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Database Center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목 차 프로그램 개회사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 인사말 (신현식 북한인권정보센터 후원회장) 축사 (류길재 통일부 장관) 축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7 9 11 13 제 1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UN의 역할 (대사 연설) 로버트 킹(Robert R. King) 미국 북한인권특사 준 신미(Jun Shimmi) 일본 UN담당대사 우페 울페첼(Uffe Wolffhechel) 덴마크 인권대사 빌 패터슨(Bill Paterson) 주한 호주대사 김영호 한국인권대사 17 21 24 26 29 제 2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협력방안 (전문가 토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 베른하르트 젤리거(Bernhard Seliger)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국제레짐을 통한 북한인권 개선 방안 - 토마스 W. 스미스(Thomas W. Smith) 미국 South Florida St. Petersburg대학 교수 최근 북한인권 실태와 특징 -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35 46 53 58
프로그램 ( 참석자 및 발제 제목은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개 회 10:00 ~ 10:05 북한인권 애니메이션 10:05 ~ 10:10 개회사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 10:10 ~ 10:20 인사말 신현식 북한인권정보센터 후원회장 10:20 ~ 10:40 축 사 류길재 통일부 장관 황우여 새누리당 국회의원 10:40 ~ 10:45 인권대사 및 귀빈 기념 촬영 제1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UN의 역할 사회 : 이재춘( 前 EU 대사) 10:45 ~ 12:10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Robert R. King 미국 북한인권특사 Jun Shimmi 일본 UN담당대사 Uffe Wolffhechel 덴마크 인권대사 Bill Paterson 주한 호주대사 김영호 한국 인권대사 12:10 ~ 12:30 Q&A 12:30 ~ 14:00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 초청 VIP 오찬 제2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 전문가 그룹 토론 사회 : 박흥순(선문대 교수) 14:00 ~ 15:15 북한인권 개선 국제협력 방안 제 1 주제 통일 독일의 경험으로 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정부의 과제 발표 : Bernhard Seliger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제 2 주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인권단체 협력방안 발표 :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제 3 주제 국제 레짐을 통한 북한인권 개선 방안 발표 : Thomas W. Smith (미국 South Florida St. Petersburg대학 교수) 제 4 주제 북한인권 침해 사건의 주요 특징과 핵심 과제 발표 :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15:15 ~ 16:15 전문가 토론 16:15 ~ 16:45 Q & A 폐 회 16:45 ~ 17:00 폐회안내
개 회 사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 먼저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들을 모시고 개회사를 할 수 있게 된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저희 북한인권정보센터 1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오늘의 이 회의에 참석 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모임은 그 자체가 북한 동포들에게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북한지도 부에게는 강한 신호를 전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와 신호는 국제사 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반인륜범죄가 북한에서 수 십 년간 자행되어 왔으며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간 그런 참혹한 범죄를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류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한 반인륜범죄를 중지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과 같은 형제이자 자매인 북한 인민들 이 받는 인권 피해에 보이는 남한시민들의 무관심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 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폭로한 북한 인권 피해에 관한 자료를 단지 신빙성이 부족 하고,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시 에 북한인권 침해를 고발하는 증언자들도 한국의 정치인들과 NGO 단체들이 국내 인권에는 침묵한 채, 북한을 악마로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선택한 자들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팽배합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북한 인권 침해에 관한 자료는 매우 구체적인 기록물로 여러 해에 걸쳐 상세한 검증을 거쳤으며 지금까지 어떠한 반론도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저희 가 수집한 자료는 수백 건의 문헌자료, 국내외 뉴스미디어 보고서 및 8,000명이 넘 는 탈북 동포들의 증언을 기초로 하고 있어 북한인권 침해에 대해 더 이상 단편적 인 정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료를 수집해 오고 있는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는 독립적이고 과학적이며, 순수하게 인권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학술단체로 서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7
저는 이렇게 축적된 풍부한 자료가 최근 설립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의 목적에 쓰일 수 있을 것이란 점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COI의 조사 활동이 마침내 세계로 하여금 북한의 심각하고 끔찍한 상황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위원회의 권고사항에 UN인권조사단의 북한 현지 파견과 동시에 국제형 사재판소에 북한인권 상황을 제소하는 내용이 포함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인권이야 말로 국가주권 보다 더 중요하며 6자 회담 등은 인권문제를 제외하 였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헬싱키조약이 매우 성공한 이유 는 그 조약이 인권 항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러분들께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등 장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수많은 독재국가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 추었으며 이는 세계의 자유 시민들의 인권을 위한 격렬한 항의가 들불처럼 세계 도 처에 퍼진 결과입니다. 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대통령의 말을 빌려 제 개회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자유란 모든 곳에 있어 인권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의미한다. 감사합니다. 8
인 사 말 신현식 북한인권정보센터 후원회장 김상헌 이사장님, 황우여 의원님, 류길재 통일부 장관님, 각국의 인권대사님들과 귀빈 여러분,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후원회장으로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여 러분께 환영과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멀리서 이곳까지 와주신 해 외 귀빈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는 지역 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생명과 자유, 평등에 대한 정신은 보편적이며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인류를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의 연대에 더 힘을 싣고자 이 자리에 모 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북쪽으로 1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고, 주민들은 독 재 정권의 폭력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반체제 인사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합니 다. 정치범들은 평생 자유라는 말의 의미도 모른 채 감금되어 있습니다. 세계 시민 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이러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인간적 삶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한 목소리를 내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국제 사회의 다양한 노력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어왔습니다. 최근에 이룬 진전으로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1년 임기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는 정부와 시민 단체 모두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지 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에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단체로 북한인권 정보센터가 있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한국 역사의 장구한 기록 보존의 역사를 이어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쇄 기술을 처음 발명한 나라로서 이러한 전통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에 의해 구현되었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유산은 한민족의 발전의 근간이 되어왔고,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한국 역사에 서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 온 업적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에까지 전하기 위해 노력하 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도 비극적인 순간들이 있었지만 저는 우리 후손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2세대, 3세대 후손들을 인간의 자유를 위 한 노력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서있는가를 가르쳐야 9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이와 관련하여 인류의 진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례입 니다. 서독의 동독 내 인권 침해 기록보존소는 오늘날 독일 국민들이 강력한 인권 국가를 건설하는 데 분명한 지침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이는 북한에 대해서도 동일 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 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후원회장으로서 그 미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제게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며,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가는 특권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0
축 사 류길재 통일부 장관 안녕하십니까? 김영호 인권대사님을 비롯해서 각국의 인권대사 여러분, 그리고 오 늘 이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 소중 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북한인권정보센터와 한스 자이델 재단 관계자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외 귀빈여러분, 인권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보편적 가치입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 역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 역시 지금 산업화와 민주화라고 하는 위대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해왔습니다. 저는 북한인권 문제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국제기구의 보고는 북한의 인권상황이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보여주고 있 습니다. 북한의 인권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당국이 국가의 기본적 책무 를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북한주민들이 민생과 북한의 경제발전 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해결을 북한 당국에 촉 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을 비롯해서 국제사회 모두가 실 질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 한국정부는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제도적인 기반을 확립해 나가려고 합니다. 북한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필 요한 지원노력을 추진할 것입니다. 즉, 법에 기초해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청사진 인 북한인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도움을 함께 받으면서 체 계적이고 실질적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둘째, 북한이 스스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인권은 지고지순의 가치이지만 역사발전의 산물입니다. 인류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포괄적인 인권 개념을 저발전 상태에 놓여있는 국가가 단기간에 충 족시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북한이 스스로 인권 개선을 위한 능력 11
을 갖출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야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북 지원 역시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하겠 습니다. 특히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순수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 황과 분리해서 지속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북한 또한 대화를 거부하고 비난만 일 삼는 행태를 그만두고, 남과 북이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호응해 와 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 협력해 나가겠습니다. 우리정부는 국 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써 UN인권 결의안 등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 회의 노력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서는 북한주민들의 복지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이 주민들의 생활 여건 향상을 위한 투자 와 개선 노력을 기울이며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남북간 인권협력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국제사회를 통한 인권 대화는 북한인권의 실 질적 개선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각국 인권대사님들 께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기대합니다. 우리도 국제사회에 북한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제기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귀빈여러분, 우리가 남북관계의 발전을 이루고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는 궁극 적으로 한민족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북 한인권문제는 우리민족 모두가 뜻과 힘을 모아 해결책을 모색해야할 문제입니다. 국제사회 또한 우리의 이런 노력에 도움을 주시고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포럼이 이러한 노력을 향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리 고 여러분들의 변함없는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2
축 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안타까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 뜨거운 관심과 열정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류길재 통일부 장관님을 비롯한 내외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와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3월 제네바에서 열린 제 22차 UN 인권이사회에서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만장일치 결의를 했습니다. 이로써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권을 유린하는 가해자 입 장에서 볼 때는 이런 조사를 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것보다도 두려운 일이고 억제력이 가장 높은 일입니다. 5월 초에는 이 조사위원회가 세 분의 위원을 임명하 였고 이제 곧 착수될 단계에 있습니다. 조사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정보수집 뿐만 아니라 반인도범죄에 해당하는 인권침해 사항에 대한 책임규명까지 포함하여 대단히 광범위한 활동이 예견되어서 그 의미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의 협조를 직접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한 국에 입국한 25,000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국가인권위원회와 북한인권 단 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를 그 증거들로 모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절차 그리고 여러 가지 활동을 계기로 국제기구와 국내외 북 한인권 단체들 그리고 우리 정부 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동노력이 요구되는 때입니 다. 이러한 때에 김상헌 북한인권정보센터 이사장님께서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자이 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님과 함께 북한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도전과 과제 라는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한 것을 아주 뜻 깊게 생각합니다. 국회차원에서도 그동안 북한자유이주민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을 통해 이러한 일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또 한국 국회 내에는 IPCNKR을 뒷받침하기 위한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이 결성되었고 또 의원들 간의 연구단체로 인권포럼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 동이 다함께 어우러져서 큰 성과를 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김영호 한국 인권대사님, 일본의 준 신미 유엔 담당 대사님, 덴 13
마크의 우페 울페첼 대사님, 그리고 미국의 토마스 라이트 스미스 교수님과 같은 여러 인권 분야의 최고 권위 전문가들이 함께하셔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연 대의 역할과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치 있는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 대합니다. 저희 국회가 그리고 제가 봉사하는 새누리당에서도 북한인권 및 탈북자, 납북자 위원회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다뤄왔는데, 오늘 제 2주제 토론에 임하시는 하태경 의원님께서 그 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이러한 국회와 당의 모든 노력이 조사위원회의 요청과 협조에 적극적으로 화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조사위원회가 북한 인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자못 기대를 가지면서도 1분 1초를 다투는 북한인권 문제가 이를 통하여 개선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국 제사회가 다 함께 힘을 모을 때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14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제 1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UN의 역할 -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 사회 : 이재춘( 前 EU 대사) Robert R. King 미국 북한인권특사 Jun Shimmi 일본 UN담당대사 Uffe Wolffhechel 덴마크 인권대사 Bill Paterson 주한 호주대사 김영호 한국 인권대사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미국 북한인권특사 연설문 로버트 킹 (Robert R. King) 미국 북한인권특사 제가 북한인권 특사라는 직위를 맡게 된 2009년 11월부터 북한정부 내에는 큰 변 화가 있었습니다. 이 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김정일의 사망과 그의 아들 김 정은의 정권 세습입니다. 불행하게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바로 북한 내의 개 탄스러운 인권 침해 상황입니다. 미국 대북정책의 강점은 한 미 간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 근 오바마(Obama)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60주년을 맞은 두 국가의 강하고 깊은 협력관계의 단적인 예입니다. 한미동맹의 60주년을 맞이한 공동선언에서 우리의 두 지도자는 북한의 핵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반복되는 도발과 핵확산의 위협에 대응하여 한반도 내에 평화적 인 비핵화를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다짐을 다지게 되 었습니다. 또한, 이 선언에서 북한을 향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주 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있어 북한인권은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두 차 례나 통과시켰다는 것은 미국사회가 이 사안에 얼마나 많은 중요성을 두는지에 대 한 단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북한 내의 개탄스러운 인권침해상황에 관한 관심이 증가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통일연구원과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같은 기관들이 이 런 북한의 상황에 관한 연구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부여했는지 또한 알 수 있습니 다. 북한 인권에 관해 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장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습 니다. 첫 번째는 바로 개탄스러운 북한인권 기록에 관해 북한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북한이 정보의 개방을 받아들여 바깥 사회와 접촉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한반도 내에 안보 및 인권침해에 관한 문제 들이 긍정적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17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인권침해에 대한 관심 촉구 북한 내에서 범해지는 인권침해의 실태는 상세히 문서화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과 몇 주 전, 존 케리(John Kerry) 미 국무장관은 미 국무부의 연례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보고서에 적힌 북한에 관한 보고에 따르면, 재판 없는 처형, 실종, 임의적 구금, 정치범 체포, 고문 등에 대한 북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지 속되고 있으며, 사법부는 독립적이지 않아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북한 정부는 북한 주민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고 있고 표현 및 언 론의 자유와 더불어 종교,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 다. 더불어 북한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정부는 주민들이 강제노동을 하도 록 일삼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 관한 연례 인권보고서의 내용이 매년 변함이 없 다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권침해 상황에 주의를 촉구하는데 한 가지 중요한 발전은 올해 3월에 유엔인권 이사회가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를 설립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정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개선에 관한 사항들을 적극 적으로 지지해왔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두 기관들은 인권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매년 통과시켜 왔으며, 마침내 유엔은 인권침해 사건들에 관한 조사 및 보고를 담당하는 특별조사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지난 10월, 마르주키다루스만(Marzuki Darusman)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유엔 총 회 보고에서 우리의 마음을 근심케하는 9가지 패턴을 규명했습니다. 식량을 구할 수단, 삶을 추구할 권리, 고문, 임의적 구금, 이동의 자유에 관한 침해 등이 포함되 어 있습니다. 2004년부터 나온 북한에 대한 유엔 보고서와 결의안을 모두 포괄적으 로 검토한 후에, 다루스만 보고관은 조사를 위한 기구를 만들 것을 촉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1월,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또한 북한 인 권 침해에 관한 조사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조사위원회의 설립을 위한 결의안을 지지했으며, 이는 미국, 유럽 연합에 의해 제안되고 한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결의안은 조사위원회가 "심각하 고, 만연하게 퍼진 그리고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인권 침해 상황"을 조사할 것을 지 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초,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은 위원회 구성원을 발표했습니다. 위원장직을 맡 게 될 호주 출신 마이클 커비 전 대법관, 세르비아 출신 소냐 비세르코 발칸 인권 18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운동가, 그리고 인도네시아 전 검찰총장 출신 마주르키 다루스만 특별보고관입니다. 우리는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조사위원회의 중요한 업무 수행을 지원할 것이며, 조 사위원회가 2014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제출할 권고안도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조사위원회 활동에 협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을 비판하고 조사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의 지난 3건의 결의안은 다수의 지 지를 얻어 공식적인 표결 없이 채택 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 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며 북한 주민들의 여건 개선을 위한 압력도 증가할 것 입니다. 지금도 통일연구원과 북한인권정보센터와 같은 한국의 연구소들과 비정부기구들은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가장 경비가 삼엄한 북한의 14호 수용 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정치범인 신동혁 씨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블레인 하든 의 저서 "14호 수용소 탈출" 출간으로 국제사회의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인식 이 지난해에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 속편에는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 즉 위성사진으로 얻은 정보뿐만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북한 난민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저서와 기타 보고서에 따르면 10만에서 20만 명의 북한인들이 북한 전역에 걸쳐 있는 정치범 수용소와 구금시설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인권 침해 가 지속되고 있으며 다수 수용자는 생존의 위협을 받습니다. 북한 문제 선택의 문제 북한은 자원을 투자해서 주민들에게 식량과 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고립의 길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조치를 포함하여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의미 있 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환영합니다. 북한이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신의를 가 지고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가시적인 혜택 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밝혀왔듯이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습니다. 단, 북한 이 의지를 가지고 구체적 행동을 취하여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의 의무와 약속을 지 켜야만 합니다. 물론, 최근 10개월간의 상황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대화 재개를 위 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1월 미얀마에서 19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했던 연설에서 이러한 내용이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을 겨냥한 부문에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평화와 발전의 길을 선택하 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미국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종국적으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며, 6자회담의 결과인 2005년 9.19 공 동성명의 약속을 준수하고 관련 UN안보리 결의안에 따르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기존 핵프로그램도 폐기해야 합니다. 북한은 또한 인권 침 해도 시정해야 합니다. 북한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명백합니다. 인적자원에 투자하고 구체적 조치를 취해 비핵화로 나아간다면 평화, 번영,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이 가능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과 북한 주민의 안녕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 는 미국의 법치주의와 개인의 권리 존중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20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일본 UN담당대사 연설문 준 신미 (Jun Shimmi) 일본 UN담당대사 먼저, 본 회의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보여주시는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 UN 담당 대사로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주로 말씀 드리고 싶은 내용은 지난 3 월 제네바에서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에 의해 설립된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 (Commission of Inquiry, COI)에 관한 것입니다. 일본은 COI 설립이 북한 인권문제 를 다루는데 있어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로버트 킹(Robert R. King) 특사님이 연설문에서 언급했듯이 COI는 EU와 일본의 공동 후원 아래 미국과 대한 민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지에 힘입어 설립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어떤 것일까요? 이 COI는 UN인권이사회 결의안 의 권한 하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COI는 국제사회를 대신하여 북한의 조 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 할 권한을 위임 받은 것과 같습 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COI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있어 유엔인권이사회의 가장 강력한 장치 및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이미 유엔북한특별보고관인 마르주끼 다루스만(Marzuki Darusman)을 포함한 세 명의 조사위원이 인권이사회 의장에 의 해 임명되었습니다. 이 COI의 위임기간은 1년이며, 북한 인권에 관한 모든 최신 사 항들을 보고할 것을 요청 받게 되어 2013년 9월에 제네바에서 있을 제 24차 유엔인 권이사회와 가을에 뉴욕에서 열릴 제 68차 유엔총회에서 구두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 후 서면 보고서를 2014년 3월 제 25차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제출할 예정 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러한 COI를 설립한 것 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유사한 COI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리비아 와 시리아에서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설명 드리고 싶은 점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설립 이유와 방법에 대한 배경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EU와 일본은 매년 다른 두 무대에 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 중 하나는 3월 제네바에서 23차 세션을 마무리한 유엔인권이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올해 가을 뉴욕에서 다음 회의를 열 예 정인 유엔총회 제 3위원회입니다. 매년 이 두 경우에 있어 EU와 일본은 북한의 인 권 상황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21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제네바에 위치한 인권이사회 같은 경우는 6번 연속으로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또한 유엔총회의 경우는 8년 전부터 8번 연속으로 결의안이 채택되었습니다. 결의 안을 매년 2회씩 채택함으로써 우리와 더불어 국제사회와 유엔은 북한과 국제사회 에 북한인권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메시지는 인권문제 해결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북한 지도자에게 전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언급한 결의안들은 매년 다수의 유엔 회원국들에 의해 채택되었을 뿐 아니라 찬성에 표를 던지는 국가 수가 점점 더 증가해 왔습니 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작년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한인권 결의안이 컨센서스로 채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투표 없이 채택된 것입니다. 이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매우 강력하고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합니 다. 그렇지만, 우리가 매년 이러한 발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인권 상 황에 대한 어떠한 개선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마르주끼 다루스만 같 은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의 권고를 고려하여 더욱 강력한 체계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COI를 설립해야 할까요? COI 가 설립되면 북한인권 조사를 위한 더욱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받게 됩니다. 이 를 통해 우리는 북한 내 인권 상황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조사가 이루어 질 수 있 다는 점을 바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앞서 언급했듯이, COI 설립은 국제사회 전체, 즉 유엔, 유엔 회원국들, 그 리고 시민사회에 의해 합의되고 표명된 새로운 조치입니다. 사실상 많은 비정부기 구와 비영리기구들 또한 COI 설립을 지지하였습니다. 둘째로, COI는 조사위원들이 가진 전문성을 발휘하여 북한인권에 대해 매우 포괄적인 조사를 할 것으로 기대됩 니다. 세 번째로, COI는 과거에 리비아, 시리아, 코트디부아르 등의 경우에서처럼 설립된 바 있습니다. 허나 리비아의 경우처럼 인권이 특정 시기 심각하게 훼손되었 을 경우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인권 상황의 악화가 몇 십 년 전부 터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COI 설립은 꽤 독특한 것으로 과거 다른 나라들을 위해 설립됐던 COI에 비해 다른 임무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COI가 이런 임무를 달성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를 이루기 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한이 위원회의 방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인 마르주끼 다루스만도 북한 측의 방문 허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과거 리비아와 시리아의 경우를 포함한 많은 경우에 있어서는 자국 국가의 수도에 위원회의 방문이 허용되어 회의를 갖기 도 했습니다. 북한 또한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이와 같이 위원회의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위원회가 일본, 한국, 중국과 같은 관계국을 방문 하여 북한인권 사안에 대해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고 직접적인 정보를 확보하여야 22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합니다. 일본은 한시라도 빨리 COI 조사위원들이 도쿄에 방문하여 정부 관료들 및 납치피해자들의 가족들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제 발언을 마치기 전에 납치 문제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많 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많은 일본인이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 코다 메구미(Megumi Yokota) 사건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그녀는 일본 서 해안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될 당시 겨우 13살이었습니다. 벌써 30~40년 전 이야기 입니다. 우린 그녀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지만 일본에 돌아오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녀의 부모들은 이미 70~80대 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딸을 꼭 안아보는 것입니다. 납치는 일본에 해당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저희 가 알기로는 북한이 한국, 태국, 루마니아와 레바논을 비롯한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 을 납치하였습니다. 이런 납치 문제는 COI가 1년 동안 조사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인권 침해 사안 중 하나입니다. COI의 원활한 운영 및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 다. 모든 유엔 회원국들을 비롯하여, 시민사회, 비정부기구, 학계는 이번 일 년 동안 COI의 성공적인 활동을 위해 상호협력 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3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덴마크 인권대사 연설문 우페 울페첼 (Uffe Wolffhechel) 덴마크 인권대사 덴마크는 유럽의회(EU) 및 일본과 더불어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인권이사회 결의 안을 지지하는 국가들 중 하나이며 이 결의안이 통과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 입니다. 이 결의안은 북한 내에서 행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깊은 고민 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어진 4차례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의 발사와 같은 북한 정부의 도발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도발을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 지만, 북한 내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우리의 관심마저 여기에 편향되어서는 안 된 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국제회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실태에 대 한 국제적인 관심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발단입니다. 북한 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탄압이 심한 정권 중 하나입니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이슈이기에 이는 국제사회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2012년에 북 한인권 특별보고관은 특정한 환경 하에서 행해지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구금과 심각한 자유의 침해는 국제법에 위반되며, 이는 반인도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 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인권침해는 전적으로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위협입니다. 더불어 북한과 같은 경우에는 인류의 발전에 심각하며 극복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될 수 있 습니다. 이러한 인권침해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더 나아가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심각한 반인도적 재앙을 막기 위해 중단되어야 합니다. 시민 권이나 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또한 북한 주민과 북한 정 권 사이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주민의 복지를 보장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며, 이는 주민 모두의 인권을 존중했을 때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 고 법에 의한 지배를 도입할 때에 비로소 정부는 국가의 인적 자산을 해방시키며 발전과 번영의 기로를 밟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또한 식량에 대한 권리 및 의료에 대한 권리 등과 같은 개개인의 기본적인 필요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식량과 더불어 다른 지원을 주민들에게 배급하지 24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않고 군 물자에 쏟아 붓는 행위는 북한주민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권리 를 명백하게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북한 정부는 북한 주민을 심각한 가난과 굶주림 을 겪도록 방치한 점에 있어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 정부는 발전을 위한 환경을 마련하는데 한 국가의 정부로서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이 아닙니다. 나아가 경제 발전의 환경을 외부에서 마련하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발전의 발판은 국가 내에 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인적 자원을 해방시키려는 정치적인 의지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정책들로 이루어집니다. 비자유적 탄압으로 인한 반인도적 재 앙을 야기하는 대신 정부는 주민의 생활 실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이사회는 결의안을 통해 이 심각한 상황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안을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설립하여 북한 내에서 범해 지고 있는 중대하고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북한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 약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세히 조사함으로써 반인륜적 범죄를 야기할 수 있는 침해실태에 대해 북한 정부가 완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저는 북한 정부가 조사위 원회와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북한 정부가 북한 주민의 번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COI와 협력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는 인권조사위원회가 임기 동안 조사해야 할 9개의 인권침 해 분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며 북한 내에 심각한 침해상황 조사를 위한 이 조사위원회를 덴마크는 적극 환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25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주한 호주대사 연설문 빌 패터슨 (Bill Paterson) 주한 호주대사 먼저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북한인권정보센터에 감사드리고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하고 있는 소중한 일에 대해 격려를 보냅니다. 저 는 한국에 온지 4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분들에게는 김영호 인권대사와 패널리스트 분들의 발표, 그리고 여기에 참석하신 관계자분들의 식견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번 회의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호주의 시각입니 다. 미국과 한국의 대사들과는 다르게, 저는 주한 호주 대사로서의 직분을 수행함과 동시에,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직분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비록 평양에 호주 대 사관이 개설되어 있거나, 또 반대로 캔버라에 북한 대사관이 있지는 않지만 호주는 북한과 1974년부터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북한과의 계속된 관계와 이들의 인권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호주는 북 한 문제에 대해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판사께서 유엔 인권위원회의 조사위원회 (UN Human Rights Council s Commission of Inquiry) 의장으로 선출되어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조사하게 된 것에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커비 판 사는 전직 호주 고등법원 판사 출신으로 활발한 활동을 통해 대단한 존경을 한 몸 에 받고 계신 분입니다. 1992에서 1996년까지, UN 총장의 캄보디아 인권특별대사를 역임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법조계에서의 경력과 UN관련기관 활동은 커비 판사가 이 자리에 적임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호주는 이 조사위 원회가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상황 및 성격에 대해 명확한 설명들을 효과적으로 제 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카(Carr) 호주 외교부 장관께서도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지대한 관심 을 가져오셨고, 호주가 유럽 및 일본과 함께 이번 조사위원회 설립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마르주끼 다루스만(Marzuki Darusman) 유엔 인권특별조사위원의 방문을 거절한 것을 포함, 유엔의 인권제도에 대해 건설 적으로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우려해왔습니다. 커비 판사는 공 26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정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를 가장 우선 시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점에 한 치의 의심 도 없으며, 북한이 커비 판사의 방문을 허락해 줄 것을 희망합니다. 저도 대사 신임 장을 제출하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 북한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그 때에 북한 정부 당국이 다루스만 유엔 특별 조사위원이나 커비 판사에게 협조할 것을 강하게 로비 할 것입니다. 이제 북한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아시다시 피, 조사위원회의 권한은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고 이러한 침 해의 내용에는 오늘 우리가 이미 이야기한, 식량권의 침해, 정치범수용소 관련 인권 침해, 고문과 비인격적 처우, 자의적 구금, 생명권 침해, 거주이전의 자유, 강제 실 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침해 상황에 대해 실체적 증거가 거의 없 는 상황이지만, 다른 지역 파트너들과 함께, 호주는 탈북자들의 충격적 증언과 보고 서의 내용들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우려해 왔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받는 데 에는 본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한국 소재의 기관들이 가장 중 요한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유엔 특별 조사관에 따르면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상 황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와 같은 기본 자유에 대한 제도적 이고 일상적인 침해를 비롯하여, 과도한 고문, 공개처형, 연좌제, 열악한 환경에서의 강제노동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정부는 한국 전쟁 중 발생한 전쟁포로 와 실종 한국인에 대해 온전히 해명한 바가 없으며,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다수의 일본 시민을 납치한 적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한국과 일본정부가 북한 당국을 향해 한국인 및 일본인을 포함 모든 외국인 납치자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것과 그들을 석방할 것에 대한 요구를 지지합니다. 우 리는 북한이 유엔 인권 특별 조사관의 권고, 즉 이산가족 상봉, 공권력의 자의적 결 정에 대한 철회, 그리고 사형제 폐지 등을 따를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새 로운 정권 이양이 국제 사회가 우려하는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개선과 같은 변화 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엔 인권 특별 조사관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호주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인권 문제를 포함해 모든 문제를 논의한다는 원칙하에 북한과 대화를 해 왔습니다. 북한과의 정 기적인 교류에서 우리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 왔고, 앞 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적 관계를 특별한 이슈들에 대 한 우려를 표명하는 데에 활용해 왔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 이전에 부임했 던 전임대사들은 북한에 사형제 폐지 및 사형집행의 유예, 강제 노동에 관한 국제 기본법에 반하는 만연한 노동 교화형 폐지, 여성, 아동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처우 개선,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식량 부족 해결,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 교 육 강화, 사법제도 개선, 조사나 구금 시에 고문이나 다른 형태의 반인권적 처벌 금 27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지, 적법절차 및 항소제도의 강화를 촉구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국제회의 등을 통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엔 총회 북한 인권법 만장일치 결의라 는 성과는 국제적 행동 마련을 위한 더 광범위한 근간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호 주는 특히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기아와 영양실조 상태를 우려하여 아동, 노약자, 임산부, 수유부와 같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국제 인도적 원조 활동에 매년 평균 500만 달러(약 60억)를 꾸준히 지원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원조 활동은 세계식량계획(The World Food Program), 유엔아동기금(UNICEF), 적십자사 (The Red Cross) 등의 유엔기구와 비정부기구를 통하여 엄격히 이루어지고 있습니 다. 이러한 원조는 철저한 모니터링과 확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며, 매우 심한 영 양실조 환자의 치료와 영양 보충을 위한 치료제와 깨끗한 식수 등이 포함되어 있습 니다. 식량분배 원조 모니터링 및 수혜자 면담을 위한 방북이 허용됨에 따라, 호주 정부는 대북 원조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국민을 먹여 살릴 제 일의 책임은 북한정부에 있다는 데에 유엔 특별 조 사관과 뜻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그와 더불어 북한 정부가 식량 생산과 분배에 대 한 기존의 잘못된 정책을 고치기 위한 모든 필요한 노력을 할 것과 더 많은 자원을 군사용 대신 농업에 투자할 것을 촉구합니다. 앞으로 만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한반도의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면, 호주도 평양과의 관계 개 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북한이 변화하고, 경 제를 개방하며, 자국민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것을 촉구할 것 입니다. 북한이 우리 와 건설적으로 교류한다면, 호주는 북한이 다시금 인권을 수호하고 개선시키는 국 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8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한국 인권대사 연설문 김영호 한국 인권대사 오늘 외국에서 참석해 주신 대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늘 이 회 의를 주최하신 북한인권정보센터, 그리고 그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한국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권단체 입니다. 독일이 통일하기 전에 서독정부가 동독 내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 기 위해서 기록보존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북한 내 부의 침해사례를 수집할 수 있는 정부 산하의 기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인권정 보센터가 민간 기구로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른 대사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2만 5천명의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습니 다. 인권정보센터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 탈북자분들의 정보가 상당부분 수집되어 있습니다. 이 데이터가 북한인권 문제를 지적하고 향후 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중 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이 회의를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주최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 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UN인권이사회가 인권조사위원회를 결성하기로 결 정했습니다. 이 조사위원회 팀이 구성되었기 때문에 7월에는 한국에 조사를 하러 들어올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긴밀히 협조해서 조사에 차질이 없도록 저희들이 만반에 노력을 하겠다는 것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정 부도 인권이라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서 이 문제는 다른 문제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써 존중되고 추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 번 UN인권이사회에서 사실조사위원회가 발의되는데 공동 발의국으로 참여했으며 이 결의안을 적극 지지했음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볼 때 이 조사위원회 구성은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사회의 흐름이 한 국에도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채택해야 된다는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 각됩니다.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라는 것은 1975년 유럽의 헬싱키협약의 모델을 기초로 한 새로운 모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1975년 발효된 헬싱키 협약은 안보, 경제협력, 인권문제를 삼위일체형으로 묶어서 미국, 캐나다, 소련 등 전 세계 35개 국가들이 합의한 사항이었습니다. 이 헬싱키 조약은 소련과 동구권 내에 인권을 개 선하고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한반도형 헬 29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싱키 프로세스라고 하는 것이 이와 마찬가지로 북핵문제, 경제협력 이 두 문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북한인권 문제도 함께 다루어서 북핵, 경제협력, 북한인권 이 3자 를 삼위일체로 다룸으로 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인권 개선, 동북아 질서의 평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이번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구성이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의 작동을 통해서 북한인권 문제 개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정부는 UN 인권조사위원회와 적극적으 로 협조를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북한의 인권 문제 개선이 한반도형 신뢰 프로세스에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북한인권상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새로 들어서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도 선군, 둘째도 선군, 셋째도 선군 이라는 이러한 정책을 견제해 나가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선군정치라고 하는 것 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원을 군사력과 핵개발에 우선적으로 배분하겠다고 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군정치라고 하는 것은 서구사회 개념으로 본다 고 한다면 상시적인 군사적 계엄 상태로 저희들이 봐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선군 정치 하에서 북한의 인권 개선에의 의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 에 대해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 는 바입니다. 로버트 킹(Robert R. King) 미국 북한인권대사님께서도 언급 하신 것처럼 '14호 수 용소 탈출(원제: Escape from Camp 14)' 이라고 하는 신동혁씨의 정치범 수용소 탈 출 과정에 대해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게 된다면 과연 21세기에 이러한 곳 이 존재할 수 있는가하며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존재는 북한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로써 공포의 정치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우선적으로 북한주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더불어 공포정치의 핵심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학자가 이야기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공산체제는 인공위성의 개발, 발달로 인해서 더 이상 유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인공위성의 발달은 공산세계의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인공위성의 개발로 인해 북한이 정치 범수용소를 운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외부세계로부터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워싱턴 소재 북한인권위원회가 최근 발행한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글로브라는 상업 인공위성 회사와 공조를 해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사진을 찍은 정보가 있습니다. 수용소 건물, 고문하는 장소, 수용소 내 공장 등의 사진들이 30
북한인권 개선과 활동방향 만천하에 공개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더 이상 은폐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다음 사항은 국제사회가 가진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과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제가 인권대사로서 미국, 유럽 여러 국제사회에 다니면서 느낀 점은 이런 나라들에 비해 한국 사회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점입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님 이 언급하신 것처럼 현재 국회에는 북한인권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 있습니다. 금년 에는 여야가 합의해서 북한 인권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북한인권 문제를 위한 법 적인 인프라가 한국 내에서도 갖추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북한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 다. 이렇듯 우리 정부도 북한 내의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조 해나감과 동시에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 며 그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정부와 국제사회, 그리고 국내 외의 NGO들이 모두 이번 회의의 주제처럼 연대해서 이 실 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31
제 2부 :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 : 전문가 그룹 토론 - 북한인권 개선 국제협력 방안 - 사회 : 박흥순(선문대 교수)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토마스 W. 스미스 South Florida St. Petersburg 대학 교수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가 주는 교훈 - 베른하르트 젤리거 (Dr. Bernhard Seliger)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들어가며 지난 몇 년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한국으로 대거 유입된 탈북자들에 의해 촉 발되었다. 또한 데탕트 정책과 인권 문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정 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 그것이 남북 관계 가 악화된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또 다른 두 가지 이유로는 무상 원조의 감소와 비핵화 요구가 있다.)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는 다른 거의 모든 남북관계 프로젝트 의 잇따른 감소를 야기했다. 통일 이전의 동서독 간에도 인권 정책과 국교 회복간 의 유사한 긴장 관계가 있었다. 서독의 법무부 소속 중앙기록보존소 (잘츠기터 기록 보존소)는 동독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가해자들에게는 정의 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권 침해를 멈추는 데 기여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의 경험이 한국의 정책 과정에 주는 교훈에 대해 논의하고 자 한다. 1. 서 론 한국은 북한의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는 다 소 낙관적이며 다른 방식으로 질문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 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북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어려운 현실과 지난 몇 년간의 대화 경로의 차단,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최소한의 협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 관계성을 고려할 때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한국의 상 황과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는 통일 이전의 독일의 상황일 것이다. 인권 침 해의 정도는 다르지만, 인권 침해로 발생한 주요 문제는 비슷하다. 1960년 후반 동 독에서의 데탕트 정책은 적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인권 문제는 국교 회복에 있어서 다소 껄끄러운 문제처럼 보였다. 서독의 잘츠기터 소재 법무부 소속 중앙기록보존소 (이하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그 영향력과 개념적 수 준에서 서독의 인권 정책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이 글은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35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의 접근 방법과 북한 인권을 위한 한국 NGO들의 접근 방식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 한국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이 정책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부는 이에 적극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관련 NGO들을 후원하는 것으 로 충분한 것일까? 두 번째 부분에서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역사, 조직, 성과를 설명할 것이다. 잘츠기터 기록보존소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세 번째 부분에서 논의 되고 네 번째 부분에서는 결론을 맺을 것이다. 2. 동독의 인권과 서독의 인권 정책 및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 1945년 세계 2차 대전의 종식 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4개 관 할 지역으로 나뉘었다. 독일의 대략 1/3의 영토가 폴란드와 소련의 관할 하에 놓이 게 되었다. 1949년에 소련 관할 지역은 독일 민주 공화국 또는 동독이 되었고 다른 세 관할 지역은 서독이 되었다. 소련 관할 시기 동안 점령군은 전쟁 범죄로 오명 받지 않은 더 나은 독일로서 신사회주의 제도의 정당성을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 했으나 한편으로 그러한 신사회주의 질서에서 비롯된 실제적 또는 잠재적 적에 대 항한 대대적인 인권침해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때때로 단순히 소속 계급에만 의존 해 결정되었으며 때로는 사회주의 제도에의 개인적 저항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 후에 Walter Ulbricht의 스탈린주의 독재정치로 이어진 혹독한 통치는 당시 일부 개 방되어 있던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의 점진적 인구 유출을 야기했다. 그 국경 지대 는 1952년까지 인구이동을 가능케 했으며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1961 년까지 열려있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국경개방지대를 통해 서독으로 달아났으 며 이는 전쟁 준비를 갖춘 동독정부에게는 더 큰 압박이 되었다. 1952년 이후, 11,000명 이상의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국경 지대로부터 옮겨졌고 여러 마 을과 도시는 반으로 나뉘어졌다. 또한, 사람들의 서독으로의 대량 탈출을 막기 위한 방어 공사가 처음에는 가시철사로, 후에는 내륙지역까지 뻗는 정교한 국경통제시스 템으로 설치되었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난민의 수는 몇 천 명으로 급격히 감소 했으며 수백 명의 난민들은 국경 보초들의 총에 맞거나 지뢰 혹은 국경선에 부착된 자동발사장치로 인해 죽었다. 국경 지대가 곧 죽음의 구역이 된 것이었다. 국경 지 대 방어시설이 설치되지 않아있던 초기 몇 년 동안은 사람들이나 각종 기관이 과감 히 (때로는 돈을 목적으로) 울타리 밑 터널이나 밀출국을 통해 탈주자들을 도우려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자체가 위험했으며 도와주는 사람들마저도 감옥에 수감 되거나 총살되었다 (Detjen 2005).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족은 노동조건에 관한 파업이 일어난 1953년 6월 17일 의 반란에서 명백히 드러나는데 이는 곧 소련산 탱크의 도움으로만 진압이 가능하 며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대규모 혁명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에 정치적 박해와 정 치적 이유로의 구금과 고문이 대량으로 발생했다. 동독은 헌법에 인간의 기본권을 36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표기하는 식으로 표면상으로는 법치민주주의국가의 휘장을 형성시켰지만 이러한 규 칙들은 사회주의 제도를 지키려하며 온전히 정치적으로만 운영된 사법제도에 의해 서는 전혀 중히 여겨지지 않았다. 1961년 8월 13일, 동독은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장벽을 짓기 시작했다. 독일처럼 4 분할된 베를린은 단순히 지하철을 통해 서독으로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능케 한 마 지막 지점이었다. 1961년 8월, 동독정부로서는 이 탈출구가 가당치 않게 되었다. 장 벽이 세워지기 시작한 초기 시점부터 이미 탈출을 갈구했던 많은 사람들은 실패하 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도망치는 시민들과 군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1961년 9월 1일, 함부르크 도시의 당시 기독교민주주의연합(CDU) 회장인 Erik Blumenfeld는 영토권의 원칙에 의해서 다른 법정들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인권침해 사례를 맡는 특별한 기관을 설립 하자고 제안한 상태였다. 사흘 후, 다음 수상이자 신동방정책 (데탕트정책)의 설계자 가 되는 사회민주당 (SPD)의 Willy Brandt가 이 제안을 지지하며 나섰다. 베를린이 분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승인은 곧 서독의 대표 양당인 기독교 민주당과 사회 민주당이 새 기관의 설립을 위해서 합당됨을 의미했다. 1961년 8월 27일, 정부의 법 무장관회의는 그 기관이 동독경계선 부근 Lower Saxony의 잘츠기터 시에 설립될 것을 결정했다. 1961년 11월 24일, Friedrich Höse검사는 두 보조들과 이 새 잘츠기 터 기록보존소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그의 첫 업무는 서베를린 경찰에 의해 수집된 베를린 국경지대에서의 50건의 살인과 살인미수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독에서의 인권침해를 다루려는 열망은 오래된 것이었고 잘츠기터 기록보 존소 또한 자유 지향적 변호사들의 조사위원회라고 불리는 선구자가 있었다. 이들 은 동독에서의 인권침해 증거를 수집하는 변호사 연맹으로서 1950년대에 서베를린 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하는 약 오십만 명의 방문자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주기도 했 었다. 동독에서는 제1의 적으로 여겨지고 구성원들 또한 여러 번 살해의 위기를 겪 었던 이 조사위원회는 123,000명의 인권침해 혐의자들의 이름을 데이터뱅크에 수집 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렇게 대대적으로 관심 받은 인권침해 데이터뱅크를 통해 인 권침해를 사법기구의 보안담당자 각 개인의 수준에서 막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자 신들의 활동이 사회주의 정책으로 보호되고 가려진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눈에 띌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위원회의 첫 번째 목표가 기소보다는 동독에서의 인권침해 규제였지만 침해혐의자들이 서독으로 갔어야했던 몇몇 사례에서는 기소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었다. 조사위원회는 한 사례에서 강압과 강제허위진술 때문에 동독의 검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격분한 동독은 이 조사위원회를 "간첩 행위 의 중심"이라 불렀고 후에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에도 똑같은 오명을 뒤집어 씌웠다.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자체도 굉장히 작은 규모의 기관이었으며 몇 안 되는 직원들 37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의 대부분은 시간제 직원이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일정기 간의 다섯 명의 정규직 직원들이 생겨났다. 1980년대 후반,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연간 예산은 고작 250,000 마르크에 그쳤고 이는 국가의 인구 규모에 비추었을 때, 1/5는 연방전부로부터, 4/5는 주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이었다. 소규모기관으로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시중에서 취득가능한 인권침해 관련 정보에만 거의 의존했 다. 서독 국경 지대 경찰은 국경을 건너기 위한 잠재적 또는 확정된 시도 사례를 포함한 국경 상황에 대한 일일보고서를 해안, 북부, 중부, 남부의 네 가지 특수구역 에 따라 편찬했다. 언론과 방송매체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또 다른 중요한 정보 처였다. 이 두 정보처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목격자들 또한 직접 인터뷰되었다. 때로 는 서독 사법권으로 다른 사법 자료를 얻기도 했다. 동베를린의 유명한 Wolfgang Vogel박사의 사무소를 지정 사무소로 둔 서독법률사무소를 통해 동독의 유죄 판결 은 확정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동독 난민들 모두 기슨(Gießen)의 한 중심지로 모아졌다는 것인데 이는 탈북자들이 각종의 획일화된 조사를 받게 되는 한국의 하나원과 다를 바가 없다. 동독경계 부대(NVA Grenztruppe)에서 도망친 난 민들의 증언은 더욱 특별했다. 많은 사건들은 서독 쪽에서도 직접 관찰이 가능했듯 국경 지대의 정책 자체에서 초래된 것들이었다. 무시무시한 사건 중에는 시체 수 세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독 인권침해사례를 기록한 서독 당국 Erfassungsstelle Salzgitter의 표가 아래에서 보여 주듯 전체적으로 961명의 사망자들이 기록되었으나 보고되지 않은 사례들 또한 있 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많은 서독 사람들과 동독 국경경비대들이 경계 지역에서 죽기도 했다. 표1. 독일 국경 내 사망 건수 (출처: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1961년 8월 1961년 8월 총계 구분 이전 이후 (1989년 이후) 베를린 장벽/국경 16 239 255 독일 육지 내 국경 100 271 371 발트 해 지역 15 174 189 불가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접경선 3 41 44 기타 (비행기 공중납치, 밀수출, 운송로) 0 7 7 동독 국경경찰/부대 11 16 27 소련 탈선자 1 5 6 국경지대에서 총에 맞은 비행기들 14 3 17 총 합 160 756 916 그러나 이 정도의 사건을 훨씬 뛰어넘는 것은 동독에서의 정치적 기소였다. 총 사 38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건 수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1990년 6월 말까지 30,752건의 정치적 기소 가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에 등록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의 원천으로는 서양에서 온 방문객들과의 접촉을 통해 리더십에 대한 불쾌한 농담을 했다거나 동독을 떠나겠다 고 큰소리로 말했다는 등의 다양한 정치적 범죄가 있었다. 외부 인사나 언론인들에 게 정보를 주는 것, 출국허가를 요청하는 것(이론적으로 불법은 아니었다), 차나 집 에 "A" 사인 (예, 출국)을 붙이는 것, 동독의 정치적 기관들의 명성을 떨어뜨리거나 비웃는 것, 체제전복적인 선동을 호소하는 등 동독을 비판하는 것, 동독 탈출을 시 도하거나 인신매매에 가담하는 등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돕는 것 모두 심한 처벌의 대상이었다. 특히 Berlin-Hohenschönhausen에서와 같은 국가 안전을 맡는 감옥에서 학대는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었다. 이는 후에는 덜 육체적이지만 NKVD (KGB의 선구자)가 1949년까지 사용한 잔인한 방법보다 더 정교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1989년 이전부터 이미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에 수집된 증거는 이따금씩 법정에서 서독사법관 권할 하에 들어오게 된 인권침해자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사용되곤 했었다. 하지만 경계지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조차도 피고인 없이는 재판이 열리 지 않았다. 이는 첫째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주된 목적이 '복수'가 아닌 '저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이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방식 배후에 있던 정치적 현실주의를 보여준다.(가치 없는 유죄 판결을 고안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에는 이해 관계가 없었다) 상황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지면서 바뀌었다. 장벽이 무너진 후의 6개월 동안 동독인들은 여전히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사법제도의 정당함에 의심을 품고 있었으며 더 많이 속출하는 인권유린 목격자들은 그 보호책으로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에 그들이 목격한 증거를 제시했다. 1989년 이후,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새로운 민주주의 동독에서와 1990년 10월부 터는 통일독일에서의 인권유린사건을 기소하는 데에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다. 동독 정부의 부정행위를 기소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칙이 적 용되었다. 동독이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보호조약을 지지했었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유린의 경우에는 동독의 법률 또는 정치적 권한에 상관없이 기소되었으나 기본 적인 기소 방침은 기득권이나 "승자의 정의"의 주장을 방지하는 동독의 형법전이었 다. 이는 공소시효 (두 번에 걸친 사회주의 제도로 인한 기소가 불가능했었기 때문 에)와 더불어 기소건수의 강한 절제로 이어졌다. 어쨌거나 약 100,000건의 예심절차가 간첩활동 없이 일어났다. 그 중에 1,286건만 이 형법절차가 되었고 이 중 750건은 최종선고로 이어졌다. 최종선고로 이어진 사 건 중 40건은 보호관찰이 없는 구류판결이었다 (Eppelmann 2007, p.4). 1,286개의 형법절차건의 36.6%는 정의의 왜곡, 23.9%는 국경지대상황, 13.9%는 비밀정책에 따 른 불법행위, 7.7%는 수감자 학대, 6.5%는 선거사기와 관련된 것이었고 이 외의 사 39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건으로는 (스포츠) 도핑, 경제적 범죄와 탄핵 등이 있었다(Marxen 외, p.28). 석방률 은 30% 이상으로 유난히 높았으며 비밀정책 부정행위와 같은 몇몇 사례에서는 47% 이상이었다(Marxen 외. p.40). 이는 공식적으로 많은 인권, 사회질서적 형법에도 불 구하고 정의를 문서로 규정하기보다 정치적 도구로만 비추던 체제에 법규를 적용함 이 어려움을 보여준다. 투옥된 범죄자들 중의 8명 (또는 1.5%)만이 5-10년의 유기형 에 처해졌으며 나머지는 그 미만이었다. 간첩행위에 있어서 1997년까지는 7,099명만 기소되었고 그들 중 4,171명은 동독시민들이었다 (Marxen 외. p.49). 그러나 12명의 동독시민들과 19명의 동독 외 시민들, 주로 서독인들만 1-2년의 유기형에 처해졌다. 물론 이러한 수치에 "승자의 정의"가 드러나는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다. 반대로, 특히 대규모의 부정의를 꾀하는 지배계층을 기소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웠으며 이는 대어보다는 피라미들만 잡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전혀 의도치 않았더라도, 이는 법률적으로 공정한 절차의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보복 형태의 새로운 정치적 기소의 위험이었다. 대체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유죄판결의 횟수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유일한 자료처였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기록보존소를 유지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었을까? 3. 인권 기록보존소의 잠재적 영향에 관한 잘츠기터의 교훈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효과와 영향을 고려했을 때, 세 가지 주된 교훈이 있다. 필 자가 우려하는 바가 있다면 한 국가로부터의 교훈을 다른 나라에 적용시키기는 쉽 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 국을 위한 독일의 모든 충고는 이러한 어려움이 있음을 전제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나 논쟁지역에 정책적 조언을 할 때는 나의 이러한 조 심스러운 접근법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 점을 고려하며 나는 한국의 사례와 관련 있을 법한 세 가지 교훈을 추려내겠다. 첫째, 잘츠기터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당파심이 강한 프로젝트로 여겨지지 않았다. 뒤늦게 독일의 데탕트정책을 설립한 Willy Brandt가 이 프로젝트의 초기 후원자들 중 한 명이었다. 이는 곧 승인 과정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더욱 뚜렷하고 논쟁의 여 지가 없는 방법을 보여주고 편파적인 논쟁으로부터 피해를 면하게끔 했다. 또한 이 는 당초 동독으로 하여금 "서쪽의 파시스트 보복주의 세력"의 프로젝트라는 명목 하 에 이를 공격하는 것을 어렵게끔 했으며 이 프로젝트는 당시 서독 반대파의 지지 또 한 얻고 있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물론 나는 우리가 인권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국회의 좌파가 "파울"을 외치고 인도주의적 지원의 문제 가 제기되었을 때 우파가 "파울"을 외치는 상황에 더 이상 놓여있지 않음을 행복하 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반작용은 여전히 작동한다. 애석하게도, 40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인권행위와 인권 데이터뱅크 프로젝트에 관한 공식적인 지지는 암묵적으로든 공개적 으로든 초당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많은 정부 기관들이 각자의 인권 데이터뱅크 를 얻으려고 한 노력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해 쏟은 많은 자원) 또한 불필요한 관료 적 내부 싸움 밖에는 맺은 결실이 없다. 이러한 이슈를 가지고 수년간 일 해온 한 비정부기관(NGO)과의 긴밀한 협력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 잘츠기터의 영향은 즉각적이었으며 이는 부정적인 의견과 기록보존소를 없 애기 위해 동독에 의해 사용된 출처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정치적 효과는 Erich Honecker의 인지도 높은 "게라(Gera) 요구사항"에의 포함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회주의통합당(동독의 공산당)의 서기장이던 호네커는 1980년 10월 13일, 동독의 게라(Gera) 마을에서 독일 분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네 가지 사안을 제기했다. 이들은 Elbe강의 경계선 (동독에 의하면 이는 서독이 해석한 동쪽 경계가 아닌 강의 중간에 있었어야 한다),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폐쇄, 동독 시민권의 개별적 인정과 외교대표부의 완전한 대사관으로의 변형이었다. 그러나 이 러한 요구들은 서독헌법에, 즉, 모든 독일인들에게 독일 시민권을 규정화하는 기본 법에 어긋나는 것들이었고 서독은 이 요구들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 정부가 바뀐 1981년, 반대당인 사회민주당에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를 폐쇄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특히나 독일의 데탕트 정책인 "동방정책"과 연관된 인사들 사이에서 더 심했다. 물론 사회민주당 통치 하의 몇몇 주는 1988년에 잘츠기터 기 록보존소에 내던 기금을 멈추었고, 부끄럽게도 1989년 이후, 그들이 비위맞추던 사 회주의 체제는 급작스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몇몇 주류의 사회민주당원들은 그들의 이러한 결정을 후회했다. 이는 결국 인권 투쟁의 통합을 보존하는 것 (예를 들어 인권의 보편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러한 기록보존소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 는 요점 중 하나인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정당정치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 간 외면적인 호소력을 거의 잃게 된다. 셋째, 잘츠기터 기록보존소의 가장 큰 효과는 그것이 설립된 공식적 목적, 즉, 인 권문제의 법률적 해결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것의 막대한 실제 성과는 기록보존소 가 사람들의 자유, 자유로운 이동, 감옥에서의 기본적 인권 환경에 대한 요구를 다 루는 데 있어서 수천 명의 교도관들, 국경군인들과 동독의 일반 공무원들에게 가한 잠재적인 규제였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두드러지게 심 각한 인권유린 사건을 지적함으로써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노력했다. 현 존 29년 동안 1,000명 이상의 독일과 국제방송 언론인들이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를 방문했는데 동독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동독의 제일당 신문인 "Neues Deutschland"와 같은 동독매체에의 잦은 공격에 소련의 "Izvestija"와 같은 언론사도 가담했다. 또한, 잘츠기터 기록보존소는 설립 초기 때부터도 동독비밀경찰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직원에 대한 정보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서독에서 41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전쟁범죄 대항단체를 만들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잘츠기터 기록보존소가 보복 의 도구로 전락되기보다 인권유린을 막으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미디어 전략이 필요 했다 (Sauer/Plumeyer 1991, p.235-236). 더불어, 엄밀히 말해,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는 동독 탈출을 고려하는 수천 명의 불만족 시민들이나 적은 수의 공개적 반대세력 과 같은 동독의 반대파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희망이었다. 간수들, 국경 수비대 군 인들, 재판관을 포함한 기타 공무원들 또한 인권유린 사건을 기록하는 기관이 있으 며, 이에 따른 응보의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데이터 사용의 실 제 결과는 다소 대수롭지 않았지만 잘츠기터의 존재 자체 때문에 전혀 일어나지 않 은 수천 개의 사건들이 있었다. 이는 결국 북한의 반체제자들과 정부와 충돌하는 사람들을 미래뿐만 아닌 현재에도 돕기 위한 궁극적인 기록보존소 사례인 것이다. 국가의 조직적 답변이 아닌 인권유린 사례에 가담된 한 개인의 답변으로서 (이러한 기록보존소 설립은) 단순한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고 인권데이터 수집에 널리 알려질 지도 모른다. 4. 결 론 : 인권을 지지하는 현재, 남북통일로 향하는 미래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앞장섰던 이들이 한국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 들이었다는 것은 다소 비극적인 일이다. 미국에서 통과된 2004년의 북한인권법은 정치적으로는 논란이 있었지만 인권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데에는 중요한 일이었 다. 반면, 한국의 인권위원회들은 최근까지도 북한에 대해서는 불길한 침묵을 유지 했었다. 신동혁의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책이 덴마크와 같은 유럽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독일에서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반면 한국에서는 판매가 저조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인권정책도 지난 몇 년간 크게 향상되었으며 이는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특히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면밀하고 초당적인 연 구와 업적과 더불어 정부의 부분적 노력과 북한의 인권수호를 지지하는 많은 중요 국회의원들 또한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이러한 일들은 알려지지 않은 북 ( 北 )의 인권 상황에 있어서 중요할 수 있으며, 남북간 균열의 잠재적 해결뿐 아니라 통일 이후 남한사람들이 북한 이웃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인 권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침묵하면서 시 간이 흐를수록 인권유린사태가 잊히기를 바라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적 영향 뿐만 아니라 국가 대대적으로도 위험한 생각이다. 인권기록보존소가 기적적으로 심 각한 인권침해사태를 이겨내지는 못하더라도 한국 측에서 인권정책을 지원하는 데 에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그러한 기관을 직접 운영할 수 없다면 그 보다는 덜 효율적이더라도 현존하는 NGO들의 업무방식, 여기서는 즉, NKDB의 업 무를 지원하는 것이 대안책일 것이다. 두 가지 방법 간의 조율과 협력이 가장 효율 적일 것이다. 이는 데탕트정책의 대체가 아닌, 이웃을 대하는 부가적 도구 (또는, 헬 42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가 당면한 과제 싱키 과정과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의 말을 빌렸을 때 "세번째 바구니")가 되어야할 것이다. 적합하게 사용될 시, 이는 현존하는 협력정책을 강화시키고 북한이 협력하 지 못하게 막지 않으면서 북( 北 )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43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참 고 문 헌 Ansorg, Leonore, Politische Häftlinge im Strafvollzug der DDR. Die Strafvollzugsanstalt Brandenburg (Political prisoners in the East German penal system. The penal institution Brandenburg), (Berlin: Metropol-Verlag, 2005). Detjen, Marion: Ein Loch in der Mauer. Die Geschichte der Fluchthilfe im geteilten Deutschland 1961 1989. (München: Siedler, 2005). Eppelmann, Rainer, Zum Geleit (Foreword), in: Marxen, Klaus Gerhard Werle Petra Schäfter 2007. Die Strafverfolgung von DDR-Unrecht, Daten und Fakten (The prosecution of GDR injustice, data and facts), (Berlin: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Stiftung Aufarbeitung, 2007), pp. 3-4. Fricke, Karl Wilhelm. Politik und Justizin der DDR. Zur Geschichte der politischen Verfolgung 1945-68 (PoliticsandJusticeinEastGermany.About the history of political persectution 1945-68), (Cologne: Verlag Wissenschaft und Politik, 1979). Grasemann, Hans-Jürgen. 1992. Der Beitrag der zentralen Erfassungsstelle Salzgitter zur Strafverfolgung Beispiele menschlicher Schicksale (The contribution of the Salzgitter central registry for criminal prosecution examples), in: Friedrich Ebert Stiftung (ed), Die Kriminelle Herrschaftssicherung des kommunistischen Regimes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Probleme der strafrechtlichen Verfolgung der Täter, Konsequenzen für den inneren Frieden des deutschen Volkes, 3. Bautzen-Forum der Friedrich-Ebert-Stiftung, 16.-17. Juni 1992, pp. 55-63, in the internet: http://library.fes.de/pdf-files/netzquelle/01280.pdf (file accessed October 1st, 2007). Hertle, Hans-Herrmann, - Gerhard Sälter. Die Todesopfer an Mauer und Grenze, Probleme einer Bilanz des DDR-Grenzregimes (The deaths at wall and border. Problems of the evaluation of the GDR border regime), Deutschland Archiv Vol. 39, no. 4, (2006).pp. 667-676. Kittel, Manfred. 2006. Eine Zentralstelle zur Verfolgung von Vertreibungsverbrechen? Rückseiten der Verjährungsdebatte in den Jahren 1964 bis 1966 (A central agency fort the prosecution of crimes of explusion? Drawbacks in the debate about the limitation of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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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 ICNK (북한반인도철폐국제연대)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Ⅰ. ICNK를 중심으로 국제협력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 1. 명확한 활동 목표 ICNK는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제고라는 대승적 목표도 가지고 있었지만, 창립과 존재의 이유가 명백히 UN Commission of Inquiry (COI)의 설립에 있었습니다. 이 는 먼 미래의 비전도 아니며, 추상적이거나 애매한 수사로 구성된 슬로건도 아닐뿐 더러 구체적이고 이중적 의미가 있을 수 없는 분명하고 실질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단체들은 연대에 이름만을 걸어둘 의도로가 아니라, COI의 설 립을 위해 한 몫을 하겠다고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연대활동을 통해 단순히 개별단체를 홍보하기를 희망하는 회원단체는 없었습니다. 모든 회원단체들 의 개별 단체 활동과 ICNK의 공동 활동의 중심에는 ICNK의 명확한 목표인 COI의 설립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Human Rights Watch (HRW)는 2012년과 2013년 단체 전체의 우선과제로 북한 COI 설립에 맞추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방콕에 자리한 HRW 아시아본 부와 도쿄지부 그리고 제네바 지부는 ICNK 사무국과 긴밀한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 고 모든 관련 정보들을 공유하고 함께 계획을 논의하고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FIDH(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는 COI의 설립의 당위성과 COI 조사활동의 자료로 제공할 수 있는 보고서 (The Death Penalty in North Korea-2012년 12월 조사, 13년 5월 16일 발행) 집필을 진행했습니다. 세계기독교연 대 또한 시의적절 하게 성명서를 발표하여 COI 설립을 강조했습니다. 열린북한방송 도 단체 자체의 국제팀을 온전히 ICNK 사무국으로 개조해, 단체 개별의 국제 활동 이 아니라 ICNK의 목표를 위해 전체 회원단체들을 통솔하고 활동을 기획하고 추진 해 나갔습니다. 46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2. 정확한 활동 전략 1) 국제연대 설립의 전략 ICNK의 목표인 COI의 설립은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엔 총회의 결의안이 통과되거 나 유엔 사무총장이 발의를 해야 가능합니다. 유엔의 결정은 유엔회원국들의 찬성 과 지지가 있어야만 추진될 수 있습니다. 개별 유엔 회원국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 은 각 회원국의 정부이며, 정부의 의사는 그 나라 여론에 근거합니다. 여기에서 각 국의 NGO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국가 에서, 가능한 많은 인권 NGO들이 ICNK에 가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각자 정부와 여론에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과 COI 설립의 당위성을 피력하면 효과적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정확했습니다. ICNK는 전 세계 15개국 의 국가에 45개 이상의 인권단체와 개별인권활동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2) 개별 활동가, 단체 구별 없는 회원 영입 유엔 인권메커니즘을 대상으로 활동이 전개되어야 했으므로 유엔 기구와 법조계 전문가들과 인권전문가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회원자격을 단체에만 국한시 킨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과 국제법조계에서 영향력 있는 개별인사들을 연대에 합 류시켰습니다. 즉,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의 저자 데이빗 호크(David Hawk)는 단체에 소 속된 인사가 아니지만, 누구보다 정치범수용소의 전문가입니다. 이런 국제적으로 저 명한 활동가들이 개별적으로 연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리 하여, 미국의 인권변호사인 재러드 겐서(Jared Genser)가 법률고문으로 참여하게 되 고, 현재는 국제사법재판소로 간 영국인 인권변호사 멜리사 팩(Melissa Pack), 그 외 국제법 교수들을 초청하여 활동을 위한 조언과 전략을 모색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찰 출신인 제프리 나이스(Sir. Geoffrey Nice)와 국제법의 대가인 윌리엄 사바스(William Schabas) 같은 인사들도 ICNK의 고문 격으로 협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47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3) 정확한 공략대상 선정 1 인권이사회와 유엔 특별절차 2011년 11월 경, 2013년 3월에 있을 인권이사회 회기에 이사회 회원국가에서 러시 아, 쿠바, 중국이 빠진다는 정보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엔 총회보다 인 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쉬워진다는 계산 하에, 모든 활 동의 초점을 2013년 3월 인권이사회에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인권유린의 근거자료를 유엔에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건이 신숙자 여사와 오혜원, 오 규원의 건이며, 두 번째로 12개의 특별절차에 정치범수용소 조사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신동혁과 강철환 가족의 강제구금에 관한 건입니 다. 13년 3월 전까지 이 모든 건들이 유엔이 결정할 수 있을 근거자료가 될 수 있 도록 2012년에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마르주끼 다루스만(Marzuki Darsuman)은 신숙자 여사 케이스와 정치범수 용소 청원서를 본인의 연례보고서에 언급하면서 연좌제에 의한 강제구금이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습니다. 2 납치문제 일본에는 HRW를 포함하여 10개 ICNK 회원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납치 문제에 국한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일본정부의 입장 또한 명확 합니다. 오로지 납치문제의 해결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ICNK 창립초기에 일본정 부는 납북자문제 조사위원회를 단독으로 가져올 계획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양자외교관계로 풀어가려는 의지가 강력했기에 UN COI와 같이 외교적 다자관계로 접근하는 것을 강력히 꺼려 했습니다. 문제는 일본정부는 EU와 함께 북한 인권결의안의 초안을 작성하는 국가입니다. ICNK는 일본정부에게 COI 설립이 납치문제 해결에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설득을 끊임없이 진행해야 했습니다. 창립총회를 일본 도쿄에서 진행하고 일본의 각 당 의 원들을 면담하고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COI 설립 협조를 강조했습니다. 48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또한 ICNK가 내보내는 모든 문건의 북한인권문제에는 반드시 납치문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정치범수용소와 강제구금, 고문 그리고 납치가 항상 들어갔고, 다루스 만 특별보고관도 마찬가지로 북한 인권유린의 9가지 패턴 중 하나로 납치문제를 넣 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일본정부는 1월 중순 회원국 중 최초로 COI 설립에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 표하게 되었습니다. 3 EU 일본과 함께 결의안 초안 작성 주체인 EU가 또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동의를 얻어 내기위해 ICNK는 대표단을 꾸려 EU의 주도적인 국가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연대의 장점이 크게 발휘되었습니다. 브뤼셀, 파리, 런던, 제네바를 순방하면서 각국에 위치한 연대의 회원단체들이 국회의원들과 그리고 정 부 관료들과의 면담, 자국의 언론들과의 연계 등 모든 일정들을 ICNK 사무국이 관 여할 틈도 없이 완벽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주요 4개국을 순방하며 ICNK 대표단은 12개의 유엔 특별절차에 제출한 정치범수 용소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하고 북한 COI의 설립과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13년 2월 말 EU는 일본과 함께 COI 설립과 권한에 대한 안을 넣은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결의안 초안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Ⅱ. ICNK 국내회원단체의 연대 활동에 기대 이제는 국내의 ICNK 회원단체들의 연대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COI의 조사 는 분명 한국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60년간 진행된 유린들 을 조사하는 것은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조사 가 효과적으로 그리고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우리 한국 NGO들이 보유하고 있 는 자료와 증인들이 가능한 효과적으로 COI에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한국 ICNK 회원단체들의 적극적인 공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49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ICNK 기본정보> - ICNK 공식 연락처 : Seoul: Eunkyoung Kwon, Open Radio for North Korea & Secretariat to the Coalition (Korean, English): +82-17-508-8815 (mobile); or kekyoung@gmail.com Tokyo: Kanae Doi, Human Rights Watch (Japanese, English): 03-5282-5162; 090-2301-4372 (mobile); or doik@hrw.org London: Benedict Rogers, 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English): +44-7919- 030575; or ben@csw.org.uk Bangkok: Phil Robertson, Human Rights Watch (English, Thai): +66-85-060-8406 (mobile); or robertp@hrw.org Paris: Arthur Manet/ Audrey Couprie,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French, English, Spanish, Portuguese) + 33-6-7228-4294; +33-6-4805-9157 - ICNK 회원단체 : Advocates International Global Council Amnesty International Asia Justice and Rights Asian Federation Against Involuntary Disappearances Asian Human Rights & Humanity Association of Japan Burma Partnership (Thailand) Christian Lawyers Association for Paraguay 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USA) Conectas (Brazil) 50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Council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Canada) Freedom House (USA) Free NK Gulag (ROK) Free North Korea Radio (ROK) Han Voice (Canada) HH Katacombs (ROK) Human Rights Watch Human Rights Without Frontiers (Belgium) Inter-American Federation of Christian Lawyers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FIDH) COMJAN (Investigation Commission on Missing Japanese Probably Related to North Korea)(Japan) Japanese Lawyers Association for Abduction and Other Human Rights Issues in North Korea Jubilee Campaign (USA) Justice for North Korea (ROK) Kontras (Indonesia) Liberty in North Korea - LiNK (USA) Life Funds for North Korean Refugees (Japan) Network for North Korean Democracy and Human Rights (ROK) NK Intellectual Solidarity (ROK) No Fence (Japan) North Korea Freedom Coalition Odhikar (Bangladesh) Open North Korea (ROK) People In Need (Czech Republic) PSALT NK (Prayer Service Action Love Truth for North Korea) The Simon Wiesenthal Center (USA) The Society to Help Returnees to North Korea (Japan) 51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Students Allianc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ROK) World Without Genocide (USA) Young Defectors' Alliance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ROK) Yuki Akimoto, Burmainfo (Japan) Tomoharu Ebihara David Hawk, Visiting Scholar, Columbia University, Institute for the Study of Human Rights, and author of Hidden Gulag Ken Kato, Director, Human Rights in Asia (Japan) Tomoyuki Kawazoe, Representative, Kanagawa Association for The Rescue of Japanese Kidnapped by North Korea / Member, Reporters Without Borders Suzanne Scholte, Seoul Peace Prize Recipient & Defense Forum Foundation (USA) Dr. Norbert Vollertsen 52
국제 레짐을 통한 북한인권 개선 방안 국제 레짐을 통한 북한인권 개선 방안 토마스 W. 스미스 (Thomas W. Smith) 미국 South Florida St. Petersburg 대학 교수 세계에서 가장 인권 탄압이 심한 국가 중 하나인 북한인권에 관한 토의의 장에 참 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최 측의 친절한 환대와 북한 주민들을 대신하여 수고하시는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김영호 인권대사님께서는 꾸준히 인권을 개선시 키는 노력을 해오고 계시고, 북한인권정보센터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 당국 의 책임을 묻는 역할에서뿐만 아니라 북한인권 침해의 범위와 정도를 이해하는 노 력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관입니다. 제 아내는 소련의 굴락에 관해 연구하고 있 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녀에게 북한에 관한 자료는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연구원들 의 북한인권 침해의 구체적인 증거와 기록을 수집하는 일이 북한 체제의 억압을 이 해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이슈에 대한 이해 냉전 이후 인권 문제의 발생은 국제 관계에서의 구조적 전환을 보여준다. 루이스 헨킨(Louis Henkin)은 인권을 우리 시대의 사상 1) 이라고 불렀다. 이는 국제인권레 짐에서 기원한 사상이다. 스테판 크라즈너(Stephen Krasner)는 레짐을 원칙, 규범, 규칙, 그리고 행위자들의 기대가 수렴하는 의사결정 과정 2) 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인권의 경우 레짐은 선언, 계약, 조약의 밀도 높은 네트워크, 국제제도와 역내제도, 국내법과 제도, 국내 및 국제 NGO, 인권보호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범위하게 볼 때 인권레짐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것은 공식적, 법적 레 짐과 비공식적, 규범적 레짐이다. 법적 레짐은 점차 진실규명조사위원회 및 형사 재 판과 법정을 통한 책무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카트린 시킨크(Kathryn Sikkink)는 이 과정을 정의의 폭포수 3) 라고 설명했다. 그 증거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지도자들을 법적 책임 하에 두는 것은 민주주의로의 성공적인 전환의 기회 1) Louis Henkin, The Age of Right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0), p. 193. 2) Stephen Krasner, "Structural Causes and Regime Consequences: Regimes as Intervening Variables,"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36 (1982), pp. 185-205, at p. 185. 3) Kathryn Sikkink, The Justice Cascade: How Human Rights Prosecutions Are Changing World Politics (New York: W.W. Norton, 2011). 53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연대 : 도전과 과제 를 증강시킨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그러한 기소가 국제 규범이 될 경우 이를 위 반한 지도자들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법적 레짐의 예방 효과는 증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범죄자들은 특히 그들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 권 침해를 할 경우 자신이 기소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인권 레짐의 규범적 측면이다. 인권은 오늘날 국제 정치의 규범 적 담화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4)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에 대한 연민의 구조는 우 리의 정의에 대한 관점을 형성한다. 법에 구속받지 않는 사회 이념이나 관습뿐만 아니라 법과 그 법에 구속되는 제도 또한 범주와 가능성을 설정한다. 권리의 언어 와 가정은 매체와 여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행위자와 관찰자들의 사고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또한 관심사를 희생자에게로 돌리고 그들의 치료를 위한 연구 를 하게 한다.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언어를 통한 가장 바람직한 정치적 과정이다. 인권은 조직적인 사고, 도덕적 언어, 법률적 전략을 제공한다. 인권운동가 조직은 인권문제 를 진행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인권은 역사상 가장 잘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으 며 가장 NGO적인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권은 국제 사회 운동의 모델 이며 가치의 공유, 공동의 담화, 정보와 서비스의 깊숙한 교환으로 묶여있다. 5) 수 백 개의 국내 및 국제 인권 단체는 인권 침해사실을 기록하고 토론의 기틀을 마련 하며, 표준을 세우고 안건을 만들며, 교육적인 동시에 로비활동을 하는 캠페인을 진 행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수치감을 주고 정책담당자들을 설득하며, 개혁을 주장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실행과정을 감시한다. 6) 인권은 묘사의 깊이와 자세함에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의심할 여지없이 전체주의 체제다. 그러나 아무리 체제가 악하다고 할지라도 체제를 규정짓는 것만 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신에 어떻게 정부가 국민들을 통제하는가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그것을 잘 증명해낼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오늘날 실행되고 있듯이 인권침해 사실은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수가 많고 구체적이 다. 7) 권리의 침해는 명백하고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생명권의 침해, 표현의 자유의 침해, 시위나 운동의 탄압, 교육권의 침해, 무고한 시민들의 체포나 수감 같은 경우 를 들 수 있다. 4) Charles Beitz, The Idea of Human Right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p. 10. 5) Thomas Risse and Kathryn Sikkink, "The Socialization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Norms into Domestic Practices: Introduction." In Thomas Risse, Stephen C. Ropp, and Kathryn Sikkink (eds), The Power of Human Right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p. 1-38, at p. 18. Also see the Transnational Advocacy Networks and Global Agenda-Setting research project: http://www.people.umass.edu/charli/networks/project.html 6) See Margaret E. Keck and Kathryn Sikkink, Activists Beyond Borders: Advocacy Networks in International Politic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8), p. 201. 7) James W. Nickels, Making Sense of Human Rights 2d ed. (Malden, MA: Blackwell, 2007), p. 7.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