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 유가사지론 의 경우 권 오 민 경상대학교 철학과 교수 Ⅰ. 서언 Ⅱ. 알라야식의 존재증명과 경량부 1. 제1 依 止 執 受 證 2. 제2 最 初 生 起 證 과 제3 意 識 明 了 證 3. 제4 有 種 子 性 證 4. 제5 業 用 差 別 證 과 제6 身 受 差 別 證 5. 제7 處 無 心 定 證 6. 제8 命 終 時 識 證 Ⅲ. 결어
10 佛 敎 學 報 第 70 輯 <한글요약> 알라야식(ālayavijñāna, 阿 賴 耶 識 )은 유가행파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개념이다. 그 것은 諸 法 의 원인적 상태인 종자 훈습의 토대/ 住 處 로서 현행의 6 識 과는 별도의 실체 였다. 해서 그것은 마음을 다만 소의( 眼 내지 意 根 )의 차별에 따라 6 識 으로 이해한 당시 불교도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특히 알라야식과 동일개념이라 할 수 있는 一 心 (ekacitta) 즉 동일 種 類 의 마음( 一 類 心, *ekajātīyacitta)을 6 識 의 한 양태( 識 類 : 識 의 동 일 種 類 )로 이해한 경량부( 上 座 슈리라타 일파)의 비판이 가장 강력하였다. 그들에게 있 어 알라야식은 무용한 개념이었다. 이에 따라 알라야식의 존재증명은 초기 유가행파의 당면의 과제가 되었다. 최초의 논 증은 유가사지론, 순결택분 에서 8 證 으로 제시되었는데, 여기에는 경량부 비판에 대한 해명(제2증)이나 반박(제3증)도 포함되어 있으며, 직접적인 논증의 경우에도 경량 부의 6 識 종자설 비판이 주요 논거였다. 차별적이고도 단속적인 6 識 에는 무부무기성의 동일 種 類 의 마음을 설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이것이 執 受 의 주체도(제1증), 生 死 位 (제2, 제8증)나 無 心 定 의 마음도(제7증), 종자식도 될 수 없을(제4증) 뿐더러 소의( 根 )에 따른 단일한 마음의 차별인 6 識 만을 주장하는 한 二 識 俱 起 도 불가능하다(제3, 제5증)는 것 이다. 유가행파의 알라야식 존재증명은 경량부의 6 識 종자설 비판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양 학파는 종자설을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친연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지만, 유가행파 에서 알라야식을 별도의 실체로 설정함으로써 적대적 관계가 되었다. 도리어 유가행파 는 경량부 종자설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설일체유부와 步 調 를 함께 하였다. 주제어 : 알라야식, 알라야식의 존재증명, 유가사지론, 경량부 종자설, 일심, 上 座 슈리라타.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11 알라야 識 (ālayavijñāna, 阿 賴 耶 識 )은 유가행파(Yogācāra: 유식학파)의 트레이드마크 와 같은 개념이다. 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그것은 모두 識 이 변화한 것이라 주장하 는 그들은 일체 諸 法 이 원인적 상태/ 種 子 (bīja)의 형태로 보존/ 熏 習 된 마음을 알라야 識 이라 하였다. 이는 현상의 모든 가능성(종자)을 지닌 識 이라는 뜻의 一 切 種 子 識 (sarvabījakavijñāna), 개인의 중심에서 심신의 상속을 유지시키는 識 이라는 뜻의 阿 陀 那 識 (ādanavijñāna: 執 持 識 )이라는 말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유가행파에서 알라야식은 일체 만유의 토대/의지처(āśraya, 所 依 )가 되는 것으로, 감 관( 根 )과 대상( 境 )의 차별에 따라 일어나는 6 識 이나 알라야식만을 대상으로 하여 항상 일어나는 染 汚 意 와는 별도의 실체였다. 해서 그들은 알라야식을 이러한 일곱 가지 현행 識 (pravṛttivijñāna, 轉 識 )과 구별하여 第 八 識 이라는 말로 호칭하기도 하였다. 유가행파의 이러한 사유는 초기불교 이래 마음을 心 (citta) 意 (manas) 識 (vijñāna)이 라는 세 명칭으로 호칭하고, 이를 각기 어원에 따라 쌓는 것(cinoti, 集 起 ) 사유하는 것 (manute, 思 量 ) 식별(인식)하는 것(vijanāti, 了 別 )으로 해석한데 기인한 것이다. 1) 물론 설일체유부를 비롯한 제 부파에서는 이 세 가지는 명칭이나 작용( 業 ) 상의 차별(paryāya) 일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ekārtha: AK. Ⅱ-v.34ab)으로 이해하였지만, 유가행파에서 는 이를 구별하여 순서대로 제8 알라야 識, 제7 染 汚 意 ( 末 那 識 ), 안식 내지 의식의 6 識 에 배당하였던 것이다. 이를테면 구사론 에서는 心 (citta)을 쌓다 모으다 는 의미의 어원 ci(참고로 cit 는 알다, 이해하다 의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주하여 [선 불선 등의 온갖 心 所 와 事 業 등을] 쌓는 것( 集 起, 구역은 增 長 )의 뜻으로 해설하고서, 淨 不 淨 의 界 가 집적된 것(cita)이기 때문에 心 (citta) 2) 이라는 또 다른 해석을 언급하였는데, 普 光 은 이를 유부 의 제2 釋 으로 이해하였지만(주2) 稱 友 (Yaśomitra)는 心 을 훈습(=종자)의 住 處 (bhāvanā 1) AKBh., 62. 21, cinotīti cittam. manuta iti manaḥ. vijanātīti vijñānam.; 구사론 권4( 대정장 29, p.21하20f); 순정리론 권1( 대정장 29, p.394하17), 集 起 故 名 心. 思 量 故 名 意. 了 別 故 名 識. ; 구사석론 권4( 대정장 29, p.180하4f), 心 以 增 長 爲 義. 能 解 故 名 意. 能 別 故 名 識. 2) AKBh., 61. 23-62. 1, citaṃ śubhāśubhair dhātubhir iti cittam.( 善 惡 諸 界, 所 增 長 故 名 心. : 구사 석론, T29, p.180c4) 玄 奘 은 이를 復 有 釋 言 : 淨 不 淨 界, 種 種 差 別, 故 名 爲 心.-- ( 대정장 29, p.21하21f)으로 번역하였다. 普 光 에 의하면 이는 citta( 心 )를 citra( 種 種 )에 근거하여 해석한 것 으로(이는 유부의 제2 釋 : 대정장 41, p.83중10ff), 범본의 校 訂 者 ( 荻 原 雲 來 )도 원래의 寫 本 에 citra( 種 種 )로 되어 있었던 것을 眞 諦 역( 所 增 長 )과 티베트 역(bsaga pa, citam)에 근거하여 citam으로 정정하였다고 한다.( 櫻 部 建, 1979, 俱 舍 論 硏 究 - 界 根 品, p.301 주1).
12 佛 敎 學 報 第 70 輯 saṃniveśa)로 이해한 경량부나 유가행파의 견해로 평석하였다. 3) 실제 섭대승론 이나 성유식론 에서는 心 을 種 種 法 (citradharma)의 훈습 종자가 적집된 것(ācitatva) 혹은 雜 染 과 淸 淨 의 諸 法 종자가 集 起 된 것 이라 정의하였고, 4) 이 를 알라야식 으로 이름하였다.: 알라야식 중에 種 種 界 (nānādhātu)가 존재한다. 알라야 식 중에 다수의 界 (bahudhātu)가 존재한다. 5) 그리고 대단히 흥미롭게도 경량부( 上 座 슈리라타 일파) 역시 동일한 형식의 종자설을 주장하였다.: 一 心 (ekacitta)은 種 種 界 를 갖추고 있다. 一 心 중에 다수의 界 가 熏 習 (vāsanā)되고 있다. (주49 참조) 心 識 종자설을 주장하는 한 종자 훈습의 住 處 로서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는 미세한 無 覆 無 記 性 의 동일 種 類 의 마음( 一 類 心, *ekajātīyacitta) - 성유식론 의 표현을 빌리자 면 微 細 一 類 恒 遍 의 마음(T31, p.16c21; p.17c19f; p.18a2 등)- 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되 는데, 上 座 는 이를 이러한 마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一 心 (ekacitta) 이라는 술어로 호칭한데 반해 유가행파에서는 일체종자의 攝 藏 處 (*ālīna, *ālaya) 라는 의미의 알라야 식(ālaya vijñāna) 6) 이라는 등의 별도의 술어로 호칭하였던 것이다. 유가행파의 경우, 종 자식을 다만 6 識 의 한 양태( 識 類 : 6 識 의 동일 種 類 )로 이해한 상좌와는 달리 별도의 실 체( 別 自 體, *pṛthag-ātmabhāva or *dravyāntra: T31, p.14a10)로 간주함에 따라 필시 새로 운 명칭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 3) AKVy., 141. 18f. citaṃ śubhâśubhair dhātubhir iti cittaṃ. bhāvanā-saṃniveśa-yogena Sautrāntikamatena Yog'ācāra- matena vā. 4) 섭대승론 本 권상( 대정장 31, p.134상9-10), 何 因 緣 故 亦 說 名 心? 由 種 種 法 熏 習 種 子 所 積 集 故. ; 長 尾 雅 人 (2001), 攝 大 乘 論 : 和 譯 注 解, p.110; App. 譯 攝 大 乘 論 還 元 梵 文, 동 p.16, tac ca kiṃkāraṇaṃ cittam ity apy ucyate/ citradharmavāsanābījair ācitatvena); 성유식론 권3( 대정장 31, p.15중19-20), 雜 染 淸 淨 諸 法 種 子 之 所 集 起 故 名 爲 心. 5)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81중19-21), 薄 伽 梵 說, 有 眼 界 色 界 眼 識 界 乃 至 意 界 法 界 意 識 界, 由 於 阿 賴 耶 識 中 有 種 種 界 故. 又 如 經 說 惡 叉 聚 喩, 由 於 阿 賴 耶 識 中 有 多 界 故. 6) 해심밀경 권1( 대정장 16, p.692중16f), 此 [ 一 切 種 子 ] 識, 亦 名 阿 賴 耶 識. 何 以 故? 由 此 識 於 身 攝 受 藏 隱, 同 安 危 義 故. ( 유가사지론 권76, 대정장 30, p.718상25f; 박창환, 알라야 식의 형성과정에 미친 종자설의 영향, 2010, p.94 참조); 섭대승론 권상( 대정장 31, p.133 중18-24), 由 攝 藏 諸 法 一 切 種 子 識 故 名 阿 賴 耶.( 성유식론 권3, 대정장 31, p.14중22f) (ālīnaṃ sarvadharmeṣu vijñānaṃ sarvabījakam/ tasmād ālayavijñānaṃ: 長 尾 雅 人, 攝 大 乘 論 : 和 譯 注 解, 2001, p.79; App. p.10; ālayaḥ sarvadharmānaṃ vijñānaṃ sarvabījakam/ tasmād ālayavijñānaṃ: 袴 谷 憲 昭, 唯 識 思 想 論 考, p.571); 대승성업론 ( 대정장 31, p.784하27f), 攝 藏 一 切 諸 法 種 子 故, 復 說 名 阿 賴 耶 識. 7) 상좌의 一 心 과 이것과 알라야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권오민, 上 座 슈리라타의 一 心, ( 인 도철학 제40집, 2014); 上 座 슈리라타의 一 心 과 알라야식 ( 한국불교학 제70집, 2014)을 참고할 것.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13 그러나 현행식과는 별체로서의 제8 알라야식은, 一 法 의 마음을 다만 所 依 의 차별( 眼 내지 意 根 )에 따라 6 識 으로 이해한 당시 불교도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아 비달마]불교 전통에서 제7 識 은 제13 處 나 제6 蘊 혹은 兎 角 이나 空 花 와 같은 허구의 개 념을 지시하는 말이었다. 중관학파에 있어 알라야식은 空 華 에 비유되는 것이었을 뿐더 러 동일한 형식의 종자설을 주장한 경량부에 있어서조차 그것은 인과상속의 해명에 무 용한 개념이었다. 8) 窺 基 에 의하면 불교 제파 중 경량부의 알라야식 비판이 가장 강력하 였다. 9) 이에 따라 알라야식 의 존재(astitā) 증명과 이에 관한 차별상(prabheda)의 분별은 초 기 유가행파의 당면의 과제가 되었다.(주14) 최초의 알라야식 논증은 유가사지론, 순 결택분 에서 8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현양성교론 (T31, p.565a11-c22)과 대 승아비달마잡집론 (T31, pp.701b4-702a5)에서도 거의 그대로 全 載 되고 있다-, 섭대승 론 과 성유식론 에서도 각기 10가지 형식의 논증이 제시되고 있다. 세 論 에서의 논증 은 存 缺 에 차이가 있고 소재나 형식, 혹은 논거 상의 교착이 심하여 서로간의 상응관계 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그럴지라도 공통된 지향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경량부처럼 종자식으로서 알라야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6 識 종자설을 주장하는 한 유정의 인과상속의 논리적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0) 경 량부의 6 識 종자설 비판은 알라야식 존재증명의 주요 논거였다. 6 識 으로는 탄생과 죽음 은 물론 雜 染 과 淸 淨 의 해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섭대승론 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 명의 총론(T31, p.135b23-26)이었고 결론(p.137a18f)이었다. 요컨대 유가행파의 알라야 식 논증은 경량부 비판에 따른 대응으로, 만약 [그대들의 주장처럼] 알라야식이 존재하 지 않는다면 이라는 해명성의 소극적(부정적) 논증방식( 無 性 에 의하면 反 詰 道 理 *vyatireka- yukti )으로 일관한 것도, 11) 神 泰 나 遁 倫 등 동아시아의 법상교가가 유가론 8) 권오민, 上 座 슈리라타의 一 心 과 알라야식, pp.211-216 참조. 9) 窺 基 는 성유식론 상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제1 理 證 ( 持 種 證 ) 중에서 轉 識 =훈습처 설을 비 판한데 대해 제 부파 중에 경량부[의 비판]이 가장 우세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비판해야 한다 고 해설하였다.( 謂 諸 部 中 經 部 强 勝, 故 須 先 破. : 대정장 43, p.355하17f) 그러나 제 부파 라고 하였지만 대개는 경량부에 대한 비판( 대정장 31, pp.15중21-16상1)이고, 그 이외 부파 즉 三 世 諸 法 皆 有 를 설한 어떤 이 (즉 유부)와 大 乘 의 遣 相 空 理 를 究 竟 으로 삼는 어떤 이 (즉 청변)에 대한 비판(동 p.16상1-10)은 매우 약소하다. 10) 성유식론 권3( 대정장 31, p.13상16f), 經 部 師 等 因 果 相 續, 理 亦 不 成. 彼 不 許 有 阿 賴 耶 識 能 持 種 故. 11) 無 性 에 의하면 초기 유가행파에서는 알라야식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천명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만약 일체 종자를 지닌 異 熟 果 識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앞에서 설한 바와 같
14 佛 敎 學 報 第 70 輯 상의 존재증명의 일부를 직접적인 논증( 正 證 )이 아니라고 한 것(주28; 51)도 필경 이 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어떤 이들(=경량부) 의 알라야식 비판에 대한 해명과 반박 이었다. 이런 까닭에 유가론 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명은 6 識 종자설과 관련된 경량부 학 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난해한 것일 수밖에 없다. 窺 基 역시 유가론 의 논 증은 [경량부 종자설 비판이 보다 자세하게 논증되고 있는] 성유식론 에 의거하지 않 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였고(주18; 58), 현대학자 또한 그것의 난해함을 토로하기 도 하였다. 12) 이런 점에서 유가론 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13) 뿐만 아니라 경량부와 의 관련성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遁 倫 의 瑜 伽 論 記 (혹은 窺 基 의 瑜 伽 師 地 論 略 纂 )와 경량부 종자설 에 대해 가장 자세한 비판을 전하고 있는 중현의 순정리론, 혹은 섭대승론( 無 性 ) 釋 과 성유식론 의 제 주석을 통해 유가론 상의 알라야식 논증과 경량부( 上 座 일파)의 관련성에 대해 밝히려고 한다. 은 종종의 과실이 수반된다. 비록 自 事 가 중하다는 사실을 欲 樂 하는 일은 없을지라도 ( 우리 의 교리가 가장 뛰어나다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김성철 등 역, 2010, 무성석 섭대 승론 소지의분, p.395) 알라야 識 이 결정코 존재하는 것임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如 是 若 離 一 切 種 子 異 熟 果 識, 如 前 所 說 種 種 過 失 之 所 隨 逐. 雖 無 欲 樂 自 事 重 故, 然 必 應 許 阿 賴 耶 識 決 定 是 有. 如 是 名 爲 反 詰 道 理.: 대정장 31, p.396하14-17) 12) 袴 谷 憲 昭 (앞의 책, p.326)는 유가론 에서의 존재증명의 경우 原 文 을 참조할 수 있는 오늘날 에서조차 충분한 내용의 이해가 지극히 곤란하다고 고백하고서 문헌해독에 관한 한 宇 井 伯 壽 박사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주27 참조) 13) 이에 관해 宇 井 伯 壽 는 決 定 藏 論 硏 究 ( 印 度 哲 學 硏 究 第 六, 1965, pp.545-550)에서 유 가론 과 決 定 藏 論 의 해당부분을 대조하였고, 瑜 伽 論 硏 究 (pp.172-178)에서 성유식론 상의 10 證 과 명목상으로 대조하고서 간략히 해설하였다. 袴 谷 憲 昭 는 - 識 八 論 證 關 諸 文 獻 ( 唯 識 思 想 論 考, 2001, pp.326-344)에서 유가론 의 해당부분을 인용한 대승아비달마잡집론(Abhidharmasamuccayabhāṣya: ASBh) 에서 회수한 범본과 티베트 역, 한 역을 대조하고, 日 譯 을 부기하였다. L. 슈미트하우젠(ĀLAYAVIJÑĀ, 1987, pp.194-196)은 8 證 을 A1: 알라야식의 신체적(somatic) 측면과 관련된 논증(제1, 제6, 제7, 제8증), A2: 종자로서 의 기능과 관련된 논증(제4증), B1: 알라야식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諸 識 의 동시생기에 관한 논증(제2, 제3증), B2: 동시생기에 관한 것이지만 직접적으로 알라야식에 대 해 논증한 것(제5증)의 4가지 유형으로 분석하였다. 한편 국내연구로 김치온, 阿 賴 耶 識 의 存 在 에 대한 因 明 論 的 證 明 과 그 所 在 에 관한 考 察 ( 보조사상 제15집, 2001)과 추인호, 瑜 伽 師 地 論 의 알라야식 存 在 論 證 에 관한 瑜 伽 論 記 의 주석: 제1상 依 止 執 受 證 을 중심으로 ( 한국불교학 제70집, 2014)가 있지만, 전자(pp.170-175)는 글자에 따른 거친 조술에 지나지 않으며, 후자는 제목대로 제1상의 다섯 논거에 대한 유가론기 상의 평석을 조술한 試 論 的 연구이다.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15 유가사지론, 섭결택분 은 앞( 本 地 分 )에서 종자의 토대(bījâśrayaḥ: 種 子 依 )로서 알라야식에 대해 설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존재이며, 그것의 존재근거와 차별적인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하지 않았다. 왜 설하지 않은 것인가? 는 물음으로 시작되 는데, 세존께서 가장 비밀스러운 것( 深 密 )이라 규정하였기 때문 이라는 전제하에 14) 두 번째 존재근거로서 알라야식의 존재증명을 제시하고 있다. 論 에서는 먼저 8 相 의 총론 을 제시한 다음 각각의 논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논증을 진행하고 있다. 여덟 가지 특상(ākāra)에 의해 알라야식의 존재가 입증된다.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1) 依 止 의 執 受 (āśrayȏpādāna)는 불합리(asaṃbhava: 道 理 不 應 )하다. (2) 최초의 生 起 (ādi pravṛtti)는 불합리하다. (3) [ 意 識 의] 명료성(spaṣṭa pravṛtti: 명료한 활동)은 불합리 하다. (4) 종자성(bījatva)은 불합리하다. (5) [ 諸 識 의] 業 用 (karman)의 차별은 불합리하다. (6) 身 受 (kāyiko'nubhava)의 차별은 불합리하다. (7) 無 心 定 (aciitaka samāpatti)에 드는 것이 불합리하다. (8) 命 終 할 때의 識 (vijñāna cyuti)은 불합리하다. 15) 1. 依 止 執 受 證 어떠한 이유에서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依 止 의 執 受 가 불합리하다고 한 것인가? 1 알라야식은 先 世 에 지은 業 行 (pūrva karmābhisaṃskāra)을 원인으로 삼지만, 眼 등의 轉 識 (pravṛttivijñāna)은 현재세의 衆 緣 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6] 根 (indrya)과 [6] 境 界 (viṣaya)와 作 意 (manaskāra)의 힘으로 인해 온갖 轉 識 이 생겨난다 고 설 하였던 것이다. 2 6 識 身 에는 선 불선 등의 도덕적 성질이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14)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상10-14), 問 : 前 說 種 子 依, 謂 阿 賴 耶 識. 而 未 說 有 有 之 因 緣 廣 分 別 義. 何 故 不 說? 何 緣 知 有? 廣 分 別 義, 云 何 應 知? 答 : 由 此 建 立 是 佛 世 尊 最 深 密 記. 是 故 不 說. 이러한 사실은 알라야식 이라는 개념이 이전의 본지분 과 해심밀경 에서 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으며, 섭결택분 에 이르러 비로소 명확히 규정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袴 谷 憲 昭, 앞의 책, p.325) 15)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상20-25), 由 八 種 相, 證 阿 賴 耶 識 決 定 是 有. 謂 若 離 阿 賴 耶 識, 依 止 執 受 不 應 道 理 ; 最 初 生 起 不 應 道 理 ; 有 明 了 性 不 應 道 理 ; 有 種 子 性 不 應 道 理 ; 業 用 差 別 不 應 道 理 ; 身 受 差 別 不 應 道 理 ; 處 無 心 定 不 應 道 理 ; 命 終 時 識 不 應 道 理.
16 佛 敎 學 報 第 70 輯 3 6 識 身 에는 無 覆 無 記 의 異 熟 [ 識 ]에 포섭되는 [동일] 種 類 (jāti)가 획득(인정)될 수 없 기 때문이다. 4 6 識 身 은 각기 별도의 所 依 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각각의 소의에 근거하여 각 각의 識 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일어난 識 의] 所 依 는 有 執 受 (집수를 갖는 것)이 고, 그 밖의 [일어나지 않은 識 의] 所 依 는 無 執 受 라고 함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설혹 [ 有 ] 執 受 로 인정할지라도 역시 불합리하니, 識 에서 遠 離 한 것이기 때문이다. 5 眼 識 이나 그 밖의 [ 轉 ] 識 은 어느 때는 일어나고 어느 때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所 依 止 (āśraya: 즉 안근)는 [ 無 執 受 의 非 情 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주 執 受 되어야 한 다는 과실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6 轉 識 은] 1 이전의 先 業 과 현재 緣 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2 선 불선 등의 도덕적 성질이 획득될 수 있기 때문에, 3 異 熟 [ 識 ]의 [동일] 種 類 가 획득될 수 없기 때문에, 4 각기 별도의 소의에 근거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5 자주 依 止 를 집수해야 하는 과실이 있기 때문에 [이를 執 受 의 주체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16) 여기서 依 止 (āśraya: 所 依 )의 執 受 (upādāna) 란 心 心 所 의 토대(adhiṣṭāna: 依 處 依 止 )가 되는 色 根 /육신(즉 眼 등의 5근과 그 소의처)의 유지( 執 持 ) 통합( 攝 )을 의미하는 말로서, 17) 6 識 은 1 先 世 의 業 行 과 현재의 衆 緣 ( 根 境 作 意 )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 며, 2 선 불선 등의 도덕적 성질을 지니며, 3 無 覆 無 記 의 이숙과일 수 없으며, 4 각기 별도의 所 依 에 근거하여 일어나며, 5 일어나는 때도 있고 일어나지 않는 때도 있기 때 문에, 이와는 별체로서의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色 根 /육신의 유지통합이 불가 능하다는 것이다. 18) 요컨대 6 識 은 현재의 衆 緣 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항상 상속전전 16)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상25-중10),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依 止 執 受 不 應 道 理? 由 五 因 故. 何 等 爲 五? 1 謂 阿 賴 耶 識 先 世 所 造 業 行 爲 因, 眼 等 轉 識 於 現 在 世 衆 緣 爲 因. 如 說 根 及 境 界 作 意 力 故 諸 轉 識 生. 乃 至 廣 說. 是 名 初 因. 2 又 六 識 身 有 善 不 善 等 性 可 得. 是 第 二 因. 3 又 六 識 身 無 覆 無 記 異 熟 所 攝 類 不 可 得. 是 第 三 因. 4 又 六 識 身 各 別 依 轉. 於 彼 彼 依, 彼 彼 識 轉. 卽 彼 所 依 應 有 執 受. 餘 無 執 受, 不 應 道 理. 設 許 執 受, 亦 不 應 理, 識 遠 離 故. 是 第 四 因. 5 又 所 依 止 應 成 數 數 執 受 過 失. 所 以 者 何? 由 彼 眼 識, 於 一 時 轉, 一 時 不 轉, 餘 識 亦 爾. 是 第 五 因. 如 是 先 業 及 現 在 緣 以 爲 因 故 ; 善 不 善 等 性 可 得 故 ; 異 熟 種 類 不 可 得 故 ; 各 別 所 依 諸 識 轉 故 ; 數 數 執 受 依 止 過 故, 不 應 道 理. 17) 구사론 상에서의 有 執 受 의 정의는 이러하다.: 有 執 受 者. 此 言 何 義? 心 心 所 法 共 所 執 持 攝 爲 依 處, 名 有 執 受. 損 益 展 轉 更 相 隨 故. ( 대정장 29, p.8중24-26); upāttam iti ko 'rthaḥ / yac cittacaittair adhiṣṭhānabhāveno pagṛhītam anugrahopaghātābhyām anyonyānuvidhānāt (AKBh., 23. 16f)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17 하지 않지만, 알라야식은 오로지 先 世 의 業 行 을 원인으로 하는 無 記 의 異 熟 識 으로 항 상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든 구체적인 인식작용을 갖지 않는 무부무기성의 동일 種 類 (ekajāti)로서 항상 상속하기 때문에 依 止 의 執 受 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本 證 의 다섯 논거는 사실상 6 識 에는 無 覆 無 記 의 異 熟 識 에 포섭되는 [동일] 種 類 가 획득(인정)될 수 없다 19) 는 세 번째 논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는 명백히 경량부의 6 識 종자설을 비판한 것이다. 즉 경량부( 上 座 일파)는, 하나는 잠자고 있고 하나는 깨어 있는 一 身 二 頭 의 전설상의 새인 命 命 鳥 의 비유로써 동일 根 에 근거한 二 識 -- 根 境 과 作 意 등 衆 緣 에 따라 일어나는 現 行 識 과 숙업에 따라 일어나는 異 熟 識 -- 의 俱 起 를 주장하였 기 때문이다. 20) 여기서의 이숙식도 유가행파의 알라야식과 마찬가지로 미세한(즉 所 緣 과 行 相 을 갖지 않는) 무부무기성의 동일 種 類 의 마음(*ekajātīyacitta: 一 類 心, 즉 一 心 )으 로, 21) 종자의 훈습처도(제4증), 生 死 位 (제2/제8증)나 無 心 位 의 마음(제7증)도 이것이었 으며, 依 止 의 執 受 또한 이것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遁 倫 의 유가론기 나 窺 基 의 유가사지론약찬 에서도 확인된다. 즉 여기서는 첫 번째 논거에 대해 이는 本 識 (즉 알라야식)을 설정하지 않는 諸 小 乘, 예컨 대 6 識 이 몸을 執 持 한다 고 주장한 경량부에 대한 것 이라고 논평하고서, 依 止 의 執 受 는 [현행식과] 동일찰나에 異 熟 心 을 일으키기도 하는 6 識 에 의한 것이 아니 라는 사실 을 논증식 -- 眼 등의 轉 識 은 집수의 주체가 아니다.( 宗 ) 현재 衆 緣 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 18) 참고로 섭대승론 에서 이에 상응하는 논증은 生 雜 染 중 執 受 證 으로, 여기서는 1 그 밖 의 다른 모든 [ 轉 ] 識 은 각기 所 依 가 다르기 때문에 2 堅 住 하지 않기(adhruvatva, 단절, 혹은 動 轉 되기) 때문에 異 熟 識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色 根 의 執 受 는 불가능하다 ( 대 정장 31, p.136상13-15)고 논증하였다. 또한 성유식론 에서 이에 상응하는 논증인 제4 能 執 受 證 ( 대정장 31, p.16중20-하2)에서는 諸 轉 識 은 1 소리나 바람처럼 현재의 [ 衆 ] 緣 에 근 거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2 비택멸처럼 그것의 선 염오 등은 [ 先 世 의] 업에 의해 인기된 것 이 아니기 때문에 3 [ 轉 識 중의] 異 熟 生 은 [진실의] 이숙이 아니기 때문에, 4 (어디서나) 두 루 [존재하는] [ 能 ] 依 가 아니기 때문에, 5 번개나 빛처럼 [항상] 상속하지 않기 때문에 유루 의 색신을 집수할 수 없다 고 논증하였는데, 窺 基 는 [ 유가론 의] 8증 중 제1 執 受 證 은 유 식론 의 이 글을 보지 않았다면 다만 虛 讀 의 과실만을 알 뿐( 勘 諸 八 證 第 一 執 受, 不 見 此 文, 但 知 虛 讀 過.) 이라고 하였다.( 성유식론술기 권4 末, 대정장 43, p.362중19-20) 19) 결정장론 권상( 대정장 30, p.1018하16f)에서는 三 者 於 六 識 中, 若 有 一 無 記 識, 而 獨 是 執 所 攝 持 者, 無 有 是 處. ;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2( 대정장 31, p.701중15f)에서는 又 六 識 身 一 類, 異 熟 無 記 性 攝, 必 不 可 得, 是 第 三 因. ; api ca ṣaṇṇāṃ vijñāna-kāyānāṃ sā jātir nôpalabhyate yā'vyākṛta-vipāka-saṃgṛhītā syāt/ idaṃ tṛtīyaṃ kārṇa( 袴 谷 憲 昭, 앞의 책, p.328). 20) 순정리론 권18( 대정장 29, p.441하15-17), 然 彼 上 座, 於 此 說 言 : 有 一 念 一 根 俱 生 二 識, 如 共 一 身 根 命 命 鳥 等. 21)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일심, pp.19-34 참조.
18 佛 敎 學 報 第 70 輯 에.( 因 ) 마치 소리 등이 그러한 것처럼( 喩 )-- 을 세워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 한 이들 경량부의 해명을 전하고서, 이에 대해서는 세 번째 논거에 대해 해설하면서 자 세히 비판하고 있다. 우리의 안식 등에도 역시 先 業 으로부터 생겨나 [ 所 依 를] 執 持 할 수 있는 異 熟 心 이 존재 하거늘 그대들은 어찌하여 眼 등의 轉 識 은 [ 依 止 의] 통합유지의 주체가 아니라고 하여 우 리의 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인가? 22) 6 識 중에 비록 異 熟 [ 果 識 ]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은] 다만 [ 結 生 시] 일찰나 동안 생겨난 것( 一 念 生 )일 뿐으로, 전후[찰나]에 걸친 諸 心 의 동일 種 類 ( 一 類 )의 異 熟 性 은 획득될 수 없 다. 전후[찰나]에 걸친 동일 種 類 의 異 熟 性 은 어떠한 경우에도 變 易 하는 일이 없어 執 持 의 주체가 될 수 있으니, 이것이 진실의 異 熟 이다. 그러나 지금 [그대들이 주장하는] 6 識 중의 異 熟 心 은 다만 일찰나 동안 생겨난 것일 뿐으로 단절됨( 間 斷 )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동 일 種 類 가 아니라면 異 熟 生 일지라도 [6 識 을] 執 受 의 주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23) 그리고 바람이나 소리처럼 단절됨이 있다( 有 間 斷 ) 는 사실을 비유( 喩 )와 논거( 因 ) 로 삼아 6 轉 識 은 [ 異 熟 生 일 뿐] 진실의 異 熟 이 아니다, 6 轉 識 은 무부무기인 이숙의 동일 種 類 가 不 可 得 이어서 능히 몸을 執 持 할 수 없다, 6 轉 識 중 異 熟 生 의 마음은 [몸 을] 執 持 할 수 없다 는 주장의 추론식을 제시하고 다시 이에 대해 상론하기도 하였다. 24) 22) 이상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3중4-13); 유가사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0상19-28), 其 初 因 意 者. 諸 小 乘 等 中, 不 立 本 識. 如 經 部 師 以 六 識 持 身. 今 意 非 此. 謂 從 先 業 生 者, 能 執 持 身 ; 從 現 在 緣 生 者, 不 能 執 持. 此 約 長 豎 ( 豎 理 ); 不 約 六 識 於 一 刹 那. 或 起 異 熟 心, 破 之, 此 中 應 立 量 云 : 眼 等 轉 識 非 能 執 受 ( 宗 ) 現 緣 發 故 ( 因 ) 如 聲 等 起 ( 喩 ). 又 若 有 執 ( 執 轉 ) 救 之 云 : 我 眼 識 等 中 亦 有 異 熟 心 從 先 業 生 能 執 持. 汝 何 故 言, 眼 等 轉 識 非 能 執 持 而 摠 遮 我? 今 應 破 之, 如 下 第 三 因 比 量. 23)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3하11-17); 유가론사지약찬 권13( 대정장 43, p.170 중28-하4), 論 云 : 又 六 識 身 無 覆 無 記 異 熟 所 攝 類 不 可 得 是 第 三 因 者, 言 六 識 中 雖 有 異 熟, 但 一 念 生 或 諸 心 間, 前 後 一 類 異 熟 之 性 必 不 可 得. 前 後 一 類 異 熟 之 性 無 有 變 易 可 能 執 持 是 眞 異 熟. 今 六 識 中 異 熟 之 心 但 一 念 生 非 無 有 間 旣 非 一 類 是 異 熟 生 不 得 稱 言 而 能 執 受. 24)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3하17-22); 유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0하 4-10), 應 立 量 云 : 六 種 轉 識 非 眞 異 熟 性 ( 宗 ) 有 間 斷 故 ( 因 ) 譬 如 風 聲 ( 喩 ). 此 量 未 明 應 更 別 立 云 : 六 種 轉 識 無 覆 無 記 異 熟 一 類 旣 不 可 得 不 能 執 持 身 ( 宗 ) 有 間 斷 故 ( 因 ) 喩 等 同 前. 或 應 立 量 云 : 六 轉 識 中 異 熟 之 心 不 能 執 受 ( 宗 ) 有 間 斷 故 ( 因 ) 如 風 聲 等 ( 喩 ).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19 즉 경량부에서 執 持 의 주체로 제시한 6 識 의 異 熟 心 은 알라야식처럼 異 熟 의 相 續 ( 先 業 ) 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안근처럼 異 熟 의 種 子 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참된 이숙이 아니라는 것이다. 25) 2. 제2 最 初 生 起 證 과 제3 意 識 明 了 證 [제2증]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생기(ādi-pravṛtti) 가 불합리하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어떤 이가 만약 알라야식이 결정코 존재한다면 二 識 이 동시에 생겨나는 일 이 있다고 해야 한다 고 힐난하였다면, 그에게 말해야 한다.: 그대는 아무런 과실이 없음 에도 거짓되게 과실이 있다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二 識 의 동시생기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같이 말한 까닭이 무엇인가? 바야흐로 일시에 보려고 하고 내지는 알려고 하는 (다시 말해 見 聞 覺 知 하려고 하 는) 어떤 이에게 [ 結 生 의] 最 初 순간부터 그( 眼 識 내지 意 識 과 알라야식) 중의 一 識 씩 생기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은 그 때 作 意 에 차별이 없고 根 境 도 역시 그러한데, 어떠 한 인연에서 [ 二 ] 識 이 함께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26) [제3증]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諸 識 이 俱 轉 하는 일이 없다면, 眼 識 등에 수반되어 함께 작용(sahânucara)하는 意 識 의 明 了 性 (spaṣṭatva)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혹 어느 때 과거 일찍이 향수한 경계대상을 憶 念 할 경우, 그 때 意 識 의 行 25)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p.593하26-594상1), 述 曰. 異 熟 生 有 二 種. 一 從 異 熟 種 子 生. 二 從 異 熟 相 續 生. 第 六 識 中 是 異 熟 種 子 生, 名 假 異 熟. 如 眼 根 非 眞 異 熟. 其 第 八 識 是 異 熟 相 續 生, 前 念 後 念 皆 異 熟 故. 今 前 念 後 念 皆 是 異 熟 者, 能 執 持. 非 六 種 識. 故 有 異 也.(이숙생 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異 熟 의 種 子 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둘째는 異 熟 의 相 續 으로 부터 생겨난 것이다. 전6 識 중[의 이숙식]이라 함은 이숙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假 異 熟 이라 이름한다. 예컨대 眼 根 과 같은 것은 진실의 이숙이 아니다. 그러나 제8식은 이숙의 상 속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前 念 과 後 念 이 다 이숙이기 때문이다. 지금 前 念 과 後 念 이 다 이 숙인 것 이 執 持 의 주체로 6종의 識 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8 識 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26)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중11-17),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最 初 生 起 不 應 道 理? 謂 有 難 言 : 若 決 定 有 阿 賴 耶 識, 應 有 二 識 俱 時 生 起. 應 告 彼 言 : 汝 於 無 過 妄 生 過 想. 何 以 故? 容 有 二 識 俱 時 轉 故. 所 以 者 何? 且 如 有 一 俱 時 欲 見, 乃 至 欲 知. 隨 有 一 識, 最 初 生 起, 不 應 道 理. 由 彼 爾 時 作 意 無 別, 根 境 亦 爾, 以 何 因 緣 識 不 俱 轉?
20 佛 敎 學 報 第 70 輯 (pracāra: 작용)은 不 明 了 하지만, 현재의 경계대상에 대해 意 [ 識 ]이 현행할 때에는 이와 같 은 불명료함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諸 識 의 俱 轉 을 인정해야 한다. 혹 [그렇지 않을 경우 과거의 대상을 憶 念 하는 것처럼] 意 識 의 不 明 了 性 을 인정해야 한다. 27) 여기서 제2증은 結 生 의 첫 찰나에는 根 境 과 作 意 에 차별이 없어 6 識 은 일어나지 않 기 때문에 별도의 실체로서 알라야식이 존재한다고 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二 識 俱 起 의 과실을 범한 것 이라는 어떤 이의 비난에 대해 해명한 것이고, 제3증은 諸 識 이 동시 생기( 俱 轉 )하지 않는다면, 意 識 의 명료성(spaṣṭatva)은 불가능하다 고 하여 앞서의 어떤 이의 비난에 대해 반박한 것으로, 사실상 알라야식 존재증명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神 泰 나 遁 倫 窺 基 등의 동아시아 법상교가 또한 이 두 논증을 직접적인 알라 야식의 존재증명( 正 證 )이 아니라 外 難 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28) 27)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중18-22), 何 故 若 無 諸 識 俱 轉, 與 眼 等 識 同 行 意 識, 明 了 體 性 不 可 得 耶? 謂 或 有 時 憶 念 過 去 曾 所 受 境, 爾 時 意 識 行 不 明 了. 非 於 現 境 意 現 行 時, 得 有 如 是 不 明 了 相. 是 故 應 許 諸 識 俱 轉. 或 許 意 識 無 明 了 性. ; 云 何 明 了 生 起 不 可 得 耶? 謂 若 有 定 執 識 不 俱 生, 與 眼 等 識 俱 行 一 境, 明 了 意 識 應 不 可 得. 所 以 者 何? 若 時 隨 憶 曾 所 受 境, 爾 時 意 識 不 明 了 生. 非 於 現 境 所 生 意 識. 得 有 如 是 不 明 了 相. 是 故 應 信 諸 識 俱 轉. 或 應 許 彼 第 六 意 識 無 明 了 性. 참고로 宇 井 伯 壽 ( 瑜 伽 論 硏 究, 1979, p.176)는 本 證 의 최후에 玄 奘 譯 은 是 故 應 許 諸 識 俱 轉. 或 許 意 識 無 明 了 性. 으로 되어 있고, 決 定 藏 論 은 不 如 緣 現 則 易 明 了, 諸 識 俱 故. 故 知 俱 生. ( 대정장 30, p.1018하29f)으로, 현양성교론 은 是 故 應 許 諸 識 俱 轉. 或 應 許 彼 諸 六 意 識 無 明 了 性. 是 卽 有 過. ( 대정장 31, p.565중20-21)로 되어있기 때문에 유가론 의 문장이 완전하지 않은 것 으로 간주하였지만, 삼자는 동일의미로서 완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즉 현양론 에서의 논의는, 적대자의 諸 識 不 俱 轉 에 따를 경우 제6 의 식은 명료성이 결여되었다고 해야 하지만, [현재대상에 대해 의식이 현행하는 경우 이와 같 은 불명료함은 있을 수 없기( 非 於 現 境 意 識 現 行, 得 有 如 是 不 明 了 相 : p.565중19-20) 때문에] 그러한 말에는 과실이 있다는 뜻이다. 袴 谷 憲 昭 (앞의 책, p.356 주52)는 제3증의 논의가 잘 이 해되지 않는다면서 이상의 宇 井 伯 壽 의 논의를 인용하여 이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宇 井 博 士 는 決 定 藏 論 硏 究 (1965, p.730)에서 제3 相 은 諸 識 幷 生 이 아니라면 제6 의식 의 명료성을 획득할 수 없는 所 以 를 논하여 諸 識 俱 轉 을 성립시키고 그것으로 알라야식을 인 정하게 한 것이다 고만 말하여 의문점의 지적이 없었지만, 瑜 伽 論 硏 究 (p.176)에서는 분 명하게 附 記 된 是 卽 有 過 에 주의하여 瑜 伽 論 의 문장은 완전하지 않다 고 지적하였는데, 의미 不 明 인 필자로서는 그 시비를 따질 수 없다. 28)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3상29-중1), ( 泰 云 ) 於 八 相 中 第 二 第 三 因 外 難 成, 非 正 證 也. ; 宇 井 伯 壽, 瑜 伽 論 硏 究, p.172.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4상25f; 중 17), 此 ( 第 二 ) 相 非 正 建 立. 但 因 外 難, 便 破 小 執 成, 建 立 自 宗. ; 此 ( 第 三 ) 因, 亦 非 正 立 第 八 之 因. ; 유가사지론약찬 권13(T43, 171a18f; b11). 참고로 文 備 는 제1증을 제외한 7증 모두 를 非 正 辯 으로 해설하였다.(주71)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21 遁 倫 에 의하면, 여기서의 外 難 은 諸 識 의 別 生 을 주장한 소승이다.(T42, p.594b9) 즉 그들처럼 6 識 만을 인정하는 한 6식은 다만 소의( 根 )에 따른 단일한 識 의 차별이기 때문 에 二 識 (예컨대 안식과 의식)의 俱 起 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 別 體 로서의] 제8 식을 인정하는 유가행파의 경우 根 境 의 緣 만 갖추어지면 다수의 識 의 俱 生 도 가능하 며, 29) 이에 따라 意 識 은 眼 色 에 근거한 眼 識 과 동시에 함께 작용(sahânucara: 同 行 )하 기 때문에 명료한 직접지각( 現 量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전적으로 경량부(상좌 슈리라타 일파)에 대한 것이다. 즉 앞서 언급(주 21 본문)한대로 상좌 역시 최초의 結 生 識 으로 異 熟 識 인 동일 種 類 의 마음 즉 一 心 을 주 장하였지만, 이는 6 識 의 한 양태, 말하자면 잠재적 측면의 意 識 이다. 이러한 경량부 설 은 無 着 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무착은 섭대승론 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제3 生 雜 染 證 에서 유가론 제2 最 初 生 起 證 과는 반대로 羯 羅 藍 (kalalaṃ)과 화합하는 최초 結 生 識 이 [별체로서의 알라야식이 아니라] 意 識 (정확히는 전후의 차별 이 없는 意 識 의 동일 種 類 )이라 한다면 두 의식의 同 時 而 轉 의 과실이 야기된다고 비난 한다. 30) 여기서 두 의식 이란, 無 性 에 의하면 異 熟 자체인 유정의 本 事 (근본)로서 지금(현생) 의 加 行 에 근거하지 않고 일어난 無 記 性 의 意 識 과, 소연과 행상을 알 수 있고 苦 樂 등의 受 (vedanā)와 상응하는 意 識, 즉 이숙의 종자식과 현행의 요별식을 말한다. 無 性 은 계속 하여 전 [찰나]도 아니고 후 [찰나]도 아니면서 동일한 몸( 所 依 )에 근거하여 동일한 종 류의 두 識 (예컨대 意 識 에 포섭되는 이숙식과 요별식)이 함께 생겨나는 일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는 경설에 근거하여 동일한 몸에 근거하여 동시에 일어나는 동일한 종류의 두 의식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고 비판하고서, [이숙과 요별의] 두 識 은 자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識 [의 두 양태]로 인정해서도 안 된다고 결론지었는데, 31) 29)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4상29-중5), 若 無 第 八, 初 生 起 不 可 得 者, 是 言 便 失 ( 生 ). 但 總 應 言. 小 乘 無 第 八, 諸 識 不 並 生. 大 乘 理 卽 云, 根 境 緣 具, 五 識 皆 然 ( 起 ), 何 緣 一 識 最 初 生 起? 有 第 八 識, 卽 許 諸 識 並 生. 故 有 第 八 無 最 初 起 是 應 道 理." ( )는 유가사지론약 찬 권13( 대정장 43, p.171상23-27). 30) 섭대승론본 권상( 대정장 31, pp.135하29-136상3), 若 卽 意 識 與 彼 和 合, 旣 和 合 已, 依 止 此 識, 於 母 胎 中, 有 意 識 轉. 若 爾 卽 應 有 二 意 識, 於 母 胎 中, 同 時 而 轉. 무착은 계속하여 염 오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때로 단절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 때] 意 識 의 소연은 획득될 수 없기 때문에 和 合 識 = 意 識 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고 비판하고서 만약 이 때 意 識 이 一 切 種 子 識 이라면 그대는 [알라야식을] 意 識 이라는 異 名 (prayāya)으로 말한 것일 뿐이라고 논평한다.(T31, 136a3-10) 31) 섭대승론(무성)석 권3( 대정장 31, p.392하8-16), 若 爾, 卽 應 有 二 意 識, 於 母 胎 中, 同 時
22 佛 敎 學 報 第 70 輯 이는 바로 一 身 二 頭 의 命 命 鳥 의 비유로써 동일 根 에 근거한 一 念 의 二 識 俱 生 을 주장 한 상좌에 대한 비판이었다. 32) 규기나 혜소 등 동아시아 법상교가 역시 [동일한 종류의] 두 意 識 이 竝 生 하는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논자( 無 二 意 識 竝 生 論 者 ) 를 上 座 部 (*Sthavirapāṣika, 상좌 슈리라타의 部 黨 )으로 평석하고서 이들은 무성이 비판논거로 제시한 經 을 전승하지 않았음을 전하 고 있는데(T43, 365b4f), 이는 經 量 部 로 자칭한 상좌 슈리라타의 전형적인 언사였다. 33) 뿐만 아니라 유가론 에서는 이미 인용하였듯이 알라야식이 존재한다면 二 識 俱 轉 의 과실이 있다 는 어떤 이의 힐난에 대해 이 때 알라야식은 作 意 와 根 境 에 [전후]차 별이 없기 때문에(다시 말해 不 明 了 性 이기 때문에) 二 識 俱 轉 은 과실이 되지 않는다 (주26)고 해명하였지만, 上 座 역시 前 生 法 인 等 無 間 緣 에 대해 논의하면서 동시에 함 께 일어나는 두 識 중 하나(이숙식)는 不 明 了 性 이기 때문에 一 時 의 二 識 並 起 를 부정 하는 것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 라고 해명하였던 것이다. 34) 그리고 제3증의 경우 二 識 俱 起 를 주장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眼 識 과 意 識 의 竝 生 ( 俱 生 )이 아닌 次 第 生 을 주장하는 한 意 識 은 과거(3찰나 전)의 色 을 경계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억의 일종으로 명료성의 직접지각( 現 量 )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는 비판으 로, 35) 이는 상좌 인식론에 대한 유부(중현/디파카라)의 전형적인 비판이었다. 예컨대 중 현은 根 境 과 심( 識 ) 심소의 異 時 繼 起 를 주장한 상좌에 대해 5 識 이 과거[의 경계대 상]을 소연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그것에 대한 직접지각( 現 量 覺 )이 가능한가? (T29, 374c3)라고 힐난하였으며, 디파카라 역시 비유자(Dārṣṭāntika)의 경우, 5 識 身 은 과거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체는 직접 지각되지 않는다(apratyakṣa) (ADV. p.47. 13-48. 2) 고 비난하였는데, 36) 유가론기 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神 泰 로부터 인용하고 있다. 而 轉 者, 謂 異 熟 體 有 情 本 事, 不 待 今 時 加 行 而 轉, 無 記 意 識, 及 可 了 知 所 緣 行 相, 樂 苦 受 等 相 應 意 識, 是 二 意 識, 應 一 身 中, 一 時 而 轉. 然 不 應 許, 經 相 違 故. 如 是 頌 言, 無 處 無 容 非 前 非 後 同 身 同 類 二 識 並 生. 又 不 應 許, 此 二 是 一, 自 性 別 故. 32)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와 무착과 중현, 그리고 세친 ( 불교학리뷰 15), pp.236-338 참조. 33)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一 心, pp.17-18 참조. 34) 순정리론 권19( 대정장 29, p.447상22-27), 然 彼 上 座 復 作 是 言 : 等 無 間 緣, 謂 前 生 法, 令 無 間 法 獲 得 自 體. 如 世 尊 說, 意 法 爲 緣, 生 於 意 識. 謂 意 爲 因, 法 爲 緣 故, 意 識 得 生. 然 無 一 時 二 識 並 起, 此 相 非 理, 不 明 了 故. 色 心 無 間, 有 色 心 生. 俱 是 前 生, 令 無 間 法 獲 得 自 體. ; 권 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一 心, pp.18-19 참조. 35)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4중18-20), 第 三 相 中 -- 謂 外 小 計 識 不 幷 生. 意 緣 色 時, 在 眼 識 後. 今 破 此 識 緣 過 去 色 境, 應 不 明 了. ; 유가사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1중 12-14)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23 神 泰 는 말하였다.: 薩 婆 多 (유부) 등의 경우 意 識 은 다음 [찰나] 5 識 의 경계대상을 반연 하지만, 이는 명료한 識 으로서 소연과 [시간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現 量 (pratyakṣa: 직접지 각)에 포함된다. 그러나 어떤 논사는 이미 과거의 경계대상을 반연하였다고 한 이상 現 量 이라 해서는 안 된다 고 탄핵하여 말하였다. 37) 神 泰 는 이처럼 二 識 不 俱 와 찰나멸론에 따른 지각론을 薩 婆 多 (Sarvāstivāda: 유부) 등 으로 돌리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과거(전 찰나)를 대상으로 한 인식을 직접지각이 라 할 수 없다고 탄핵한 어떤 논사 는 바로 중현 등 카슈미르 유부의 논사였다. 窺 基 역 시 유식이십론 제15송 釋 文 상에서 지각이 존재할 때 색 등의 현재대상 역시 모두 이 미 소멸하였다 (T31, p.76b24f)고 주장한 刹 那 論 者 를 薩 婆 多 等 으로 주석하였지만, 38) 調 伏 天 (Vinītadeva)은 이를 경량부 로 해설하였고, 39) 중현 또한 上 座 의 종의를 刹 那 의 實 法 (T29, p.434a22), 그의 일파를 一 刹 那 宗 (627c14), 唯 說 有 一 刹 那 宗 (p.629a24f) 등으로 호칭하였다. 3. 제4 有 種 子 性 證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종자성(bījatvaṃ)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1 6 識 身 은 [인과상속의] 展 轉 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같이 말한 까닭이 무엇인가? 善 의 무간으로부터 不 善 性 이 생겨나고, 불선과 무간에 다시 선성이 생겨나고, 두 가지 (선 불선)의 무간으로부터 無 記 性 이 생겨나고, 劣 界 와 무간에 中 界 가 생겨나고, 中 界 와 무간에 妙 界 가 생겨나고, 이와 마찬가지로 妙 界 와 무간에 [ 中 界 ] 나아가 劣 界 가 생겨나고, 유루와 무간에 무루가 생겨나고, 무루와 무간에 유루가 생겨나고, 세간과 무간에 출세간이 생겨나고, 출세간과 무간에 세간이 생겨나지만, 이와 같은 특상의 종자성이 존재한다는 것 36) 상좌 슈리라타의 인식이론에 대해서는 권오민, 불교철학의 학파적 복합성과 독단성(2) : 陳 那 의 觀 所 緣 緣 論 에서의 외계대상 비판의 경우 ( 불교연구 제33호, 2010), pp.63-80 참조. 37)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4중25-27), ( 泰 云 ) 薩 婆 多 等 意 識, 緣 次 五 識 境 界, 現 量 所 收. 是 明 了 識, 以 緣 近 故. 有 師 彈 云, 旣 緣 過 去, 應 非 現 是 ( 是 量 ). 38) 유식이십론술기 권하( 대정장 43, p.1000상24-25), 刹 那 論 者, 有 此 覺 時. 述 曰. 下 破 薩 婆 多 等. 此 等 執 境 及 心 心 所 皆 念 念 滅, 名 刹 那 論. 39) 山 口 益, 世 親 唯 識 原 典 解 明 (동경: 法 藏 館, 1953), p.101ff.
24 佛 敎 學 報 第 70 輯 은 불합리한 것이다. 2 또한 그러한 諸 識 은 [ 無 心 定 에 들면] 오랫동안 단절되어 相 續 ( 所 依 身 )이 오래도록 流 轉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불합리한 것이다. 40) 제4증은 경량부의 6 識 종자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遁 倫 또한 本 證 의 취지를 이같이 규정하였다. 41) 즉 6 識 은 전후 상속이 차별되어 이것의 종자설을 주장할 경우, 선 심 직후 불선심이 생겨났다고 할 때, 이는 전 찰나의 선심 중에 존재한 불선심의 종자로 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해야 하지만, 동일한 마음에 선과 불선이 공존한다는 것은 모순일 뿐더러 無 想 滅 盡 定 과 같은 無 心 位 에 들 때 단절되기 때문에 이와는 별도의 실체로서 상속이 차별되지 않고 단절되는 일도 없는 알라야식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無 着 은 이른바 所 熏 四 義 로 일컬어지는 종자식(즉 알라야식)의 네 특성( 堅 住 性 無 記 性 可 熏 性 相 應 性 )을 열거한 후 1 6 識 [의 전후 상속]은 세 가지( 所 依 所 緣 作 意 )가 차별되고 모순되기 때문에, 2 [전후의] 두 찰나는 동시에 존재(sahabhū)하지 않기 때문에, 3 [동일] 種 類 (jāti) 라는 例 의 다른 경우는 과실을 성취하기 때문에 [ 能 熏 (즉 종자)과] 상응(saṃbandha)하는 일이 없다 고 언명하였는데, 42) 無 性 은 이를 순서대로 1 六 識 展 轉 相 熏 說, 2 前 念 熏 後 念 說, 3 識 類 受 熏 說 로 정리하였다. 43) 여기서 1 六 識 展 轉 相 熏 說 은 6 識 이 無 間 으로 展 轉 상속하며 [전후찰나로] 훈습한다 는 주장이다. 이는 전 찰나의 마음이 종자가 되어 후 찰나의 마음을 낳는다는 - 말하자면 6 識 [의 전후찰나]가 바로 종자( 能 熏 )이고 훈습처( 所 熏 )라는 - 경량부 일반의 학설로, 44) 40) 유가사지론 ( 대정장 31, p.579중23-하2),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有 種 子 性 不 應 道 理? 謂 六 識 身 展 轉 異 故. 所 以 者 何? 從 善 無 間, 不 善 性 生 ; 不 善 無 間 復 善 性 生 ; 從 二 無 間 無 記 性 生 ; 劣 界 無 間 中 界 生 ; 中 界 無 間 妙 界 生 ; 如 是 妙 界 無 間 乃 至 劣 界 生 ; 有 漏 無 間 無 漏 生 ; 無 漏 無 間 有 漏 生 ; 世 間 無 間 出 世 生 ; 出 世 無 間 世 間 生, 非 如 是 相 有 種 子 性 應 正 道 理. 又 彼 諸 識 長 時 間 斷, 不 應 相 續 長 時 流 轉. 是 故 此 亦 不 應 道 理. 밑줄의 현양론 은 六 轉 識 身 各 別 異 故. ( 대정장 31, p.565중22f); 잡집론 은 謂 六 轉 識 身 各 各 異 故. (동 p.701하6f). 여기서 劣 界 中 界 妙 界 는 神 泰 에 의하면 욕계 등의 3계, 혹은 下 善 中 善 上 善.( 대정장 42, p.594하5-6) 41)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4중29-하2), 第 四 相 中 意, 謂 經 部 師 等 計, 六 轉 識 能 持 於 種. 今 以 諸 心 別 異, 云 何 持 種? 42) 섭대승론 本 ( 玄 奘 역) 권상( 대정장 31, p.135상29-중1) 六 識 無 相 應 三 差 別 相 違 二 念 不 俱 有 類 例 餘 成 失. ; 섭대승론 ( 眞 諦 역) 권상( 대정장 31, p.115하7-8), 六 識 無 相 應 三 差 別 相 違 二 念 不 俱 有 餘 生 例 應 爾. 범어표기는 長 尾 雅 人, 攝 大 乘 論 和 譯 注 解 上, p.161f에 의함. 43) 섭대승론 무성석 권2( 대정장 31, p.389하16-18), 且 有 爾 所 熏 習 異 計. 或 說 六 識 展 轉 相 熏. 或 說 前 念 熏 於 後 念. 或 說 熏 識 刹 那 種 類. 44) 窺 基 는 성유식론 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제1 持 種 證 에서 3 識 類 受 熏 說 은 經 部 異 師 ( 대정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25 구사론 상에서 유부 得 論 의 대안으로 제시된 세친의 종자설이 이러한 것이었고, 유 가론 의 제4증은 이에 대한 비판이었다. (제1증의 제3 因 은 3설 비판) 즉 세친은, 名 色 (=5온)이 자신의 결과를 낳을 때 갖는 展 轉 과 隣 近 의 功 能 이 種 子 로 서 이것이 제법의 生 因 45) 이라는 종자설(T29, p.22c11-13; AKBh., 64. 5f)에서 종자의 실 체 - 이는 선 등 결과의 總 體 인지, 別 體 인지, 同 類 인지 - 를 묻는 중현에게 이같이 해명하 고 있다. 天 愛 (devānām priya: 어리석은 이)여! 그대는 種 子 性 (bījabhāva)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 하였다. 전 찰나의 마음과 함께 생겨난 思 의 차별로 인해 후 찰나 마음의 功 能 이 [전 찰나의 마음과는] 차별되어 일어나니, 바로 후 찰나의 마음 상에 생겨난 功 能 의 차별을 종자 라고 말한 것이다. 즉 이러한 [종자] 相 續 의 轉 變 과 差 別 로 말미암아 미래의 결과가 생겨나는 것으로, [그대가 힐난한] 뜻에 대해 설하면 이러하다.: 不 善 心 중에도 善 心 에 의해 引 起 된 展 轉 과 隣 近 의 功 能 의 차별이 존재하니, 이를 종자로 삼아 이와 무간에 선법이 생겨날 수 있다. 혹은 善 心 중에도 不 善 心 에 의해 引 起 된 展 轉 과 隣 近 의 功 能 의 차별이 존재하니, 이 를 종자로 삼아 이와 무간에 불선법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46) 이에 대해 중현은 功 能 差 別 로서의 종자와 [현행의] 선 불선심이 別 體 가 아니라고 한다면 선심이 불선심의 종자가 되고 불선심이 선심의 종자가 되며, 나아가 무루심 중에 도 유루의 공능차별이 존재한다고 해야 하며(그럴 경우 무루심도 3 有 를 초래하고 번뇌 장 43, p.357상29)로, 2 前 念 熏 後 念 說 은 上 座 部 ( 無 性 은 경량부, 즉 상좌부 중의 經 爲 量 者 ) 로(p.358중2-4)로 평석하고서, 1 六 識 展 轉 相 熏 說 에 대해 경량부를 막고 비유사(즉 經 部 異 師 )를 비판한 것 ( 대정장 43, p.358상9f)이라 해설하고 譬 喩 師 인 根 本 師 구마라라타(경부 본사), 經 部 毘 婆 沙 를 지은 상좌 슈리라타, 다만 경량부라고 이름하는 이 등의 세 종류의 경 량부(동, p.358상8-14)에 대해 논설하고 있다. 이는 필경 이것이 경량부 일반의 종자설이기 때 문이었을 것이다. 45) 여기서의 名 色 (혹은 六 處 )은, 思 가 훈습된 相 續 (cetanābhāvitāḥ saṃtatayaḥ)이 미세하게 점 차적으로 轉 變 差 別 되어 福 業 이 增 長 한다 는 先 궤범사(pūrvācārya)의 종자설( 대정장 29, p.69중14-20; AKBh., 197. 14-18)에서 보듯이, 다만 유정의 相 續 을 의미할 뿐 종자의 주처는 어디까지나 心 識 즉 6 識 이다. (후술; 보다 자세한 내용은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일심 주 10 참조) 46) 순정리론 권12( 대정장 29, p.397중29-하6), 天 愛! 非 汝 解 種 子 性. 前 心 俱 生 思 差 別 故, 後 心 功 能 差 別 而 起. 卽 後 心 上 功 能 差 別, 說 爲 種 子. 由 此 相 續 轉 變 差 別, 當 來 果 生. 此 中 意 說 : 不 善 心 中, 有 善 所 引 展 轉 鄰 近 功 能 差 別, 以 爲 種 子, 從 此 無 間 善 法 得 生. 或 善 心 中 不 善 所 引 展 轉 鄰 近 功 能 差 別, 以 爲 種 子, 從 此 無 間 不 善 法 生.
26 佛 敎 學 報 第 70 輯 의 生 因 이 되어야 한다), 번뇌심 중에도 무루의 종자가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비 판한다. 47) 유가행파에서는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이숙식(알라야식)을 6식과는 별체로 서 설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중현은 상좌 슈리라타의 舊 隨 界 (*pūrvānudhātu) -- 그는 선대궤범사(혹은 세친) 의 종자설( 思 熏 習 의 相 續 轉 變 差 別 說 )은 마치 광대(배우)가 服 飾 (의상)을 바꿔 입은 것 처럼 이와 언사만 다를 뿐이라고 하였다 -- 에 대해서도 동일한 형식으로 비판한다. 즉 어떠한 차별성도 인정되지 않는, 그리하여 더 이상 세분되지 않는 동일 種 類 의 마음 즉 一 心 (이는 다만 6 識 의 한 양태임) 중에 種 種 界 가 俱 有 하여 可 愛 (선) 不 可 愛 (불선) 등 일체 제법의 원인이 된다 48) 는 주장은 일체법의 相 雜 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저 上 座 는 어찌 一 心 (ekacitta)은 種 種 界 (nānādhātu)를 갖추고 있다. 一 心 에 다수의 界 (bahudhātu)가 훈습되어 있다 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는 이치 상 이루어질 수 없기 때 문이다. 즉 聖 敎 중에서 인정하는 勝 義 法 은 오로지 하나의 본질( 體 )을 갖는 것이지 다수의 본질이 集 成 된 것이 아니다. 만약 마음 자체는 단일할지라도 그 안에 다수의 界 가 존재한 다 고 말한다면, 다수의 界 는 마음과 본질적으로 어떠한 차이도 없기 때문에 界 는 마땅히 한 가지가 되어야 하며, 마음은 다수의 界 와 본질적으로 어떠한 차이도 없기 때문에 마음 은 마땅히 다수가 되어야 한다. [마음과 다수의 界 가 차별이 없는 것이라면] 온갖 界 도 그 자체 어떠한 차이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界 ]와 일체[의 界 ]의 본질이 서로 뒤섞인 다고 해야 하니, 이러한 [그의] 주장은 끝내 올바른 이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49) 나아가 성유식론 에서 6 識 종자설 중 識 類 受 熏 說 에 대해 識 의 種 類 (*jāti: samānya, 일반성)가 선성이나 악성이라면 [그 밖의 다른 성질의] 能 熏 (종자)을 수납하지 못한다 고 해야 하며, 무기성이라면 선 악의 마음이 현행할 때 이러한 무기심은 존재하지 않을 47) 순정리론 권12( 대정장 29, p.397하6-28). 중현의 이 같은 종자설 비판은 稱 友 (Yaśomitra) 의 구사론소 (AKVy., 148-149; 和 譯 稱 友 俱 舍 論 疏 2, pp.92-95)에서도 인용된다. 吉 元 信 行 (1985), 說 一 切 有 部 種 子 說 批 判, pp.114-115; 加 藤 宏 道 (1987), 經 量 部 種 子 說 關 異 說 是 非, pp.307-308 참조. 48) 순정리론 권18( 대정장 29, p.441하2-6), 又 於 一 念 一 心 體 中, 無 有 細 分, 如 何 能 牽 愛 及 非 愛 俱 相 違 果? 定 差 別 因, 不 可 得 故. 49) 순정리론 권18( 대정장 29, p.442중2-7), 又 彼 上 座, 如 何 可 執 言, 一 心 具 有 種 種 界. 熏 習 一 心 多 界. 理 不 成 故. 非 聖 敎 中 許 勝 義 法, 有 唯 一 體, 多 體 集 成. 若 言 有 心 其 體 雖 一, 而 於 其 內, 界 有 衆 多, 多 界 與 心, 體 無 異 故, 界 應 成 一. 心 與 多 界, 體 無 異 故, 心 應 成 多. 諸 界 相 望, 體 無 異 故, 一 與 一 切, 體 應 相 雜. 此 執 終 非 理.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27 것이기에 이러한 種 類 [의 識 ]은 끊어져야 한다. 현행의 識 과 종자식인 동일 種 類 의 識 이 별도의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6 識 의 두 양태라고 하는 한 이상] 도덕적 성질은 동 일해야 하기 때문에 현행의 識 ( 識 事 )이 선 악인데 동일 種 類 의 識 ( 識 類 )이 무기일 수는 없다 (필자취의) 50) 고 비판한 것도 중현의 비판과 동일한 논리이다. 그리고 6 識 은 [ 無 心 定 등에서] 단절되기 때문에 종자식이 될 수 없다 는 본 논증의 두 번째 논거는 사실상 제7증의 내용이기 때문에 거기서 상론하기로 한다. 4. 제5 業 用 差 別 證 과 제6 身 受 差 別 證 [제5증]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諸 識 이 俱 轉 하는 일이 없다면 [ 諸 識 의] 業 用 의 차별도 불 가능하다고 한 것인가? [ 諸 識 에는] 간략히 설하면 네 종류의 業 이 있으니, 첫째는 器 (bhājana, 器 世 界 )를 요별하 는 업이며, 둘째는 所 依 (āśraya, 有 根 身 과 일체 種 子 )를 요별하는 업(이상 제8식의 업용)이 며, 셋째는 我 (aham)를 요별하는 업(제7식의 업용)이며, 넷째는 경계대상(viṣaya)을 요별하 는 업(6 識 의 업용)이다. 이러한 모든 요별은 찰나찰나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 에 一 識 이 일찰나에 이와 같은 등의 [네] 업용의 차별을 갖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51) [제6증]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身 受 (kāyiko'nubhava: 신 체상의 느낌)의 차별이 불합리하다는 것인가? 어떤 이가 혹 참답게( 如 理, yoniśaḥ) 사유( 思 [ 慮 ])할 때나 참답지 않게 [사유할] 때, 혹은 사유( 思 慮 )하지 않을 때, 혹은 尋 伺 가 수반될 때, 혹은 선정에 들었을 때나 들지 않았을 때, 그 때 [ 所 依 ] 身 상의 온갖 느낌( 領 受 )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만]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수로서 種 種 의 차별이 있다. [만약 알라야 識 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마땅 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지만, 지금 바로 획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코 알라 야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52) 50) 성유식론 권3( 대정장 31, p.15하12-15), 又 執 識 類 何 性 所 攝? 若 是 善 惡, 應 不 受 熏. 許 有 記 故. 猶 如 擇 滅. 若 是 無 記, 善 惡 心 時, 無 無 記 心, 此 類 應 斷. 非 事 善 惡 類 可 無 記, 別 類 必 同 別 事 性 故. 51)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하2-7), 何 故 若 無 諸 識 俱 轉, 業 用 差 別 不 應 道 理? 謂 若 略 說 有 四 種 業. 一 了 別 器 業. 二 了 別 依 業. 三 了 別 我 業. 四 了 別 境 業. 此 諸 了 別 刹 那 刹 那 俱 轉 可 得. 是 故 一 識 於 一 刹 那, 有 如 是 等 業 用 差 別, 不 應 道 理. 52)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하8-12),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身 受 差 別 不 應 道 理? 謂
28 佛 敎 學 報 第 70 輯 6 識 의 활동(즉 了 別 )과는 무관하게 器 世 間 이나 所 依 (āśraya: 有 根 身 과 일체 種 子 ) 혹 은 자아에 대한 요별이 일어나며(그러나 명료하지 않다), 身 受 도 일어나기 때문에 -- 더 욱이 6식의 활동이 정지되는 무심정에서조차-- 이와는 별도의 識 (알라야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만으로 경량부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제5증은 諸 識 俱 轉 (동시 생기/활동)을 부정할 경우의 난점을 적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제 3증과 동일하며, 따라서 여기서의 대론자는 二 識 俱 生 을 비난한 제2증의 어떤 이 (즉 경 량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遁 倫 과 窺 基 역시 제5증을 알라야식의 직접적 논증 이 아니라 二 識 不 俱 라는 外 難 의 해명을 통한 간접방식의 논증으로 이해하였다. 53) 그들은, 제8식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諸 識 의 竝 生 도, 一 識 이 일어날 때 4업의 동시생 기( 一 時 頓 有 )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리적 타당성( 道 理 )도, 어떤 한 경계대상에 대해 [요별의] 업을 일으킬 때 반드시 찰나 찰나 네 업을 [함께] 획득 한다 는 경설도 어기게 된다 는 자파의 논의에 대해 소승에서는 이미 대승교( 經 )를 불신하고 일찰나 중의 4업 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이 힐난할 수 없다 54) 면서 별도의 唯 識 比 量 을 제 시하고 있다. 窺 基 의 전언대로 경량부가 유가행파의 알라야식설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였다면(주9) 여기서 대승경을 불신한 소승 은 경량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6증의 경우, 55) 성유식론 상에서 여러 가지 身 受 를 통한 이숙식(알라야식) 如 有 一, 或 如 理 思 ; 或 不 如 理 ; 或 無 思 慮 ; 或 隨 尋 伺 ; 或 處 定 心 ; 或 不 在 定, 爾 時 於 身 諸 領 受 起, 非 一 衆 多, 種 種 差 別. 彼 應 無 有, 然 現 可 得. 是 故 定 有 阿 賴 耶 識. 53) 유가론기 권13상( 대정장 42, p.594하20-21); 유가사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1 하12-13), 第 五 相 者, 此 亦 非 正 立 第 八, 而 破 於 他. 亦 因 他 難, 解 難 之 由, 遂 成 第 八. 54) 유가론기 권13상( 대정장 42, p.595상5-11); 유가사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p.171 하25-172상2), 若 無 第 八, 諸 識 不 得 並 生, 而 此 四 業 不 可 一 識 一 時 頓 有. 豈 不 違 經 及 於 道 理? 小 乘 若 信 大 敎 及 一 刹 那 中 有 此 四 業, 可 如 此 難. 他 ( 宗 ) 旣 不 信 經, 及 不 許 有 四 業 一 刹 那 中 而 現 可 得, 何 得 如 此 而 起 難 耶? 述 曰. 然 以 道 理 逐 之, 必 許 有 此 四 業, 及 信 大 乘 敎, 而 得 成 立. 以 理 逐 者, 旦 立 唯 識 比 量 云 --(하략) 55) 遁 倫 / 窺 基 는, 예컨대 사리불이 耳 識 이 부재하는 선정 중에서 홀연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 觸 에 따른 [ 身 ] 受 를 領 納 하였는데, 제8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사실은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제8 識 논증의 正 論 (T42, 595b8-11; 대정장 43, p.172중1-4)이라 하였는데, 이 러한 논의는 대비바사론 권185( 대정장 27, p.929중29-하3) 상에서 비나야에서 존자 대 목건련이 나는 무소유처정에 들어 龍 象 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고 하 였는데, 이는 선정 중에 들은 것인가, 선정에서 일어나 들은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의된다. 유 부 정설은 선정에서 일어나 들은 것이지 선정 중에 들은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유가행파에 서는 耳 識 ( 率 爾 心 )으로 듣고 나서 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정장 30, p.650하 20-24; 대정장 43, p.419하27-28)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29 의 논증은 제2 異 熟 心 證 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선정 중에 있든 선정 중에 있지 않든, 별도의 思 慮 가 존재할 때든 思 慮 가 존재하지 않을 때(즉 무심위)든 이치 상 다수의 身 受 가 생겨나는 일이 있으니, 만약 이것(이숙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出 定 한] 이후 신체상에 쾌적함이나 혹은 노곤함이 존재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진실의 이숙심이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태( 禪 定 位 나 思 慮 가 존 재하지 않는 상태)에 어찌 이러한 身 受 가 존재하겠는가? 56) 窺 基 는 성유식론 의 異 熟 識 證 에서 인용한 異 熟 心 이 존재하여 선악업이 초래된다 ( 有 異 熟 心, 善 惡 業 感 ) 는 경설(T31, p.16a16)은 [ 유가사지론 ] 8 證 중 身 受 [ 差 別 ] 證 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량부와 유부( 薩 婆 多 )에 대한 비판의 의도가 있다고 하였지만, 57) 유부는 과거로 낙사한 업이 이숙과를 낳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恒 遍 의 이숙식의 존재 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경량부의 경우 과거 無 體 를 주장할뿐더러 이 같은 이숙식을 6 識 에서 구하기 때문에 身 受 와 관련된 논증 역시 경량부에 대한 비판이 전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窺 基 는 성유식론 의 異 熟 識 證 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유가론 의 身 受 差 別 證 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 하였다. 58) 5. 제7 處 無 心 定 證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無 心 定 에 처하는 것은 불합리하 다고 한 것인가? 無 想 定 혹은 滅 盡 定 에 들 때 목숨을 버릴 때처럼 識 은 몸을 떠난다고 해야 하는 것으로, [실제] 몸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그 때 識 은 몸을 떠나지 않는다 고 설하였기 때문이다. 59) 56) 성유식론 권4( 대정장 31, p.16상25-29), 又 在 定 中, 或 不 在 定, 有 別 思 慮, 無 思 慮 時, 理 有 衆 多 身 受 生 起. 此 若 無 者, 不 應 後 時 身 有 怡 適, 或 復 勞 損. 若 不 恒 有 眞 異 熟 心, 彼 位 如 何 有 此 身 受? 57) 성유식론술기 권4 本 ( 대정장 43, p.359중11-12), 第 二 異 熟 心. 別 ( 引 ) 經 等 可 知. 然 此 中 意, 破 經 部 薩 婆 多 皆 得. 卽 八 證 中 身 受 證 故. 58) 성유식론술기 권4 本 ( 대정장 43, p.360중15-16), 卽 是 解 八 證 中 身 受 文 也. 無 此 解 者, 難 解 彼 文.
30 佛 敎 學 報 第 70 輯 본 논증은 유가론 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중 가장 소략한 형태로 불분명하기까지 하 다. 즉 불교전통에서 목숨(āyus: 壽 )과 체온(uṣman: 煖 )과 識 (vijñāna)은 불가분의 관계로 ( 잡아함 제568경; 중아함 제210; 211경 등), 만약 멸진정과 같은 無 心 定 에 의식이 존 재하지 않는다면 목숨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혹은 死 者 와 동일하다 )고 해야 한다. 60) 이에 따라, 혹은 [멸진정에 들 때라도] 識 은 몸을 떠나지 않는다 61) 는 聖 敎 설에 따라 유 가행파에서는 滅 定 有 心 說 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지만, 上 座 일파의 비유자/경량부 역 시 그러하였다. 譬 喩 論 者 는 이같이 말하였다.: 멸진정 중에서는 오로지 受 想 만이 소멸하니, 어떠한 경우에도 無 心 의 유정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멸진정과 목숨이 끊어진(죽은) 상태는 다르 기 때문이며, 경에서 멸진정에 들더라도 識 은 몸을 떠나지 않는다 고 설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목숨과 체온과 의식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62) 그리고 그들은 멸진정에서 소멸하지 않는 미세한 마음을 6 識 의 한 양태인 一 心 즉 소 59)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하13-16),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處 無 心 定 不 應 道 理? 謂 入 無 想 定 或 滅 盡 定, 應 如 捨 命, 識 離 於 身, 非 不 離 身. 如 世 尊 說, 當 於 爾 時 識 不 離 身 故. 60) 아비달마잡집론 과 현양성교론 에는 이 같은 내용이 더해져 있다.: 云 何 處 無 心 定, 不 可 得 耶? 如 世 尊 說 : 入 無 想 定 及 滅 盡 定, 當 知! 爾 時 識 不 離 身. 若 無 阿 賴 耶 識, 爾 時 識 應 離 身. 識 若 離 身, 便 應 捨 命. 非 謂 處 定. ( 대정장 31, p.701하25-28); 問 :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諸 無 心 定, 不 可 得 耶? 答 : 如 薄 伽 梵 說 : 入 無 想 定 及 滅 盡 定, 當 知! 爾 時 識 不 離 身. 若 無 此 識, 爾 時 識 應 離 身. 識 若 離 身, 便 應 捨 命. 非 謂 在 處. ( 대정장 31, p.565하13-16), 61) 識 不 離 身 (vijñānaṃ cāsya kāyād anapakrāntaṃ bhavati: 長 尾 雅 人, 앞의 책, p.231; 袴 谷 憲 昭, 앞의 책, p.336) 의 경설은, 本 庄 良 文 ( 傳 大 業 分 別 經 法 施 比 丘 尼 經, 1983, p.97; p.108)에 의하면 중아함 제210 法 樂 比 丘 尼 經 의 異 本 인 法 施 比 丘 尼 經 (*Bhikṣuṇīdharmadinnāsūtra) (L. 슈미트하우젠에 의하면 근본설일체유부 전승)으로, 티베트 전승인 Śamathadeva의 俱 舍 論 註 (Abhidharmakoṣopāyikā nāma Ṭīkā) ( 大 谷 目 錄 5595, 東 北 目 錄 4094)에서 회수한 경설은 이러하다.: 멸진정에 든 이는 身 行 이 멸하고 語 行, 意 行 이 멸하지만, 목숨과 체온은 멸하지 않고, 諸 根 은 敗 壞 하지 않으며, 識 은 몸을 떠나지 않 는다(rnam par śes pa lus las ḥdaḥ bar mi ḥgyur ro). 이 경문은 성유식론 상에서의 알라야식 존 재증명 제9 滅 定 證 중에서 완전하게 인용된다.( 대정장 31, p.17하25-28), 62) 순정리론 권13( 대정장 29, p.403상21-24), 譬 喩 論 者 作 如 是 言 : 滅 盡 定 中, 唯 滅 受 想, 以 定 無 有 無 心 有 情. 滅 定 命 終, 有 差 別 故,; 經 說 入 滅 定, 識 不 離 身 故,; 又 言 壽 煖 識 互 不 相 離 故. 대비바사론 권151( 대정장 27, p.772하21-24), 謂 譬 喩 者 分 別 論 師 執 : 無 想 定, 細 心 不 滅. 彼 作 是 說 : 若 無 想 定 都 無 有 心, 命 根 便 斷, 應 名 爲 死, 不 名 在 定. ; 동 권152( 대정장 27, p.774상14-17), 謂 譬 喩 者 分 別 論 師 執 : 滅 盡 定, 細 心 不 滅. 彼 說 : 無 有 有 情 而 無 色 者, 亦 無 有 定 而 無 心 者. 若 定 無 心, 命 根 應 斷, 便 名 爲 死, 非 謂 在 定.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31 연과 행상을 갖지 않은 동일 種 類 의 마음( 一 類 心, *ekajātīyacitta: T29, p.771c21f) 이라 하 였던 것이다. 63) 본 논증에는 이 같은 전후 사정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데, 이것의 후속구 인 듯한 문구가 本 地 分 三 摩 呬 多 地 중에 언급되고 있다. 문: 멸진정 중에서는 심 심소법이 모두 다 滅 盡 하는데, 어떻게 [그 때] 識 은 몸을 떠나 지 않는다 고 설한 것인가? 답: [그 때] 變 壞 하지 않은 ( 손상되지 않은 ) 諸 色 根 중에 능히 轉 識 (pravṛtti-vijñāna: 現 行 識 )의 종자를 執 持 한 알라야식이 존재하여 멸진하지 않기 때문으로, 後 時 ( 出 定 할 때) 그 러한 법( 心 行, 즉 受 想 )은 이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64) 遁 倫 / 窺 基 가 본 논증을 다만 한 종류의 意 識 과 滅 定 無 心 說 을 주장한 本 經 部 와 薩 婆 多 (유부)를 비판한 것 이라 주석한 것 65) 도 논증의 소략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더 라도 그들은 거칠고 미세한 두 종류의 意 識 을 설정하여 미세한 의식이 멸진정 중에 존재 한다는 비유자/경량부의 주장( 滅 定 有 心 說 )에 대해서도 별도로 비판하고 있다. 宗 : 제6의식은 無 想 定 등의 제 상태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因 : 이러한 상태 중에 [의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6 識 중 하나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喩 : 5 識 등이 그러한 것처럼. 또한 만약 [무심정 중에 6 識 에 포섭되는] 識 이 존재한다면, 결정코 觸 도 존재할 것이며, 촉이 존재한다면 필시 受 想 思 도 존재할 것인데, 어찌 이러한 [무심]정 중에 [6] 識 이 존 63)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일심, pp.19-29를 참조할 것. 64) 유가사지론 권12( 대정장 30, pp.340하27-341상1), 問 : 滅 盡 定 中, 諸 心 心 法 並 皆 滅 盡. 云 何 說 識 不 離 於 身? 答 : 由 不 變 壞 諸 色 根 中, 有 能 執 持 轉 識 種 子, 阿 賴 耶 識, 不 滅 盡 故. 後 時 彼 法 從 此 得 生. 이는 L. Schmithausen(앞의 책, p.18; n.146)에 의해 알라야식 기원의 도입문 (initial passage)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검토는 김성철, 알라야식의 기원에 관한 최근의 논의 ( 불교학연구 제26호, 2010); 박창환, 알라야식의 형성과정에 미친 종자설의 영향 (2010)을 참고할 것. 65) 유가론기 권13상( 대정장 42, p.595하9-15), 第 七 相 中 處 無 心 定 不 應 道 理 乃 至 識 不 離 身 故 者. 就 十 八 部, 總 有 二 類. 其 末 經 部 薩 婆 多 等, 但 立 一 種 意 識, 滅 定 中 無. 餘 十 七 部 立 二 種 意 識. 今 此 論 主 正 破 無 者, 此 有 二 義. 一 違 比 量. 二 違 聖 敎. 應 立 量 云.--(하략) ; 유가사 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2중18-23) 論 云 : 處 無 心 定 不 應 道 理, 乃 至 不 離 身 故 者. 此 有 二 義. 一 違 比 量. 二 違 聖 敎. 諸 部 之 中, 有 許 有 二 意 識. 一 麤, 二 細. 細 者, 此 定 有 之. 今 此 中 破. 如 薩 婆 多, 不 立 細 識 者. 應 立 量 云.--(하략) ( 유가론기 의 末 經 部 는 필경 本 經 部 의 誤 寫 일 것이다.)
32 佛 敎 學 報 第 70 輯 재한다고 하겠는가? 66) 이러한 비판은 [ 멸진정에서 몸을 떠나지 않는 識 = 意 識 (혹은 第 六 識 ) 이라는 이설 비 판에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하는] 섭대승론 과 성유식론 의 제10 滅 定 證 에서도 이 루어지지만, 67) 순정리론 에서는 譬 喩 論 者 의 멸정유심설(주62) 비판으로, 68) 혹은 구 사론 과 성업론 에서는 世 友 ( 經 部 異 師 )(혹은 世 友 로 비정되는 어떤 이 )의 滅 定 有 心 論 에 대한 비판으로 논설되고 있는 것이다. 69) 이렇듯 다수의 논서 상에서 언급된 滅 定 有 心 ( 細 意 識 =의식 중의 異 熟 識 )설 비판이 유 가론 상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6. 제8 命 終 時 識 證 어떠한 이유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命 終 할 때의 識 ( 死 滅 : vijñānacyuti)이 불합리하다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임종할 때 혹 어떤 이(악을 지은 이)는 신체 상부로부터, 혹 어떤 이(선을 지은 이)는 신체 하부로부터 識 이 점차 떠남에 따라 [몸이] 점차 차가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意 識 이 아니니, [의식은] 어느 때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알라야식이 존재하 여 능히 몸을 執 持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만약 [몸을] 捨 離 한다면 [그러한] 신체 의 부분은 차가워지고 무감각( 無 覺 受 )해지지만, 意 識 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 에 만약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命 終 할 때의 識 도] 불합리한 것이다. 70) 앞서 논의하였듯이 6 轉 識 은 執 受 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冷 觸 (체온의 상실)이나 命 66) 유가론기 권13상( 대정장 42, pp.595하29-596상4), 若 立 有 心 者, 應 破 ( 立 ) 量 云. 第 六 意 識, 無 想 定 等, 諸 位 中 應 無 ( 宗 ). 在 此 位 中 於 六 識 內 隨 一 攝 故 ( 因 ). 如 五 識 等 ( 喩 ). 又 若 有 識 決 定 有 觸. 若 有 觸 必 有 受 想. 如 何 乃 言 此 定 有 識. 此 量 旣 成. 小 執 破 訖. 違 經 違 理, 故 成 第 八. ; 유가사지론약찬 권13( 대정장 43, p.172하8-12). 67) 섭대승론 권상( 대정장 31, p.137상6-11); 성유식론 권4( 대정장 31, p.18중14-17). 68) 순정리론 권13( 대정장 29, p.403중21-26). 69) 구사론 권5( 대정장 29, pp.25하28-26상3); 성업론 ( 대정장 31, p.784상7-9). 70) 유가사지론 권51( 대정장 30, p.579하17-22), 何 故 若 無 阿 賴 耶 識, 命 終 時 識 不 應 道 理? 謂 臨 終 時, 或 從 上 身 分, 識 漸 捨 離, 冷 觸 漸 起. 或 從 下 身 分. 非 彼 意 識, 有 時 不 轉. 故 知 唯 有 阿 賴 耶 識 能 執 持 身. 此 若 捨 離, 卽 於 身 分 冷 觸 可 得, 身 無 覺 受. 意 識 不 爾. 是 故 若 無 阿 賴 耶 識, 不 應 道 理.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33 終 의 조건일 수 없다. ( 冷 觸 은 識 이 執 受 를 버릴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숙면이나 기절, 무심정 등 6 識 이 몸을 떠날 때에는 몸이 차가워지지 않는다.) 즉 命 終 할 때의 識 은 [ 根 境 과 作 意 에 차별이 없는] 최초의 結 生 識 (주26)과 마찬가지로 경계대상을 인식하는 것 이 아니기 때문에 意 識 도 아니다. 이에 따라 성유식론 에서는 結 生 ( 受 生 )과 命 終 의 識 을 生 死 心 證 이라는 하나의 논증으로 구성하고 있다.(T31, p.17a13-22) 본 논증의 비판대상 역시 상좌일파의 命 終 心 =의식 [중 동일 種 類 의 마음] 이다. 즉 성 유식론 의 제6 生 死 心 證 에서는 태어나고 죽는 등의 상태에도 행상과 소연을 모두 알 수 없는 동일 種 類 의 미세한 意 識 이 [요별의 거친 意 識 과는] 별도로 존재한다 는 어떤 부파( 有 餘 部 )의 주장을 인용하고서 세간상식( 極 成, [loka]prasiddha)의 意 識 은 이와 같 지 않기 때문에(다시 말해 차별적이고 거칠뿐더러 소연과 행상을 갖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에), 이는 바로 제8 識 이라고 비판 논증하였는데, 71) --이는 無 着 이 결생의 和 合 識 이 일체종자를 지닌 意 識 이라면 그것은 알라야식의 異 名 (paryāya)이라고 논평한 것 (T31, 136a5-8)과도 궤를 같이한다.-- 窺 基 는 여기서의 어떤 부파 의 주장을 거칠고 미 세한 두 意 識 의 幷 生 을 주장한 上 座 部 本 計 로 평석하였다. 72) 유가사지론 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명의 기본형식은 알라야식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은 불합리(asaṃbhava: 不 應 道 理 )하다 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2 最 初 生 起 證 은 비 록 이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을지라도 알라야식의 존재를 주장할 경우 二 識 俱 轉 의 과 실을 범한 것 이라는 어떤 이의 비난에 대해 그것이 과실이 아님을 해명한 것이며, 제3 증과 제5증은 앞서의 어떤 이처럼 諸 識 의 俱 轉 을 부정할 경우 意 識 은 明 了 性 (spaṣṭatva, 지각성)을 획득할 수 없고, 6 識 의 활동과는 관계없이 항상 일어나는 기세간과 소의신과 종자, 자아에 대한 인식도 일어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神 泰 는 제2, 제3증을 알라야식에 관한 직접적인 논증( 正 證 )이 아닌 外 難 (어떤 71) 성유식론 권3( 대정장 31, p.17상10-13), 有 餘 部 執 : 生 死 等 位, 別 有 一 類 微 細 意 識. 行 相 所 緣 俱 不 可 了. 應 知! 卽 是 此 第 八 識, 極 成 意 識 不 如 是 故. 72) 성유식론술기 권4 本 ( 대정장 43, p.365상19-23), 上 座 部 師 說, 有 根 本 計, 有 末 所 計. 根 本 計, 麤 細 二 意, 許 得 並 生. 末 計 不 然. 必 別 時 起. 今 此 本 計. 別 有 細 意 識, 生 死 位 中, 一 類 微 細, 行 相 所 緣 俱 不 可 了. 이에 대해서는 권오민, 상좌 슈리라타의 일심 과 알라야식, pp.207-209 참조.
34 佛 敎 學 報 第 70 輯 이의 비난)에 따른 것이라 하였고(주28), 遁 倫 과 窺 基 는 제2, 제3증뿐만 아니라 제5증 역시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하였다(주53). (그러나 L. 슈미트하우젠은 제5증의 경우 諸 識 의 동시생기에 관한 것일지라도 직접적으로 알라야식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는 점에 서 제2, 제3증과 구별하였다.: 주13) 여기서 外 難 은 6 識 종자설을 주장한 상좌 슈리라타 일파의 경량부이다. 유부 역시 諸 識 의 別 生 을 주장하였지만 根 境 識 의 俱 生 이나 次 第 生 에 따른 諸 識 의 지각성(pratyakṣatva)마저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무착은 그 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제3 生 雜 染 證 에서 유가사지론 의 제2 最 初 生 起 證 과는 반대로 結 生 識 이 [알라야식이 아니라] 意 識 이라 주장할 경우 두 意 識 의 同 時 轉 의 과실이 초 래된다 고 비난하였는데, 無 性 에 의하면 여기서 두 의식이란 무기성의 異 熟 識 과 현행 의 了 別 識 으로, 이는 바로 一 身 二 頭 의 새인 命 命 鳥 의 비유로써 논설된 상좌의 동일 根 에 근거한 一 念 의 二 識 俱 生 설이었다. 즉 상좌 슈리라타는 유가행파와 달리 현행의 요별식과 잠재적인 이숙식을 6 識 의 두 양태로 간주하였는데, 알라야식 에 상응하는 무부무기성의 이숙식인 동일 種 類 의 마음 ( 一 類 心, *ekajātīyacitta: 一 心, ekacitta)에 대한 비판이 알라야식 존재증명의 핵심논거였 다. 경량부의 경우 6 識 의 한 양태인 이 같은 동일 種 類 의 마음이 종자 훈습의 주처( 所 熏 )였고, 執 受 의 주체였으며, 生 死 位 나 無 心 定 에서의 마음 또한 이것이었고, [온갖 정 신적 상태에서 경험되는] 身 受 역시 이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유가론 의 論 主 는 현재 衆 緣 ( 根 境 作 意 등)에 의해 생겨나는 전후 차 별적인 6 識 에 동일 種 類 의 마음을 설정할 수 없고(제1증), 6 識 이 종자의 주처라면 선 불 선 등 諸 法 의 相 雜 을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하였으며(제4증), 온갖 정신적 상태에서 경 험되는 여러 형태의 身 受 도(제6증), 無 心 定 중에 존재하는 識 도 알라야식으로 인해 가 능한 것이고(제7증), 죽을 때의 마음 역시 意 識 이 아니라 알라야식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제8증) 제6증과 제7증의 논설 상에서 경량부의 이설은 언급되지 않지만, 성유 식론, 섭대승론 과 그 주석서에서의 당해 논증, 혹은 순정리론 상의 上 座 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유가사지론 상에서의 알라야식 존재증명은 모두 경량부의 6 識 종자설 비판 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8 相 중 제1 執 受 依 止 證 은 직접적으로 알라야식을 분별하여 本 識 의 존재를 입증하였지만, 나머지 7 相 은 직접적으로 알라야식을 분별한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논증을 설한 것 73) 이라 한 文 備 의 말도 필경 이러한 사실이 고 73) 유가론기 권13 上 ( 대정장 42, p.593중1-2), 備 云, 初 一 相 正 辨 賴 耶 識 證 有 本 識. 後 七 相 非 正 辨 賴 耶 識, 由 緣 中 說 證. ; 宇 井 伯 壽, 瑜 伽 論 硏 究 ( 東 京 : 岩 波 書 店, 1979), p.172.
알라야 識 의 존재증명과 경량부(I) 35 려되었을 것이다. 여기서의 인연 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경량부 관계학설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제1증 역시 遁 倫 과 窺 基 가 해설한 것처럼 경량부의 6 識 종자설 비판 (제1 因 은 6 識 摠 破, 이하 4 因 은 別 疏 牒 破 : T42, 593b16f)이지만, 사실상 8 證 의 총론이 기 때문에 74) 알라야식의 직접적 분별( 正 辨 ) 로 해설하였을 것이다. 74) 유가론 의 알라야식 존재증명 제1 依 止 執 受 證 은 성유식론 의 제4 能 執 受 證 ( 대정장 31, p.16중28-하2)과 마찬가지로 眼 등의 轉 識 은 현재의 衆 緣 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난다는 등의 다섯 논거( 섭대승론 의 제4 執 受 色 根 證 은 각기 소의가 다르고 한결같지 않기 때문 이라는 두 가지 논거: 대정장 31, p.136상13-15)로써 執 受 의 불가능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지라도 유 가론 의 전체(8 證 ) 내용상 총론에 해당한다. 6 識 종자설을 총체적으로 비판한 섭대승론 의 제1 煩 惱 雜 染 證 - 6 識 은 찰나멸하고 단절되고 한결같지 않고 종자와 俱 生 하지 않기 때문에 번뇌종자도, 종자의 소의처도 될 수 없다 ( 대정장 31, p.135중26-하12)--의 경우도 역시 그 러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성유식론 의 제1 持 種 證 -- 諸 轉 識 은 멸진정 등에서 단절되고, [찰나 멸하여] 根 境 과 作 意 와 善 등의 種 類 가 다르고 바뀌어 일어나며, 한결같지 않기( 不 堅 住 ) 때 문에 훈습( 可 熏 習, 즉 能 熏 =종자)도, 종자의 소의처( 能 持 種, 즉 所 熏 )도 될 수 없으며, [따라 서] 染 淨 의 종자가 集 起 된 것 이라는 경설 상의 마음(citta)의 정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 정장 31, p.15중19-26)-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성유식론 의 持 種 證 과 명칭 상으로 대응하는 유가론 의 논증은 제4 有 種 子 性 證 이지만, 여기서의 논거는 다만 6 識 은 [인과상 속의] 展 轉 이 다르기 때문에 [종자성을 지닐 수 없다] (주40)는 것이었고, 이는 持 種 證 에서 6 識 종자설의 제 이설 중 六 識 展 轉 相 熏 說 이라는 이름의 이설로 비판되고 있다.(주44 참조) 따라서 유가론, 섭대승론, 유식론 에서의 첫 번째 논증인 依 止 執 受 證 과 煩 惱 雜 染 證 과 持 種 證 은 비록 논증의 주제와 명칭은 다를지라도 6 識 종자설 비판 의 총론이라는 점에서 상 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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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佛 敎 學 報 第 70 輯 of seeds. Key Words Ālayavijñāna, Proofs on the existence of ālayavijñāna, Yogācārabhūmiśāstra, Sautrāntika's theory of seeds(bīja), Sthavira Srīlāta. 논문접수일: 2015년 3월 1일, 심사완료일: 2015년 3월 25일, 게재확정일: 2015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