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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김경남 *1) 차례 Ⅰ. 서론 Ⅱ. 1920년대 전반기의 기행 담론과 기행문의 특징 1. 1920년대 기행 담론과 기행문의 분포 2. 기행 체험과 사실적 재현 3. 자의식과 국토 의식의 성장 4. 해외 기행 및 유학생 담론 Ⅲ. 결론 국문초록 이 연구는 1920년 4월부터 1924년 12월까지 동아일보 에 소재한 기행 담론과 기행문 자료를 전수 조사함으로써 1920년대 전반기 기행문의 특징을 기술하는 데 목표를 두었 다. 이 글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행 담론의 분포에서는 취재기 형식의 기행문(25종)과 국토 답사 형태의 기행 문(15종), 유학 관련 담론(10편)이 많았음을 확인하였다. 이들 자료에서 취재기는 기자의 취재기나 탐방기가 중심을 이루며, 국토 답사의 경우 특정 단체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여 한 기행문이 많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기행 체험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이 시기 기행문은 보편적 글쓰기의 한 양식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1908년 소년 창간 이후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1920년대 전반기의 경우 기행문은 체험의 사실적 재현이 라는 차원에서 사실성과 비판 의식이 내재된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 건국대학교 글로컬 소통ㆍ통섭 교육원 강의교수.

252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셋째, 1920년대 전반기 기행문에서는 자의식과 국토 의식의 성장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개벽사의 조선 문화 기본 조사 와 마찬가지로 동아일보 에도 백두산이 나 금강산을 비롯한 국토 기행문이 다수 게재되었는데, 이러한 의식의 뿌리는 1910년대 최남선의 역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넷째, 해외 기행과 유학 담론의 변화이다. 특히 해외 기행의 경우 만주와 중국 기행문이 많으며, 독일, 미국, 중국 을 대상으로 한 유학 담론과 유학생기가 다수 출현한다. 주제어 : 기행 담론, 기행문, 동아일보, 사실성, 재현 Ⅰ. 서론 기행문은 여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적은 글을 의미한다.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지방을 다니는 것으로, 기행( 紀 行 ) 자체는 자아의 의미를 자각하고 체험의 폭을 확대하며, 그에 대한 독자와의 교감을 높이 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근대 문학 형성 과정이나 문체 발전 과정 에서 기행문이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신파조의 신소설에서 무 정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계몽적 자의식의 성장이나 사회상에 대한 사실 적 재현은 기행 체험의 문장에서 진화한 것으로 규정해도 무방하다. 대부 분의 신소설 작가와는 달리 1910년대 이광수는 동경잡신, 대구에서, 오 도답파여행 등 수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이는 소년 사상을 전제로 한 최남 선이나 1920년대 현진건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근대 신문 기사의 전형 적인 문체가 전언체( 傳 言 體 )의 한다더라 에서 사실 기록의 한다 로 진화 하는 과정에도 기행문의 사실성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기행문이 살아 있 는 글 이며, 곧 기행 체험 이 자의식의 성장 과정 임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행문은 시대의 창 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비록 근 대의 기행 담론이 관념적 계몽성을 띠거나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문명개화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53 의 논설에 그친 경우가 있고, 관광단이나 유람단 또는 시찰단이라는 명칭 의 식민성을 띤 문화 침탈의 수단으로 이용될 때도 있었지만, 살아 있는 기행문은 시대의 창으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장한몽의 작가 조 일제가 1914년에 쓴 주유삼남( 周 遊 三 南 ) 에서는 대구 정거장의 호객 행위 의 모습이 경상 방언 그대로 재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행 문은 단순한 스케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진화하며, 시대와 사회의 실상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근본적으로 기행 체험은 호기심을 해소하고 지식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기행 담론은 기행 체험을 직접 기술한 글은 아니지 만, 여행이나 해외 유학 등과 같은 기행 체험의 의미에 관한 인식을 담은 글을 의미한다. 담론의 변화는 기행문의 형식이나 내용에도 직접적인 영향 을 준다. 예를 들어 개인적ㆍ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식견( 識 見 )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어 온 기행 담론은 근대 이후 사실성과 심미적 차원 에서 더 심층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현 단계 기행문 연구는 담론보다 기행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으며, 연구 대상도 유학 생의 기행문이나 최남선의 기행문, 1920년대 국토 체험과 관련된 기행문 등에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의 기행문은 일부 언론사와 잡지사가 중심이 되어 전개했던 국토 순례 기행, 해외 유학생의 보고, 신문 기자를 중심으로 한 답사기와 탐방기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이를 주제로 한 연구로는 김현주 (2001), 김진량(2004), 김중철(2004) 등이 있다. 예를 들어 김진량(2004)은 근대 일본 유학생 기행문의 전개 양성과 의미에 대해서 집중적인 연구를 했는데, 당시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유학생들이 보고 듣고 느낀 바는 산업 화된 일본에 대한 경탄과 유학비 부족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또한 김중 철(2004)에서는 1910년대부터 1920년대의 근대 기행 담론 속의 기차와 차 내 풍경을 다루었는데, 이 또한 기차에 대한 경이와 찬탄, 속도와 규율 등

25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의 식민지적 공간의 특수성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처럼 근대 이후의 기행 담론과 기행문에 관한 연구 경향은 분포 자료 와 견주어 보았을 때, 1920년대의 기행문 연구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 졌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이 연구는 1920년대 전반기(1920.4. 1924.12.) 동아일보에 실린 기행 담론과 기행문을 중심으로, 기행문의 양적 성장 과정과 시대 의식을 고찰함으로써, 이 시기 기행문의 가치를 연구한 다. 이처럼 이 논문에서 1920년대 전반기를 설정한 이유는 일제가 치안유 지법(1925년1월)을 공포한 이후, 기행 담론이나 기행문에도 적지 않은 변 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식민 조선 내의 사상뿐만 아니라 거주이전 의 자유, 또는 여행과 표현의 자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Ⅱ. 1920년대 전반기의 기행 담론과 기행문의 특징 1. 1920년대 기행 담론과 기행문의 분포 1920년대의 기행문은 1910년대 매일신보 나 청춘 에 소재한 취재기, 유학생기, 답사기 등의 기행 자료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다. 1920년 4월 동아일보 가 창간되고, 1925년 1월 치안 유지법 이 공포 되기 전까지 이 신문에 소재하는 기행 관련 자료는 대략 85종(연재물은 1 종으로 처리함) 500회가 발견된다. 이들 자료 가운데 일부는 기행 관련 논 설이나 명승ㆍ사적 사진 해설, 또는 유람회 관련 기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행문의 발전 과정에서 이 시기의 기행 담론은 관제화된 유람 문화나 관념적 계몽성을 탈피하여 시대적ㆍ사회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낸 것들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이른바 문화 통치 라는 슬로건에 숨어 있는 조선의 현실 이 기행 담론 속에 그려져 있는 셈이다. 이를 고려하여 이 연 구에서는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관련 자료를 전수 조사하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55 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DB의 분석 항목은 게재일(연재물일 경우 시작일과 종료일로 나눔), 문 종, 제목, 세부 내용, 필자, 성격, 기행지 등을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 문종 은 기사, 기행문, 논설, 편지 등을 설정하였으며, 내용 에서는 국토 기 행, 명승(고적), 취재기, 유학기, 해외 사정 소개 등을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이를 기준으로 조사한 자료를 계량화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국 토 기행 은 백두산행, 고흥여기, 부산에서 와 같이 우리나라의 특정 지역 을 제목에 포함한 기행문을 의미하며, 취재기 는 기행문 속에 특정 사건이 나 대상을 취재 대상으로 삼은 기행문을 의미한다. 1) 이러한 기행문에는 시 대와 사회 현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비해 명승 관련 기행 담론은 앞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락 이나 탐승( 探 勝 ) 이 강조되는 경향 이 있다. 또한 해외 사정에 대한 경탄이나 관념적 계몽 의도가 강조되었던 1910년대의 기행 담론과는 달리 1920년대의 해외 기행이나 유학 체험기는 개인의 유학 생활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들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스펙트 럼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자료를 계량화하면 다음과 같다. (1)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기행 관련 자료의 분포 내용 문종 국토 기타 명승 순수 시찰 유학 취재 탐험 해외 계 기사 2 1 1 2 6 12 기타 2 1 1 1 3 8 기행 11 3 2 4 2 3 18 6 49 논설 6 1 7 사진 2 2 1) 취재기 가운데 일부는 특정 사건을 취재하면서 해당 지역 답사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취재기와 국토 기행을 엄격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256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시 1 1 편지 6 6 계 15 12 4 4 4 10 25 1 10 85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행 자료 가운데 상당수는 취재기 형식의 기행문(25종)과 국토 답사 형태의 기행문(15종), 유학 관련 담론(10편)이 차지하고 있다. 취재기 형식의 기행문 작가로는 이 시기 동아일보 기자 였던 공민( 羅 公 民 )의 석왕사에서, 만주 가는 길에, 노령( 露 領 ) 견문기, 유광열의 대구행, 표랑 서북기, 개성행, 중국행 등이 대표적이며, 국토 답사 형태의 기행문으로는 민태원의 백두산행, 소일생의 금강유기, 운정 생의 고흥여기, 이혁의 호남여기, 천리구의 원산까지 등이 대표적이 다. 2) 또한 유학생 기행으로는 김준연의 라인 강반( 江 畔 )에서, 독일( 獨 逸 ) 가는 길에, 산호성의 태평양 거느는 길, 장덕수의 미국 와서, 최영욱의 미국 오시는 여러 형님게 등이 있다. 이 시기 유학생 기행문이나 유학 담 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910년대 주요 유학지( 留 學 地 )였던 일본 뿐만 아니라 독일 과 미국, 중국 등이 빈번히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 황에서 이 시기 기행문은 글의 형식이나 문체면에서도 이전 시기보다는 훨 씬 더 사실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1920년대 전반기 동아 일보 소재 기행문의 특징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2. 기행 체험과 사실적 재현 1920년대 동아일보 소재의 기행문은 1910년대의 신문ㆍ잡지 소재의 2) 이 가운데 민태원의 백두산행 은 신문사 주최 답사단으로 참여한 기록이며, 천리구 의 원산까지 는 철도회사 주최 납량 열차 여행단원으로 참여한 기록이지만, 취재기가 특정 사안을 취재하는 데 비해 이 두 작품은 기행 과정의 견문과 정서를 중심으로 서술하였기 때문에 국토 기행에 포함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57 기행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수가 많고, 기행문의 필자도 많아졌 다는 점에서 기행문이 본격적인 장르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유기( 遊 記 ) 형식의 기행 장르가 1910년대 소년, 청춘, 매 일신보 의 견문기를 거쳐 1920년대에 이르러 양적,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1910년대 이후의 기행 체험 과 관련된 글쓰기 문화가 전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최재학(1909)의 실지응용작문법 (휘문 관)이나 이각종(1911)의 실용작문법 (박문서관)에서 기( 記 ) 의 하나로 유기( 遊 記 ) 를 쓰는 법을 설정한 바 있고, 1910년 이후에는 다양한 형식의 여행기가 등장한다. 특히 소년 과 청춘 은 편집진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 들이 참여하여 견문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다음을 살펴 보자. (2) 少 年 文 壇 少 年 文 壇 은 우리 讀 者 諸 君 의 河 海 를 傾 하고 風 濤 를 驅 할 壇 場 이라. 感 懷 를 書 함도 可 하고 見 聞 을 記 함도 可 하고 日 記 를 寄 함도 可 하고 課 文 을 投 함도 可 하고 吾 鄕 의 風 土 를 誌 함도 可 하고 先 輩 의 經 歷 을 錄 함도 可 하고 詩 詞 도 可 하고 書 翰 도 可 하나 行 文 結 辭 하난 사이에 힘써 眞 境 을 그리고 實 地 를 일티 말디니 執 筆 人 은 詞 燥 에 富 한 것도 取 티 아니할 것이오 結 搆 에 妙 한 것도 擇 티 아니하며 다만 거딧말 아닌 듯한 것과 首 尾 가 相 接 하야 이르 랴 한 이 낫타난 것이면 을 터이니 이에 着 念 하시여 이러한 글이면 續 續 投 稿 하야 執 筆 人 으로 하야곰 蔚 然 히 曜 하는 麟 風 과 鏘 然 히 鳴 하난 韶 鈞 에 驚 心 驚 眼 케 하시오.- 소년 제1권 제1호, 신문관, 1908. 11. (2)는 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 의 독자 투고 안내문이다. 이 안내문 에는 투고할 글의 특징과 글쓰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 는데, 견문기, 일기, 풍토지, 전기, 시사, 서한 등과 같은 글은 일반 대중들

25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도 쉽게 쓸 수 있는 글로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쓰는 태도에서는 진경( 眞 境 ) 을 그려내고 실지( 實 地 )를 잃지 않을 것 과 진실할 것 을 조건으로 천명하 였다. 이 안내문에는 독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준칙에 해당하는 독자필준 ( 讀 者 必 遵 ) 이 부기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 讀 者 必 遵 ㄱ. 眞 實 을 일티 말 일: 假 令 兒 孩 둘이 노리를 가고도 成 句 가 잇다고 冠 童 六 七 人 이라 하던디 秋 成 時 의 敍 事 에 傳 習 이라고 먹디도 아니한 黃 鷄 白 酒 를 쓰든디 늣게 이러난 것을 남에게 알니기 붓그럽다 하야 日 高 三 丈 한 뒤 에 이러나고도 日 記 에는 텻닭 울면서 라 하든디 어린 兒 孩 에게는 當 티도 아 니한 公 共 事 業 의 經 營 과 酒 煙 에 關 한 일을 쓰든디 하난 것은 다 그딧말이라. ㄴ. 簡 要 을 듀댱할 일: 쓸데업난 敍 景 과 誇 大 記 事 를 避 할 것이니 假 令 어뎨뎌녁 八 時 에 우리 아바님이 서울노부터 還 宅 하시다 하면 다 될 것을 緊 한 聯 繫 도 업난 것을 오래 留 京 하시면서 學 校 設 立 일에 奔 走 하시던 아바님 서 어뎨 서울노서 還 宅 하시난데 다락원 酒 幕 에서 點 心 이 늣게 되고 議 政 府 안말에 親 知 을 탸디셔 이럭뎌럭 遲 滯 가 되야 밤 八 時 나 되야 抵 達 하시엿 난데 에 으스름 달은 건넌 山 에 微 照 하고 洞 里 ㅅ개들은 서투른 검은 옷을 딧더라 하난 것은 아듀 안 된 글이니 쓸 句 와 할 말만 너흘 것이라. ㄷ. 居 住 姓 名 을 明 記 할 일 ( 中 略 ) 한 가디 말삼할 것은 本 誌 가 少 年 文 學 을 主 張 하야 發 刊 함이 아니라 다만 讀 者 의 글을 獎 勵 도 하고 구경 도 할 次 로 이 文 壇 을 둠인즉 만은 紙 幅 을 割 愛 하기는 事 情 이 어려운즉 아못 됴록 短 文 을 歡 迎 할 수밧게 업난디라. 不 得 已 左 의 規 定 을 베프러 制 限 하노 니 이에 着 念 하야 어긔디 말도록 하시오. 3) - 소년 제1권 제1호, 신문관, 1908. 11. (3ㄱ,ㄴ)은 독자로서의 글쓰기 요령을 설명한 항목으로, 진실하게 쓸 것 과 간명하게 쓸 것 은 글쓰기의 기본적인 조건에 해당한다. 견문기, 일기, 3) ㄱ ㄴ ㄷ의 기호는 연구자가 임의로 부여한 것임.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59 풍토지, 서한 등의 글에 진실성과 간명성이 강조됨으로써 이 시기의 글쓰 기는 객관성, 재현성 을 중시하는 근대적 리얼리즘의 보편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에서 1910년대 청춘 이나 매일신보 소재 기행문도 전근 대적 유기( 遊 記 )나 탐승기( 探 勝 記 )와는 달리 사실적 재현을 중시하는 기 행문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특히 신문과 잡지에 등장하는 취재기나 탐방기는 사실성이 강하며, 제한적이나마 사회 고발과 같은 비판 의식이 내재될 경우가 많다. 이러한 흐름에서 1920년대 동아일보 기행문 은 1910년대의 기행문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다음 자료를 살펴보자. (4) 大 邱 行 ( 一 ): 夕 陽 이 빗기인 漢 江 鐵 橋 와 덧업시 흘너가는 타임의 勢 力 編 輯 局 長 에게 大 邱 에 나려가서 愛 國 婦 人 團 의 公 判 을 듯고 오라는 말슴을 듯기는 六 日 午 後 여름 해발이 서으로 기울어질 이엇섯다. 나는 이 에 오 래 憧 憬 하든 그들의 面 影 을 보겟다 하는 깃븜과 엇더케 하면 熱 誠 으로 읽어 주시는 百 萬 讀 者 들에게 遺 憾 업시 迅 速 하게 보게 할 하는 근심도 적지 아 니하엿다. 기우러져 넘어가는 저녁 해발이 二 等 室 琉 璃 窓 에 고요히 비취는대 나는 釜 山 行 列 車 乘 客 中 의 한 사람이 되얏다. -유광열(1920), 大 邱 行 ( 一 ), 동 아일보 1920. 6. 17. (4)는 이 시기 동아일보 기자였던 필자가 1920년 6월 7일에 열린 애국 부인회 공판 5) 을 보기 위해 대구로 가면서 적은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 4) 최재학(1909: 35)에서 유기( 遊 記 ): 凡 天 下 의 名 山 大 川 廣 都 와 名 勝 舊 蹟 苑 囿 花 月 의 遊 賞 이 皆 此 에 屬 니 라고 하였듯이, 전근대의 유기( 遊 記 )나 탐승기( 探 勝 記 )는 대상에 대한 유상( 遊 賞 )을 중시하는 형태의 글이다. 5) 애국부인회는 1919년 4월 임시 정부 지원과 항일 독립 투쟁을 목표로 결성된 단체이 다. 1920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 에 게재된 대한청년외교단과 대한애국부인단의 제 1회 공판 방청 속기록 에는 이 단체의 조직이 1919년 3ㆍ1 운동으로 투옥된 독립 운동

26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자의 여로( 旅 路 )는 견문( 見 聞 )이나 행락( 行 樂 )보다는 비감( 悲 感 )이나 시 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표출된다. 다음을 살펴보자. (5) 大 邱 行 ( 二 ) ( 前 略 ) 平 生 의 光 榮? 祖 國 을 爲 하야 피를 흘녀 世 上 일은 그 야 할 것! 이 에 언듯 나의 안즌 건너편 倚 子 에 一 名 의 日 本 人 을 보앗다. 년긔가 四 十 은 너머 보히고 흉상스럽게 기여 한번 보면 무서운 感 想 이 날 만한 사람이다. 그의 한편 에는 긴 칼 痕 迹 이 나마 잇다. 나는 그의 칼 由 來 를 想 像 하야 보앗다. 그가 戰 爭 에 나가서 자기의 祖 國 을 爲 하야 피를 흘니다가 敵 軍 에게 마즌 칼자국인가?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나도 쓸 데 업는 걱정을 - 하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마음을 가라안치고자 하엿다. 그러나 容 易 히 가라안지 안는다. 눈 면 눈 앞에 얼굴에 칼 痕 迹 이 잇는 日 本 人 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해쓱하게 세인 愛 國 婦 人 團 의 얼골이 어렴풋이 想 像 된다. 자기의 나라를 爲 하 야 피흔적을 永 遠 히 面 上 의 記 念 을 남긴 것을 볼 에 나는 世 上 일은 다 그럿 타 하얏다. -유광열(1920), 大 邱 行 ( 二 ), 동아일보 1920. 6. 18. (5)에서 기자는 맞은 편 일본인을 보면서 애국부인단의 얼굴을 떠올린 다. 기자의 말대로 일본인도 그의 조국을 위해 피의 흔적을 남긴 것 이라는 표현은 식민 지배자와 독립 운동가를 구분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당시의 시대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 있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기행 속에 담긴 사건과 시대 현실이다. 달리 말해 기행의 체험과 가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정신여학교 교사 오현주, 제중원 간호사 이정숙 등을 중심 으로 조직된 혈성애국부인단 에서 출발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단체는 1919년 5월 회장 김마리아, 부회장 이혜경, 서기 신의경, 임시 서기 박인덕, 부서기 임원을 선정하 여 독립 활동을 하다가 검거되었다. 동아일보 에서는 1920년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이 공판 기록을 게재하였으며, 삼일월이라는 필명의 기자는 1920년 6월 12일부터 22 일까지 7회에 걸쳐 대구에 갓든 일을 김마리아 형에게 라는 제목의 편지글을 연재하 기도 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61 느낌이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서 재현되는 과정이다. 1920년대 전반기의 기행문은 필자의 감정 표현 방식이 직설적이고, 문 체에서도 다양한 종결어미를 상황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생동감을 부여하 는 경우가 많다. 다음을 살펴보자. (6) 감정 표현과 사실적 문체 ㄱ. 千 里 의 夏 路 : 만한 서울! 奔 走 히 드는 서울! 드러운 새 만흔 서울! 南 大 門 에서 汽 笛 한 소리로 이 서울을 作 別 하고 北 向 車 에 한 사람이 되엿다. 오 동안 이러한 서울의 空 氣 를 마시며 이러한 서울의 물을 먹으며 이러한 서울의 를 밟으면서 속에 드는 소 속에 검운 새 아 뒤굴고 헤매며 골치 알튼 나는 어늬 監 獄 을 버서나 自 由 로운 몸으로 두 날개 를 버리고 푸른 하날 우흐로 둥실둥실 날아가는 듯한 늣김이 가득햇다. M 社 長 의 定 해 주는 자리에 안저 車 內 를 한번 둘너 보앗다. 日 本 人 朝 鮮 人 等 이 만히 올낫다. 그들의 이마에는 眞 珠 갓튼 흰 이 방울방울 어리워잇다. (중략) 쉬지 안코 다라나는 汽 車 는 벌서 一 山 驛 을 지나 푸른 벌판으로 다라난 다. 少 女 에게 부채질도 해 주고 사이다도 사 주며 이야기도 해 주든 나는 窓 을 열고 밧갓을 내다본다. 綠 陰 과 芳 草 로 휘싸인 적은 山 머리에는 白 雪 갓흔 흰 구름이 閑 暇 히 움직이고 잇스며 山 기슭 樹 木 이 욱어진 나무그늘 아래에는 二 三 軒 의 적은 茅 屋 이 자는 듯이 숨어 잇다. 그리하고 鐵 道 左 右 에는 ( 中 略 ) 나는 隱 然 中 이 風 景 에 깁히 醉 하야 정신업시 바라보고 잇다. -노자영, 千 里 의 夏 路 ( 一 ), 동아일보 1920. 8. 27. ㄴ. 釋 王 寺 에서 : 洗 浦 는 京 元 線 에서 헤미야 라고 십다. 나는 헤미야 를 본 적이 업소.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헤미야 를 뵈이면 반다시 洗 浦 를 聯 想 케 하오리다. 汽 車 가 鐵 原 에서 劍 佛 浪 을 지나올 에 한 便 톤넬(터널) 에서 리가 지기 前 에 머리가 다른 톤넬 을 차저드러가서 한 골을 지내 면 다음 골은 漸 漸 더 깁고 한 山 을 지내면 다른 山 은 漸 漸 더 덥퍼진다. 瞬 間 의 暗 黑 에서 刹 那 의 明 界 를 通 過 할 에 나의 意 識 은 더욱 明 敏 하더이 다.- 공민(1920), 釋 王 寺 에서 ( 一 ), 동아일보 1920. 6. 20.

262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6ㄱ)은 경성을 떠나 진남포로 가는 여정을 그린 기행문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경성의 모습을 분주함 과 냄새 나는 곳 으로 묘사하고, 경성을 떠나 는 심정을 감옥에서 자유를 얻는 것 에 비유하였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 차창 밖의 현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도 필자의 감수성이 넘쳐 난다. (6ㄴ) 에서는 사실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백체의 문장과 자유로운 시제 구사가 나타난다. 본 적이 업소 나 하더이다 와 같이 청자를 전제로 한 문장과 십 다, 덥퍼진다 와 같은 자기표현의 문장이 뒤섞이면서도 독해의 혼란을 유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원에서 1920년대의 기행문은 문장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사실적 글쓰기의 한 장르로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6) 3. 자의식과 국토 의식의 성장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문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앞선 시대와 달리 자의식과 국토 의식을 드러내는 글이 많다는 점이다. 7) 1920년 대 국토 순례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는 1923년 4월부터 개벽사가 중심이 되어 진행한 조선 문화의 기본 조사 가 있다. 이 조사는 조선인의 입장에서 우리 전 국토의 생활상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였다. 8) 이 조사 6) 문체의 진보라는 차원에서 1900년대 기사문의 전언체( 傳 言 體 ) 종결형인 -더라 형이 -소 와 같은 독백체 또는 -한다 와 같은 서술체 등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데에는 기행문이 갖고 있는 현장 의식 또는 사실성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7) 국토 순례 기행문에 대해서는 구인모(2007)의 국토 순례와 민족의 자기 구성 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단군 사상을 중심으로 한 근대성 체현의 과정을 살폈다. 8) 개벽 은 1920년 6월 25일 이돈화를 편집인으로 하여 발행한 천도교계 계몽 잡지이 다. 창간호 창간사에서 소리ㅣ 있어 넓히 世 界 에 傳 하니 온 世 界 모든 人 類 ㅣ 이에 應 하야 부르짖기를 始 作 하도다. (중략) 時 ㅣ 開 闢 하고 事 ㅣ 開 闢 하고 人 物 이 開 闢 하 는 此 際 에 吾 人 으로 이 開 闢 史 를 쓰게 됨은 實 로 時 에 適, 事 에 適, 精 神 에 適 하는 神 의 要 求 라 아니할 수 업도다.(하략) 라고 하였듯이, 1926년 8월 1일 폐간되기까지 사회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점에서 개벽 과 동아일보 는 친근성을 보이는 매체인데, 농촌계몽, 문맹퇴치, 문자보급운동 등은 두 매체가 모두 관심을 기울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63 사업에 대해 개벽 1923년 4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7) 朝 鮮 文 化 의 基 本 調 査 本 社 의 今 年 中 大 計 劃 - 朝 鮮 의 現 狀 調 査 에 依 할 各 道 道 號 의 刊 行 - 社 友 制 의 期 成 에 伴 할 十 三 道 役 軍 의 糾 合 ( 中 略 ) 天 下 의 無 識 이 남의 일은 알되 自 己 의 일을 모르는 것만치 無 識 한 일이 업고 그보다 더 無 識 한 것은 自 己 네의 살림살이 內 容 이 엇지되어 가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가티 無 識 한 일이 업다. 보라 우리 朝 鮮 사람이 朝 鮮 形 便 이 라 하는 自 己 의 살림살이의 內 容 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남의 일은 잘 알되 自 己 의 일은 比 較 的 모르는 사람이 많으며 남의 살림살이는 잘 批 評 하되 自 己 의 살림살이는 어 되어 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만흐다. 우 리는 이 點 을 甚 히 慨 嘆 하게 보아 今 年 의 新 事 業 으로 朝 鮮 文 化 의 基 本 調 査 에 着 手 하며 니여써 各 道 道 號 를 刊 行 하기로 하얏나니 이는 純 全 히 朝 鮮 사람으로 朝 鮮 을 잘 理 解 하자는 데 잇스며 朝 鮮 사람으로 自 己 네의 살림살 이의 內 容 을 잘 알아가지고 그를 自 己 네의 손으로 處 辨 하고 整 理 하는 聰 明 을 가지라 하는 데 잇는 것 이다.( 中 略 ) 이번에 우리가 各 道 를 踏 査 할 標 準 은 諸 社 會 問 題 의 原 因 及 趍 向 中 心 人 物 及 主 要 事 業 機 關 의 紹 介 及 批 評 人 情 風 俗 의 實 際 如 何 産 業 敎 育 及 宗 敎 의 狀 況 名 勝 古 蹟 及 傳 說 의 探 査 其 他 의 一 般 狀 勢 에 關 한 觀 察 과 批 評 京 城 開 闢 社 - 개벽 1923. 4. 개벽사의 조선 문화의 기본 조사 는 1923년 4월 경상남도를 시작으로 1925년 6월 황해도호가 발행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7)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업은 조선 알기 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답사 조사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인정이나 풍습, 명승ㆍ고적, 전설 등의 다양 한 기행문이 산출되었는데, 비록 국토 순례 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 만, 이때 산출된 기행문은 조선 의식 또는 국토 의식 을 전제로 한 기행문으 인 계몽 분야였다.

26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로 볼 수 있다. 이처럼 1920년대 전반기부터는 자의식의 성장이나 조선 의식 을 전제 로 한 기행문이 다수 나타난다.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의 기행 문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민태원의 백두산행, 소일생의 금강유기, 운정생의 고흥여기, 이혁의 호남여기, 천리구의 원산까지 등은 이러한 유의 기행문이다. (8) 白 頭 山 行 咸 南 道 廳 의 主 催 로 白 頭 의 거룩한 품에 안기여 보기를 願 하고 모여든 二 十 名 은 豫 定 대로 八 月 八 日 에 惠 山 驛 을 向 하야 咸 興 을 出 發 하게 되얏다. 中 에는 白 頭 山 의 거룩한 소문을 듯고 一 生 의 經 營 으로 그 雄 衛 英 靈 의 氣 에 接 코자 하야 參 加 한 이도 잇고 는 自 己 의 본 것 들은 것을 다만 自 己 의 抱 負 됨에 그치게 하지 안코 넓히 江 湖 에 나누어 그 질거움을 갓히하라는 操 觚 者 流 도 五 六 人 이나 參 加 하얏다. 나는 그 中 의 한 사람이다. 나는 붓을 실고 白 頭 山 을 向 하야 出 發 한다. 안이 諸 君 은 부지럽시 웃지를 마라. 如 椽 大 筆 을 실으나 一 枝 禿 筆 을 실으나 싯는 點 에 잇서서는 다 一 般 이 다. 그럼으로 文 筆 에 拙 하기 나와 갓흔 者 로도 것침없시 붓을 싯고 云 云 쓸 勇 氣 가 난다.( 中 略 ) 옷을 들고자 하면 깃을 들어야 할 것이요, 물을 말하고자 하면 먼저 그 根 源 을 알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갓치 朝 鮮 의 山 水 를 보고자 하면 먼저 白 頭 山 을 보고 다음 金 剛 山 을 보아야 될 것이다. 白 頭 山 은 朝 鮮 山 岳 의 朝 宗 이며 頭 腦 요 金 剛 山 은 脊 椎 일다.( 下 略 ) -민태원, 白 頭 山 行 ( 一 ), 동아일보 1921. 8. 21. 민태원의 백두산행 은 이 시기 함남도청 주최의 탐방 답사 과정에서 산출 되었다. 당시 도청은 식민 지방 관청이었으므로, 이 행사 개최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9) 그럼에도 이 기행문에는 이 시기 9) 이 시기 각 사회단체나 지방 단체에서는 관광ㆍ행락 목적의 유람단이나 관광단을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65 조선인들에게 백두산 과 금강산 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 준다. 백두산은 조선 산악의 조종 이라고 표현하였듯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는 의식이 잠재해 있으며, 금강산은 백두산의 척추로 인식되었다. 이 러한 의식은 식민 시대 국토애와 무관하지 않다. 국토에 대한 사랑은 곧 민족애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와 같은 국토애가 1920년대 전반기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구인모 (2007)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단군 사상 이나 불함 문화 등은 1910년대 최 남선이 제기했던 사상이다. 예를 들어 청춘 제14호(1918. 6)에는 백두산 화보와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9) 白 頭 山 이 그림은 白 頭 山 頂 의 火 口 湖 를 보인 것이니 지난 光 武 六, 七 年 頃 에 露 國 人 누가 撮 影 하야 傳 한 것이라 天 池 라고도 하고 闥 門 潭 이라고도 하고 龍 潭 이라고도 하는 것이니 豆 滿, 鴨 綠, 松 花 三 江 의 源 이 此 에 發 하니라. 대저 白 頭 山 은 支 那 人 은 長 白 山 이라 하고 滿 洲 人 은 歌 爾 民 商 堅 阿 隣 이라 하고 古 에는 不 咸 山, 太 白 山, 或 白 岳 이라 하야 大 東 에 屹 立 한 巨 靈 의 天 柱 라 檀 君 의 基 業 이 實 로 此 地 에 肇 하고 ( 下 略 ) - 백두산 (화보와 설명), 청춘 제14 호, 신문관, 1918. 6. 청춘 제14호는 최남선의 역사의식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잡지이다. 이 잡지에 기고한 최남선의 계고차존( 稽 古 箚 存 ) 은 서론, 제1기 단군시절, 제2기 부여시절, 상고 개관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대 위인을 모아 기인 비관( 其 人 備 官 ) 10) 을 꾸미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 최남선은 우리 역사의 조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 단체가 조직했던 관광단의 실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으나, 식민 통치 과정에서 관광의 산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시찰단, 관광단, 유람단 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시찰 활동이나 유람 활동이 이루어졌다. 10) 기인비관 은 역대 인물을 전형하여 당시의 관직에 가장 적합한 역사 인물이 누구인

266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요람지가 태백산하 송화강 상류 곧 백두산 이라고 계고하였다. 이와 같은 의식은 1920년대 동아일보 의 단군 영정 현상 모집으로 이 어지기도 한다. 동아일보 는 창간 직후인 1920년 5월 대대적으로 단군 영정 현상 모집 광고를 내었다. 이때 모집 대상은 존상( 尊 像 ), 화본( 畵 本 ), 화( 畵 ) 등이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기자들의 취재기나 답사기 가운데는 민족적 자의식과 국토 의식을 반영한 것들이 다 수 존재한다. 이러한 기행 문화는 치안 유지법 이후의 국토 순례 기행문의 토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1) 4. 해외 기행 및 유학생 담론 기행 체험이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은 1920년대 전반기 해외 기행 이나 유학생들의 담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해외 기행 가운데 주목할 것은 1920년대 만주 및 중국 관련 기행문이 다수 출현한다는 사 실이다. 만선사관 12) 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지식인들과 부일 협력자 또는 친일 조선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만주 와 조선 의 지리ㆍ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에도 지를 안배한 표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민족 발전에 대한 희망을 표출한 결과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11) 1925년 1월 30일 공포된 치안유지법 은 사상범 처벌뿐만 아니라 농촌 계몽, 문화 운동 등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다. 달리 말해 1920년대 이른바 문화 정치 의 유화적 식민 통치가 1925년 이후 큰 변화를 보이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기행 담론이나 기행문의 내용 변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논문에서 별도로 논의 하기로 한다. 12) 만주와 중국에 대한 관심은 1910년대 중반기 본격화된 일제 식민 관학자들의 만선사 관( 滿 鮮 史 觀 ) 의 영향으로 보인다. 만선사관은 조선을 강점한 일본이 조선의 역사를 만주의 부속품으로 간주하거나, 조선을 지배한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역사 논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논리는 1915년 이후 매일신보 의 사설 에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67 만주와 중국 관련 기행문이나 유학 담론이 다양하게 실렸다. 다음과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10)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의 만주ㆍ중국 담론 시작일 종료일 문종 제 목 내용 필자 횟수 1920. 04.19. 1920.07.03. 기행 상해잡신 중국의 문화운동, 사회운동, 배일운동, 구국운동 소개 주요한 10 1920. 06.23. 1920.07.09. 기행 만주 가는 길에 6월 17일 경성에서 진남포까지 가는 과정 공민 12 1920. 07.11. 1920.07.13. 기행 중국 여행기 권태용 3 1921. 05.06. 1920.07.16. 기행 길림에서 북경에 이수형 54 1922. 04.21. 1922.04.23. 기행 북경 기행 세계 기독교 학생 동맹 참관기 여운홍 3 1922. 06.06. 1922.06.13. 편지 북경에서-중국 유학 안내 중국 유학 안내 양해청 8 1923. 06.10. 1923.08.05. 기행 중국행 유광열 4 1923.07.22. 기타 임성 토비 탐험기 : 모국 관계설과 비도의 내정 중국 내의 비적 토벌 탐험기 여운형 1 1923. 11.07. 기사 刺 身 鬼 의 모여드는 마굴 탐방기 1 1924. 04.21. 1924.05.26. 기행 중국 불교의 영지 오대산의 탐승 월요판에 연재 이수형 6

268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10) 가운데 주요한의 상해잡신 이나 양해청의 중국 유학 안내 는 기행 문은 아니지만 이 시기 지식인들에게 중국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상해잡신은 중국의 5ㆍ4 운동을 비롯한 문화 운동 소개에 역점 을 두고 있으며, 북경에서-중국 유학 안내 는 필자가 K형에게 보내는 편 지 형식의 유학 안내문이다. (11) 1920년대 중국의 의미 ㄱ. 記 者 는 前 稿 에 五 一, 五 四, 五 五, 五 七, 五 九 의 五 個 句 를 連 記 하얏소. 이 다섯 가지 記 念 日 中 에 中 國 의 新 文 化 運 動, 社 會 運 動, 排 日 運 動, 救 國 運 動 이 다 包 含 되엇스니 이것이 靑 年 中 國 의 表 象 이라 하여도 無 妨 하다 하오. ( 下 略 ) -송아, 상해잡신, 동아일보 1920. 5. 26. ㄴ. ( 前 略 ) 그러면 엇더케 하여야 이 問 題 를 解 決 할 수 잇슬가요? 勿 論 훌륭한 學 校 를 만히 設 立 하는 것이 第 一 完 全 하고 第 一 偉 大 한 方 針 이겟고 講 習 所 라던지 夜 學 갓흔 것을 만히 만드는 것도 臨 時 的 必 要 手 段 이겟사오나 萬 一 適 當 한 곳이 잇다 하면 外 國 留 學 도 亦 그 一 策 이라 하나이다. 여긔에 中 國 留 學 問 題 가 自 然 히 생겨날 줄 아노니 大 槪 米 國 留 學, 獨 逸 留 學, 英 國 留 學, 法 國 留 學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不 必 要 한 것은 아니나 우리의 現 在 事 情 으로는 암만하야도 이것이 普 遍 的 으로 되기는 어려울 아니라 東 洋 에서 普 通 知 識 을 엇지 못하고 西 洋 에 留 學 하는 것이 眞 正 한 效 果 를 잇슬는지는 疑 問 이라고 할 수밧게 업슨즉 우리는 不 可 不 日 本 留 學 과 中 國 留 學 에 對 하야 硏 究 하지 안을 수 업슬가 하나이다. K 兄! 그 아니라 日 本 에 엇더한 學 校 가 잇고 費 用 이 얼마나 든다든지 는 그의 學 制 가 엇더하다는 것은 우리 同 胞 中 에 임의 아는 이가 만흔즉 그의 方 針 을 定 함에는 別 問 題 가 업슬 것 가트나 中 國 留 學 을 希 望 하는 이에 게는 이것이 큰 問 題 인 것 갓슴니다. ( 下 略 ) -양해청, 북경에서-중국유학안 내- ( 一 ), 동아일보 1922. 6. 5. (11ㄱ)은 기자였던 주요한이 중국의 문화 운동을 소개하는 글의 일부이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69 다. 중국을 청년 중국 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이유가 중국의 문화 운동이 신문화 운동, 사회 운동, 배일 운동, 구국 운동 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 서 비롯되었다. (11ㄴ)은 조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학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대상지로 서양이 아닌 일본 과 중국 을 거론하고 있는 글이다. 이처럼 1920년대 전반기 중국 관련 담론은 우리의 인접 국가 로 우리와 소통해야 할 지역 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었다. 인접 국가로서 만주와 중국의 의미는 공민의 만주 가는 길에 나 이수형의 길림에서 북경 에, 유광열의 중국행 등에도 반영된다. 이들 기행문에는 재만 동포의 삶 이나 흑룡강 및 사할린 이주민의 삶이 그려져 있으며, 일부 작품에는 중국 의 명승ㆍ고적, 전설 등도 다채롭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11ㄴ)에 언급된 바와 같이 독일, 미국, 일본 등지의 유학 관련 담론이나 기행문도 다수 출 현하였다. 대표적인 독일 유학기로는 김준연의 백림에서, 라인 강반에서, 독일 가는 길에 가 있고, 미국 유학기로는 장덕수의 미국 와서, 최영욱의 미국 오시는 여러 형님게 가 있다. 이러한 유학기의 주요 내용은 유학 가는 길의 체험, 유학 생활의 어려움, 유학 생활에 필요한 지식 등이었다. 이처럼 해외 기행과 유학 담론의 변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시의 여행 문화의 실상들이다. 예를 들어 태평양 건느는 길 의 부산역과 연락선 탑승 전의 장면을 살펴보자. (12) 태평양 건느는 길= 仁 川 에서 東 京 지 ( 前 略 ) 下 午 七 時 頃 이 되야 불 만흔 釜 山 停 車 場 에 만흔 乘 客 을 숨차 허덕이는 汽 車 는 吐 하엿다. 제각기 자리를 占 領 하고저 야단스럽게 連 絡 船 을 향하야 다라낫다. 一 行 도 그런 慾 心 이 업지 아니하야 다름질하얏다. 친 줄 알엇든 비는 아직도 보슬보슬 나렷다. 連 絡 船 오르는 다리에는 아마 世 界 에 獨 特 한 所 謂 旅 行 證 明 書 라는 것을 調 査 하는 二 三 의 금 나리가 눈을 번개 갓치 휘둘느면서 或 朝 鮮 人 을 놋치지 아니할 하야 도릿도릿 서 잇섯다. 사 람들은 서로 밀고 야단하는 판에 우리도 여서 生 存 競 爭 을 試 하야 보앗

270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다. 내가 旅 行 券 을 내여 보이매 금 나리 치고는 덜 금거리는 朝 鮮 巡 査 (이의 職 分 은 證 明 書 에 圖 章 는 일)가 이것은 어데 가는 것이냐고 뭇는다. 米 國 가는 것이라 對 答 하매 그는 놀내는 듯이 어서 그냥 드러가라 한다. ( 中 略 ) 부 럼도 업고 禮 도 도라보지 안는 日 本 船 客 들은 오직 훈도시 하나만 차고 십벌건 살을 드러내놋코 누엇다. 엽헤는 女 人 들이 한 그런 모양으로 누어 잇다. 連 絡 船 구경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되 이 光 景 이 몹시도 눈에 워 견딀 수 업섯다. ( 下 略 )- 珊 瑚 聲, 太 平 洋 건느는 길 ( 六 ), 동아일보 1921. 9. 28. (12)에는 필자가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연락선을 타는 장면과 배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여행증명서 검사 제도와 조선인 차별, 조선인 순사의 별명( 금)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13) 이처럼 1920년대의 기 행문은 시대의 창이자 사회의 통로로서 사실을 재현하는 보편적 장르의 하 나가 되었다. 더욱이 기행문의 사실적 문체는 미문 중심의 글쓰기에서 현장 감 있는 표현 양식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Ⅲ. 결론 이 연구는 1920년 4월부터 1924년 12월까지 동아일보 에 소재한 기행 담론과 기행문 자료를 전수 조사함으로써 1920년대 전반기 기행문의 특징 13) 식민 시대 선박이나 철도 이용, 여행 등에 대한 통제는 1910년대에도 존재했다. 조성 운(2011: 47)에 서술한 일본 육군성의 만한지방 수학여행 의 규정이나 각종 시찰단의 규정, 1911년 7월 20일에 시행된 숙박규칙 등은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이든 아니면 식민 통치를 위한 것이든 이 시기 존재하는 규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규제는 선박 승선도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그러나 1925년 1월 공포된 치안유지법은 단순한 규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의미하며, 이에 따라 문화 운동이나 계몽 운동도 계몽성보다는 오락성을 강조하거나 총독부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의 농촌 운동 또는 민족 운동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강했다.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71 을 기술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 시기 동아일보 에는 85종 501회의 기 행 자료가 분포하며, 그 가운데 기행문으로 볼 수 있는 것은 49종이다. 이 글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행 담론의 분포에서는 취재기 형식의 기행문(25종)과 국토 답 사 형태의 기행문(15종), 유학 관련 담론(10편)이 많았음을 확인하였다. 이 들 자료에서 취재기는 기자의 취재기나 탐방기가 중심을 이루며, 국토 답 사의 경우 특정 단체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기행문이 많음을 확인하였 다. 그럼에도 이들 취재기와 답사기에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자의식의 성 장 과정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기행 체험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이 시기 기행문은 보편 적 글쓰기의 한 양식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1908년 소년 창간 이후로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1920년대 전반 기의 경우 기행문은 체험의 사실적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사실성과 비판 의 식이 내재된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셋째, 1920년대 전반기 기행문에서는 자의식과 국토 의식의 성장이 두 드러짐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개벽사의 조선 문화 기본 조사 와 마찬가지 로 동아일보 에도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비롯한 국토 기행문이 다수 게재 되었는데, 이러한 의식의 뿌리는 1910년대 최남선의 역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넷째, 해외 기행과 유학 담론의 변화이다. 특히 해외 기행의 경우 만주와 중국 기행문이 많으며, 독일, 미국, 중국 을 대상으로 한 유학 담론과 유 학생기가 다수 출현한다. 이러한 해외 기행 자료에서는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데, 이처럼 기행 자료를 통해 시대상을 독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행문이 글쓰기나 문학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사를 규명하 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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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韓 民 族 語 文 學 第 63 輯 Abstract Discussion of Travel and the Travel Essay in the DONG-A ILBO in the First Half 1920's Kim, Kyung-nam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discussion of travel and the travel essay in the first half 1920's. I found 501 materials in the DONG-A ILBO(the newspaper it's time). I divided these materials into type of material and contents(or theme). In this time, many travel materials and essay reflected the sprit of the age and social phenomenon. In this time, many discussions of travel relating in the journalist papers. I described these phenomenon three point. First was related in realistic reappearance. Second were self-consciousness and territorism(the ideology of territory and patriotism). Third was tour of overseas and international student's travel essays. The phenomena of travels had various aspects in the first half 1920's. I think that the travel essay was generalized writing style in this time. Key words : discussion of travel, travel essay, DONG-A ILBO, realistic reappearance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275 김경남 소속 : 건국대학교 글로컬 소통ㆍ통섭 교육원 강의교수 주소 : (130-762)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삼성래미안 장안 2차 아파트 218동 1104호 전화번호 : 010-5273-9247 전자우편 : surhera@konkuk.ac.kr 이 논문은 2013년 3월 2일 투고되어 2013년 4월 5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13년 4월 23일 게재 확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