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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打ち上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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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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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치카와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본 생활은 어떠십니까?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생활은 언어와 관습에도 차이가 있어 많은 불안과 고민도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치카와시에서는 여러분들의 불안과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2015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대해서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交 通 放 送 은 96 年 상반기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交 通 專 門 放 送 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委 員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더욱더 사랑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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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언어와 상관없이 시국적 내용이다. 발표매체별 집필 수(K=조선어 N=일본어) 1939년 기사 등 K 文 章 3 三 千 里 2(좌담2포함) 女 性 1 作 品 1 東 亜 日 報 1 N 国 民 新 報 2 소설 K 文 章 년 기사 등 K 三 千 里 10(좌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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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국제사회의 동향 제 2 절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환 제 3 절 세계 안전보장 과제 제 1 장 여러 나라의 방위정책 등 제 1 절 미국 제 2 절 한반도 제 3 절 중국 제 4 절 러시아 제 5 절 동남아시아 제 6 절 남아시아 제 7 절 호주 제 8 절

대국민호소문 원문 현장을 방문코자 하였습니다. 심지어 민간잠수부를 동행하여 자원을 요청하였지만 해경에서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습니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고 난리를 쳐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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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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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대회 진행 순서 제1 개 회 식 제2 발 표 제3 문화 공연 및 시상

제2회 큐슈한글교한국어변론대회 개요 목 적 실행 기관 실시 내용 ~ ~4 2

심사 기준 및 시상 3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개 회 사 오늘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의 개최를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바쁘신 가운데 참석하여 대회를 빛내 주시는 내빈 여러분과 한글교 관계자, 그리고 모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귀한 손님으로서 자리를 함께 해 주시는 산국제교류재단의 관계자와 생, 모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병 윤 李 秉 允 후쿠오카한국교육원 원 장 이번 대회에는 모두 19명의 생들이 참가하여 저와 고로 나누어서 평소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겨루게 됩니다. 이 생들은 일본 교에 다니면서 주말을 이용하여 한글교에서 한국어와 문화, 역사 등을 공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말이 서툴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분도 다소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그들의 애쓴 흔적과 함께 소중한 꿈과 기특한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실수가 있더라도 아낌 없는 박수와 따뜻한 성원으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회에 출전하는 생 여러분은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대회에 참가하는 자체가 좋은 공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과에 관계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우승자라는 자심으로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함께 큰 용기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이 여물고 한국어 실력도 몰라보게 발전할 것입니다. 저 개 회 사 오늘 이 대회를 위해 많은 분들께서 도와 주고 계십니다. 대회를 공동 개최하는 민단 관계자 여러분, 생들의 지도를 맡아 주신 한글교 여러 선생님, 특별 순서에 출연해 주시는 민단 인회 합창단과 박강수 선생님이 이끄는 사물놀이 공연단, 그리고 세 분 심사위원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또한 특별상을 마련해 주신 산국제교류재단 김규옥 이사장님께 관계자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전 생 여러분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건투를 당하면서 개회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4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開 会 辞 本 日 第 回 九 州 ハングル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が 開 催 されますことをとてもうれ しく 思 います また お 忙 しい 中 大 会 御 参 席 の 栄 を 賜 りました 来 賓 の 皆 さまとハング ル 学 校 関 係 者 そして 御 父 兄 にも 深 い 感 謝 の 意 を 申 し 上 げます 特 に 大 事 な 賓 客 として 御 同 席 して 下 さる 釜 山 プサン 国 際 交 流 財 の 関 係 者 と 生 徒 御 父 兄 の 皆 さまを 心 より 歓 迎 いたします 今 回 の 大 会 には 計 人 の 生 徒 たちが 参 加 し 低 学 年 の 部 と 高 学 年 の 部 に 分 か れて 普 段 磨 きあげた 韓 国 語 の 実 力 を 競 いあいます これらの 生 徒 たちは 日 本 の 学 校 に 通 いながら 週 末 を 利 用 してハングル 学 校 に 集 い 韓 国 語 と 文 化 歴 史 などを 勉 強 しています まだ 言 葉 がぎこちなく 文 章 がなめらかでない 部 分 も 多 少 あることでし ょう しかしその 中 には 彼 ら 彼 女 たちのがんばりの 跡 と 共 に 大 切 な 夢 と 立 派 な 考 えが 余 すところなく 込 められています もし ミスがあっても 惜 しみない 拍 手 と 暖 かい 声 援 で 励 ましてあげてください 大 会 に 出 場 する 生 徒 の 皆 さんは 結 果 にあまりこだわらず 大 会 に 参 加 することそ のものがよい 勉 強 という 気 持 ちで 最 善 を 尽 くしてくれればと 思 います そして 結 果 に 関 係 なく 皆 さんひとりびとりが 全 員 優 勝 者 という 自 負 心 で 臨 んでください 自 分 の 考 えを 文 章 という 形 にして 様 々な 人 々の 前 で 発 表 するのは 多 くの 努 力 と 共 に 大 き な 勇 気 も 必 要 だからです このようなすべての 過 程 を 通 じて 皆 さんの 考 えが 成 熟 し 韓 国 語 の 実 力 も 見 違 えたものとなっていくことでしょう 本 日 の 大 会 のために 多 くの 方 々が 御 尽 力 くださいました 大 会 を 共 同 開 催 する 民 団 関 係 者 の 皆 様 生 徒 たちの 指 導 を 引 き 受 けて 下 さったハングル 学 校 の 先 生 方 特 別 出 演 する 民 団 婦 人 会 合 唱 団 とパク カンス 先 生 が 率 いるサムルノリ 公 演 団 そして 名 の 審 査 委 員 の 皆 さま 方 の 御 労 苦 に 深 く 感 謝 申 し 上 げます また 特 別 賞 を 準 備 さ れた 釜 山 国 際 交 流 財 団 キム ギュオク 理 事 長 に 関 係 者 全 員 を 代 表 して 謝 意 を 申 し 上 げます 最 後 に もう 一 度 出 場 する 生 徒 の 皆 さんが 堂 々かつ 美 しい 健 闘 を 見 せてくれるもの との 期 待 を 表 して 開 会 の 辞 とさせていただきます カムサハムニダ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저 개 회 사 5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격 려 사 박 진 웅 朴 鎭 雄 주후쿠오카대한민국총영사 지난 해 처음 시작한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가 2 회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모국어 솜씨를 자랑하는 행사가 이곳 후쿠오카에서 다시 개최되어 동포 여러분과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 모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회를 정성껏 준비해 주신 후쿠오카한국교육원과 민단 후쿠오카현 지방본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대회 참가를 결정하고 단히 실력을 연마해 온 생 여러분들의 용기와 노력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 나라의 말과 글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생들이 한국어와 한글을 공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대회는 단순히 한국어 실력을 경쟁하고 우위를 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어라는 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소중한 교육의 기회라 할 것입니다. 참가 생 여러분들은 지금껏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해 나가기 위한 발전의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모님과 선생님들도 성적과 결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더 큰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대회 참가 경험이 분명히 우리 생들로 하여금 일본 사회에서 보다 당당한 한국인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더 나아가 훗날 성장하여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격 려 사 다시 한 번 이번 대회를 성심껏 준비해 주신 후쿠오카한국교육원과 민단 후쿠오카현 지방본, 그리고 생들을 열심히 지도해 주신 한글교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아무쪼록 우리 생들의 한국어 말하기 실력이 이번 대회를 통해 쩍 자라나기를 기대하며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가 큐슈 지역 동포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뜻 깊은 축제로 자리 잡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6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激 励 辞 昨 年 初 めて 開 催 された 九 州 ハングル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が 今 年 で 回 目 を 迎 えました 母 国 語 の 実 力 を 披 露 する 本 行 事 が ここ 福 岡 で 開 催 され 同 胞 の 皆 様 と 一 堂 にお 会 いすることとなり 非 常 に 嬉 しく 思 うところでございます 様 々な 難 局 の 中 でも 大 会 準 備 のためご 尽 力 いただいた 福 岡 韓 国 教 育 院 と 民 団 福 岡 県 地 方 本 部 の 関 係 者 の 皆 様 のご 労 苦 にも 感 謝 申 し 上 げます また 本 大 会 への 参 加 を 決 断 し 絶 えず 実 力 を 磨 いてきた 学 生 の 皆 さんの 勇 気 と 努 力 にも 激 励 の 拍 手 をお 送 りします 歴 史 を 振 り 返 ってみると その 国 の 言 葉 と 文 章 にはその 国 の 文 化 と 精 神 がこもって いることが 分 かります 正 にそれこそ 日 本 に 住 んでいる 同 胞 の 学 生 の 皆 さんが 韓 国 語 とハングルを 学 ぶべき 真 の 理 由 です そのような 意 味 で 本 大 会 は 単 なる 韓 国 語 の 実 力 を 競 い 順 位 を 決 める 場 ではありません むしろ 韓 国 語 という 民 族 のもっとも 代 表 的 な 文 化 遺 産 を 通 じて 私 ども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 理 解 する 慎 重 な 教 育 の 機 会 にな ると 思 います 参 加 された 学 生 の 皆 さんは 今 まで 磨 いてきた 韓 国 語 の 実 力 を 思 う 存 分 誇 り これから 引 き 続 き 勉 強 するための 発 展 のきっかけになることを 祈 念 致 します ご 両 親 及 び 先 生 方 にも 成 績 と 結 果 に 対 する 評 価 よりは 賞 賛 と 激 励 で 更 なる 勇 気 を 与 えていただくようお 願 い 致 します 本 大 会 への 参 加 経 験 はきっと 学 生 の 皆 様 にとっ て 日 本 社 会 でより 堂 々とした 韓 国 人 として 成 長 する 上 において 糧 になると 確 信 しま す また 後 日 さらなる 成 長 を 遂 げ 韓 国 と 日 本 の 架 け 橋 の 役 割 を 果 たす 時 に 大 き な 力 になってくれることを 期 待 しております 改 めまして 本 大 会 のため 誠 心 誠 意 ご 準 備 していただきました 福 岡 韓 国 教 育 院 と 民 団 福 岡 県 地 方 本 部 また 学 生 指 導 に 当 ったハングル 学 校 の 先 生 方 の 情 熱 と 献 身 に 深 く 感 謝 致 します 何 卒 みなさんの 韓 国 語 弁 論 の 実 力 がこの 大 会 を 通 じて 著 し く 成 長 できることを 期 待 しながら またハングル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が 九 州 地 域 同 胞 社 会 の 結 束 を 固 める 意 義 深 い 催 しとして 位 置 づけられることを 望 んでおり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격 려 사 7

01 축 사 나의 꿈 제2회 제1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오 한 정 령 화 吳 韓 政 怜 花 夫 재일본대한민국민단 후쿠오카한글교 후쿠오카현본 1 단 장 오늘 제 2 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또한 작에 이어 올해도 이 대회가 개최됨으로써 동포자녀들의 모국어 교육은 물론 동포사회의 민족교육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안녕하세요? 우리 민단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서 동포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힘을 저는 후쿠오카한글교에 다니는 한령화입니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올해 8 월 18 일터 4 일 간 후쿠오카현에 거주하는 동포 초등생 저는 아나운서가 6 명이 산국제교류재단의 되고 싶습니다. 초청으로 모국을 방문하여 민족정체성과 역사관 등 모국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홈 스테이를 하면서 그 이유는 책을 읽는 것과 텔레비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가정 생활을 체험하고 본국 생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아나운서가 하였습니다. 되기 위해 오늘 앞으로 이 자리에는 책을 산에서 많이 읽고, 오신 교 산국제교류재단의 숙제도 열심히 관계자와 생, 모님들께서 참석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후쿠오카 방문을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한테 많은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습니다. 우리 재일동포는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지금 일본 사회와 화합의 역사를 새롭게 여동생과 구축하려고 남동생을 합니다. 기쁘게 한국과 해 주고, 일본이 아나운서가 이웃나라로서 되어서는 서로에 좋은 대한 소식을 존중과 인정을 통해 신뢰를 쌓으면서 각종 교류 사업을 추진하여 온 사실을 주목하며 빨리 알려 주겠습니다. 한일 우호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겠습니다. 후쿠오카한국교육원은 재일동포에 대한 민족교육과 함께 일본인을 위한 지역 밀착형 감사합니다. 문화 교류 사업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역대 원장님과 교직원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런 사업을 정착시켜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변론대회에 출전하는 생 여러분! 앞으로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하여 장래에 크게 활약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민단도 향후의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과 문화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축 마지막으로 대회의 성공과 후쿠오카한국교육원의 더 많은 발전, 그리고 내빈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인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 8

01 한 령 화 韓 怜 花 후쿠오카한글교 1 祝 辞 나의 꿈 제2회 제1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本 日 第 2 回 九 州 ハングル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の 開 催 を 心 よりお 祝 い 申 し 上 げ ます 又 去 年 に 続 き 今 年 もこの 大 会 が 開 催 され 同 胞 子 女 の 母 国 語 教 育 は 勿 論 の こと 同 胞 社 会 の 民 族 教 育 の 活 性 化 にも 大 きく 寄 与 すると 期 待 しております 안녕하세요? 私 ども 民 団 は 何 より 重 要 な 課 題 として 同 胞 子 女 たちの 教 育 の 為 に 全 力 を 注 いで います 저는 후쿠오카한글교에 今 年 の 月 日 から 日 間 다니는 福 岡 県 한령화입니다. 内 に 居 住 する 同 胞 の 小 学 生 人 が 釜 山 国 際 交 流 財 団 の 招 請 を 得 て 母 国 を 訪 問 し 民 族 正 体 性 歴 史 観 韓 国 を 親 しむ 心 等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多 くの 事 を 学 ぶことができました また ホームステイで 本 国 の 家 庭 での 生 活 本 国 の 子 그 供 たちとの 이유는 交 책을 流 を 通 읽는 じて 것과 生 涯 텔레비전을 忘 れられない 좋아하기 体 験 をしました 때문입니다. 今 日 この 会 場 には 釜 아나운서가 山 から 来 られた 되기 釜 山 위해 国 際 交 앞으로 流 財 団 책을 の 関 係 많이 者 と 学 읽고, 生 保 護 교 者 たちが 숙제도 参 席 されまし 열심히 た 皆 さんの 福 岡 訪 問 を 心 より 歓 迎 致 します 하겠습니다. 私 達 在 日 同 胞 は 長 い 歴 史 を 経 て いま 日 本 社 会 と 融 合 の 歴 史 を 新 たに 構 築 し ようとしています 그리고 여동생과 韓 国 남동생한테 と 日 本 が 隣 国 많은 としてお 그림책을 互 いに 尊 읽어 重 し 認 주고 め 合 う 싶습니다. 事 で 信 頼 関 係 を 築 き 各 種 の 交 流 事 業 を 開 催 してこられたことを 踏 まえ 日 韓 友 好 発 展 の 為 により 一 여동생과 남동생을 기쁘게 해 주고, 아나운서가 되어서는 좋은 소식을 層 頑 張 りたいと 思 います 빨리 알려 주겠습니다. 福 岡 韓 国 教 育 院 は 在 日 同 胞 の 民 族 教 育 と 共 に 日 本 における 地 域 密 着 型 文 化 交 그래서 流 事 業 等 많은 様 々な 사람들에게 教 育 活 動 に 행복을 取 り 組 んでいます このような 선물하겠습니다. 事 業 を 定 着 させて 来 られ た 歴 代 院 長 と 先 生 方 が 人 と 人 とのつながりを 大 事 に 活 動 しておられます 事 を 誇 ら 감사합니다. しく 思 います 本 日 大 会 に 出 場 された 弁 士 の 皆 様 これからもたくさん 韓 国 語 を 勉 強 され 将 来 に 大 きく 活 躍 する 人 になられますことを 期 待 いたします 私 達 民 団 も 今 後 の 同 胞 社 会 の 発 展 と 文 化 向 上 の 一 助 になるべく 鋭 意 努 力 する 所 存 でございます 最 後 に 弁 論 大 会 の 成 功 と 福 岡 韓 国 教 育 院 の 更 なる 発 展 そしてご 来 場 の 皆 様 の ご 健 勝 をお 祈 り 申 し 上 げて 私 の 挨 拶 と 致 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축 사 9

발표 순서 및 원고 저 고 01 나의 꿈 09 내가 경험하고 새롭게 발견한 한국 02 모두가 즐기는 강남스타일 10 한국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정체성 03 한글을 배워야 하는 이유 11 나의 통신사 역할에 대해 04 나의 꿈 12 산으로 05 한국어를 배우는 즐거움 13 한국은 오른쪽 일본은 왼쪽 06 세종대왕 14 자랑스런 우리나라 한국 07 하면 된다 15 한국과 일본의 8월15일 08 우리 할머니 16 3박4일의 한국 문화 체험 17 광복 70주을 맞이한 한국 18 한국어는 나의 보물 19 한글 공의 에피소드와 장래 희망 11

01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나의 꿈 안녕하세요? 저는 후쿠오카한글교에 다니는 한령화입니다. 한 령 화 韓 怜 花 후쿠오카한글교 1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책을 읽는 것과 텔레비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앞으로 책을 많이 읽고, 교 숙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한테 많은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습니다. 여동생과 남동생을 기쁘게 해 주고, 아나운서가 되어서는 좋은 소식을 빨리 알려 주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12

01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私 の 夢 こんにちは わたしは 福 岡 ハングル 学 校 に 通 っているハン リョンファです わたしのゆめは アナウンサーになることです そのりゆうは 本 をよむこととテレビを 見 ることが 好 きだからです アナウンサーになるために これからはもっと 本 をよんで 学 校 のしゅくだいもいっ しょうけんめいがんばります そして いもうととおとうとにたくさんの 絵 本 をよんであげたいです いもうととおとうとをよろこばせてあげて ゆくゆくはアナウンサーになり いいニュ ースを 早 く 知 らせてあげます それで たくさんのひとびとに 幸 せをプレゼント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버스 멈춤 저 13

02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모두가 즐기는 강남스타일 이번 여름방 때 하우스텐보스로 가족여행을 갔어요.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의 도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도 많이 와서 한국어로 된 안내판도 많이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소녀시대, 동방신기 같은 유명한 강 석 화 姜 錫 和 후쿠오카한글교 2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영상으로 보여 주는 곳도 있는데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서 봐야 했어요. 정말 한국 음악이 인기가 많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다 보고 나왔는데 밖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서양인 댄서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어요. 나도 신나게 같이 춤을 췄어요. 그런데 갑자기 강남스타일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그리고 서양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 모두 신나게 춤을 췄어요. 너무 너무 재미있었어요. 한국 음악에 맞춰 모두 다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게 신기했어요. 모두 똑같이 강남스타일 춤을 췄어요. 강남스타일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느꼈어요. 음악은 말을 몰라도 한국 사람, 외국 사람 모두를 즐겁게 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한국 음악이 더 많이 알려져서 세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즐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도 한국 음악을 많이 들어서 친구들에게도 신나는 한국 음악을 많이 소개해 주고 싶어요. 저 14

02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皆 が 楽 しむカンナム スタイル 今 年 の 夏 休 みのとき 家 族 旅 行 でハウステンボスに 行 きました ハウステンボスは オランダの 都 市 の 姿 をしていますが 韓 国 からの 観 光 客 も 多 く 韓 国 語 になっている 案 内 板 もたくさんあります また 最 近 は 少 女 時 代 東 方 神 起 など 有 名 な 韓 国 歌 手 の 公 演 を 映 像 で 見 せてくれるところもありますが 見 にくる 観 客 も 多 くて 見 るためには だいぶ 並 んで 待 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 本 当 に 韓 国 の 音 楽 は 人 気 があるんだ なと 思 いました 公 演 が 終 わり 外 に 出 たら また 長 い 列 ができていて 大 勢 の 人 たち が 次 の 公 演 を 待 っていました そして 別 の 場 所 では 楽 しい 音 楽 に 合 わせて 西 洋 人 のダンサーたちが 楽 しく 踊 っていました わたしも 一 緒 に 楽 しく 踊 りました ところが 急 に 音 楽 が 変 わり カンナ ム スタイルが 流 れてきました すると 西 洋 人 日 本 人 韓 国 人 のみんなが カンナ ム スタイルのダンスを 楽 しく 踊 りました 本 当 におもしろかったです 韓 国 の 音 楽 に 合 わせてみんな 一 つになって 楽 しく 踊 るのが 不 思 議 でした みんな 同 じくカンナム ス タイルのダンスを 楽 しんだのです カンナム スタイルはすごく 有 名 だなと 感 じました 音 楽 というのは 言 葉 が 分 からなくても 韓 国 人 外 国 人 のみんなを 楽 しませてくれる と 思 いました 音 楽 を 聞 くと 気 分 が 良 くなります 韓 国 の 音 楽 がもっともっと 知 られて 世 界 人 のみんなに 楽 しんでもらいたいと 思 いま した そして わたしも 韓 国 の 音 楽 をたくさん 聞 いて 友 達 にも 楽 しい 韓 国 の 音 楽 を 紹 介 してあげたいです! 강남스타일 저 15

03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글을 배워야 하는 이유 제가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제가 왜 한국말을 잘 해야 하는지를 지금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7살 때의 일입니다. 아빠하고 엄마랑 한국에 계시는 할머니 댁에 허 許 민 民 후쿠오카한글교 2 놀러 갔을 때 일입니다. 할머니께서 사시는 맨션에는 셔틀 버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셔틀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아빠하고 저는 일본말로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화를 내고 계시는 모습에 엄마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계셨고, 두 분이 소리 높여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저는 이유없는 눈물만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엄마가 왜 그 할아버지께서 화를 내셨는지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셔틀 버스 안에서 일본말을 사용했고 그 날이 8월 15일 광복절이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왜 셔틀 버스 안에서 일본말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때터 저는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저는 열심히 한글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공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한국 역사를 공하게 될 것이며 8월 15일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6

03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ハングルを 習 わなければいけない 理 由 私 がなぜハングルを 習 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そして 私 がなぜ 韓 国 語 をうまくしゃべれるよう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今 か ら 話 したいと 思 います 私 が 才 の 時 に 起 きた 出 来 事 です 私 は お 父 さんとお 母 さんと 一 緒 に 韓 国 に 住 んでるおばあちゃんの 家 に 遊 びに 行 きました おばあちゃんが 住 んでるマンションは シャトルバスが 運 営 しています そのシャトルバスに 乗 って 市 内 に 向 かいながら 私 は お 父 さんと 日 本 語 で 楽 しく 話 していました すると 急 に 1 人 のおじいさんが 私 のお 母 さんに 向 かって 怒 鳴 り それを 聞 いたお 母 さんも 何 かを 言 い 返 し 二 人 が 声 を 上 げ て 話 し 始 めたのです それを 見 た 私 は 訳 も わからず 涙 を 流 してしまいました 後 になってお 母 さんは なぜあのおじいさんが 怒 っていたのか 説 明 してくれました その 理 由 とは シャトルバスの 中 で 日 本 語 を 使 っていた 事 そしてその 日 が 光 復 節 だ った 事 を 説 明 してくれました 私 は あまり 理 解 できなかったけどその 時 から 韓 国 語 を 習 わなければいけないと 思 うようになりました そして 私 は 今 一 生 懸 命 ハングル 学 校 に 通 っています これからも 一 生 懸 命 勉 強 しようと 思 います そうすればいずれ 韓 国 の 歴 史 も 勉 強 するようになるだろうし 月 日 の 光 復 節 がどんな 日 なのか 理 解 できる 日 が 来 ると 思 います 私 の 話 を 最 後 まで 聞 いて 下 さり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저 17

04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나의 꿈 안녕하세요? 저는 후쿠오카한글교에 다니는 김료탁이에요. 김 료 탁 金 遼 拓 후쿠오카한글교 1 나의 꿈은 우주비행사예요. 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으냐고 하면 우주가 보고 싶어서예요. 왜 우주에 가 보고 싶으냐고 하면 우주는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왜 우주가 아름다운가 하면 파랗고 깨끗하기 때문이에요. 왜 우주가 깨끗하냐고 하면 지구가 파랗기 때문이에요. 왜 파랗느냐고 하면 하늘이 파랗게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에서 파란 지구를 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저 18

04 私 の 夢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こんにちは わたしは 福 岡 ハングル 学 校 に 通 っているキム リョタクです ぼくのゆめは うちゅうひこうしです なぜ うちゅうひこうしになりたいのかというと うちゅうがみたいからです なぜ うちゅうがみたいのかというと きれいだからです どうして うちゅうがきれいなのかというと あおくてきれいだからです なぜ うちゅうがきれいなのかというと ちきゅうがあおいからです なぜ あおいかというと そらをみるとあおくみえるからです だから ぼくはうちゅうひこうしになり うちゅうからあおいちきゅうをみたい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저 19

05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국어를 배우는 즐거움 저는 토요 한글교에 작터 다니고 있습니다. 집에서 왕복 2시간 거리를 전철로 다니고 있습니다.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한국어 읽기 쓰기와 말하기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기에는 겨우 글자를 최 기 영 崔 基 榮 후쿠오카한글교 2 외우는 것에 그쳤지만, 2기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2이 되어서 숫자를 배웠는데, 선생님께서 교과서의 페이지를 말씀하시자마자 책을 펼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선생님은 반복해서 같은 단어를 사용해 주십니다. 또한 한국어로 말한 뒤에 같은 의미의 단어를 일본어로 말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한국어 단어를 외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 주고 계십니다. 읽기 시간에는 먼저 잘 읽는 사람의 예를 보여 준 뒤에 읽도록 하십니다. 정말로 잘 생각해서 가르쳐 주시는구나 라고 감탄했습니다. 그 덕분에 올해 6월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전보다도 한국어를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보통 집에서는 한국인인 아버지가 한국어보다 일본어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빠, 집에서는 한국어를 좀 더 사용해 주세요. 제가 한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협조해 주세요. 저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기까지 열심히 공하겠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공해 보고 싶습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

05 韓 国 語 を 学 ぶ 喜 び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僕 は 土 曜 ハングル 学 校 に 去 年 から 通 っています 家 から 往 復 時 間 かけて 電 車 で 通 っています 始 めの 頃 は 韓 国 語 の 読 み 書 き 会 話 全 てが 出 来 ませんでした なので 1 学 期 は 文 字 を 覚 えるので 精 一 杯 でしたが 学 期 のパダスギで 満 点 が 取 れました 自 分 の 成 長 が 感 じられて とても 嬉 しかったです 年 生 になってから 数 字 を 習 いましたが 先 生 が 教 科 書 のページを 言 う 時 に す ぐにそのページを 開 けるようになって とても 嬉 しかったです 先 生 は 繰 り 返 し 同 じ 単 語 を 使 ったり 韓 国 語 の 後 に 同 じ 言 葉 を 日 本 語 で 言 ったりと 僕 たちが 韓 国 語 の 単 語 を 覚 えるように 色 んな 工 夫 をしてくれます 読 みの 時 には 上 手 な 人 から 先 に 指 して 見 本 を 見 せてくれてから 当 ててくれるので よく 考 えて 教 えているんだなあ と 感 心 し ました そのおかげで 今 年 の 月 に 韓 国 の 祖 父 母 に 久 しぶりに 会 った 時 前 よりも 韓 国 語 が 分 かるようになっていて とても 嬉 しかったです 普 段 家 で 韓 国 人 の 父 は 韓 国 語 よりも 日 本 語 で 話 してきます パパ 家 で 韓 国 語 をもっと 使 ってください! 僕 が 韓 国 語 覚 えられるように 協 力 して 下 さい 僕 は 韓 国 語 がペラペラになるまで 頑 張 って 勉 強 するつもりです いつか 韓 国 で 勉 強 してみたいと 思 っています ご 静 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저 21

06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세종대왕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최선호입니다. 저는 지금터 여러분께 세종대왕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국어는 대한민국의 말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만드셨습니다. 최 선 호 崔 先 鎬 후쿠오카한글교 3 세종대왕은 1397에 태어났습니다. 세종대왕은 무척 뚱뚱했습니다. 또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었습니다. 반면 세종대왕은 걷기랑 운동이랑 사냥을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세종대왕이 타고 있던 가마가 서지기도 했답니다. 세종대왕은 아들 18명이랑 딸 4명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국의 만 원짜리 돈에 그려져 있습니다. 또 세종대왕은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급하게 씹어 삼키면 맛을 잘 느낄 수 없잖아요? 언젠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바우바우시에서 생들이 한글을 배우고 말하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훌륭한 우리나라 한글이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한 것이 아주 자랑스럽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런 한글을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을 좋아합니다.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22

06 世 宗 大 王 セジョンデワン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はじめまして 私 の 名 前 はチェソノです 本 日 私 はセジョンデワンに 関 してお 話 します 韓 国 語 は 韓 国 の 言 葉 です ハングルはセジョンデワンが 作 りました セジョンデワン は 年 に 生 まれました セジョンデワン 非 常 に 太 っていました 又 肉 が 大 好 きでし た 肉 が 無 ければご 飯 が 食 べられないぐらい 肉 好 きでした その 反 面 セジョンデワン は 歩 く 事 運 動 する 事 狩 りをする 事 が 嫌 いでした ある 日 はセジョンデワンが 乗 って いた 駕 籠 (かご)が 体 重 の 所 為 で 壊 れた 事 も 有 ったそうです セジョンデワンには 息 子 が18 人 娘 が4 人 いました セジョンデワンは 韓 国 の ウォン 札 に 描 かれています 又 セジョンデワンは 本 が 好 きでした 本 を 読 む 時 にはゆっくり 考 えながら 読 むべきだと 言 いました ご 飯 を 食 べる 時 も 急 いで 飲 み 込 むと 味 がよく 分 からない 事 と 同 じではないでしょうか 前 にインドネシアに 有 るバウバウシの 学 生 たちがハングルを 学 び 話 すのをニュー スで 見 ました 私 はわが 国 のハングルが 私 たち 以 外 の 国 で 使 っているのが 誇 らしく 嬉 しいです そのハングルを 作 ってくれたセジョンデワンが 大 好 きです ご 静 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저 23

07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하면 된다 나는 매주 토요일 한글교에 다닙니다. 올해 3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워서 뒤죽박죽이었지만 선생님이 알기 쉽게 가르쳐 주셔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황 유 나 黃 由 奈 후쿠오카한글교 3 올해 봄 방에 오이타현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에 있는 온천수영장에서 어느 한국인 아저씨가 몇 살이야? 라고 한국말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나는 8살이에요 라고 한국말로 대답했습니다. 그 아저씨와 조금이지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글 공를 더 열심히 하면 한국 사람에게, 그리고 한국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나의 마음을 전달할 수가 있겠구나 라고요. 그때 오이타에서 한국인 아저씨와 조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일이 저에게는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글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재미있게 한글 공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국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자작 가수 가 되려고 합니다. 피아노도 더 열심히 연습해서 하나의 노래를 일본어와 한국어로 르고 싶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초대해서 콘서트를 열고 지금까지 전달하지 못했던 나의 작은 마음도 전달하고 싶습니다. 우리 엄마는 항상 하면 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 단어를 마음 저 속에 되새기며, 지금은 잘하지 못하는 것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된다 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4

07 やればできる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わたしは 毎 週 土 曜 日 ハングル 学 校 に 通 っています 今 年 3 年 生 になりました 最 初 は 難 しくてゴチャゴチャになっていたけど 先 生 が 分 かりやすく 教 えてくださったから 少 しずつ 意 味 がわ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 今 年 の 春 休 みに 大 分 県 に 家 族 旅 行 に 行 ったときのことでした ホテルの 温 泉 プー ルで ある 韓 国 のおじさんに なんさい? と 韓 国 語 で 声 をかけられました わたしは 韓 国 語 で 8 才 です と 答 えて そのおじさんと 少 しお 話 ができました わたしはそのとき 気 が 付 きました 韓 国 語 をもっとがんばれば 韓 国 人 とも 韓 国 にいるハルモニ ハラボ ジともいっぱい 話 ができるかも...と 大 分 で 韓 国 のおじさんと 少 しお 話 ができたことで 勇 気 付 けられました 今 はハング ル 学 校 で 先 生 と 友 だちと 仲 良 くハングルの 勉 強 を 頑 張 っています いつかは 韓 国 の ハルモニ ハラボジとも 電 話 でお 話 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らいいなと 思 います わたしは 大 きくなったら シンガーソングライター になりたいと 思 います ピアノもも っと 練 習 して ひとつのうたを 韓 国 語 と 日 本 語 で 唄 いたいです 韓 国 のハルモニ ハ ラボジを 招 待 してコンサートを 開 き うまく 言 えなかった 私 の 気 持 ちをちゃんと 伝 えた いと 思 います お 母 さんはいつもわたしに やればできるじゃん と 言 います この 言 葉 を 心 のそこ において 今 はできないこともなんでも やればできる! ということを 思 い 出 してこれ からも 頑 張 って 行 き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저 25

08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경상남도 사천에서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내가 심심해 하는 것 같아 보이면, 공놀이도 하며 재미나게 놀아 주십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가끔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유 빈 李 有 彬 후쿠오카한글교 3 한번은 할머니께서 유빈아, 가세 가지고 온나 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세 가 뭔지 몰라서 할머니, 그게 뭐예요? 라고 물으면 가위 말이다 가위 그제야 알아듣고 저는 그런데 어디 있어요? 라고 다시 물으면 그 모티 돌아가면 빼다지 안에 있다. 라고 하십니다. 내가 할머니 뭐라구요? 하면 할머니께서는 더 큰 소리로 모티 돌아가면 빼다지 안에 있다고 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전 아무 말도 못하고 할머니만 멀뚱멀뚱 보고 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하고 한숨을 내쉬며 직접 가지러 가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수를 할 때는 매매 닦어라, 왜 이리 게을받노, 오빠랑 싸울 때는 엥간이 좀 해라, 제가 옷을 고를 때면 영 파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저는 매주 토요일엔 토요한글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또 집에서도 매일 조금씩 공도 하고 있지만,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을 했더니 엄마가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은 경상도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라서 한글교에서 배우는 말과는 달라 모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와 서로 답답해 하지 않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며 놀고 싶습니다. 고저 그런데 책에도 안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요?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6

08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私 のお 祖 母 さん 私 のお 祖 母 は 慶 尚 南 道 の 泗 川 に 住 んでいます 私 が 退 屈 に 見 えると 私 たちとボ ール 遊 びをしながら 面 白 く 遊 んでくれます ところで 祖 母 はたまに 分 からない 変 な 言 葉 を 発 します 一 度 は 祖 母 が ユビン カセ を 持 ってきて と 言 いました しかし 私 はカセが 何 なのか 分 からなくて お 祖 母 さん それが 何 ですか? と 尋 ねると はさみだよ はさみ やっと 聞 き 取 れて ところで ど こにありますか? と 改 めて 聞 くと そのモッティを 回 ったらペダジの 中 にある と 言 い ました 私 が お 祖 母 さん どこですか と 言 ったら 祖 母 はもっと 大 きな 声 で モッティ を 回 ったらペダジの 中 にあるよ と 言 いました そこで 私 は 何 も 言 えず 祖 母 をきょと んと 眺 めていました すると 祖 母 は アイゴー と 言 いながらため 息 をついて 直 接 取 り に 行 きました こ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 顔 洗 う 時 は メメタッカラ ウェイリ ケウルバッ ノ 兄 と 争 う 時 は エンガンイ ジョムヘラ 私 が 服 を 選 ぶ 時 は ヨン パイダ という ことを 言 います 皆 さんはどんな 意 味 かご 存 じですか 私 は 毎 週 土 曜 日 には 土 曜 ハングル 学 校 で 韓 国 語 を 学 び また 家 でも 毎 日 少 しず つ 勉 強 していますが 祖 母 がこんな 言 葉 を 発 する 時 は 全 然 わかりません このことで 私 が 心 配 をしていたら 母 は 祖 母 が 言 う 言 葉 は 慶 尚 道 キョンサンドで 使 用 する 方 言 なので ハングル 学 校 で 学 ぶ 言 葉 とは 違 うので 知 らないこともあるということでした しかし 私 は 愛 する 祖 母 とお 互 いに 歯 がゆい 思 いをせず 面 白 く 話 しながら 遊 びたい です ところが 本 にも 出 て 来 ない 慶 尚 道 キョンサンドの 方 言 をどうやって 学 んだらいい のかわかりません もしかして 何 かいい 方 法 はありませんか? 今 まで 聞 いていただき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고저 27

09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내가 경험하고 새롭게 발견한 한국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치중교 1 염유진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한국에서 보낸 3개월 동안의 추억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우리나라 한국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염 유 진 廉 唯 眞 사랑한글교 중고등 올해 초에 가족과 함께 3개월 간 한국 인천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와 동생은 근처 중교와 초등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자중교를 다녔는데 다들 너무 밝고 상냥하게 다가왔어요. 그런 점이 너무 좋았고 한국에서의 첫 교 생활인지라 안심도 되었습니다. 교에 간 첫날 모두가 저를 신기한 듯 보니 좀 끄러웠지만 그 후는 모두가 도움을 주거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하게 되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가끔 일본이 그리워지고 일본 친구들과 교가 궁금해서 엄마 핸드폰으로 친구와 전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고 그곳 여자중교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4월1일 만우절이었습니다. 교에 갔더니 반 친구들 모두가 의욕에 가득 차 여러 가지 작전을 짜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오늘은 만우절이야 라고 하길래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침 첫 시간에는 쓰러진 척, 국어 시간에는 죽은 척, 그리고 가장 짓궂은 장난은 교복을 앞뒤 반대로 입고, 의자도 반대로 앉아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한 것입니다. 그날은 한국에 있었던 시간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는 역시 한국에서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단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 친절하게 이해할 때까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때로는 교장선생님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후쿠오카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저에겐 길기도 했지만 짧은 느낌이 너무나도 서운했습니다. 이별하기 전에 저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종이을 접어 선물했습니다. 반 친구들로터는 모두의 한마디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는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쓴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기뻐서 울 뻔했지만 참았습니다. 저는 한국 생활 속에서 참 귀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 준 친구들에게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친근함에 대해서 재미있는 추억과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 연락은 하지만 또 다시 만나고 싶기도 합니다. 다시 만날 땐 서로의 다양한 경험들과 생각들을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8

09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私 が 経 験 し 新 しく 発 見 した 韓 国 はじめまして 私 は 百 道 中 学 校 年 廉 唯 眞 と 申 します 今 日 私 は 韓 国 で 過 ごしたヶ 月 間 の 思 い 出 を 通 して 新 しく 発 見 した 韓 国 に 関 してお 話 したいと 思 います 今 年 始 めに 家 族 と 共 にヶ 月 間 韓 国 のインチョンで 過 ごしました 短 い 期 間 でした が 私 と 妹 は 近 くの 中 学 校 と 小 学 校 に 通 うようになりました 私 は 女 子 中 学 校 に 通 ういま したが 皆 明 るくて 親 切 に 接 してくれました そのようなところがとても 良 くて 又 韓 国 で の 初 めての 学 校 生 活 であるため 安 心 できました 学 校 の 初 日 皆 私 を 不 思 議 に 見 てたのですこし 恥 ずかしかったです しかしその 後 からは 皆 助 けてくれたり 自 然 に 話 しかけてくれてとても 楽 しかったです たまに 日 本 が 懐 かしくてなったり 日 本 の 友 たちと 学 校 のことが 知 りたくてお 母 さんの 携 帯 電 話 で 長 電 話 もしました 女 子 中 学 校 での 一 番 楽 しかった 出 来 事 を 話 したいと 思 います 月 日 エイプリル ディーでのことです 学 校 に 着 いてみるとクラス 皆 がすごく 気 合 が 入 っていて 色 んな 作 戦 を 組 んでいました どういうことなの と 聞 くと 今 日 がエイプリルディーでしょう と 言 ったので 私 は なるほど?! と 首 を 頷 かせました 朝 一 限 目 には 倒 れたふり 国 語 時 間 には 死 んだふり そして 一 番 大 きないたずらは 制 服 を 前 後 反 対 に 着 て 椅 子 にも 黒 板 反 対 方 向 に 座 って 教 室 に 入 る 先 生 を 驚 かせました その 日 は 韓 国 で 過 ごした 時 間 の 中 で 一 番 楽 しかったと 思 います しかし 勉 強 は 韓 国 でも 難 しかったです むずか しい 単 語 などで 理 解 し 辛 かったですが 先 生 と 友 たちが 理 解 できるまで 親 切 に 教 えて くれました 時 には 校 長 先 生 も 助 けてくださいました 福 岡 に 戻 る 時 が 来 ました 私 には 長 くも 感 じましたが 短 い 感 じがもっとして 寂 しくなり ました 私 は 別 れる 前 に 同 じクラスの 友 たちに 折 り 紙 の 鶴 を 人 数 分 作 ってプレゼントし ました クラスの 友 たちからは 皆 のメッセージが 書 かれた 手 紙 をもらいました この 手 紙 は 私 が 気 づかないように 準 備 したのでした 私 はあまりにも 嬉 しくて 泣 きそうでした が 堪 えました 私 は 韓 国 の 生 活 でとても 大 切 なことを 学 びました 何 より 先 に 近 づき 話 しかけてく れた 友 たちから 私 たちの 国 の 親 近 感 に 対 して 楽 しい 思 いでと 経 験 をしたと 思 います 韓 国 の 友 たちと 安 否 のやり 取 りはしますが また 会 いたいと 思 います また 会 ったとき はお 互 いのいろんな 経 験 とか 考 えなどを 夜 通 しで 話 したいとおもいます ご 静 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 29

10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국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정체성 강 유 진 姜 有 眞 후쿠오카한글교 중고등 저처럼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둘 다 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 두 언어를 모두 공해야 할까요? 저는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루트인 한국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어는 일본어와 문법뿐만이 아니라 한자어는 소리나 뜻도 흡사합니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는 자만하여 한국어를 열심히 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등생이 되어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속담을 배웠을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치 국물터 마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떡을 먹은 후에 김치 국물을 마시는 한국 습관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언어를 공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우리가 한국어를 공함으로써 한국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 지식이 한국인으로서 살아 가기 위한 정체성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에는 그 후의 발전에 큰 차이를 보이는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한국어와 같은 훌륭한 문화를 유지하여 왔고 지금과 같은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고 언어를 통하여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심이 생기며 그로 인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인 인재가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사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한국 고유의 문화와 특징을 알게 된 저는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0

10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韓 国 語 から 学 ぶ 韓 国 人 のアイデンティティー 私 のように 日 本 で 生 まれた 韓 国 の 子 供 達 は 韓 国 語 と 日 本 語 の 両 方 を 勉 強 する 事 が 多 いと 思 います なぜ 我 々はこの 二 つの 言 語 を 勉 強 するのでしょう? 私 は 互 いの 国 の 文 化 を 理 解 し 国 際 的 な 人 間 として 成 長 する 為 言 語 を 習 うのだと 思 っています そ のためには 自 分 のルーツである 韓 国 の 文 化 を 深 く 理 解 し 韓 国 人 であるというアイデ ンティティーを 確 立 する 必 要 性 があります 韓 国 語 は 日 本 語 と 文 法 が 似 ているだけでなく 漢 字 語 は 音 や 意 味 などもそっくりで す このため 小 さい 頃 は 慢 心 して 本 気 で 韓 国 語 を 勉 強 しませんでした しかし 高 校 生 になり 将 来 について 考 えはじめた 時 韓 国 人 である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 失 わ ない 為 にも 韓 国 語 を 改 めて 勉 強 するべきだという 事 に 気 がつきました そのきっかけ になったのは ことわざを 勉 強 した 時 でした 例 えば 餅 を 持 った 人 はあげるつもりもな いのにキムチ 汁 を 飲 む という 言 葉 があります これは 餅 を 食 べた 後 にキムチ 汁 を 飲 むという 韓 国 の 習 慣 を 知 っている 事 が 前 提 となっています つまり 言 語 を 勉 強 するという 事 はその 国 の 文 化 を 知 るという 事 に 直 結 しているとい う 事 がわかります 日 本 に 住 む 我 々が 韓 国 語 を 勉 強 する 事 によって 韓 国 の 文 化 に ついてさらに 深 く 理 解 する 事 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 この 知 識 が 韓 国 人 として 生 きるア イデンティティの 基 礎 となるのではないかと 考 えます 世 界 の 歴 史 をみても アイデン ティティーを 強 く 持 った 国 民 がいる 国 とそうでない 国 の 間 には 発 展 する 割 合 にかなり 差 が 出 ます 韓 国 は 小 さい 国 ですが 韓 国 語 という 素 晴 らしい 文 化 を 持 っているおか げで 今 は 経 済 大 国 になりました 言 語 を 通 して 自 国 の 文 化 に 関 する 自 負 心 が 生 まれ これらの 事 から 国 の 発 展 に 寄 与 できるという 事 がわかります また 国 際 的 な 人 材 を 要 する 現 代 社 会 では 数 カ 国 の 文 化 や 言 語 を 理 解 する 人 は 結 果 的 に 社 会 に 大 きく 貢 献 できるようになると 思 われま す 韓 国 語 を 積 極 的 に 学 び 韓 国 固 有 の 文 化 の 特 徴 を 知 る 事 ができた 私 は 世 界 で 活 躍 できるような 人 になりたいと 思 っています 고 31

11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나의 통신사 역할에 대해 안녕하세요? 후쿠오카한글교 6 김민주입니다. 저는 한일 우호를 위해 필요한 것과 저의 역할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민 주 金 慜 珠 후쿠오카한글교 6 한국과 일본은 전쟁을 비롯해서 그 동안 대립과 경쟁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웃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서로에 대해 잘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과 한국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나 다른 점, 좋은 점에 대해 서로에게 잘 풀어 설명해 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친구 관계에서 오해가 생겨 멀어졌을 때 양 쪽을 잘 아는 다른 친구가 중간에서 화해를 돕는 일과도 비슷합니다. 저도 친한 친구 두 명이 멀어졌을 때 두 명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되었던 적이 있는데요. 그 때도 잘 생각해 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다가가 넌 무엇에 화가 났니?, 너는 무엇이 속상하니? 라고 물어 둘의 생각을 잘 듣고 난 후에 둘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라면서 중간에서 잘 설명하고 서로의 좋았던 추억과 우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었습니다. 그 후에 우리들은 더욱 사이가 돈독해졌고요. 이와 비슷하게 제가 한국과 일본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조선 후기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것인데요. 지금으로터 약 400 전, 임진왜란 등의 전쟁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일본의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 서로 통신사를 파견하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함께 청나라를 견제하면서 이백오십 간 평화 관계를 유지했었지요. 고 저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어서 일본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조선통신사들처럼 일본과 한국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나 좋은 점에 대해서 알려 주고 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서로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분도 많지만 같은 아시아의 나라로서 공통점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친구와 친구 사이에서 중간자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다리가 될 수 있도록 역사 공도 열심히 하면서 지금 시대의 통신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2

11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私 の 通 信 使 の 役 割 について こんにちは 福 岡 土 曜 ハングル 学 校 年 金 ミンジュです 私 は 韓 国 と 日 本 の 友 好 の ために 必 要 なことや 私 の 役 割 についてお 話 したいと 思 います 韓 国 と 日 本 は 戦 争 を 始 めとし 今 まで 対 立 と 競 争 を 繰 り 返 してきました それで 隣 の 国 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 互 いに 嫌 がる 気 持 ちを 抱 き 互 いを 理 解 しようとしない 部 分 があると 思 われます それで 私 は 韓 国 と 日 本 が 互 いによくわからない 部 分 や 異 な る 点 良 い 点 について 双 方 にうまく 説 明 をして 理 解 を 促 すことが 私 の 役 割 だと 考 えて います 例 えていえば 友 たち 関 係 で 誤 解 があって 疎 遠 になった 時 に 双 方 につい てよく 知 っている 別 の 友 たちが 中 に 入 って 和 解 できるように 手 伝 うことと 似 っていま す 私 も 仲 良 しの 友 たちの 関 係 が 悪 くなった 時 に 二 人 の 中 でどうしようと 悩 んだことが あります その 時 よく 考 えてみたら そんなに 難 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友 た ちに あなたはどんなところにそんなに 腹 がたったの? 困 っているところは 何? と 双 方 の 言 い 分 意 見 をよく 聞 いてから 二 人 の 中 で 誤 解 があるようだけど 一 緒 に 話 をしてみたらどうか と 互 いの 思 い 出 話 や 友 情 について 話 しかけながら 一 緒 に 話 し 合 う 場 を 設 けたことがあります その 後 私 たちは 以 前 より 仲 良 くなったのです このように 私 が 韓 国 と 日 本 の 仲 介 者 になろうと 考 え 始 めたのは 朝 鮮 後 期 に 日 本 に 派 遣 された 朝 鮮 通 信 使 に 関 する 本 を 読 んでからです 今 から 約 年 前 壬 辰 の 倭 乱 等 の 戦 争 によって 韓 国 と 日 本 は 仲 悪 かったが 江 戸 時 代 に 入 って 互 いに 通 信 使 を 派 遣 し 互 いのことを 知 り 合 いながら ともに 清 国 を 牽 制 して 年 間 平 和 関 係 を 維 持 したそうです 私 は 韓 国 人 として 韓 国 の 文 化 や 情 緒 についてよく 知 っているし 今 は 日 本 で 暮 らし ているので 日 本 についてもわかります なので 私 が 朝 鮮 通 信 使 のように 日 本 と 韓 国 の 双 方 に 必 要 な 情 報 や 役 に 立 つ 内 容 について 伝 えることで 多 くの 人 々が 共 感 し 互 いに 親 しみをもつことができると 思 います 韓 国 と 日 本 は 違 う 部 分 も 多 いが 同 じアジアの 国 として 共 通 点 も 多 いと 思 います 私 が 友 たちの 中 で 仲 介 者 となったように 韓 国 と 日 本 の 交 流 の 橋 のような 存 在 になれ るように 歴 史 の 勉 強 も 頑 張 って 今 の 時 代 の 通 信 使 としての 役 割 を 果 たせるように 努 めます 고 ご 清 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33

12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산으로 김 주 령 金 珠 玲 동그라미한글교 5 여름방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산국제교류재단 어린이 교류를 저에게 권하셨습니다. 3박4일로 산으로 가는데 참가하는 것은 아이들만입니다. 그래도 혼자 한국에 다녀오는 것은 두 번째였으니까 주저할 것 없이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작에 같이 서울로 간 친구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쿠오카국제터미널에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고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산까지 고속선으로 3시간. 다 같이 한국에서 뭐 할까 이야기하면서 금방 친해졌습니다. 산항 터미널에 마중 나와 주신 재단 선생님들과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산시청 미래도시관 을 견했습니다. 여러 나라 민족의상을 입어 볼 수 있는 코너에서 저는 중국 의상을 골랐습니다. 한 번 입어 보고 싶었기에 정말 기뻤습니다. 저녁에는 재단 한국어 교실에서 2시간 공했습니다. 한글은 (천), _(지), (인)으로 구성된 과적인 문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호텔로 들어가서 친구들과 카드놀이도 하고 교 이야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틀째,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분들을 모신 충렬사 와 한국과 세계 농업계에 공헌한 우장춘 박사 기념관 을 견했습니다. 우장춘 박사의 연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씨앗 없는 수박입니다. 저는 씨앗 없는 수박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먹어 보고 싶습니다. 밤에는 여생 3명이 같이 홈스테이를 갔습니다. 시영이라고 하는 2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시영이 모님은 일본어를 못 하셨는데 제가 한국어를 조금 알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통역해 줄 수 있었습니다. 고 다음날 시영이 식구들과 함께 트릭 아이 미술관 으로 갔습니다. 트릭 아트를 좋아하는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 미술관에는 일본어를 공하고 있는 언니가 와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일본어를 조금밖에 모르니까 가르쳐 줘. 라고 했는데 아주 잘했습니다. 언니는 우리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국어와 영어를 더 많이 공해서 세계 사람들의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길었던 교류 여행도 끝나 드디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저는 이번 여행을 돌이켜 봤습니다. 산에서 만난 분들, 이번 교류 사업에 보내 주신 모님께 감사 드리고 2기터 공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해는 멋진 여름방이 되었습니다. 34

12 釜 山 へ へ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夏 休 みに 入 る 前 お 母 さんの 仕 事 の 関 係 で 釜 山 国 際 交 流 財 団 主 催 の 交 流 事 業 へ 誘 われました 三 泊 四 日 のスケジュールで 参 加 は 子 供 のみです それでも 一 人 で 韓 国 へ 行 くのは 二 回 目 なので 何 もためらわずにすぐ 参 加 を 決 めました 昨 年 一 緒 にソウルに 行 ったメンバーが 参 加 していると 思 い 喜 んで 福 岡 港 ターミナルに 着 くと 知 っている 顔 は 一 つも 無 くて 少 し 不 安 になりました 釜 山 まで まで 高 高 速 速 船 船 で 三 で 三 時 時 間 間 皆 皆 で 韓 で 韓 国 国 に 着 に 着 いたら 何 何 をするかで 盛 盛 り 上 り 上 がり すぐに 仲 仲 良 良 くなりました 釜 山 釜 港 山 ターミナルには 港 財 団 財 の 団 方 の 々が 方 々が 出 迎 出 えてくださり 迎 昼 食 昼 をとった 食 をとった 後 後 釜 山 釜 市 山 庁 市 へ 庁 異 へ 動 異 し 動 し 未 来 未 都 来 市 都 館 市 を 館 見 を 学 見 しました 学 しました 色 んな 色 んな 国 の 国 民 の 族 民 衣 族 装 衣 を 装 試 を 着 試 する 着 するコーナーで 私 はチャイナ 私 はチャイナ 服 を 服 着 を てみました 着 前 から 前 着 から てみたかったので 着 嬉 しかった 嬉 ったです この 日 の 日 夕 の 方 夕 は 方 釜 は 山 釜 国 山 際 国 交 際 流 交 財 流 団 財 主 団 催 主 の 催 韓 の 国 韓 語 国 講 語 座 講 を 座 二 を 時 二 間 時 受 間 けました 受 た ハングルは ( ハングルは 天 _ 天 ) _( 地 地 ) ( 人 から 人 )から 成 る 成 科 る 学 科 的 学 な 的 文 な 字 文 という 字 という 事 を 事 知 を る 知 事 る ができまし 事 ました ホテルでは 友 達 友 とトランプをしたり 達 学 校 学 の 校 話 の をしたりしました 話 私 はこんな 私 はこんな 事 をし 事 をした た 事 が 事 無 が かったので とても 無 楽 しかったです 楽 二 日 目 は 文 禄 の 役 で 闘 った 韓 国 の 人 達 を 祀 る 忠 烈 祠 と 韓 国 や 世 界 の 農 業 界 に 貢 献 した 禹 長 春 博 士 の 記 念 館 を 見 学 しました 博 士 の 記 念 館 では 博 士 の 人 生 と 研 究 した 物 の 事 を 学 びました 博 士 の 研 究 の 中 で 代 表 的 な 物 は 種 なしスイカ で す 私 は 種 なしスイカを 食 べた 事 が 無 いので 食 べてみたいです 夜 は 女 子 三 人 で ホームステイです シヨンちゃんという 二 年 生 の 女 の 子 がいました 受 け 入 れ 先 の 家 族 の 方 は 日 本 語 がわからなかったのですが 私 がある 程 度 分 かるので 友 達 に 通 訳 をする 事 ができました 翌 日 ホストファミリーの 方 達 と トリックアイ 美 術 館 に 行 きました トリックアートが 大 好 きな 私 はワクワク!この 日 は 日 本 語 を 勉 強 しているお 姉 さんが 来 ていました 最 初 に 会 った 時 日 本 語 が 少 ししかわからないから 教 えてね と 言 われましたが とても 上 手 でした お 姉 さんは 私 達 にハングルを 教 えてくれたりしました 私 も 韓 国 語 や 英 語 をもっと 勉 強 して 世 界 の 人 達 の 交 流 の 役 に 立 ちたいなと 思 い ました 長 かった 交 流 の 旅 も 終 わり いよいよ 帰 国 となりました 帰 りの 船 の 中 で 私 はこ の 四 日 間 を 振 り 返 っていました 今 回 出 会 った 人 達 この 度 旅 に 送 り 出 してくれた 両 親 に 感 謝 して 二 学 期 から 勉 強 をもっとがんばって 行 きたいと 思 います 今 年 はすてき な 夏 休 みになりました 고 35

13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국은 오른쪽 일본은 왼쪽 안녕하세요? 토요한글교 6 김수지입니다. 김 수 지 金 守 智 후쿠오카한글교 6 한국과 일본은 정말 가까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참 다른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밥을 먹을 때 젓가락과 숟가락을 다 같이 사용하지만 일본은 젓가락만 사용하지요. 또 한국에서는 어버이 날이 있는데 일본은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이 따로 있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이런 다른 점 중에서 저는 자동차가 반대로 달리는 것에 대한 그 이유가 가장 궁금하였습니다. 자동차 운전석도 반대 방향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가면 대분 반대 방향으로 차를 타려고 합니다. 어느 날 한국에서 할아버지가 오셔서 차를 타시려고 하자 아빠는 운전하시겠습니까? 라며 웃으셨습니다. 왜 자동차가 반대로 다니는 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 제가 이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고 인간은 오른쪽 통행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두 다리로 걷게 되면서 상대의 갑작스런 공격으로터 왼손으로 막고 오른손으로 공격을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 대분의 나라들이 오른쪽으로 걷고 오른쪽으로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영국,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등 몇 나라는 반대 방향입니다. 그 이유는 칼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칼 문화는 사무라이를 들 수 있고, 영국은 기사라는 칼 문화가 있습니다. 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분 오른손으로 칼을 쓰기 위해서 항상 칼집을 왼쪽으로 차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칼집이 서로 딪히지 않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통행하게 됩니다. 그 습관으로 말을 탈 때도, 마차를 탈 때도 왼쪽 통행을 하게 되어서 결국 자동차도 왼쪽으로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나라는 대분 섬나라이고 왕이 있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예로터 글을 읽고 문을 통하여 노력하는 선비문화이기 때문에 칼 문화가 별로 발달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오른쪽 통행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을 찾아서 그 이유를 공하여 일본 친구들과 서로의 문화에 대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살고 있는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36

13 韓 国 は 右 側 日 本 は 左 側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こんにちは 土 曜 韓 国 語 学 校 の6 年 生 のキムスジです 韓 国 と 日 本 はとても 近 い 国 です しかし よく 見 ると 違 うものもたくさんあるようです 例 えば 韓 国 ではご 飯 を 食 べるときスプーンとお 箸 を 一 緒 に 使 って 食 べますが 日 本 はお 箸 だけを 使 います また 韓 国 では 父 の 日 と 母 の 日 を 同 じ 日 に 祝 いますが 日 本 では 父 の 日 と 母 の 日 が 違 う 日 であるのも 違 いだと 言 えます このような 違 いの 中 で 私 は 自 動 車 が 逆 に 走 っているその 理 由 が 一 番 気 になりまし た 自 動 車 の 運 転 席 も 逆 なので 韓 国 からいらっしゃったお 客 さんを 空 港 に 迎 えに 行 ったとき 大 体 の 方 が 車 の 反 対 側 に 乗 ろうとします ある 日 韓 国 から 私 の 祖 父 が 来 て 車 に 乗 ろうとしたとき 父 が 運 転 されるんですか? と 冗 談 を 言 いながら 笑 いまし た なぜ 自 動 車 が 反 対 に 走 る 理 由 については たくさんの 説 がありますが その 中 でも 私 が これだ! と 思 ったものを 紹 介 します 人 間 は 右 側 通 行 するのが 一 番 自 然 だといわれています 動 物 的 本 能 で 二 足 歩 行 になるにつれ 相 手 からの 突 然 の 攻 撃 により 左 側 で 防 ぎ 右 側 で 攻 撃 するためだと いわれています それで 世 界 中 の 殆 どの 国 々が 右 側 を 歩 き 右 側 で 自 動 車 を 運 転 す るそうです しかし 日 本 アメリカ イギリス ニュージーランド オーストラリア インド ネシアなどの 数 か 国 は 反 対 方 向 です 日 本 の 代 表 的 な 刀 文 化 では 侍 を 挙 げることが でき イギリスでは 騎 士 道 の 文 化 があります 剣 を 使 用 するために 鞘 を 左 側 にして 歩 き ます だから 人 々は 鞘 どうしぶつから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 自 然 と 左 側 通 行 すること になります その 習 慣 で 馬 に 乗 る 時 も 馬 車 に 乗 る 時 も 左 側 通 行 をすることになり 結 局 自 動 車 も 左 側 通 行 することになったといいます そして 左 側 通 行 で 自 動 車 が 走 る 国 は 大 体 島 国 で 王 がいる 共 通 点 があるのが 面 白 いところだと 思 いました 韓 国 は 古 来 より 文 字 を 読 み 学 問 を 通 して 努 力 する 士 人 文 化 のため 刀 文 化 はあ まり 発 達 せず 自 然 に 右 側 通 行 になったようです 私 は 日 本 で 生 まれて 韓 国 人 として 日 本 で 生 活 しています だから 韓 国 と 日 本 の 違 う 点 を 探 してその 理 由 を 勉 強 して 日 本 の 友 達 とお 互 いの 文 化 についてお 互 いを 理 解 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することが 日 本 で 生 まれましたが 韓 国 人 として 日 本 ですべきことだと 考 えま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した 고 37

14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자랑스런 우리나라 한국 문 유 림 文 有 林 후쿠오카한글교 중고등 저는 2살 때터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일본은 열악한 국토 환경을 극복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킨 선진국이고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한국이 식민지화된 잔영이 있으므로 한국 사람이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 이라는 이유로 교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졸업한 초등교는 백제초등교와 교류를 하는 교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저는 한 번도 왕따를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취직하는 것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능력이 있거나 전문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또 최근에 국적을 일본으로 바꾼 중국인 친구가 저에게 너도 귀화해! 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귀화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는 한 번도 한국인임을 싫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사람이어서 뿌듯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자랑스러운 문화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한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떡볶이, 김밥, 순대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한국엔 대표적인 김치가 있습니다. 씹는 순간 아삭하며 코끝으로 밀려 오는 매콤한 향기가 캬! 죽여 줍니다. 김치에는 다양한 재료로 만든 김치가 많이 있죠! 총각김치, 오이김치. 파김치 등등. 끝도 없이 나오는 한국 음식에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한국 하면 한류 문화 아닙니까? 한류에 빠져 한국어 공를 시작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저도 가끔 친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또 k-pop의 이야기도 잘합니다. 심지어 최근에 새로 사귄 친구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친구는 사소한 일로 한국에 빠져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사에 감동했습니다! 고 그리고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킨다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신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도움이 되고 사람의 품위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또 한국은 선진국은 아니지만 선진국에 달하는 통신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과 국제적인 보편성을 겸비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저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가끔씩 SNS에서 한국에 대한 비방, 중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옛날에 비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저는 기쁨이 더 많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일본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에 일본인으로 귀화를 하게 되어도 저는 한국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살아 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38

14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誇 らしいわが 国 韓 国 私 は 歳 のときから 日 本 に 住 んでいます 日 本 は 劣 悪 な 国 土 環 境 を 克 服 しながら 経 済 を 発 展 させた 先 進 国 であり 子 供 たちが 住 みやすい 国 だと 父 によく 言 われます ところが 昔 韓 国 が 植 民 地 化 された 名 残 があるせいで 韓 国 人 が 日 本 で 生 活 すること は 容 易 ではありません 学 校 では 韓 国 人 という 理 由 だけで いじめを 受 けることもあり えます しかし 私 が 卒 業 した 小 学 校 は 百 済 小 学 校 と 交 流 がありましたそのせいでしょう か? 私 は いじめを 受 けた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そして 就 職 することが 難 しいと 聞 きました もちろん 能 力 があるか 専 門 職 であれば 話 は 違 ってきます また 最 近 国 籍 を 中 国 から 日 本 に 変 えた 友 人 が 私 にあなたも 帰 化 したほうがいいよ!と 言 いまし た 帰 化 は 私 がしたいと 思 っただけで 出 来 るわけでもないし 私 は 一 度 も 韓 国 人 であ ることを 嫌 だと 思 ったこともありません むしろ 韓 国 人 であることに 満 足 しています なぜなら 韓 国 は 誇 らしい 文 化 がたくさんあるからです! 例 えば 韓 国 では 美 味 し い 食 べ 物 がたくさんあります トッポッキ のり 巻 き スンデ そして なんといっても 韓 国 には 代 表 的 なキムチという 食 べ 物 があります 噛 む 瞬 間 さくっという 食 感 と 鼻 先 に 押 し 寄 せてくるスパイシーな 香 りが! 最 高 です キムチには 様 々な 材 料 で 作 られた キムチがたくさんあります!チョンガキムチ きゅうりキムチ ねぎキムチなどなど 無 限 出 てくる 韓 国 料 理 に 自 然 に 感 嘆 詞 が 出 てきます そして 韓 国 といえば 韓 流 文 化 ではありませんか!? 韓 流 にはまって 韓 国 語 の 勉 強 を 始 めた 人 も 少 なくなく 私 もときどき 友 達 に 韓 国 語 を 教 えたりします また の 話 もよくします さらには この 前 新 しくできた 友 達 とは 韓 国 語 で 会 話 をしたりして ます 彼 女 は 些 細 なことで 韓 国 にはまり 韓 国 語 を 習 おうとする 意 思 に 感 動 しました! そして 韓 国 は 東 方 礼 儀 の 国 です 大 人 を 敬 い 礼 儀 を 守 るということ これは 非 常 に 重 要 なことだと 思 います なぜなら 礼 儀 を 守 るということは 人 と 人 との 信 頼 関 係 を 作 るための 助 けになり 人 の 品 位 を 向 上 させることができるからです!また 韓 国 は 先 進 国 ではありませんが 先 進 国 にも 及 ぶ 通 信 文 化 が 発 達 しています このような 韓 国 文 化 から 私 は 韓 国 人 であることを 誇 りに 思 います たまにで 韓 国 に 対 する 誹 謗 中 傷 を 見 ることがあります そのたびに 少 し 心 が 痛 くなります しかし 昔 に 比 べて 韓 国 が 好 きな 人 が 多 くなったことで 私 は 喜 びのほうが 大 きいです 私 は これからも 日 本 で 生 き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もし 日 本 人 に 帰 化 しても 私 は 韓 国 人 であることを 誇 りに 思 って 堂 々と 生 きていこうと 思 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 39

15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국과 일본의 8월15일 이 준 화 李 準 和 후쿠오카한글교 5 저는 이번 여름방에 처음으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10일 동안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매일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목적지를 찾아 지하철을 타고 또 걷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제가 본 서울은 생각한 것보다 차도 사람도 많고, 넓고 복잡했습니다. 흥미롭고 재미나는 것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광복 70주을 기념하여 다채로운 축하 행사를 하는 모습과 가는 곳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8.15 광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광복절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힘이 약했던 우리나라는 1876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905에는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겼고, 1910터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어,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희생이 있었고, 드디어 1945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 8.15 광복절이라고 합니다. 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8월 15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한 종전일로,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추모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립니다. 같은 날인데 두 나라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관계를 알고 나서 저는 놀랍기도 했지만, 힘이 약해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와, 또 힘이 약했던 이웃 나라를 침범한 일본에게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과 침략 전쟁의 확대로 인해 결국 패전국이 된 역사는 지울 수 없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사이 좋게 미래를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어두운 역사를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제게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와 제가 살고 있는 일본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무엇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현재 일본 초등교에 다니고 있으며, 교 친구들과 선생님들 모두 저에게 친절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제가 한국인이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을 러워하며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저 또한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일본 친구들과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저는 지금처럼 우리나라와 일본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며, 저도 어른이 되면 우호적인 한일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많이 노력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40

15 韓 国 と 日 本 の 月 日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私 は 今 回 の 夏 休 みに 初 めてソウルに 行 ってきました ソウルで 滞 在 する 日 間 母 と 私 そして 妹 は 毎 日 リュクサックを 背 負 ってあちこちの 目 的 地 に 向 かって 地 下 鉄 に 乗 ったりして たくさん 歩 き 回 りました そんな 中 私 が 見 たソウルは 思 っていたより も 車 も 人 も 多 く 広 い 地 域 でにぎやかな 街 でした 面 白 く 興 味 深 いものが 多 かったが その 中 でも 目 立 っていたのは 光 復 周 年 を 記 念 するために 多 彩 な 祝 賀 行 事 をする 姿 と 街 の 至 る 所 に 太 極 旗 がかかっている 風 景 でした 私 はその 時 までは 光 復 が 何 なのか 全 く 知 りませんでした それで 家 に 帰 って きてインターネットで 光 復 節 について 調 べてみました 弱 小 国 であった 韓 国 は 年 江 華 島 条 約 をはじめとして 年 には 日 本 に 外 交 権 を 奪 われ 年 からは 日 本 の 支 配 を 受 けることになって 柳 寛 順 尹 奉 吉 安 重 根 など 多 くの 独 立 運 動 家 たち は 国 を 守 るために 命 を 惜 しまず 努 力 しました 国 を 取 り 戻 すために 多 くの 人 々の 死 と 犠 牲 があって やがて 年 月 日 に 朝 鮮 が 日 本 から 解 放 されました この 解 放 を 記 念 する 日 が 光 復 節 です しかし 日 本 では 同 じ 月 日 に 連 合 軍 に 降 伏 した 終 戦 日 で 戦 争 によって 命 を 失 った 多 くの 人 々のための 追 悼 行 事 が 全 国 各 地 で 行 われます 同 じ 日 なのに 両 国 で は 全 く 別 の 意 味 をもつことが 分 かりました 当 時 の 韓 国 と 日 本 の 関 係 をある 程 度 知 っ てから 私 はすこし 驚 きもありましたが 力 が 弱 くて 国 を 奪 われた 韓 国 と また 力 が 弱 かった 隣 国 を 侵 犯 した 日 本 にも 失 望 しました 日 本 が 韓 国 を 侵 略 したことと 侵 略 戦 争 の 拡 大 により 最 終 的 に 敗 戦 国 となった 歴 史 は 消 すことができないものですが 韓 国 と 日 本 が 仲 良 く 未 来 を 一 緒 に 生 きていくためには 相 互 の 暗 い 歴 史 を 必 ず 教 訓 に 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 思 います 私 にとって 今 度 の 旅 行 は わが 国 韓 国 と 私 が 住 んでいる 日 本 の 歴 史 を 少 し 知 ること になったことは 何 よりも 意 味 ある 時 間 でした 私 は 日 本 で 生 まれ 現 在 日 本 の 小 学 校 に 通 っており 学 校 の 友 達 や 先 生 たちみんなが 私 に 親 切 に 接 してくれます そして 友 人 は 私 が 韓 国 人 で 韓 国 語 ができることを 羨 ましがり 韓 国 語 を 教 えてと 言 われま す 私 も 韓 国 人 であることを 誇 りに 思 い 日 本 の 友 達 と 先 生 が 大 好 きです 私 は 今 の ように 韓 国 と 日 本 が 平 和 に 過 ごしていくことを 願 っています 私 も 大 人 になったら 友 好 的 な 日 韓 関 係 に 微 力 ながら 役 立 つために 何 かできることを 探 してみたいと 思 います そしてそれを 成 し 遂 げるために 今 後 より 一 層 努 力 し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 41

16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3박4일의 한국 문화 체험 저는 한글교에서 3박4일간 한국 문화 체험을 다녀왔습니다. 방문지는 산, 울산, 경주였습니다. 오 지 원 吳 知 原 사랑한글교 중고등 첫째 날은 산에 있는 한 교회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우리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시고 어른들께서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저는 일본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문 교회는 규모가 커서 역시 한국은 기독교의 나라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날은 울산의 현대조선소에 갔습니다. 이곳은 세계 최초, 세계 최대 등 한국이 자랑하는 것들로 넘쳐났습니다. 숙박은 한옥집에서 했는데, 전기나 가스가 없던 시절, 요리도 하면서 방을 따뜻하게 하는 온돌은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식사로 감자탕을 먹었는데, 다양한 색과 야채가 풍성해서 건강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식문화도 훌륭한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날은 경주의 포석정에 갔는데, 일본에도 비슷한 것이 있어서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옛날 왕의 무덤에 갔는데, 심플하면서도 거대한 무덤이었습니다. 일본, 한국, 이집트 등 어느 나라에서도 왕들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분은 같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신라 박물관에서는 일본 교과서에서 배웠던 금강역사상이나 장신구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역시 한국과 일본은 깊은 관계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 이번 문화 체험은 짧았지만 한국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한국에는 이렇게 발달한 문화가 있는데, 왜 관광지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일본은 옛날 집이나 행사, 의복 등 사소한 것이라도 실제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마츠리나 행사가 있을 때 기모노나 유카타를 입지만, 한국에서는 한복을 명절 때밖에 입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옛날 것이니까 지금의 자신과는 관계가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K-POP이나 지금의 한국 문화도 중요하지만, 옛날터 있어 온 기술과 문화, 위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과 문화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소중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2

16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泊 4 日 間 の 韓 国 文 化 体 験 私 はハングル 学 校 で 泊 4 日 間 の 韓 国 文 化 体 験 に 行 ってきました 訪 問 地 は 釜 山 蔚 山 慶 州 でした 日 目 は 韓 国 のある 教 会 に 泊 まることになり 行 くとき 地 下 鉄 で 私 たちが 韓 国 語 と 日 本 語 で 喋 ったりするのを 見 ておじいさん おばさんが 話 しかけてきました それを 見 て 日 本 とは 違 って 韓 国 の 人 たちは 他 人 に 興 味 をよく 持 つんだ と 思 いました 泊 まった 教 会 はとても 大 きくて 改 めて 韓 国 は 基 督 教 の 国 だと 実 感 しました 日 目 は 蔚 山 の 現 代 造 船 所 に 行 きました ここには 世 界 初 のものや 世 界 最 大 のものなど 韓 国 が 誇 れるものであふれていました 宿 泊 は 韓 屋 で 泊 まりました 昔 電 気 もガスもない 時 代 に 料 理 をしながら 部 屋 を 温 めるオンドルは 効 率 的 で 環 境 にもいい 知 恵 だと 思 いました 夜 はカムジャタンを 食 べました 韓 国 のご 飯 はとても 色 とりどりで 野 菜 がたくさんありました 健 康 によさそうな 韓 国 料 理 も 素 晴 らしい 韓 国 の 文 化 だと 思 いました 日 目 は 慶 州 のポソクジョンを 見 ました これは 日 本 にもあるのでどういうものなの かすぐわかりました 次 に 昔 の 王 の 墓 に 行 きました シンプルながらも 大 きな 墓 でした 日 本 でも 韓 国 でもエジプトなどどの 国 でも 王 たちは 自 分 の 威 厳 を 見 せるところは 同 じ だというこが 面 白 いでした 最 後 に 新 羅 の 博 物 館 に 行 きました 日 本 の 教 科 書 で 習 った 金 剛 力 士 像 や 勾 玉 が 韓 国 にもあってびっくりしました やはり 韓 国 と 日 本 は 関 係 の 深 い 国 だと 思 いました 今 回 の 文 化 体 験 は 短 いでしたが 韓 国 と 韓 国 の 文 化 を 理 解 できるいい 時 間 でした しかし 日 程 を 通 してひとつ 疑 問 を 持 つことになりました それは 韓 国 にはこのように 発 達 した 文 化 があるにも 関 わらずどうして 観 光 地 に 行 かないと 接 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 かということでした 日 本 は 昔 の 民 家 や 建 物 行 事 着 物 など 無 名 で 小 さいものでも 身 近 で 接 することができます 例 えば 日 本 では 祭 りや 行 事 のあるたびに 着 物 や 浴 衣 を 着 ますが 韓 国 では 韓 服 を 正 月 などにしか 着 ないようです その 理 由 は もう 昔 のも のであって 今 の 自 分 には 関 係 が 少 ないと 思 っているわけだと 思 います もちろん や 今 の 韓 国 文 化 も 大 事 ですが 昔 からあるたくさんの 技 術 や 文 化 偉 人 たちが いてからこそ 今 の 韓 国 と 文 化 があるということを 忘 れてはいけないと 思 います そうして からこそ 大 事 なことを 次 世 代 にきちんと 伝 えることができると 思 いました 고 43

17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광복 70주을 맞이한 한국 1945 8월 15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날이며, 한국이 일본으로터 빼앗긴 국권을 되찾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은 이 기쁨을 서로 나누었고 대한 독립 만세를 마음껏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 은 진 趙 恩 辰 후쿠오카한글교 중고등 하지만 그로터 5 뒤, 한국에 또 다른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6.25 전쟁입니다. 올해는 한국이 광복 70주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늘은 6.25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6.25 전쟁은 1950 6월 25일, 북한이 남한으로 쳐들어 오면서 시작된 전쟁입니다. 1948에 정치적 이념이 엇갈려, 결국 1950, 북한은 남한을 통일하기 위해서 소련의 도움을 받아 무력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 온 시간은 새벽이었기에 우리 군은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군에게 3일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승패가 정해지지 않아 1953 7월 27일 결국 휴전했습니다. 한반도는 현재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3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군인들과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고 제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고 요즘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은 6.25 전쟁에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인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광복 70주이기에 저는 6.25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도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 전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것이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4

17 光 復 周 年 を 迎 えた 韓 国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年 月 日 は 第 二 次 世 界 大 戦 が 終 戦 した 日 で 韓 国 が 日 本 から 奪 われた 国 権 を 取 り 戻 した 日 でもあります その 当 時 韓 国 の 国 民 はこの 喜 びを 互 いに 交 わし 大 韓 独 立 万 歳 を 思 う 存 分 叫 ぶ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しかし あれから 年 後 韓 国 に 更 なる 悲 劇 が 訪 れました それは 戦 争 です 今 年 は 韓 国 が 光 復 周 年 を 迎 えた 年 でもあるので 今 日 は 戦 争 について 話 をして みたいと 思 います 戦 争 は 年 月 日 北 朝 鮮 が 韓 国 の 方 に 攻 めてきて 始 まった 戦 争 です 年 に 政 治 的 理 念 が 食 い 違 い 結 局 年 北 朝 鮮 は 韓 国 を 統 一 するためにソ 連 の 助 けをもらい 武 力 で 戦 争 を 起 こしました 北 朝 鮮 が 韓 国 に 攻 めてきた 時 間 は 深 夜 だったため 韓 国 の 軍 は 無 防 備 状 態 でした だから 韓 国 は 北 朝 鮮 軍 に 日 でソウル を 奪 われてしまいましたが 国 連 軍 の 助 けでソウルをまた 取 り 戻 しました ところが その 後 も 勝 敗 が 決 まらなかったため 年 月 日 結 局 休 戦 しました 朝 鮮 半 島 は 現 在 も 南 と 北 に 分 かれています この 戦 争 では 万 人 にのぼる 人 々が 犠 牲 になりました 国 の 為 に 犠 牲 した 軍 人 達 や 困 難 を 経 験 した 人 々の 事 を 考 えると 胸 が 痛 み 私 がその 人 達 の 為 にもう 何 も 出 来 ないことに 罪 責 感 を 感 じます 最 近 韓 国 の 若 者 達 は 戦 争 に 関 心 がありません なぜならば 本 人 達 とは 無 関 係 な 事 だと 考 えているからです 今 年 は 光 復 周 年 であるため 私 は 戦 争 を 経 験 していない 若 者 達 も 韓 国 の 国 民 としてこの 戦 争 が 何 なのか そしてその 当 時 の 人 達 の 痛 みを 共 感 し 理 解 するべきだと 思 います なぜならばそれが 戦 争 で 犠 牲 になった 多 くの 人 々のために 私 達 が 少 なくとも 出 来 る 事 だからです 고 45

18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국어는 나의 보물 강 보 석 姜 甫 錫 후쿠오카한글교 6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인터넷으로 화상전화를 합니다.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인터넷으로 하는 화상전화는 정말 편리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본어를 조금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전화를 할 때는 한국말과 일본말을 섞어서 같이 말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일본말을 많이 잊어 버리셨다고 합니다. 종종 한국말로 말하기가 어려워서 내가 갑자기 일본말로 말을 길게 하면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가만히 계십니다. 그러면 나는 알고 있는 한국말 단어를 생각해 내서 열심히 설명합니다. 아직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잘 설명하지 못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께 매일 집에서 있었던 일들과 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 드릴 수 있어서 정말 즐겁습니다. 할아버지도 많이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연락할 때는 외할머니와도 꼭 화상전화를 합니다. 외할머니는 일본말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저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천천히 말씀해 주십니다. 외할머니는 한국 뉴스나 친척들 소식, 그리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여행을 다녀오신 이야기들을 해 주십니다. 외할머니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내가 못 알아들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천천히 공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모르는 말이 있으면 아버지께 물어 보기도 하지만, 좀 더 한국말을 잘 하게 되면 혼자서도 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한국말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즐거울 것 같습니다. 고 한국말로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말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이야기하고 나면 좀 더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도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도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한국말로 하고 싶습니다. 한국말은 나와 한국을 이어주는 중요한 보물입니다. 46

18 韓 国 語 は 私 の 宝 物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わたしは 週 に1 回 ほど 韓 国 の 祖 父 祖 母 そして 外 祖 父 外 祖 母 とインターネット で 画 像 電 話 をします 画 面 を 見 ながら 話 せるので インターネットでする 画 像 電 話 は 本 当 に 便 利 です 祖 父 は 日 本 語 が 少 し 話 せます それで 祖 父 と 話 し 合 うときは 韓 国 語 と 日 本 語 を 混 ぜて 話 します けれども 祖 父 は 日 本 語 をだいぶ 忘 れたそうです 時 々 韓 国 語 の 表 現 が 難 しくて わたしが 日 本 語 でいきなり 長 い 話 をすると 祖 父 はまるで 画 面 が 止 まっているようにじ っとしています すると わたしは 自 分 の 知 っている 単 語 を 思 い 出 して いっしょうけん めい 説 明 をしてみます まだ 分 からない 韓 国 語 の 単 語 が 多 くて うまく 説 明 ができな いときもありますが 祖 父 に 日 常 的 な 家 の 出 来 事 や 学 校 生 活 などについて 知 らせるこ とができて 本 当 に 楽 しいです 祖 父 も 喜 んでくれます そして 祖 父 に 連 絡 したときは 必 ず 外 祖 母 にも 画 像 電 話 をします 外 祖 母 は 日 本 語 は 話 せません しかし わたしと 話 し 合 うとき 外 祖 母 はいつもゆっくり 話 してくれま す 外 祖 母 は 韓 国 のニュースや 親 戚 の 話 そして 外 祖 母 と 外 祖 父 が 旅 行 に 行 って いた 話 などをしてくれます 外 祖 母 の 話 は 面 白 いですが わたしが 聞 き 取 れないとき も 多 いです 外 祖 母 はゆっくり 勉 強 していけばいいと 話 してくれます 分 からない 言 葉 や 表 現 があると 父 に 聞 いてみたりもしていますが 韓 国 語 がもう 少 しうまくなったら 一 人 で 祖 父 や 外 祖 母 と 韓 国 語 でたくさんの 話 ができて もっと 楽 しくなりそうです 韓 国 語 で 家 族 と 話 し 合 うのは とても 楽 しいです しかし まだ 分 からない 表 現 が 多 く 話 しづらいときもあります でも 祖 父 や 外 祖 母 と 話 し 合 うと もっともっと 韓 国 語 を 勉 強 したいという 気 持 ちが 湧 いてきます それに わたしには 韓 国 にたくさんの 友 達 が います 彼 らとも もう 少 し 韓 国 語 で 話 し 合 いたいです 韓 国 語 は わたしと 韓 国 を 結 んでくれる 大 切 な 宝 物 です! 고 47

19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한글 공의 에피소드와 장래 희망 박 예 림 朴 叡 琳 사랑한글교 6 저는 하라 초등교 6 박예림입니다. 저희 사랑한글교에서는 한글과 함께 역사 공도 합니다. 한글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언니가 말했습니다. 이쑤시 있잖아. 그러자 어머니는, 뭐라고? 이쑤시개?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다시 힘을 주어, 아니, 이쑤시!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이쑤시개 줄까?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언니는 답답하다는 듯이 옛날 우리 나라에 배를 만들어 왜적을 물리친 장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마자 모님께서는 아아, 이순신 장군! 하고 입을 모으며 한참을 배꼽이 빠져라 웃으셨습니다. 언니는 나처럼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발음을 더듬고, 저는 읽고 쓰기가 서툽니다. 초등교 4 때까지 한글을 잘 못 읽어서 한글교 선생님께서는 저를 가르치실 때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한글을 술술 읽는 언니는 가끔 기다리다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제가 읽어야 할 분을 일러 자기가 먼저 읽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 읽으려 하는 게 대견하다며 어머니께서는 칭찬하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일 밤 성경을 떠듬떠듬 읽다 보니 어느 새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빵점을 맞은 적도 많았던 받아쓰기도 백 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글을 잘 읽게 되니 한글 공가 점점 재미있어졌고 긴 한글 소설도 혼자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찜질방에서 나는 목초액이나 한약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배우지는 않았지만 맛사지도 잘 해서 센스가 있다고들 합니다. 한의사를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어머니는 허 준 이라는 드라마를 보여 주신 적이 있습니다. 고 일본에도 옛날에는 한의사가 있었지만, 서양 의이 들어오면서 일러 없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일본 통치시대에 우리나라 한의를 없애려 했지만 고종황제 때 한의사 대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발달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과 생활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한의는 양의와 달라 침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웬만한 환자는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저도 한의사가 되는 것이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가 되어 가벼운 병인데도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통 당하거나 죽는 사람들을 도와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의 공를 해서 의료 봉사를 하기 위해 외국어 공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또 함께 뜻을 모아 의료 봉사를 할 마음 맞는 좋은 동료 친구들을 만나도록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48

19 제2회 큐슈 한글교 한국어 변론대회 ハングル 勉 強 のエピソードと 将 来 の 希 望 私 は 原 小 学 校 年 の 朴 叡 琳 と 言 います 私 の 通 うサランハングル 学 校 ではハングル と 一 緒 に 歴 史 も 学 びます ハングル 学 校 から 帰 ってきたある 日 姉 が 言 いました イ ッスシっているよね すると 母 は 何? 楊 枝? と 聞 きました そのことに 姉 はもう 一 回 いや イッスシ! と 大 きく 言 いました 今 度 は 父 が つまようじのことか! と 言 いました これを 聞 いた 姉 はもどかしそうに 昔 朝 鮮 で 船 を 開 発 し 日 本 と 戦 った 将 軍 の 話 をしました 話 をするや 否 や 両 親 は ああ イスンシン 将 軍 の 事 か! と 口 をそろっ てしばらく 腹 をこらえて 大 笑 いしました 姉 は 私 同 様 日 本 で 生 まれ 育 ったため 発 音 が どもり 私 は 読 み 書 きが 苦 手 でした 小 学 生 年 のときまでハングルがうまく 読 めなかったので ハングル 学 校 の 先 生 は 私 を 教 えながら 大 変 苦 労 されました そこで 母 と 姉 と 共 に 一 日 に1 章 ずつ 聖 書 を 読 みました しかし 読 む 速 度 があまりにも 遅 かったため すらすらとハングル 文 字 が 読 める 姉 は 時 には 待 ちくたびれてがんしゃくを 起 こしたり 私 の 読 むところを 自 分 が 先 に 読 んでしまったりしました しかし あきらめずに 自 分 で 読 もうと 粘 る 事 がえらいねと 母 は 私 をほめ 待 っていてくれました 私 はそのことがよかったと 思 います 不 思 議 な 事 にハングルの 聖 書 をたどたどしくも 毎 晩 読 んでいたら いつの 間 にか 速 度 も 速 くなり 0 点 だったハングルの 書 き 取 り 試 験 も 百 点 をとるようになりました ハング ル 読 みが 上 手 になると ハングルの 勉 強 も 段 々 楽 しくなり 長 いハングルの 小 説 もひと りで 読 めるようになりました 私 は 韓 国 のチンヂルバンでする 竹 酢 と 漢 方 の 匂 いをかい だら 気 分 がよくなります 教 わってはいませんが マッサージが 上 手 でセンスがあると 言 われます よい 漢 医 になれそうだと 言 いながら 母 はホジュンのようなドラマを 見 せ てくれました 日 本 でも 昔 は 漢 医 がいたけれど 西 洋 医 学 が 入 るとき 漢 医 をあえてなくしたと 聞 きま した 韓 国 でも 日 本 統 治 時 代 漢 医 を 根 絶 させようと 高 宗 皇 帝 のとき 漢 医 の 大 学 まで たてられるほど 韓 国 では 当 時 漢 医 が 発 達 していたそうです だから 今 まで 韓 国 人 の 健 康 と 生 活 に 深 く 根 を 下 ろしているようです 漢 医 は 西 洋 医 と 違 って 針 ひとつさえあれ ばどこへ 行 っても 大 体 の 患 者 さんは 治 療 できるそうです 私 も 漢 医 が 自 分 とよく 合 うものだと 思 います 漢 医 になって 軽 い 病 気 であるのに 医 者 にかかれず 苦 しんだり 死 んでしまったりする 人 々を 助 けたいと 思 います だから 今 漢 医 になり 奉 仕 するために 外 国 語 を 習 っています また 将 来 同 じ 志 で 共 に 奉 仕 できる よい 同 僚 に 出 会 えるよう 神 様 に 祈 っています 고 49

또 다른 교, 토요한글교 안내 현재 큐슈 지역에는 후쿠오카한국교육원이 관할하고 있는 개 토요한글교 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많은 어린이들이 우리말과 역사 문화 등 세기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토요한글교에서 배우는 모든 교육 내용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국제성 함양에도 크게 기여하 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지금 곧 가까운 한 글교로 입 신청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地 域 福 岡 北 九 州 沖 縄 授 業 日 学 校 名 ( 時 数 ) 후쿠오카한글교 매주 토 (3시간) 매주 토 사랑한글교 (2시간) 동그라미한글교 매주 토 (2시간) 매주 토 모지한글교 (1시간) 오키나와한글교 매주 토 (2시간) 所 在 地 連 絡 先 福 岡 市 博 多 区 奈 良 屋 町 1-1 (092)271-0271 福 岡 市 早 良 区 城 西 3-1-9 (092)846-1130 福 岡 県 遠 賀 郡 頃 末 北 4-3-11 (093)555-4185 北 九 州 市 門 司 区 下 二 十 町 11-7 (093)381-8456 沖 縄 県 那 覇 市 久 茂 地 2-5-3 (098)863-3166 51

祝 福 岡 韓 国 教 育 院 移 転 開 院 祝 저희 福 岡 韓 国 教 育 院 이 年 間 의 箱 崎 時 代 를 마감하고 奈 良 屋 町 로 移 転 開 院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高 松 団 地 住 民 을 비롯하여 同 胞 및 地 域 社 会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저희 教 育 院 에 주어진 所 任 을 完 遂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同 胞 教 育 発 展 을 비롯하여 韓 日 両 国 의 教 育 과 民 間 交 流 의 活 性 化 를 위해 努 力 함으로써 韓 日 友 好 増 進 의 架 橋 役 割 을 다하고자 합니다 보다 많은 指 導 와 鞭 撻 을 탁 드립니다 住 所 : 福 岡 市 博 多 区 奈 良 屋 町 ヤシマ 博 多 ビル 階 電 話 : 교육원 전경 사무실 및 제1 2 강의실 52

第 1 回 九 州 한글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開 催 九 州 地 域 의 한글 学 校 에 在 学 하는 在 日 韓 国 人 同 胞 学 生 들을 対 象 으로 하는 第 回 九 州 한글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가 盛 況 裏 에 開 催 되었습니다 第 回 大 会 임에도 名 의 学 生 들이 参 加 하여 平 素 갈고 닦은 韓 国 語 実 力 을 마음껏 発 揮 하여 聴 衆 들로터 많은 박수와 激 励 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出 場 学 生 들은 大 会 를 準 備 하여 参 加 하는 過 程 에서 韓 国 語 実 力 뿐만 아니라 마음도 크게 成 長 하는모습을보여주었습니다 開 催 日 時 場 所 : 年 月 日 土 :~: 九 州 幸 銀 講 堂 参 加 者 : 名 低 学 年 部 名 高 学 年 部 名 第 1 回 九 州 한글 学 校 韓 国 語 弁 論 大 会 53

2015 年 度 後 期 韓 国 語 및 韓 国 文 化 講 座 案 内 1. 期 間 : 2015.10.5( 月 )~2016.3.15( 火 ) <6 個 月 間 > 2. 開 設 講 座 : 韓 国 語, 特 講, 韓 国 文 化 ( 茶 道 PC), 土 曜 한글 学 校 等 3. 受 講 料 : 無 料 ( 但, 日 本 人 은 1 講 座 当 施 設 利 用 料 3000 円 ) 茶 道 教 室 은 材 料 代 등 1 回 当 1500 円 의 実 費 를 担 当 講 師 에게 直 接 納 付 4. 受 講 人 員 : 各 講 座 当 15 名 程 度 ( 但 PC 教 室 定 員 은 8 名 ) 5. 週 間 授 業 日 程 韓 国 語 韓 国 文 化 正 規 講 座 曜 日 10:30 12:00 14:00 15:30 16:00 17:30 18:30 20:00 月 韓 国 語 中 級 会 話 同 胞 韓 国 語 会 話 火 韓 国 茶 道 (1 3 週 ) 韓 国 語 基 礎 韓 国 語 研 究 班 水 韓 国 語 中 級 Ⅱ PC 韓 国 文 化 同 胞 情 報 化 教 室 木 韓 国 語 高 級 韓 国 語 初 級 Ⅰ 金 韓 国 語 中 級 Ⅰ 韓 国 語 初 級 Ⅱ 曜 日 場 所 11:00 12:30 15:00 18:00 17:00 18:30 木 民 団 福 岡 県 本 部 民 団 韓 国 語 中 級 土 民 団 福 岡 県 本 部 民 団 韓 国 語 初 級 土 福 岡 韓 国 教 育 院 土 曜 한글 学 校 特 別 講 座 講 座 名 日 時 場 所 韓 国 語 特 講 韓 国 文 化 特 講 韓 国 歴 史 特 講 10.29( 木 ) 18:30~20:00 11.17( 火 ) 10:30~12:00 12.3( 木 ) 18:30~20:00 教 育 院 第 2 講 義 室 教 育 院 第 2 講 義 室 教 育 院 第 2 講 義 室 受 講 人 数 講 義 内 容 50 名 韓 国 語 学 習 方 法 20 名 韓 国 茶 道 및 韓 服 体 験 50 名 九 州 속의 韓 国 을 찾아서 お 問 い 合 わせ: 福 岡 韓 国 教 育 院 (Tel 092-271-0271 Fax 092-271-0272)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