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남북대화 제1절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추진 제2절 분야별 남북대화 개최 현황 제3절 판문점 남북연락 업무
통도분야 4 회등총 6 차례개최되었다. 한편백두산화산전문가회의 2 회등 서민간차원의남북대화가진행되었으며정부가이를지원하였다. 제5장남북대화 UNIFICATION 제1절진정성있는남북대화추진 WHITE PAPER 제5장남 2010년 3월천안함폭침에이어 2010년 11월연평도포격도발등북한의계속되는도발행위로인해남북대화여건은악화되었다. 그러나정부는대화의문을열어놓고의미있는대화를통해남북간핵심현안문제를해결해나간다는입장하에계기시마다북한에진정성있는자세로대화에호응해나올것을촉구하였다. 특히정부는남북간진정성있는대화를통해남북관계가개선되기위해서는무엇보다도북한의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발에대한책임있는조치와추가도발방지에대한확약, 그리고비핵화에대한진정성이필요하다는점을강조하였다. 그러나북한은우리정부의진정성있는남북대화요구에대해호응하지않고, 오히려 2011년 2월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에서천안함폭침은우리측의 특대형모략극 이라는등기존의억지주장을되풀이하였다. 또한 2011년 6월에는남북비공개접촉을왜곡하여공개하는등남북간의신뢰를근본적으로훼손하는일도있었다. 북한은 2011년 9월이후취해진우리정부의유연화조치에대해서도 대결정책의연속 이라고비난하였다. 이러한북한측의태도로말미암아 2010년하반기부터 2011년까지남북대화는의미있는진전을이루지못했다. 2010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당국간남북회담은군사분야 2회, 인 2010 년하반기에는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발등으로남북대화 여건이매우악화되었음에도불구하고, 제 38 차남북군사실무회담과세차 례의남북적십자실무접촉, 그리고남북적십자회담이개최되었다. 정부의 5.24조치 추진및유엔안보리의장성명채택 (7월 9일 ) 등북한에대한제재국면이본격화되는상황에서북한의국방위대변인성명 (7월 24일 ) 등잇따른위협과대승호나포 (8월 8일 ) 등으로남북관계상황은더욱악화되었다. 남북관계경색국면은미국의카터전대통령의평양방문및곰즈동반귀환 (8월 25일 ~ 27일 ), 대한적십자사의북한신의주수해지역에대한긴급구호물자지원발표 (8월 26일 ) 등으로서서히완화되기시작하였다. 북한은 9월 7일대승호선원및선박을귀환시키고, 9월 10일에는대한적십자사총재에게보내는통지문을통해 추석계기이산가족상봉행사 문제를협의하기위한적십자실무접촉개최를제의하였다. 이후남북간협의를거쳐남북적십자실무접촉이 9월 17일, 9월 24일, 10월 1일세차례개최되었다. 2010년 9월 17일, 9월 24일에개최된적십자실무접촉에서는 추석계기이산가족상봉행사문제에대한협의 를진행하였으나, 상봉규모와장소문제에대한이견으로합의를이루지못하였다. 우리측은 기존보다확대 166 167
통된규모 로이산가족면회소에서의상봉행사를진행할것과이산가족문제 제5장남의근본적해결을위한다양한방안을제시하였다. 그러나북한은전례대 다. 적십자실무접촉의일부성과에도불구하고, 북한의군사도발로더이 로 100명규모로진행하며, 이산가족면회소사용을위해서는금강산관광 상의진전을이루지는못하였다. 지구의재산몰수 동결문제가해결되어야함을강조하였다. 북한측의이 2011년들어북한은남북대화를연이어공세적으로제의해왔다. 2011 러한태도는이산가족상봉을계기로금강산관광을재개하기위한의도 년 1월 5일 정부 정당 단체연합성명 을통해우리당국을포함한정당, 를드러낸것으로볼수있다. 단체들과의폭넓은대화와협상을제의하고, 2011년 1월 8일에는 조국평화 2010년 10월 1일에열린세번째실무접촉에서우리측은이산가족상봉 통일위원회대변인담화 를통해서남북당국간대화를무조건조속히개 행사는인도주의정신에따라다른사안과연계하지말것을재차촉구하 최하자면서적십자회담, 금강산관광재개회담, 개성공업지구회담을개최 였고, 북한도이번상봉행사만큼은아무조건없이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하자고제의하였다. 이어서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북한적십자회중앙위 에서실시한다는데동의하였다. 이에따라남북한은이산가족상봉행사 원회위원장, 명승지종합개발지도총국,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등의명의로 를 10 월 30 일부터 11 월 5 일까지금강산에서진행하고남북적십자회담을 10 월 26 일부터 27 일까지개성에서개최하기로합의하였다. 한편북한은 2010 년 9 월 15 일통지문을통해 9 월 24 일군사실무회담 개최를제의하였다. 이후남북간협의를거쳐제 38 차남북군사실무회담이 9 월 30 일평화의집에서개최되었다. 회담에서우리측은천안함폭침에대 한북한의책임있는조치를강하게촉구하였으나북한이이를거부하고 북한의검열단을수용하라는주장을굽히지않음에따라합의를이루지 못하고회담을종료하였다. 2010 년 10 월 26 일부터 27 일까지진행된적십자회담에서우리측은이산 가족문제의근본적해결방안을구체적으로제시하였다. 이에대해북한 은우리측에쌀 50 만톤과비료 30 만톤을지원해줄것을요청하였다. 또 한상봉정례화를위해서는장소문제가풀려야한다고주장하면서금강 산관광재개와관련된실무회담의조속한개최를촉구하였다. 남북은차 기적십자회담을 11 월 25 일개최하기로하고회담을종료하였다. 그러나차 기적십자회담을이틀앞둔 11 월 23 일에북한이연평도포격도발을일으 킴에따라우리측은적십자회담을개최할수없다는것을북한에통보하였 된통지문을우리측에보내남북당국회담실무접촉, 남북적십자회담, 금 강산관광회담, 개성공단실무회담등의개최날짜와장소를제의하였다. 이러한북한의대화공세에대해정부는 2011 년 1 월 10 일 통일부대변 인논평 을통해우리측입장을다음과같이밝혔다. 우선북한은천안함 폭침, 연평도포격도발등우리국민의희생을초래하고도아무런책임을 인정하지않고일방적으로경제지원과원조를위한회담만제의하고있는 바, 이는국제사회에대한위장평화공세이자우리사회를분열시키기위한 상투적전술의일환이라고지적하였다. 또한남북간진정한대화가이루 어지려면 1 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발에대한책임있는조치및추 가도발방지에대한확약 2 비핵화에대한진정성확인이필요하다는점 을밝히고, 이를위한남북당국간대화를제안하였다. 북한이제안한현 안들에대한논의가이루어지려면, 위두가지문제에대한남북당국간 대화가먼저이루어져야한다는것이우리정부의입장이라는점을강조한 것이다. 이에대해북한은 2011 년 1 월 14 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대변인 기자회 168 169
통견형식을통해진정성이없는것은오히려우리측이라는입장을밝혔다. 제5장남그러면서도북한은 1월 20일인민무력부장명의의통지문을통해 남북고 남북역사학자들의공동대처문제를협의하자고제의하였다. 이무렵북한 위급군사회담 과이를위한예비회담을개최할것을제의하고, 2월 1일에 은카터전미국대통령등으로구성된 디엘더스 (The Elders) 의방북시 (4 는북한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장명의의통지문을통해남북적십자회담 월 26일 ~ 28일 ) 남북회담에대한입장을우리측에전달하는등대화공세 을최대한빨리개최하자고제의하였다. 우리측은남북고위급군사회담의 를재개하기도하였다. 제와예비회담일정을수정제의하고, 남북적십자회담은남북고위급군사회 우리측은백두산화산문제와동해표기문제에대해서는민간차원의 담이후에쌍방이협의하여결정하자는입장을북한측에전달하였다. 대화이고, 남북한협의및공동대처의필요성이크다는점에서긍정적으로 이에따라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이 2011년 2월 8 대응하였다. 이에따라백두산화산전문가회의가 2011년 3월 29일, 4월 12 일부터 9일까지판문점에서개최되었다. 그러나실무회담에서남북은 남 일두차례문산과개성에서개최되었다. 이회의에서양측은 백두산화 북고위급군사회담 수석대표의수준및의제등과관련하여의견차이를 산공동연구학술토론회 를개최하기로합의하였다. 그러나동합의에따 좁히지못했다. 게다가북한은천안함폭침은우리측의 특대형모략극 이 며, 연평도포격도발은우리측이 연평도를도발의근원지 로만들었기때 문에발생했다는억지주장까지하였다. 북한은군사실무회담결렬이후남북관계악화의책임을우리측에전 가하면서한미연합훈련, 민간단체의대북전단살포등을빌미로우리측에 대한위협과비난을지속하였다. 또한 2011 년 2 월 5 일서해해상에서우리 측으로넘어온북한주민 31 명가운데 4 명이귀순의사를밝힌것과관련하 여북한측은북한주민 31 명전원의송환을요구하면서 남북적십자실무접 촉 에서이문제를협의하자고여러차례제의하였다. 이에대하여우리측 은귀순한북한주민의자유의사를공정하고객관적인방법으로확인시켜 줄수있다는입장하에 5 월 4 일남북적십자실무접촉을개최하여북한주 민 4 명의자유의사확인과함께북한지역에억류된우리국민의자유의사 를확인하는문제를협의하자고북한측에제의하였으나, 북한측은반응을 보이지않았다. 한편북한은 2011 년 3 월 17 일에백두산화산활동관련연구사업을공동 으로추진하기위한협의를제의하고, 4 월 27 일에는동해표기와관련하여 라우리측이학술토론회를 5 월 11 일부터 13 일까지개최하자고제의한데 대해북한측의반응이없어학술토론회는무산되었다. 또한북한측이제 의한동해표기공동대처문제협의에대해우리측이 5 월중순에남북역 사학자들간협의를개최하자고제의하였으나, 역시북한측은답신을보 내오지않았다. 북한은우리측의남북대화제의에는호응하지않고 2011 년 5 월들어서 는우리측에대한비난과위협을강화하였다. 5 월 30 일에는 국방위원회대 변인성명 을통해우리측과상대를하지않겠다고하는가하면, 6 월 1 일에 는 국방위원회대변인 기자회견형식의발표문을통해 남북비공개접촉 을 일방적으로왜곡하여공개하였다. 남북비공개접촉왜곡공개에대해우리측은 6 월 1 일 통일부대변인논 평 을통해입장을밝혔다. 논평에서는북한의발표내용이우리의진의 를왜곡한일방적주장으로서일일이대응할필요를느끼지않으며, 북한 의이러한태도는남북관계개선에전혀도움이되지않는다는점에서매 우유감스럽다는점을지적하였다. 아울러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 170 171
통발사건에대해서는북한이책임있는자세를보여야한다는것이우리의 제5장남일관된입장임을분명히밝혔다. 2011년하반기에정부는 9월 19일류우익통일부장관취임을계기로남 북간긴장을완화하고책임있는당국자간안정적인대화채널을구축하 1. 군사분야 기위한여건조성에주력하였다. 이를위해 9월 21일 ~ 24일한국종교인평 화회의방북승인등비정치분야교류협력지원, 11월 22일개성공단출퇴 가. 제38차남북군사실무회담 근도로보수공사착공등개성공단활성화조치시행, 11월 8일세계보건 제38차남북군사실무회담이 2010년 9월 30일판문점우리측지역인 평 기구 (WHO) 를통한대북지원재개결정등인도적지원확대조치등대북 화의집 에서개최되었다 유연화조치를시행하였다. 그러나북한은이러한유연화조치에대해서도 대결정책의연속 등으로비난하면서호응해오지않아남북대화여건은 조성되지못했다. 2010 년 7 월부터 2011 년 12 월까지북한의행태를볼때, 필요에따라한 편으로대화공세를펼치면서도다른한편으로는도발을감행하고우리에 대한위협과비난을지속하는이중성을보여주고있다고평가할수있다. 이에대해우리정부는원칙과일관성을갖고북한의이중적태도에단호 히대처하는한편, 계기시마다북한에게진정성있는대화에호응해나올 것을지속적으로촉구하였다. 제 2 절분야별남북대화개최현황 쌍방대표단명단 구분우리측북한측 수석대표문상균 ( 국방부대령 ) 이선권 ( 조선인민군대좌 ) 대표 정소운 ( 통일부과장 ) 김영철 ( 국방부대령 ) 전창재 ( 조선인민군상좌 ) 홍석일 ( 조선인민군상좌 ) 2010 년 3 월 26 일천안함폭침이후우리측은북한의책임있는조치를 지속적으로요구하였으나, 북한은천안함폭침의조사결과를인정할수 없다며오히려 국방위원회검열단 을파견하여조사하겠다는입장을보였 다. 이러한가운데북한은 2010 년 9 월 15 일통지문을통해 군사적합의이 행과관련한현안문제들을협의 하기위해군사실무회담을 9 월 24 일개최 할것을제의하였다. 우리측은군사실무회담을통해천안함폭침에대한북한의책임을추궁 하고, 책임있는조치를요구한다는입장하에 2010 년 9 월 30 일에군사실무 회담을개최할것을수정제의하였고, 이를북한측이수용함에따라제 38 차남북군사실무회담이 9 월 30 일개최되었다. 172 173
통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우리측은우선천안함폭침이객관적 과학적인 서조사를통해북한측의소행임이명확하게규명되었음을지적하고, 이에대최되었다. 한시인및사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등책임있는조치를조속히취할것을강력히촉구하였다. 또한우리측해역에대한북한측의군사적쌍방대표단명단위협과적대적도발행위, 우리당국에대한비방 중상행위를즉각중단할구분우리측북한측 UNIFICATION 것을요구하였다. 수석대표문상균 ( 국방부대령 ) 이선권 ( 조선인민군대좌 ) WHITE 북한측은우리측민간단체의북한에대한전단살포를중단할것을요정소운 ( 통일부과장 ) 전창재 ( 조선인민군상좌 ) 대표김도균 ( 국방부중령 ) 조철호 ( 조선인민군상좌 ) 구하고우리해군함정들이북한측해상경비계선을침범하고있다고주장 PAPER 제하였다. 또한상기두문제에대해우리측이 어떻게대응하는가에따라남 5장2011년연초부터대화공세를펼쳐왔던북한은 1월 20일통지문을통해북관계의전도가좌우될것 이라고언급하였다. 남우리측이천안함폭침에대한책임있는조치를취할것을촉구한데 대해북한측은우리측의조사결과를인정할수없다고하면서, 국방위원 회검열단파견을수용하라는기존주장을반복하였다. 또한북한측은우 리측이대북심리전및전단살포문제를중단할수있으면서도방치하고 있다고비난하였다. 우리측은북한측이제기하는전단살포문제는그동안 북한측에충분히우리측입장을전달했음을설명하였고, 우리함정들이 북한측의소위해상경비계선을침범하고있다는주장에대해서는우리함 정들이우리해역에서정상적으로활동하고있다는점을강조하였다. 우리 측은천안함폭침에대한북한의책임있는조치를강하게촉구하였으나, 북한측이이를거부하고북한의검열단을수용하라는억지주장을굽히지 않음에따라합의를이루지못하고회담이종료되었다. 나. 제 39 차남북군사실무회담 (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 제 39 차남북군사실무회담 ) 이 2011 년 2 월 8 일부터 9 일까지판문점우리측지역인 평화의집 에서개 천안호사건과연평도포격전에대한견해를밝히고한반도긴장상태를 해소할데대하여 를의제로하는 남북고위급군사회담 개최를제의하면 서, 실무적문제를논의하기위한예비회담을 1 월말에개최할것을제안 하였다. 이에우리측은 2011 년 1 월 26 일답신통지문을통해 천안함폭침과연평 도포격도발에대한책임있는조치및추가도발방지에대한확약 을의 제로하는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을 2 월 11 일개최할 것을수정제의하였다. 이후남북간협의를거쳐제 39 차남북군사실무회담을 2011 년 2 월 8 일 판문점우리측지역인 평화의집 에서개최하기로합의하였다. 당초회담 은 2 월 8 일하루만갖기로하였으나, 협의가길어짐에따라 2 월 9 일까지진 행하였다. 남북고위급군사회담 의제와관련해서우리측은 천안함폭침과연평 도포격에대하여 를제기하였으며, 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발에대 한북한측의책임있는조치와추가도발방지확약이있어야만남북관계 174 175
통가진전될수있다 는점을강조하였다. 북한측은 천안호사건과연평도 제5장남포격전, 쌍방군부사이의상호도발로간주될수있는군사적행동을중 담장에서철수함에따라합의에이르지못하고회담을종료하였다. 지할데대하여 를의제로제기하면서, 천안함과연평도문제만을다루고 자하는것은고위급군사회담을거부하는것과같다 고강변하였다. 이에 대해우리측은 남북고위급군사회담에서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문제 에대해만족할만한결과가도출되면, 북한측이제기한문제를포함한상 호관심사안을얼마든지협의할수있다 는입장을밝혔다. 수석대표수준과관련하여우리측은 국방부장관과인민무력부장혹 은합참의장과총참모장 으로제기하였고, 북한측은 차관급 ( 인민무력부 부부장혹은총참모부부총참모장 ) 으로제기하였다. 우리측은 남북고위급군사회담 의제와수석대표수준에대한우리측 입장을충분히설명하고, 북한이제기하는의제도천안함폭침과연평도 포격도발사건에대해만족할만한결과가나오면얼마든지협의할수있 다는점을강조하였다. 그러나북한측은회담 2 일차오후회의에서우리측 의입장변화가없다고비난하면서, 갑자기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 발에대한북한측입장을밝히고회담장에서일방적으로철수하였다. 북한측은 천안호사건은철저하게우리와무관한사건 이라고강변하 면서 미국의조종하에남한측의대북대결정책을합리화하기위한특대 형모략극 이라고주장하였다. 아울러연평도포격은우리측이 연평도를 도발의근원지로만들었기때문에발생한것 이라고주장하였다. 우리측은 남북고위급군사회담에서북한이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 도발에대해밝히겠다는내용이명백히드러났다 는점을지적하고, 동족 의머리위에포탄을발사해민간인이사망하고막대한재산피해를발생케 해놓고도발이아니라고하는것은어불성설 이라고질타하였다. 쌍방은 남북고위급군사회담 개최를위해이틀동안회담을진행하였으 나, 북한측이천안함폭침과연평도포격도발에대해억지주장을하면서회 2. 인도분야 남북고위급군사회담개최를위한실무회담 (2011 월 2 월 8 일 ~ 9 일 ) 가.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적십자회담 이 2010 년 10 월 26 일부터 27 일까지개성자남산여관 에서진행되었다. 쌍방대표단명단 구분우리측북한측 수석대표김용현 ( 대한적십자사사무총장 ) 최성익 (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부위원장 ) 대표 김의도 ( 대한적십자사실행위원 ) 김성근 ( 대한적십자사과장 ) 박용일 (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 ) 조정철 (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 ) 176 177
통2010 년 10 월 1 일에개최된남북적십자실무접촉의합의에따라개최된 제5장남 남북적십자회담 에서우리측은이산가족문제를근본적으로해결해나가 포격도발사건을일으킴에따라우리측은 남북적십자회담 을개최할수 기위한방안들을구체적으로제시하고, 북한측의호응을촉구하였다. 없다는것을북한측에통보하였다. 우선 2011년 3월부터매월남북각 100가족씩이산가족면회소에서이 산가족상봉을정례적으로실시하자고제의하였다. 또한, 이미상봉한가족 들도다시만날수있도록하고, 나아가이산가족들이원하는시기, 장소 에서상시적으로상봉할수있도록하자고제의하였다. 상봉과함께 2010 년 12월부터는남북각 5,000명씩이산가족들의생사와주소를확인하는 사업을추진하고, 2011년 1월부터는남북각 1,000명씩의이산가족들이편 지를주고받을수있도록서신교환사업을추진할것을제의하였다. 80세 이상고령의이산가족들에게고향을방문할수있는기회를주기위해서 2011 년 4 월부터고향방문사업을시범적으로실시할것도제의하였다. 국 군포로 납북자문제도해결해나가야한다는점을강조하고, 이들의전면 적인생사확인사업을추진할것을제의하였다. 이에대해북한측은이산가족문제해결과함께인도주의적협력사업 을활성화해야한다는명분하에우리측에쌀 50 만톤과비료 30 만톤을 지원해줄것을요청하였다. 또한이산가족상봉정례화를위해서는상봉 장소문제가결정적으로풀려야한다고하면서금강산관광재개와관련된 실무회담이조속히개최되어야한다고주장하였다. 북한측의지원요청에대해서우리측은대규모대북지원은적십자차원 에서결정할수있는문제가아니라당국차원에서검토할사안임을설명 하였다. 또한금강산관광문제는이산가족문제와별개로상봉정례화와 직접연계되어서는안된다는입장을표명하였다. 남북은상호제기한사안들을충분히검토한후차기 남북적십자회담 을 2010 년 11 월 25 일개최하여계속협의해나가기로하고회담을종료하 였다. 그러나차기 남북적십자회담 을이틀앞둔 11 월 23 일북한이연평도 나. 남북적십자실무접촉 남북적십자회담 (2010 년 10 월 26 일 ~ 27 일 ) 남북적십자실무접촉 이 2010 년 9 월 17 일에이어 9 월 24 일과 10 월 1 일, 세차례에걸쳐개성자남산여관에서개최되었다. 쌍방대표단명단 5) 구분우리측북한측 수석대표김의도 ( 대한적십자사실행위원 ) 박용일 (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 ) 대표김성근 ( 대한적십자사과장 ) 박형철 (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위원 ) 5 ) 북한은 9 월 24 일과 10 월 1 일실무접촉시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관련협의를요구하며강용철 ( 아 태평화위참사 ) 과이경진 (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과장 ) 이대표로추가참석함. 178 179
통북한측은 2010 년 9 월 10 일대한적십자사총재에게보내는통지문을통 제5장남해추석을계기로이산가족상봉행사를금강산에서진행하자고하면서이 리측은이산가족면회소는금강산관광과직접관련이없는시설로서본연 문제를협의하기위한적십자실무접촉을빠른시일내에개최하자고제의 의목적에걸맞게면회소에서상봉행사가진행되어야한다는점을재차강 하였다. 이에우리측은 2010년 9월 17일개성에서남북적십자실무접촉을 조하였음에도불구하고, 북한측은입장을변경하지않았다. 갖자고답신통지문을보냈다. 이에북한측이동의함에따라남북적십자실 한편우리측이이산가족문제의근본적해결을위하여이산가족상봉 무접촉이개최되었다. 의정례화를제기하자, 북한측은 2010년 10월중순남북적십자회담을개 2010년 9월 17일에열린실무접촉에서는우선 추석계기이산가족상봉 최하고 이산가족상봉정상화등인도주의사업활성화 문제를협의하자고 행사 문제에대해협의를진행하였다. 쌍방은상봉일정과생사확인의뢰 제의하였다. 양측은추석계기이산가족상봉의장소문제등을협의하기 등사전준비절차에대해의견접근을이루었으나, 상봉규모와장소문제 위한차기접촉을 10월 1일개최하기로하고, 접촉을종료하였다. 에대해서는이견을보였다. 상봉규모와관련우리측은 기존보다확대된 2010년 10월 1일에열린세번째실무접촉에서우리측은이산가족상봉 규모 로실시하자고하였으나, 북한측은전례대로 100 명규모로하자고주 장하였다. 상봉장소와관련해서는우리측은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를제 의하였으나, 북한측은상봉은 금강산지구내에서진행하되, 금강산이산 가족면회소사용은권한밖의사항으로해당기관에서별도로협의해야 할문제 라는입장이었기때문에의견접근을이루지못하였다. 한편우리측은이산가족문제의근본적해결의필요성을강조하고, 이 를위해 2011 년부터매월남북각 100 가족규모의상봉정례화를실현하 고, 국군포로및납북자문제도반드시협의 해결해나갈것을촉구하였 다. 이에대해북한측은상봉정례화는남북관계가풀리고나서좀더큰 회담에서협의할사안이라고주장하였다. 쌍방은이번실무접촉에서합의 되지못한사안들을 9 월 24 일다시논의하기로하고회담을종료하였다. 일주일만에다시열린 2010 년 9 월 24 일실무접촉에서도지난접촉시 이견을보였던상봉장소문제에대한입장차이를좁히지못하였다. 우리 측이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상봉을하는것이당연하다고하였으나, 북한측은이산가족면회소등금강산지구내모든시설이몰수, 동결된만 큼면회소이용을위해서는이문제가해결되어야한다고주장하였다. 우 행사는인도주의정신에따라다른사안과연계하지말것을재차촉구하 였다. 우리측의금강산관광재개문제와관련한원칙적입장을확인한북 한측은이산가족면회소를비롯한금강산관광지구문제를해결하기위한 남북당국간접촉의필요성을재차지적하면서도이번상봉행사만큼은 아무런조건없이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실시한다는데동의하였다. 남북적십자실무접촉 (2010 년 10 월 1 일 ) 이러한협의결과를토대로남북은 추석계기이산가족상봉행사 진행 과차기적십자회담개최내용을담은 남북적십자실무접촉합의서 를채 택하고접촉을마쳤다. 180 181
통합의서요지 제5장남17일, 북한측은우리측에통지문을통해백두산화산과관련한협의를제 1. 이산가족상봉행사를 2010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금강산에서진행 의하였다. 1 상봉규모 : 남과북각각 100명 2 상봉일정 : 10월 30일 ~ 11월 1일북한방문단의재남가족상봉 우리측은백두산화산활동에대한남북간협력필요성에공감하며, 우 11월 3일 ~ 11월 5일남측방문단의재북가족상봉 선 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를 2011년 3월 29일우리측지역인 3 사전절차 : 생사확인의뢰서 (10월 5일 ) 회보서 (10월 18일 ) 최종명단 (10 문산에서가질것을제의하였고, 이를북한측이수용함에따라성사되었다. 월 20일 ) 교환 회의에서우리측은백두산화산활동여부에대한사실관계확인에중 4 상봉장소 : 이산가족면회소, 금강산호텔 5 선발대 : 상봉시작 5일전현지파견 점을두고공동연구에앞서사전 선행연구 의필요성을강조하면서, 백두산 2. 이산가족상봉정례화를포함한인도주의문제들을협의 해결하기위해 10 화산활동실태파악을위한자료교환을제안하였다. 그리고이러한자료교 월 26일부터 27일까지개성에서남북적십자회담을진행 환을바탕으로한선행연구를통해백두산화산공동연구방식등을협의 3. 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 민간차원 ) 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가 2011 년 3 월 29 일문산의남북출입 사무소와 2011 년 4 월 12 일개성자남산여관에서두차례개최되었다. 쌍방대표단명단 구분우리측북한측 수석대표유인창 ( 경북대지질학과교수 ) 윤영근 ( 화산연구소부소장 ) 대표 김기영 ( 강원대지구물리학과교수 ) 이윤수 ( 한국지질자원연구원책임연구원 ) 이강근 ( 서울대지구환경과학부교수 ) 장성엽 ( 화산연구소실장 ) 주광일 ( 조선지진화산협회위원 ) 일본대지진등세계도처에서대규모자연재해가발생하고그피해가 국경을넘어확산되는사례가잦아짐에따라우리나라의유일한활화산인 백두산의폭발가능성에대한국내외관심이높아지던시점인 2011 년 3 월 해나가자는입장을밝혔다. 북한측은백두산화산활동에대한공동연구 의필요성을강조하면서, 전문가간학술토론회를먼저진행하고, 현지에 나가공동으로조사하는방식의공동연구방안을설명하였다. 이회의에서 남북은백두산화산공동연구의필요성에대해공감하고, 차기회의날짜 와장소는협의하여정하기로하고회의를종료하였다. 2011 년 3 월 17 일회의결과에따라우리측은 2011 년 4 월 6 일에 제 2 차 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를 4 월 12 일개성에서개최하자는내용 의통지문을북한측에발송하였고, 이를북한측이수용함에따라제 2 차 회의가 4 월 12 일개성자남산여관에서개최되었다. 이회의에서우리측은백두산화산의현실태파악에중점을두고북 한측에관련자료를요구하였다. 이에대해북한측은화산활동징후와관 련하여예년에비해최근백두산에지진현상등이자주일어나고있다고 언급하며구체적인내용에대해서는학술토론회에서논의할수있을것이 라는입장을피력하였다. 남북은백두산화산공동연구사업을추진해야한다는데인식을같이 182 183
통하고 5 월초평양또는편리한장소에서학술토론회를개최한후 6 월중순 제5장남백두산현지답사를진행하기로하고, 이러한내용을담은 백두산화산공 동연구를위한합의서 를채택하였다. 2010년 3월 26일발생한천안함폭침에대한정부의대북제재조치발 표 ( 5.24조치 ) 이후북한은 5월 25일조평통대변인담화를통해 남북관 백두산화산공동연구를위한합의서 요지 계전면폐쇄 등을선언하고, 그후속조치로 5월 26일적십자회중앙위원회 1. 백두산화산공동연구를위한남북학술토론회를 5월초에평양또는편리 명의통지문을통해 판문점적십자연락사무소업무중지및통신단절 한장소에서개최 을통보하였다. 2. 백두산화산에대한현지답사 6월중순진행 한편북한은 2011년초대화공세를펴면서 1월 10일통지문을통해일 3. 구체적실무절차에대해서는추후협의 방적으로단절하였던판문점남북연락사무소직통전화를열고연락업무 우리측은합의서에따라 2011 년 4 월 28 일에 백두산화산공동연구를 위한남북학술토론회 를 5 월 11 일부터 13 일까지 2 박 3 일일정으로서울또 는평양에서개최하자는내용의통지문을북측에발송하였다. 그러나북 한측이아무런답신을보내오지않음에따라, 남북학술토론회및백두산 현지답사는진행되지못하였다. 제 3 절판문점남북연락업무 를재개할것을제의하였다. 우리측이이를수용함에따라 1 월 12 일부터 판문점남북연락사무소간연락업무가정상적으로운영되었다. 이로써 2010 년 5 월 26 일부터중단되었던판문점남북연락사무소간연락채널이 8 개월여만에복원되었다. 판문점남북연락업무재개이후 2011 년 12 월 31 일까지이루어진남북 간연락업무는직통전화운용 596 회, 남북연락관접촉 14 회, 통지문수 발신 107 건등이다. 제1차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제2차백두산화산관련남북전문가회의 (2011 월 3월 29일 ) (2011 년 4월 12 일 ) 판문점남북연락관접촉 184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