제7차당대회에는결의권대표자 3,467 명과발언권대표자 200명이참가했는데, 이것은제6차당대회의 3,062 명과 158명보다많다. 당대회대표가동일한당원비율로선출되었다면당원이확대된것이고, 그렇지않았더라도핵심당원의수를늘린것으로해석할수있다. 1980년제6차당대회에는 118개국 177개대표단이참가했다. 리셴녠중국부주석, 그리신러시아정치국위원, 세쿠투레기니대통령, 로버트무가베짐바브웨총리등정상급외빈도참석했다. 이번당대회에는정상급외빈은커녕장관급도잘보이지않았다. 제6차와제7차의당대회기간노동신문발간면수 ( 통상 6면 ) 만봐도분위기차이가명확하다. 1980 년에는당대회전후대표단과의회담, 환영대회등으로노동신문의지면이꽉찼다.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8면 1회, 10면 1회, 12면 1회, 16면 2회, 18면 1회, 20면 2회, 24면 2회였다. 2016년에는 5월 7일 8면, 8일 24면, 9일 12면, 10일 8면이었다. 제7차당대회개최결정과정도미스터리다. 제6차당대회는당창건 35주년인 1980년에열렸다. 따라서제7차당대회를개최하려면당창건 70주년인 2015년이더합리적이다. 더구나경제문제가해결된뒤에당대회를개최하라는김일성의유훈을고려하면, 현경제상황은마땅치않다. 작년당창건 70주년행사준비로주민들이탈진한상태이기때문에경제적동원여건이그리좋지않고국제제재가가중되고있는시기이다. 5월초는모내기등농촌동원시기이기도하다. 참고로제4차는 9월, 제5차는 11월, 제6차는 10월에개최되었다. 김정은의즉흥적결정이었거나아니면핵고도화프로그램이당대회개최일정에영향을미쳤을수도있다.
북한의도발에대한국제제재가강화되면서북한은이번당대회를계기로국면전환을시도하고있다. 군사회담등남북대화를제안하는가하면, NPT의무이행을언급하며미국의대북압박을완화하려고하고있다. 북한은남남갈등을촉발시켜한국의대북정책의추진력을약화시키고중국의제재협상병행론을활용하여국제공조를무력화시키려할것이다. 대북정책에대한국민적합의제고와한미한중한미중간정책공조가그어느때보다도긴요하다. 우리정부는한반도상황변화의다양한가능성에대해능동적으로대처할수있는방안을준비해야할것이다. 이글의내용은집필자의개인적견해이며, 통일연구원의공식적견해가아님을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