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행위주의 및 제도주의적 접근에 기반하여 김 영 용* 논문초록 1) 이 논문은 최근 경제학 교육에 소설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려는 시도에 대한 연구 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최근 출간된 경제학 소설들을 행위주의 및 제도주의라는 시각에서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행동의 합리성 가정, 보이지 않는 손의 정리, 정부 실패, 교역으로부터의 이득, 시장 경제 작동의 전제 조건들이라 는 주제들을 비판적으로 논의하였다. 핵심 주제어: 경제학 소설, 제도주의 경제학문헌목록 주제분류: A2, B4 *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e-mail: rladuddyd@gmail.com
36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Ⅰ. 서론 : 경제학 소설 의 역사 오늘날 많은 분과 학문의 교육 과정에서 보다 접근 용이한 매체들을 이용하여 복 잡한 원리를 소프트하게 가르치려는 시도가 유행하고 있다. 이 경우 활용되는 매체 는 영화로부터 소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경제학도 이에 예외는 아니어서 경제학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매체들이 검토되고 있다(Watts and Smith 1989, Watts 2002, Dawson 1982, Hansen 2002). 경제학 교육에 소설이나 우화 등 이야기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19세기에 이미 시 작되었다. 영국의 작가였던 해리엇 마티노(Harriet Martineau)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고전학파 경제학 이론을 해설하고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설이라는 방식을 채택 하였다 (O Donnell 1983, Sanders 2001). 물론 그 이후 이러한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 보다 본격적으로 소위 경제학 소설(economics novel) 이라는 것이 쏟아져 나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마 그 시작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 된 마셜 제본스의 연작 소설들일 것이다(제본스 2001a, 2001b, 2001c). 이들 최근의 경제학 소설들은 일부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바 대로, 경제학 텍스트 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대신 훌륭하게 그것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요컨대 경제학 소설은 경제학 학습 그 자체의 대안이 아니라 경제학적 주제를 다루 는 대안적 방법(Breit and Elzinga 2002) 이다. 아마도 이러한 접근은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경제학 입문자들에게 경제학적 추론 방식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 소설 가운데 몇몇은 여느 소설 못지 않은 뛰어 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은 경제학 교육에 소설이라는 매개를 도입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에 대한 검 토와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매체를 도입한 경제학 교육은 그 내용이 편파 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고 있는가? 또한 최근의 경제학 발전, 특히 행 위주의와 제도주의라는 최근의 경제학 연구의 성과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는가? 이 러한 문제들이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답변되어야 할 것들이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1) 주목할 만한 시도로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인 에인 랜드(Ayn Rand)를 꼽을 수 있다 (Fletcher 1974). 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자유시장 경제의 옹호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녀 의 저작 가운데 하나(랜드 2003)가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 이라는 이름으 로 한국에서 번역된 바 있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37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왜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경제학 교 육이 추구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앞서 언급한 경제학 추론 방식에 대한 접근 용 이성의 증대 보다) 더욱 근본적인 답변을 제시할 것이다. 이 글의 각 장들에서 최근 출간된 경제학 소설들 하나하나가 검토될 것이다. 2) 이 러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인간 행동의 합리성 가정, 보이지 않는 손의 정리, 정부 실패, 교환으로부터의 이득, 시장 경제 작동의 전제조건들이라는 주제들을 살필 것 이다. Ⅱ. 수요공급 살인사건 혹은 인간 행동의 합리성 가정 1970년대 후반 경제학자 브라이트와 엘징거는 마셜 제본스라는 필명으로 치명 적 균형 (The Fatal Equilibrium)이라는 제목의 경제학 소설을 출간하였다. 3) 이 작 품은 버진 아일랜드의 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는 경제학자 헨리 스피어맨 교수 의 이야기이다. 그는 모든 사물을 경제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이해한다. 예를 들어 그에게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둘 간의 효용함수가 상호의존적이라 는 의미이다. 그가 부인 피지와 호텔에서 머무는 동안 일련의 살인사건들이 발생하 는데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그러하듯이 지방 경찰은 이 사건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적 추론 방식에 힘입어 클라크 부부가 범인이라는 사실 을 밝혀낸다. 이 때 그가 사용한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수요법칙과 관련된다. 클라 크 부부는 상품 비용이 더 낮아진 후 오히려 그것을 덜 소비하는 행동을 보였고 이 러한 수요법칙의 위반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으며 이는 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그의 추론이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절대로 위반할 수 없는 경 제학 이론을 통해 수수께끼가 해결된 셈이다. 2) 이 글에서 다루는 경제학 소설들은 최근에 출간되었으며 한국에서 번역된 작품들로 한정하기 로 한다. 번역된 작품은 아니지만 Marks(2001), Walden and Walden(2006) 등의 작품 역 시 최근에 출간된 이러한 경제학 소설의 범주에 포함된다. 3) 이 책은 한국에서 수요공급 살인사건 으로 개명되어 출간되었다. 이후 그들은 Murder at the Margin(Jevons 1993), A Deadly Indifference(Jevons 1998) 등의 저서들 역시 출간하였 는데 이들의 저서 3권은 모두 헨리 스피어맨이라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범죄 문제를 해결 한다는 공통의 줄거리를 갖는다. 마지막 2권의 저서들 역시 효용함수의 치명적 유혹, 무차 별 곡선 위의 살인자 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38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이 소설을 통해 저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경제학 이론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 동 이면에 놓여 있는 숨겨진 논리와 의미를 밝혀낸다는 점이다(Btreit and Elzinga 2002). 밀톤 프리드만을 모델로 창조된 주인공 헨리 스피어맨 교수는 경제학이 일 상적 삶 속의 일들(the ordinary business of life) 을 4) 경제적 법칙에 기반해 연구하 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 경우 법칙은 반드시 합리성이라는 행위 원리를 따라야만 한다. 사실 저자들이 경제학 소설의 쟝르로 범죄추리소설을 선택하고, 경제학자가 그 소설 속 주인공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초자연적인 것 으로 보이는 범죄 사건이 탐정의 합리적 사고 과정을 통해 해결되듯이, 일견 비합 리적으로 보이는 인간 행동들 역시 경제학자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이 다. 즉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과 경제학자가 인간행동을 설명하는 일은 사실 상 동일한 지적 과정이다. 이러한 과학적 추론을 통해 두 경우 모두 미스터리로 보 였던 것이 해결된 셈이다. 5) 맨큐(2007)의 표현에 따르면 과학자, 경제학자, 형사 는 주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 을 갖는다. 두 저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듯이 많은 인간 행동이 합리적으 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장을 다 보고 계산을 해야 할 어느 주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거의 틀림없이 이 주부는 여러 계산대들 가운 데 가장 짧은 줄에 설 것이다. 사실 이 주부를 포함한 대부분 고객들의 합리적 행위 로 인해 모든 계산대의 줄은 그 길이가 거의 동일할 것이다. 계산대 줄의 길이가 동일하면 할수록 인간 행동은 더욱 더 합리적인 셈이다. 또한 출입금지 팻말이 붙 은 잔디밭 한가운데로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녀 새로 생긴 길의 경우 역시 인간 행동 의 계산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 경우는 합리성이나 계산적 동기가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을 압도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 행위의 사실상 더 많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 행위가 완전한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한 합리성에 4) 잘 알려진 바대로 이는 경제학에 대한 알프레드 마셜의 정의이다. 5) 그 자신이 또한 추리소설 작가였던 녹스의 추리소설작법 10계 에 따르면 두말할 필요 없이 탐 정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마력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제2규칙). 이와 마찬가지 로 인간 행동에 관한 경제학자의 추론 과정에서 인간 행위의 비합리성이 전제되어서는 안 된 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39 의해 인도되며 또한 어떤 경우 인간 행동은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은 허버트 사이먼과 다른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이래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Simon 1982, Elster 1983, 1989). 소설 속 주인공인 헨리 스피어맨에 따르면 인간 행동에 관한 설명은 합리성 가정 에 기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 행동에 관한 수수께끼는 영원히 퍼즐로 남는다. 한편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글자 뜻 그대로 인간 행동이 합리적이 라는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프리드먼과 앨치언에 의해 개발된 논리 인 as if 식 접근을 추종한다; 현상에서 사람들이 완전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요점은 근사적으로나마 그들이 완전합리적인 것처럼 행동하는가 이다. 아마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 지 않을 경우 경제주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쟁 노동시장에서 고용주들은 마치 그들이 한계 생산성 이론의 함의를 잘 알고 있으며 그에 순응하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Borjas 2005). 상당히 호소력 있는 합리성 가정의 이 변종 은, 그럼에도 몇 가지 중대한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설명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의사결정시 숙고비용 (deliberation cost)이 상당히 존재할 경우 합리성의 핵심인 최적화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Conlisk 1996). 이 경우 행위자는 최적화 대신 다른 의사결정 도구를 찾을 것인데 예를 들어 휴리스틱스(=주먹구구 법칙), 사회적 규범, 개인적 습관들이 그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도구들이 가져다 주는 의사결정 성과는 최적화의 성과보다 낮겠지만 의사결정 비용까지 고려한 순이득의 차원에서는 전자가 후자 보다 더 우 월할 것이다. 휴리스틱스나 규범, 습관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이제 우리는 완전 합리성이 아니라 제한 합리성에 의해 우리 행동이 인도된다는 사실을 인정해 야만 한다. (프리드먼과 앨치언 그리고) 헨리 스피어맨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의 경 우 경제학 이론이 오히려 제한 합리적 가정을 수용함으로써 인간 행동에 관한 더 나 은 예측이 가능하다. 제한 합리성을 발생시키는 편기, 휴리스틱스, 규범들은 만일 이것들을 모델에 포 함시키지 않았더라면 수수께끼로 남았을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날 다양 한 경제학 모델 안에 도입되고 있다(Conlisk 1996: 676쪽).
40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앞서 언급한대로 소위 as if 식 설명의 정당성은 생존가설(survival hypothesis)로 부터 나오며 따라서 만일 생존 가설이 무효화된다면 as if 설명 그 자체 역시 무력 화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비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이 소멸하지 않고 오래 동안 생 존한다는 근거와 증거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는 낭비적이라 할지라도 낮 은 생활 수준 아래에서 생존 가능하며,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는 노동자 역시 비록 낮은 임금에서이긴 하지만 역시 생존 가능하다(Conlisk 1996). 한편 기업의 경우 다 른 경제주체들과는 달리 예외적으로 생존가설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어찌되었거 나 비효율적인 기업들은 시장으로부터 퇴장당하지 않는가? 하지만 기업의 경우 역 시 이러한 직관과는 모순되게 상당한 정도의 조직상의 느슨함(organizational slack) 이 존재할 수 있으며 라이벤쉬타인의 X-비효율성은 6)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Perelman 2001).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으로 발휘되지만 어떤 경우 합리성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경우 역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행위의 레퍼런스로서 경험적 증거를 수집하고, 주어진 증거 자료로부터 신념을 도출하며, 다시 주어진 신념과 욕구들로 부터 행위를 도출해낸다. 인간의 행동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단계에서 최적 화나 합리성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엘스터의 연구(Elster 1989)에 따르면 사람들은 종종 이들 단계들 가운데 하나 이상을 통과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처음부터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한 경우를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험적 증거를 얼마나 수집해야 하는가를 계산해야 하는데 때때로 경험적인 정보 수집의 비용과 편익 구조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 또한 주어진 증거로부터 신념을 이끌어내는데 역시 최적의 의사결정이 요구되지만 이러한 필요는 현실에 존재하는 불확실성과 전 략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편 만일 의사결정주체가 불완전한 선호 순서 체계를 가질 경우(즉 기회집합 내 모든 잠재적 선택 안들을 비교하거나 순위 를 매길 수 없을 때) 대안들 모두에 흥미를 가질 수 있지만 막상 그 선택은 어려울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합리적 행위는 발생하기 조차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에는 태평양 전쟁 시기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대규모 해전에 6) 원래 X-비효율성 개념은 독점으로 인한 하버거의 후생 삼각형 크기가 예상보다 상당히 적게 계산된 것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갖는다. 바넥의 표현에 따르면 배분적 비효율성으로 인한 낭비가 파리에 비견된다면, 실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토끼만 하고, X-비효율성으로 인 해 발생하는 낭비는 코끼리 만하다고 볼 수 있다(Perelman 2001).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41 참가한 제독의 이야기이다. 적 함대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이 제독에 게는 무엇보다도 값진 정보인데 그와 같은 정보 획득의 비용 구조는 제독에게 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이 제독의 경우 함대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그것들 각각이 승리와 관련해 갖는 확률 값을 할당하기 어려우므로 매 우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확률 계산에 과거의 경험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적 함 대의 예상 대응 방식에 따라 이 제독이 취할 결정이 상이해지므로 전략적 상황이 발 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종종 제독의 신념이 비결정 상태(indeterminate state)로 빠 져들게 할 수 있다. 7) 마지막으로 제독은 적 함대를 격멸시키기 위해 서로 상이한 여러 가지 수단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정보 수집 비용과 관련 한 정보의 부재, 불확실성 및 전략적 상황, 비정상적인 선호함수, 이 모든 것들로 인해 해전에 참가한 제독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직관에 의존해 전투를 치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합리성 가정은 인간 행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설명하는 대 신, 특정 인간 행동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판별하는 규범적 잣대로 사용된다는 점이 야말로 헨리 스피어맨 사고의 단순성을 가장 잘 지적해준다. 다시 말해 합리적 선 택 이론은 실증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규범 경제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 이론은 사 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를 행동 이전에 미리 말해주고, 사람들이 이론 이 말한 바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 만일 사람들이 이론 이 말하는 바를 따르지 않으면 않을수록, 즉 비합리적으로 행동할수록, 이론은 부 적절해진다(Elster 1989). 그 결과 경제학 이론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고 특정한 행위 양식을 학습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이 경우 따라서 경제학이 인간 행위를 예측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학이 인간 행위의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 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일종의 내생성의 문제가 주는 함의는 이론은 그것이 기반하는 가정이 중요하다(Assumption matters Wight 2001) 라는 점 이다. 사람들은 최초의 가정에 더욱 더 노출될수록 그 가정에 부합하는 행동을 수 행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이론의 기능은 예측이 아니라 학습일 수 있다. 8) 7) 예를 들어 게임이론 모형 가운데 Chicken Game이나 Battle of Sex Game의 경우 복수의 내 쉬 균형이 발생한다. 8) 합리성 가정에 더해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론 역시 이러한 학습 효과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42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따라서 스피어맨이 예측한 것과는 달리 실제 세계의 경제 주체들과 범인들은 제 한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합리성이 결여된 행동조차 할 수 있고 합리적 행동 이 발생했다 해도 이는 외부의 학습에 의해 강제된 것이며 따라서 불완전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표준적인 경제학 추론을 적용한 경제학자는 개인 행동을 설명하는데 곤란을 겪을 수 있고 과학적 추리 과정을 수행한 탐정 역시 범인 찾기에 실패할 수 있다. 만일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만난다면 ad hoc reasoning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일상적 삶 속의 일들 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해가기 에는 앞서 제독이 당면한 문제와 너무나 닮아 있다. 요컨대 우리들 삶의 일상은 스 피어맨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복잡하고 심원하다. 수요공급 살인사건 의 저자들에 따르면 (앞서 이미 언급된 대로) 경제이론과 추 리소설 간의 상동성( 相 同 性 )은 어디까지나 경제학자와 탐정이 수행하는 과업의 동 일성에 기인한다. 한편 그 자신이 추리 소설광이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 네스트 만델은 또 다른 의미에서 경제이론과 추리소설 간의 상동성을 지적한 바 있 다. 그에 따르면 둘 간의 유사성은 경제학자와 탐정 모두가 합리성을 실마리로 미 스터리를 풀기 때문이 아니라 표준 경제학 이론을 포함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범죄소설의 변화 과정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9) 만일 만델에게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면 그것은 다름아닌 범인의 범죄 동기이다. 엄청난 분석 능력과 뛰어난 과학적 증 거 수집을 동원하는 추리소설이라 해도 범인의 범죄 동기(예를 들어 맹목적인 열정) 에 관한 설명에서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개인의 정서가 지배적인 범죄 동기라고 해도 현실의 사회적 맥락이 다른 정서가 아니라 왜 점점 더 광기를 생산하 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만델 84쪽). 따라서 부르주아적 합리주의 안에는 언제나 비합리성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부르주아 사회 그 자체가 거대한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부르주아 사회는 거대한 미스터리처럼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부르주아 사회에서 당신은 부지런히 일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잘못을 저 이는 인간 선호의 가변성(malleability)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서는 Ⅷ 절을 참고할 것. 9) 만일 만델이 브라이트와 엘찡거의 작품을 읽었다면 이제 탐정 및 범죄소설은 부르주아 이데올 로기를 수동적으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43 지른 것도 없는데 불가사의한 이유(가격이 떨어진다든가, 이자율이 상승한다든 가, 아니면 시장이 수축한다든가)로 그 일이 모조리 망해버린다. 부르주아 사회 에서 당신은 노예처럼 뼈빠지게 일을 하고 기계나 십장이 강요하는 규율을 모두 준수하면서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다그친 다. 그런데도 당신은 늘 해고당한다. 더 심한 경우, 당신은 예기치 않게 경기후퇴 나 장기적 불황, 심지어는 전쟁으로 타격을 입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신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 도 아니다(만델 2001, 130쪽). 즉 진정한 미스터리는 시장 경제 그 자체인데 왜냐하면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 를 취하는 사회에서는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특정한 방식은 직접 파악될 수 없 으며 대신 상품, 화폐 등과 같은 다양한 수량적 관계를 통해서만 표현되기 때문이 다(Tsuru 1993). Ⅲ. 보이지 않는 마음 혹은 보이지 않는 손 의 정리 미국 워싱턴시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에드워드 고교의 경제학 교사인 샘 고든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중요 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열렬한 자유시장론자이다. 그러나 같은 학교 영문학 교사인 로라 실버는 기업으로부터 소비자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경제 문 제 해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둘은 전적으로 상이한 사고를 가졌고 만나 면 늘 논쟁을 벌이지만 그럼에도 이 둘 사이엔 사랑이 싹튼다. 샘은 그의 학생들에 게 시장이 어떻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대부분의 정부규제가 왜 불필요한지 를 강의하지만 강의 내용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판단한 학교 당국에 의해 해고 당한다. 그럼에도 샘의 로라에 대한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이 소설은 일종의 액자 소설로 샘과 로라의 이야기 외에 또 다른 이야기가 독립 적으로 전개된다. 의약품 제조업체인 헬스넷의 CEO 크라우스는 전형적인 악덕 기 업가이다. 그는 자신의 신제품 테스트 결과를 거짓으로 발표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도록 정부 관리를 매수하며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여 국내 실업문 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멕시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한다. 더군다나 그는 기업 이윤을 지키기 위해 살인교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연방정부기관인 기업활동감시국
44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은 크라우스를 기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 헬스넷 이야기는 사실은 TV 드 라마인 것으로, 즉 허구인 것으로 밝혀진다. 고든이 강의와 로라와의 논쟁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은 인간의 자유였다. 그에게 인간의 선택을 가로 막는 모든 것들은 죄악에 다름 아니다. 그 죄악의 목록 에는 에어 백과 안전벨트의 의무적 설치 역시 포함된다. 그는 약간의 위험은 사람 들에게도 좋은 것 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고 지나친 안전은 우리의 인간성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고 본다. 자유에 대한 그의 신념은 노직(R. Nozick)의 꿈꾸는 기계에 관한 강의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5분간 꿈꾸는 기계를 타고 있는 동안 펼쳐 지는 상상의 삶은 실제의 삶 전체를 대체한다. 이 기계를 탄 사람은 삶의 온갖 쾌락 을 다 맛보지만 이러한 삶은 삶이 아니다. 샘 고든에 따르면 꿈꾸는 기계에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는 것 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들 분투하고 추구하고 발견하는 것들은 모두 인간이 선택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며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야 말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가장 적합한 도구 이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주지.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를 좋 아하는 것은 아니야. 정부가 아니라 자체적인 경쟁에 의해 규제되는 시장 기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기회를 우리 각자에게 제공하지 (로버츠 2005, 245쪽). 요컨대 샘 고든에 따르면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시장만이 가진 미덕이다. 비록 개인 입장에서 시장이 예측하 지 못한 부정적 결과를 발생시킨다 해도 이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 조정의 과정이고 상황을 개선시키는 과정이다(Fettig 2002). 10)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인이다. 이 과정을 문제로 인식하고 개입하는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그 자신이 문제거리이다. 11) 그 누구보다도 개인 스스로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10) 수요 공급 모델에서 이러한 과정은 외생 변수의 변화로 인해 곡선들이 이동하고 그로 인해 새 로운 균형점이 발생하는 비교정학모델의 조정과정으로 묘사된다. 11) 정부 실패의 문제는 Ⅳ절에서 상세히 논의될 예정이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45 개인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만 하다는 주장은 12) 분명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종종 우리 행동을 스스로 제약 아래에 둠으로써 결국 더 큰 후생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역설 역시 진리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인간 행위의 합리성에 관한 논의로 되돌아 가보자. 때때로 인간은 인지과정의 실패를 경험하며 이로 인해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이 왜곡될 수 있다. 13)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위험한 산업에서 일자리를 구한 노동자들은 그 산업에서 발생하는 사고 확률에 대한 그들의 추정을 변경시킨다. 그 결과 사고 확률을 낮출 안전시설을 이용할 기회가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선택하거나 구매하지 않을 수 있 다. 이 경우 잘못된 사적 신념(private belief) 형성에 14) 대해 국가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Elster 1989). 선택이 제약될 필요성은 비단 인간의 인지 실패에 의해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 다. 사회는 전체 구성원들에게 특별히 가치 있다고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 의 자유를 제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81년 미국섬유제조업연구소 대 도너반 소 송 사건(American Textile Manufacturer Institute vs. Donovan Case)에서 미국연방 대법원은 직업안전보건관리국(OSHA)이 정한 작업 조건 기준이 비용 편익 분석과 는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Campen 1986). 법원의 이러 한 판결은 작업 조건을 선택할 기업의 권리를 제약함으로써 비록 효율성은 어느 정 도 희생되었지만 사회 전체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보전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처럼 법원은 종종 경제적 관점에서 내려진 판단과는 상이한 판결을 내 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회 내에서 경제적 가치나 선택의 자유 이외에 또 다른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 스스로가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다. 15) 12) 따라서 샘 고든은 걸인에게 영양제를 주는 로라의 오빠의 행동을 비난하고 현금을 주어야 한 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자선 행위가 순전히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13)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부적절한 인지적 과정(cognition process)이 동기 상태 (motivational state)의 변화를 초래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Elster 1989). 14) 이와 유사한 사례가 현실에서 자주 발생한다. 위험한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사 람들은 종종 의사를 찾아가는 것을 연기한다. 혹은 체중이 느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체중 계에 올라가기를 꺼려한다(Elster 1989). 15) 물론 선택이 제약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경우 제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미국 법원은 자신의 건물 안으로 들어올 권리 역시 사유 재산권의 일부이며 사유 재산권을 존 중한다는 의미에서 연방정부가 지시한 건물의 설비안전검사를 방해한 기업에게 승소 판결을
46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자발적인 선택 제약의 문제와는 별도로 샘 고든의 주장은 또 다른 차원에서 재고 의 여지가 있다. 샘 고든이 시장에서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말할 때 그는 한 가지 심각한 혼동에 빠져 있다. 엄밀히 말해 이들 선택은 그 과정이 법적 허가를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자발 적(voluntary)이기는 해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 는 제약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자유 롭지는(free) 못하다(Manicas 2006). 극단적 인 경우 선택 가능한 모든 대안들이 선택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스럽지 못 하거나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취 해진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그 배경에는 우리의 자유를 제약하는 힘들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때때로 강제가 선택이라는 외양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산속의 강도는 여행자에게 돈과 목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하나 이 경우 선택의 여지 란 없다(Bowles and Edwards 1985). 노동 공급의 경우처럼 우리가 내리는 결정 가 운데 일부는 분명 이러한 문제 구조를 지닐 것이며 따라서 선택의 기회 집합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작을지도 모른다. 선택과 자유에 관한 샘 고든의 낙관적 견해는 로크적인 사고 안에서만 타당할 수 있다. 로크(Locke)는 개인이 시장 바깥에서 완전히 구성된 이후, 자발적으로 시장 교환에 참가한다고 믿었다(Prasch 1996). 개인이 인식할 수 없는 비용이 존재할 경 우(=외부효과) 혹은 더 나아가 통제할 수 없는 제약이 존재하는 경우(=기회집합의 제약) 개인은 시장 내부에서 최적의 선택을 수행하는데 실패하거나 혹은 불리한 선 택을 강제 당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노동자나 자본시장의 채무자의 경우 그러한 비 용이나 제약은 특히 두드러진다. 이는 고용계약이 노동자에게 부과하는 구조적인 불리함이나 금융 자원에 대한 접근 용이성에 있어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비대칭성 으로 표현된다. 16) 경제적 자유를 둘러싼 이러한 대립은 선택을 포함한 인간의 행위와 그것을 둘러 싼 사회 구조에 관한 경합적 모형들에 관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다. 보울즈와 진티 내린 바 있다. 이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과 인권이 충돌한 경우 전자가 더 우선된 다는 함의를 갖는다(Bowles and Gintis 1987). 16) 샘 고든의 자유와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소위 노동 상품 가정과 자산 중립성 가정이 만족되어야 한다. 첫째, 고용주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에 대하여 제품 구매자가 판매자에 대해 가지는 정도 만큼의 권력만을 행사하여야 한다. 둘째, 자본시장이 충 분히 경쟁적이어서 자산 소유권은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와 분리되어야 한다. 이 2가지 가정은 또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Bowles and Gintis 1987).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47 스(Bowles and Gintis 1987)는 인간 행위와 사회구조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모델로 교환모델과 연극모델을 비교한 바 있다. 전자는 모든 사회적 교류와 상호작용을 계 약을 매개로 한 시장 행위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이는 인간의 의도적 계산적 행위 를 잘 설명하는 모델이며 다름 아닌 샘 고든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러 나 이 모델은 사회의 규칙이 인간 행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행위 결과를 발생시 키는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노동력은 특수한 상품이고 자본에 대한 접근은 차별 적이라는 현실을 이 모델은 반영하지 못한다. 후자 모델은 바로 그러한 점들을 주 목하는데 이에 따르면 현실의 사회는 우리가 우리의 등 뒤에서 쓰여진 각본을 연기 하는 장소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경우 개인이 누리는 자유나 선택은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 아마 우리의 삶과 그것이 영위되는 사회는 교환모델과 연극모델의 중간 어느 곳 에선가 위치할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과소 사회화 견해는 후자의 과잉 사회화 견 해만큼이나 위험하다. 비록 사회가 연극모델만을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 것은 분명 오류이나 그럼에도 이 연극모델은 샘 고든이 생각하는 사회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 어진 사회인가를 지적해 주는 중요한 교육 도구가 될 수 있다. 세계 전체가 아니라 시장 안에서도 교환과 연극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장을 포함한 사회는 샘 고든의 생각 보다 더 복잡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결국 시장 기구야 말로 인간을 자 유롭게 만들 것 이라는 샘 고든의 생각은 너무나 순진하고 소박하다. 시장이 단지 교환 모델이라는 은유로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사고는 시장 내부에 서 작동하는 정치적 권력의 행사를 무시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효과를 갖는다. 신고 전파에 의해 조장된 이러한 주장은 경쟁 시장의 파라미터 조정과 깊은 연관성이 있 다. 시장 참가자의 수가 충분히 커진다면 경제주체들이 파라미터에 미치는 영향력 은 거의 0에 가깝게 되고 결국 모두가 파라미터 수용자(parameter taker)가 된다. 만일 경제가 실제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면 경쟁 시장을 통한 분권적 의사결정들 간의 조정과정은 정치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 경우 그 누구도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행위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7) 17)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고의 기원이 애덤 스미스에게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작 도덕 감정론 에서 교환모델을 연상시키는 사회에 대한 은유를 제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인간 사회를 체스 판에 비유한 것이 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스미스 이론 체계를 단순히 교환모델로 분류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특히
48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시장과 정치를 분리시키는 이러한 설명 방식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중요한 특징이 되어 왔다. 이러한 설명은 특히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의 경우 소수의 특권자가 다수 대중들의 노동 배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 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Lazonick 2003). 또한 이러한 설명 방식은 비교적 최근 등 장한 신제도학파 경제학에서도 수용된다. 예를 들어 하트의 논의에 다르면 시장과 그것을 구성하는 계약이 완전할 경우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시장 과 위계의 구분에 관한 윌리엄슨의 논의에서도 권위의 행사는 위계에 고유한 속성 으로만 이해된다(Bowles and Gintis 2000). 그러나 최근 미시경제학에서의 혁신에 비추어 보건대 이러한 전통적 주장은 계속 유지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 왈라스 경제학(Post Walrasian Economics)으로 통칭되는 최근의 이론적 혁신 가운데 하나는 계약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러한 입장에 선 한 모델의 분석(Bowles 2004, Bowles and Gintis 2000, 1993)에 따르면 시장은 이미 내부에 권력을 구조화하고 있다. 이 모델에 따 르면 불완전한 계약이라는 환경 아래에서 주인-대리인 모형을 활용해 강제 지대 (enforcement rent)를 정의할 수 있다. 18) 조건부 계약 갱신 모형(contingent contract renewal model)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접근의 경우 시장 청산은 실패하는데 이를 활용해 단측( 短 側, short side)은 강제지대를 이용한 위협을 사용하여 수량제 약 상태인 장측( 長 側, long side)의 행위를 변경시키고 자신의 이득을 증대시킨다. 만일 이 모델이 의미하는 바가 타당하다면 우리는 단측이 장측에 대해 권력을 행사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경쟁균형에서도 그러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요한 핵심은 왈라스 경제학적 추론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시장의 규율 기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장은 규율과 강제, 권력과 권위가 행사되는 곳이며 결국 샘 고든의 주장과는 달리 선택과 자유는 억압된다. 사무엘스(W. Samuels)의 스미스에 대한 해석은 주목할 만 한다. 그는 스미스의 국부론 에 서 경제를 구성원들 간의 상대적 권력에 기초한 상호 강제의 체계로 보는 이론 모형을 발견한 다... 이제 국부론 은 근대시민사회를 단순체계 가 아니라 선택과 권력에 대한 좀 더 포 괄적이고 복잡한 체계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박순성 2002, 124-125쪽). 요컨대 스미 스 이론은 사회를 교환모델과 연극모델의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 미스 이론 체계 내의 이중성에 관해서는 이 글 VI 장을 참고할 것. 18) 대리인이 주인이 바라는 성과를 올리게 하기 위해 후자는 전자에게 (+)의 경제적 지대를 제공 한다. 이는 제3자에 의한 강제가 없을 경우, 주인이 대리인에게 노력을 강제하기 위해 활용된 다는 의미에서 강제지대(enforcement rent)라고 명명된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49 인센티브는 자유와 더불어 샘 고든이 강조하는 또 다른 시장적 가치이다. 인센티 브는 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일종의 모터로 만일 이 모터에 문제가 생긴다면 시장은 원래 기대했던 성과를 산출하는데 큰 곤란을 겪을 것이다. 샘 고든이 수업시간에 이야기했던 옐로우스톤 공원의 사례는 이 문제를 아주 집약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 다. 이 사례에서 정부는 비버를 보호하기 위해 사냥허가를 통해 늑대 수를 줄이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늑대의 먹이 감인 고라니 수의 증대를 가져 왔고 이로 인해 고라니와 같은 풀을 먹는 비버에게는 더욱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왔다. 복잡한 시스템에 손을 대서 뭔가를 수정하게 되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그 중 한가지 결과는 명백해. (늑대 수의 감소로 인해: 필자) 고 라니가 많아지면 풀도 더 많이 뜯어 먹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지... 늑대들은 비 버를 먹고 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늑대들을 제거하면 비버에도 좋은 일이라고 생 각하겠지.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어... 의도가 좋을지라도 복잡한 시스템에 서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인센티브를 간과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 르게 되지(필자 강조). 1900년의 정부 관리들의 섣부른 판단이 옐로우스톤의 비 버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귀중한 야생의 세계를 거대한 고라니 농장으로 만 들어 버렸어. 하물며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동물이 아닌,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것 이야. 수많은 경제정책들은 그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지. 그리고 경제정책에서 파생되는 부정적인 영향은 쉽게 눈에 띄지 않은 경우가 있어... 정부에서 어느 특정 다수를 위해 만든 정책이, 바로 그 삶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어. 너희가 뭔가를 개선했 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정책을 세워서는 안돼. 정말 도움이 될 정책을 세워야지. 그리고 너희가 뛰어난 경제학자가 되려 한다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 고 노력해야 해(로버츠 2005, 242-244쪽). 일반적으로 인센티브란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자그마한 어떤 것(레빗과 더브너 2005) 으로 강력하면서도 미묘한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인센티브 구조에 변경을 가져다 주는 약간의 변화도 미묘한 작용을 통해 인 간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치 자연계의 균형에 인간이 개 입함으로써 교란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그러나 인센티브는 또한 쉽게 해 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 사회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기능 또한 가지고
50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있다. 샘 고든의 강의 가운데 영국으로부터 호주로 죄인을 이송해 가는 문제는 바 로 인센티브의 이러한 기능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호송 도중 많은 수의 죄인들이 자주 사망해버리는 것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이송 범죄자 수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부터 이송이 끝났을 때에도 살아남은 죄인의 수에 비례하여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유인 체계 변경을 시도하였다. 이 방법 은 누가 따로 호송선의 선장을 감시할 필요 없이 선장 스스로가 자신을 감시하는 방 법이었고 이러한 성과 분배제의 도입은 영국 정부를 괴롭혔던 문제를 너끈히 해결 하였다. 결국 인센티브 구조는 쉽게 왜곡될 수 있으면서도 또한 올바른 재산권 제 도를 도입하여 왜곡을 교정함으로써 인간 행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샘 고든 이야기의 요체이다. 식물이 굴광성( 屈 光 性 )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은 굴익성( 屈 益 性 )이라 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러한 인센티브 구조를 올바로 활용함으로써 파레 토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흠잡을 데 없으며 논박의 여지가 없는 진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 행위를 포함한 현실은 고든 스스로가 잘 표현하였듯이 실타래 처럼 꼬여 있으며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논의를 한 발 더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매우 유명해진 그니지와 러스티치니의 연구(Gnnezyand Rustichini 2000)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이파 지역 놀이방 을 대상으로 부모의 지각을 막기 위해 벌금 제도를 도입하는 실험을 행하던 중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해 냈다. 원래 벌금 제도 도입 이전에 한 놀이방 당 일주 일에 평균 8회 정도 지각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벌금 제도 도입 이후 지각은 2배로 증가하였다. 왜 기대와는 달리 재산권 제도의 도입을 통한 인센티브 효과가 정반대로 발휘되 었을까? 이 실험 결과를 둘러싸고 최소한 2가지의 대립적 설명이 가능하며 이러한 각 설명들은 인간 행동에 관한 이해에 있어 전혀 상이한 입장을 대변한다. 첫째는 신고전파 표준 모델(the canonical model of neoclassical) 신봉자들의 답변으로 이에 따르면 하이파의 실험 결과가 기존의 인센티브에 관한 논의에 수정을 요구하는 일 은 없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책정된 벌금이 충분히 높지 않아서 이며 따라 서 시장 상황에 맞게 다시 높게 설정된다면 지각률은 예측한 대로 감소할 것이다. 요컨대 인간 행위의 변경을 불러일으킬 경계(threshold)를 너머서 유인과 처벌이 가 해져야지만 이론이 예측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억제되기를 바라는 행동의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51 출현 빈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비용을 더욱 높여야 한다. 두 번째는 행위주의적 접 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답변으로 이들은 왜 벌금이 없었을 때 규칙을 준수하던 사 람들 조차 벌금이 도입됨으로써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고 지각을 하기 시작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최정규 2004). 19) 이들은 하이파의 실험이 인간이 경제적 유인과 물질적 동기에 의해서만 반응하는 존재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 을 요구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벌금이라는 재산권 제도의 도입은 인센티브에 영향 을 미칠 뿐 아니라 사람의 선호 까지도 변경시킨다고 본다. 인센티브-행위 곡선 (incentive-behavior locus)에서 재산권의 도입은 곡선 그 자체를 원점으로 이동시켜 인센티브 도입으로 예상되던 긍정적 행동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행위주의적 해석을 계속 밀고 나간다면 벌금과 같은 재산권 제도의 도입이 사회 적으로 바람직한 규칙이나 제도를 구축(crowding-out)할 수 있다는 결론에까지 도 달한다. 따라서 이러한 구축은 재산권을 정의하고 그것을 강제하는 것이 오히려 배 분적 효율성을 약화시킨다는 함의를 갖는다. 만일 행위주의적 해석을 진지하게 수 용한다면 인센티브에 관한 샘 고든의 절대적 확신은 다소 누그러져야 할 것이다. 분명 샘 고든의 이야기처럼 경제학자가 올바른 경제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동기 역시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아마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러셀 로버츠가 보이지 않는 마음 을 출간하기 일년 전,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낸시 폴브러(N. Folbre) 또한 동일한 제목의 저서 (Folbre 2001)를 출간 한 바 있다. 그러나 동일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은 전혀 상이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다름 아닌 보이지 않는 손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는 경쟁시장에서 작동하는 수요와 공급의 힘 을 뜻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사랑과 의무, 상호성 등과 같 은 가족적 가치를 의미한다. 러셀 로버츠 작품에 대한 한 논평자의 해석에 따르면 샘 고든과 로라 실버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기실 경제학과 윤리학이 서로 화해 하는 것을 뜻하며(Grassel 2003) 그로 인해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마음은 19) 필자에게 이 점을 일깨워 준 경북대 최정규 교수께 감사 드린다. 이처럼 서로 경합하는 해석 은 최후통첩게임에서도 발견된다. 제안자의 제안 금액이 매우 적을 때 응답자가 자주 거부를 선택한다는 게임 결과를 두고 표준 모델의 신봉자는 게임 판돈을 충분히 높여야 한다고 주장 한다. 반면 행위주의자들은 왜 제안 액수가 적은 경우라 할지라도 응답자가 제안을 거부했는 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52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서로 일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사실 오류인데 왜냐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한 개인의 성취와 관련된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은 타인에 대 한 보살핌을 의미하며, 후자는 전자에 의해서는 언제나 그 가치가 폄하되고 과소 공급되기 때문이다(Folbre 2002). 러셀 로버츠는 보이지 않는 손 이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 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또 다른 논평자의 표현대로 이 경우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결정할 것을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다름아닌 보 이지 않는 칼 20) 일 수도 있다. Ⅳ. 조나단 걸리블의 모험 혹은 정부 실패 그 이름이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주인공 이름을 패러디한 것이 거의 확실한 조 나단 걸리블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나 코룸포라는 섬나라 에 도착한다. 코룸포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주위원회 정부에 의해 통치되는데 흥미 로운 점은 이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불합리한 제도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다. 예를 들어 곡물 생산에 큰 도움이 될 혁신적 도구를 개발한 사람은 기존 일자리 를 위협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농민들의 곡물 생산량은 정부에 의해 정해져 있 고 만일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 경우 다른 농부에게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이 역 시 체포의 대상이 된다. 또한 고용과 임금의 하락을 막기 위해 양초와 코트 제조업 자들은 태양을 금지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한다. 한편 정부는 키 큰 사람이 작 은 사람보다 여러모로 혜택을 받는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키 높이에 비례 해 세금을 매기기도 한다. 그 결과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키 큰 사람들은 무릎으로 걷는다. 뿐만 아니라 코룸포 사람들은 위조지폐가 물가를 상승시키고 임금, 저축, 연금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발행된 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업에 쓰인다고 믿기에 일상적인 통화증발을 당연시 여 긴다. 이 모든 제도들이 불합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주위원회의 포퓰리즘적 경향이 이러한 제도와 관행을 지속시킨다. 켄 스쿨랜드의 이 저작에서 국가 개입의 부정적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우화는 아마도 삼타 스토리 일 것이다. 4월 하루 코룸포국 사람들은 삼타가 자신의 집에 20) 이는 로셀 로버츠(2002)에 대한 한 서평자의 표현이다(http://blog.aladdin.co.kr/ 772475134/971422).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53 들어와 도둑질하는 것을 묵인한다. 왜냐하면 이 삼타는 도둑질 허용의 대가로 엑스 마스 이브에 각 가정에 선물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삼타는 선물로 돌려주 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간다. 그러나 코룸포국의 4월 행사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이 있었는데 이는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선물 을 나누는 최고의 축제였다. 사람들이 이 명절을 너무나 좋아했으므로 주위원회는 관리자도 없이 그 명절을 무질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종교 적 색채가 부당하다고 하여 이름을 엑스마스로 바꾸었고 선물 전달자의 이름을 삼 타로 변경하였다.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삼타는 특별한 의상을 입은 세금 징수원이 었다. 한편 윤리위원회는 1년간 주민들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고 12월에 선물 받 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한다. 삼타가 주는 선물은 그 크기와 규격, 모양까지 모두 규격화되어 있다. 요컨대 코룸포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국가 정책들은 반시장적이라는 의미에서 공 통점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계속 되어온 시장 대 국가 사이의 논쟁을 지 금 여기서 재론할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시행 착오의 경험은 다 시 한번 음미할 가치가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그 어떤 경제 시스템도 자원의 낭비적 사용을 막기 위해 자원 사용에 대한 보상과 처벌 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Datta-Chaudhuri 1990) 는 점이다. 시장이 바로 그런 일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 시장은 일정 수준 이하로 생산성이 낮은 생산자를 즉시 제거한다. 왜냐하면 이 기 업의 경우 제품 판매를 위해 가격을 시장 균형 수준으로 낮추어야 하지만 그 결과 판매소득이 생산비용보다 낮아진다면 더 이상 시장에 잔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업은 사회가 보유한 귀중한 자원, 즉 노동 재료 에너지 시간 등의 자원을 잘 못 사용한 셈이다. 이러한 시장의 기능, 즉 승자를 가려내고 패자를 솎아 내는 기 능이야말로 효율성 달성에 중요한 수단이다. 동일한 스토리를 보다 동학적인 차원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쟁 시장이 가져다 주는 진입의 위협과 퇴출의 두려움은 무엇보다도 생산자로 하여금 비용 및 품질의 중요성을 항상적으로 뼈저리게 깨우쳐 준다.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자들에 대한 시장의 규율 기능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시장 기제의 성과에 대한 최소주의적 접근(minimalist approach)이라고 볼 수 있다. 코룸포국 정책의 오류는 이러한 중요한 시장 기능을 체계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점 에 있다. 분명 코룸포국의 스토리는 정부 실패의 사례이며 국가 개입이 초래하는 자중손실
54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에 대한 경고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시장에 관한 최소주의적 접근 을 인정한다는 것과 코룸포국 스토리가 내포하고 있는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적 사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제시하는 우화들에 따르면 모든 개입은 잘못된 개입이며, 개입 그 자체와 잘못된 개입은 구분될 수 없 다. 그러나 국가 실패의 가능성이 국가 개입 자체의 부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저 자의 사고가 범하는 논리적 오류 가운데 하나는 경제 효율성의 저하를 모두 정부 실 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논리학자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저자는 일종의 후건 긍 정의 오류(the error of affirming the consequent)에 사로 잡혀 있다. 21) 비록 시 장에 관한 최소주의 주장을 우리가 수용한다 해도 후건 긍정의 오류가 사라지는 것 은 아니다. 더군다나 특정한 상황에서 정부는 시장 보다 더 큰 경제적 성과를 발휘할 것이라 고 기대할 수 있는 다소간의 근거와 사례들이 존재한다. 발전 경제학의 최근 논의 에 따르면 국가는 특히 구조조정과 같은 경제적 격변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한다(Chang 2003). 22) 일반적으로 구조 변동은 경제 주체들로 하여금 새로운 선택 조합을 의사결정 내부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민간 경제 주체들은 그 속성상 단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주어진 기회 집합 내부에서만 행위하는 경향이 있 으므로 새로운 선택 조합 그 자체를 수립하는 과업에 익숙하지 못하다(시장 그 자체 는 잠재적 이득을 실현시키기에는 부족한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단순히 그 기회를 인지하 지 못하기 때문이다(Datta-Chaudhuri 1990)). 결국 새로운 선택 조합을 제시하는 것, 다름 아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이다. 산업에서 혁신적 기업가들 이 비전을 제시하듯이 시회 전체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기업가로서의 국가 의 역할이다. 국가의 전략적 역할은 단지 비전을 수립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비전을 현실 21) 예를 들어 다음의 명제들을 생각해보자. (1)길이 얼면 우편 배달은 늦어진다. (2)우편 배달 이 늦다. (3)따라서 길은 얼어 있다. 단지 우편 배달이 늦다는 이유로 길이 얼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우편 배달이 다른 이유로 늦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이다. 똑같은 오류를 저자가 범하고 있다. (1) 정부실패가 발생하면 경제 효율성이 저하한다. (2) 경제효율 성이 저하한다. (3) 따라서 정부실패가 발생하였다. 요컨대 저자는 효율성 저하와 관련한 또 다른 대안적 설명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경제성과의 하락을 정부 개입과 연관시키려 고 한다. 후건 긍정의 오류에 관해서는 웨스턴(2004)를 참고할 것. 22) 이후 제시될 구조 조정기 국가의 3가지 역할에 관한 서술은 전적으로 Chang(2003)에 의존하 였다. 이와 유사한 국가 역할에 관한 논의는 또한 Rodrik(1999)에서도 확인된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55 로 만들 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국가의 과업이다. 물론 제도는 레고가 아니므로 따 라서 제도 공학이라는 표현은 타당하지 않다, 제도 사이에는 보완성이 존재하므로 필요에 따라 임의의 제도들이 레고가 결합되듯 배열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 경우에는 기존 제도와의 정합성이나 의존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구조 조정의 시기 이 점은 특히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개별 민간 경제 주체들 은 언제나 분권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므로 제도 설계와 관련해 시스템적으로 사고 하기는 힘들며 따라서 제도를 수립하는 것 역시 국가의 임무가 된다. 변화의 시기 제도간 보완성의 형성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 또한 제도 수립자로서의 국가 의 역할이다. 한편 구조변동의 시기 불가피하게 부문간 수요 이동(sectoral shift)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리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며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이 확대 될 수 있다. 비록 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 들이 개인적으로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앞서 보았듯이 이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해결의 과정이라는 것이 표준 모델의 함의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갈등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성과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는 사회보험이나 복지국가를 통해 이러한 경쟁의 패자들을 사후적으로 일정 정도 보호한다. 이러한 정책은 놀랍 게도 종종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수요독점적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약 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강제적 최저임금 정책은 경쟁적 노동시장 성과를 회복 시킨다(Card and Krueger 1995). 23) 국가의 보험 기능은 단지 복지 분야에서만 제 한되는 것이 아니며 투자 부문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불확실성이 심각한 경우 23) 최저 임금제가 적용되는 모든 노동시장이 수요독점 시장(Monopsony Market)은 아니지 않 은가, 따라서 이들 연구의 함의는 제한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체로 노동 판매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 노동시장이 구매자 시장(Buyer Market)이나 수요 독점 시장이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인 미숙련 노동자를 위한 최저 임금제 정책은 흔 히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일런지 모른다. 최저 임금제를 포함한 모든 가격 통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근거는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의 정리 에 기인한다. 이에 따르면 경쟁적 노동시장 균형점으로부터의 그 어떤 이탈도 사회 적 총후생의 하락을 동반한다. 그러나 종종 경제학자들조차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아주 강한 가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즉 기대된 노동시장 법칙의 결과를 예상 하기 위해 노동시장 그 자체가 경쟁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노동 시장 이외의 다른 모든 시장 역시 경쟁적이어야 한다(Jacobsen and Skillman 2004). 물론 당연히 현실은 이러한 가정에 부합되지 않는다.
56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민간부문에서 투자 결정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에 미치지 못하는데 이는 (+)의 외부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자의 사회적 편익을 내부화하고 대신 그 리스크를 외부화 및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국가의 중 요한 과업 가운데 하나이다. 리스크를 사회적으로 분산시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 고 투자를 촉진하는 이러한 일들이 갈등 관리자로서의 국가의 임무이다. 이처럼 국가는 기업가나 제도 수립자, 갈등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 러한 필요성은 국가가 다른 경제 주체 보다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 아니라 국가의 고유한 기능과 속성에 기인한다. 대체로 민간 부문 보다 공적 부 문에 포함된 국가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에 익숙하며 또한 성장 과정에서 발 생한 외부효과들을 내부화시킬 수 있다. 이로 인해 국가는 생산가능곡선이나 기회 집합을 동태적으로 확장시키며, 제도들 간에 존재하는 상호의존성이나 보완성에 관 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갈등을 조절한다. 이러한 논의들은 실제 세계에서 부분적으로 확인 가능한데 동아시아의 발전 국가들 및 프랑스를 포함한 산업정책 국가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로 구성된 사회 적 조합주의 국가들이 바로 그 사례들이다. 전자가 기업가와 제도 수립자로서의 역 할에서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면 후자는 갈등 관리자로서의 역할에서 큰 성공을 거 두었다(Chang 2003). 24) 왜 켄 스쿨랜드의 저서에서 경제성장과 이를 둘러싼 비전 의 수립, 그리고 갈등의 관리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결여되었는가는 의미심장 한 질문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보다 공정하고 정직하기 위해선 1950년대 경제 발전론 안에서 풍미 했던 개입주의적 흐름의 공과 역시 올바로 지적해야만 한다. 초기 경제 발전론 논 의를 지배했던 소위 넉시-로단-스키돕스키 접근(Nurske-Rodan-Scitovsky framework) 의 오류는 시장의 신호기능이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동원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Pranab 1990). 비록 분명 타당한 문제의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시행착오의 역사에 따르면 이들이 제안하거나 24) 국가의 역할은 국가 재정 구조와 연관을 맺을 것이다. 오코너(J. O Conner)의 논의에 따르면 정부 지출은 사회적 투자(social investment),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 사회적 손 비(social expenses)라는 세 유형으로 구분 가능하다(김형기 2001). 기업가 및 제도 수립자 로서의 국가 역할의 강조는 사회적 투자 비중을 높일 것이고, 갈등 관리자로서의 역할 강조는 사회적 소비와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손비의 비중을 높일 것이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57 혹은 제안을 부추겼던 계획, 개입, 규제, 의사결정의 집중은 복잡한 경제 문제를 해결 하는데 만능 해결책이 아님이 판명되었다. 조정의 경제(economies of coordination)를 추구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이러한 정책들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국 가 개입주의에 대한 공허한 숭배로 귀결되었다. 이후 경제 발전론 내부에서 새롭게 형성된 조류는 또 다른 대척점으로 경제 정책을 몰아 넣었는데 이는 다름아닌 올바 른 가격 정하기(getting the price right) 로 요약될 수 있다. 이제 경제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재산권 제도를 도입하거나 재화 및 생산요소의 희소성을 올바르 게 반영하는 가격 체계의 수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추의 이동은 이전 국가 개입에 대한 맹신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시장과 국가 간의 관계가 종종 이야기되듯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 다는 점이다. 국가와 시장은 서로 배제적 대체적이면서도 동시에 보완적이다. 특 히 경제성장 초기 시장의 역동적 작동을 의해서라도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liberal state) 대신 강력한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시장은 그 자체의 정상적인 작동에 대해 불충분한데 왜냐하면 시장은 그 스스로가 일종의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 서비스는 (+)의 외부효과를 가지므로 합리적이고 계 산적인 동기로만 움직이는 주체들에 의해서는 이 가치 있는 상품이 제대로 공급될 수 없다. 따라서 시장 그 자체의 공급, 시장의 셋 업(set-up)은 시장의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한다. 경쟁시장 -이는 사적 제도의 전형이다- 은 그 자체로 공공재이다. 일단 경쟁시장 이 주어진다면 개인들이 시장 자체의 공급 및 유지 비용에 기여하든 그러하지 않 든 자유롭게 진입과 탈퇴를 할 수 있다. 그 어떤 시장도 시장을 지탱하는 공적 제 도가 없다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다. 실제에 있어서 공적 제도와 사적 제도는 독립된 세계에 따로 존재하기 보다는 자주 서로 맞물리고 상호의존적이다 (Ostrom 1990, p.15). 국가는 공적 제도 가운데에서도 그 핵심에 위치한다. 그러나 스쿨랜드는 이러한 패러독스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실패하였으며 그로 인해 그의 저작은 시장-국가 간 문제를 단순화시켜 결국에는 답 조차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스쿨랜 드를 포함하여 시장과 국가간 관계를 고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기해야 할 문제는 최적 국가 개입의 정도가 얼마여야 하는가 가 아니다. 그것을 대신하여 제기할 타
58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당한 질문은 왜 국가마다 개입의 결과가 상이한가 여야 한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국가 개입의 양( 量 )이 아니라 질( 質 )이다(Pranab 1990). 새롭게 제기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오늘날 경제 발전 과정에 대한 새로운 이 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최근의 경제 성장에 관한 논의(예를 들어 신성장이론이 여기에 해당한다)에 따르면 정보 처리나 학습, 기술 역량의 획득에 있어 외부효과가 존재하며 이를 내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열쇠이다. 이러한 과업들, 즉 핵심적 학습 과정을 추동시키고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것은 그에 적합한 조직이나 제도에 의존한다(여기에는 국가가 포함된다). 투자와 관련한 외부효과에 집중하였던 1950년대 개입주의와는 달리 학습 및 정보와 관련한 외부효과에 기반한 오늘날 개 입주의는 개입의 질이나 효과를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경제 발전을 위해 올바른 가격 체계의 도입 대신 필요한 것은 올바른 제도 국가를 재도입(bringing right institution and state back in) 하는 것이다. 이제 진자의 추를 다시 한 번 반대 방향 으로 그러나 적당량만큼만 움직여야 할 시기가 왔다. 시장과 국가간 관계에 대한 스쿨랜드의 지나친 단순화와 그로 인한 오류를 추적 해 가다 보면 우리는 오류의 기원이 다름아닌 국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해 있 음을 확인하게 된다. 스쿨랜드의 저서에 등장하는 정부 형태인 주위원회는 신정치 경제학(new political economy)이 묘사하는 국가를 정확히 닮아 있다. 주위원회 정 부는 민간의 생산적 부문을 약탈할 뿐 아니라, 사익을 위해 공익을 희생시키는 이 해집단에 의해 포획된 국가이다. 코룸포국에서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 야기는 이러한 국가의 성격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프랭크 라는 거북이와 라이샌더라는 토끼가 한 마을에 살았으며 둘은 모두 우편 배달부였 다. 어느 날 그들은 앞으로 일주일 안에 누가 더 고객을 많이 갖게 될지를 두고 내 기를 하게 된다. 라이샌더는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고 하루 배달 량도 2배로 늘렸으 며 주말과 휴일에도 배달하였고 항상 손님들에게 진실과 친절로 대하였다. 당연히 라이샌더의 고객 수는 증가하였다. 반면 프랭크는 일주일째 되는 날 토끼에게 다음 과 같이 통보하였다 우리 나라 왕이 나 프랭크를 나라 전체의 공식 우편 배달부로 임명하셨어. 왕께서는 나에게 온 나라 안의 편지를 독점적으로 배달할 수 있는 권 한을 주셨다구. 미안해 라이샌더. 이제 너는 배달 일을 그만 두어야 해. 프랭크의 말에 따르면 왕은 백성 중 누구든지 다른 이 보다 더 나은 우편 서비스를 받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모든 백성에게 동질적인 (그리고 평등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59 한 ) 우편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프랭크를 공식 우편 배달부에 임명한 것이다. 하 지만 사실 프랭크는 왕과 관련한 우편 배달을 무료로 해주는 대신 왕은 프랭크의 이 익을 보장하도록 독점을 통해 가격을 인상시키는 것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약탈국가의 지대추구행위를 더 이상 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설명하 고 있는 이 이야기에도 역시 함정이 놓여 있다. 만일 이 이야기가 모부투가 지배하 는 자이레나, 마르코스 치하의 필리핀, 뒤발리에 통치하의 하이티, 그리고 소모사 가 군림하는 니카라과(Pranab 19990) 에만 해당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스쿨 랜드 주장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나라들이야말로 소위 기생국가 (rentier state)나 약탈국가(predatory state)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러나 만일 스쿨랜드가 앞서 이야기를 통해 국가 활동 그 자체를 비판의 목표로 삼는 다면(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국가에 대한 중요한 편견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 역시 문제의 핵심은 문제의 단순화에 있다. 현실의 국가와 그 관료 계층은 종종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간의 생산적 활동을 억압하거 나 다른 이해 집단의 단순한 꼭두각시로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같 은 국민 전체의 열망을 실현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가와 관료 는 자신의 금전적 이익과 다른 이해집단들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발전국가로 명명되는 사례들은 그 전형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발전국가의 경우 국가 부문은 민간 부문 일부와 경제 발전에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발전 을 위한 성장지향적 헤게모니 블록(hegemonic bloc)이나 성장 동맹(growth alliance)을 형성하기도 한다. 신고전파적 국가이론은 이러한 사례를 애써 무시하는 데 물론 이러한 접근은 모델 구성에서 요구되는 단순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석과 모델 구성에 있어 단순함이 미덕을 넘어 악덕이 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코 앞의 사실 에만 정신을 팔게 해 결과적으로 보다 큰 그림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다. 25) 앞서 러셀 로버츠의 저작 보이지 않는 마음 이 주로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을 메 25) 국가를 지배계급이 자기 이익을 활용하기 위한 지배 수단으로 간주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상 부구조 이론이 신고전파 국가이론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점을 처음 지적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었다(Lowenberg 1990).
60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시지로 삼고 있었다면 켄 스쿨랜드의 저작 조나단 걸리블의 모험 역시 그러한 논 의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관성은 특히 앞서 러셀 로버츠 저작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자유라는 가치에 의해 확인된다. 주인공 걸리블은 도대체 책임감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위해 코룸포국의 현자인 위 대한 질문자 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자유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된다. 평화는 전쟁입니다! 지혜는 무지입니다! 자유는 구속입니다!... 그(위대한 질문자: 인용자)는 사람들에게 집단 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짐 중 가장 큰 것입니다!... 자유는 가장 무거운 쇠사슬입 니다!... 자유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고 의지를 사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한 모든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치판단과 선택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는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잘못된 판단과 선택은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줍니다. 게다가 수많은 선택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합 니다. 그러한 고통이 바로 책임인 것입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여러분 을 대신하여 결정 을 내려주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자유가 가지고 오는 모든 죄 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대리 결정자로서 나는 나 스 스로 여러분을 대신해 그 모든 고통을 감당할 것입니다(스쿨랜드 2002, 239-243 쪽). 켄 스쿨랜드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줄 이 위대한 질문자를 묘사하 였을 때 그는 다름 아닌 국가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것이 복지국가이든 파시 스트 국가이든 모든 개입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동시에 도덕을 억압한다. 왜냐하면 저자에 따르면 자유가 사라질 때 도덕도 동시에 사라지기 때문 이다. 오직 선택의 자유에 기반한 사회만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강제 노역 캠프에 보내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담 스미스의 자유 방임에 대한 지지는 때때로 정부가 자신의 시민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학살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인간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사적 인 오류로 인한 후생의 손실은 정부에 의해 발생하는 후생 손실에 비하면 부차적 이다. 개인들은 꾸물거리거나 어리석은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61 으로 강제 수용소에 자신들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Glaeser 2004). 앞서 주장에 따르면 결국 자유시장이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 리의 도덕을 보존하고 우리 스스로를 전체주의로부터 구출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전 세기, 20세기의 역사만 두고 보더라도 이러한 자유시장에 대한 신뢰는 무참히 깨어진다. 다름아닌 인간성이나 도덕성의 절멸을 뜻하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나 소비에트의 강제 노역 캠프의 존재는 탈규제된 자유시장경제(unregulated liberal market economy)의 원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오늘날 글로벌화에 비견되는 세계경제 통합의 경향과 자 유시장의 확산은 결국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혼란으로 귀결되었다. 파 산한 자유시장을 대신하여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미국의 뉴딜 모델과 독일의 파 시즘 모델, 그리고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모델 이었다. 뉴딜이 자유시장경제의 보 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을 계급 간의 악수(handshake) 로 대체한 것이라면, 파시즘은 그것을 폭력적 주먹(fist) 으로 대체한 것이었다. 26) 보이지 않는 손을 대 신해 새로운 자본주의 재생산 수단으로 등장한 악수나 주먹과는 달리 사회주의, 즉 사라진 손(disappeared hand) 은 자유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아예 자본주의로부터 이탈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27) 만일 우리가 폴라니식 표현을 차 용한다면 20세기 전반기의 역사란 악마의 맷돌 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반작용의 역 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주먹 이나 사라진 손 의 기원은 다름아닌 보이지 않는 손 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출현은 후자의 모순으로부터 그 정 당성을 확보하였다. 아마도 보수주의자들은 악수 조차도 불가피하게 무거운 손(heavy hand, 국가 개 입주의) 을 수반할 것이고 이는 다시 주먹 이나 사라진 손 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하이에크의 저작(1999) 노예의 길 이 그러한 주장을 대표 한다. 그러나 설령 뉴딜 식의 개입주의가 켄 스쿨랜드나 하이에크가 우려한 것처럼 자유를 빼앗아 간다 해도 그것은 양심의 자유 가 아니라 거래의 자유 일 것이다. 26) 보이지 않는 손, 악수, 주먹 등 자본주의 재생산 수단과 관련해 손과 관련한 은유를 제시 한 것은 Bowles and Edwards(1985)였다. 27) 2차 세계대전이란 다름 아닌 파산한 자유시장 모델의 자리를 두고 뉴딜-소비에트 모델 연합이 파시즘 모델과 벌인 투쟁 과정이며, 전후 냉전은 파시즘에 대해 승리한 뉴딜 모델과 소비에트 모델 간의 투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62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더군다나 파시즘이나 자유시장 조차 공짜 점심은 아닌데 전자가 자주 목숨을 앗아 간다면 후자는 목숨 대신 일자리를 앗아가기 때문이다(Bowles and Edwards 1985). 뉴딜 모델의 지적 기반이었던 케인스주의가 1930년대 왜 열렬히 환영 받았는지를 음미함으로써 우리는 최소한 왜 국가 개입이 필요한 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케인 스주의의 가장 큰 의의는 보이지 않는 손 이 붕괴되었을 때 주먹 과 사라진 손 이 라는 야만에 의존하지 않고 서구 문명을 지킬 수단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다. 왜 다른 사람들이 그(케인스: 인용자)의 주장을 열렬히 환영했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거시경제학이 내놓은 새로운 전망들 뿐 만 아니라 당시의 위험들도 한 몫을 했다. 케인스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은 이렇게 설명했다. 케인스가 내놓은 것은 바 로 희망 이었다. 감옥, 처형, 그리고 야만적 고문의 뒷받침 없이도(요컨대 주먹 이나 사라진 손 없이도: 인용자) 번영을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것이다 (예르긴과 스태니슬로 1999, 60-61쪽).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시장은 자유를 약속하였지만 오히려 파국을 가져왔다는 점 이다. 자유 시장은 종종 우리의 기대와는 어긋나게 강제와 폭력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어내곤 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이 민주주의를 가져오고 다시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예방한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욱 진실이 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만일 시장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거나 규제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20세기 초반의 역사를 다시 반복할지도 모른다. 이 교훈은 특히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지배적인 경우 더욱 중요하다. Ⅴ. 선택 혹은 교환으로부터의 이득 앞서 소개한 보이지 않는 마음 의 작가 러셀 로버츠는 비교 우위의 원리를 토 대로 개방과 자유화의 이점을 보이기 위해 초이스(이하 선택) 이라는 작품 또한 저 술한 바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 스타시에서 스텔라 텔레비전 공장을 경영하는 CEO 인 에드 존슨은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프랭크 베이츠 의원의 대통령 지명 추천 연설을 행하기로 한 전날 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도의 방문을 받게 된다. 마치 디킨즈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 에서 예전에 죽은 친구의 인도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63 아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방문한 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 영감처럼, 에드 존 슨 역시 리카도를 따라 미국이 자유무역을 고수하여 번영을 누리는 모습과 보호무 역정책을 옹호하여 피폐해진 모습 둘 다를 목격하면서 자유무역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에드 존슨이 깨닫게 된 가치가 과연 타당한지를 이론적 측면과 경험적 측 면, 그리고 정책적 측면으로 구분해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소위 비교우위 원리의 미덕에 관한 이론적 측면을 검토하기로 하자. 소설 속에서 리카도는 존슨에 게 부유해지는 우회적 방법 을 이야기하면서 비교우위의 원리를 설명한다. 자네가 비서 에버스 양 보다 타자 속도가 더 빠르긴 해도, 자네가 직접 타이핑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일본도 마찬가지라네. 일본은 텔레비전 기사들에 게 화학자가 되도록 훈련을 시킬 수 있지만 텔레비전 생산을 전문으로 하고 약은 수입하지. 미국은 미국대로 약과 텔레비전 둘 다 필요하지. 미국은 두 가지를 모 두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하고 있지. 약을 생산하여 일부는 국내 에서 소모하고 나머지는 텔레비전을 구입하기 위해 일본에 수출하는 방법으로 말 이지(로버츠 2003, 28쪽). 잘 알려진 바 대로 비교우위 원리는 전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부문간 이동 자원 재배분 구조전환 효율성 개선 경제적 성과 증가 라는 일련의 기제에 토대를 둔 다. 28)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비교우위 이론의 결론이기도 한 무역으로 인한 파레 토 개선이라는 결과를 확정하기 이전에 비교우위모델 자체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성찰적으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비교우위 이론을 포괄적으로 검토한 한 연구에 따 르면 이러한 서술을 통해 우리는 (모델의: 필자) 어떤 결과가 복잡한 현실 세계에 그대 28) 자유무역의 긍정적 효과가 리카도 뿐 아니라 마르크스에 의해서도 인정되었다는 점은 흥미로 운 사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론적 근거에 기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 자유 무 역을 옹호하였다. 데사이(2003)에 따르면 아마도 오늘날 자유주의자 만큼이나 마르크스는 관 세장벽에 대해 비우호적일 것이고 자유무역을 옹호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1848년 브뤼셀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연설을 한 바 있는데, 그는 자유무역이 생산력 발전에 기여 할 것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있어 희망은 자본주의 발전의 가속화에 -좀 더 빨 리 그 발전의 끝에 도달하는데- 있었다(데사이, 183쪽).
64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로 실현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비교우위의 원리를 실제 세계로 옮겨보고, 특정한 결과(산출 및 편익 극대화)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사 물들이 보여야만 하는가를 묻는다. 결국 우리는 비교우위모델이 두 국가가 교역하 기 시작했을 때 무엇이 발생할 것인가(anything about what will happen)에 관해 이야기 해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그 이론은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some things that can happen)을 말해 준다 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Suranovic 2007). 현실에서는 비교우위 모델에서 예측한 결과를 포함하여 사실 그 어떤 것도 발생 할 수 있다(anything can happen: Manicas 2006). 슘페터(J. A, Schumpeter)는 비 현실적 가정에 기반한 추상 모델에 근거하여 얻어낸 모델의 결론을 아무런 매개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현실과 등치시키는 것을 리카도적 해악(Rocardian Vice)라고 불 렀다(김영용 2006). 만일 비교우위 모델에서 도달한 결론, 즉 산출 및 편익의 극대 화를 자유무역의 현실적 결과와 등치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명백히 리카도적 폐악을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카도적 오류의 원천 가운에 하나는 비현실 적 가정이며 따라서 극단적 실증주의자가 아닌 한 우리는 모델의 현실 적합성을 판 정하기 위해 비교우위 모델이 채택한 가정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경제학의 계량연구는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해서 그 과정을 보고 나면 믿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지도 모른다(이강국 2005, 139쪽) 고 했는데 이런 이 야기는 경험적 연구뿐 아니라 이론 구성에서도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모델이 채택하고 있는 가정의 요건이 너무 비현실적이므로 가설과 그 이면에 놓여진 암묵 적 요구를 모두 살피고 난 뒤에는 비교우위 모델이 마치 소시지처럼 느껴질지도 모 른다. 비교우위 모델에 관한 한 연구(Prasch 1996)에 따르면 이 리카도 모델이나 그것의 확장판인 헥셔-올린 모델은 다음과 같은 몇 개의 중요한 명시적 혹은 암묵 적 가정에 기반해 있다. 29) 1. 일국 내에서 생산요소는 자유롭게 이동한다. 2. 모든 생산요소는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한다. 3. 국가 간의 무역수지는 언제나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 29) 이들 가정 대부분은 고전학파적 이론의 속성을 공유한다. 비교우위모델이 전제하는 가정들의 함의에 관한 보다 포괄적 연구는 Suranovic(1999)를 참고할 것.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65 4. 자본은 국경을 넘지 않고 국내에만 머무른다. 5. 초기 부존 자원량(endowments)은 고정되어 있다. 6. 국가는 개별 행위자로서 무역 거래에 참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이 현실적 함의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명백하다 (Prasch 1996). 오늘날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숙련의 속성이 기업 특수적이거나 직 무 특수적인 경우, 혹은 재훈련 효과가 그리 높지 않은 경우 산업간 요소 이동 (sectoral shift)과 관련해 조정비용이 발생한다(가정 1 위배). 비교 우위 이론의 적 용을 위해 상이한 재화 생산의 상대적 비용을 계산해야 하지만 경제가 생산가능곡 선 아래에 위치할 경우 시장가격은 더 이상 경제의 상대적 희소성을 반영하지 못하 며 따라서 재화 생산의 사회적 비용 계산은 불가능하다(가정 2 위배). 국가간 교역 이 물물 교환 형태가 아닌 이상, 분권화된 신용 경제들간의 교역으로 이루어지는 자유무역 레짐의 속성으로 보건대 일국의 수지상태가 특정시점에서 균형 상태에 놓 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가정 3 위배). 개방 및 자유화로 인해 자본수출이 발생한 다면 그 결과 국내자본이 감소할 것이고 노동의 생산성 역시 감소하여 임금이 하락 할 수 있다. 임금 하락은 다시 총수요를 감소시키고 총수요 하락은 자본재 가격 및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쳐 경제적 불안정성이 야기될 수 있다(가정 4 위배). 모델에 서는 각 국이 전문화할 산업이 경제의 초기 부존자원 조건에 의해 결정되고 국가는 다른 어떤 기회 집합도 창출해 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나 앞 절에서 살펴 보았듯 이 현실에서 국가는 산업정책을 통해 유리한 초기생산집합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 다. 즉 국가는 동태적 비교 우위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30) (가정 5 위배). 실제 교역 에 참가하는 주체가 다수의 개인들, 그것도 분권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개인들 이라면 조정실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가정 6 위배). 31) 물론 이들 가정 위배로부터 발생하는 결과들 각각 역시 가능한 여러 결과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비교우위 모델 30) 이러한 가능성은 표준 모델(canonical model)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단 모델(heterodox model)에 의해서 인정된다. 후자의 경우, 시장은 자동으로 청산되지 않으며 생산성이 임금에 미치는 정도는 협상력에 의존한다. 또한 노동시장이 청산되지 않으므로 수요제약이 존재한 다. 이 경우 세계화는 주어진 고용량의 상대적 생산성, 즉 비교우위를 결정할 뿐 아니라 일국 의 수요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개방의 성과는 요소의 상대적 비용이 아니라 경제의 총체적 경쟁력에 의존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스텐포드(2000)을 참고할 것. 31) 이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The Fallacy of Composition)에 대응한다.
66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가능한 결과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요컨대 비교우위 모델의 결과가 참인 것만큼이나 그에 반하는 결과 역시 참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 야만 한다. 따라서 분석적인 목적으로 고정시킨 가정이나 제약이 현실의 경우 변화하거나 경 제주체들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실증 연구나 정책 결정에서도 여전히 고정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에 따른 연구 결과나 정책은 오류를 불러 일 으킬 수 있다. 요컨대 교육 도구를 수정 없이 그대로 정책 결정 도구로 삼아서는 곤란할 수 있다. 비교우위 가설에 대한 경험적 비판의 필요성은 앞서 검토한 완전고용 가정 (가정 2)에 관한 논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전문화로 인해 부문간 요소 이동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조정비용을 발생시키는데 이로 인해 자유무역의 순이득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연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비용과 편익의 크기를 이론적으로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하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 비교우위 모델이 예측하는 자유무역의 이점은 사례별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의 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위 부유해지는 우회적 방법 의 실증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구 조전환의 순이득 크기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리카도에 따르면 부문간 수요이동 을 통한 구조전환은 장기적으로 발생하며 따라서 구조전환의 순이득 계산에는 보다 긴 시간지평을 필요로 한다. 조정 과정에서 공장 문을 닫는 경우 실업자가 발생하 겠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새로운 부문, 아마도 더 수익성이 있는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아버지가 겪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 난은 자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따라서 순이득을 계산할 경우 중요한 것 은 자유무역 이후 일자리 수 변화가 아니라 일자리 종류의 변화이다. 아무튼 NAFTA가 5년간 실행된 뒤에 지지자나 반대자가 모두 어리석게 보였다네. 반대자들은 대량 실업을 예측했고, 지자자들은 약간의 일자리 증가를 예측했거든... 둘 다 틀렸지. 그들은 자유무역의 영향은 일자리의 종류를 바꾸는 것이지 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일자리 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네 (로버츠 2003, 170쪽).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67 소설 속 리카도에 따르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물들을 바라볼수록 자유 무역의 진정한 이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자유무역은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부, 그리고 더 역동적인 세상으로 인도(203쪽) 한다. 나는 오늘 밤 미국이 직면한 선택은 더 많은 일자리냐 아니면 더 적은 일자리냐가 아니라는 것을 자네가 배웠기를 바라네. 진짜 선택은 활기찬 세계냐 아니면 정적 인 세계냐지. 즉 사람들을 격려하여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세계냐, 아니면 사람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 족하고 꿈도 덜 꾸도록 하는 세계냐의 선택이라네(로버츠 2003, 204쪽). 결국 기술이 세계를 역동적으로 만들듯이 자유무역 역시 세상을 역동적으로 만들 것이다. 기술과 무역은 두 가지 모두 구조 전환을 발생시키고 비록 부분적으로 마 찰적 실업과 같은 부( 負 )의 외부효과를 발생시키지만 이와 동시에 리카도 곡물 모 형에서 한계생산물곡선을 상향 이동시킬 것이다(혹은 생산가능집합이나 소비가능집합 을 이전 보다 증가시킬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효율성 개선 이득이 외부효과로 인 한 후생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기술과 무역을 동일시 함으 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 가운데 하나는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술 진보에 저항하는 것이 어 리석은 것처럼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32) ). 32) 자유무역이 결국 기술혁신과 동일하다는 함의는 러셀 로버츠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자네는 모든 병이 다 퇴치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120세까지 완전히 건강하게 사는 것 이 미국을 위해 좋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의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는 걱 정이 안되나? 미국은 돈 많이 버는 의사직과 건강 관리 직종을 잃게 될 텐데... 미국이 수입을 해서 텔레비전을 싸게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원리는 같 지. 의사가 사람들을 아프게 하여 과거 의사들이 해왔던 것처럼 돈을 벌 권리가 있 나? 텔레비전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원들에게 계속 높은 임금을 주려고 하니 값을 더 내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나?... 어찌 되었건, 우리가 병을 퇴치하거나 외국인 들이 싼 텔레비전을 미국에 팔아도 우리는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네. 몇몇 유형의 일 자리는 없어지지. 미래에 의사가 되었을 사람들은 그들이 기술을 다른 활동에 적응 하여 우리의 삶을 값지게 하지. 미국은 고소득 일자리를 잃겠지만, 역설적으로, 더 욱 부유해질거야(로버츠 2003, 44-45쪽). 맨큐 (2005)의 경제학 원론 에서도 이러한 기술과 무역을 동일시하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 다. 밀을 철강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선전한 과학자의 이야기에 그에 해당한다. 사
68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자유무역이 가져다 주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주로 그러한 순이 득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에 집중해 있다. 기술처럼 무역이 가져오는 구조전환의 효과를 실증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보호부문 및 수입대체부문에서 고용되었던 요 소들이 보다 효율적인 부문으로 이동해 감에 따라 일회적으로 발생하는 이득을 계 산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버거의 삼각형을 통해 상대가격 왜곡으로 인한 비용을 계산하고 이를 자유화로 인한 이득으로 역추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계산 결과 자 유무역을 통한 후생의 증가 크기는 GDP의 2-3%로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드 러났다(Deraniyagala and Fine 2001). 이러한 계산 결과가 자유 무역 옹호론자들에 게 얼마나 많은 실망감을 가져다 주었는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자유 무역의 이득을 부풀리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 는데 그에 따르면 자유무역의 이득을 보다 완전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이 방해받을 때 발생하는 지대추구의 비용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소설 속 리카도 역 시 이 점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 수입업자들은 그 (쿼터) 면허를 받기 위해 정부 공무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서 로 경쟁하겠군요. 그렇겠지. 그러한 경쟁은 경제 전체의 시각에서 볼 때 자원의 낭비이며 쿼터의 추가비용이라고 볼 수 있지. 때로 정부가 과거에 수입상이었던 사람들에게 쿼터 허가를 내준다네. 이처럼 별 무리 없어 보이는 선택도 다양한 형 태의 압력을 받기 쉽지. (로버츠 2003, 100쪽) 에너지와 창의성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무한하게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네. 규제된 무역 하에서 생산자들은 규제를 점점 더 늘리도록 정부에 로비하는 시 간을 사용하네(로버츠 2003, 106쪽). 실 그 과학자는 밀을 몰래 수출하고 철강을 수입하였다. 한편 리카도 자신은 기술 혁신의 사회적 비용을 인정하였다. 그는 182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제3판에서 그 유명한 기계에 관한 장을 추가하여 기술진보가 부 ( 負 )의 외부효과, 즉 기술적 실업을 낳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제 자 맥컬럭이 이렇게 항의했다. 만약 당신의 추론이...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러다이트 금 지법은 법전에 대한 모욕일겁니다(캘리니코스 1993). 리카도는 지주나 노동자는 물론 산업 자본가의 경우에도 그들의 이익이 사회의 진보와 충돌한다면 기꺼이 그들을 비판하였다. 이 러한 과학적 냉혹함 이야 말로 리카도 경제학의 정수이며, 만일 자유무역 문제에 대해서도 이 러한 냉혹성이 발휘되었더라면 우리는 비교우위론과는 또 다른 무역이론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69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 수입 쿼터와 이것의 배분을 둘러 싼 정경 유착의 비 용이 새롭게 비용 계산에 포함되었는데 그 결과 자유무역을 포기함으로 인한 후생 손실 크기는 이전보다 수배나 증가하였다.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 러한 새로운 비용 계산 결과는 자유무역 옹호자들의 취향에 다소 부합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이러한 새 계산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후 지적되었다. 첫째, 자유무역 및 그로 인한 구조전환의 이득을 계산할 때 사용된 앞서의 방식들 은 모두 개방 및 자유화 이전에 존재하는 비효율성의 크기를 확인하는 방식을 따르 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유화 이후 특히 지대의 크기가 감소하였는가를 연구한 논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둘째,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앞서 제시된 지대추구비용이 과대 계산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만일 쿼터가 수입( 輸 入 )의 일부만을 차지하 고, 이 수입 또한 GDP의 일부만을 차지한다면, 지대추구행위의 비용이 그렇게 클 리가 없다(Ocampo and Taylor 1998). 셋째, 자유화 과정이 언제나 지대추구행위 를 감소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이행기 경제, 특히 러시아의 경우 규제 완화 및 자 유화의 과정에서도 정경유착과 지대추구행위가 발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Deraniyagala and Fine 2001). 한편 비교우위모델의 또 다른 가정, 즉 초기 부존자원의 고정 가정(가정 5)은 정 책 문제와 관련한 연구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경제성장을 위해 과연 주어진 부 존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에 기반해서만 특화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는 장기적 인 전략 구상에 기반해 부존조건과는 독립적으로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수행해야 하 는가? 이에 대한 소설 속 리카도의 답변은 분명하다. 나는 MITI의 역할이 일본 경제 성공에 절대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일본은 MITI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 역할이 미미할 때도 위대한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 거든. 그러다 결국 20세기 말 일본이 경제적으로 허덕이게 되니까 일본의 MITI를 칭찬하고 미국이 일본의 기업-정부간 협조체제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 들이 조용해졌지(로버츠 2003, 39쪽).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듯이 국가는 부존조건 고정 이라는 가정을 따르는 대신 전 략적으로 육성될 필요가 있는 산업을 선택하고 이것의 육성을 통해 일국의 부존 조 건을 재정의하며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만일 요소 부존이 개방 경제
70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하에서 특화의 방향에 대한 믿을만한 지침이 될 수 없다면 33) 국민국가의 산업정책 은 성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서로 상이한 두 개의 입장 사이에 갇혀 버린 우리는 정책과 관련한 이 문제에 대 해 당장 답을 구할 수 없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관련 분야의 현재 연구 상태 때문이 다. 개방과 자유화 -이들 정책은 암묵적 혹은 명시적으로 부존 자원을 주어진 것으 로 수용하고 그에 기반해 특화 한다- 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한 대부분의 경 험적 연구들은 여러 가지 이론적 실증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그 결과를 해석하는 데 많은 주의와 겸손함(Rodriguez and Rodrik 1999) 이 요구된다(예를 들어 우리가 무역정책과 경제성장 간의 관계를 연구하기로 결심한 순간 당장 두 요인 간의 내생성 문 제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개방과 자유화의 효과는 개별 연구마다 상이하며 따라서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서 제기 한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다음 2가지의 보다 우회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무역자유화에 대한 기존 경험적 연구를 통해 확인 가능한 최소 공약수 를 추출해 볼 수 있다. 자유무역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최근 연구들을 포괄적으로 검 토한 연구에 따르면(Deraniyagala and Fine 2001), 무역정책은 그 자체로 산업 성과 의 중요한 결정요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긍정적 역할은 무역 자유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수출 확대를 통해서 발휘된다. 또한 최소한 무역정책만 큼이나 산업정책, 기술 수용 역량, 국내시장의 규모 및 성장과 같은 다른 요인들 역시 중요하다. 게다가 환율수준과 안정성, 국내수요 수준과 실질임금 제약과 같은 거시경제적 요소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결국 이러한 기존 연구들의 최소 합 의점이 주는 교훈이란 무역정책은 특정한 경제적 조건 하의 다른 정책 및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므로 다른 정책과 고립되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전후 경제적 성과가 높았던 국가들의 경우 그 성과에 크게 기여한 요인이 33)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이미 그 우월성이 알려진 생산함수를 사용하 기 위해 필요한 특화를 합리적으로 선택 }하는데 적용되는 효과적인 조정의 원리와 { 결과 적으로 입증되기 전에는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그에 따라 혜택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 운 지식을 위한 보다 뛰어난 시스템의 창출 }에 적용되는 효과적인 조정의 원리 사이에는 가공할 만한 차이가 있다(Loasby: Chang 2003, 55쪽, 필자 강조). 전자가 (초기부존자원 에 따른) 비교우위의 원리와 연관된다면, 후자는 (산업 정책에 따른) 동태적 우위 원리와 연 관된다. 전자를 통해서는 배분적 효율성이라는 이득이, 후자를 통해서는 동태적 효율성의 이 득이 창출될 것이다.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71 무엇이었는지를 역추적해볼 수 있다. 전후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들의 경험을 검 토한 한 연구에 따르면(Rodrik 1999) 이들 성공한 국가들은 개방 및 자유화 프로그 램을 충실히 수행했던 국가들이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 전략과 불리한 외적 충격을 흡수할 완충적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국가들이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은 슘페터 적 근로 국가이자 비버리지적 복지국가였다(이는 앞서 언급한 국가의 기업가적 역할 과 갈등 관리자로서의 역할과 거의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즉, 전후 성장률은 관세 및 비관세 수준 지표나 자본 흐름에 대한 통제 정도가 아니라 GDP 대비 투자비중이나 거시적 안정성 지표 -이는 사회적 갈등 조절의 대리변수이다 34) - 와 상관관계를 보 이고 있다. 35) 이는 아주 의미심장한 결과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결과는 최소한 개 방 및 무역 자유화는 일국 번영의 잠재적 가능성만을 이야기해줄 따름이며 국내 정 책이 경제적 성과를 위한 중요한 요인 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 방 그 자체가 투자를 자극할 가능성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고 이 둘 간의 안정적 관계가 확정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다. 이러한 연구의 교훈은 개방 및 자유화 정책은 투자 전략 및 갈등 관리제도와 보완적이어야 하며 따라서 포괄적 발전 전략의 일부여야 하지 그것을 대체해서는 34) 사회보험 제도 등 집단 간 갈등을 매개하는 제도가 없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불리한 외부 충격으로 인해 거시경제적 밸런스가 깨어지고 난 뒤, 그것이 재수립되는데 필요한 정책 적 조정이 지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조정과정을 통해 경제적 손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회 내 이해 집단들이 재정 및 환율 거시정책의 시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Rodrik 1999). 35) 로드릭(Rodrik 1999)는 이와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우화 한가지를 들려준다; 지구를 방문한 화성인이 불행히도 지구인들에게 붙잡혔다. 지구인들은 화성인들이 과연 지적 존재인지를 확 인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에게 이들의 심문을 맡겼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문제를 내고 이 화 성인이 올바르게 대답하여 자신의 지능을 입증한다면 그녀를 풀어주기로 하였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질문: 지난 20년간 경제성장을 가져다 준 정부 정책은 무엇인가?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이 화성인에게 무역과 발전에 관한 최근 경제학 문헌들을 제공하 였다. 문헌들을 다 섭렵하고 난 뒤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답변: 관세를 낮출 것, 그리고 비관세 장벽을 없앨 것, 또한 국제적인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를 제거할 것. 결국 경제학자들은 화성인 역시 인간 못지 않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이 지적 존재를 풀어주었다. 화성인은 지구를 떠나기 전 경제학을 약간 더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약간의 횡단면 데이터를 구했고 이를 이용해 일인당 GDP 수준과 다양한 무역정책 간의 상관 계수를 구해 보았다. 결과는 아주 놀라왔다! 개방 및 자유화와 관련한 그 어떤 지표도 경제성 과 지표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성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이 화성인은 경제학이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더욱 복잡한 과학인지 아니면 지구인들이 겉보기만큼 그리 높은 지능을 가지 고 있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경우이든 이 화성인은 지구인들의 마음이 변하기 전 에 화성을 떠나야만 했다.
72 經 濟 學 硏 究 제 55 집제4 호 안 된다는 점이다. 앞서 두 가지 접근이 공통으로 제공하는 최소한 의 함의는 개방 및 자유화 정책, 산업 및 총수요 정책, 복지정책 사이에는 일종의 유효 자리수 법칙(The Law of Significant Digits)이 작동한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일국 경제 전체의 성과는 정책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 요컨대 다른 정책들이 전체적으 로 충분히 고려되거나 동시에 수행되지 않을 경우, 자유화 및 무역 정책만으로는 생산성을 개선시킬 수 없다. 따라서 주어진 부존 자원에만 자신의 운명을 모두 맡 기는 것은 잠재적인 성장의 토대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비교우위이론은 미시 모델이 며 따라서 동태적 성장이나 발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다). 결국 앞서 걸리블 의 모험 에서 비아냥의 대상이었던 국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과업이 존재하는 셈이 다. 극단적 수입대체 공업화가 오류인 것처럼 극단적 개방 및 자유화 정책도 위험 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소설 속 리카도의 말은 오류이다.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전세계 각처의 제품에 대해 시장을 개방 해야지... 미국은 부유해지고 전세계 국가들이 이를 알 수 있지. 바로 이 정책 이 나의 조국 영국이 19세기에 채택해서 크게 성공한 정책이라네(로버츠 2003, 162쪽).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역사는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장하준의 또 다른 연구(2004)에 따르면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몇 가지 정책과 제도를 채 택하도록 압력을 가하여 왔는데 여기에는 국제 무역과 투자 자유화가 포함된다. 그 러나 흥미롭게도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오늘날 선진국이 부유하게 된 것은 개방 및 자유화를 포함한 일련의 정책 및 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개발 도상국 시기에 유치산업 보호나 수출 보조금 지원과 같은, 근래 세계무역기구 (WTO)에 의해 금지되거나 비판받는 바람직하지 못한 무역 및 산업 정책을 적극적 으로 채택(장하준 2004, 21-22쪽) 하였다. 따라서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설교와 권고는 대단히 위선적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국이야말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개입주의적 무역 및 산업 정책을 수행한 최초의 국가였다. 소설 속에서 리카도와 존슨은 40년간 자급자족이 이루어진 미국을 방문한다. 그 들은 거기서 전혀 경제적 진보가 없고 사람들은 우울하며 모든 것이 회색인 세계를
경제학 소설 의 경제교육적 가치에 관한 비판적 연구 73 목격한다. 하지만 자급자족은 가난해지는 길이네... (스스로: 인용자) 자네 자신의 셔츠 와 구두를 만들고 먹을 음식을 기르는 것이 고통스러운 가난으로 귀결될 것이 분 명하지 않나?(로버츠 2003, 183쪽). 일국이 주어진 여건에 적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건 그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주장은 소위 부유해지는 우 회적 방법 의 극단적 추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국가는 다양한 실 험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은 일국으로 하여금 특화를 강요하고 그로 인해 국제 분업 위계상 특정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일국이 주어진 (초기부존자원) 제약 아래 자 신의 특화를 선택 하는 대신 발전을 위한 학습 을 중요시한 사람은 케인스였다. 그 는 재화, 서비스, 투자의 세계적 이동이 국민적 실험을 극히 제한할 것이라는 사실 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방임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원리에 따라 어떤 획일적인 균형을 완성시키거나 완성시키려고 노력하는 세계 열강에 좌우되는 것을 원치 않 는다...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은 그리고 현재의 과도기적 실험 관계가 지속되 는 한-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 공화국을 향 한 우리 자신이 선호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다른 어떤 곳에서의 경 제적 변동으로부터도 가능한 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Keynes 1933). 예를 들어 개방과 자유화는 완전 고용과 임금 상승 등과 같은 총수요정책과 노동 시장 조절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순수출은 국내경제의 비용 경쟁력에 민감하고, 수입 침투는 국내소비승수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개방경제에 서는 이윤주도적 메커니즘이 훨씬 강력할 것이다(Blecker 1989, Bhaduri and Marglin 1990). 일반적으로 이윤주도적 축적체제 아래에서는 임금 상승이 투자 수 익성을 악화시켜 수요조건에 부정적 효과를 끼치므로 노동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 치에 처하게 된다. 36) 더군다나 자본 파업(capital flight)은 새로운 경제 체제로의 전 36) 반면 임금주도적 경제에서는 임금의 상승이 소비함수를 이동시키고 그 결과 총수요에 긍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