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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은 조선시대 문헌, 지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24시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러한 이곳에 재개발을 앞두고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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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51 창화현이라고도 한다. 현종 9년(1018) 양주에 예속시 키고 후에 감무를 두었는데, 본조(조선) 태조 6년 (1397)에 양주에서 치소를 이곳 견주로 옮겼다가 뒤 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지금의 古 州 內 이다. 라고 하여 두 기사간에 다소의 차이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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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 民 心 書

정약용 丁 若 鏞 1762~1836 본관 나주 자 미용 美 庸 호 다산 茶 山 사암 俟 菴 여유당 與 猶 堂 시호 문도 文 度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홍문관수찬 등 역임,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 ꡔ목민심서ꡕ는 1818년 저술, 1901년 간행 민족문화추진회 역, ꡔ국역 목민심서Ⅰ~Ⅲꡕ, 민족문화추진회, 1971.

목민심서 목 민 심 牧 서 民 心 書 무인( 武 人 ) ꡔ목민심서ꡕ 권 1 부임육조 제배 今 武 人 躬 謁 銓 官 乞 爲 守 令 習 久 成 俗 恬 不 知 恥 其 才 諝 之 能 與 不 能 求 之 者 旣 不 自 揣 聽 之 者 亦 不 考 問 斯 固 非 矣 오늘날 무인 武 人 이 몸소 전관 銓 官 1 을 방문하여 수령이 되기 를 구걸하는 습관이 이제는 풍속을 이루어서 그것을 조금도 부 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 재주와 슬기가 능한가 능하지 않은가 하는 것은 수령 벼슬을 구하는 자도 이미 스스로 헤아리지 않 고, 그것을 들어주는 자도 또한 생각하거나 묻지도 않으니 이것 은 진실로 그릇된 것이다. 무신( 武 臣 ) 궁( 弓 ) 시( 矢 ) ꡔ목민심서ꡕ 권 4 이전육조 속리 不 知 以 爲 知 酬 應 如 流 者 牧 之 所 以 墮 放 吏 也 吾 東 之 人 文 臣 1 관리의 임용을 전형( 銓 衡 )하는 관리, 즉 이조( 吏 曹 )의 당상관과 병조판서를 가리킨다. 291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少 習 詩 賦 武 臣 少 習 弓 矢 此 外 所 學 卽 馬 弔 江 牌 挾 娼 轟 飮 而 已 上 焉 者 窮 九 宮 八 門 之 理 河 圖 洛 書 之 數 凡 此 數 件 於 人 間 萬 事 絶 無 所 當 唯 弓 矢 爲 實 務 亦 與 吏 事 無 涉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하고 응대하기를 물 흐르듯 막힘 없이 하는 것은 수령이 아전의 술수에 떨어지는 까닭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신은 젊어서 시부 詩 賻 를 익히고, 무신은 젊어서 활쏘기를 익히니, 이밖에 배운 바는 마조강패 馬 弔 江 牌 놀 음이나 기생을 끼고 술 마시는 일뿐이다. 그 중에서도 나은 자 는 구궁팔문 九 宮 八 門 2 의 이치와 하도낙서 河 圖 洛 書 3 의 명수 名 數 를 공부하지만, 이 몇가지로는 인간의 만가지 일에 아무것에도 소 용됨이 없다. 오직 활쏘기는 실제적인 일이라 하지만 이 또한 행정 실무와는 상관이 없다. 2 구궁( 九 宮 )은 역산( 曆 算 )의 9 분야, 즉 태일( 太 一 ) 섭제( 攝 提 ) 헌원( 軒 轅 ) 초요( 招 搖 ) 천부( 天 符 ) 청룡( 靑 龍 ) 함지 ( 咸 池 ) 태음( 太 陰 ) 천일( 天 一 ) 을 말한다. 팔문( 八 門 )은 술수가 ( 術 數 家 )의 말이니 휴( 休 ) 생 ( 生 ) 상( 傷 ) 두( 杜 ) 사( 死 ) 경( 景 ) 경( 驚 ) 개( 開 )로서 휴 ( 休 ) 생( 生 ) 개( 開 )의 3문( 門 ) 은 길하고 여타는 흉( 凶 )하다는 것이다. 3 하도( 河 圖 )는 중국의 상고 복 희( 伏 羲 ) 때 황하( 黃 河 )에서 나 온 용마( 龍 馬 )의 등에 나타났다 는 도형( 圖 形 )을 말하는 것으로 역괘( 易 卦 )의 원리가 되었다고 한다. 낙서( 洛 書 )는 하( 夏 )의 우 왕( 禹 王 )이 홍수( 洪 水 )를 다스릴 때에 낙수( 洛 水 )에서 나온 신귀 ( 神 龜 )의 등에 쓰여 있다는 글로 서 홍범( 洪 範 )의 근원이 되었다 는 것이다. 갑( 甲 ) 순( 盾 ) 기고( 旗 鼓 ) 궁( 弓 ) 검( 劍 ) 화포( 火 砲 ) 열무( 閱 武 ) 기효신서( 紀 效 新 書 ) 병가( 兵 家 ) 병학지남( 兵 學 指 南 ) 포호( 砲 號 ) 선패( 筅 牌 ) 금고( 金 鼓 ) 각궁( 角 弓 ) 촉시( 鏃 矢 ) 비구( 臂 韝 ) ꡔ목민심서ꡕ 권 8 병전육조 연졸 趙 啓 遠 爲 水 原 府 使 軍 額 舊 有 三 千 丙 子 之 亂 故 逋 過 半 器 械 亦 多 缺 公 括 境 內 丁 壯 準 舊 額 又 增 二 千 束 隊 鍊 藝 悉 成 精 銳 以 至 甲 盾 旗 鼓 弓 劍 火 砲 之 屬 無 不 備 焉 府 之 軍 容 與 訓 局 相 埒 摠 戎 使 到 府 閱 武 啓 聞 褒 獎 有 賜 馬 之 典 戚 繼 光 紀 效 之 書 今 爲 兵 家 之 玉 律 今 所 行 兵 學 指 南 其 撮 要 者 也 其 砲 號 筅 牌 之 等 雖 係 後 出 若 其 金 鼓 進 退 之 令 部 署 分 合 之 制 皆 自 黃 帝 以 來 流 傳 之 舊 法 每 軍 點 有 期 先 具 角 弓 二 三 張 鏃 矢 三 四 十 臂 韝 三 四 枚 以 備 賞 賜 是 日 衙 官 有 明 熟 不 錯 者 擧 而 賞 之 조계원 趙 啓 遠 이 수원부사 水 原 府 使 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군 액 軍 額 이 본래 3천명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때 절반 이상이 죽거 나 도피하였고 무기도 또한 많이 없어졌다. 그가 경내 境 內 의 장 292

목민심서 정을 찾아내어 옛 수를 회복시킨 위에 2천명을 더하여 대오를 편성하고 무예를 닦아 모두 정예군으로 만들었으며, 갑옷 방 패 깃발 북 활 칼 화포 등도 정비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개 부 府 의 군사 진용이 훈련도감과 서로 비슷할 정도여서 총 융사 摠 戎 使 가 와서 사열 査 閱 하고 정부에 보고하면서 칭찬하니 말 을 하사하는 은전이 있었다. 척계광의 ꡔ기효신서 紀 效 新 書 ꡕ 는 지금도 병가 兵 家 의 주옥같은 율법이니 지금 사용하는 ꡔ병학 지남 兵 學 指 南 ꡕ 4 은 그 요점을 뽑은 것이다. 포호 砲 號 선패 筅 牌 등 은 뒷날에 나온 것이지만 징과 북소리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서 는 호령과 부서를 나누고 합치는 제도는 모두 황제 黃 帝 이래로 전해 오는 옛 법이다. 매양 군사 점호의 시일이 정해지면 미리 각궁 角 弓 2~3개, 화살촉 30~40개, 깍지[ 韝 ] 3~4개를 상품 으로 마련해 두었다가 이날 아관 衙 官 중에서 군사에 밝고 익숙 하여 착오가 없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상줄 것이다. 병기( 兵 器 ) 군기( 軍 器 ) 궁( 弓 ) 시( 矢 ) 창( 槍 ) 도( 刀 ) 조총( 鳥 銃 ) 화약( 火 藥 ) 연환( 鉛 丸 ) 갑( 甲 ) 주( 胄 ) 창( 韔 ) 복( 箙 ) 염초( 焰 硝 ) 총( 銃 ) 흑각( 黑 角 ) 전죽( 箭 竹 ) 망인( 鋩 刃 ) 무예( 武 藝 ) 총통( 銃 筒 ) ꡔ목민심서ꡕ 권 8 병전육조 수병 兵 者 兵 器 也 兵 可 百 年 不 用 不 可 一 日 無 備 修 兵 者 土 臣 之 職 也 郡 縣 皆 有 軍 器 庫 庫 中 所 藏 一 曰 弓 矢 二 曰 槍 刀 三 曰 鳥 銃 四 曰 火 藥 鉛 丸 五 曰 旗 幟 六 曰 甲 胃 七 曰 韔 箙 八 曰 銅 銚 俗 名 銅 爐 口 九 曰 帳 幕 小 小 雜 物 見 於 重 記 其 破 傷 者 補 之 其 缺 欠 者 塡 之 此 守 土 者 之 職 也 雖 然 余 意 有 不 然 者 大 凡 天 下 之 物 不 用 則 蠹 不 用 則 腐 不 用 則 鼠 齮 不 用 則 黴 生 焉 今 坐 昇 平 之 世 歲 費 錢 千 萬 作 爲 弓 矢 槍 刀 諸 物 藏 于 土 庫 未 數 日 土 濕 蒸 焉 霧 雨 透 焉 箭 蛀 羽 落 鐵 鏽 柄 朽 錦 繡 渝 變 布 帛 壞 爛 焰 硝 火 藥 皆 溜 濕 失 性 火 燃 而 銃 不 聲 弦 施 而 弓 已 折 今 年 一 新 修 補 明 年 復 成 塵 土 脫 有 不 幸 4 조선시대 정조 때 왕명으로 편찬한 병서로 명나라 척계광 의 ꡔ기효신서ꡕ 중에서 조련법 만 간추렸다. 293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不 可 以 軍 器 庫 所 藏 百 用 其 一 凡 無 益 之 費 聖 人 惜 之 無 實 之 事 智 者 厭 之 雖 上 司 督 過 御 史 論 罪 實 無 以 誠 心 爲 此 也 古 人 修 兵 皆 沈 機 察 物 先 事 見 兆 預 設 陰 雨 之 備 以 待 朝 夕 之 變 若 朝 野 太 平 都 無 萬 一 之 慮 者 修 之 徒 費 財 耳 然 則 奈 何 銅 千 斤 鑌 鐵 百 鍊 者 三 四 千 斤 黑 角 三 四 百 斤 牛 戴 牛 者 三 四 百 斤 鰾 膠 百 斤 箭 竹 萬 介 加 斜 木 三 四 千 枚 俗 所 云 加 斜 木 不 知 何 木 今 姑 名 之 樺 皮 雉 羽 之 屬 五 六 十 斤 焰 硝 火 藥 之 材 未 鍊 者 六 七 百 斤 硫 黃 砒 黃 磁 粉 磠 砂 松 香 瀝 靑 等 可 以 爲 神 煙 毒 火 之 材 者 一 二 百 斤 以 此 諸 物 藏 之 庫 中 不 亦 可 乎 四 郊 有 警 其 兆 先 見 當 此 之 時 一 面 打 造 一 面 和 劑 使 鋩 刃 皆 新 發 於 硎 使 筋 角 皆 新 傳 於 膠 使 神 煙 毒 火 皆 新 出 於 鍋 不 亦 可 乎 凡 實 心 爲 國 者 宜 知 此 意 隨 力 自 備 以 贖 不 修 兵 之 罪 庶 幾 無 愧 於 內 心 也 箭 竹 之 移 頒 者 月 課 火 藥 之 分 送 者 宜 思 法 意 謹 其 出 納 大 典 曰 每 歲 送 箭 竹 于 兩 界 咸 鏡 道 則 送 嶺 南 嶺 東 之 竹 平 安 道 則 送 湖 南 湖 西 之 竹 節 度 使 分 給 屬 鎭 具 錄 所 造 箭 數 及 將 士 所 給 之 數 以 啓 按 一 道 所 送 不 過 數 萬 介 且 其 竹 性 屈 折 乖 盭 多 不 中 用 必 自 備 佳 品 乃 有 用 也 續 大 典 曰 三 南 海 西 銃 藥 丸 月 課 米 自 常 平 廳 句 管 創 設 月 課 契 貢 物 鳥 銃 軍 器 寺 受 價 製 藥 丸 本 年 則 三 軍 門 與 貢 人 分 半 受 價 製 造 三 軍 門 製 造 者 仍 置 該 軍 門 貢 人 製 造 者 分 送 三 南 海 西 通 編 云 今 則 自 守 總 而 [ 兩 ] 廳 句 管 分 送 各 邑 案 月 課 火 藥 受 來 之 日 軍 官 色 吏 路 費 人 情 雜 費 許 多 而 一 入 庫 中 官 不 致 察 掌 庫 者 卽 軍 器 監 官 偸 賣 私 用 無 所 限 節 或 作 爲 贋 物 以 充 其 額 牧 宜 月 月 點 閱 守 其 實 數 欲 勸 課 武 藝 者 宜 於 公 賜 之 外 加 貿 數 十 斤 以 備 賞 賜 若 朝 令 申 嚴 以 時 修 補 未 可 已 也 續 大 典 曰 各 邑 軍 器 節 度 使 不 時 抽 栍 摘 奸 執 頉 守 令 論 罪 巡 點 時 隨 其 執 頉 之 多 寡 當 該 守 令 從 輕 重 決 棍 論 列 狀 聞 銃 藥 不 藏 官 庫 致 有 奸 弊 者 節 度 使 守 令 依 犯 越 例 照 斷 案 鳥 銳 之 美 惡 係 乎 294

목민심서 鐵 筒 鐵 筒 之 裏 其 圓 至 均 其 路 至 直 然 後 有 發 必 中 若 其 圓 不 均 其 路 不 直 雖 有 百 銃 無 收 用 矣 本 雖 佳 銃 或 鐵 鏽 而 礙 路 或 鐵 鱗 而 礙 路 或 雜 用 石 丸 石 稜 刮 鐵 別 生 一 線 其 路 不 直 皆 爲 病 銃 凡 民 間 病 銃 都 入 公 庫 而 公 庫 佳 銃 日 散 民 間 蓋 病 銃 之 價 不 過 百 錢 佳 銃 之 價 或 至 十 兩 掌 庫 者 利 其 添 價 逐 日 偸 賣 點 閱 之 日 數 爻 雖 合 骨 子 已 脫 將 安 用 矣 銃 筒 例 有 刻 字 但 其 字 數 不 多 易 於 摹 刻 宜 增 其 字 數 竝 其 刻 字 載 於 重 記 點 閱 之 日 竝 査 刻 字 庶 乎 其 弊 少 息 也 續 大 典 曰 各 邑 鎭 軍 器 別 備 者 論 賞 鳥 銃 則 竝 丸 弓 則 竝 箭 備 納 然 後 以 別 備 施 行 舊 軍 器 竝 修 改 無 頉 然 後 新 備 者 論 賞 通 編 云 各 營 邑 不 修 舊 件 只 爲 新 備 則 件 數 雖 多 不 許 加 資 以 錫 馬 論 賞 案 今 之 所 謂 修 補 者 或 嬖 妓 免 役 憑 藉 軍 器 受 其 願 納 枉 矢 數 百 㢼 弓 數 十 依 樣 畫 葫 以 增 虛 簿 或 富 民 饒 戶 憑 藉 軍 器 受 其 願 納 竊 其 什 七 捐 其 什 三 假 作 粉 飾 以 欺 人 目 或 憑 籍 旗 捍 伐 民 園 竹 算 至 千 百 載 之 京 船 賣 作 燈 竿 或 憑 藉 箭 筈 每 一 訴 牒 受 一 雉 羽 或 憑 藉 旗 頭 每 一 訴 牒 受 一 雉 尾 求 之 不 得 有 冤 莫 暴 斯 皆 苟 且 非 理 之 政 不 可 爲 也 官 受 雉 羽 雉 尾 付 之 公 庫 掌 庫 者 與 市 人 謀 以 其 所 受 出 付 市 人 使 之 發 賣 民 欲 投 牒 不 得 不 買 一 羽 一 錢 一 尾 五 錢 此 與 三 脊 之 茅 何 以 異 矣 畢 竟 疑 謗 歸 於 官 長 何 莫 悟 矣 續 大 典 曰 軍 器 偸 取 者 本 曹 啓 稟 梟 示 捕 捉 者 論 賞 案 弓 銃 槍 刀 鉦 鼓 之 等 各 以 數 爻 多 少 上 下 其 律 火 藥 未 滿 百 斤 者 減 死 重 棍 滿 百 斤 其 死 可 知 병 兵 이라는 것은 병기 兵 器 이다. 병기를 100년 동안 쓰지 않더라 도 하루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병기를 닦는 것은 수령의 직무 이다. 군현에는 모두 군기고 軍 器 庫 가 있고 그 안에 소장된 것은 첫째 활과 화살, 둘째 창과 칼, 셋째 조총 鳥 銃, 넷째 화약과 연환 鉛 丸, 다섯째 깃발, 여섯째 갑옷, 일곱째 활집과 화살통, 여덟째 구리 솥, 아홉째 장막 帳 幕 등이다. 이 밖에 소소한 잡물은 중기 重 記 5 에 5 관리들의 사무 인계 때 주고 받는 장부 295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6 잘 단근질 된 쇠 7 길고 흠이 없고 3색이 겸해 있 는 쇠뿔 8 물고기의 부레를 쪄서 갖풀로 만든 것 9 연철( 鉛 鐵 )이 섞여 있는 독 있 는 광석 10 대를 태워 받은 물 11 눈물이 나게 하는 연기와 화염 보이는데, 그 파손된 것을 보수하고 그 없어진 것을 채우는 것 이 수령의 직무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바가 있 다. 무릇 천하의 물건은 쓰지 않으면 좀먹고 썩으며 쥐가 파먹 고나 곰팡이가 생긴다. 지금 태평한 세상에 앉아서 해마다 돈 천만 전을 소비하여 활과 화살, 창과 칼 등을 만들어 군현의 창 고에 보관하면 며칠 못가서 습기 차고 안개와 비가 스며 화살은 좀먹고 깃은 떨어지고 쇠는 녹슬고 자루는 썩으며 수놓은 것은 변색되고 포목은 찢어지고 염초 焰 硝 와 화약은 모두 젖어서 불을 붙여도 총소리가 나지 않으며 줄을 당기면 활은 이미 부러졌다. 금년에 모두 새롭게 보수하여도 명년이면 다시 먼지와 흙이 되 니 만약 불행한 일이 있어도 군기고에 소장한 무기들은 백에 하 나도 쓸모가 없게 된다. 무익한 소비는 성인들이 아까워하였고 실속 없는 일은 지혜로운 자가 싫어하였다. 미록 상사 上 司 가 허 물을 독책하고 어사 御 史 가 죄를 논하여도 실제로는 성심으로 병 기를 보수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옛 사람들의 병기 보수는 모 두 사물의 기틀을 깊이 살펴서 일에 앞서서 그 조짐을 보아 미 리 전쟁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불시의 사변을 대비하여 실시하 였다. 조야가 태평하여 만일의 염려도 없을 경우에 병기를 보수 하는 것은 재물을 허비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구 6 리 1천근, 100번을 단근질한 빈철 鑌 鐵 3~4천 근, 흑각 黑 角 3~4 7 8 백 근, 우대우 牛 戴 牛 3~4백근, 표교 鰾 膠 1백 근, 전죽 箭 竹 1만개, 가사목 加 斜 木 3~4천 매, 화피 樺 皮 꿩깃 등 50~60근, 염초 화 약재료 6~7백근, 유황 硫 黃 비황 砒 黃 9 자분 磁 粉 사기가루[ 磠 10 11 砂 ] 송향 松 香 역청 瀝 靑 등 신연독화 神 煙 毒 火 의 재료 1~2백 근 등의 물품을 창고에 보관해 두는 것도 또한 옳지 않겠는가. 사방에 위험이 있어 그 조짐이 나타나면 이 때를 당하여 한쪽으 로 두드려 만들고, 한쪽으로 조제하되 칼날을 모두 새로 세우고 활줄에 모두 아교를 먹이고 신연독화는 새로 가마에 끓이면 되 296

목민심서 지 않겠는가. 진실로 나라 위하는 자는 마땅히 이 뜻을 알고 힘 에 따라 스스로 준비함으로써 병기 보수하지 못한 죄를 속죄하 여야만 조금이나마 마음으로 부끄러움이 없게 될 것이다. 12 전죽 箭 竹 을 옮겨 지급하는 자와 월과화약 月 課 火 藥 을 나누어 수 송하는 자는 마땅히 법의 뜻을 알아서 그 출납을 신중히 할 것 이다. ꡔ경국대전ꡕ에 규정하였다. 해마다 전죽 箭 竹 을 양계 兩 界 에 보내 면 영안도 永 安 道 에는 경상도에서 2만 5천 개, 강원도에서 1만 1천 5백 개, 형안도에는 전라도에서 1만 5천 개, 충청도에서 5천 개이다. 절도사가 그 소속 각 진 鎭 에 나누어 지급하고 만든 화살의 수와 장수와 병사 들에게 지급한 수량을 기록하여 보고한다 하였다. 생각건대, 한 도에서 보내오는 것이 수만 개에 불과하고 또 그 대가 굽고 휘어져서 쓰지 못할 것이 많다. 반드시 좋은 물품을 양계에서 스스로 준비하여야만 유용할 것이다. ꡔ속대전 續 大 典 ꡕ에 규정하 기를 삼남 지방 및 황해도 지방의 조총 화약 탄환을 만들기 위한 월과미는 상평청 常 平 廳 에서 관리하며 월과계공물 月 課 契 貢 物 을 창설한다 하였다. 조총은 군기시 軍 器 寺 에서 공가 貢 價 를 받아 제조한다. 화약과 탄환은 본년 本 年 에는 삼군문 三 軍 門 이 공인과 더불어 절반씩 그 값을 받아 만든다. 삼군문에서 만든 것은 그 대로 그 군문에 두고 공인이 만든 것은 삼남지방과 황해도 지방 에 나누어 보낸다. 13 ꡔ대전통편 大 典 通 編 ꡕ에 규정하기를 지금에 는 수어청 총융청의 양청에서 관리하여 각 고을로 나누어 보 낸다 하였다. 살피건대 월과화약을 받아오는 날에 군관과 담당 아전의 노자 路 資 와 인정 人 情 등의 잡비가 허다한데 화약이 한번 창고 안에 들어가면 수령이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며 창고를 맡 은 자 즉 군기 軍 器 감관 監 官 이다. 가 훔쳐 팔고 사사로이 쓰는 데 제한이 없으며, 혹 가짜 물건을 만들어 그 수량을 채운다. 수령 은 마땅히 달마다 점검하여 그 실수를 확인할 것이다. 무예 武 藝 12 임진왜란 이후 조총이 상용 무기화함에 따라 조총에 필요 한 화약을 각 지방 관아가 일정 한 양을 스스로 마련하게 한 제 도를 말한다. 13 이 내용은 ꡔ속대전ꡕ의 병전 군기조에 있다. 또한 간년( 間 年 ) 에는 공인이 전체의 값을 받아 만든다. 297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14 허가 없이 국경을 넘는 경우 를 말한다. 를 권장하고자 하는 자는 공적으로 내리는 이외에 수십 근을 더 사두었다가 포상의 자료로 삼을 것이다. 만약 조정의 명령이 엄하면 때때로 군기 보수를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ꡔ속대전ꡕ에 규정하기를 각 고을의 군기는 절도사가 무시로 어 느 한 고을을 택하여 부정한 것을 적발하고 사고를 파악하여 수 령에게 죄를 논한다 하였다. 순찰하며 점검할 때 그 사고가 많 고 적음에 따라 해당 수령을 경중 輕 重 에 의하여 곤장질하고 죄 목을 들어 보고한다. 조총과 화약을 관청 창고에 보관하지 않고 14 부정을 저지른 자는 절도사나 수령이 범월 犯 越 한 예에 의하여 단죄한다. 살피건대, 조총의 좋고 나쁨은 철통 鐵 筒 에 관계된다. 철통안의 둘레가 매우 고르고 그 탄환 나가는 길이 곧아야 발포 하면 반드시 적중한다. 만약 그 둘레가 고르지 못하고 그 길이 곧지 못하면 비록 백 자루의 총이 있다 하여도 쓸모가 없는 것 이다. 본래는 놓은 총이었다 하여도 쇠가 녹이 나서 길을 막고 쇠가 비늘이 일어나서 길을 막고 혹은 돌 탄환을 사용하여 돌의 모서리가 쇠를 긁어 따로 또 하나의 선이 생겨 그 길이 고르지 못하게 되면 모두 병총 病 銃 이 된다. 무릇 민간의 병총은 모두 공 고 公 庫 에 들어가고 공고의 좋은 총은 날로 민간으로 흩어진다. 대개 병총의 값은 1백푼에 불과한데 좋은 총의 값은 10냥이 되 기도 하니 창고를 담당한 자가 그 차액을 노리고 날마다 훔쳐서 판다. 점검하는 날에 수량은 비록 맞지만 골자 骨 子 가 이미 빠졌 으니 장차 어찌 사용하겠는가. 총통에는 으레 글자가 새겨져 있 으나 그 글자 수가 많지 않아서 본떠 새기기 쉽다. 마땅히 글자 수를 늘리고 그 새긴 글자를 중기 重 記 에 기록해 두었다가 점검 하는 날에 글자도 함께 조사하면 어느 정도 그 폐단이 그칠 것 이다. ꡔ속대전ꡕ에 규정하기를 각 읍진의 군기를 정액 이외에 별도로 비치함이 있는 자는 상준다 하였다. 조총은 탄환과 함 298

목민심서 께, 활은 화살과 함께 비치하여야 별도 비치한 것으로 간주한다. 묵은 군기를 모두 탈 없이 보수한 후 새 군기를 비치한 자라야 상을 준다. ꡔ대전통편ꡕ에 규정하기를 각 영읍 營 邑 에서 묵은 병 기를 보수하지 않고 새로운 병기만 갖추면 그 건수가 많다 하여 도 가자 加 資 는 허하지 않고 말을 내려 포상한다 하였다. 살피건 대, 지금 병기를 보수한다는 자들은 혹 사랑하는 기생을 면역함 에 병기 보수를 빙자하여 원납 願 納 으로 굽은 화살 수백 개와 틀 어진 활 수십 개를 받아 형식을 꾸며 헛되이 장부에만 불리고 혹은 부유한 민호에게서 병기 보수를 빙자하여 원납을 받는데 열에 일곱은 빼돌리고 나머지 셋만을 바치게 하여 사람의 눈을 속인다. 깃대를 만든다는 핑계로 백성들의 대밭을 베어 천백 개 의 대를 경선 京 船 에 실어 등대로 팔고, 화살 깃을 만든다는 핑계 로 소첩 訴 牒 이 있을 때마다 꿩깃 하나씩을 받으며, 기두 旗 頭 를 만든다는 핑계로 소첩이 있을 때마다 꿩 꼬리 하나씩을 받는다. 깃과 꼬리를 요구하여 얻지 못하면 백성이 원통한 일이 있어도 펴지 못한다. 이는 모두 구차하고 불합리한 정사이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령이 꿩의 깃과 꼬리를 받아 공고 公 庫 에 넣으면 창 고를 맡은 자가 상인들과 짜고 그 받은 것을 상인들에게 내어주 어 팔게 한다. 백성들이 소첩을 내려 하면 부득이 사지 않을 수 없는데 깃 하나에 1전, 꼬리 하나에 5전씩 하니 이것이 삼척모 三 15 脊 茅 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필경에는 의심과 비방이 수령에게 로 돌아가는데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 ꡔ속대전ꡕ에 규정하기를 군기를 훔친 자는 병조에서 임금께 보고하여 효시 梟 示 하고 그 잡은 자를 포상한다 하였다. 살피건대, 활 조총 창 칼 정 鉦 북 등은 그 훔쳐간 수효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형률을 올리 거나 내린다. 화약 훔친 것이 1백근 미만인 자는 사형 死 刑 을 감 하고 무거운 곤장을 쳐야 할 것이다. 1백근에 차면 그 죽게 된다는 것을 가히 알 것이다. 15 중국의 강회( 江 淮 ) 사이에서 나는 띠풀의 일종이다. 예로부 터 이를 서초( 瑞 草 )라고 생각하 여 봉선( 封 禪 )할 때에 사용했다 고 한다. 299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무기( 武 技 ) 사( 射 ) 궁( 弓 ) 시( 矢 ) 간( 干 ) 과( 戈 ) 각궁( 角 弓 ) 철 촉( 鐵 鏃 ) 첨봉( 尖 鋒 ) 무과( 武 科 ) 조궁( 操 弓 ) 권무( 勸 武 ) 만과 ( 萬 科 ) 철전( 鐵 箭 ) 목전( 木 箭 ) 선사( 善 射 ) 육량( 六 兩 ) 대전( 大 箭 ) 전( 箭 ) 습무( 習 武 ) 능사자( 能 射 者 ) 시사( 試 射 ) 시방( ( 試 放 ) 대사( 代 射 ) 결( 缺 ) 습( 拾 ) 노( 弩 ) 편전( 片 箭 ) 관혁( 貫 革 ) 강노 ( 强 弩 ) 기추( 騎 芻 ) 조총( 鳥 銃 ) 무경( 武 經 ) 병학지남( 兵 學 指 南 ) 무사( 武 士 ) 권무청( 勸 武 廳 ) 촉시( 鏃 矢 ) 창복( 韔 箙 ) 전통( 箭 筒 ) 비구( 臂 韝 ) 무경칠서( 武 經 七 書 ) 신비노( 神 臂 弩 ) 대궁( 大 弓 ) 전 촉( 箭 鏃 ) 사예( 射 藝 ) 노수( 弩 手 ) 요도( 腰 刀 ) 도( 刀 ) 장노( 張 弩 ) ꡔ목민심서ꡕ 권 8 병전육조 권무 東 俗 柔 謹 不 喜 武 技 所 習 惟 射 今 亦 不 習 勸 武 者 今 日 之 急 務 也 弓 矢 干 戈 皆 太 古 之 武 技 也 吾 東 之 俗 不 知 干 戈 爲 何 物 惟 以 弓 矢 爲 武 技 而 製 弓 則 筋 薄 而 膠 厚 故 始 強 而 終 軟 冬 強 而 夏 軟 晴 強 而 雨 軟 活 彄 每 脫 兩 弰 恒 戾 一 射 一 焙 一 發 一 檠 勞 於 施 法 於 析 角 弓 不 可 謂 弓 也 造 矢 則 剝 皮 熁 膚 不 耐 雨 濕 骲 頭 無 鏃 惟 以 賭 戲 所 謂 鐵 鏃 亦 無 尖 鋒 惟 恐 傷 人 不 能 穿 物 通 計 國 中 之 矢 都 是 此 物 惟 公 庫 所 藏 或 有 尖 鋒 不 能 萬 一 脫 有 寇 警 皆 赤 手 無 所 執 然 且 百 餘 年 來 武 科 之 弊 日 增 月 加 遂 使 通 國 之 民 無 一 人 操 弓 以 出 者 至 于 今 日 遂 至 極 盡 地 頭 每 式 年 鄕 試 試 額 二 十 五 人 兩 湖 也 嶺 南 三 十 人 分 左 右 則 十 二 人 也 其 額 之 少 如 此 而 乃 擧 子 之 來 赴 者 極 不 過 五 六 人 無 以 充 榜 其 五 六 人 勒 取 試 邑 軍 校 虛 名 序 次 以 充 其 數 凡 科 場 輪 設 於 諸 邑 其 本 年 設 場 者 謂 之 試 也 弊 而 至 此 亦 可 以 思 矣 守 令 雖 欲 勸 武 何 以 勸 矣 其 弊 之 至 於 斯 極 者 何 也 一 曰 擊 逐 二 曰 空 老 三 曰 徵 布 四 曰 萬 科 五 曰 無 額 此 五 者 大 亂 之 法 也 五 亂 不 止 而 世 無 有 操 弓 而 出 者 矣 擊 逐 者 何 謂 也 式 年 增 廣 之 規 十 技 一 講 廣 試 諸 藝 與 庭 試 萬 科 之 苟 取 單 技 者 不 同 故 古 者 式 年 增 廣 出 身 者 銓 曹 收 用 先 於 他 科 之 出 身 而 試 場 多 算 全 出 遠 射 鐵 箭 木 箭 俗 謂 之 細 箭 不 得 多 算 則 卒 無 上 第 之 理 乃 西 北 勁 悍 之 士 兩 南 300

목민심서 奇 材 之 客 每 於 鐵 箭 木 箭 已 占 高 算 京 城 將 家 之 子 紈 袴 軟 骨 之 類 抵 敵 無 術 於 是 廣 募 無 賴 之 輩 遂 行 擊 逐 之 法 凡 遐 土 善 射 之 人 來 赴 會 試 者 或 伺 候 於 暗 巷 或 惹 鬧 於 酒 家 咸 用 六 兩 大 箭 打 碎 轆 轤 關 諸 骨 此 旣 盛 黨 彼 本 孤 孑 何 以 敵 矣 流 血 狼 藉 痀 背 終 身 遂 不 能 赴 試 其 或 漏 網 者 得 入 高 算 則 預 以 字 號 密 告 試 官 凡 遐 土 多 算 者 入 於 講 席 七 箇 試 官 眴 目 相 應 吹 毛 覓 疵 必 置 落 科 其 或 句 讀 無 錯 文 義 亦 通 者 七 官 相 議 六 通 一 不 以 置 落 科 講 法 凡 通 與 不 通 相 錯 者 置 之 落 科 所 謂 一 不 殺 六 通 乾 隆 庚 戌 余 以 臺 官 監 試 目 見 玆 事 矣 射 畫 雜 畫 多 至 一 百 五 六 十 分 者 又 善 講 經 十 技 一 講 無 一 差 誤 者 冤 屈 此 科 嘔 血 以 歸 而 紈 袴 軟 骨 之 子 咸 登 上 第 奏 管 絃 乘 駿 馬 以 出 試 門 天 下 之 至 冤 大 痛 有 足 以 感 傷 和 氣 者 未 有 甚 於 是 者 也 此 人 歸 家 碎 弓 折 箭 戒 子 訓 孫 令 勿 習 武 鄕 里 來 觀 傳 相 告 諭 勿 復 習 武 此 擧 子 之 所 以 絶 也 空 老 者 何 也 勢 力 之 家 雖 萬 科 出 身 朝 除 夕 遷 南 符 北 節 十 年 之 內 遂 達 藩 閫 遐 遠 之 人 雖 式 年 出 身 左 枳 右 塞 槁 項 黃 馘 十 世 之 業 破 於 旅 店 國 俗 賤 武 其 武 科 而 不 能 仕 者 尤 在 所 賤 世 系 有 此 一 累 子 孫 不 通 三 司 於 是 戒 子 訓 孫 令 勿 習 武 此 擧 子 之 所 以 絶 也 徵 布 者 何 也 近 例 武 科 出 身 其 子 婿 弟 姪 咸 隷 軍 籍 名 之 曰 有 廳 軍 官 每 年 徵 布 一 匹 以 錢 則 二 兩 乃 自 兵 曹 査 考 帳 籍 一 兒 一 穉 無 或 隱 漏 其 或 隱 漏 者 軍 吏 括 之 討 索 無 厭 簽 與 不 簽 納 錢 則 一 以 此 之 故 門 中 出 一 武 科 三 族 皆 被 侵 虐 本 有 軍 役 者 今 爲 疊 輸 本 或 無 役 者 今 爲 新 罹 夫 科 擧 者 爲 其 榮 也 求 榮 不 得 反 遭 菑 辱 以 此 募 民 誰 其 應 之 戒 子 訓 孫 令 勿 習 武 此 擧 子 之 所 以 絶 也 萬 科 者 何 也 國 有 大 慶 以 科 飾 喜 中 一 箭 者 咸 許 出 身 或 踰 千 人 或 至 數 千 此 所 謂 萬 科 也 科 名 旣 賤 民 不 爲 禮 銓 曹 據 此 棄 之 不 錄 然 且 一 箭 之 中 便 可 得 志 則 能 射 者 一 第 不 能 射 者 亦 一 第 也 工 拙 無 分 賢 愚 無 別 民 其 勸 乎 雖 不 習 武 容 得 此 第 戒 子 訓 孫 遂 不 習 武 此 擧 子 之 所 以 絶 也 無 額 者 何 也 無 論 文 武 赴 擧 應 有 恒 額 吾 東 科 擧 唯 以 無 額 之 故 百 弊 層 生 遂 至 大 亂 武 科 301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赴 擧 者 若 自 本 縣 試 射 試 放 其 能 中 矩 者 方 許 赴 試 則 代 射 者 絶 矣 今 也 一 榜 十 人 則 十 人 皆 代 射 一 榜 百 人 則 百 人 皆 代 射 有 錢 者 不 知 決 拾 而 少 年 登 科 無 錢 者 技 埒 由 羿 而 白 首 龍 鍾 使 一 國 之 人 弩 目 摑 掌 唯 錢 是 謀 而 復 有 操 弓 者 乎 戒 子 訓 孫 令 勿 習 武 此 擧 子 之 所 以 絶 也 五 亂 不 止 則 守 令 雖 焦 脣 敝 舌 勸 民 習 武 而 習 者 不 可 得 矣 牧 之 久 任 者 或 至 六 朞 揣 能 如 是 者 勸 之 而 民 勸 矣 遐 土 之 民 以 鄕 任 校 任 爲 仕 宦 以 旬 題 月 課 爲 科 擧 由 是 言 之 雖 科 規 壞 亂 而 爲 民 牧 者 勸 課 有 法 民 必 胥 勸 五 年 六 年 習 俗 漸 成 則 其 風 流 遠 畢 竟 有 補 於 國 家 不 可 以 科 規 之 大 隳 而 遂 廢 斯 政 也 勸 之 奈 何 凡 式 年 增 廣 之 所 用 十 技 一 講 不 必 盡 習 唯 庭 試 別 試 及 兵 營 都 試 之 所 用 牧 苟 勸 之 必 有 肯 者 一 曰 鐵 箭 卽 六 兩 二 曰 木 箭 三 曰 片 箭 四 曰 貫 革 五 曰 強 弩 六 曰 騎 芻 七 曰 鳥 銃 八 曰 武 經 孫 吳 等 七 書 及 兵 學 指 南 以 此 八 技 選 士 以 習 之 可 也 或 曰 鐵 箭 宜 去 之 選 邑 中 武 士 不 拘 吏 校 閑 良 唯 年 未 滿 三 十 者 乃 可 與 選 外 村 不 拘 士 族 土 族 中 下 之 族 其 有 自 願 者 咸 試 其 才 可 與 人 校 者 許 錄 其 名 或 取 二 十 人 或 取 三 十 人 武 技 考 試 必 費 時 刻 不 似 文 藝 之 易 考 多 員 則 妨 政 事 名 之 曰 勸 武 廳 凡 病 代 喪 代 諸 法 一 依 詞 林 生 規 式 詳 上 課 藝 條 一 年 十 二 抄 春 則 立 夏 以 前 試 五 次 秋 冬 則 白 露 以 後 行 七 次 暑 月 不 可 習 武 技 畢 試 取 其 多 算 者 施 之 以 賞 賞 賜 之 物 角 弓 鏃 矢 片 箭 韔 箙 箭 筒 南 方 多 佳 品 臂 韝 之 外 扇 子 梳 兒 及 武 經 七 書 兵 學 指 南 無 所 不 可 而 武 士 異 於 文 士 榜 出 之 日 使 以 管 絃 前 導 以 出 又 給 酒 肉 之 費 使 之 就 武 廳 行 樂 方 好 強 弩 之 張 設 發 放 不 可 不 習 劉 天 和 曰 前 代 名 將 如 漢 耿 恭 虞 詡 唐 李 靖 郭 子 儀 宋 劉 錡 吳 璘 宗 澤 輩 用 彊 弩 以 破 羌 虜 者 不 可 勝 數 而 漢 且 置 彊 弩 將 軍 之 官 宋 始 有 神 臂 弓 之 制 其 實 弩 耳 臣 亦 未 敢 遽 是 也 近 於 陜 西 省 城 見 有 城 樓 舊 題 神 臂 弩 數 百 張 相 傳 者 百 餘 年 矣 乃 知 先 朝 302

목민심서 亦 嘗 制 此 雖 皆 損 壞 而 制 度 猶 存 但 箭 則 無 矣 臣 謹 從 宜 遵 倣 造 成 其 制 以 闊 厚 堅 勁 大 弓 其 力 一 百 五 十 斤 上 下 及 一 百 二 十 斤 上 下 及 九 十 斤 上 下 爲 三 等 慮 人 力 有 強 弱 也 其 長 均 四 尺 五 寸 矣 取 其 利 最 遠 而 端 可 及 三 百 步 內 外 者 爲 式 其 長 均 七 寸 五 分 其 重 則 六 錢 上 下 亦 三 等 俾 與 弩 稱 復 倣 漢 耿 恭 之 法 箭 鏃 開 四 尖 又 傅 以 河 南 嵩 縣 等 處 射 虎 箭 藥 俾 人 馬 中 之 無 不 立 斃 尤 虜 所 畏 其 箭 鏃 後 小 鐵 管 心 僅 長 分 許 入 箭 簳 處 內 用 漆 膠 外 用 竹 絲 以 夾 縛 之 俾 虜 不 能 取 以 返 射 蓋 虜 之 射 藝 極 精 矢 無 虛 發 唯 此 足 以 勝 之 臣 謬 謂 彊 弩 爲 中 國 長 技 之 一 者 此 也 荊 川 武 編 云 弩 最 爲 利 器 射 堅 及 遠 爭 險 守 隘 遏 衝 制 突 非 弩 不 克 或 者 謂 用 弩 不 便 於 戰 然 非 弩 不 便 於 戰 乃 爲 將 者 不 善 於 弩 也 善 用 弩 者 列 爲 五 層 每 層 或 三 或 五 攢 箭 注 射 射 訖 掣 回 而 張 張 訖 挨 次 而 射 遞 相 輪 翻 繼 而 不 絶 尤 宜 處 高 臨 下 仍 令 弩 手 各 帶 腰 刀 一 把 賊 若 近 前 則 跨 弩 而 用 刀 如 此 則 長 短 得 以 相 濟 一 敎 弩 法 曰 張 弩 丁 字 立 當 弩 八 字 立 高 揎 手 屈 衫 襟 左 手 承 撞 右 手 迎 上 當 心 著 張 張 有 闊 狹 左 䏶 右 膞 還 腹 當 心 安 箭 高 擧 手 敵 遠 則 擡 頭 放 箭 敵 近 則 平 身 敵 右 則 右 回 身 敵 左 則 左 回 身 敵 在 高 高 擎 手 敵 在 下 低 伏 手 發 訖 唱 殺 殺 然 後 掣 若 夫 號 令 坐 作 之 法 馳 突 擊 刺 之 勢 須 有 隱 憂 乃 可 肄 習 太 常 刁 君 鎭 楊 州 占 府 乾 隅 夷 茀 而 基 因 城 而 垣 竝 垣 而 溝 周 六 百 步 竹 萬 個 覆 其 上 故 高 亭 在 垣 東 南 循 而 三 十 軌 作 堂 堂 南 北 鄕 袤 八 筵 廣 八 筵 直 北 爲 射 埒 列 樹 八 百 本 以 翼 其 旁 又 循 而 西 十 有 二 軌 作 亭 曰 肄 武 南 北 鄕 袤 四 筵 廣 如 之 埒 如 堂 列 樹 以 鄕 歲 時 敎 士 戰 射 坐 作 之 法 晉 陵 張 公 知 信 州 營 州 之 西 北 亢 爽 之 墟 以 宅 屯 駐 之 師 除 其 故 營 以 時 敎 士 刺 伐 坐 作 之 法 故 所 無 也 우리나라 풍속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무예를 즐기지 않고 익 히는 것은 오직 활쏘기 뿐이었는데 그것도 요즘은 익히지 않는 다. 무예를 권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이다. 303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16 화살 끝의 쇠촉을 박는 뼈로 된 부분 활과 화살, 창과 방패는 모두 태고적의 무예이다. 우리나라 풍속 은 창과 방패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활과 화살만을 무예로 삼으며 활을 만들 때 활줄은 약하면서 아교만 두텁게 발랐기 때 문에 처음에는 강하다가 끝에는 약하고, 겨울에는 강하나 여름 에는 약하며 맑은 날에는 강하나 비 오는 날에는 약하다. 항상 활고지가 매양 벗어지고 활 끝이 항상 뒤틀려서 한번 쏘고는 한 번 불에 발리고 한번 당기고는 한번 도지개로 바로잡아야 하니 다루기에 힘들고 부러질까 겁나서 각궁 角 弓 은 활이라 할 수 없 다. 화살을 만들 때에는 대의 껍질을 벗기고 안쪽을 불로 지져 16 서 비와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화살의 박두 骲 頭 만 있고 촉이 없으니 다만 활쏘기 내기에만 쓰인다. 쇠촉이라는 것도 날카로 운 끝이 없으니 사람을 상할까 염려하여 만든 것 같아서 어떤 물건을 뚫을 수 없다. 나라 안의 화살은 통틀어서 모두 이런 것 들이며 다만 공고 公 庫 에 소장되어 있는 화살이 혹 날카로운 끝 이 있는 것이 있으나 만에 하나도 못된다. 만약 변란이 있게 되 면 모두 맨손이며 가지고 나설 것이 없다. 그리고 또 백여 년 이래로 무과 武 科 과거의 폐단이 점점 심하여져서 마침내 전국의 국민들로 하여금 한 사람도 활을 잡고 나서는 사람이 없게 만들 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막 다른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식년 式 年 마다의 향시 鄕 試 는 모집 인원이 25명이어서 호서 호남이 그렇고 영 남은 30명이다. 이를 좌우도로 나누면 한쪽이 12명이다. 그 인원 이 적은 것이 이와 같지만, 이에 응시하러 오는 자가 5~6명에 불과하여 정원을 충당할 수도 없다. 그 5~6명도 시읍 試 邑 과장 科 場 을 각 고을마다 돌아가면서 설치하였고 그 해에 과장을 설치한 고을을 시 읍이라 하였다. 의 군교 軍 校 들은 억지로 합격시켜 허명 虛 名 으로 차 례를 매겨 그 수를 충당하였다. 폐단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또한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수령이 무예를 권장하려 하나 무엇으 로 하겠는가. 그 폐단이 이렇게 극심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 304

목민심서 가. 첫째는 격축 擊 逐 이요, 둘째는 공로 空 老 요, 셋째는 징포 徵 布 요, 넷째는 만과 萬 科 요, 다섯째는 무액 無 額 이니 이 다섯 가지가 극심한 문란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다섯 가지 폐단이 그치지 않 고는 세상에 활을 잡고 나서는 자가 없을 것이다. 격축이란 무 엇인가. 식년증광시의 규정은 몇 가지 무예와 한 가지 병서를 강하여 여러 가지 재주를 널리 시험하므로 한 가지 기예로만 뽑 는 정시만과 庭 試 萬 科 와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식년증 광시 출신자는 병조에서 채용할 때 다른 종류의 무과 출신보다 우선했다. 시험장에서 많은 점수를 따는 것은 전적으로 멀리 쏘 는 것에 달렸다. 철전 鐵 箭 과 목전 木 箭 속언 俗 言 으로 말하는 세전 細 箭 이다. 에서 점수를 많이 얻지 못하면 마침내 급제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평안도와 함경도 지방의 용맹한 무사와 영남 호남 지 방의 뛰어난 재사들은 매양 철전과 목전 쏘기에서 이미 높은 점 수를 얻기 때문에 서울의 장수 집 아들로서 비단옷 입은 연약한 무리들은 이들을 대적할 수 없다. 이에 무뢰배들을 널리 모아서 격축법을 행사하는데, 먼 시골의 활 잘 쏘는 사람이 회시 會 試 를 보러 오면 무뢰배들이 어두운 골목에서 엿보거나 술집에서 시 비를 걸고 모두 6냥짜리 큰 몽둥이로 돌려가며 두들겨 패니 이 쪽은 무리가 많고 저쪽은 본래 외로우니 어찌 대적이 되겠는가. 유혈이 낭자하고 평생 곱사가 되어버리니 드디어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된다. 혹시 이 횡포를 벗어나 시험장에서 높은 점수를 얻게 되면 그 수험번호를 미리 시험관에게 밀고하므로, 대개 시 골 출신으로 활쏘기에서 점수 많이 얻은 자가 강석 講 席 에 들어 가면 7명의 시험관 17 이 눈짓으로 서로 짜고 까다롭게 흠을 잡아 반드시 낙제시킨다. 강법 講 法 에 통 通 과 불통 不 通 이 서로 섞인 자는 낙 방시키니 이른바 하나의 불통 不 通 이 여섯 통 通 을 죽인다는 것이다. 건륭 乾 隆 경술년 18 에 내가 대관 臺 官 으로서 감시관 監 試 官 이 되어 이런 일 을 목격하였다. 활쏘기 점수와 잡기 雜 技 점수가 1백 50~60점이 17 7명인 이유는 시험과목인 무 경( 武 經 )이 손자( 孫 子 ) 오자( 吳 子 ) 사마법( 司 馬 法 ) 위료자 ( 尉 繚 子 ) 이위공문대( 李 衛 公 問 對 ) 황석공삼략( 黃 石 公 三 略 ) 육도( 六 韜 등 7서이기 때문이다. 18 정조 14년(1790) 305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19 인조 때 군적에 빠진 장정을 소출하여 군영의 군정에 보충 하고 나머지 여정( 餘 丁 )은 병조 에 소속시켰다. 또 본래 군적에 편입되지 않게 되어 있는 교생 ( 校 生 ) 원생( 院 生 ) 중 강( 講 )에 낙제한 사람을 군적에 넣어 낙 강군( 落 講 軍 )이라 하고 군포( 軍 布 )를 거두었다. 숙종( 肅 宗 ) 때 에는 사정청( 査 正 廳 )을 두어 충 순( 忠 順 ) 충찬( 忠 贊 ) 충장( 忠 壯 ) 등 3위( 衛 )의 군보( 軍 保 )를 금군청( 禁 軍 廳 )으로 옮기고 그 여정( 餘 丁 )을 병조로 옮겨 수포 ( 收 布 )했고, 영조 25년에 와서 이들 보충군관 낙강군 및 여정 ( 餘 丁 )을 합쳐 유청군이라 하고 수포( 收 布 )했다. 나 되고 또 강경 講 經 도 잘하여 10가지 무예와 1가지 강 講 에 하나 의 착오가 없었는데 억울하게 낙방하여 피를 토하고 돌아가고 비단옷 입은 연약한 자식들이 모두 일등으로 급제하여 풍악을 울리며 준마 駿 馬 를 타고 시험장을 나오니 천하에 지대한 원통으 로 화기 和 氣 를 상하게 하는 일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을 것이 다. 낙방한 자가 집으로 돌아가서 활을 부수고 화살을 꺾고 자 손에게 훈계하여 무예를 익히지 못하게 하고 향리에서 보러 오 면 서로 이야기 하여 다시는 무예를 익히지 않게 하니 이것이 과거 응시자가 끊어지는 까닭인 것이다. 공로 空 老 란 무엇인가. 세력 있는 집안은 만과 萬 科 출신이라도 조석으로 승진하고 남북 의 군직 軍 職 을 두루 거쳐 10년 안에 마침내 병사 兵 使 자리에 오 르지만, 시골 사람은 식년 式 年 출신이라도 막히고 뒤처지고 말 라비틀어져 10대에 걸친 가산이 객사에서 탕진된다. 우리나라 습속에 무인을 천시하는데 무과에 오르고도 벼슬하지 못한 자 를 더욱 천하게 여긴다. 집안 내력에 이 한 가지 누 累 가 있으면 그 자손은 삼사 三 司 에 통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자손에게 훈계 하여 무예를 익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무과 과거에 응시하는 자가 끊어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징포 徵 布 란 무엇인가. 근래 의 예에 무과 출신은 그 아들과 사위, 아우와 조카가 모든 군적 19 軍 籍 에 실리어 유청군관 有 廳 軍 官 이란 이름으로 매년 포 1필씩을 바치는데 병조에서 장부를 조사하여 어린아이 하나라도 숨기거 나 빠지지 않게 하며, 혹 숨기거나 빠지면 군리 軍 吏 가 찾아내어 토색질이 끝이 없다 군적에 오를 나이가 되었건 안 되었건 하나 같이 돈을 내니 이 때문에 문중에 한 사람의 무과 출신이 나면 3족이 모두 침학된다. 본래 군역이 있던 자는 이중으로 바치고 본래 군역이 없던 자는 새로 걸리게 된다. 대저 과거라는 것은 영예로운 것이다. 영예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도리어 재앙과 욕을 당하니 이로써 백성을 모집한들 누가 응하겠는가. 자손에 306

목민심서 훈계하여 무예를 익히지 말게 하니 이것이 무과 응시자가 끊어 지는 까닭인 것이다. 만과 萬 科 란 무엇인가. 나라에 큰 경사가 있 으면 과거로써 기쁨을 장식한다. 화살 한 대 맞힌 자도 모두 합 격시켜 그 수가 1천명이 넘기도 하고 수천 명이 되기도 하니 이 것이 이른바 만과이다. 만과라는 이름이 이미 천하니 백성들이 예우하지 않으며 병조에서도 이 때문에 버리고 채용하지 않는 다. 그러나 화살 한 대를 맞혀 뜻을 얻게 되면 잘 쏘는 자도 하 나의 급제요 못 쏘는 자도 하나의 급제이니 우열이 분간이 없고 현명하고 어리석음의 구분이 없는데 백성들에게 권장되겠는가. 무예를 익히지 않아도 이런 종류의 급제를 할 수 있으니 자손에 게 훈계하여 무예를 익히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무과 응시자가 끊어지는 까닭이다. 무액 無 額 이란 무엇인가. 문과 무과를 막론 하고 응시자의 정원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정원수가 없기 때문에 100가지 폐단이 거듭 일어나서 마침내 큰 문란에 빠진 다. 각 현 縣 에서 먼저 활쏘기 총쏘기를 시험하여 그 합격한 자 만을 과거에 응시하게 하면 대리 응시하는 자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에는 10명이 과거에 합격하면 그 10명이 모두 대리 응시자 요, 1백명이 합격하면 1백명이 모두 대리 응시자이다. 돈 있는 20 자는 결습 決 拾 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소년등과 少 年 登 科 하고 돈 21 22 이 없는 자는 그 기예가 양유기 養 由 基 나 후예 后 羿 와 같아도 백 발이 되도록 초라하게 지낸다. 온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쥐고 오직 돈으로만 도모하게 하는데 활 다룰 사람이 다시 있겠는가. 자손에게 훈계하여 무예 익히기를 못하 게 하니 이것이 무과 응시자가 끊어지는 까닭이다. 이 다섯 가 지 문란함이 그치지 않는 이상 수령이 비록 입술이 타고 혀가 닳도록 백성들에게 권장하여도 익히는 자를 얻지 못할 것이다. 수령으로서 한 고을에 오래 근무하는 경우 6년이나 있기도 한 다. 이러한 것을 헤아려서 무예를 장려하게 한다면 백성들도 따 20 활을 쏠 때 쓰는 기구로 결 ( 決 )은 깍지 엄지손가락에 끼 워 활줄을 당긴다. 습( 拾 )은 활 을 쏠 때 왼편 어깨를 싸서 활줄 이 닿는 것을 막는다. 21 중국 춘추시대 초( 楚 )의 대부 ( 大 夫 )로 활쏘기의 명인이다. 22 중국 고대 전설의 인물로 유 궁국( 有 窮 國 )의 군주( 君 主 )이다. 활쏘기를 좋아하여 정사를 돌 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신하 에게 죽임을 당했다. 307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23 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열흘 마다 학생들에게 과하는 시문 ( 詩 文 ) 시험 24 달마다 과하는 시문( 詩 文 ) 시험 25 짧고 작은 화살 26 말을 타고 다니면서 활을 쏘 는 것 27 쇠뇌, 여러 개의 화살을 쏘아 한꺼번에 나가게 하는 활의 일 종 를 것이다. 먼 지방의 백성들은 향임 鄕 任 교임 校 任 등을 벼슬로 여기고 순 23 24 제 旬 題 나 월과 月 課 를 과거로 생각한다. 이로써 말하면 비록 과거의 제도는 무너져 문란하다 하여도 수령된 자가 장려하고 고과 考 課 하기를 옳은 방법으로 한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서로 격 려될 것이며 5, 6년에 걸쳐 그 습속이 차차 이루어지면 그 기풍 이 멀리 흘러서 필경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니 과거제도가 크게 타락하였다 하여 그것을 폐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떻게 권 장할 것인가 하면, 대개 식년 증광시에 소용되는 열 가지 기예 와 한 가지 경서 강독을 모두 다 익힐 것은 없다. 다만 정시 별 시 및 병영의 도시 都 試 에 소용되는 것만을 수령이 장려한다면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철전 鐵 箭 이요, 둘째는 25 목전 木 箭 이요, 셋째는 편전 片 箭 이요, 넷째는 관혁 貫 革 이요, 다 26 섯째는 강노 强 弩 요, 여섯째는 기추 騎 芻 요, 일곱째는 조총이요, 여덟째는 무경 武 經 이니, 손빈 孫 臏 오기 吳 起 등이 지은 ꡔ칠서 七 書 ꡕ와 ꡔ병학지남 兵 學 指 南 ꡕ이다. 여덟 가지 기예로 군사들을 뽑아 훈련시 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혹 말하기를 철전 鐵 箭 은 없애는 것이 옳다고도 한다. 읍 안의 무사를 뽑는 데는 아전과 군교 및 한량 閑 良 을 불구 하고 30세 미만 자라야 선발 대상으로 하고 외촌 外 村 에는 사족 士 族 토족 土 族 및 중하 中 下 의 문족 文 族 중 자원자가 있으면 모두 그 재주를 시험하여 다른 사람과 경쟁할 만한 자는 선발 대상으 로 하되 20인이나 30인을 뽑아 이름을 권무청 勸 武 廳 이라 할 것 이다. 몸이 아프거나 상을 당해서 대신 출두하는 모든 법은 한 결같이 과예 課 藝 하는 유생들의 규식 規 式 에 의한다. 위의 과예조 課 藝 條 에 상세하다. 1년에 12회를 소집하는데 봄에는 입하 立 夏 이전 에 5회 훈련시키고 가을과 겨울에는 백로 白 露 이후에 7회 훈련 시킨다. 더운 때에는 무예를 익힐 수 없다. 훈련이 끝난 후에 많은 점 수를 얻은 자를 골라 상을 준다. 상주는 물건은 각궁 角 弓 화살 308

목민심서 촉 편전 片 箭 창복 韔 箙 전통 箭 筒 팔찌와 깍지 이외에 부채 빗 및 ꡔ무경칠서 武 經 七 書 ꡕ와 ꡔ병학지남 兵 學 指 南 ꡕ 등이 모두 좋다. 무사 武 士 들은 문사 文 士 와 달라서 방을 붙이는 날 풍악으로 앞을 인도하도록 하고 또 술과 고기의 비용을 주어 무청 武 廳 에 나가 즐겁게 놀도록 하는 것이 좋다. 27 강노 强 弩 를 펼쳐 설치하고 쏘는 일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 유천화 劉 天 和 는 말하였다. 한나라의 경공 耿 恭 우후 虞 詡 와 당 29 30 31 나라의 이정 李 靖 곽자의 郭 子 儀, 송나라의 유기 劉 錡 오인 吳 璘 32 종택 宗 澤 등 전대의 명장 名 將 들은 강노 强 弩 를 써서 오랑캐를 수 없이 무찔렀으며 한나라는 또 강노장군 强 弩 將 軍 의 관직을 두었 고, 송나라는 처음으로 신비노 神 臂 弩 의 제도를 두었는데 그것은 실은 강노 强 弩 이다. 나도 또한 이를 꼭 믿지는 않았더니 근래 섬 서성 陝 西 省 에서 성루 城 樓 의 옛 기록에 신비노 神 臂 弩 수백 개가 백 여 년을 전하고 있다고 한 것을 보고서야 선조 先 朝 에서도 이 제 도가 있었음을 알았다. 비록 모두 허물어졌지만 그 제도는 그대 로 남았으며 다만 화살은 없어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모방하여 그 구조대로 만들었는데, 넓고 두텁고 단단하고 억세게 함으로 써 큰 활은 그 힘이 150근과 120근, 90근 정도 되는 3등급으로 하였으니 사람의 힘에 강약이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그 길이는 모두 4척 5촌이다. 화살은 가장 멀리 가서 끝이 3백보 정도 간 것을 표준으로 삼았는데, 그 길이는 모두 7촌 5푼이며 무게는 6전 錢 정도로 역시 3등급 하여 강노 强 弩 와 같게 하였다. 다시 한 나라 경공 耿 恭 의 법을 본받아서 화살촉을 네모나고 날카롭게 하 고 또 하남 河 南 숭현 崇 縣 등지의 범 잡는 화살의 약을 발라서 사 람이나 말이 맞아서 즉시 죽지 않는 것이 없게 하였으니 더욱 오랑캐들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그 화살촉의 뒤쪽에는 1푼 길이 의 작은 철관 鐵 管 이 있고 화살대가 들어가는 곳은 안쪽에 아교 를 칠하고 밖에는 죽사로 얽어서 오랑캐가 주워도 되쏘지 못하 28 중국 후한 때의 사람으로 영평 ( 永 平 ) 연간에 조가( 朝 歌 )의 장( 長 ) 이 되어 흉노를 정벌하여 장수교 위( 長 水 校 尉 )가 되었으나 마방( 馬 防 )에게 거역하여 면직되었다. 29 중국 당나라 때의 사람으로 병법에 밝아 고조( 高 祖 ) 때 행군 총관( 行 軍 總 管 )이 되어 숙통( 蕭 統 )을 평정하고 태종( 太 宗 ) 때 병 부상서( 兵 部 尙 書 )가 되었다. 돌궐 을 쳐서 음산( 陰 山 )에서 대막( 大 漠 )까지 영토를 넓혔다. 대국공 ( 代 國 公 )에 봉해지고 상서우복사 ( 尙 書 友 僕 射 )를 거쳐 서해도행군 대총관( 西 海 道 行 軍 大 總 管 )으로 토곡혼( 吐 谷 渾 )을 격파하였다. 그 의 용병론( 用 兵 論 )을 모은 책이 ꡔ 이위공문대( 李 衛 公 問 對 )ꡕ이다. 30 중국 송나라 때의 사람으로 자는 신숙( 信 叔 ), 시호는 무목( 武 穆 )이다. 고종( 高 宗 ) 초년에 하인 ( 夏 人 )과 싸워 여러 번 이겨 하인 ( 夏 人 )이 유도호( 劉 都 護 )가 온다 는 말로 우는 아이를 달래었다. 동경부유수( 東 京 副 留 守 )가 되어 금군( 金 軍 )을 순창( 順 昌 )에서 격 퇴하고 벼슬이 강회절제치사( 江 淮 浙 制 置 使 )에 이르렀다. 31 중국 송나라 때의 사람으로 자는 당경( 唐 卿 ), 시호는 무순 ( 武 順 )이다. 소흥( 紹 興 ) 초년에 통제화상원군마( 統 制 和 尙 原 軍 馬 )가 되어 올출( 兀 朮 )의 금군 ( 金 軍 )을 물리쳤다. 진봉로경략 안무사( 秦 鳳 路 經 略 安 撫 使 ) 사 천선무사( 四 川 宣 撫 使 ) 등을 역 임하고 효종( 孝 宗 ) 때 태부( 太 傅 )가 되었고, 신왕( 信 王 )으로 추봉( 追 封 )되었다. 32 중국 송나라 때의 사람으로 자는 여림( 汝 霖 ), 시호는 충간 ( 忠 簡 )이다. 동경유수( 東 京 留 守 ) 로 있을 때 위망( 威 望 )이 있어 금인( 金 人 )들이 침범하지 못했 다. 저서에 ꡔ종충간집( 宗 忠 簡 集 )ꡕ이 있다. 309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33 형천( 荊 川 )은 중국 명나라 때 의 병부주사( 兵 部 主 事 ) 한림 편수( 翰 林 編 修 ) 등을 역임하고 구적( 寇 賊 ) 평정에 공을 세운 유 명한 학자 당순지( 唐 順 之 )의 호 이다. ꡔ무편( 武 編 )ꡕ은 그의 병사 ( 兵 事 ) 관계의 저술이다. 도록 만들었다. 대개 오랑캐들은 활 쏘는 기예가 극히 정교하여 화살을 허비하는 일이 없지만 이것으로는 족히 이길 수 있었다. 내가 감히 강노 强 弩 를 중국 장기 長 技 의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ꡔ형천무편 荊 川 武 編 ꡕ 33 에 이르기를 강노 强 弩 가 가장 이로운 병기이다. 굳은 것을 뚫을 수 있고 화살이 멀리 가며 험 한 곳을 공격하고 좁은 곳을 지키고 적과 맞부딪쳐 이를 제어하 는 데는 강노가 아니면 이기지 못한다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 하기를 강노를 쓰는 것은 싸움에 불편하다 고 하지만 그것은 강노가 싸움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장수된 자가 강노에 익숙하 지 못한 때문이다. 강노를 잘 이용하는 자는 줄을 5층으로 하고 층마다 3개나 5개의 화살을 모아서 쏘며, 쏘고 난 후에는 끌어 당겨서 펼치고 펼친 후에는 또 차례로 쏘아서 화살깃이 번득여 서 이어져 끊이지 않게 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대적하기 에 더욱 적당하다. 그리고 노수 弩 手 에게 각기 요도 腰 刀 한 자루 를 휴대하게 하여 적이 가까이 오면 강노를 걸타고 칼을 쓰게 한다. 이렇게 하면 먼데 적을 쏘는 강노와 가까운 적을 베는 칼 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교노법 敎 弩 法 에 이르기를 강노 를 벌릴 때에는 정 丁 자로 서고 쏠 때에는 팔 八 자로 서며 소매를 높이 걷고 옷깃을 접고 왼손으로는 받쳐 치고 오른손으로는 위 로 올려 가슴 언저리에 닿게 펼친다. 펼치는 데는 넓고 좁음이 있으니, 왼쪽에는 밥통쪽에서 오른쪽으로는 어깨까지 펼쳐서 배 쪽에 당겨 화살을 가슴에 닿도록 안착시키고 높이 손을 들어, 적이 먼데 있으면 머리를 들어 쏘고 적이 가까이 있으면 몸을 펴서 쏘며 적이 우측에 있으면 몸을 우측으로 돌리고 적이 좌측 에 있으면 좌측으로 돌리며, 적이 높은 곳에 있으면 손을 받들 어 쏘고 적이 아래 있으면 손을 낮추어서 쏜다. 쏘고 난 직후에 는 죽어라 소리치고 죽은 후에는 다시 당긴다. 호령하고 동작하는 법, 돌격하여 찌르는 자세 등은 모름지기 외 310

목민심서 적에 대한 어떤 위험의 징조가 있어야만 익힐 것이다. 34 태상 太 常 조군 刁 君 이 양주 楊 洲 에 주둔할 때의 일이다. 부 府 서북 방의 한 곳을 차지하여 무성한 수풀을 잘라 터를 닦아 성을 잇 대어 담장을 치고 담을 따라 도랑을 팠는데, 둘레 6백 보 步 요, 대나무 1만개로 그 위를 덮었다. 그러므로 높은 정자가 담장 위 35 에 있게 되었다. 동남쪽으로 담을 따라서 30궤 軌 쯤에 당 堂 을 36 만들었고, 당의 남북향은 길이가 8연 筵 이요, 넓이가 8연이며, 그 정북방에 활터를 만들어 나무 8백개를 줄지어 심어서 그 부 근을 날개처럼 펼쳐놓고 또 서쪽으로 12궤 쯤에 정자를 지어 이 무정 肄 武 亭 이라 하였는데, 남북향의 길이가 4연이요, 넓이도 같 았다. 이 정자에도 당 堂 과 같이 활터를 만들고 같은 방향으로 나 무를 둘렀다. 계절에 따라 군사들에게 싸우고 활 쏘는 동작을 가르쳤다. 진릉 晋 陵 장공 張 公 이 신주 信 州 를 다스릴 때, 주 서북쪽 의 시원한 빈터에 병영을 만들어 주둔군을 그리로 옮기고 옛 병 영을 없이 하였다. 때로 군사들에게 찌르고 공격하는 동작을 가 르치니 전에 없던 일이었다. 운제( 雲 梯 ) 충거( 衝 車 ) 화전( 火 箭 ) 사( 射 ) 포( 砲 ) 화포( 火 砲 ) 노 ( 弩 ) 능철( 菱 鐵 ) 양익( 兩 翼 ) 병거( 兵 車 ) 궁( 弓 ) 갑( 甲 ) 촉( 鏃 ) 사 ( 射 ) 환( 丸 ) ꡔ목민심서ꡕ 권 9 병전육조 어구 亮 進 攻 之 起 雲 梯 衝 車 臨 城 昭 以 火 箭 逆 射 其 梯 人 皆 燒 死 又 以 繩 連 石 磨 壓 衝 車 衝 車 折 亮 乃 更 爲 井 欄 百 尺 以 射 城 中 以 土 丸 塡 塹 欲 直 攀 城 昭 又 於 內 築 重 墻 亮 又 爲 地 穴 欲 湧 出 於 城 裏 昭 又 穿 地 橫 截 之 晝 夜 相 攻 拒 二 十 餘 日 魏 遣 張 邰 救 之 未 至 亮 糧 盡 引 還 高 麗 宋 文 冑 爲 竹 州 防 護 別 監 蒙 古 兵 至 城 下 諭 降 城 中 土 卒 出 擊 走 之 蒙 古 復 以 砲 攻 城 四 面 城 門 輒 摧 落 城 中 亦 以 砲 逆 擊 之 蒙 古 不 敢 近 蒙 古 又 備 人 油 灌 藁 縱 火 攻 之 城 中 士 卒 一 時 開 34 중국 한( 漢 ) 나라 이래의 종 묘제의를 관장하던 태상 벼슬 에 있는 조모( 刁 某 )를 가리키지 만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35 차륜( 車 輪 )과 차륜사이의 거 리로 보통 8척이며 6척으로 하 는 경우도 있다. 36 길이의 단위 311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37 성을 공격할 때 쓰는 장비로 밑에 바위를 달고 위에 사다리 를 설치하여 성을 넘어 들어가 는데 사용한다. 높이 오른다는 뜻에서 운( 雲 )자를 붙였다. 38 성을 공격하기 위한 장비로 수레 앞에 큰 쇳덩이를 붙여 성 을 파괴할 때 쓰는 것이다. 39 성을 공격할 때 쓰는 장비로 정방형의 높은 난간으로 그 위 에 올라서서 성을 향해 활을 쏜 다. 門 突 擊 蒙 古 死 者 不 可 勝 數 蒙 古 多 方 攻 之 竟 不 能 拔 文 冑 在 龜 州 熟 知 蒙 古 攻 城 之 術 其 計 畫 無 不 先 料 輒 告 衆 曰 今 日 賊 必 設 某 機 械 我 當 備 某 器 應 之 賊 至 果 如 其 言 城 中 皆 謂 之 神 明 一 日 賊 向 城 門 焚 之 火 甚 烈 急 文 冑 從 城 上 以 水 灌 之 隨 灌 熾 熾 莫 可 滅 息 城 中 惶 懼 莫 之 所 爲 有 一 老 卒 曰 吾 聞 蒙 古 取 死 人 肉 出 其 油 以 火 之 則 得 水 益 熾 此 必 以 人 油 洒 城 門 也 遂 以 器 取 土 從 上 撲 之 火 遂 息 案 此 云 砲 擊 者 設 機 飛 石 非 火 砲 也 潤 慶 先 伏 弩 且 設 菱 鐵 於 道 使 才 人 盡 著 彩 服 踊 躍 爲 逞 才 之 狀 賊 張 翼 而 追 之 或 死 於 弩 或 傷 於 鐵 不 敢 突 入 爭 觀 優 戲 南 致 勤 等 分 軍 爲 兩 翼 掩 其 不 意 盡 殲 之 楊 璇 爲 零 陵 太 守 時 蒼 梧 桂 陽 賊 相 聚 攻 郡 縣 賊 衆 多 而 璇 力 弱 吏 人 憂 恐 璇 乃 特 製 馬 車 數 十 乘 以 排 囊 盛 石 灰 于 車 上 繫 布 索 于 馬 尾 又 馬 兵 車 耑 殼 弓 弩 剋 期 會 戰 乃 令 馬 車 居 前 順 風 鼓 灰 賊 不 得 視 因 以 大 燒 布 布 燃 馬 驚 奔 突 賊 陣 後 車 弓 弩 亂 發 鉦 鼓 鳴 震 羣 盜 駭 散 追 逐 傷 斬 無 數 梟 其 渠 帥 郡 境 以 淸 黃 進 爲 同 福 縣 監 縣 有 挾 仙 樓 公 有 駿 馬 每 衙 罷 檈 甲 馳 騁 或 距 躍 曲 踊 超 登 樓 上 以 自 試 壬 辰 公 從 李 洸 勤 王 北 上 至 龍 仁 師 大 潰 公 獨 全 所 部 兵 不 亡 一 鏃 有 偏 將 盡 亡 其 卒 步 詣 曰 將 奈 何 公 爲 遣 親 信 遍 諭 亡 卒 於 竄 伏 處 吹 角 一 聲 亡 者 頗 集 其 偏 將 握 手 歎 曰 公 眞 將 軍 也 賊 屯 錦 山 者 復 將 南 下 公 同 諸 將 往 守 梨 峴 一 本 作 熊 峙 賊 大 至 公 自 當 要 衝 射 必 疊 雙 有 飛 丸 中 腓 而 氣 益 厲 賊 大 衂 而 卒 放 丸 中 公 額 幸 不 死 麾 下 士 舁 公 還 同 福 37 38 제갈량이 공격해서 운제 雲 梯 를 세우고 충거 衝 車 로 성벽 에 접근하자, 학소는 화전 火 箭 으로 운거를 쏘아 맞히어 사람들 이 모두 불에 타 죽고, 줄에 돌을 매달아 충거를 짓찧어 충거가 39 부서졌으며, 이에 다시 제갈량이 1백척 높이의 정란 井 欄 을 세 우고서 성 안에 화살을 쏘아대며 흙덩이로 해자를 메우고 곧바 로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자 학소는 또 안쪽이 이중 담장을 쌓았 으며, 제갈양이 다시 땅굴을 파고 성안으로 뚫고 들어가려하자 312

목민심서 학소는 또 땅을 파고 가로막아 버렸다. 주야로 공방 攻 防 하기 20 40 여일이 지났다. 위나라에서는 장합 張 郃 을 보내 구원했는데, 구 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제갈량은 군량이 떨어져서 환군하였 다 고려 송문주 宋 文 冑 가 죽주 竹 州 방호별감 防 護 別 監 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몽고 군대가 성 아래 이르러 항복하라고 회유했다. 성 안의 사졸들이 출격하여 성문이 문득 무너졌다. 성안에서도 또한 포를 쏘아 마주 공격하니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몽고는 또 인유 人 油 를 준비해서 짚단에 뿌리고 불을 질러 공격 했다. 성 안의 사졸들이 일시에 성문을 열고 돌격해 나가서 몽 고는 사상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몽고는 온갖 방도로 공격했 으나 끝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송문주가 구주 龜 州 에 있 을 때 몽고의 공성 攻 城 하는 전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들 의 계획을 모두 다 미리 헤아려서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은 적 군이 반드시 무슨 기계를 쓸 것이니 우리는 응당 무슨 기계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적군이 이르렀을 때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성 안에서 모두 그를 일러 신명 神 明 이라고 했 다. 어느날 적군이 성문에다 불을 질러 불길이 매우 치열했다. 송문주가 성벽위에서 물을 뿌리자 물을 뿌리는 대로 불길이 더 욱 타올라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성안의 사람들이 황겁해서 어 찌할 줄 모르는데, 한 늙은 병졸이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몽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고기로 기름을 짜서 불을 지리는데, 물이 닿으면 더욱 타오른다합니다. 이는 필시 인유 人 油 를 성문에 뿌 린 것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그릇에 흙은 담아서 위에서 뿌리 니 불이 마침내 꺼졌다. 생각건대, 앞에서 포 砲 로 공격했다고 한 것은, 기계를 설치해서 돌을 쏜 것이지 화포는 아니다. 이 윤경은 미리 노수 弩 手 를 매복시키고 또 마름쇠[ 菱 鐵 ]를 길에 설 치한 다음, 재인 才 人 들을 시켜 모두 채색옷을 차려 입고 정재 逞 41 才 하는 모양으로 뛰어놀게 했다. 적군이 익진 翼 陣 을 펼치고 공 40 중국 삼국시대 위( 魏 )의 장군 으로 자는 휴예( 㒞 乂 )이다. 처음 에 원소( 袁 紹 )를 추종하다가 후 에 위( 魏 )로 돌아왔다. 벼슬은 좌장군( 左 將 軍 )에 이르렀는데, 목문( 木 門 )에서 제갈량과 싸우 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41 광대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 서 연희를 하고 재주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313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42 자는 근지( 勤 之 ), 본관은 의령 ( 宜 寧 )으로 중종 때 무과에 올라 왜구를 막는데 공을 세우고 한 성부판윤( 漢 城 府 判 尹 )을 지냈으 며, 삼도토포사( 三 道 討 捕 使 )로서 임꺽정의 난을 토벌하였다. 43 중국 후한( 後 漢 )때의 인물로 자는 기평( 機 平 ), 영제( 靈 帝 ) 때 영릉태수( 零 陵 太 守 )를 거쳐 발 해태수( 渤 海 太 守 )를 지냈다. 44 창오와 계양은 중국의 호남 성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45 쇠를 벼릴 때 불을 부는 기 구, 즉 풀무인데, 야낭( 冶 囊 )이 라고도 한다. 46 자는 사무( 士 武 ), 호는 양계 ( 兩 溪 ), 본관은 덕수( 德 水 )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임진 왜란때 전라도 관찰사로서 근 왕병을 일으켰다. 격해 오다가 쇠뇌에 맞아 죽고 혹은 마름쇠에 찔려 접근하지 못 42 했다. 그리고 서로 광대놀음을 구경하는데, 남치근 南 致 勤 등이 군대를 나누어 양익진 兩 翼 陣 으로 불의에 엄습해서 모두 섬멸했 43 다. 양선 楊 璇 이 영릉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창오 44 蒼 梧 계양 桂 陽 등지에서 도적들이 무리를 지어서 군현을 공격 했다. 적은 숫자가 많고 양선은 세력이 약해서 관민들이 모두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특별히 마차 馬 車 수십 대를 제작하 45 여 배낭 排 囊 으로 석회 石 灰 를 담아 수레 위에 싣고 베끈을 말 꼬 리에 매달고, 또 병거 兵 車 를 만들어 오로지 궁노 弓 弩 를 쏠 수 있 게 하여 급히 회전 會 戰 에 임하였다. 이에 마차를 선두에 세우고 바람을 따라 횟가루를 뿌리니 적병이 눈을 뜨지 못했다. 이때 베에다 불을 붙이니 베가 타자 말들이 놀라 적진으로 내달았다. 뒤이어 병거에서 궁노를 어지럽게 쏘아대고 징과 북을 마구 울 리니 뭇 도적들이 놀라 흩어졌다. 그 뒤를 추격하니 죽고 다친 자가 무수하였으며, 그 괴수도 목을 베었다. 이에 고을 경내가 깨끗하게 되었다. 황진 黃 進 이 동복현감 同 福 縣 監 으로 있을 때 의 일이다. 그 고을에 협선루 挾 仙 樓 라는 누각이 있는데 그는 준 마가 있어서 매양 관아가 파하면 갑옷을 입고 말을 달려 혹 도 약을 하면서 누각 위에 뛰어오르기도 하여 자기 능력을 시험해 46 보았다. 임진왜란 때 그는 이광 李 洸 을 따라 근왕 勤 王 하여 북상 北 上 을 하던 중, 용인 龍 人 에 이르러 군사가 크게 무너졌는데 그 가 홀로 거느린 부대를 잘 보전하여 화살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 다. 어느 편장 偏 將 이 그 수하의 병졸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걸어 와서 호소하기를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 했다. 그는 신임하는 사람을 보내 편장의 병졸들이 숨은 곳을 두루 찾아다니며 타이 르니, 고동[ 角 ] 한 소리에 달아났던 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편장 은 손을 잡고 탄식하기를 공은 참으로 장군이요 라고 했다. 금 산 錦 山 에 주둔한 적군이 남하하려고 하는데 그가 여러 장수들과 314

목민심서 함께 이현 어떤 본에는 웅치 熊 峙 로 되어 있다. 으로 가서 지켰다. 적 군이 크게 공격해 오거늘 그가 스스로 요충을 담당하여 화살을 쏘매 두 사람이나 꿰뚫었다. 날아온 탄알이 정강이에 맞았으나 기운을 더욱 떨쳤다. 적이 대패했으나 마침내 유탄이 그의 이마 에 맞았다. 다행히 죽지 않아서 휘하의 군사들이 그를 떼메고 동복 同 福 으로 돌아갔다. 노도( 弩 刀 ) 도( 刀 ) 창( 槍 ) 화포( 火 砲 ) 포수( 砲 手 ) 엽( 獵 ) ꡔ목민심서ꡕ 권 11 형전육조 제해( 除 害 ) 凡 捕 虎 之 法 太 上 弩 刀 也 其 形 如 半 月 表 裏 有 刀 其 次 檻 牢 也 俗 謂 之 檻 穽 其 次 阱 槍 也 鑿 坎 植 槍 五 六 枚 上 設 麻 桿 覆 以 土 令 虎 陷 最 下 者 火 砲 也 凡 砲 手 行 獵 十 百 爲 羣 橫 行 閭 里 討 酒 索 飯 其 害 反 有 甚 於 虎 豹 斷 不 可 爲 也 宜 令 村 村 設 弩 殺 得 五 六 則 羣 虎 相 招 而 遠 遁 矣 무릇 호랑이를 잡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노도 弩 刀 그 모양이 반달 같으면서 안팎에 칼날이 있다. 이고, 그 다음은 함뢰 檻 牢 시속에서 함정 檻 穽 이라 한다. 이고, 그 다음은 정창 阱 槍 구덩이를 파서 창 5~6개를 세운 다음에 그 위에 삼대를 깔고 흙을 덮어서 범을 빠지게 하 는 것이다. 최하의 방법이 화포 火 砲 인데, 무릇 포수가 호랑이 사냥 을 나가게 되면 열에서 백에 이르도록 떼를 지어 마을을 횡행하 며 주식을 토색하여 그 피해가 도리어 호랑이보다 심하니 결단 코 이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마을마다 노도 弩 刀 를 놓아 대여섯 마리씩 잡는다면 호랑이들이 서로 어울려 멀리 도망 가 버릴 것이다. 포루( 砲 樓 ) 시( 矢 ) 석( 石 ) 조총( 鳥 銃 ) ꡔ목민심서ꡕ 권 12 공전육조 수성( 修 城 ) 金 鶴 峯 誠 一 以 右 監 司 在 晉 州 修 矗 石 城 多 置 砲 樓 賊 不 能 315

한국무예사료 총서 Ⅺ 조선시대 문집 일기 破 城 本 四 面 據 險 壬 辰 移 東 面 下 就 平 地 至 是 賊 立 飛 樓 八 座 俯 瞰 城 中 刈 城 外 竹 林 作 大 束 環 列 自 蔽 以 防 矢 石 從 其 內 發 鳥 銃 如 雨 城 中 人 不 敢 出 頭 八 日 而 城 陷 학봉 김성일이 경상우도감사로서 진주 晉 州 에 있으면서 촉 석성 矗 石 城 을 수축하고 포루 砲 樓 를 많이 설치하였으므로 적이 성 을 깨뜨리지 못하였다. 성은 본래 사면이 모두 험준하였으나 임 47 진년에 동쪽으로 이동하여 평지로 내려갔다. 이에 적이 비루 飛 樓 8좌를 세워 성중을 내려다보고 성밖의 대나무 숲을 베어 큰 다 발을 만들어 둘러쳐서 스스로를 차폐하여 화살과 돌을 막고 그 안에서 조총을 비 오듯이 쏘니 성중 사람들이 머리조차 내밀지 못하다가 8일 만에 성이 함락되었다. 47 적의 성중( 城 中 )을 살피기 위 해 만든 높은 누각( 樓 閣 )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