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미사일 정치 의 향방 - 파국으로 치닫는가, 전환의 계기인가? - 조민(통일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1.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북한은 4월 15일 대규모 군 열병( 閱 兵 )식을 펼쳤다. 제3대 세습후계자 김정은( 金 正 恩 )은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라는 구호로 약 20분 간 이어진 연설을 마무리했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태양기가 휘날리는 최후의 승리 를 향해 북한 군 최고사령관은 앞으 로! 라고 진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연설 내내 그의 목소리는 패기 가 없었고, 마지막 진격 명령 제스처는 최고사령관의 풍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세습후계구도를 완료함으로써 김씨 가문의 3대 세습국가가 이어졌다. 김정은은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제1비서 및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추대되 었고, 13일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에서 헌법상 최고권 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을 영원 한 국방위원장 으로 추대하고 김정은이 사실상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함 으로써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김정일 사망 후 12월 30일에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어 군권을 이미 장악했 다. 당시 북한은 이를 김정일 위원장의 10.8 유훈 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4월로 예정되었던 정치행사를 총결하면서 후계자 김정은 이 군-당-정 부문을 모두 장악하여 권력 체계상 유일지도체제가 확립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1 1
되었다. 이로써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공중 폭발한 강성대국 4월 15일이 어떤 날인가? 북한의 시조( 始 祖 ) 김일성의 100회 생일이자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날 로, 손자 김정은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그런데 이틀 전 13일 오전 북한은 동창리 로켓 발사장에서 광명성 3호 인공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한 은하 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그러나 강성대국 선 포를 위한 축포로 아침 일찍 쏘아올린 장거리 로켓이 허망하게 공중 폭발하고 말았다. 오래 동안 총 력을 기울여 개발해온 로켓이 2분 여 만에 우주 궤도 진입은커녕 한반도 영역도 벗어나지 못한 채 공중 폭발해 서해 바다로 추락했다. 야심찬 축포는 한 순간 불꽃놀이로 되었고, 강성대국 자체가 공 중 폭발해 버렸다. 이 참담한 실패로 이 날 주석단은 이미 초상집 분위기로 생기를 잃었고, 군중은 허탈한 심정이었다. 북한은 1998년 8월 22일 김일성 100돌을 맞이하는 2012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해 로 선포하였다. 이후부터 강성대국은 최대의 국가목표였으며 강성대국의 기치아래 전군, 전인민의 희생과 인내를 강 요할 수 있었다. 강성대국은 정치사상, 군사, 경제의 세 측면에서 강조되었다. 정치사상강국은 이미 완성되었고, 경제강국 건설은 지지부진하여 최근 강성국가 로 목소리를 약간 낮추었지만, 군사강국으 로 사회주의 강성국가 의 출범을 선포하려 했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보유국으로 일어서면 군사 강국임을 선언할 수 있다는 타산이었다. 그러나 군사강국은 우리가 믿는 것은 대포나 로켓을 비롯한 그 어떤 무장장비가 아니라 사랑하는 병사들 이라고 하여 장거리 로켓 실패를 인정하면서,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은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 로 정의하였다. 2. 북한 핵 미사일 정치의 20년 북한의 핵과 핵무기의 장거리 투발 수단인 미사일은 한 짝을 이루어 대내외 전략의 핵심 코드로 작 용해왔다. 핵 미사일은 체제보장의 최후 보루로, 대미 전략 카드이자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집약체라 하겠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카드로 대미협상에서 두 측면의 성과를 기대해왔다. 하나는 체제보장을 위한 북미관계 개선과 평화협정을 끌어내는 전략이라면, 다른 하나는 대규모적인 대북지원 카드로 활 용하였다. 따라서 핵과 미사일은 북한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체제보장의 최후보루이자, 도발과 도발 이후 협상으로 미국의 타협적 양보와 대규모 경제적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은 20여 년 동안 동북아 평화와 안보 위기의 핵심으로 부각되어왔으나, 쉽사리 풀리기 어려운 문제였다.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2 2
대포동 1호(광명성 1호) : 김정일 시대 개막 신호탄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로켓을 발사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거리 로켓 발사로 당시 거의 아사 상태에 빠진 북한은 국제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면서 존재를 한껏 과시했다. 김일성 사 후 몇 해 동안 연이은 자연재해로 대량 아사와 수십만 탈북자 사태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 황 속에서 후계자 김정일의 동향은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포동 미사일 한 방으로 김정일 은 세계의 주목 속에서 당당하게 등장했다. 대포동 미사일은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추대와 함께 3년 동안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감하고 대내외적으로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놀랐고, 곧 북 미 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이전에 두 차례 개최된 북 미 미사일 회담(제1차 1996.4 베를린, 제2차 1997.6 뉴욕) 이후, 북한은 일본 열도를 가로 지르는 장거리 로켓인 대포동 1호 발사로 제3차 미사일 협상을 이끌어냈다(1998.10 뉴욕). 이 회담에 서 미국은 미사일 시험발사, 수출, 개발 생산 배치 중지를 요구했고, 북한은 수출 중지 대가로 3년 간 30억 달러 제공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더불어 그즈음 북한은 미국의 금창리 지하 핵시 설 의혹 관련 사찰 대가로 60만 톤 식량 지원을 끌어냈다(1999.3). 그 후 제4차 미사일 회담(1999.3 평양)과, 이후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 조정관의 방북(1999.5), 그 해 9월의 페리보고서 의 권고에 따라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발표하였고, 이에 북한 외무성은 미사일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을 선언하였다. 모라토리엄 속에서 2000년 7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제5차 미사일 회담이 이어졌고, 마 침내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차수의 방미로 북 미 공동 코뮤니케 (US-DPRK Joint Communique 2000.10.12 워싱턴)를 통해 미사일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공동 코뮤니케는 북 미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정은 미사일 문 제의 해결 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평화보장체계로의 전환과 경제적 교류협력에 대한 합의로 미국측에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미사일 카드로 역사적인 북 미 공동 코뮤니케 를 얻어냈고, 올브 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까지 성사시켜 은둔의 왕국 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성공적으 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 미 미사일 협상은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거부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 책으로 아무런 진전을 볼 수 없었다. 그 후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을 이용한 비밀 핵프로그램 추진 시인 문제로 제네바 기본합의 는 깨졌고, 제2차 북핵 위기가 돌출함으로써 북 미 갈 등은 미사일 문제에서 다시 핵프로그램 문제로 바꿔졌다. 북한의 돌파전략 :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10월 제1차 핵실험 2006년 7월 5일(미국 시간 4일)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새벽 3시 32분 부터 오후 5시 22분까지 스커드, 노동, 대포동 2호, 총 7기의 미사일을 쏘았다. 당시 북한은 2005년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3 3
6자회담의 9 19 공동성명 의 도출에도 불구하고 곧 이은 대북 금융제재와 인권 문제 제기 등으로 인 해 대북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양자 대화 채널을 줄곧 거부해왔다. 미사일 발사 준비 시위를 통한 북한의 강력한 대화요구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 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의 행동을 쇼 비즈니스 (show business)로 보면서 국제사회의 여론몰이 를 통한 강경 언술로 일관해왔다. 이에 북한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충격적인 카드로 미 사일 발사를 감행하여 미국의 금융제재 국면을 뚫는 이른바 돌파전략 으로 맞대응했다. 미사일 발사 열흘 만에 북한은 예상치 못한 강력한 후폭풍을 맞았다. 미사일 발사의 무리한 강행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1695 (2006.7.15)가 통과되어 스스로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 재국면을 자초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대북제재의 추가조치와 확산방지구상(PSI)의 추진으로 대북 압력 수위를 한층 높였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술적 성과를 거뒀 으나 국제적으로는 광범위한 대북강경여론을 확대시키는 전략적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북한은 대북 압력과 제제에 대한 대반전을 시도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초유의 지하 핵실험 (풍계리)을 단행하자 국제사회는 또 한 번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 제재 압력 에 자위적 차원으로 핵실험 을 한다고 밝혔지만, 곧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 1718 (10.14)을 만장일치 로 채택하였다. 미국은 지하 핵실험을 공식 확인하면서 핵 폭발력은 1kt 미만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기선제압 전략 : 광명성 2호 발사(2009.4.5), 5월 제2차 핵실험 2009년 벽두 북한은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북 미 대화 개최에 대비하여 미리 핵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을 선언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1.13)를 통해 우리가 9 19 공동성명에 동의 한 것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 이 아니라 바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 라는 원칙적 입장에서 출 발한 것 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핵무기 없는 세계 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북한과 이란에게 직접 대화 를 강조해온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기선 제압 을 가하기 위한 입 장 표명이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지속적, 직접적인 외교(sustained, direct diplomacy) 를 밝혀왔고, 북한은 이에 커다란 기대를 품었을 것이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4월 5일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 를 연설하고 있던 시간에 장거리 로켓 광명성 2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 책 진용이 채 갖추어지지도 못한 상태에서 장거리 로켓 발사로 미국 새 행정부가 북한을 최우선적으 로 대접해줄 것을 강요하였고, 로켓 발사에 미국은 곧 직접 대화 로 부응할 것으로 보았다. 이를테면 로켓 발사는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려는 대미 초청장 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얻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과 함께 오바마 행정부의 분노와 배신감 속에서 대화는커녕 대북 불신감만 키웠다. 북한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5월 25일 마침내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여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4 4
의 긴장 수위를 바짝 높였다. 두 번째 핵실험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인 (de facto) 핵보유국 위상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 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핵실험으로 또 다시 유엔 안보리의 가장 강력한 규탄 표명 속에서 매우 포괄 적인 대북제재 결의안 1874 (2009.6.12)가 채택되었다. 실패한 북한의 굳히기 전략 : 김정은 시대 개막의 축포, 광명성 3호 2012년 4월 13일 쏘아올린 장거리 미사일(광명성 3호) 발사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더욱이 김일성 100회 생일 잔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 가운데 CNN, BBC, NHK 등 전 세계의 유수 방송과 언론 인들을 초청하여 축포의 위용을 과시하려 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우주 로켓 발사 실패는 우리 한국의 나로 호 발사 실패에서 볼 수 있듯이 여타 국가에서도 가끔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나, 북 한의 경우는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광명성 3호는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성공 했어야 했다. 북한은 선군노선을 토대로 무력강화와 경제재건을 추구해왔다. 따라서 대축전 행사의 피날레인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대내결속과 더불어 군사강국의 국제적 위상을 확고히 하려는 굳히기 전략 은 크게 차질을 빚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금번의 참담한 실패로 1998년 이래 지속되어온 미사 일 정치 는 파국의 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는 기술적인 문제 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북한체제 시스템 자 체의 실패 즉, 북한 체제의 명운을 건 사활적인 국가전략 자체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은 북 한체제의 구조적인 오작동 또는 내부 시스템의 심각한 균열 상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는 정책 목 표 수행을 위한 강압적 지령과 공포 분위기 그리고 그에 따른 관행화된 과장 보고와 책임 회피 방식 으로는 더 이상 체제의 정상적인 작동이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북한 체제 시스템은 이미 정상적인 작동을 멈추었지만 이번 실패와 같은 대형 사고를 통해 시스템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 나게 되었다. 광명성 1호 발사로 김정일 시대 개막을 선포했던 것처럼 광명성 3호 발사는 김정은 시대 개막의 선 포식으로 준비되었다. 이런 점에서 장거리 미사일의 실패는 대내외적 차원에서 이제 막 출범한 김정 은 체제에 커다란 충격과 손상을 초래한 심각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한이 총 력을 기울여 올인 해 온 대미전략과 대내결속의 총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거리 미사일 실패는 대 내외 측면에서 엄청난 후과를 낳게 된다. 우선 대외 차원에서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 서 향후 대미 협상력의 추동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와 함께 대내 차원에서의 문제 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김정은 이외의 대안 부재 속에서 김정은을 구심으로 하는 동심원적 권력구 조를 구축한 통치 엘리트층 내부의 젊은 후계자에 대한 회의와 본능적인 의구심이 조성될 수 있는 순간이며, 여기에다 점점 통제하기 힘든 대중적 체제이완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방침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루어진 2 29 합 의 가 주목된다. 북한은 2 29 합의 이후 곧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선언(3.16)하여 합의를 파기했다는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5 5
비난을 받게 된다. 2 29 합의 는 북한이 미국의 24만 톤의 영양식품 제공에 대해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농축활동 임시 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를 허용한다 는 내 용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아닌 실용위성 발사라고 주장하면서 2 29 합의 와 위성 발사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비록 위성 발사라고 하더라도 북한은 추가 핵실험이 나 탄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를 금지한다 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Resolution 1874)을 위반한 것은 분명했다. 이에 유엔 안보리는 신속하고 단호한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4.16). 김정일의 유훈 통치, 매뉴얼에 없는 실패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한 데에는 치밀한 전략적 타산이 엿보인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도전 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은 지난 10년 간 중동의 수렁에 빠져 엄청난 전비를 쏟아부었다. 여기에다 이미 GDP를 상회하는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로 국방예산의 감축 이 불가피해졌다. 올 초 펜타곤은 신국방전략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ce, 2012.1.5)을 제시했는데, 이는 군 규모 축소에다 2개 전장에서의 승리 전 략의 포기를 함축한 내용이었다. 즉, 중동과 동북아 지역에서 중대한 안보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미국의 전략 상황은 매우 어려운 국면에 빠지게 된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바라는 입장이라면 자신들의 핵 미사일 전략에 별 수 없이 타협적 태도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 했을 수 있다. 그와 함께 재선을 바라는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 2 29 합의 는 안보 측면의 외교적 성과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진전을 위해 북한의 실용위성 발사 주장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여겼을 수 도 있다. 이에 실용위성 발사임을 강변하기 위해 세계 언론을 공연장에 초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 국 조야에서 오히려 오바마 행정부의 성급한 협상 태도를 비판하는 분위기만 고조되었다. 오바마 대 통령은 마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서울 방문 시 한국외국어대학 강연에서(3.26) 북한의 도발 과 핵무기 개발이 북한이 추구하는 안보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고 경고하면서, 도발에 대한 보상 은 없으며,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불응으로 당장 24만 톤의 식량을 포기하더라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통해 추후 그것의 열배 백배의 대가를 얻어낼 수 있다 는 타산이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준에 근접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제3차 핵실험 감행까지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투발 수단인 ICBM 역량이 확인될 경우 미국은 결국 협상 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후계자 김정은은 수령의 위용을 한껏 과시하면서 대내 결속을 굳건히 다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에 당당히 데뷔했던 김정일의 리더 십을 재현할 수 있다. 따라서 당분간 대북압박과 제재를 견뎌내면 당장 우라늄농축에 위협을 느끼는 미국은 대화와 협상의 손을 내밀 것이라는 타산이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정권교체기의 절호의 기회에 비타협적인 마이 웨이 노선을 강행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은 대내 외적 상황 변화와 상관없이 고수되는 전략적 원칙으로 볼 수 있다.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6 6
3. 김정은 정권 어디로 가는가? 4월 북한의 모든 정치행사는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수립해 놓은 대내외 정책을 그대로 따르는 과 정으로 이해된다. 김정일 위원장 사후 지금까지 후계자의 권력구조 구축과 그에 따른 인사 문제까지 모두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 통치 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은 미사일과 핵 카드 활용으 로 체제보장과 함께, 국제제재를 풀고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유훈에 충실 히 따른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유훈은 여기까지다. 대내외전략에 대한 유훈의 매뉴얼에 따랐지 만 안타깝게도 장거리 미사일 실패 상황에 대한 대비책 매뉴얼은 없다. 미사일 발사가 성공했다면 당 연히 다음 단계의 핵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발사 실패는 조금도 예상치 못한 문제였고, 그 결과 다음 단계의 수순은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미사일 재발사 또는 3차 핵실험 감행할까? 북한은 지금까지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핵실험 단행 의 패턴을 보여 왔다. 그렇다면 금번 실패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단행하는 패턴이 재현될 수 있을까? 지금 이에 대한 단정을 내리기는 무척 힘들 다. 무엇보다 우선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금번 발사 실험에서 보듯 북한의 기술적인 진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긴 셈이다. 기술 개량의 한계는 과거 주로 일본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도입해왔던 미사일 부품과 장비를 장기간의 제재 상황에서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려운 사정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추가 발사를 감행할 수 있겠으 나 성공 보장 문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여기에다 핵실험 감행도 딜레마적 상황이다. 핵실험으로 충 분한 전략적 효과를 얻지 못한 채 자칫 핵분열 물질만 소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핵탄두를 탑재 한 장거리 로켓 능력의 과시 없이 미국의 전략적 양보를 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확산 즉, 핵물질의 유출 문제는 매우 우려되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2 29 합의 가 깨짐으로써 북한이 약속한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농축활동 임시중단 조치는 당연 히 해제된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우라늄 농축활동을 풀가동하여 미국의 핵 비확산 원칙에 강력히 도 전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한편 북한은 미사일 실패로 공화국의 존엄 과 위상이 크게 훼손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획책하여 한반도 긴장을 조성할 필요성도 한층 높아졌다. 북한 지도부가 상황 오판 속에서 자 제력을 잃고 무모한 행동을 선택하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의 도발에는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신중하고 절제된 언행을 통해 북한이 과도한 위기의식을 느 끼지 않고 스스로 자기점검의 시간을 갖도록 한반도 주변 분위기를 안정시켜 나가야 한다.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7 7
김정은 정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금번에 예상치 못한 장거리 로켓 실패로 강성국가 진입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북한의 새로 출범한 김정은 정권 앞에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북한이 선군노선 의 기치아래 또다시 미 사일 핵 정치 를 추구하여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속에 기회의 창 을 외면하는 길로서, 결국 파국으 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 그와 다른 길도 있다. 북한 새 정권이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 국 건설에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노선을 택한다면 북한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북한은 핵 미 사일 카드로 파국적 상황을 초래하느냐, 그렇잖으면 새 정권이 새 시대의 전환점을 마련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섰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분명하다. 영원한 국방위원장 유훈의 지침 과 정책 방향은 금번 4월 정치행사까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이제부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이자 국방 위원회 제1위원장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해야 한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단순히 김일성 주석의 아우라 (Aura)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 이 풀어주지 못했던 조선 인민의 이밥에 고깃국 소원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 길이 최 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통일연구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 (142-728) Tel. 02)900-4300 / 901-2605 www.kinu.or.kr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