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출 문 대법원장 귀하 출합니다. 본 보고서를 가사재판의 회고와 전망 의 최종 연구보고서로 제 2008년 10월 17일 연구책임자: 윤진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참여연구원: 김상용(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김원태(충북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이유정(인하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 1 -
家 事 裁 判 의 回 顧 와 展 望 第 1 章 序 論 第 2 章 家 事 裁 判 의 回 顧 第 1 節 實 體 法 의 變 化 3 1. 光 復 후 民 法 施 行 까지 3 2. 民 法 典 의 制 定 4 3. 民 法 의 改 正 5 가. 1977년의 개정 5 나. 1990년의 개정 6 다. 2002년의 개정 7 라. 2005년의 개정 7 마. 2007년의 개정 8 第 2 節 節 次 法 의 變 化 9 1. 家 事 審 判 法 의 制 定 9 2. 家 事 訴 訟 法 의 誕 生 10 第 3 節 家 庭 法 院 制 度 11 1. 家 庭 法 院 創 設 以 前 11 2. 家 庭 法 院 의 創 設 12 3. 家 庭 法 院 의 變 遷 13 가. 업무의 변천 13 나. 조직의 변천 13 4. 家 庭 支 院 의 設 置 14 第 4 節 家 事 調 停 制 度 와 家 事 調 査 官 制 度 15 1. 家 事 調 停 制 度 15 가. 가사조정위원회의 설치 15 나. 가사조정제도의 변화 15 다. 가사조정위원회의 변화 16 2. 家 事 調 査 官 制 度 17 가. 가사조사관 제도의 시행 17 나. 가사조사관 제도의 변화 17 다. 가사조사관의 변화 17-2 -
第 5 節 家 事 關 聯 判 例 의 動 向 19 1. 實 體 法 19 가. 관습법에 관한 판례 19 (1) 개정 조선민사령에 의한 婿 養 子 및 異 姓 養 子 의 허용 여부 19 (2) 상속회복청구권의 소멸시효 20 나. 민법 시행 후의 판례 21 (1) 異 姓 同 腹 의 兄 弟 姉 妹 가 親 族 에 포함되는가 21 (2) 戶 主 制 의 違 憲 性 22 (3) 父 姓 主 義 의 違 憲 性 23 (4) 同 姓 同 本 禁 婚 의 違 憲 性 24 (5) 假 裝 婚 姻 과 假 裝 離 婚 의 효력 24 (6) 有 責 配 偶 者 의 離 婚 請 求 25 (7) 財 産 分 割 26 (8) 重 婚 的 事 實 婚 27 (9) 親 生 推 定 의 範 圍 27 (10) 親 生 子 出 生 申 告 에 의한 入 養 28 (11) 利 害 相 反 行 爲 의 범위 29 (12) 親 權 喪 失 의 事 由 30 (13) 過 去 扶 養 料 의 求 償 請 求 31 (14) 相 續 缺 格 32 (15) 代 襲 相 續 32 (16) 相 續 回 復 請 求 權 의 除 斥 期 間 33 (17) 法 定 單 純 承 認 規 定 의 違 憲 性 34 (18) 公 正 證 書 遺 言 의 方 式 35 2. 節 次 法 36 가. 가사소송 일반 36 (1) 가사소송법에 규정되지 아니한 유형의 신분관계존부확인소송의 허용 여부 36 (2) 가류 가사소송사건에 대한 재판상 화해나 조정의 가부 37 (3) 가정법원이 민사사건에 관하여 변론관할권을 가지는 경우, 민사소송사건에 가사비송 사건의 병합청구의 적법 여부 37 나. 혼인관계사건 38 (1) 해소된 혼인의 무효확인청구의 이익 38 (2) 이혼소송의 소송물 38 (3) 이혼판결에 대한 재심청구 중 재심피고(이혼사건 원고)가 사망한 경우의 법률문제 39 (4) 과거의 사실혼관계존재확인을 구할 이익 40 다. 부모와 자녀 관계 사건 40 (1)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에 의하여 친생추정이 翻 覆 되는지 여부 40 (2) 친족이라는 사실만으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41 (3) 인지소송과 직권증거조사 41 (4) 출생신고에 의하여 입양이 성립한 경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의 적법 여부 42-3 -
라. 기타 42 (1) 限 定 承 認 수리의 요건 42 (2) 性 轉 換 을 이유로 하는 호적정정 43 3. 家 族 法 判 例 의 特 徵 43 第 3 章 家 庭 法 院 의 現 況 과 問 題 點 第 1 節 家 事 事 件 의 現 況 과 家 庭 法 院 의 役 割 45 1. 가사사건의 현황 45 2. 가사사건의 특수성과 가정법원의 역할 47 第 2 節 家 庭 法 院 의 物 的, 人 的 制 度 的 現 況 과 問 題 點 48 1. 家 庭 法 院 의 組 織 과 施 設 48 가. 현황 48 (1) 법관 48 (2) 관할 49 (3) 독립청사 49 (4) 사무국 49 나. 문제점 49 (1) 전국적인 가정법원 조직의 부재 49 (2) 법관의 전문성 50 (3) 가사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부족 50 (4) 독립청사 및 당사자를 위한 시설의 부재 50 2. 事 件 處 理 50 가. 현황 50 (1) 사건처리기간 50 (2) 병합사건 51 (3) 재판진행방식 51 (4) 재판부의 변경 51 나. 문제점 51 (1) 사건처리 지연 51 (2) 불충실한 변론기일 52 (3) 재판진행 방식 52 (4) 재판부의 변경 52 3. 家 事 調 査 官 53 가. 현황 53 (1) 가사조사관의 업무 53 (2) 전문가사조사관 53 (3) 가사조사관의 현황 53 (4)서울가정법원의 가사조사관 제도의 운영 56-4 -
나. 문제점 57 (1) 가사조사관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운영 57 (2) 가사조사관의 전문성 58 (3) 전문가사조사관 제도의 미비 58 4. 家 事 調 停 58 가. 현황 58 (1) 가사조정사건의 현황 58 (2) 가사조정위원의 현황 62 (3) 조정사건의 처리 66 (4) 조정절차의 진술내용 소송절차에 원용 66 나. 문제점 66 (1) 조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음 66 (2) 조정절차의 불필요한 지연 67 (3) 조정위원의 전문성 부족 67 (4) 조정절차에서의 진술을 소송절차에 원용하는 문제 68 (5) 주변환경 68 第 3 節 個 別 制 度 運 營 上 의 問 題 點 68 1. 協 議 離 婚 68 가. 현황 68 (1) 민법 개정 전 협의이혼제도 68 (2) 개정된 협의이혼절차 69 나. 문제점 71 (1) 협의이혼 안내의 실효성 71 (2) 상담 및 숙려기간의 실효성 71 (3) 숙려기간 운영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72 (4) 양육에 관한 합의절차 및 강제력 72 (5) 법원의 직권개입을 뒷받침하는 제도의 미비 73 (6) 협의이혼절차에 필요한 인력의 부족 73 2. 裁 判 上 離 婚 74 가. 유책주의 74 (1) 현황 74 (2) 문제점 74 나. 위자료 75 (1) 현황 75 (2) 문제점 75 다. 재산분할 76 (1) 현황 76 (2) 문제점 77 라. 양육자 지정 및 양육비 지급 79 (1) 현황 79-5 -
(2) 문제점 80 마. 면접교섭권 82 (1) 현황 82 (2) 문제점 82 바. 가사채무의 이행확보방법 83 (1) 현황 83 (2) 문제점 84 3. 家 庭 保 護 事 件 85 가. 현황 85 (1) 가정폭력의 현황 85 (2) 가정보호사건의 접수현황 86 (3) 가정보호사건의 처리 87 (4) 가정보호 조사관 87 (5) 보호처분 87 나. 문제점 89 (1) 임시조치의 실효성 부족 89 (2) 사건 처리의 지연 89 (3) 가정보호 사건에서 조사의 형해화 89 (4) 접근금지처분의 문제점 89 (5) 친권행사 제한 처분의 문제점 90 (6) 사회봉사 수강명령 보호관찰의 문제점 90 (7) 감호위탁 치료위탁 처분의 문제점 91 (8) 상담위탁 처분의 문제점 91 (9) 불처분의 문제점 91 (10) 보호처분 이행의 점검 확인의 부족 92 4. 其 他 의 問 題 點 92 가. 입양 사건에 대한 법원의 관여 92 나. 유류분반환청구사건의 관할 92 第 4 節 家 庭 法 院 의 役 割 에 대한 社 會 的 要 求 의 變 化 93 1. 이혼실태와 이혼가정의 문제 93 2. 家 庭 法 院 의 役 割 에 대한 社 會 的 要 求 의 增 大 95 3. 家 事 少 年 制 度 改 革 委 員 會 에서의 논의 95 4. 家 事 少 年 制 度 改 革 委 員 會 의 제안 96 가. 부부재산제 및 재산분할제도 96 나. 양육비지급의 실효성 확보 96 다. 숙려기간과 상담명령 96 라. 가정폭력사건 관련 97 마. 소년사건 관련 97 바. 가정법원의 장기적 발전방안 97 5.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 활동의 평가 97-6 -
6. 가사재판 실무의 변화 99 第 4 章 外 國 의 家 庭 法 院 制 度 第 1 節 日 本 의 家 庭 法 院 의 機 能 과 役 割 100 1. 일본 가정법원제도의 연혁 100 가. 가사심판법의 제정과 가사심판소의 설치 100 나. 가정재판소의 탄생 101 다. 가정재판소 발족 이후의 주요 내용 102 라. 인사소송의 가정재판소로의 이관 103 (1) 이관사건의 범위 103 (2) 이관이 논의되었던 그 밖의 민사소송사건 105 2. 가정재판소의 이용실태 106 가. 인사소송사건 106 나. 가사비송사건 107 (1) 가사조정사건 107 (2) 가사심판사건 108 3. 가사조정의 역할과 기능 109 가. 가정법원에서의 가사조정의 역할 109 (1) 가정법원에서의 가사조정의 특질 110 (2) 조정에서의 사법적 기능 110 (3) 불성립으로 끝난 조정의 역할 111 나. 가사조정의 운영과 법관의 역할 112 (1) 조정담당판사와 소송담당판사의 이동 112 (2) 가사조정과 인사소송에서의 자료의 연속성 112 다. 가사조정관제도의 창설과 그 역할 113 (1) 가사조정관의 직위ㆍ직무 114 (2) 가사조정관의 권한 114 (3) 가사조정관의 역할 114 4. 가정재판소 조사관 제도 115 가. 가정재판소조사관의 현황과 연혁 115 나. 가정재판소조사관의 임용방법과 연수 115 다. 가정재판소조사관의 직무 115 5. 참여원제도의 운용과 기타 116 가. 가사재판에서의 참여원제도의 운용 116 (1) 참여원의 권한과 관여의 시기 116-7 -
(2) 참여원의 지정 등 117 (3) 참여원제도의 과제 117 나. 혼인관계소송 등의 특례 118 (1) 혼인관계소송의 특례 118 (2) 친자관계소송의 특례 122 6. 日 本 家 庭 法 院 制 度 의 韓 國 에의 示 唆 123 가. 가정재판소조사관제도로부터의 시사 123 나. 가사조정의 운영으로부터의 시사 123 다. 이행확보제도로부터의 시사 124 第 2 節 獨 逸 家 庭 法 院 의 機 能 과 役 割 125 1. 論 點 의 정리 125 2. 가정법원 설치에 관한 논의 126 가. 가정법원 설치에 관한 논의의 역사 126 나. 개정안에 대한 비판 127 다. 논의의 결과 129 라. 그 후의 변화 129 3. 독일 가사재판의 특징 131 가. 당사자에 의한 합의의 지원 131 나. 가정법원과 아동복지기관의 협력 135 다. 자녀의 의견청취 137 라. 절차보조인( 자녀의 변호사 ) 138 마. 감정인에 의한 조사 141 4. 효율적인 이행체계의 확보 142 5. 독일제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144 * [독일판결문의 예-친권자 결정에 관한 밤베르크 항소법원 판결 147 第 3 節 美 國 家 庭 法 院 의 機 能 과 役 割 150 1. 槪 觀 150 2. 美 國 家 庭 法 院 의 機 能 150 가. 가정법원(Family court)의 의미 150 나. 離 婚 및 그 附 帶 事 件 151 (1) 이혼사건 151 (2) 財 産 分 割 (the division of property on divorce) 152 (3) 離 婚 後 扶 養 (Alimony) 153 (4) 子 女 養 育 者 의 指 定 155 (5) 子 女 養 育 費 157 다. 家 庭 暴 力 (Domestic Violence) 사건 159-8 -
라. 兒 童 虐 待 및 放 置 (Child Abuse and Neglect) 161 3. 美 國 家 庭 法 院 에서의 代 替 的 紛 爭 解 決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163 가. 槪 觀 163 나. 仲 裁 164 다. 調 停 165 4. 美 國 의 家 庭 法 院 에 대한 批 判 과 그 改 善 論 議 166 가. 절차적 정의의 관점에서 본 가정법원 166 (1)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의 개념 166 (2) 결정권자에 관한 측면 167 (3) 체계적 측면 167 나. 개선책의 모색 - 전문화된 가정법원 170 다. 統 合 家 庭 法 院 (Unified Family Court) 논의 171 (1) 개념 171 (2) 통합가정법원 주창의 근거 172 (3) 통합가정법원 주창론에 대한 비판 173 5. 美 國 家 庭 法 院 制 度 의 韓 國 의 示 唆 174 6. 補 論 - 오스트레일리아의 家 庭 法 院 175 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정법원 175 나. LAT 176 (1) 도입의 배경 176 (2) 자녀 사건 프로그램 177 (3) 2006년 개정 법률 178 第 4 節 韓 國 家 庭 法 院 에의 示 唆 179 1. 法 院 의 專 門 性 179 2. 離 婚 事 件 의 초점 변화 180 3. 相 談 및 調 停 181 4. 家 庭 暴 力 및 子 女 虐 待 181 第 5 章 變 化 의 方 向 第 1 節 基 本 的 인 觀 點 의 定 立 182 第 2 節 物 的 施 設 및 人 的 構 成 의 改 善 183 1. 조직의 정비 183 가. 가정법원의 전국설치 183 나. 항소심의 일원화 184 다. 가정법원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의 설치 184 2. 시설의 정비 184 3. 인적 구성의 전문화 185-9 -
가. 전문법관제도 185 나. 가사사건 전문교육의 강화185 다. 가사 전문조사관의 확충 185 라. 조정 담당자의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 186 마. 가정보호전문 조사관의 충원 187 第 3 節 事 件 運 營 方 式 의 改 善 187 1. 유형별 분류 187 2. 신속한 사건처리 187 3. 가사사건의 특성을 고려한 재판진행 188 4. 자녀의 이익 고려 188 5. 협의이혼 숙려기간 제도의 합리적 운영 189 6. 협의이혼 숙려기간과 조정절차의 연계 190 7. 당사자의 감정 배려 190 8. 재산분할사건의 운영 191 9. 면접교섭권과 양육비 지급의 확보 191 10. 가정보호 사건에서 조사명령의 활성화 191 11. 가정보호 사건의 신속한 처리 192 12. 민원서비스의 강화 192 第 4 節 外 部 機 關 과의 連 繫 192 1. 외부기관과의 체계적인 연계 필요성 192 2. 상담기관과의 연계 193 3. 사회복지시설과의 연계 197 4. 가정폭력피해자. 아동복지 기관과의 연계 199 5. 이주여성, 장애관련 기관과의 연계 202 6. 가정법원의 복지행정 전담부서 설치 203 第 5 節 法 律 의 改 正 203 1. 가사조정절차의 진술 소송에서의 원용금지 203 2. 협의이혼 203 3. 재판상이론 204 가. 유책주의 204 나. 재산분할 205 다. 양육비 지급확보 206 라. 아동의 이익 보호를 위한 특별대리인 207 마. 자녀의 이익을 위한 면접교섭 207 4. 별거 중 양육비, 면접교섭권 인정 207 5. 사전처분과 이행명령제도 207 6. 가정보호사건 207-10 -
7. 아동학대사건 208 8. 입양 절차에의 법원 관여 208 9. 유류분반환청구사건의 관할 208 第 6 節 장기적인 과제 209 1.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 209 2. 일반법원과 별도의 조직과 인사체계 210 가. 조직 210 나. 인사체계 210 다. 가정법원 법관의 임용 211 3.행정부와의 연계시스템 강화 211 4. 복지예산의 과감한 증액 211 6 章 結 論 < 參 考 文 獻 > 215-11 -
家 事 裁 判 의 回 顧 와 展 望 (The Past and the Future of the Korean Family Law Adjudication) * 尹 眞 秀 1) 金 相 瑢 ** 金 元 泰 *** **** ***** 李 浟 靜 2) 第 1 章 序 論 우리나라는 해방 후 지금까지 6 25와 산업화 등 격심한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가 족 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단적인 예로서 혼인율의 감소와 이혼율의 급속한 증가를 들 수 있다. 즉 1970년에는 인구 1천명당 9.2명이 결혼하고 0.4명이 이혼하 였는데, 2006년에는 7명이 혼인하고 2.5명이 이혼하였다. 1) 그에 따라 신고된 재판상 이혼 도 1973년에는 1,325건에 그쳤는데, 2006년에는 16,077건에 달하였다. 2) 이러한 가족 생활의 변화에 따라 아래 제2장 제1,2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족관계를 규 율하는 가족실체법 및 절차법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이러한 가족관계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가령 가족 관계에 관한 가사사건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은 현재 서울에만 설치되어 있고, 가정지원도 고 등법원 소재지의 지방법원에만 설치되어 있다. 즉 재판조직 면에서는 가사사건에 대하여 법 원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래 법원 내부에서도 가사 재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여, 판사가 가사사건을 담당하게 되면 좌천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근래에는 대법원에서 가사사건 전문법관 제도를 시행하여, 법관으로 하여금 가사사건을 장기간 담당함으로써 전문화를 꾀하고 있기는 하지만, 3)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제까지의 가사재판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개선 방 향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여기서 개선방향 내지 전망을 논의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의 가사재판은 중대한 전환기에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협의 상 이혼과 재판상 이혼의 폭발적인 증가는 종래의 전통적인 가정법원의 역할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이제까지는 가정법원이 주로 이혼사건에 대하여 이혼을 허 용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심리하여 왔다. 이는 말하자면 가사재판을 다 른 재판과 마찬가지로 분쟁해결(dispute resolution)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 나 가사사건은 다른 민사사건처럼 분쟁을 해결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정 파 탄이나 이혼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 처리되는가는 당사 자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법원이 재판에 의하여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어떤 형태 * 서울대학교 교수 ** 중앙대학교 부교수 ***충북대학교 부교수 ****인하대학교 조교수 ***** 이 글은 상당 부분 대법원의 위탁을 받아 성균관대학교 이승우 교수가 연구책임자이고 이 글의 필자들이 공동연구원으로서 수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의 가정법원의 기능 및 역할 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를 승낙 하여 준 대법원 당국과 이승우 교수님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 1) 통계청, 인구동태건수 및 동태율 추이 참조. 1969년 이전은 통계를 찾을 수 없다. 2) 통계청, 국가통계포탈(http://www.kosis.kr/), 주제별, 사법, 지방법원별/사건별 호적사건 기본조회 참조. 3) 법률신문 2004. 12. 27.(제3326호) 기사 가사소년사건 전문법관제 첫 도입 참조. - 1 -
로든 종결시키는 것만으로 그 책임을 다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과 같은 것은 자녀들의 이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법원은 분쟁해결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법원(problem-solving court)이 되어 당사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뒤에서 언급할 치료법학(therapeutic jurisprudence)이라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사사건에 관하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서술의 순서로서는 제2장에서 가사재판에 관한 실체법과 절차법의 변화 및 중요한 판례 를 간단히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가사재판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제4장과 제5장은 그 문제점의 개선 방향을 다루는데, 우선 제4장에서는 다른 나라의 가사재판과 가정법원 제 도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에의 시사점을 찾는다. 제5장에서는 이제까지의 논의를 바탕으 로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여 보고자 한다. - 2 -
第 2 章 家 事 裁 判 의 回 顧 第 1 節 實 體 法 의 變 化 1. 光 復 후 民 法 施 行 까지 1945년 해방 후에도 1960. 1. 1. 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친족 상속에 관하여는 성문법 아닌 관습법이 적용되었다. 이는 일제시대의 民 事 에 관한 제1차적인 法 源 이었던 朝 鮮 民 事 令 1) 제11조가 친족, 상속에 관한 일본법의 규정은 조선인에게는 적용하지 아니하고 관습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해방 후인 1945. 11. 2.의 미군정 법령 제21호에 의하여 일제 하의 법령 2) 도 효력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3) 제헌헌법 제100조도 당시의 현행법령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의 판례도 민법 시행 전의 사안에 대하여는 관 습법을 적용하고 있다. 4) 이러한 관습법은 일제시대에 조선고등법원이나 기타 일본사람들이 조사한 관습인 경우가 많다. 5) 이러한 일제시대의 관습법이 과연 당시의 관습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는가에 대 하여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종래에는 이러한 관습법은 일본법에의 동화를 위하여 한국 의 전통적인 관습을 왜곡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많았으나, 6) 근래에는 사회변동에 따른 관습 의 변화에 대하여 新 慣 習 을 法 認 化 하려는 것이었다는 견해 7) 나 식민지 권력이 유도한 식민 지 관습법의 형성이었다는 견해 8) 등도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부는 별론 으로 하더라도, 일본 사람들이 인정한 관습법이 반드시 정확한 것이었는가는 의심스럽다. 9) 근래의 대법원 판례도 이러한 일제 당시의 관습법에서 벗어나거나 이를 좀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10) 다른 한편 이러한 전통관습법은 男 系 를 優 先 시킨다는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11) 우 선 남계혈족은 넓은 범위에서 친족으로 되는 반면 모계혈족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친족이 며, 夫 와 妻 의 혈족 사이는 친족이 아닌 반면 妻 는 夫 의 血 族 과 친족관계에 있었다. 또 혼 인하면 妻 가 夫 家 에 입적하게 되었고, 子 女 의 姓 은 父 의 성을 따라야 했다. 그리고 入 養 에 있어서는 養 子 는 養 父 와 同 姓 同 本 이라야 하였고, 남자 1인만을 養 子 로 할 수 있었으며 養 女 1) 1912. 3. 18. 制 令 제7호. 2) 엄밀히 말하면 1945. 8. 9. 현재 효력을 가지고 있던 법령. 3) 이 점에 대하여는 정인섭, 大 韓 民 國 의 樹 立 과 舊 法 令 의 承 繼, 國 際 判 例 硏 究 제4집, 1999, 264면; 김창록, 制 令 에 관한 연구, 법사학연구 제26호, 2002, 137면 이하 참조. 4) 최근의 판례로는 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5다26284 판결( 公 2007상, 336); 2008. 2. 14. 선고 2007다 57619 판결(미공간, 법고을 LX 등에서 검색할 수 있다. )이 있다. 5) 예컨대 鄭 肯 植 編 譯, 慣 習 調 査 報 告 書, 2000; 法 院 行 政 處, 親 族 相 續 에 관한 舊 慣 習, 裁 判 資 料 29집(1985) 등. 6) 예컨대 李 相 旭, 日 帝 下 傳 統 家 族 法 의 歪 曲, 朴 秉 濠 敎 授 還 甲 紀 念 (II), 1991, 371면 이하; 尹 眞 秀, 高 氏 門 中 의 訟 事 를 통해 본 傳 統 相 續 法 의 變 遷, 家 族 法 硏 究 19권 2호, 2005, 327면 이하 등. 7) 李 昇 一, 朝 鮮 總 督 府 의 法 制 政 策 에 대한 硏 究, 한양대학교 문학박사 논문, 2003, 81면 이하, 151면 이하 등. 8) 심희기, 일제강점 초기 식민지관습법 의 형성, 法 史 學 硏 究 28호, 2003, 25면 이하; 홍양희, 植 民 地 時 期 親 族 慣 習 의 創 出 과 日 本 民 法, 정신문화연구 28권 3호, 2005, 125면. 9) 예컨대 朝 高 判 ( 聯 合 部 ) 1935( 昭 和 10). 7. 30( 錄 22, 302)은 상속회복청구권은 관습상 상속인 또는 그 법정대 리인이 상속권을 침해당한 사실을 안 때에는 상속개시의 때로부터 각각 상당한 기간 내에 한하여 행사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 그러한 관습은 존재하지 않았고, 朝 鮮 高 等 法 院 이 관습의 이름을 빌어 새로운 법을 창조한 것이다. 상세한 것은 尹 眞 秀, 相 續 回 復 請 求 權 의 硏 究 서울대 法 學 41권 1호, 2000, 196면 이하 참 조. 10) 이에 대하여는 아래 제5절 1. 가. 참조. 11) 간략한 설명은 우선 尹 眞 秀, 憲 法 이 家 族 法 에 미친 영향, 서울대학교 법학 제45권 1호, 2004, 235면 이하 참조. - 3 -
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전통 가족법의 특유한 제도로 이른바 同 姓 同 本 禁 婚 제도가 있다. 이러한 동성동 본 금혼제도의 유래에 관하여는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중국의 宗 法 制 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인정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상속에 있어서도 일제시대에 인정된 관습법에 따르면 장남이 호주상속을 함과 동 시에 단독으로 전 재산을 상속하고, 차남 이하의 형제들은 분가할 때 분재를 청구할 수 있 음에 불과하였다. 2. 民 法 典 의 制 定 현행 민법전은 1957. 12. 17. 국회를 통과하여 1958. 2. 22. 공포되었고, 1960. 1. 1.부 터 시행되었다. 이 민법전 중 친족상속편에 관하여는 특히 전통적인 관습을 우선시킬 것인 가, 아니면 헌법을 우선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에 관한 당시 의 주된 입장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2) 즉 종래의 父 系 主 義 및 男 子 우선의 전통 관습 을 그대로 유지하여야 한다는 慣 習 尊 重 論 과 헌법 정신에 따라 남녀평등을 실현하여야 한다 는 憲 法 精 神 尊 重 論 및 양자를 절충하려는 漸 進 的 改 革 論 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헌법정 신존중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관습존중론 내지 점진적 개혁론에 따라 민법전 중 친족상 속편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3) 대표적으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들 수 있다. 원래 정부가 제안한 원안에서는 이러한 동 성동본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러 한 동성동본 사이의 혼인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아 이 규정을 삭제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 는 가족법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동성 동본 사이의 혼인은 금지하도록 하는 규정이 채택되어 제정 민법 제809조 제1항이 성립하 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채택된 가족법 가운데에는 헌법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조항이 매우 많았 다. 우선 호주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14) 뿐만 아니라 가족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남자에 비하여 여자, 夫 에 비하여 妻 를 매우 불리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첫째, 친족의 범위에 관하여는 父 系 내지 夫 系 친족의 범위는 넓은 반면 母 系 내지 妻 系 친족의 범위는 좁게 규정되어 있었다(제777조). 그리고 형제의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의 형제 의 직계비속은 혈족으로 인정하면서, 자매의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의 자매의 직계비속은 혈 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제768조). 둘째, 繼 母 子 와 嫡 母 庶 子 관계를 인정하여 妻 의 의사에 관계없이 법정혈족 관계가 인정되 게 하였으나(제773조, 제774조), 繼 父 子 사이에는 법정혈족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夫 가 혼인 외의 子 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킴에 있어서는 처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반면(제782조 제1항) 처가 전남편 소생의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려면 호주와 夫 의 동의를 받아야 하였다. 넷째, 재산관계에 있어서 호주와 가족 중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호주의 소유로 추정하였고(제795조 제2항), 부부 사이에서는 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12) 李 相 旭, 家 族 法 制 定 의 經 緯 와 주된 爭 點, 家 族 法 硏 究 제14호, 2000, 290면 이하; 尹 眞 秀 ( 註 11), 237면 이하 등 참조. 13) 이하의 설명은 尹 眞 秀 ( 註 11), 憲 法 이 家 族 法 에 미친 영향, 240면 이하 참조. 14) 우리나라에서 호주제도가 도입된 경과에 대하여는 尹 眞 秀 ( 註 6), 高 氏 門 中 의 訟 事 를 통해 본 傳 統 相 續 法 의 變 遷, 346면 이하 참조. - 4 -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夫 의 소유로 추정하였다(제830조 제2항). 다섯째, 자녀의 친권은 제1차적으로 父 가 행사하고, 父 가 없거나 親 權 을 행사할 수 없는 때에 한하여 母 가 친권자가 되었으며, 이때에도 이혼한 母 는 전 혼인 중에 출생한 子 의 친 권자가 될 수 없었다(제905조). 그리고 이혼 시에 자녀의 양육책임은 제1차적으로 父 에게 있었다(제837조 제1항). 여섯째, 상속에 관하여도 남녀의 차이가 컸다. 우선 동순위의 상속인이 공동상속을 할 때 에는 균분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호주상속인인 재산상속인에 대하여는 5할을 가산하고, 여 자의 상속분은 남자의 상속분의 1/2밖에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컨대 혼인으로 아버지의 호 적을 떠난 경우와 같이 동일가적 내에 있지 않은 女 子 의 상속분은 남자의 상속분의 4분의 1밖에 인정하지 않았다(제1009조). 그리고 배우자의 상속에 있어서도 피상속인이 처인가 부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즉 처가 피상속인인 경우에는 부는 제1순위의 상속인인 직계 비속이 있으면 직계비속과 공동상속인이 되고, 직계비속이 없으면 부가 단독상속인이 되며, 직계비속과 공동상속하는 경우에도 상속분은 균등하였다(제1002조). 반면 피상속인이 부인 경우에 처는 제1순위의 상속인인 직계비속 또는 제2순위의 상속인인 직계존속과 공동상속 인이 되고, 직계존속도 없는 경우라야 단독상속인이 되었다(제1003조). 또 처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남자의 상속분의 1/2밖에 인정되지 않았다(제1009 조). 3. 民 法 의 改 正 친족상속법의 중요한 개정은 1977년(1977. 12. 31. 법률 제3051호), 1990년(1990. 1. 13. 법률 제4199호), 2002년(2002. 1. 14. 법률 제6591호), 2005년(2005. 3. 31. 법률 제 7427호) 및 2007년(2007. 12. 21. 법률 제8720호)의 5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5) 이처럼 가족법이 자주 개정된 데에는 한국의 사회와 가족 그 자체가 큰 변화를 겪었다는 점 외에도 초기에는 여성 단체의 가족법 개정운동이, 후기에는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의 가족법에 관 한 위헌결정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16) 가. 1977년의 개정 이는 가족법이 본격적으로 개정된 첫 경우였다. 주된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종래 夫 婦 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夫 의 소유로 추정하던 것이 바뀌어 夫 婦 의 共 有 로 추정하게 되었다(제830조 제2항). 둘째, 종래 미성년자인 자에 대한 친권을 원칙적으로 父 가 행사하던 것이 바뀌어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부가 행사 하도록 하였다(제909조). 셋째, 상속분에 관하여 처 및 딸의 지위를 개선하였다. 즉 종래 처가 직계비속과 공동으 로 상속하는 때에는 상속분이 남자의 상속분의 1/2에 불과하던 것이,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든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든 다른 상속인보다 5할을 더 받게 되었다(제1009조 15) 이 외에도 사소한 사항에 관한 것과 다른 법률의 제 개정으로 인한 것들이 있다. 전자의 예로는 민법 제789 조를 개정하여 법정분가를 인정한 1962 12 29, 법률 제1237호가 있고, 후자의 예로는 국적법의 개정에 따라 민법 제781조 제1항 단서를 신설하여 父 가 外 國 人 인 때에는 母 의 姓 과 本 을 따를 수 있고 母 家 에 入 籍 하는 것으로 한 國 籍 法 改 正 法 律 (1997. 12. 13. 법률제 5431호),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따라 제937조제3호 및 제1098조중 破 産 者 를 각각 파산선고를 받은 자 로 한 2005. 3. 31. 법률 제7428호 등 이 있다. 16) 이 점에 대하여는 尹 眞 秀 ( 註 11), 憲 法 이 家 族 法 에 미친 영향, 233면 이하 참조. - 5 -
제1항). 그리고 종래 여자의 상속분은 남자의 상속분의 1/2이었던 것을 폐지하여 남자와 동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동일 가적 내에 없는 여자의 상속분이 남자의 1/4인 것은 여전히 유 지되었다. 넷째, 유류분제도(제1112조 이하)가 신설되었다. 이 외에 婚 姻 으로 인한 成 年 擬 制 規 定 (제826조의 2)이 신설되었고, 혼인적령을 성년으로 낮추는(제808조)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호주제도, 동성동본 금 혼 제도의 폐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나. 1990년의 개정 이때에는 비교적 대규모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우선 친족의 범위에 있어서의 性 에 따른 차이를 없앴다. 종전에는 부계혈족은 8촌까지, 모계혈족은 4촌까지로 하였던 것을 부계 모계 의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8촌으로 하고, 인척은 남녀 구별 없이 4촌 이내로 통일하였다(제 777조). 17) 그리고 종전에 혈족에 포함되지 않았던 자매의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의 자매의 직계비속도 혈족에 포함되었다(제768조). 또 종전에는 처가 사망한 경우에는 부가 재혼하더 라도 처족과 인척관계가 소멸하지 않는 반면 부가 사망한 경우에는 처가 친가에 복적하거나 재혼하면 夫 族 과 인척관계가 소멸하도록 규정하고 있던 것을 개정하여 부부의 일방이 사망 한 경우에 생존배우자가 재혼하면 인척관계가 소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전의 계모자관 계, 적모서자관계를 법정혈족관계에서 제외하였다(제773, 774조의 폐지). 둘째, 호주제도는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종래에 비하여 매우 약화되었다. 우선 호주의 가 족에 대한 居 所 指 定 權 (제798조)과 성년남자에 대한 강제분가권(제789조), 미성년자의 후견 인이 될 권리(제933조) 등은 삭제되었고, 호주와 가족 중 누구의 소유인지 분명하지 않은 재산은 종전과 같이 호주의 단독소유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공동소유로 추정되게 되었다(제796조 제2항). 또 종래에는 호주의 지위가 상속에 의하여 승계되었고, 이러한 호 주상속의 포기는 인정되지 않았으나, 개정법은 이를 호주의 승계로 바꾸고, 호주를 승계할 자가 승계를 원하지 않으면 이를 포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991조). 또 종래에는 분묘에 속하는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 등을 호주상속인이 승계하도록 하였으나, 개정법에 따르면 이를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하도록 하였다(제1008조). 셋째, 혼인관계에 있어서 종전에는 부부의 동거의 장소를 원칙적으로 夫 의 주소나 거소로 하였던 것을 개정법은 제1차적으로 부부의 협의에 의하도록 하였다(제826조 제1항). 또한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도 종전에는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夫 가 부담하던 것을 부부 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으로 바꾸었다(제833조). 그리고 이혼시에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 항의 협정이 없으면 양육책임이 부에게 있던 것으로 고쳐 부부가 협의하되 협의가 되지 않 으면 가정법원이 결정하도록 하였다(제837조). 넷째, 이혼시의 재산분할제도가 창설되었다(제839조의 2). 이로 인하여 이혼후의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子 를 직접 養 育 하지 아니하는 父 母 중 一 方 의 자녀에 대한 面 接 交 涉 權 이 인정되었 다(제837조의 2). 이는 종래 학설이나 판례상 인정되었던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여섯째, 死 後 養 子 制 度 (구 제867조 등)와 遺 言 養 子 (구 제880조)가 폐지되었다. 이로써 양 자제도가 종래의 이른바 家 를 위한 양자 의 성격을 벗어나게 되었다. 일곱째, 친권에 있어서 종전에는 친권은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되, 부모의 의견이 일치 17) 종래에는 처의 입장에서는 夫 의 8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4촌 이내의 모계혈족은 친족에 포함되는 반면, 부의 입장에서는 처의 부모만이 친족에 포함되었다. - 6 -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부가 행사하도록 하던 것을 고쳐서,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이 정하도록 하였다(제909조 제2항). 그리고 이혼한 모 등이 전 혼인 중 에 출생한 子 의 친권자가 될 수 없도록 하였던 규정도 폐지되었다. 그리고 상속법의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종래에는 부가 처를 상속하 는 경우와 처가 부를 상속하는 경우에 차이가 있던 것을 없애서 부가 처를 상속하는 경우에 도 직계비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게 하였고(제1009조 제2항), 처가 자녀 없이 상속하 는 경우에 부는 처가 상속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의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 다(제1003호). 또 처가 사망하고 이어서 처의 부모가 사망한 경우에 부가 대습상속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제1003조 제2항). 그리고 배우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속분의 차이도 없 애서, 남자와 여자,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상속분은 均 分 으로 하였으며, 호주상속인에게 5할 을 가산해 주던 제도도 없앴다. 다. 2002년의 개정 2002년의 개정은 상속회복청구권과 이른바 특별한정승인제도의 도입 두 가지를 내용으로 하였다. 먼저 상속회복청구권의 10년의 제척기간의 기산점이 종래의 상속이 개시된 날부터 10년 으로부터 " 相 續 權 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제1019조 제3항을 신설하여 상속인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없이 상속 개시를 안 날부터 3월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을 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모두 후술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반영한 것이 다. 18) 라. 2005년의 개정 이 개정은 호주제도와 동성동본금혼 제도를 폐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姓 에 관하여도 이른 바 姓 不 變 의 원칙 내지 父 姓 主 義 의 원칙에 큰 예외를 인정한 점에서, 남녀평등이라는 관점 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주요한 개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호주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둘째,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고, 혼인 외의 출생자가 인지된 경우 에도 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며, 자의 복리를 위한 자의 성과 본의 변경을 허용하였다(제779조 제1항). 셋째, 동성동본 금혼 제도를 폐지하고, 금혼의 범위를 조정하였다(제809조 등). 넷째, 여자의 재혼금지기간(구 제811조)을 없앴다. 다섯째, 친생부인의 소의 제소기간을 그 사유를 안 날부터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제 소권자도 夫 외에 妻 도 포함시켰다. 여섯째, 아동의 복리를 위하여 親 養 子 라는 명칭 하에 完 全 養 子 制 度 를 창설하였다(제908조 의 2 이하). 일곱째, 이른바 자녀의 최선의 이익(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원칙을 받아들여, 친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자의 복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제912 조). 여덟째, 이른바 법정후견인 제도를 보완하기 위하여 피후견인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 우에는 후견인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940조). 18) 그러나 특별한정승인제도의 신설에 있어 그에 따르는 보완을 규정하지 않은 점은 문제로 지적되었다. 金 相 瑢, 개정 한정승인제도의 문제점 법률신문 제3058호(2002. 3. 14.), 14면. - 7 -
아홉째, 2002년의 특별한정승인제도를 보완하는 규정을 마련하였다(제1030조 등). 이처럼 호주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호주제도를 전제로 하는 호적법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2007. 05. 17. 법률 제8435호)이 제정되었다. 마. 2007년의 개정 이 개정은 종전의 개정에 비하면 개정 폭이 크지는 않으나, 협의이혼절차의 개선 등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요한 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협의이혼절차에서 대기기간(이른바 熟 慮 期 間 )을 두어 양육하여야 할 자가 있는 경 우에는 3개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1개월이 경과하여야 협의이혼의사의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양육하여야 할 자가 있는 경우에는 자의 양육에 관한 협의서나 가정법원의 심 판정본을 제출하도록 하였다(제836조의 2, 제837조). 둘째, 종래에는 면접교섭권의 주체를 부모의 일방만으로 하고 있었으나, 개정법은 자녀 또한 면접권의 주체에 포함시켰다. 이는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아동권리 협약 제9조 제3항을 고려한 것이다. 셋째, 재산분할청구권의 보전을 위한 채권자취소권을 명문화하였다(제839조의 3). 종래 이혼 전에 재산분할청구권의 보전을 위한 채권자취소권의 행사가 가능한가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는데, 개정법은 이러한 논란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종전에는 婚 姻 適 齡 이 남자 18세, 여자 16세로 차이를 두었던 것을 18세로 통 일하였다(제807조). 그러나 정부 원안에 있었던 혼인 중 재산분할제도, 부부 일방의 주거용 건물의 처분 제 한, 배우자의 상속분을 상속재산의 1/2로 하는 것 등은 채택되지 않았다. 바. 법률 개정의 의미 이처럼 가족법은 남성중심의 봉건적인 가족제도로부터 남녀평등에 기반한 핵가족 제도의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전통과 관습을 이유로 불평등을 묵인하던 것에서부터 헌법의 남 녀평등 이념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미성년 자녀의 양육책임을 개별 가정에 맡기던 것에서부 터 법원이 후견적인 개입을 하는 방향으로, 이혼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이혼당사자 및 자녀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기존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이러한 가족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설정하여 국가가 관리하되, 가족의 영역에서는 남성가장이 가족을 통솔하고 가족구성원을 부양하며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가장의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던 태도에서부터, 가족이 아닌 개인을 인정하고 필요한 경우 가족 관계 속에서 상대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여성과 아동의 복리를 위해 법원이 후견적인 입장에서 개입하는 태도로 변화한 것이다. 19) 특히 2005년과 2007년의 가족법 개정에는 친양자제도, 숙려기간, 협의이혼시 자녀양육에 관한 합의의무화, 필요한 경우에 가정법원이 직권으로 양육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도 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자녀의 양육책임을 개인과 국가가 공동으로 부담 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이혼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국가의 개입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20) 19) 양현아, 한국젠더법학회 세미나 자료집(2007) 18면 이하. 20) 서구에서 아동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가의 이념은 1. 가족에 대한 국가의 불간섭단계(17-18세기), 2. 아동의 안전,건강,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단계(19세기), 3. 국가가 가족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가 족을 보호, 유지하는 단계(20세기기 초.중반) 4. 국가가 아동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와 자율성의 주체로 인정하는 단계(20세기 후반 이후)의 순서로 발전하였다고 설명한다. 송주미,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보호를 위 한 국가이념의 방향과 과제, 청소년학연구 제10권 제2호, 2003, 171면 이하 참조. - 8 -
다만 그 개입의 정도는 이혼가정의 자녀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마련하거나 후견 적인 역할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1분쟁의 당사자인 가족 내에서 양육의 책임자와 양육비 에 관한 사항을 정하도록 강제하고 이러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협의이혼을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방식(협의 이혼시 자녀양육에 관한 합의의무화), 2당사자로 하여금 상 당한 기간 혼인생활의 유지와 이혼 가운데 어느 면이 더욱 이익인지 생각해 보도록 강제하 는 방식(이혼숙려제도), 3재혼가정에서 계부자의 성을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 써 당사자들이 사회로부터 차별을 당할 가능성을 제거해 주는 방식(친양자 제도와 예외적 성변경제도) 등의 소극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이혼가정에 개입하되 당사자간의 분쟁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조정해 주는 제 3자로서 기능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으며, 그 이외에 이혼가정 자녀들의 복리를 위해 적극적 이고 후견적인 기능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第 2 節 節 次 法 의 變 化 1. 가사심판법의 제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가사사건처리 절차법규로서는 조선민사령 (1912년 4월 1일 시행)에 의하여 의용된 일본의 법령인 인사소송수속법과 조선인사조정령 (1939년 7월 8일 제령 제8호) 등이 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12월 6일 법률 제803호로 인사에 관한 소송절차의 특례를 규정한 인사소송법을 제정 공포하여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면서 그 때까지 의용되어 온 인사소송수속법을 폐지하였다. 아울러 1961년 12월 27일 법률 제878호로 인사조정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 3. 4. 가정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기초위원회를 만들어 가사심 판법 등 제정 작업을 시작한지 21) 4개월만인 1963. 7. 31. 가사심판법과 가정법원의 창설을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 법률이 제정 공포되었는데, 가사심판법의 제정취지를 보면 혼인 이 혼 상속 부양 양자 등의 가정문제가 현재까지 일반법원에서 소송형식으로 공개 재판하는 제 도는 부부 친자 형제 자매 등 혈족이 원고나 피고가 되어 대립 투쟁 할 뿐 아니라 많은 시간 의 낭비, 많은 비용이 들고 가정문제가 보도됨으로써 사회에 미치는 여론과 윤리성 그리고 개인의 명예나 사회적 지위 등에 입는 피해가 막대하므로 이러한 제 모순을 제거하고 가정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해결함에는 법학 뿐 아니라 심리학, 정신의학, 사회학, 교육학 등의 학자도 참여하여 심판의 적정을 기하게 하여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조용히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 22) 이라고 하여 가사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에서 비롯된 입법임을 알 수 있다. 가사심판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고, 가사사건의 심판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조정이나 심판청구 전이라도 의무자의 재산을 가압류. 가처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두고 있었다. 가사심판법이 시행됨으로써 인사조정법은 폐지되 었다. 가사심판법은 인격의 존엄과 남녀의 평등을 기본으로 하여 가정평화와 친족상조의 건전한 공동생활의 유지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제1장 총칙에서 가정법원의 조정 및 심 판범위를 명시하고, 아울러 심판관과 조정위원회의 구성 등에 관하여, 제2장 조정절차, 제3 21) 朴 禹 東, 家 庭 法 院 20 年 의 回 顧 와 展 望, 裁 判 資 料 제18집, 1983, 9-10면. 22) 법제처 종합법령정보 http://klaw.go.kr/. - 9 -
장 심판절차, 제4장 이행확보, 제5장 벌칙에 관하여 각 규정하였다. 그러나 가사심판법은 불과 4개월만에 급하게 제정된 것이어서, 가정법원의 심판사항으로 재산상속인 부존재의 경우에 상속재산의 재산관리에 관한 처분, 자의 징계에 관한 허가, 한 정승인 등에 있어 감정인의 선임을 추가하는 등의 내용 23) 으로 두 달 만인 1963. 12. 13. 1 차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가사사건처리절차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은 가사심판법이었는데 가사사건 처리절차에 관하여 가사심판법 제9조가 인사소송법과 비송사건절차법을 준용하도록 하였으 며, 인사소송법 제13조는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종래 우리 나라의 가사사건처리절차에 관해서는 가사심판법과 인사소송법, 비송사건절차법 및 민사소 송법, 가사심판규칙이 적용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각 법률은 서로 통일적인 지침 에 의하여 만들어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특히 가사심판법이 가사사건의 절차에 관하여 인사소송법과 비송사건절차법을 준용하도록 한 것에 대하여, 가사심판법에서 인사소송법의 적용대상사건을 모두 규율하면서 인사소송 법을 따로 존치해 둘 필요가 없다는 문제점과 함께 가사심판법에는 관할에 관한 규정이 없 고 인사소송법과 가사소송규칙에 각각 관할에 관한 규정이 있어 인사소송법처럼 전속관할로 보아야 할지, 가사소송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임의관할로 보아야 할지 등에 관한 판 단이 엇갈린다 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24) 또한 가사조정제도를 도입하였으나 당사자의 협력을 강요하거나 법원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규 정이 미흡하고, 헌법상 재판의 공개원칙에 반한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 25) 가 제기되어 왔다. 2. 가사소송법의 탄생 1990년 1월 13일 민법 중 친족상속편이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법 률 제4199호로 개정되어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26) 이에 따라 가사사건처리에 관 한 절차법규의 정비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법원행정처 송무국의 주도 아래 가사소 송법 초안이 완성되어 이를 바탕으로 1990년 12월 31일 가사소송법(법률 제4308호)을 제 정하여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아울러 가사소송법 제11조(위임규정) 등의 규정에 근거하여 가사사건의 재판과 조정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하여 대법원규칙 제1139호 로 가사소송규칙이 제정되었다. 이로써 가사재판제도에서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 다. 가사소송법은 기존의 인사소송법과 가사심판법을 폐지하면서 이들이 다루고 있던 사항을 가사소송법에 통합시킨 것이다. 가사소송법은 가사사건을 크게 가사소송사건과 가사비송사 건으로 나누고, 다시 성질에 따라 가류, 나류, 다류 가사소송사건과 라류, 마류 가사비송사 건으로 세분하였다. 가사소송법은 가사사건을 제한적 열거에 의하여 엄격하게 제한하고 이 들 사건은 가정법원에 전속하게 하였으며, 관할위반의 경우에는 민사소송법의 이송절차에 의하여 해결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제2조 제1항 본문). 가사소송법이 종전의 가사심판법에 비하여 크게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나류 및 다류 가 사소송사건과 마류 가사비송사건에 대하여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였다는 점이다. 조정을 신 23) 구 가사심판법 1963.12.13 법률 제1498호 제2조. 24) 朴 禹 東 ( 註 21), 22면. 25) 李 在 華, 서울 家 庭 法 院 30 年 의 발자취, 裁 判 資 料 62집, 1993, 23면. 26) 이러한 민법 개정에 발맞추어 부속법률인 호적법도 1990년 12월 31일 법률 제4298호로 개정되어 개정민법 과 함께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 10 -
청하지 않고 소를 제기하거나 심판을 청구한 때에는 가정법원은 그 사건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정에 회부하도록 하였다. 또 가사소송법은 심리와 재판의 비공개조항을 삭제하여 가사재판에서 공개를 원칙으로 하였다. 1990년 12월 31일 대법원규칙 제1141호로 종래 민사소송의 사물관할에 관한 규칙 을 가사소송법 및 가사소송규칙의 각 규정에 맞추어 민사 및 가사소송의 사물관할에 관한 규 칙 으로 개정하여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이 규칙은 1991년 8월 3일 대법원규칙 제1172호로 다시 개정되어 1991년 9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주요 개정내용을 살펴보면, 마류 가사비송사건 중에서 자의 양육에 관한 처분과 그 변경, 면접교섭권의 제한 또는 배제 청구사건, 친권을 행사할 자의 지정과 변경 청구사건 등을 합의부 관할사건에서 제외하였 다. 1998년 12월 4일 대법원규칙 제1574호로 가사소송규칙이 개정되어 종래 가사사건 여부 가 논란되었던 양친자관계존부확인을 가정법원의 관장사항으로 명백히 하고, 가류 가사소송 절차에 의하여 심리ㆍ재판하도록 하였다(규칙 제2조 1항, 2항). 第 3 節 家 庭 法 院 制 度 1. 가정법원 창설 이전 1910년 이전의 우리나라는 가사사건을 재래의 경국대전 등에 의하여 처리하였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가사사건처리 절차법규로서는 朝 鮮 民 事 令 (1912년 4월 1일 시행)에 의하여 의용 된 일본의 법령인 人 事 訴 訟 手 續 法 과 朝 鮮 人 事 調 停 令 (1939년 7월 8일 제령 제8호) 등이 있 었다. 27) 1944년 2월 15일 조선인사조정령(제령 제5호)이 개정 공포되어 그 해 3월 15일부 터 시행되었으며, 인사조정에 관해서는 담당재판부가 단독판사로 한정되었다. 해방 당시 조선총독부재판소는 고등법원, 복심법원, 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5 년 10월경부터 최고법원이었던 조선고등법원은 대법원, 복심법원은 공소원으로 명칭을 바꾸 어 호칭하였으나 기존 법원의 조직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1946년 12월 6일자 사법부 명령으로 1947년 1월 1일부터 공소원은 고등심리원으로, 지방법원은 지방심리원으로, 지방 법원 지청은 지방심리원 지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재판소의 조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 었다. 정부수립 이전인 1948년 5월 4일 제정된 이른바 과도 법원조직법(남조선과도정부법령 제 192호)이 공포되어 그 해 6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28) 고등심리원, 지방심리원 및 동 지원 이 각 고등법원, 지방법원 및 동 지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외에는 각급 법원의 조직에는 특 별한 변화가 없었다. 지방법원 및 동 지원의 심판권은 원칙적으로 단독판사가 행하였다. 다 만 인사에 관한 소송사건 등은 합의부의 관할로 하였다. 29) 1949년 9월 26일 공포된 법원조직법은 법원이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선거소송 및 기타 법률적 쟁송을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법원의 종류를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의 3종으로 하였다. 종전에 설치되었던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은 이 법원조직법에 의하여 설치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인사에 관한 소송사건은 여전히 지방법원 민사 합의부에서 심판 27) 일제강점초기인 1915년 6월 26일 조선총독이 사법관에게 내린 훈시에서 인사소송사건의 증가경향을 우려하 며 인사소송사건에서 관습법의 적용을 신중히 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法 院 史, 1995, 106-110 면. 28) 이 법령은 대한민국정부수립 후인 1949년 9월 26일 법률 제51호로 제정 공포된 법원조직법의 모법으로서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 註 27), 191면. 29) 법원행정처( 註 27), 192~193면. - 11 -
하였다. 현재 가정법원의 관할로 되어 있는 소년사건은 당시에는 지방법원 소년부의 단독판사가 심판하도록 되어 있었다. 30) 소년부지원은 종전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는데, 1962년 7월 14 일 법률 제1107호로 개정된 법원조직법은 종래 지방법원의 사무 중 소년보호사건을 처리하 기 위하여 관할구역 내에 지방법원 지원의 일종으로 소년부지원을 둘 수 있다는 규정을 신 설하고, 그 심판권을 단독판사가 행사하도록 하였다. 2. 가정법원의 창설 일본의 가정재판소 31) 가 1949. 1. 1. 개설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가정법원의 설립에 관 한 논의가 진행되다가 1962. 8. 5. 전국여성단체가 연합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비롯한 관 계기관에 가정법원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건의문을 보면 가정문제의 해결은 만인공개리에 법 규정에 의한 판결보다는 인간의 도의와 인정과 경험에 호소하면서 특히 교육학자, 사회 학자 및 의학자들의 관여 하에 비공개방법에 의한 조정, 화해로써 적합한 처리를 할 수 있 는 가사재판제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이 제도는 많은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바, 특히 우리나라 실정 하에서는 경제능력 없는 당사자가 최소한도의 비용으로 단시일 내에 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므로 더욱 긴급을 요하는 제도라고 인정되어 그 설치를 강 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가정법원의 설립취지를 잘 드러내주는 것 이다. 32)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 3. 4. 가정법원설치를 위한 법안기초위원회를 만들어 관련법률 등을 정비하여 1963. 7. 31. 가사심판법을 제정하고, 같은 날 가정법원의 창설을 위한 법원 조직법을 개정하였다. 개정된 법원조직법의 내용은 가정법원을 신설하고, 가정법원의 관할 구역 내에 그 지원을 둘 수 있도록 하며, 가정법원에 사무국을 두고 총무과, 가사과, 소년과 를 두도록 하고,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 가정법원의 관할에 속하는 사건은 가 정법원이 설치될 때까지 해당 지방법원이 관할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위 법률에 근거하여 1963. 10. 1. 가정에 관한 분쟁과 소년범죄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정법원이 서울 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예산 등을 이유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 고 가정법원의 권한에 속하는 가사사건 및 소년보호사건을 지방법원에서 관할하게 되었 다. 33) 가정법원에는 판사를 두고, 심판권은 단독판사가 행하되 합의심판을 요할 때에는 판사 3 인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행하도록 하였다. 종래 인사에 관한 소송사건을 지방법원 민사 합의부에서 심판하도록 한 것과 사뭇 다르다. 가정법원에도 지방법원과 마찬가지로 사무국을 두고, 사무국에는 총무과, 가사과, 소년과 를 두도록 하였다. 30) 법원조직법은 제77조에서 본법 시행 당시의 지방법원 소년부지원에 관한 일체 사항을 다른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종전의 법령에 의한다 고 규정하고 있었다. 일본 강점기 말에는 소년심판소라는 독립된 기관이 설치된 적도 있었다. 즉 1942년에 조선소년령시행령 제6호에 의거하여 경성소년심판소를 개설하여 소년사건만을 전 담하도록 하였다. 31)일본은 1919. 7. 내각에 임시법제심의회가 설치되고 가정재판소를 두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여 1924. 11. 가법성내에 가사심판소에 관한 법률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사심판에 관한 법안을 준비하기 시작하여 1927. 10. 21. 가사심판법안을 만들고 전쟁으로 입법작업이 중단되었다가 1947. 12. 6. 가사심판법이 제정될 정도 로 장기간에 걸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朴 禹 東 ( 註 21), 23면. 32) 이태영, 韓 國 離 婚 硏 究, 1968. 33) 李 在 華 ( 註 25), 13면. - 12 -
1963년 12월 13일에는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이 공포되면서 서울 가정법원 합의부의 관할구역에 인천지원, 수원지원, 의정부지원의 관할구역을 제외한 경기 도 일원이 추가되었다. 3. 가정법원의 변천 가. 업무의 변천 서울가정법원은 설립초기부터 가사사건과 소년사건을 관할하였다. 소년사건은 이미 군정 법령 제192호 법원조직법(1948. 6. 1.부터 시행)에 의하여 그 이전부터 설립된 소년부지원 에서 처리하고 있었고, 1962. 1. 10. 제정된 하급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에 의 하여 서울, 대구, 부산, 광주의 각 지방법원에서 소년부지원이 있었다. 34) 그런데 1963. 7. 31. 서울형사지방법원소년부지원을 폐지하고 서울 가정법원에서 소년사건을 관할하는 내용 으로 위 법률이 개정되어 소년사건을 서울가정법원에서 관할하게 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대 구, 부산, 광주에는 소년부지원이 그대로 남아서 소년사건을 관할하였다. 1976. 1. 1. 법원 조직법의 개정으로 호적에 관한 사무가 서울가정법원으로 이관되었고, 1997. 12. 13. 법률 제5436호로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등이 제정된 후에는 가정보호사건까지도 관 할하게 되어 서울가정법원의 업무범위는 점차로 확대되었다. 나. 조직의 변천 1975년 12월 31일 법률 제2817호로 호적법이 개정되어 종래 지방법원의 관할에 속하던 호적에 관한 사건을 가정법원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는 가정법원이 관할하게 되었다. 같은 날 개정된 법원조직법은 민사지방법원, 형사지방법원 및 가정법원의 지원은 2개 또는 3개를 합하여 1개의 지원으로 할 수 있게 하였다. 35) 또 위 개정 법원조직법은 가정법원에 관하여 서도 사무국을 둔다고만 규정하면서 과의 설치와 분장사무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하였 다. 같은 날 공포된 법원사무기구에 관한 규칙 은 가정법원의 사무국에 총무과, 가사과, 소 년과, 호적과를 두도록 하였다. 36) 1979년 4월 17일, 1986년 5월 12일에도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이 개정되어 서울가정법원과 그 지원의 관할구역의 변동이 있었다. 또 1988년 1월 6일에는 법원관할구역에 관한 규칙 이 개정되어 서울가정법원의 호적관할구역에 변화가 있었다. 서울가정법원의 설립당시 법관 숫자는 4명이었지만 가정법원의 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가 정법원에 근무하는 법관 숫자도 점차로 증가하게 되었다. 다음 표는 최근 몇 년간 가정법 원, 지원의 법관 수의 변동에 관한 것이다. 34) 朴 禹 東 ( 註 21), 11면. 35) 이에 따라 같은 날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도 개정되어 서울민사지방법원ㆍ서울형사지 방법원의 각 지원을 서울민사지방법원ㆍ서울형사지방법원ㆍ서울가정법원의 지원으로 하였다. 36) 1977년 8월 24일 개정된 위 규칙은 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방법원에서는 가정법원 가사과의 분장사무 를 민사과에서, 가정법원 호적과의 분장사무를 호적과에서 관장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 13 -
표 1 가정법원 법관 숫자의 변화 37)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원장1, 부장5, 판사 18 지원장1, 판사2 지원장1, 판사3 지원장1, 판사2 원장1, 부장5, 판사 18 지원장1, 판사3 지원장1, 판사5 지원장1, 판사2 원장1, 부장5 판사19 지원장1, 판사4 지원장1, 판사5 지원장1, 판사2 원장1, 부장5 판사 20 지원장1, 판사4 지원장1, 판사5 지원장 1,판사2 원장1, 부장6 판사 20 지원장1, 판사4 지원장 1, 판사5 지원장 1, 판사2 원장1, 부장6 판사 20 지원장1, 판사4 지원장 1, 판사5 지원장 1, 판사2 서울가정법원 설립당시에 법관 4명, 조사관 10명, 일반직 고용직을 포함하여 모두 74명 의 인원으로 출발하였으나 38) 현재 서울가정법원은 원장, 부장 6명, 판사 20명 이외에 131 명의 일반직원 이외에 별도 인원으로 계약직 조사관 4명, 속기사 3명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가사사건의 계속적인 증가에 비추어 볼 때 성장은 매우 미흡하다. 1964년 가사심판사건 2,617건 39) 에 비해 2006년 소송사건은 46,584건으로 17.8배 정도 늘 어났는데, 법관 숫자는 6.5배, 직원 숫자는 약 2.1배 증가에 그쳐서 가정법원의 인원이 더 욱 충원될 필요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2 가정법원 사건수의 변화 40) 심판사건 조정사건 1964 2,617 978 1965 2,661 1,033 소송사건 조정사건 2005 42,855 3,173 2006 46,584 3,675 4. 가정지원의 설치 2001. 1. 29. 가사사건 소년보호사건 및 호적사건 처리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가 정법원이 설치되지 아니한 지역 중 일부지역에 이러한 사건을 전담하는 가정지원을 설치하 는 내용으로 법원조직법이 개정되고,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법률이 개정되어 37) 2002-2007 사법연감. 38) 朴 禹 東 ( 註 21), 13면. 39) 朴 禹 東 ( 註 21), 15면 표에서 인용. 40) 朴 禹 東 ( 註 21), 15면 표와 2006,2007년 사법연감에서 인용. - 14 -
2001. 3. 1.에서야 대구, 부산, 광주지방법원에 있던 소년부 지원을 폐지하고 가정지원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서울가정법원이 설치된 지 무려 37년만의 일이다. 뒤이어 2007. 2. 1.에는 대전지방법원에 가정지원이 설치되었다. 第 4 節 家 事 調 停 制 度 와 家 事 調 査 官 制 度 1. 가사조정제도 가. 가사조정위원회의 설치 제정된 가사심판법에 따라 조정위원규칙도 개정되었다. 조정위원규칙 41) 에서는 가사심판법 에 의한 조정위원이 될 수 있는 자의 위촉 등에 관하여서는 가사심판법에 정하는 것을 제외 하고는 조정위원규칙에 따르도록 하고(제1조),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 공무원으로서 면직의 징계처분을 받은 자, 변호사로서 제명의 징계처분을 받은 자 를 조정위원 결격자로 하고, 조정위원의 원수는 10명 이상 30명 이내로 하되, 가정법원장은 조정위원이 불미한 행위가 있는 때에는 그 위촉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위 규정에 따라 전국법원에서 가사사건의 조정을 위한 조정위원의 위촉이 이루어졌으며, 서울가정법원 에서도 1963년 13명의 조정위원을 위촉하고 1964년에는 27명의 위원을 위촉하였다. 나. 가사조정제도의 변화 가사심판법에서는 갑류 및 을류에 규정한 사건을 제외한 가사사건에 대하여 조정을 하도 록 하였다(제10조). 또한 조정을 행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 저 가정법원에 조정신청을 하고, 조정신청을 거치치 않고 심판을 청구한 때에는 법원이 조 정에 회부하도록 하였다(제11조). 조정위원회의 평의는 비밀로 하고 조정은 공개하지 않으 며,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였다(제19조). 가사심판법에서는 가사조정에 관한 자세한 규정을 두지 않았으나 제정된 가사소송법에서 는 가사조정위원회의 구성, 조정위원의 위촉과 임무, 조정에서 고려할 사항 등을 자세히 규 정하였다. 가사소송법 제49조는 가사조정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조정법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였고, 나, 다류 가사소송사건과 마류 가사비송사건에 대 하여 조정전치주의를 규정하고,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조정신청을 거치지 않고 소송이나 심 판을 청구하면 가정법원이 그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도록 하였다(제50조). 가사조정사건은 조정장 1인과 2인 이상의 조정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에서 처리하도록 하고(제52조), 조정위원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로서 미리 가정법원장 또는 가정법원지원장이 위촉한 자 또는 당사자가 합의에 의하여 선정한 자 중에서 조정장이 지정한다고 규정하였다(제53조). 조정위원은 조정위원회에서 행하는 조정에 관여하는 외에 가정법원. 조정위원회 또는 조정 담당판사의 촉탁에 따라 다른 조정사건에 관하여 전문적 지식에 따른 의견을 진술하거나 분 쟁의 해결을 위하여 사건관계인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제54조). 조정위원회가 조 정을 함에 있어서는 당사자의 이익 외에 조정으로 인하여 영향받게 되는 모든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고려하고 분쟁의 평화적, 종국적 해결을 이룩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마련하여 당사 자를 설득하도록 하고, 미성년자인 자의 이해와 직접 관련되는 사항을 조정함에 있어서는 미성년자인 자의 복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제58조)고 규정하였다. 뒤이어 민사조정법이 1992. 11. 30. 개정되어 조정담당판사가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41) 1963. 11. 11. 대법원규칙 제218호. - 15 -
하도록 하고(제30조), 2주 이내에 위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는 내용(제34조)으로 개정되어 가사조정에서도 위 규정을 준용하게 되었다. 다. 가사조정위원회의 변화 1990. 8. 31. 전면개정된 조정위원 규칙 42) 에서 처음으로 민사조정법에 의한 조정위원과 별도로 가사심판법에 의한 조정위원을 구분하고(제1조), 가정법원(가정법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 있어서는 지방법원)장은 가정법원본원, 지원 및 지원 순회심판소 소속 가사조정위원 을 매년 위촉하되, 가정법원 지원장에게 가정법원지원 및 지원순회심판소 소속 가사조정위 원의 위촉 및 해촉에 관한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제2조 제2항). 또한 금치산 자 및 한정치산자,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자, 공무원으로서 면직의 징계처분을 받고 당해처 분일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변호사로서 제명의 징계처분을 받고 당해처분일로부 터 3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 법무사로서 영업정지의 징계처분을 받고 당해처분일로부터 3 년을 경과하지 아니한 자로 결격사유를 규정하고(제3조), 해촉사유로 조정위원이 심신상의 장애로 직무집행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될 때, 직무상 의무위반, 기타 조정위원으로서 부적당 한 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때(제4조)를 규정하였다. 1990. 12. 31. 제정된 가사소송법은 가 사조정사건은 조정장 1인과 2인 이상의 조정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처리하도록 하 고, 서울가정법원은 1991. 3. 18. 가사조정사건 처리절차 내규를 제정하여 조정담당판사 3 명과 조정위원회로 하여금 가사조정사건을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조정위원 규칙에서는 처음 조정위원의 숫자를 10인 이상 30인 이하로 하였다가, 1964. 10. 26 규정을 개정하여 10명 이상 100명이내로 하였다. 서울가정법원 및 다른 지방법원도 매년 위원을 위촉하였으며, 최근 가정법원 및 지원에서 의 조정위원의 변동을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서울, 부산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반면, 대 구는 오히려 감소하였고, 광주는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법원마다 편차가 크다. 표 3 가사조정위원회 조정위원 숫자 43) 서울 대구 부산 광주 2001 68(100) 54(100) 23(100) 9(100) 2002 67(99) 51(94) 32(139) 9(100) 2003 81(119) 38(70) 33(143) 12(133) 2004 82(121) 43(80) 34(148) 32(356) 2005 110(162) 44(81) 39(170) 33(367) 2006 102(150) 42(78) 34(148) 35(389) *( )안의 숫자는 증감율, 단위 % 42) 1990. 8. 31 전문개정 대법원규칙 제1133호. 43) 2002-2007년 사법연감 자료. - 16 -
2. 가사조사관 제도 가. 가사조사관 제도의 시행 가사심판법은 제13조 제1항에서 조사관은 조정장의 명을 받아 조정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2월 이내에 문서작성. 자료수집 기타 필요한 조사를 하도록 하고, 제2항에서 조사관은 전항 의 조사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당사자, 참고인 또는 이해관계인을 소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가정법원 출범 당시에 법원 사무직렬에 조사사무직류를 설치하 고, 1963. 12. 11. 심리학전공자 김기환을 조사관 2급 갑류(이사관급), 박진수를 조사관 3 급 갑류(서기관급)로 특채하였고, 1964. 3. 1. 사회사업학을 전공한 백근칠을 조사관 2급 갑류로 특채하였고, 1966. 5. 10. 정신의학을 전공한 백상창을 조사관(부이사관급)으로 특 채하였고, 1967. 6. 30.에도 2인을 특채하였다. 44) 나. 가사조사관제도의 변화 1964. 3. 14. 개정된 가사심판규칙(대법원 규칙)에는 가정법원 조사관이 조사 결과를 서 면으로 조정장에게 보고하고, 말미에 의견을 붙이도록 하는 규정(제6조), 가정법원은 필요하 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조정 또는 심판기일에 조사관을 출석하게 할 수 있고, 의견진술도 할 수 있게 하는 규정(제8조), 가정법원은 사건처리에 관하여 사건 관계인의 가정 기타 환경을 조정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조사관에게 사회복지기관과의 연락 기타의 조 처를 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규정(제9조)을 마련하였다. 위 규칙 제7조에는 조사관은 필요 에 따라 사건관계인의 성격 경력 생활상황 재산상태 및 가정 기타 환경 등에 대하여 의학 심 리학 사회학 경제학 교육학 기타 전문적 지식을 활용하여 조사한다. 고 규정하고 있어 전문 조사관제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 12. 31. 제정된 가사소송법 제6조는 가사조사관에 대한 규정을 두었고, 제56조에 서 조정장 또는 조정담당 판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정을 하기 전에 기한을 정하여 가사조사관으로 하여금 사건에 관한 사실의 조사를 하게 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여 조정사건 에서 가사조사관에 의한 사실조사를 의무화하였다. 가사소송규칙에서 가사조사관이 사실조사 및 의무이행상태 점검, 당사자 또는 사건관계인 의 가정 기타 주위 환경의 조정을 위한 조치를 행하도록 하는 규정(제8조), 조사를 명령받 은 사항에 관하여 독립하여 조사할 수 있는 규정(제9조), 조사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2월 이 내에 조사를 완료하도록 한 규정(제10조) 등을 마련하였다. 다. 가사조사관의 변화 가정법원 설립 후 전문조사관 제도를 지향하여 앞서 본 바와 같이 전문조사관을 특채하였 고, 1972. 7. 16.에는 최초로 조사관보 공채시험이 있었다.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 10명과 앞의 특채된 사람 가운데 1981년도까지 7인이 서울가정법원의 조사관보로 근무하고 있다가 그중 2명이 일반사무관으로 전직을 하였다. 이들은 10년 가까운 기간 조사관실 근무만을 하였는데 승진의 기회가 없어서 실의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45) 그 후 1983. 9. 두 번째 조사주사보공채시험이 시행되어 10명이 채용되었고, 다시 1988. 5. 28. 조사주사보 공채시 험이 시행되어 11명이 추가채용되었다. 46) 그러나 대부분 전직하거나 퇴직하고 조사업무는 44) 朴 禹 東 ( 註 21), 28면. 45) 朴 禹 東 ( 註 21), 29면. 46) 李 在 華 ( 註 25), 32면. - 17 -
법원일반직공무원이 담당하여 전문성과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러 한 현실에 대해 어제까지 민형사 재판의 참여를 맡고 있었거나 등기사무를 담당하고 있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가정법원의 조사관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는 조사관 제도의 취지와 는 방향을 달리하는 인사 정책임이 분명하다 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47) 한편 1997. 12. 13. 가정폭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이 제정되어 1998. 7. 1. 시행됨에 따라 가정보호조사관이 신설되었고, 1999. 12. 31. 개정된 법원조직법 제54조는 사법보좌 관의 업무에 가사소송법, 소년법 및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따른 조사업무를 포함하도록 개정하였다. 전체적으로 가사조사관 제도와 근거 법률은 있었지만, 전문조사관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 적 뒷받침이 미흡하였다. 조사관들에 대한 연수 및 교육체계가 없고, 조사사무 직렬화 및 승진 체계 등 조직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반직조사관과 전문조사관의 이원화된 구조가 연속되면서 전문조사관의 사기와 업무동기가 저하되었고, 조사관 전문화에 대한 일 관성 있는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전문법원으로서 가정법원의 위상 및 이 에 기초한 조사관 전문화에 대한 사법부 내 외적 이해와 공감대가 부족하여 지속적인 제도 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사, 가정보호 사건의 특수성에 맞는 사건처리를 위해 조사관의 역할이 중요한 데, 조사관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2003. 9. 3. 법원조사관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였다. 48) 법원조사관등규칙 제2조 제1항에서는 법원조사 관은 4급 5급 법원공무원 또는 법원조직법 제54조 제4항에 의하여 파견된 공무원으로 지정 한다., 제2항에서는 가사조사관 소년조사관 및 가정보호사건조사관은 조사서기관 조사사무 관 조사주사 조사주사보 또는 이에 상당하는 계약직공무원 중에서 지정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서기관 법원사무관 법원주사 또는 법원주사보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 고 규정하여 일반조사관과 별도로 가사, 소년, 가정보호 사건 조사관은 조사직렬 공무 원으로 충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다음 표는 최근 몇 년간 가정법원과 지원의 가사조사관 숫자의 변동상황이다. 표 4 가사조사관 숫자의 변동 49)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소년 가사 가정 보호 계 가정 소년 가사 보호 계 가정 소년 가사 보호 계 가정 소년 가사 보호 계 2001 5 11 5 11 2 1 1 3 2 1 1 3 1 1 1 1 2002 6 9 9 15 2 2 2 3 1 2 1 3 1 1 1 1 47) 李 在 華 ( 註 25), 31면. 48) 송현종, 가정법원 조사관 제도에 관한 소고, 서울가정법원 실무연구 11, 254면. 49) 2002-2007년 사법연감. - 18 -
2003 2 16 15 18 3 3 2 4 1 2 2 3 1 2 1 2 2004 1 19 2 21 3 3 2 4 1 2 1 3 1 3 1 3 2005 2 20 2 24 3 3 2 4 1 2 1 3 1 2 1 2 2006 3 20 3 26 1 5 1 5 1 2 1 3 1 2 1 2 第 5 節 家 事 關 聯 判 例 의 動 向 1. 實 體 法 여기서는 우선 민법제정 전의 관습법에 관한 것과, 민법 제정 후의 것으로 나누어 살펴본 다. 그리고 민법 제정 후의 판례로서는 법원의 판례 외에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아울러 살펴 보기로 한다. 가. 관습법에 관한 판례 (1) 개정 조선민사령에 의한 婿 養 子 및 異 姓 養 子 의 허용 여부 종래 우리나라의 관습상 養 父 와 姓 과 本 을 달리하는 이른바 異 姓 養 子 는 허용되지 않는 것 으로 보아 왔다. 그리고 사위를 양자로 하는 婿 養 子 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1939. 11. 10. 制 令 제19호로 개정되어 1940. 2. 11.부터 시행된 朝 鮮 民 事 令 은 제11조의 2를 신설하 여 이성양자와 서양자를 허용하였다. 즉 동조 제1항은 朝 鮮 人 의 養 子 緣 組 에 있어서 養 子 는 養 親 과 姓 을 같이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단 死 後 養 子 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라고 규정하였고, 제2항은 婿 養 子 緣 組 은 養 子 緣 組 의 申 告 와 동시에 婚 姻 申 告 를 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 1949. 3. 26. 선고 1948 民 上 348 판결 50) 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개정 조선민사령 제11조의 2 제2항에 기하여 신고한 壻 養 子 緣 組 가 무효라고 판시하였 다. 즉 저 往 年 倭 政 期 間 에 그 所 謂 壻 養 子 制 度 를 盲 從 한 者 임을 可 知 이며 壻 養 子 란 자는 養 子 로서 同 姓 系 統 에 不 合 할 뿐 아니라 妻 父 媤 父 養 父 및 子, 壻, 女 婦 의 名 分 을 雜 紊 亂 하고 그 結 果 婚 姻 또한 養 兄 妹 間 嫁 聚 로 歸 屬 하여 一 大 亂 倫 行 爲 됨을 未 免 할 者 로서 이러한 蠻 夷 的 壻 養 子 制 度 는 倭 政 退 却 과 同 時 에 自 然 消 滅 되었음은 毋 論 이어니와 이에 의하여 成 立 된 壻 養 子 關 係 는 上 來 敍 述 과 같이 公 序 良 俗 에 違 反 되므로 그 成 立 當 初 부터 無 效 되는 바이다. 다른 한편 이성양자에 대하여도, 대법원은 위 조선민사령 개정 전후를 불문하고, 依 用 民 法 시행 당시에는 이성양자 제도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다만 宦 官 家 와 奉 侍 家 에 한하여 이성 양자제도가 인정되었던 때가 있었으나 그것도 1915. 4. 1. 改 正 民 籍 法 실시와 동시에 철폐 되어 민법 시행 전일인 1959. 12. 31.까지에는 이성양자는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그 기간 동안의 이성양자의 입양은 법률상 당연무효라고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51) 50) 法 曹 協 會 雜 誌 제1권 3호(1949. 6), 95-100면 및 4호(1949. 7), 93-95면; 鄭 光 鉉, 韓 國 家 族 法 硏 究, 1967, 276면 이하. 51) 대법원 1967. 4. 24.자 65마1163 결정(대법원판례집 제15권 1집 민334면); 1967. 10. 31.자 67 마823 결정(대법원판례집 제15권 3집 민247면); 1968. 1. 31. 선고 67다1940 판결(대법원판례집 제16권 1집 민31면); 1968. 11. 26.선고 68마1543 판결(대법원판례집 제16권 3집 민240면); 1970. 3. 24.선고 69다1400 판결(대법원판례집 제18권 1집 민254면); 1970. 6. 30. 선고 69므6,7-19 -
그러나 대법원 1994. 5. 24. 선고 93므119 전원합의체 판결 52) 은, 1939. 11. 10. 신설 되어 1940. 2. 11.부터 시행된 조선민사령 제11조의2는 제1항에서 "조선인의 양자연조( 養 子 緣 組 )에 있어서 양자( 養 子 )는 양친( 養 親 )과 성( 姓 )을 같이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후양자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사후양자가 아니면 양친과 성을 달리하는 이성의 자도 양자로 하는 것이 허용됨을 명백히 하였으므로, 1940. 2. 11.부터는 사후양자가 아닌 한 이성의 자도 양자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고 하여, 종래의 판례 중 조선민사령 제11조의 2가 시행된 후에도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날인 1959. 12. 31.까지는 이성의 자를 양자로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석한 의견은 변경하 였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1954. 7. 29. 성이 다른 사람을 친생자로 출생신고한 것에 입양으 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53) (2) 相 續 回 復 請 求 權 의 消 滅 時 效 과거의 朝 鮮 高 等 法 院 판례는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 침해의 사실을 안 때로부터 6년, 상속개시의 때로부터 20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하는 것이 조선의 관습이라고 하 였다. 54) 정부수립 후의 대법원 판례도 현행 민법 시행 전의 상속회복청구권에 관하여는 이 와 같은 조선고등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55) 그런데 대법원 2003. 7. 24. 선고 2001다48781 전원합의체 판결 56) 은 이러한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즉 제정 민법이 시 행되기 전에 존재하던 관습 중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이 개시된 날부터 20년이 경과하면 소멸한다"는 내용의 관습은 이를 적용하게 되면 위 20년의 경과 후에 상속권 침해행위가 있을 때에는 침해행위와 동시에 진정상속인은 권리를 잃고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결과가 되 므로 진정상속인은 모든 상속재산에 대하여 20년 내에 등기나 처분을 통하여 권리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무거운 부담을 떠안게 되는데, 이는 소유권은 원래 소멸시효의 적 용을 받지 않는다는 권리의 속성에 반할 뿐 아니라 진정상속인으로 하여금 참칭상속인에 의 판결(대법원판례집 제18권 1집 민254면. ; 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9399 판결( 公 1992, 3230면) 등. 52) 대법원판례집 제42권 2집 특별 336면. 53) 그런데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하여는, 이성양자제도는 창씨개명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1946년 10월 23일 발표된 軍 政 法 令 제122호 朝 鮮 姓 名 復 舊 令 에 의한 創 氏 制 度 의 철폐가 異 姓 養 子 制 度 의 철폐도 포함하는 것이 고, 따라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세월의 경과에 따라 創 氏 改 名 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흐려진 상태에서 내려 진 잘못된 판결이었다고 하는 비판이 있다. 정인섭( 註 3), 284면 이하. 그러나 위 글이 원용하고 있는 1947. 11. 18.의 司 法 部 長 通 牒 ( 韓 國 戶 籍 및 寄 留 例 規 全 集, 83면: 異 姓 養 子 緣 組 는 朝 鮮 慣 習 上 의 異 姓 不 養 及 朝 鮮 姓 名 復 舊 令 立 法 趣 旨 에 鑑 하여 妥 當 치 아니함으로 同 件 에 關 하여는 受 理 할 수 없으며 貴 管 下 戶 籍 吏 에게 周 知 徹 底 를 期 하시기 玆 而 通 牒 함 )은, 일본의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창씨 개명에 대한 해방 후의 민족감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인다. 尹 眞 秀, 1990년대 親 族 相 續 法 判 例 의 動 向, 서울대학교 法 學 제40권 3호, 1999, 309면 이하 등 참조. 창씨개명의 문제에 관한 한 권위자 라고 할 수 있는 鄭 光 鉉 교수는 조선민사령 개정 당시인 1939년과 1940년에 발표한 글에서 창씨의 문제와 서양자 및 이성양자의 문제를 독립하여 언급하고 있고, 창씨제도가 서양자와 이성양자의 전제라고는 설명하고 있지 않으며, 또 조선성명복구령에 의하여 무효로 된 법령 등을 열거하고 있으면서도 조선민사령 제11조의 2 는 들고 있지 않다. 鄭 光 鉉 ( 註 50), 24면 이하, 45면 이하, 65면 참조. 또한 尹 天 熙, 宦 官 異 姓 養 子 是 非, 법 률신문 제725호(1967. 5. 22.), 5면 참조. 54) 朝 鮮 高 等 法 院 1935( 昭 和 10). 7. 30. 聯 合 部 판결( 錄 제22권 302면 이하); 1937( 昭 和 12). 8. 27. 판결( 錄 제24권 317면); 1939( 昭 和 14). 6. 30. 판결( 錄 제26권 276면) 등. 이에 대하여는 尹 眞 秀 ( 註 9), 相 續 回 復 請 求 權 의 硏 究, 196면 이하 참조. 55) 대법원 1962. 6. 21. 선고 62다196 판결; 1981. 1. 27. 선고 80다1392 판결( 集 29권 1집 민142면); 1991. 4. 26. 선고 91다5792 판결( 公 1991상, 1503); 1996. 12. 6. 선고 96므1137 판결( 公 1997상, 206) 등. 56) 公 2003하, 1785. - 20 -
한 재산권침해를 사실상 방어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로 되어 불합리하고, 헌법을 최상위 규 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이 없으므로, 위 관습에 법 적 규범인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 변경은,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던 2002. 1. 14. 개정되기 전의 민법 제999조 제2항 중 "상속이 개시된 날부터 10년" 부분과 1990. 1. 13. 개정되기 전의 제999조에 의하여 준용되던 제982조 제2항 중 "상속이 개시된 날로 부터 10년"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고한 헌법재판소 2001. 7. 19. 선고 99헌바9 등 결정 57) 을 참조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 판결은 종중원의 자격은 성년 남자에 한한다고 하는 구 관습은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과 합리성 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본 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58) 과 함께, 더 이상 대법원이 과거의 조선고등법원 판례 를 고수하지 않고, 헌법 이념에 비추어 새로운 판단을 하려는 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 다. 나. 민법 시행 후의 판례 민법에 관한 판례 중 일반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판례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그리고 법원의 판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가족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들도 포함시켰다. (1) 異 姓 同 腹 의 형제자매가 친족에 포함되는가 1990년 민법개정 전에는 혈족의 범위에 관하여 남녀의 차별을 두어, 8촌 이내의 부계혈 족, 4촌 이내의 모계혈족, 夫 의 8촌 이내의 부계혈족과 4촌 이내의 모계혈족, 처의 부모 및 배우자로 하였으나, 1990년 개정법은 이러한 구별을 철폐하였다. 개정전 민법하에서는 이러한 남녀의 차별에 따라 친족의 범위에 혼란이 있었다. 즉 판례 는 민법 1000조 1항 3호의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피상속인의 부계방계혈족을 의미한다고 하여 모계의 형제자매(동복이부의 형제자매)는 친족이 아니라고 하여 상속권을 부인하였 고 59) 姨 從 四 寸 은 각 자기의 직계존속의 자매의 직계비속이므로 친족이 아니고 60), 외할머니 의 친동생은 친족이 아니며, 61) 아버지의 4촌 누나의 손자도 친족이 아니라고 하였다. 62) 원 심에서는 직계존속의 형제의 직계비속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에 대하여는 논란 이 많았다. 그런데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6다5421 판결 63) 은 종전판례와 달리 1990년 개정된 민법 시행 후에는 피상속인과 이성동복의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상속인이 된다고 하였다. 이 판결은 그 근거로서, 1990년 개정된 민법 제1000조 제1항 제3호가 제3순위 상속인으로 들고 있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민법 개정시 친족의 범위에서 부계와 모계의 차별을 없 애고, 상속의 순위나 상속분에 관하여도 남녀 간 또는 부계와 모계 간의 차별을 없앤 점 등 57) 헌법재판소판례집 13권 2집 1면 이하. 58) 公 2005하, 1326. 이 판결에 대하여는 尹 眞 秀, 變 化 하는 사회와 宗 中 에 관한 慣 習 사법 창간호, 2007, 1 면 이하 참조. 59) 대법원 1975. 1. 14. 선고 74다1503 판결( 公 1975, 8292). 60) 대법원 1980. 9. 9. 선고 80도1335 판결( 公 1980, 13139). 61) 대법원 1980. 4. 22. 선고 80도485 판결( 公 1980, 12833). 62) 대법원 1991. 8. 27. 선고 90도2857 판결( 公 1991, 2463). 63) 公 1998상, 32. - 21 -
에 비추어 볼 때, 부계 및 모계의 형제자매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 다고 하였다. 이 판결은 민법이 개정되었음을 근거로 하여, 판례변경의 절차 없이 종전의 판례와 태도를 달리한 것이다. 64) 그러나 종전의 판례에 대하여도 이성동복의 형제자매는 친 족으로 보아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65) 어쨌든 이 판결은 친족법이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 호주제의 위헌성 종래 민법이 규정하고 있던 호주제도에 관하여는 그것이 남녀평등의 원칙이나 인간의 존 엄과 같은 헌법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헌법재 판소 2005. 2. 3. 선고 2001헌가9 등 결정 66) 은 호주제를 규정하고 있는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 였다. 다수의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다수의견은 호주제가 우선 남녀평등에 위반된다고 하였다. 즉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 과 가족생활에서 양성의 평등대우를 명하고 있는데, 남계혈통 위주로 가를 구성하고 승계한 다는 것은 성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남편과 아내를, 아들과 딸을, 즉 남녀를 차별하는 것이고,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가 태어나면 당연히 부가( 父 家 )에 입적된다는 것은 부계혈통 우위의 사고에 기초한 것인데, 이는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하며, 부에 비하여 모의 지위를 열위에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다수의견은 호주제의 위헌성을 개인의 존엄 위반에서도 찾고 있다. 즉 헌법 제36 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가운데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혼인 가족생활의 형성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법률의 힘만 으로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에 반하는 것으로서,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와 자결권을 무시한 채 남계중심의 가제도의 구성을 강제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분당사 자의 법률관계를 일방적으로 형성하고 있으며, 혼인과 가족생활 당사자의 복리나 선택권을 무시한 채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법으로써 일 방적으로 규정하고 강요하는 것인데, 이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67) 그러나 위 결정은 위헌결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를 기준으로 가별로 편제토록 되어 있는 현행 호적법이 그대로 시행 되기 어려워, 신분관계를 공시 증명하는 공적 기록에 큰 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로 단순위헌 결정 아닌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한다고 하였다. 다만 위 결정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의 심의가 막바지에 이른 단계어서 선고된 것이어서, 실제의 의미는 많이 감퇴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호주제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위 법률안은 2005. 3. 2. 국회에서 의결되어 2005. 3. 31. 공포되었고, 68) 이처럼 호주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호주제도를 전제로 하는 호적법의 64) 같은 취지,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도7062 판결( 公 2008상, 2084): 혈족의 범위를 정한 민법 제 768조에서 말하는 형제자매 라 함은 부계 및 모계의 형제자매를 모두 포함하므로, 이복형제가 정치자금법 제 45조 제1항 단서의 친족 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65) 朴 秉 濠, 同 母 異 父 兄 弟 姉 妹 의 財 産 相 續 權, 家 族 法 論 集, 1996, 442면 이하( 初 出 : 法 律 新 聞 1977. 8. 1. 자); 金 疇 洙, 親 族 의 槪 念 과 그 範 圍 ", 韓 國 家 族 法 과 課 題, 1993, 728면 이하( 初 出 : 法 律 新 聞 1982. 5. 3. 자) 등. 66) 헌법재판소판례집 제17권 1집, 1면 이하. 67) 이외에도 위 결정은 헌법과 전통의 관계 등 여러 논점에 관하여 흥미 있는 논변을 보여주고 있다. 상세한 것 은 尹 眞 秀, 傳 統 的 家 族 制 度 와 憲 法, 서울대학교 법학 제47권 2호, 2006, 147면 이하 참조. 68) 다만 호주제도 폐지의 시행은 2008. 1. 1.로 늦추어졌다. - 22 -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2007. 05. 17. 법률 제8435호) 이 제정되었다. (3) 父 姓 主 義 의 違 憲 性 2005년 개정 전의 민법 제781조는 子 는 父 의 姓 과 本 을 따르고 父 家 에 入 籍 한다 고 규 정하여 이른바 부성주의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2005. 12. 22. 선고 2003헌가5 6 결정 69) 은 위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 다. 다수의견은 부성주의의 원칙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한다. 즉 성은 개인의 권리의무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이 크지 않으며, 성의 사용에 대한 입법은 이미 존재하는 생활양식 을 반영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성의 사용에 관한 규율에는 폭넓은 입법형성의 자 유가 인정되는데, 부성주의가 모의 혈통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고 해서 그 자체 로 성의 본질에 반한다거나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할 수는 없고, 우리나라에서 도 부성주의는 규범으로서 존재하기 이전부터 생활양식으로 존재해 온 사회문화적 현 상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부성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생활양식으로서 위 법률조항은 그와 같은 생활양식을 반영한 것이고, 다만 일부 예외적인 상황 하에서는 부성주의의 강요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존 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성의 사용을 규율하는 입 법을 함에 있어 부부와 친생자로 구성되는 통상적인 가족만을 상정하고, 그 밖의 예외적인 상황에 처한 가족의 구성원이 겪는 구체적이고도 심각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실질적이고 궁 극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입법형성의 한계를 벗어나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경우에도 부성주의에 대한 예외를 규정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인격권을 침해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 헌 법 제10조, 제36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하면서, 위 민법 제781조 제1항 본문에 대하여 위 헌을 선고할 경우 부성주의 원칙 자체에 대해서까지 위헌으로 선언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 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개정 법률이 이미 공포되어 2008. 1. 1. 그 시행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2007. 12. 31.까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잠정적 인 적용을 명함이 상당하다고 선고하였다. 70) 그러나 위 결정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의 비판이 가능하다. 71) 우선 위 결정의 다수의견이 부성주의 자체가 합헌이라고 본 주된 근거는 결국 부성주의가 전통에 의하여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 그 자체가 법률이 합헌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별개의견도 부성주의 자체가 위헌이라고 보고 있으면서도, 2005년 개정된 민법 제781조 제1항 자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위 개정조항도 원칙적으로는 부 성주의를 유지하되 부모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그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 문이다. 72) 나아가 위 결정은 2005. 3. 31. 위 조항이 개정되고 나서 비로소 개정 전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영향력은 별로 크지 않다. 69) 헌법재판소판례집 제17권 2집 544면 이하. 70) 위 결정의 별개의견은 부성주의 자체가 위헌이라고 하였고, 반대의견은 위 조항이 합헌이라고 하였다. 71) 尹 眞 秀 ( 註 67), 傳 統 的 家 族 制 度 와 憲 法, 117면 이하 참조. 72)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 과 본을 따른다. - 23 -
(4) 同 姓 同 本 禁 婚 의 違 憲 性 종전의 민법 제809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던 동성동본금혼 제도를 유지할 것인가는 가족 법 제정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되었던 문제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하 여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다만 타협책으로 서 세 차례에 걸쳐서 "혼인에관한특례법"이라는 명칭으로 예외적인 특례법을 만들어 73) 그 법이 시행되는 기간 동안만 한시적으로 동성동본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1997. 7. 16.선고 95헌가6 내지 13 결정 74) 의 다수의견은, 同 姓 同 本 禁 婚 을 규정한 민법 제809조 제1항은 사회적 타당성 내지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음과 아울 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이념 및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 유지라는 헌법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남 계혈족에만 한정하여 성별에 의한 차별을 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도 위반되며, 또 한 그 입법목적이 이제는 혼인에 관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사회질서"나 "공공복 리"에 해당될 수 없다는 점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된다고 하였다. 다만 단순위헌 의견이 5인에 머물러서 위헌의견의 정족수인 6인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헌법불합치를 주장한 다른 2인의 별개의견에 따라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다. 이 결정이 가지는 의의는 매우 크다. 75) 우선 이 결정은 혼인의 자유가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임을 명백히 하였다. 이 점에서 이 결정은 서로 다른 人 種 간의 혼인을 금지하는 것 은 위헌이라고 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Loving v. Virginia 판결 76) 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결정은 동성동본금혼이 위헌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수십 년간 계속되어 왔던 동 성동본금혼제도의 존폐 논의에 일단락을 지은 것이다. 이 또한 중대한 정치적인 함의를 가 진다고 하겠다. 다만 위 결정은 동성동본금혼 규정이 위헌이라는 이유로서 헌법 제10조와 제36조 제1항 외에 평등원칙에 관한 규정인 헌법 제11조 제1항도 들고 있다. 그러나 제도 의 연유가 남녀차별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 남녀 모 두에게 적용되는 것인 한 이를 가리켜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77) (5) 假 裝 婚 姻 과 假 裝 離 婚 의 효력 종래의 판례는 당사자 사이에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가 없으면서 통모하 여 혼인신고만을 한 이른바 가장이혼의 경우에는 이를 무효라고 보고 있었다. 78) 반면 법률 혼의 당사자들이 실제의 공동생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협의이혼신고를 마친 이른바 가장 이혼의 경우 근래의 판례는, 협의상 이혼이 가장이혼으로서 무효로 인정되려면 누구나 납득 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당사자 간에 일시적으로나마 법률상 적법한 이혼을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이혼신고의 법률상 및 사실상의 중대 성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하여 원칙적으로 유효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가장이혼이라는 이유로 무효라고 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79) 73) 1977. 12. 31. 법률 제3052호; 1987. 11. 28. 법률 제3971호; 1995. 12. 6. 법률 제5013호. 74) 헌법재판소판례집 9권 2집, 1-31면. 75) 尹 眞 秀 ( 註 11), 憲 法 이 家 族 法 에 미친 영향, 252면 이하, 특히 256-257면 참조. 76) 388 U. S. 1(1967). 77) 尹 眞 秀, 女 性 差 別 撤 廢 協 約 과 韓 國 家 族 法, 서울대학교 법학 제46권 3호, 2005, 89면 이하 참조. 78) 대법원 1975. 5. 27.선고 74므23 판결; 1980.1.29. 선고 79므62,63 판결( 集 28권 1집 행24면) 등. 79) 대법원 1975. 8. 19. 선고 75도1712 판결; 1976. 9. 24. 선고 76도107 판결( 集 24권 3집 형1면); 1981. 7. 28. 선고 80므77 판결( 公 1981, 14264); 1993. 6.11. 선고 93므171 판결( 公 1993하, 2021) 등. 다만 초 기의 판례 가운데에는 가장이혼임을 이유로 무효라고 한 것도 있다. 대법원 1961. 4. 27. 선고 4293민상536-24 -
이처럼 판례가 가장혼인의 효력과 가장이혼의 효력을 서로 다르게 보고 있는데 대하여는, 양자가 저촉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리하여 대법원 1996. 11. 22. 선고 96도2049 판결 80) 의 원심판결은, 가장이혼에 관한 판례를 가장혼인에 끌어들여서, 혼인에 관한 엄격한 형식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의 법제 하에서는 혼인 당사자 사이에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지고 혼인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혼인신고 자체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 다면 적어도 혼인 당사자 사이에 일시적이나마 법률상 부부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사의 합치 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그 혼인신고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당사자 사이에 비록 혼인의 계속 자체에 관하여 의사의 합치가 있어 일응 법률상의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설정할 의사는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도 그것이 단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들 간에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효과의 사가 없을 때에는 그 혼인은 민법 제815조 제1호의 규정에 따라 그 효력이 없다고 하여 종 래의 판례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가장혼인과 가장이혼을 다르게 취급하는 근거에 대하여는, 협의상 이혼의 경우에는 이혼하려는 당사자 쌍방은 가정법원에 출석하여 이혼의사의 유무에 관하여 판사의 확인을 받아 그 확인서를 첨부하여 이혼신고를 하여야 하므로 협의상 이혼이 가장이혼으로서 무효로 인정되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반면, 혼인의 경우에는 그러한 절차가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학설로서는 이러한 대법원 판례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도 있으나, 81) 혼인이나 입양과 같은 신분관계를 창설하는 행위(창설적 신분행위)와, 이혼이나 파양과 같은 신분관계를 해 소하는 행위(해소적 신분행위)를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신분관계를 실현하려는 적극적 의사가 필요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신분관계를 해소하고 부부관계라는 법 적 구속에서 해방된다는 소극적 의사의 합치로 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82) 실제로 협의이혼에 대한 가정법원의 확인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가장이혼의 효력을 가장 혼인과 달리 볼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83)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혼인제도와 법률혼주의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법이 혼인을 보호하는 것 은 혼인신고가 되었다는 외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부의 공동생활이라는 혼인의 실 체를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실체관계를 형성할 의사가 없는 가장 혼인은 무효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혼인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법률혼주의의 원칙 에 따라 혼인신고가 그 요건이 된다. 그러므로 합의에 의하여 혼인신고를 없애 버린 당사자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이 계속 유지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6) 有 責 配 偶 者 의 離 婚 請 求 종래의 대법원 판례는 기본적으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 다. 84) 즉 혼인관계를 고의로 파기한 불법을 행한 사람에게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헌 법이 보장하는 혼인의 순결과 혼인당사자의 정절을 기대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며, 혼인 판결; 1967. 2. 7. 선고 66다2542 판결. 80) 集 44권 2집 형1012면. 81) 朴 秉 濠, 假 裝 離 婚 의 效 力, 民 事 判 例 硏 究 제1권, 1979, 180면 이하. 82) 金 敏 圭, 離 婚 實 態 와 假 裝 離 婚 의 法 理, 亞 細 亞 女 性 法 學 제4호, 2001, 136-137면. 83) 일본에는 협의이혼의 확인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판례는 대법원의 판례와 같이 가장이혼을 원칙 적으로 유효라고 보고 있다. 久 保 野 惠 美 子, 生 活 保 護 の 受 給 を 繼 續 する 方 便 としてなさふぇた 離 婚 届 の 效 力, ジュリスト No. 162 家 族 法 判 例 百 選 第 六 版, 2002, 24면 이하 참조. 84) 대법원 1965. 9. 21. 선고 65므37 판결( 集 13권 2집 민148면) 등 다수. -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