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 신한어의 수용과 창출* 15) 황미정 Mi-Jeong Hwang. 2011. A Study on the translated terms of NamSeon Choi's ABCge: Focus on the newly coined word. Language Information. Volume 12. 177-196. This paper investigates on the adopted words of ABCge(ABC 契, 1909) by Nam-Seon Choi from Japanese versions. And also it observes Choi's original idea as a consequence in comparison with the examinations of survey data. The achievement of the research is same as the following. According to the comparison between ABCkumiai(ABC 組 合, 1902) by Hoitsuan Hara and ABCge(ABC 契, 1909) by Nam-Seon Choi, Choi had words that could be regarded as Shinkango( 新 漢 語, words created at Meiji era to express new conceptional words from West), for example, individual( 個 人 ), communist( 共 産 黨 ), terrorism( 恐 嚇 ), republic( 共 和 ), nationality( 國 粹 ), power( 權 力 ), right( 權 利 ), idea( 理 想 ), civilized( 文 明 人 ), democracy( 民 主 政 治 ), thinker( 思 想 家 ), patriot( 愛 國 者 ), savage( 野 蠻 ), barbarism( 野 蠻 人 ), duty( 義 務 ), forward march( 前 進 ), principle( 主 義 ), necessity( 必 要 )'. These words can be said the result of progressive attitude for accepting new cultural concept from Western. On the other hand, 'cafe( 茶 館 ), cartridge ( 彈 丸 包 ) is thought to be Choi's newly coined words. Also, hakge( 學 藝 ) and minzu( 民 主 ), part of Choi's plural words, are transitional words to express West's 'science' and 'Republic'. (Research Institute for Language & Information, Korea University) Key word: newly coined words, Shinkango, Nam-Seon Choi, ABCge, Hoitsuan Hara, ABCkumiai. 1. 들어가며 육당 최남선은 1908년 일본에서 많은 서적과 인쇄기계를 구입하고 귀국해서 신문관을 세우고 한국 최초의 교양종합잡지 <소년>(1908)을 비롯하여, <붉은 저고리>(1912), <아이들보이>(1913), <새별>(1914), <청춘>(1914), <동 명>(1922) 등을 창간하여 근대 교육 계몽을 위한 문화 선도에 뛰어난 족적을 *본 논문의 작성과정에 도움을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께 감사를 표한다.
178 언어정보 12 남긴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그가 남긴 방대한 작품으로 인해 문학, 역사, 사상, 민속, 지리 등 다방면에 걸쳐서 오늘날까지 꾸준히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본 논문에서는 최남선이 출판사업을 통해서 대중의 교육 계몽에 기여한 점에 주목하여 <소년>지에 게재된 번역소설을 대상으로, 1) 어휘사의 관점에서 최남선역의 번역실태와 한자번역어의 수용태도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을 일차 적인 과제로 삼는다. 최남선이 근대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최남선의 번역어가 독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보는데 이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고 최남선역의 底 本 인 일본어역에 대한 연구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조사대상은 한일합방직전인 1910년 7월 소년 19호에 실린 ABC 契 이 다. ABC 契 는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Les Miserables(1862)의 일본어역을 중역한 것으로 저본인 일본어역은 하라 호이츠안( 原 抱 一 庵 )이 1902년에 단행본으로 간행한 ABC 組 合 이다. 2) 한국의 근대어휘형성에 있어서 최남선의 역할을 분석하고 근대기에 등장한 새로운 번역어가 전통적 개념들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조망하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2. Les M iserables의 번역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의 Les Miserables(1862)은 근대기 일본과 한국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번역이 시도되 었는데, 일본과 한국에서 1920년대까지 출간된 번역물을 들면 다음과 같다. 2.1. 일본어역 일본에서 모리타 시켄( 森 田 思 軒, 1801-1897)이 빅토르 유고의 소개자로서 먼저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레미제라블이 번역되지 않은 채로 끝났다. 나가사 1) 김병철(1975;285)은 번역물로 동화 3건, 소설 9건, 시가 10건, 논설 3건을 들고 있는데 이들 중에서 약 20편이 일본어역으로부터의 중역임을 언급하였고 번역물의 저자는 대부분 최남선이었 다고 추정하였다. 2) 김병철(1975;290)은 일본어역의 저본에 대해서 최초로 언급하였는데, 최남선역 ABC 契 와 原 抱 一 庵 역 ABC 組 合 을 목차 부분과 冒 頭 부분을 비교한 결과 최남선역이 原 역의 중역이라고 기술하였다.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79 와 벳텐( 長 沢 別 天 )이 1889년 5월에서 6월에 레미제라블의 발단에 해당하는 부분을 落 魄 이라는 제목으로 筆 之 力 에 게재한 것이 시초로 보인다. 1892 년 3월 다야마 가타이( 田 山 花 袋 )가 千 紫 万 紅 에 山 家 水 라는 제목으로 번역 하였고, 1894년에서 1895년에 걸쳐서 하라 호이츠안( 原 抱 一 庵 )이 레미제라블 중에서 The Friends of ABC 와 관련된 부분만을 번역하여 ABC 組 合 이라는 타이틀로 少 年 園 3)에 게재하였다. 이후에 少 年 園 에 게재했던 번역을 대대 적으로 수정 보완하여 같은 타이틀로 1902년에 단행본을 간행하였다. 4) 1902년 에서 1903년에 걸쳐서 구로이와 루이코( 黒 岩 涙 香 )가 万 朝 報 에 噫 無 情 이 라는 제목으로 게재하였는데 1906년에는 2책(전편 284페이지, 후편 452페이 지)으로 간행되었다. 大 正 期 이후에는 1914년 도쿠다 슈세( 徳 田 秋 声 )역 哀 史 (224페이지), 1914-1915년 도가와 슈코츠( 戸 川 秋 骨 )역 哀 史 (3책), 1918-1919년 도요시 마 요시오( 豊 島 与 志 雄 )역 レ ミゼラブル (4책), 1919-1921년 미야하라 코이 치로( 宮 原 晃 一 郎 )역 レ ミゼラブル (제1, 2, 3권), 1924년 구메 마사오( 久 米 正 雄 )역 此 悲 惨 (508페이지), 1925년 모리 요시로( 毛 利 与 四 郎 )역편 レミゼラ ブル 物 語 (291페이지), 1926년 미즈노 아키라( 水 野 亮 )역 レ ミゼラブル (상 권 945페이지, 1927년 중권 665페이지), 1929년 오사키 지브( 大 崎 治 部 )역 レ ミ ゼラブル 物 語 (204페이지), 1930년 사이다 다카시( 斎 田 喬 )역편 レ ミゼラブ ル 物 語 (318페이지), 1939년 마츠야마 에츠죠( 松 山 悦 三 )역 レ ミゼラブル (199페이지)가 출판되었다. 일본어역은 원작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양으로 인해 일부를 번역하거나 줄거리를 소개한 번역이 많은데, 원작에 충실한 번역은 구로이와 루이코( 黒 岩 涙 香 )역 噫 無 情 (1906)으로 볼 수 있다. 2.2. 한국어역 한국에서는 최초로 최남선이 한일합방직전인 1910년 7월 <소년> 19호에 ABC 契 라는 타이틀로, 이어서 1914년에 청춘 제 1호 부록으로써 레미제라 블의 줄거리를 요약하여 너참불상타 (총 36페이지)라는 제목으로 번역하 3) 少 年 園 은 山 縣 悌 三 郎 의 主 宰 하에 1888년에서 1895년에 걸쳐서 발행된 소년교육을 의식한 종합교양잡지로, 교육중시, 교양, 오락 등의 풍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소년잡지의 융성기 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구성 및 내용면에서 이후의 후속잡지를 선도한 잡지로 평가된다. ABC 組 合 은 1894년 11월 3일 145호를 시작으로 148호-151호, 153호-156호에 게재되었다. 4) 本 訳 の 中 少 許 は 徃 年 雑 誌 少 年 園 に 寄 せたるものに 得 る 今 其 文 を 刪 潤 し 其 遺 を 補 加 す 本 編 全 体 の 上 に 於 て 新 訳 其 十 の 八 に 居 る ABC 組 合 의 例 言 二 則
180 언어정보 12 였다. 후에 민태원이 毎 日 申 報 에 152회에 걸쳐 哀 史 (1918-1919)라는 타이 틀로 연재하였고, 홍난파는 哀 史 (1922, 129페이지)와 의 설움 (1923, 157페이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다섯 차례에 걸쳐 번역이 시도되었는데 이들 번역은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완역이 아니라 일부분 또는 줄거리를 소개하는 부분 번역이었다. 또한 이 다섯 차례의 번역은 원어인 프랑스어가 아니라 일본 명치기의 번역물을 매개로 각각 역술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5) 일본어역이나 한국어역은 원작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양으로 인해 일부를 번역하거나 줄거리를 소개한 번역이 먼저 나왔는데, 일본과 한국에서 레미제라 블이 왜 번역이 되었는가, 그 출판경위에 대해서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유고의 사상이 명치후반의 인도주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로 보고 있고, 6) 박진영 (2007;223)은 레미제라블의 역술의도에 대해 1905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정치 소설의 발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7) 한편 한국에서는 초기에는 예술성 중시가 아닌 애국심 조장이라는 정치 사회적 목적으로 번역되 었다고 본다. 이는 우리 대한으로 하여금 소년의 나라로 하라. 그리하려면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도록 그를 敎 導 하여라 는 소년의 창간취지문과, 1909년 한국최초문고인 십전총서의 발행취지문 중에 2 (중략) 百 科 의 學 ㅘ 西 部 의 書 에서 幕 緊 幕 要 한 者 를 정선하여 평이 간명한 문자로 編 述 하여써 일반 국민 더욱 少 年 諸 子 의 정신적 양식을 間 斷 없이 공급하려 함 8) 에 잘 나타나 있다. 3. 原 抱 一 庵 역 ABC 組 合 과 최남선역 ABC 契 3.1. 하라 호이츠안( 原 抱 一 庵 )역 ABC 組 合 하라 호이츠안( 原 抱 一 庵 )역의 체재와 내용 및 원어(영어)가 명기된 한자번 역어의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본문은 총 15회로 구성되어 있고 例 言 二 則, 目 次, 本 文, 판권장, 광고(책 소개)의 순서로 되어 있다. 총 136페이지, 세로쓰기, 周 密 文 體 9), バラルビ. バラル 5) 김병철(1975;567)에 의하면 민태원역과 홍난파역의 저본은 黒 岩 涙 香 역 噫 無 常 (1906)이다. 6) ユーゴーの 人 道 主 義 が 当 時 の 青 年 のようやく 目 ざめようとした 人 間 性 の 要 求 にこたえたところにも 原 因 が あり 近 代 文 学 研 究 叢 書 第 七 巻 pp.218-221 7) 일본의 정치소설은 1880년대에 자유민권운동이나 국수주의를 고무하기 위해 쓰여진 소설을 말한다. 8) 六 堂 崔 南 善 全 集 10 p422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81 ビ중에는 한자번역어 위에 カタカナ로 영어음을 표기한 것이 있는데 이 점으로 보아 원작의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역에서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원작 레미제라블 중에서 The Friends of ABC 와 관련된 부분만을 취사선택해서 번안하였는데, 10) 1832년에 일어난 ABC비밀결사의 봉기, ABC 구성원의 신분과 성격, 기관지 破 壞 來 와 혁명의 정황, 비밀결사의 봉기 실패를 골자로 하고 있다. 다음으로 ABC 組 合 에서 원어(영어)가 명기된 한자번역어( 句, 文 포함) 를 추출하여 <표 1>에 구체적인 내역을 제시하였다. <표 1> ABC 組 合 의 한자번역어 내역 原 抱 一 庵 역 116 A 한자어 위에 カタカナ로 영어 음을 표기한 단어( 句 포함) 103 a 단어 97(영어병기 c 句 6 3어) B 한자어와 영어를 병기 한 단어( 句 와 文 포함) 12 a 단어 b 文 b 句 1 8 3 C カタカナ 와 한자어를 병기한 단어 1 <표 2>에서 원어가 명기된 한자번역어( 句, 文 포함)는 116어로, 이를 A 한자어 위에 カタカナ로 영어음을 표기한 단어( 句 포함), B 한자어와 영어를 병기한 단어( 句 와 文 포함), C カタカナ와 한자어를 병기한 단어 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A 한자어 위에 カタカナ로 영어음을 표기한 단어( 句 포함) 는 단어역이 97어, 구역이 6 句 이고, B 한자어와 영어를 병기한 단어( 句 와 文 포 함) 는 단어역이 8어, 문역이 3 文, 구역이 1 句 이고, C カタカナ와 한자어를 병기한 단어 는 1어이다. 3.2. 최남선역 ABC 契 최남선역의 체재와 특징, 한자번역어의 내역에 대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ABC 契 는 2단 세로쓰기로 구성되어 있고 국한문혼용체가 사용되 었다. 총 62페이지. 문장부호에는 쉼표에, 마침표에 를 사용하였고 성과 이름 사이에 와 를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인명에는 왼쪽에 한 줄 방선, 지명은 왼쪽에 두 줄 방선을 표시하여 인명과 지명을 구분하였고 9) 原 抱 一 庵 은 자타가 공인하는 森 田 思 軒 의 후계자로 思 軒 의 周 密 文 體 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周 密 文 體 는 漢 文 調 의 힘찬 필체와 서구직역풍을 가미한 문체이다. 10) 原 抱 一 庵 은 例 言 二 則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本 訳 はヴヰクトルユーゴー 著 哀 史 中 ABC 組 合 (The Friends of the ABC)に 関 聯 する 篇 章 を 採 抜 訳 述 せるものなり 結 構 に 於 て 剪 裁 を 肆 ままにせる 罪 は 訳 者 固 より 逭 るる 能 はず
182 언어정보 12 띄어쓰기를 채용하였다. 지명, 국명, 사건, 상점명 등은 한글로 영어음을 표기하 였으나 주요인물명은 다음과 같이 한자로 표기하였다(괄호 안은 原 역). 任 自 來 (インジョルラス), 孔 巴 河 (コムバーハー), 夫 祿 利 (ブロバリー), 皮 有 禮 ( ヒューレー), 高 後 樂 (コーフェラック), 裵 好 烈 (パホレル), 許 須 圖 (ポツスート), 曹 留 利 (ジョルリー), 具 蘭 泰 (グランタィア) 또한 ABC 契 는 ABC 組 合 를 충실히 번역한 축어역으로, 최남선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인물, 사건, 용어, 관습 등에 괄호로 각각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第 一 回 紅 色 旗 是 れ 巴 里 大 学 校 の 庭 園 と 死 生 を 共 にせむと 自 ら 誓 ひたる 老 園 丁 其 齢 は 当 年 正 に 八 十 七 歳 巴 里 大 学 校 の 園 丁 たること 茲 に 十 八 年 (중략) 老 翁 マビーは 墜 下 せる 紅 色 旗 を 拾 ひ 取 り 慌 てず 躁 がず 其 まま 歩 を 移 して 屋 頂 に 通 ずる 階 段 の 下 近 く 進 み 寄 れり 之 を 目 睹 せる 六 十 九 士 は 渠 を 抑 むることも 敢 てせず 渠 を 励 ますことも 敢 てせず 誰 だ 眼 を 睜 りて 寸 時 も 視 線 を 渠 より 離 さざるのみ (중략) 老 翁 マビーの 右 の 一 足 は 今 階 段 の 第 一 階 に 触 れたり 満 場 水 打 てる 如 く 森 と せり 折 から 誰 の 口 よりどもなく 一 道 の 叫 声 起 れり 脱 帽! 脱 帽! 一 赤 旗 이는 누구뇨 달은이 아니라 파리 大 學 校 의 園 林 과 死 生 을 갓히 하리라고 自 誓 한 老 園 丁 이니 方 年 이 八 十 七 歳 라 파리 大 學 校 의 園 丁 이 된지 于 今 十 八 年 에 (중략) 馬 庇 甫 老 先 達 이 러진 赤 旗 를 주어 가지고 不 慌 不 忙 從 容 自 若 하게 한거름 한거름 지붕으로 올나가난 사다리밋흐로 나아간다 이를 보난 六 十 九 士 는 그를 挽 執 하랴고도 아니하고 그를 激 勵 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눈들을 바로 고 寸 分 도 그에게서 瞳 子 를 돌리지아니할 이라 (중 략) 老 勇 士 의 右 便 한발이 바야흐로 사다리의 첫 層 階 에 올나간다 滿 場 이 씨슨듯하게 嚴 肅 하다 一 步 又 一 步 一 段 又 一 段 에 뉘닙에서 始 初 하 얏던지 거의 一 時 에 소리질으기를 帽 子 버서라! 帽 子 버서라! ( 敬 禮 하난 ) 이 부분은 노장의 정원사가 목숨을 걸고 ABC조합의 깃발을 다시 세우려고 꼭대기에 올라가는 내용에서 최남선은 脱 帽 가 서양식 경의임을 괄호 안에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83 설명하고 있다. 第 二 回 一 千 八 百 三 十 二 年!( 上 ) 来 は 奈 翁 の 甥 奸 雄 ルィ ナポレオンが 有 名 なるクーデターを 行 ひ 国 会 を 解 散 し 二 一 千 八 百 三 十 二 年!( 上 ) 將 來 로 말하면 나폴네온의 甥 侄 奸 雄 루이 나폴네온이 有 名 한 쿠우 타 ( 不 意 에 兵 力 을써서 政 變 을 行 함을쿠우 타Coup d utnt라 稱 하니라)를 行 하 야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국회를 해산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3세라고 칭한 사건에서 쿠데타라는 용어를 설명하고 있다. 第 六 回 組 合 員 ( 中 ) ダンテ ジュベナル エスキラス 及 びイザヤ 六 契 員 ( 中 ) 테(이탈늬아 詩 人 ) 베날(라틘 詩 人 ) 에쓰킬노쓰( 레시아 悲 劇 名 作 家 ) 이사야(헤브류 先 知 者 ) [ 註 Dante Alighieri(1265-1312) Juvenal(42-120) Aeschylos(425-456 B.C.) Isaiah 단테, 쥬베날, 에스킬노스, 이사야를 괄호 안에 각각 설명하고 註 에서 영어표 기와 생년월일을 표기하였다. 다음으로 ABC 組 合 에서 원어(영어)가 명기된 한자번역어를 기준으로 ABC 契 의 번역어( 句 와 文 포함)를 추출하여 <표 2>에 구체적인 내역을 제시하였다.
184 언어정보 12 <표 2> ABC 契 의 한자번역어 내역 최 남 선 역 116 A 단어역 a 한자표기 94 b 한글표기 8 c 혼종표기 1 B 句 역 6 C 文 역 3 D 기 타 4 <표 2>에 의하면 ABC 契 는 A 단어역, B 구역, C 문역, D 기타로 크게 나누어진다. A 단어역은 a 한자표기, b 한글표기, c 혼종표기로 세분되고, a 한자표기에는 한자어 뒤에 영어를 병용하거나 영어음을 한글로 표기한 경우와, 일본어역에 대해서 科 學 / 學 藝 와 같이 두 가지 이상의 번역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b 한글표기에는 영어음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한 경우와 한자어가 아닌 한글로 번역한 경우가 있다. 각 그룹의 번역어를 들면 다음과 같다(가나다 順 ). A 단어역 a 한자표기 家 族 龕 灯 肩 章 警 砲 共 産 党 恐 嚇 共 和 教 導 科 學 軍 勢 権 力 権 利 極 楽 技 術 暖 炉 大 強 盗 領 首 六 穴 砲 理 想 麵 包 文 明 人 民 主 復 位 復 位 時 代 府 民 分 配 思 想 思 想 家 事 実 産 出 床 相 思 歌 性 行 手 巾 愛 国 者 野 心 野 蛮 人 月 桂 樹 衛 星 意 見 義 務 衣 食 椅 子 人 権 党 赤 帽 子 全 政 略 専 制 前 進 静 寂 帝 国 中 心 職 分 進 歩 茶 館 剣 槍 党 彈 丸 包 破 壊 来 平 等 党 平 等 職 工 党 必 要 學 藝 革 命 革 命 熱 兄 弟 火 薬 包 活 動 党 活 貧 党 ➀한자어 뒤에 영어를 병용해서 표기 個 人 幸 福 (Individual happiness) 公 共 権 力 (Public power) 公 平 (Equity) 共 和 政 治 (Republic) 文 明 (Civilization) 民 主 政 治 (Democracy) 民 権 (Rights of people) 法 教 (Religions) 時 間 (hour) 神 聖 權 (Divine-right) 人 道 (Humanity) 人 権 (Rights of men) 自 然 權 (Natural-right) 自 由 木 (Tree of liberty) 平 等 (Equality) 랑쓰 革 命 (French revolution) ➁한자어 뒤에 영어음을 한글로 표기 個 人 (맨) 府 民 (시틔슨) 信 奉 ( 보슌) 野 蛮 (쌔베이지) 勇 気 (히로이씀) 運 數 ( 오튠) 主 義 (프린시플) 国 民 (내슌) 歴 史 (히쓰토리) 為 政 家 (스테이쓰 맨) b 한글표기( 原 역 최남선역) 休 止 치난, ナショナリテー( 国 粋 ) 내슈낼늬틔( 国 粋 ), 最 後 마조막, 厨 房 부억, 人 間 (Human) 사람(Human), 除 外 지난, 酒 樽 술항아리, 少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85 刀 찬칼 c 혼종표기( 原 역 최남선역) 大 理 石 玉 돌 B 句 역 物 質 的 権 力 (맷터리앨파워), 人 民 의 벗, 우리아희, 젊은 獅 子, 財 貨 의 分 配 (To distribute wealth), 財 貨 의 生 殖 (To produce wealth) C 文 역 흔 다만 칼을 감촐 에만 조흐다(Flowers were good only to hide the sword), 善 한 者 는 純 眞 하여야 한다(The godd must be innocent), 漸 進 은 神 의 全 政 略 이라(Slow progress is the whole policy of God) D 기타 男 らしく(Manly) 산아희답고(Manly), 哀 哉 애달프다, 竟 に!(At Last!) 畢 竟 에! 이 밖에 科 學, 共 和 政 治, 卓 子 의 하라( 原 )역에 대해서 최남선은 각각 科 學 과 學 藝, 共 和 政 治 와 民 主, 床 과 테이블, 椅 子 라는 두 가지 이상의 복수의 번역어를 사용하였다. 4. 신한어의 수용 하라 호이츠안( 原 抱 一 庵 )역이 최초로 출판된 1894년(명치 27)에서 1895년 (명치 28)은 막부말기 명치초기 서구어유입으로 인해 수많이 창출되었던 한자 번역어가 도태되거나 보급되어 가는 시기이라서 ABC 組 合 에는 명치기에 등장한 新 漢 語 11)가 적지 않이 사용되어 있다고 하겠다. 한편 최남선이 일본에 처음 유학한 시기는 1904년(명치 37)으로, 12) 이 시기 는 한자번역어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시기로 보고 있다. 최남선의 1차 유학기간 은 약 3개월에 불과하였지만 1906년 4월에 최남선은 재차 유학을 떠나 9월에 11) 新 漢 語 는 막부말기 이후 서양의 문물, 개념을 번역할 때에 사용된 한자번역어를 지칭한다. 12) 최남선은 1902년 13세에 경성학당에 입학하여 일본어를 배웠고 한국 황실 파견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904년 10월에 동경부립 제일중학교 특설반에 입학하였으나 3개월만에 퇴학하여 1905년 1월에 귀국하였다.
186 언어정보 12 와세다대학 역사지리과에 입학하였으나 1907년 3월에 학내에서 일어난 모의 국회사건으로 인해 동맹퇴학하였고 1908년 6월 귀국하기까지 유학생회에서 간행하던 <대한유학생회학보>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최남선의 1차와 2차의 일본유학기간은 짧았지만 일본에서 체재한 기간은 2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13) 최남선은 2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서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에 일본의 발달된 문화와 풍부한 서적에 크게 놀랐고 번역하는 습관까지 왕성해졌다 14) 는 기술에 서 일본 유학이 최남선에게 사상적 문화적으로 큰 자극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 장에서는 하라( 原 )역에 나타난 신한어로 생각되는 단어 15) 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최남선역의 번역실태를 살펴보고 조사자료의 사용례와 비교하여 한자번역어의 성질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하라( 原 )역에 나타난 신한어로 생각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1)2자 한자어 權 力 權 利 個 人 恐 嚇 共 和 國 粹 理 想 野 蠻 義 務 前 進 主 義 必 要 2) 3자 한자어 共 産 黨 文 明 人 思 想 家 愛 國 者 野 蠻 人 赤 帽 子 4) 4자 한자어 民 主 政 治 이들 단어는 개념어가 많은 점이 특징인데 최남선역에 이들 개념어가 그대로 수용되어 있다. 각 단어의 사용례 및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사용례는 최초용례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権 力 은 漢 語 에 의하면 권세 라는 의미로, 漢 書 의 遊 侠 伝 万 章 에 万 章 與 中 書 今 石 顯 相 善, 亦 得 顯 権 力, 門 車 常 接 轂 의 사용례가 있 고, 日 国 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広 益 熟 字 典 ( 湯 浅 忠 良, 1874)에 権 力 ケンリョク イセイ 로 등록되어 있다. 権 利 는 권력과 이익 이라는 의미로 중국과 일본에서 이미 사용되었는데, 13) 최남선의 2차 유학시기는 이진호(1986)에 의한다. 14) 六 堂 崔 南 善 全 集 5 p439 15) 황미정(2010)에 의한다. ABC 組 合 의 한자번역어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일본어사전으 로는 明 治 のことば 辞 典 (1989, 이하 明 治 ), 日 本 国 語 大 辞 典 (2001, 이하 日 国 ), 중국 어사전으로는 漢 語 大 詞 典 (1993, 이하 漢 語 )을 사용하고, 한자번역어와 ふりがな 간에 의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는 단어에 대해서는 명치기에 출판된 영일사전( 改 訂 増 補 英 和 対 訳 袖 珍 辞 書 (1868), 増 補 訂 正 英 和 字 彙 (1882), 改 訂 増 補 哲 学 字 彙 (1884)의 사용례와 대비 조사하 여 原 의 독자적인 ふりがな인지 여부를 판정하였다.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87 W.A.P. Martin의 漢 語 譯 万 国 公 法 (1864)에서 権 利 가 영어 right 의 번역 어로써 사용된 것을 막부말기 일본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의 최초용례는 日 国 에 의하면 泰 西 法 学 要 領 ( 津 田 真 道, 1866)의 又 古 昔 彼 土 に 人 奴 あり 生 殺 与 奪 の 権 全 く 其 主 人 に 在 りて 毫 釐 も 権 利 を 有 たず 를 들고 있다. 個 人 은 日 国 에 의하면 국가나 사회 또는 단체 등을 구성하는 개개인 의 의미에서는 流 水 日 記 ( 馬 場 孤 蝶, 1894 年 3 月 3 日 )의 人 類 は 永 遠 に 存 在 す べきも 個 人 は 確 かに 朽 つるものなるか 를 들고 있다. 한편 漢 語 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彼 人, 那 人 이라는 의미로 宋 의 陳 亮 念 奴 嬌 至 金 陵 詞 에 ' 因 念 旧 日 山 城, 個 人 如 画, 已 作 中 州 想 '의 사용례가 있고, 箇 人 이라는 표기형태 로는 唐 의 封 演 封 氏 聞 見 記 淳 信 의 元 方 曰 汝 太 奇, 豈 可 為 銭 而 誑 箇 人!' 을 들고 있어 일찍이 중국에서 사용례가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ABC 組 合 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인 경우는 一 個 の 人 影, 일년의 경우는 一 箇 年 으로 번역되어 있어 사람이나 개수를 셀 때에 個, 箇 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一 個 の 人 에서 一 個 人 으로 다시 個 人 으로 조어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恐 嚇 는 漢 語 에 의하면 중국에서 以 要 狭 的 話 或 手 段 威 脇 人 의 의미로 당송시대의 문헌인 敦 煌 変 文 集 의 捉 季 布 伝 文 에 院 長 不 須 相 恐 嚇 의 사용례가 있고, 日 国 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西 国 立 志 編 ( 中 村 正 直, 1870-71) 十 三 二 의 花 氏 ハ 弁 論 ノ 士 ノ 或 ハ 人 ヲ 恐 嚇 シ 를 최초용례로 보고 있다. 한편 ふりがな의 영어 terrorism 은 改 正 増 補 英 和 対 訳 袖 珍 辞 書 (1868)와 改 正 増 補 哲 学 字 彙 (1884)에 등록되어 있지 않고 増 補 訂 正 英 和 字 彙 (1882)에 驚 愕 으로 등록되어 있어, 현 단계에서는 原 이 독자적으로 恐 嚇 에 terrorism이라는 ふりがな를 단 것으로 추측된다. terrorism 은 현대 일본어에서 テロ, テロリズム, テロ 行 為 로 사용되고 있다. 共 和 는 漢 語 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일찍이 西 周 의 厲 王 이 失 政 하고 宣 王 이 집정하기 전까지의 14년간을 共 和 라는 연호를 지칭하던 단어이었다. 日 国 에 의하면 공화제 를 지칭하는 의미에서는 文 明 論 之 概 略 ( 福 沢 諭 吉, 1875) 一 三 의 政 府 の 体 裁 は 立 君 にても 共 和 にても 其 名 を 問 はずして 其 実 を 取 る 可 し 의 사용례가 章 炳 麟 의 駁 康 有 為 論 革 命 書 (1903)의 雖 然, 在 李 自 成 之 世, 則 賑 飢, 済 困 為 不 可 已 ; 在 令 之 世, 則 合 衆 共 和 為 不 可 已 의 사 용례보다 선행한다. 国 粋 는 日 国 에 의하면 그 나라 고유의 정신적 또는 물질적 장점 이란 뜻에서는 日 本 人 が 懐 抱 する 処 の 旨 義 を 告 白 す ( 志 賀 重 昴, 1888)의 予 輩 が
188 언어정보 12 懐 抱 する 処 の 大 旨 義 は 実 に 日 本 の 国 粋 を 精 神 となしこれを 骨 髄 となし 而 して 後 能 く 機 に 臨 みて 進 退 去 就 するにあり 의 사용례를 들고 있다. 理 想 은 日 国 에 의하면 利 学 ( 西 周, 1877) 上 二 의 行 己 如 人 愛 鄰 如 己 云 者 在 利 家 道 徳 而 為 理 想 上 極 功, 哲 学 字 彙 (1881)의 idea 理 想 를 들고 있는데, ふりがな의 영어 idea 는 현대 일본어에서 着 想, 思 いつき, 意 見, 見 解 으로 사용되는 반면, ideal 은 理 想 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역어 理 想 은 idea 의 과도기적 번역어라고 하겠다.. 野 蛮 은 漢 語 에 의하면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梁 啓 超 (1873-1929)의 中 国 専 制 政 治 進 化 史 論 常 任 首 領 之 有 大 功 於 本 羣 者, 威 徳 巍 巍, 習 服 羣 類, 及 其 死 也, 以 為 神 而 祀 之, 而 其 子 孫 又 利 用 野 蛮 時 代 之 宗 教 迷 信 也 을 들고 있으나, 日 国 에 의하면 동일한 의미에서 安 愚 楽 鍋 ( 仮 名 垣 魯 文, 1871-72) 初 의 未 だに 野 蛮 の 弊 習 と 云 ってネ 의 사용례가 앞선다. 義 務 는 漢 語 에 의하면 권리에 반대되는 말로써 정치상, 법률상, 도의상 의 책임이라는 의미에서 康 有 為 의 大 同 書 (1919) 甲 部 第 四 章 若 夫 応 兵 点 籍, 則 凡 有 国 之 世, 視 為 義 務 의 사용례를 들고 있으나, 日 国 에 의하면 泰 西 国 法 論 ( 津 田 真 道 역, 1868) 二 六 의 右 国 民 国 家 に 要 する 所 の 諸 権 は 是 国 家 の 公 義 公 務 なり 然 れ 共 此 義 務 は 道 学 に 所 謂 国 家 の 義 務 にして 法 学 に 論 して 之 を 国 家 の 要 約 と 成 し 難 し 의 사용례가 앞선다. 前 進 은 漢 語 에 의하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는 史 記 의 張 釈 之 馮 唐 列 伝 의 釈 之 前 進 曰 : 使 其 中 有 可 欲 者, 雖 錮 南 山, 猶 有 郄 ; 使 其 中 無 可 欲 者, 雖 無 石 椁, 又 何 戚 焉!, 진보한다는 의미에서는 明 의 李 贄 復 楊 定 見 의 在 今 日 只 宜 自 信 自 珍, 益 堅 益 厲, 務 求 到 家 而 後 已, 必 得 前 進 而 後 快, 斯 為 男 児 志 気 耳 를 들고 있다. 日 国 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西 村 茂 樹 의 明 六 雑 誌 36 号 (1875) 西 語 十 二 解 一 의 其 盛 なる 時 は 常 に 天 下 に 先 ち 時 運 を 導 きて 前 進 せしむるなれども 를 최초용례로 보고 있다. 主 義 는 漢 語 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주장이나 방침의 의미에서는 史 記 의 太 史 公 自 序 의 敢 犯 顔 色, 以 達 主 義, 不 顧 其 身, 체계적 이론의 의 미에서는 梁 啓 超 의 与 林 迪 臣 太 守 書 의 啓 超 謂 今 日 之 学 校, 当 以 政 学 為 主 義, 以 芸 学 為 附 庸 을 들고 있다. 日 国 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米 欧 回 覧 実 記 ( 久 米 邦 武, 1877) 二 二 四 의 支 那 日 本 の 人 民 は 原 来 農 耕 自 活 の 風 儀 にて 修 身 を 政 治 の 主 義 とし 財 産 を 重 んぜざるにより 를 최초용례로 보고 있고, 哲 学 字 彙 (1881)에는 主 義 가 principle의 번역어로써 등록되어 있다. 일본 에서 중국고전에 있는 主 義 의 의미에 근대적 의미를 부여해서 principle 의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89 번역어로써 전용했다고 추측된다. 必 要 는 漢 語 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二 刻 拍 案 惊 奇 (1632) 卷 二 一 의 即 差 快 手 李 彪 隨 着 王 爵 跟 捕 賊 人, 必 要 擒 獲, 方 準 銷 牌, 日 国 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西 洋 家 作 雛 形 (1872) 四 一 三 의 尚 ほ 健 康 に 必 要 なるものは 家 宅 を 起 すべき 地 の 品 質 并 に 程 よき 処 柄 を 撰 ぶことにあり 에 사용례가 있다. 共 産 党 은 日 国 에 의하면 仏 和 法 律 字 彙 (1886)의 COMMUNISTE Kyosanto 共 産 党, 文 明 人 은 一 年 有 半 ( 中 江 兆 民, 1901) 一 의 己 れ 文 明 人 たる 事 を 示 めさんと 欲 し 無 暗 に 同 情 を 被 害 者 に 表 し 意 を 枉 げて 奨 賛 媚 悦 し, 思 想 家 는 各 人 心 宮 内 の 秘 宮 ( 北 村 透 谷, 1892)의 深 山 に 踏 入 る 旅 客 なかるべ からざるが 如 くに 真 理 に 踏 迷 ふ 思 想 家 もなかるべからず, 愛 国 者 는 代 議 政 体 ( 永 峰 秀 樹 역, 1875-79)의 是 の 如 き 事 を 企 つる 愛 国 者 に 告 ぐ, 野 蛮 人 은 花 柳 春 話 ( 織 田 純 一 郎 역, 1878-79) 五 二 의 シサリに 独 坐 して 顔 色 憤 怒 を 帯 び 恰 も 野 蛮 人 の 状 を 為 す 의 사용례를 들고 있다. 赤 帽 子 은 현재의 조사단계 에서는 ABC 組 合 이 최초용례로 보인다. 民 主 政 治 는 日 国 에 의하면 経 国 美 談 ( 矢 野 龍 渓, 1883-84) 後 一 九 에 希 臘 全 土 の 民 主 政 治 と 専 制 政 治 とを 의 사용례가 있다. 이들 4자 한자어는 前 項 의 2자 한자어와 後 項 의 2자 한자어의 결합형태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이 기존의 한자어를 두 가지 이상 결합시켜서 합성어를 만드는 조어법은 명치기의 특징이라 하겠다. 16) 단, 이들 신한어 중에는 재래어의 의미에 근대적 의미를 부여해서 근대역어 로써 전용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다. 또한 새로 조어한 형태가 우연히 재래어와 일치했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재래어라고 하더라도 형태만 문헌상에 남아 있을 뿐 이미 死 語 가 되어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들 단어가 신한어라는 가능성만을 제시하고 상세한 고찰은 향후 과제로 삼기로 하겠다. 16) 당시 번역물에는 번역어로써 5자 한자어, 6자 한자어 등이 출현하였는데, 이러한 조어법이 나타난 배경으로는 번역가들의 고심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명치의 번역왕이라고 불리는 森 田 思 軒 은 적절한 역어를 찾기 위해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百 方 思 索 するも 其 の 意 義 を 伝 ふること 能 はず 苦 心 の 余 り 我 を 忘 れ 坐 を 起 ちて 手 をあげ 足 をあげて 鶴 喙 鷺 立 のさまをなし 其 の 妻 君 が 襖 子 の 内 に 異 響 あるをきき 隙 より 視 ひみて 良 人 あるいは 狂 ぜるかと 怪 しみ 且 つお どろきしことありといへるほど 熱 心 なりき 近 代 文 学 研 究 叢 書 第 七 巻 p217
190 언어정보 12 5. 한자 번역어의 창출 ABC 契 에는 原 역을 수용하지 않고 최남선이 다른 번역어를 사용한 단어가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極 樂, 茶 館, 六 穴 砲, 性 行, 靜 寂, 彈 丸 包 이들 번역어는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지 아니면 최남선이 새로 조어한 번역어인지 출처를 판단하기 위해 최남선역이 나온 1910년을 기준으로 하여 1880년부터 1911년까지 간행된 한국의 사전, 서적, 관보, 신문 등의 문헌의 사용례와 대조 비교하였다. 이번 조사에 사용된 자료는 한불자전 (1880), James Scarth Gale의 한영자전 (1897, 1911), 한성순보 한성주보 전자텍스 트, 서유견문 (1895), 고신문 전자텍스트, 대한제국관보(1894-1910)이 다. 17) 조사결과를 <표 3>에 제시하였다. <표 3> 최남선의 번역어와 조사자료의 사용례 비교 하라 최남선 한불 순보 주보 서유 고신 한영 관보 한영 ( 原 ) 1880 1883 1886-88 1895 문 1897 1894-1910 1911 天 國 極 樂 珈 琲 店 茶 館 短 銃 六 穴 砲 品 性 性 行 沈 默 靜 寂 銃 包 彈 丸 包 <표 3>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상기의 단어를 최남선역 이전에 사용례가 있는 단어와, 최남선이 새로 조어했다고 생각되는 단어로 나눌 수 있다. 이하에 서는 각각에 속한 단어에 대해서 조사자료의 초출 용례를 중심으로 의미와 비교하면서 기술하기로 한다. 17) 고신문은 http://www.kinds.or.kr, 관보는 http://www.dlibrary.go.kr를 이용하였다.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91 5.1. 최남선역 이전에 사용례가 있는 단어 極 樂, 六 穴 砲, 性 行, 靜 寂 極 樂 은 고신문 중에서 황성신문 1903년 1월 21일 < 外 報 >에 埃 及 人 의 極 樂 이란 제목 하에 埃 及 回 回 敎 徒 死 者 가 行 冥 土 에 橋 梁 이 有 줄로 信 該 橋 梁 이 劒 刃 과 如 고 其 下 에 炎 炎 罪 火 焰 을 吐 深 谷 에 有 야 生 前 에 無 罪 人 을 此 橋 를 踰 것이오 有 罪 者 地 獄 으로 倒 陷 다 더라, 대한매일신보 1908년 7월 8일 <론셜>에 녀 는 석가여 압헤 굴복 여 후 에 극락이나 의 사용예가 있다. 極 樂 은 고통이 없는 낙원이라는 의미로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六 穴 砲 는 고신문과 한영자전에 사용되었는데, 고신문 중에서는 독립신문 1898년 3월 8일 <전보>에 희랍 대군쥬가 운동으로 거를 타고 길노 나가다가 엇던 놈이 륙혈포로 님군을 노아, 황성신문 1898년 9월 26일 < 雜 報 >에 其 從 人 들이 六 穴 砲 와 環 刁 를 帶 去 엿, 대한매일신보 1904년 8월 25일 <룡인민 요>에 관졍에돌립 일인이륙혈포를노은즉인심이대단소요 야 라는 사 용례가 있고, 한영자전(1896, 1911)에는 총의 모양을 그대로 나타내서 a six shooter 로 기술되어 있다. 性 行 과 靜 寂 은 고신문 중에서 황성신문에만 사용되었는데, 性 行 의 경우 1899년 12월 2일 < 雜 報 >에 英 公 舘 에 轉 照 하야 學 問 이 高 明 하고 性 行 이 端 正 한 英 國 人 을 雇 聘 하되, 靜 寂 의 경우 1900년 6월 6일 < 詞 藻 >에 薇 窓 靜 寂 의 사용 례가 있다. 상기의 단어들은 황성신문의 사용례가 눈에 띄는데, 이와 관련해서 류시원 (2009;38)의 기술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류시원은 당시 최남선이 국내에서 학교 교육 외에 신학문을 수용할 수 있었던 매체로는 皇 城 新 聞 과 상해에 와 있던 서양 사람들이 한자로 발행하던 萬 國 公 報, 中 西 敎 會 報, 일본 에서 발행되던 大 阪 朝 日 新 聞, 萬 朝 報, 太 陽, 早 稻 田 文 學 이 있었다 고 기술했는데, 이 기술 내용으로 보아 최남선이 황성신문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을 접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황성신문의 어휘가 최남선 의 번역물에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된다. 이 문제는 본 논문의 목적에서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가능성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5.2. 최남선이 새로 조어했다고 생각되는 단어 茶 館, 彈 丸 包 茶 館 과 彈 丸 包 18)는 조사자료에서 사용례가 발견되지 않은 단어인데, 이하에
192 언어정보 12 서 하라( 原 )역과 대조하면서 살펴보기로 한다. 최남선은 하라( 原 )역의 珈 琲 店 (필자주: 커피점)을 茶 館 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커피를 차의 일종으로 생각한 것으로 여긴다. 커피를 차의 일종이라고 표현한 용례를 들면 독립신문 1898년 9월 14일 <협회츙군>에 황태 뎐하 셔 카피챠 진어 신 후에, 대한매일신보 1909년 1월 21일 <쇼셜>에 목욕 고 돌라오면 샹우헤 카피차 잔과 면보 두서너조각을 쥰비 여잇고 가 있다. 彈 丸 包 의 彈 丸 은 한성순보 1884년 2월 27일 <서양인이 중국 機 器 局 을 논하 다>, 고신문 중에 독립신문 1896년 5월 21일 <외국통신>, 협셩회회보 1898년 2월 19일 <잡보>, 일신문 1898년 4월 19일 <관보>, 황성신문 1898년 11월 8일< 別 報 >, 대한매일신보 1904년 8월 12일 <외보>에 사용예가 있는 단어로, 탄환을 멀리 날리는 기계를 뜻하는 砲 를 彈 丸 에 연결시켜서 彈 丸 包 라는 3자한자어를 조어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조어법으로 火 藥 砲 를 들 수 있다. 한편 하라( 原 )역의 銃 砲 는 황성신문 1899년 5월 9일 < 外 報 >에 俄 國 이 間 牒 야 隱 密 히 銃 砲 를 新 彊 의 回 敎 徒 에게 給 與 을, 대한매일신보 1908년 10월 24일 <외보>에 농공각죵과 항 션쳑총포의 각학술과 의 사용례가 있지만 상기의 조사자료의 사용례로 보아 銃 보다도 彈 丸 이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단어로 추측된다. 5.3. 복수의 번역어 최남선이 하라( 原 )역에 대해서 복수의 번역어를 사용한 예가 있는데, 科 學 / 學 藝, 共 和 政 治 / 民 主, 床 /테이블/ 椅 子 의 3예이다. 조사자료의 사용례와 의미 를 조사한 결과를 <표 4>에 제시하였다. <표 4> 최남선의 번역어와 조사자료의 사용례 비교 2 하라 ( 原 ) 최남선 한불 1880 순보 1883 주보 1886-88 서유 1895 고신 문 한영 1897 관보 1894-1910 한영 1911 科 學 共 和 政 治 科 學 / 學 藝 共 和 政 治 / 民 主 / / / / / / / / / / / / / / / / 卓 子 床 /테이 블/ 椅 子 / / 牀 / / / / / / / / / / / / / / 18) 彈 丸 包 는 彈 丸 砲 의 誤 植 으로 생각된다.
최남선역 ABC 契 의 한자번역어 考 193 <표 4>에 의하면 科 学 과 學 藝, 共 和 政 治 와 民 主 는 당시 신문에 자주 사용되 었던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각 단어의 구체적인 사용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科 學 은 한성순보 1883년 11월 10일 <유럽 洲 >에 모두 기계를 이용하려 하니, 그 科 學 硏 究 의 발전은 실로 헤아릴 수가 없다, 동년 1883년 11월 30일 < 電 輪 車 >에 몇 천 사람이 함께 두루 연구한 결과 電 信 이 이루어진 것이다. 科 學 의 功 效 란 과연 천고에 신묘하게 세계 만국에 유용하다 하겠다, 한성주보 1886년 10월 4일 < 寶 石 奇 製 >에 각 상인들은 이 보석이 어찌 이렇게 큰가를 궁리하다가 사람이 만들어서 그렇다고 여기고 그 질을 조사해 보았으나 또한 보석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科 學 에 이름이 있는 사람에게 세밀하게 검사하 게 하였더니, 1887년 3월 7일 < 續 錄 西 學 源 流 >에 格 致 의 학문[ 科 學 ]은 그 취지가 사물의 이치와 까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의 사용례에서 科 學 이란 자연과학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신문 중에서 독립신문 1899년 5월 26일 <잡보>에 리과학, 황성신문 1901년 1월 11일 < 雜 報 >에 美 國 의 科 學 者 가 三 十 年 間 盡 力 고 約 五 十 萬 弗 을 費 用 야 近 頃 에 僅 纔 精 密 히 地 球 의 直 徑 을 測 定 其 筭 을 據 즉, 대한매일신보 1910년 5월 31일 <학계> 에 물리학과학긔계 의 기사에서도 科 學 이 자연과학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 되었다. 한편 또 다른 번역어인 學 藝 는 한성순보 1884년 1월 30일 < 日 本 更 新 >에 格 致 測 算 등의 學 藝 를 振 興 시켰다 는 기사와 < 中 西 法 制 異 同 說 >에 이후에는 官 學 法 學 格 致 등의 학문중 자기성격에 가장 알맞은 학문을 채택하여 오로지 한 가지 학예만을 익히되 의 기사에서 學 藝 가 넓은 뜻으로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共 和 政 治 는 한성순보 1883년 11월 10일 <유럽 洲 >에 정치면은 瑞 西 (스위스) 와 프랑스만이 共 和 政 治 를 하고, 한성주보 1886년 8월 23일 < 三 國 同 盟 >에 中 아메리카에는 瓜 太 馬 拉 (과테말라)과 鬨 都 拉 斯 (온두라스)와 三 薩 尾 (엘살바 도르) 세 나라가 있는데 모두 共 和 政 治 를 하고 있으며 의 사용례가 있고, 한영자 전(1911)에 the government republic 의 번역어로 수록되어 있다. 한편 또 다른 번역어인 民 主 는 한성순보 1884년 1월 8일 <포르투갈 亂 耗 >에 陽 曆 10월 17일에 葡 萄 牙 國 (포르두갈)의 尼 士 濱 (리스본) 都 城 에서 遞 到 한 信 息 에 그 나라 西 鄙 의 土 人 이 갑자기 異 議 를 제창하여 스스로 民 主 國 을 만들겠다고 법석을 떠는 바람에, 서유견문(1895), 고신문 중에 독립신문 1896년 7월 16일 <잡보>에 불란셔가 민쥬국되던, 황성신문 1901년 4월 20일 < 外 報 >에 今 에 坎 拿 大 의 住 民 지 民 主 政 治 에 接 近 으로, 대한매일신보 1907년 10월 17일 <외보>에 민쥬당, 한영자전(1911)에 민쥬지국 의 사용례가 있는데 이들 사용 례로 보면 당시 共 和 政 治 와 民 主 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본다.
194 언어정보 12 床 은 한불자전(1880)과 한영자전(1911)에 table 의 번역어로 수록되어 있고, 독립신문 1899년 4월 28일 <광고>와 대한매일신보 1909년 1월 21일 <쇼셜>에 는 한글음인 샹 이 사용되었다. 영어음의 한글표기인 테이블의 사용례는 이번 조사자료에는 없었으나 고신문 중에서 중외일보 1930년 4월 26일 <지금류행하 는테블코르스>에 테블 이 사용되었다. 19) 또 다른 번역어인 椅 子 는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 < 海 關 稅 則 >, 서유견문(1895), 고신문 중에 황성신문 1899년 6월 29일 < 外 報 >, 독립신문 1899년 11월 29일 <잡보>에 각각의 사용례가 있다. 이상의 자료의 사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최남선의 복수의 번역어 중에서 science의 번역어 學 藝 와 Republic의 번역어 民 主 는 당시의 근대한국에 존재하 지 않은 서구개념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번역어라고 하겠다. 6. 맺음말 일본어역 ABC 組 合 (1902)에서 원어(영어)가 명기된 한자번역어를 대 상으로 최남선역 ABC 契 의 번역실태와, 조사자료의 사용례와 대조비교를 통해서 ABC 契 의 한자번역어의 성질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본 연구의 고찰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BC 契 에는 個 人, 共 産 黨, 恐 嚇, 共 和, 國 粹, 權 力, 權 利, 理 想, 文 明 人, 民 主 政 治, 思 想 家, 愛 國 者, 野 蠻, 野 蠻 人, 義 務, 前 進, 主 義, 必 要 와 같은 명치기 의 신한어로 생각되는 단어가 수용되어 있는데, 이는 서구의 새로운 문물이나 개념을 적극적으로 한자어로 수용하려는 태도로 인해 생긴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한편 茶 館, 彈 丸 包 는 최남선의 조어로 생각되며, 최남선의 복수의 번역어 중에서 學 藝 와 民 主 는 science'와 'Republic'이라는 서구개념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번역어라고 하겠다. 명치기에 등장한 이들 신한어는 현대 한국어에서도 사용되는 단어들로, 이들 신한어가 근현대 한국어 어휘체계에 어떻게 수용되고 변화되었는가를 최남선의 번역물을 통해서 향후 해명해 가고자 한다. 1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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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언어정보 12 황미정 (HWANG, Mi-Jeong) 소속: 고려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 (Research Institute for Language & Information, Korea University) 전자우편: rozymary@hanmail.net 접수: 2011.02.01 게재결정: 201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