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해방전쟁승리 60 돐기념 재일조선사회과학자들의 연구토론회 정전상태 60 년의 력사적상황과 그 해법 연구토론 미국은 왜 정전체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가 렴문성 (조선대학교 조교) 공화국의 핵무장화를 어떻게 보는가 조우호 (조선대학교 준교수) 조미는 어떤 평화협정을 맺어야 하는가 강희봉 (사협중앙 리사) 집중분석 평화협정체결의 현실적가능성과 전망 사회 리영수 (사협중앙 부회장) 주체 102(2013)년 7 월 19 일 0
미국은 왜 정전체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가 렴문성 1. 앞말 - 정전이란 상태를 전제조건으로 하여 관계국이 안보정책의 립안, 실시, 거기서 리해관계를 얻는 상황이 고착화 조선반도의 분단의 영구화, 평화협정 수립에 대한 장애 민족적리익, 사회주의강국건설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 - 발표내용: 조선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의 불안정의 원천인 정전상태를 미국은 어째서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가: 오바마정권의 아시아중시정책과 미국식자유주의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책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본다. 미국의 전략속에서의 일본, 남조선의 위치와 역할, 특히는 일본이 어떻게 정전체제를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는가 조선을 둘러싼 포위망인 수출관리체제에 대하여 2. 오바마정권의 아시아중시전략 - 취임전 외교에 대한 언급 동맹의 갱신, 재건, 기존 동맹과의 관계 강화, 새로운 동맹관계 구축 어느 나라 지도자나 직접적인 교섭에 림할 용의 테로, 핵전파문제에 대하여 세계는 미국의 지도에 따라 결속해갈것 대아시아: 동맹중시, NPT 체제의 강화, 위반자에 대한 제재 강화 대조선정책: 계속적이며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 정책 - 오바마정권의 외교정책의 특징 2011 년 가을이후 재균형전략(rebalancing), 아시아회귀 (pivot to Asia): 아시아대평양중시정책 특히는 남서태평양에서의 미군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하여 오스트랄리아, 싱가폴에 대한 군비 증강 미국국내경제의 부흥 조선의 핵 포기 추구 미국식자유주의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 -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중시하는 리유 2000 년이래 미국에 있어서 최대의 수입대상지역, 북미지방 다음에 오는 수출대상지역 1
미국무역 지역별 비률 수출 수입 2000 2010 2000 2010 아프리카 1.1% 1.8% 1.8% 3.7% 아시아*(중국포함) 22.0% 23.5% 28.9% 32.2% 아시아*(중국포함안함) 20.3% 17.6% 22.6% 16.2% 중남아메리카 6.0% 8.9% 4.7% 5.7% 독립국가협동체 (CIS) 0.3% 0.6% 0.6% 1.4% 유럽 18.8% 17.9% 15.8% 15.4% 중동 1.9% 3.1% 2.5% 3.3% 북아메리카 29.5% 26.6% 23.2% 22.2% Source: 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아시아는 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오세안주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를 포함). 중앙아시아는 제외. (Mark E. Manyin et al., Pivot to the Pacific? The Obama Administration s Rebalancing Toward Asia,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 Report for Congress, March 28, 2012 에서 인용.) - 중국의 영향력증대에 대한 대처: 전면적대결, 중국을 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liberal world order)속에 미국이 제공하는 질서를 유지 3. 미국의 전략을 안받침하는 군사적장치 -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 남조선, 오스트랄리아들과의 안보동맹을 강화. 동시에 인도네시아, 인디아, 윁남 등과의 련계 강화 필리핀에 대한 무기수출, 오스트랄리아에 대한 해병대의 파병(2,500 명), 싱가포르(연해지역전투함), 인도네시아, 뉴질랜드와의 방위협력 2
상징적인 역할 - 동맹강화: 랭전의 붕괴와 미일동맹의 강화, 일본의 군비증강 1995 년 미국방총성,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관여의 계속을 표명, 10 만명규모의 미군병력을 배비 동아시아안전보장전략보고서 미일동맹관계의 제정의: 2 국간동맹 지구적규모의 안보에로 1996 년 미일수뇌회담 안전보장에 관한 미일공동선언 발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불안정 과 불확실성 에 대처하기 위한 동맹에로 1996년 미일물품, 역무호상제공협정(ACSA) : 자위대의 후방지원 제도화 (1999 년 개정) 1997 년 신가이드라인 1999 년 周 辺 事 態 法 성립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관한 2001 년 테로 特 措 法 헌법해석론이 일어남 불심선박 사건이후 해상보안력강화 일본의 자률적인 군비확장 2003 년 이라크 特 措 法 - 일본의 미싸일, 로케트개발과 조선위협 1993 년 5 월 29 일 조선 미싸일 시험발사 1998 년 8 월 31 일 광명성 1 호 발사 일본의 미싸일방위시스템 도입의 계기, 정찰위성의 도입이 결정 2003 년 미국정부와의 미싸일방위공동연구,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 2003 년 H2A 로케트에 탑재된 2 기의 위성 운용개시 2008 년 5 월 우주공간의 군사리용을 금지하는 우주공간의 평화리용에 관한 국회결의 수정제안, 우주공간의 군사리용을 위한 법적정비 2008 년 5 월 28 일 우주기본법 성립, 우주공간의 합법적군사리용 4. 미국식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적 인 움직임: 정전상태의 유지, 고착화 - 유엔안보리 조선비난결의 - 유엔결의안 채결에 의한 국제수출관리 REGIME 의 강화? 1 원자력공급그룹 (원자력관련기자재, 기술) 2 오스트랄리아그룹 (화학병기, 생물병기관련품, 기술) 3 미싸일기술관리레짐 (미싸일기술 및 관련품) 4 바세나르 협약(The Wassenaar Arrangement) (통상무기 및 관련품, 기술) 유엔안보리 비난결의 국제수출관리레짐이 모든 유엔가맹국에 대한 3
의무화와 같은 규범에로 - 전정상태 해소를 실현하는데서의 장애 핵문제 해결에 대한 조미간의 대립, 의견불일치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남조선이 보다 큰 자률성을 가지면서 전정상태의 해소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만들어가고있는것이 아닌가. 오바마정권의 아시아중시전략에 대한 미국내에서의 반대의견 조선전쟁이래 최대규모의 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하고 남조선주둔 미군을 증강, 조선에 비하여 남조선의 군사력이 개선되여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조선반도에서의 미군력의 증대를 발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게 된다는 의견 (Robert S. Ross, The Problem With the Pivot, Foreign Affairs, November/December 2012.) [자료] 아시아태평양 미군주둔과 앞으로의 계획 출처: Mark E. Manyin et. al., Pivot to the Pacific? The Obama Administration s Rebalancing Toward Asia,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 Report for Congress, March 28, 2012. 4
공화국의 핵무장화를 어떻게 보는가 조우호 1. 핵보유의 리유 : 핵을 못쓰게 하는 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이전을 철저히 불허할것이다. 우리의 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의 침략위협에 맞서 우리 국가의 최고리익과 우리 민족의 안전을 지키며 조선반도에서 새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으로 될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전파방지분야에서 국제사회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성실히 리행할것이다. (2006.10.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성명) 부쉬행정부의 위험천만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은 공화국으로 하여금 부득불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완전탈퇴하고 전력생산을 목적으로 창설한 평화적인 핵동력공업을 자위적인 핵억제력마련 에로 돌리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2012.8.31 외무성비망록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조선반도핵문제해결의 기본장애 ) 우리가 자위적인 핵전쟁억제력을 갖추게 된것은 날로 더욱 로골화되는 미국의 핵공갈정책에 대처하기 위한것이다. (로동신문 2013.4.20 개인필명의 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자위적이며 전략적인 선택. (2013.6.16 국방위원회중대담화) 우리 공화국은 미국의 로골화되는 핵위협으로부터 자위를 위해 합법적으로, 정정당당하게 핵 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이 우리를 여기에로 떠밀었다. (로동신문 2013.7.10 개인필명의 글) 1) 핵을 동원한 미국의 군사위협과 경제 제재 시 기 내 용 조 선 1950 년 11 월 트루맨대통령 기자회견 늘 원자탄사용을 적극 검토하고있다 5
전 쟁 시 정 전 후 조중국경지역에 원자탄 30 ~ 50 개를 투하할 1950 년 12 월 계획 이 있다 맥아더 모험적인 핵전쟁계획인 보복전략 작성, 1951 년 2 월 미합동참모부에 제출 1951 년 9, 10 월 미공군 B29 폭격기들이 평양상공에 원자탄을 투하할 연습 감행 1953 년 신공세 검토시 미공군 원자탄사용계획 론의 - 1954 년 포커스 렌즈 ( 을지 프리덤 가디언 )전쟁연습 - 남조선을 핵기지로 전변 50 년대 1957.7.15 주 한 미군의 핵무장화에 착수할것을 발표 1958.1.29 유엔군사령부, 핵미싸일의 남조선배비를 발표 2.3 280 미리원자포와 해미싸일 공개 - 핵폭탄을 탑재한 남조선강점 미공군기들이 15 분내로 공화국을 타격할수 있게 비상출격대기태세 유지 - 1969 년 포커스 레티나 미 한 련합전쟁연습, 1971 년 60 년대이후 프리덤 볼트 를 거쳐 1976 년~ 팀 스피릿트 실시 1994 년이후 련합전시증원연습, 2002 년부터 독수리 연습과 결합, 08 년~ 키 리졸브 / 독수리 합동군사연습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기본정신에 배치되게 우리 나라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정책화, 2010 년에도 국방장관이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모든 선택을 탁상우에 올려놓고있다. 고 하면서 변함없는 핵공격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미국이 주도하여 실행하는 집단적인 반공화국 제재 는 곧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전쟁 행위.(로동신문 2013.3.11 개인필명의 글) 1950.6 수출통제법, 12 적성국무역법, 1951.9 무역협정연장법, 1962.8 대외원조법, 1974 무역법, 1986.10 수출입은행법, 1988.1.20 테로지원국가지정 등 2) 핵보유와 관련한 현실적인 교훈 핵무기가 세상에 출현한 이후 근 70 년간 세계적규모의 랭전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여러 지역들에서 크고작은 전쟁들도 많이 있었지만 핵무기보유국들만은 군사적침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6
적대관계에 있는 일방은 세계최대의 핵대국이고 핵전쟁광신자인 반면에 타방은 비핵국가라면 높아지는것은 핵전쟁위험뿐이다. 우리는 미국의 모험적인 핵전쟁책동을 제압하고 민족의 안전과 조선반도,아시아 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부득불 핵을 보유한것이다. (로동신문 2013.4.30 론평원 의 글) 대국들을 쳐다보면서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을 갖추지 못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회유에 못 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제력마저 포기하였다가 종당에는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만 발칸반도와 중동지역 나라들의 교훈. 오늘 국제사회를 둘러보면 제국주의자들의 달콤한 선전에 속아넘어가 힘들게 마련한 전쟁억제 력을 제손으로 파괴한 나라들치고 무사한 나라가 하나도 없다. 2. 오늘의 조미전면대결전의 본질과 우리 나라의 의도 1) 조미관계와 관련한 력사적경위 - 원래 미국은 조선의 통일독립에 책임이 있는 유관국 카히로선언 (1943.11), 모스크바 3 국외상회의(1945.12) - 정전후 1953.10 한미상호방위조약, 11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결정 170 호, 1954.6 제네바회의 파탄 - 조미협상(1988~)과 조선반도핵위기 (1993~, 2002~)에 대하여 1993.6.11 조미공동성명 :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 자주권의 호상존중, 내정불간섭, 조선의 평화통일 지지 1994.10.20 미대통령 담보서한, 10.21 조미기본합의문 : 정치 및 경제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는데로 나아간다 2000.10.12 조미공동콤뮤니케 : 미국대통령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을 준비 - 현재(2012.2 ~ 2013.3) 2.29 합의, 4 월과 8 월의 NSC CIA 중진정책작성자 들의 평양방문 4.13 광명성 3 호 발사, 유엔안보리의장성명, 6.29 림팩,(6.21 사상 첫 미일남합동군사연습) 7.20 외무성 대변인성명 7
8.20 UFG, 8.25 연설, 8.31 외무성비망록, 10.9 국방위원회대변인성명 12.12 광명성 3 호 2 호기발사, 유엔안보리 제재결의 (2087) 조작, 2.12 제 3 차 핵시험, 보다 강도높은 제재결의 (2094), 키 리졸브 와 독수리, B2 F22 B52 등 동원 3.5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대변인성명 - 정전협정 완전백지화 선언 3.29 오전 0:30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작전회의 긴급소집, 3.31 당중위 2013 년 3 월전원회의 2) 본질 지금 미국은 핵무기를 틀어쥔 우리가 경제적부흥을 이룩하면 저들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끝장이라고 보면서 최후발악을 하고있습니다. 미국이 세계지배를 위한 전략적중심을 아시아 태평양지역에로 돌리고 우리를 1 차적인 공격목표로 삼는것과도 관련됩니다. 미국의 목적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의 핵무장해제와 제도전복을 이루어보자는것입니다. 미국은 애당초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우리 인민이 선택한 제도를 뒤집어엎으려는 목표밑에 우리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가증시켜왔다. (비망록) 우리와 미국은 전쟁상태에 있다. (로동신문 2013.4.20 개인필명의 글) 자주적인 우리 공화국을 해치고 전조선에 썩어빠진 자유민주주의체제 를 수립하려는 미국과 괴뢰통치배들의 흉심은 지난 조선전쟁전야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로동신문 2013.6.25 사설) 미국의 새 국방전략(2012.1.5) 2020 년까지 해외주둔 미군무력의 10%를 유럽으로부터 떼여내여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증원함으로써 이 지역 무력을 총해외주둔무력의 60%수준으로 증강할것을 예견, 유라시아의 큰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포위망을 조이기 위해 어느 한순간에는 공화국을 무력 침공하여 전조선반도를 타고앉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담보가 없다.(비망록) 아시아태평양지배전략실현에서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가장 큰 장애물로 보고있다. 그것은 지정 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핵보유국으로 된 우리 나라를 압살하지 않고서는 다른 대국들에 대한 포위환을 형성할수 없고 세계적규모에서 활발해지는 사회주의운동과 반미자주화투쟁을 억누 를수 없기때문이다.(로동신문 8
2013.4.5 개인필명의 글) - 본질 : 3) 공화국의 의도 지금 적들은 우리의 위성과 핵도 두려워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경제강국건설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고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져 그들의 심장속에서 로동당만세소리가 높이 울려나오는것을 더 무서워하고있습니다.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국방력을 끊임없이 강화해나가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 권을 지키며 나라의 강성번영을 위한 확고한 담보입니다.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그자체가 부당하고 시대착오적인것이므로 오직 무조건적으로 먼저 철회되여야만 한다. (로동신문 2012.11.12 개인필명의 글) 불리하다고 하던 지정학적요인을 유리한 요인으로 전환시켜 그것을 지레대로 하여 세계정치구도 를 좌지우지하는 강국을 건설하는것, 이것이 우리 당이 밝힌 강성부흥의 길 (로동신문 2013.5.29) - 자위적핵억제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무력하게 만들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지키면서 경제를 빨리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자는것 - 새로운 병진로선 에 대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로선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철저히 구현하여오신 경제와 국방병진로선의 계승이며 심화발전. 또한 이것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리익 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전략적로선. 9
요 구 의 도 정 당 성 경제 국방 병진로선 미제국주의자들과 대치되여있으며 미제국 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인하여 오늘 정세가 더욱더 긴장되여있는 조건에서 적들의 책동 에 대하여 최대의 경각성을 견지하며 어떠 한 환경에서나 우리 조국의 독립과 영예를 수호할수 있도록 정치경제적으로, 군사적 으로 준비되여있을것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한손에 무기를 들고 다른 한손에 낫과 마치를 들고 원쑤들 의 침해로부터 우리의 거리와 마을, 우리의 사랑하는 향토를 믿음직하게 보위하면서 사 회주의를 더욱 성과적으로 건설하여야 한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킨다는것은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어느 하나도 약화시 키지 않고 거의 같은(비슷한) 비중으로 발전 시켜나간다는것을 의미한다. 인민경제발전에서 일부 제약을 받더라도 우선 국방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로선은 제국주 의침략과 전쟁도발책동이 격화되고있는 그 어떠한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체의 힘으로 튼튼한 경제력과 국방력을 마련하여 나라의 자주적발전을 확고히 보장하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킬수 있게 하며 또한 강력한 주체적혁명력량을 꾸려 조국통일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 할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로선 새로운 병진로선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우리의 평화 적노력은 첨예한 대적투쟁을 동반하게 되여있 으며 제재 압박으로 목조르기하여 우리의 핵 억제력을 허물고 사회주의제도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은 장기화될것이다, 자기 힘이 강하지 못하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수호할수 없고 인민의 행복과 번영도 이룩할수 없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투쟁은 강력한 군사력, 핵무력에 의해 담보되여 야 성과적으로 진행된다.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조국통 일의 력사적위업을 앞당기기 위한 절박한 요구 제국주의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의 무분별한 핵 위협과 침략책동에 맞서 우리의 자위적인 핵보유 를 영구화하고 그에 토대하여 경제강국건설에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해나가자는것 핵억제력만 든든하면 천만대적이 덤벼들어도 무서울것이 없으며 마음놓고 경제건설과 인민 생활향상에 집중할수 있다, 주체적인 원자력공업 에 의거하여 핵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긴장한 전력문제도 풀어나갈수 있게 하는 합리적인 로선 우리 인민이 핵강국의 덕을 얻으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기 위한 가장 정당 한 로선 튼튼한 자위적국방력에 의거하여 사회주의경제 건설에서 비약을 이룩하며 이 땅우에 존엄높고 부강번영하는 통일강국을 건설하게 한다 10
담 보 우리에게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주위에 130 만의 당원이 한몸같이 결속된 강철의 당이 있고 당주위에 굳게 단결된 우리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과 강력한 자립적경제토대, 또한 불패의 인민군대와 전 인민적무장이 있다. 당과 인민의 강철같은 통일, 자기 조국을 보위하며 혁명위업을 완수하려는 우리 인민 의 비상한 결심과 충천하는 혁명적기세 - 바로 이것이 어떠한 원자무기나 로케트무기 보다도 강력하며 어떠한 침략자라도 격멸 할수 있는 위대한 힘 당의 두리에 천겹만겹으로 굳게 뭉친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이 있고 가장 정당한 당의 병진 로선이 있는한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으며 점령못할 요새가 없다.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마련해주신 막강한 정 신적/물질적 잠재력과 집단주의에 기초한 주체의 사회주의제도, 경제강국건설투쟁에서 체득한 풍부 한 경험. 튼튼한 원자력공업과 무진장한 우라니움자원 오늘 우리는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된 핵탄을 포함하여 모든것을 다 가지고있다. 소형화 : 핵탄의 폭발력이 15 kt이하인 무기를 만든다는것 경량화 : 핵탄의 총체적질량을 가볍게 만든다는것 원자핵의 반응방식에 따라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 변종인 중성자탄으로 구분. 파괴력과 사거리에 따라 전략핵무기, 전술핵무기, 전역핵무기로 나눈다. 기타. (다종화) 핵폭발이 얼마나 정확히 진행되는가, 대상물을 얼마나 정확히 명중하는가. (정밀화) 11
조미는 어떤 평화협정을 맺어야 하는가 강희봉 조미평화협정체결의 필요성이 세계적으로 물망에 오르고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평화협정의 내용에 대하여 론의된것은 특별히 없다. 그것은 평화협정이 나라의 최고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한것으로 될수 밖에 없으며 비교적 오랜 력사적기간에 걸쳐 나라의 정책전반을 구속하는 국제적 협약이기때문이다. 1 평화협정이 조선문제해결에서 차지하는 지위 평화협정체결의 목적(전쟁의 완전한 종결,조미관계 정상화) - 어디에 반점을 둘것인가. 일반적인 전쟁종결의 국제법적요건 평화조약,강화조약 조선전쟁의 경우-강화회담으로 나가지 못함 (정전협정에서 지적된 높은 급의 정치회담이 강화회담을 대신하는것이였으나 미국이 제네바정치회담에서 일방적으로 퇴장) 60년간 정전상태-비정상적성격 평화협정은 종전협정(조약)과 강화조약을 다 같이 동시에 포함한 성격을 띤것으로 되여야 할것이다. 따라서 조선문제의 종국적해결뿐만 아니라 랭전의 진정한 종식이란 의미에서 커다란 세계사적의의를 가지게 된다. 또한 현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본다면 미국패권저락의 결정적추진력으로 될수 있다.여기에 조미평화협정의 세계사적지위가 있다. 2 평화협정에 포함되여야 할 내용 1) 종전이 담보되여야 한다. 정전협정중 이미 파기 된듯이 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꼭 지켜져야할 중대한 조항들이 다시금 확인되고 그 엄격한 리행이 약속되여야 한다. 당면한 평화보장과 상황의 악화를 막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특히 3월6일 조선인민군 대변인성명을 통해 3 월 11 일부터 조선정전협정을 백지화할것을 선포한 상황에서 다급한 문제임. 평화보장장치가 완전히 없어짐 第 1 条 의 6. 双 方 は 皆 非 武 装 地 帯 内 で 若 しくは 非 武 装 地 帯 に 向 かって 如 何 なる 敵 対 行 為 も 強 行 できない 반북 전쟁연습의 금지 第 2 条 13항의 3) 朝 鮮 国 境 外 から 増 援 増 員 する 軍 事 人 員 を 入 れることを 停 止 する 와 ある 一 方 でもどの 域 内 に 交 替 政 策 下 で 朝 鮮 国 境 外 から 3 万 5 千 名 以 上 の 軍 事 兵 力 を 入 れる 事 はできない 万 一 一 方 の 軍 事 兵 力 を 入 れる 該 当 側 が 本 停 戦 協 定 効 力 発 生 日 から 朝 鮮 に 入 っ た 軍 事 兵 力 の 総 数 が 同 日 から 朝 鮮 から 出 た 該 当 側 の 如 何 なる 軍 事 兵 力 も 入 れることが 出 来 な 12
い 그리고3의 4) 朝 鮮 国 境 外 から 増 援 する 作 戦 飛 行 機 装 甲 車 輌 武 器 及 び 弾 薬 の 搬 入 を 停 止 する (1957 년 6 월 21 일,미국은 이 항목의 페기를 일방적으로 선언) 第 4 条 双 方 関 係 政 府 らへの 建 議 60.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解 決 を 保 障 するために 双 方 軍 司 令 官 は 双 方 の 関 係 各 国 政 府 に 停 戦 協 定 が 調 印 され 効 力 を 発 生 した 後 3 ケ 月 以 内 にそれぞれの 代 表 を 派 遣 し 双 方 の 一 級 高 い 政 治 会 談 を 招 集 し 朝 鮮 からの 全 ての 外 国 軍 隊 の 撤 収 及 び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解 決 などの 問 題 を 協 議 すること をこれに 建 議 する 높은 급의 정치회담(실질적으론 강화회담)은 미국의 책동에 의하여 파탄 1) 이상의 모든것에 대하여 다시 확인 및 정리되여야 한다. 2) 남북 불가침실현 통일을 위한 결정적계기 조성, 조미강화 국교정상화를 담보해야 한다. 조미불가침약속,적대정책의 포기 3) 동북아시아평화체제구축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여야 한다. 동북아시아평화의 체제적보장(레짐수립) 4) 유엔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특히 유엔군의 해체와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3 평화협정에 참여해야 할 관련국 교전당사국(조.미.중+남조선) 비공식 전쟁당사국(구쏘련=로씨아,일본) 동북아 평화와 안전에 리해관계를 가지는 나라 결국 현상적으로는 6자회담 관련국 유엔(유엔참전국) 법적으로 미국이 대신할수 있다. 평화협정회담진행이 예상보다도 복잡할수도 시일을 요할수도 있으나 이 나라들이 참가는 이그러진 현 국제관계를 바로 잡을수 있다.(이그러진 현 국제관계 종전이 법적으로 성립안되고 있음에도 불구한,중미국교정상화,조 영,조 오스트랄리아등 유엔참전국과의 국교정상화 등) 4 평화협정이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평화구조창설에서 가지는 의의 미국패권체제붕괴의 최종적계기 이상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조미평화협정은 미국이 아시아에 발을 내디딜 사소한 틈도 주지않게 되며 조선문제의 종국적해결 즉 자주적통일을 13
이룩할 결정적인 계기가 될수 있으며 잘만하면 조미평화협정이 장차 레짐으로 발전하여 동북아시아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적체계로 둔갑할수도 있다. 이상의 내용들이 토의되자면 회담형식도 심중히 고려되여야 할것이다. 회담은 조선전쟁참전국들의 원탁회의 개별회담들에서의 합의에 대한 전체 참가국에 의한 서로의 확인,보증 조선북남의 2자회담. 불가침,적대행위 중단,군비축소,휴전상태하에서 맺어진 모든 대외군사협정,조약들의 재검토,통일을 향한 작업 개시, 조미(유엔군)회담 핵위협을 포함한 일체의 군사적적대행위의 중단,정치, 경제,문화적적대정책의 페지, 조일회담(필요에 따라 남로회담) 식민지지배의 청산문제를 비롯한 외 교관계설립의 사전준비작업의 개시, 조선전쟁참전국(이른바 유엔군) 미국,오스트랄리아,영국,카나다,뉴질랜드,터키,네델란드,룩셈부르크,꼴롬비아, 벨지끄,에티오피아,프랑스,그리스왕국,필리핀,남아프리카 연방,타이 이중 국교정사화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나라는 미국,프랑스만이다.다만 프랑스는 상주대표단사무소를 평양에 설치하고있다. 이상의 회담을 집중과 분산의 형식으로 추진하는 중층적회담으로 전개될것이 리상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회담자체가 길어질수 있으며 잘못하면 회담자체만으로도 수년이 걸릴수가 있다. 따라서 당면한 긴급문제를 푸는데 중점을 둘수 있는데 그 경우 평화협정내 용을 긴장해소,조미,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데 주력을 두고 론의할수 도 있다. 이 경우 회담참가국을 조,중,남,미로 축소하여 내용도 전쟁의 완전한 종결의 확인,조미,북남불가침의 확약,상대방에 위협이 되는 일체의 군사행동 및 정치경제적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약속,조미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의 개시와 통일을 위한 북남회담을 실현한다는 약속,이러한 약속에 대한 국제적담보(유엔의 보증)를 얻는데 중점을 두고 협정을 맺을수도 있다. 14
자료 1 정전상태가 지속되여온 원인에 대하여 - 朝 鮮 戦 争 停 戦 ( 休 戦 ) 協 定 とは? 1951 年 7 月 10 日 に 停 戦 会 談 が 始 まり 1953 年 7 月 27 日 午 前 10 時 板 門 店 で 署 名 この 間 159 回 の 本 会 談 765 回 の 各 種 会 議 が 開 催 された 正 式 名 称 朝 鮮 人 民 軍 最 高 司 令 官 及 び 中 国 人 民 志 願 軍 司 令 官 を 一 方 として 国 際 連 合 軍 総 司 令 官 を 他 の 一 方 とする 朝 鮮 ( 韓 国 ) 軍 事 停 戦 に 関 する 協 定 署 名 者 朝 鮮 人 民 軍 最 高 司 令 官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国 元 帥 金 日 成 中 国 人 民 志 願 軍 司 令 官 彭 徳 壊 国 際 連 合 軍 総 司 令 官 米 軍 陸 軍 大 将 マ-ク=W=クラ-ク 停 戦 協 定 の 内 容 (5 条 63 項 ) 下 記 の 署 名 者 らは 双 方 に 莫 大 な 苦 痛 と 流 血 を 招 いた 朝 鮮 衝 突 を 停 止 させるためにお 互 い 最 後 的 な 平 和 的 解 決 が 達 成 される 時 まで 朝 鮮 での 敵 対 行 為 と 一 切 武 力 行 為 の 完 全 な 停 止 を 保 障 する 停 戦 を 確 立 する 目 的 で 下 記 条 項 に 記 載 された 停 戦 条 件 と 規 定 を 受 け 入 れ 又 その 制 約 と 統 制 を 受 けることに 個 別 的 や 共 同 で 若 しくは 相 互 間 で 同 意 する この 条 件 と 規 定 の 意 図 は 純 然 に 軍 事 的 性 質 に 属 するものであり これは 唯 一 朝 鮮 での 交 戦 双 方 にのみ 適 用 する 第 1 条 軍 事 境 界 線 と 非 武 装 地 帯 第 2 条 浄 化 及 び 停 戦 の 具 体 的 措 置 13. 軍 事 停 戦 の 確 固 性 を 保 障 することにより 双 方 の 一 級 高 い 政 治 会 談 を 進 行 し 平 和 的 解 決 を 達 成 することを 有 益 にするために 敵 対 双 方 司 令 官 は 1) 本 停 戦 協 定 中 で 別 に 規 定 したことを 除 いて 本 停 戦 協 定 が 効 力 を 発 生 した 後 72 時 間 内 に 彼 らの 一 切 の 軍 事 力 補 給 及 び 装 備 を 非 武 装 地 帯 から 撤 去 する 2) 本 停 戦 協 定 が 効 力 を 発 生 した 後 10 日 以 内 に 相 手 方 の 朝 鮮 における 後 方 と 沿 海 諸 島 及 び 海 面 から 彼 らの 全 ての 軍 事 力 補 給 物 資 及 び 装 備 を 撤 去 する 3) 朝 鮮 国 境 外 から 増 援 増 員 する 軍 事 人 員 を 入 れることを 停 止 する 4) 朝 鮮 国 境 外 から 増 援 する 作 戦 飛 行 機 装 甲 車 輌 武 器 及 び 弾 薬 の 搬 入 を 停 止 する 第 3 条 戦 争 捕 虜 に 関 する 措 置 第 4 条 双 方 関 係 政 府 らへの 建 議 60.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解 決 を 保 障 するために 双 方 軍 司 令 官 は 双 方 の 関 係 各 国 政 府 に 停 戦 協 定 が 調 印 され 効 力 を 発 生 した 後 3 ケ 月 以 内 にそれぞれの 代 表 を 派 遣 し 双 方 の 一 級 高 い 政 治 会 談 を 招 集 し 朝 鮮 からの 全 ての 外 国 軍 隊 の 撤 収 及 び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解 決 などの 問 題 を 協 議 すること をこれに 建 議 する 第 5 条 附 則 一 般 的 に 停 戦 とは 敵 対 行 為 と 一 切 武 力 行 為 の 完 全 な 停 止 を 意 味 し これを 文 書 化 し 15
たのが 停 戦 協 定 である 又 停 戦 状 態 とは 戦 争 でも 平 和 でもない 休 戦 状 態 (いつでも 戦 争 に 突 入 しうる 状 態 )を 意 味 する 一 方 がふたたび 戦 争 を 開 始 しても 国 際 法 的 には 何 ら 問 題 にならない 状 態 が 停 戦 状 態 である 朝 鮮 戦 争 停 戦 協 定 は 停 戦 に 主 目 的 を 置 くのではなく 最 終 的 な 平 和 的 解 決 ( 平 和 条 約 締 結 朝 鮮 の 平 和 的 統 一 )が 達 成 されるまで 朝 鮮 での 敵 対 行 為 といっさいの 武 装 行 動 の 完 全 な 停 止 を 保 障 する 目 的 で 締 結 された - 停 戦 協 定 を 順 守 しないアメリカ 1953 年 7 月 27 日 アメリカの 16 か 国 宣 言 再 び 朝 鮮 で 戦 争 が 起 きた 場 合 16 か 国 の 軍 隊 と 戦 闘 機 材 を 朝 鮮 戦 線 に 送 ること その 場 合 の 軍 事 行 動 は 朝 鮮 国 境 内 にとどまらないこと 原 子 爆 弾 の 使 用 も 辞 さないことを 宣 言 停 戦 協 定 締 結 から 10 日 後 の 1953 年 8 月 8 日 米 韓 相 互 防 衛 条 約 (アメリカ 合 衆 国 と 大 韓 民 国 との 間 の 相 互 防 衛 条 約 全 6 条 )を 締 結 し 停 戦 協 定 を 骨 抜 き 状 態 にした 第 4 条 アメリカ 合 衆 国 の 陸 軍 空 軍 及 び 海 軍 を 相 互 の 合 意 により 定 めるところに 従 つて 大 韓 民 国 の 領 域 内 及 びその 附 近 に 配 備 する 権 利 を 大 韓 民 国 は 許 与 し アメリカ 合 衆 国 は これを 受 諾 する 第 6 条 この 条 約 は 無 期 限 に 効 力 を 有 する いずれか 一 方 の 締 約 国 も 他 方 の 締 約 国 に 通 告 を 行 つてから 一 年 後 にこの 条 約 を 終 了 させることができる 1954 年 11 月 17 日 韓 米 会 談 議 事 録 で 韓 国 軍 の 増 強 (70 万 )と 韓 国 軍 にたいするアメ リカの 指 揮 統 帥 権 を 規 定 した 韓 国 軍 の 増 強 のため 停 戦 時 から 1955 年 6 月 まで 3 年 足 らずの 間 に 13 億 2,800 万 ドルの 援 助 がつぎ 込 まれた 13 項 朝 鮮 国 境 外 から 増 援 する 作 戦 飛 行 機 装 甲 車 輌 武 器 及 び 弾 薬 の 搬 入 を 停 止 す る 停 戦 協 定 違 反 1953 年 7 月 31 日 中 立 国 視 察 グル-プが 釜 山 に 106 門 の 大 砲 数 万 発 の 砲 弾 を 搬 入 しようとしたアメリカの 違 反 行 為 を 摘 発 アメリカは 1957 年 6 月 21 日 13 項 の 廃 棄 を 宣 言 新 型 武 器 核 兵 器 を 搬 入 配 備 (1970 年 代 には 南 朝 鮮 に 約 1,000 発 の 核 兵 器 配 備 ) 1957 年 7 月 日 本 に 撤 退 していた 国 連 軍 司 令 部 を 韓 国 に 移 転 韓 国 駐 屯 アメリカ 第 7 師 団 を 核 師 団 に 改 編 した つづいて 核 兵 器 を 搭 載 できる B27 爆 撃 機 が 搬 入 され 280 ミリ 核 砲 撃 大 隊 が 編 成 された 60 項 一 級 高 い 政 治 会 談 を 招 集 し 朝 鮮 からの 全 ての 外 国 軍 隊 の 撤 収 全 ての 外 国 軍 隊 の 撤 収 及 び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解 決 などの 問 題 を 協 議 の 不 履 行 1953 年 10 月 26 に 始 まった 予 備 会 談 ( 板 門 店 )を 破 綻 16
政 治 会 談 の 議 題 討 議 だけで 22 日 間 を 費 やす 12 月 12 日 一 方 的 に 退 場 1954 年 4 月 26 日 に 始 まったジュネ-ブ 会 談 ( 6 月 15 日 )を 破 綻 韓 国 アメリカ-UN 監 視 下 の 自 由 選 挙 ( 北 朝 鮮 だけ 実 施 ) 選 挙 1 か 月 前 に 中 共 軍 撤 退 国 連 軍 の 撤 退 は 統 一 朝 鮮 政 府 が 全 朝 鮮 を 完 全 に 支 配 するように なり この 事 実 を 国 連 が 証 明 するまでは 完 了 できない 朝 鮮 ソ 連 -6 か 月 以 内 にすべての 外 国 軍 隊 撤 退 自 由 意 志 にもとづく 国 会 総 選 挙 の 実 施 南 北 代 表 による 全 朝 鮮 委 員 会 設 置 アメリカはすべての 外 国 軍 隊 ( 米 軍 ) 撤 退 を 反 対 し 一 方 的 に 会 議 を 打 ち 切 った - 朝 鮮 半 島 の 緊 張 激 化 を 推 し 進 めてきたアメリカ 1960 年 代 アメリカは 戦 争 準 備 を 本 格 的 に 推 し 進 めた 日 米 新 安 保 条 約 (1960 年 1 月 ) 日 韓 条 約 (1965 年 6 月 )の 締 結 により 米 日 韓 軍 事 同 盟 が 強 化 され 朝 鮮 有 事 を 想 定 した 三 矢 作 戦 (1964 年 ) フライング ドラゴン 作 戦 (1965 年 ) ブルラン 作 戦 (1965 年 ) が 作 成 された 一 方 で 大 規 模 な 軍 事 演 習 がくりひろげられた 1961 年 に 34 回 1962 年 には 51 回 もの 軍 事 演 習 がくりひろげられた 1965 年 には 初 めて 米 日 韓 合 同 の 軍 事 演 習 がおこなわれた 1965 年 10 月 - 米 日 韓 空 軍 合 同 演 習 1967 年 5 月 -アメリカ 第 7 艦 隊 と 日 本 海 上 自 衛 隊 との 合 同 攻 撃 演 習 朝 鮮 半 島 の 緊 張 が 高 まるなか 1968 年 1 月 にプエブロ 号 事 件 1969 年 4 月 には EC-121 偵 察 機 撃 墜 事 件 が 発 生 し 一 発 触 発 の 緊 張 状 態 が 続 いた ちなみにアメリカ 韓 国 側 が 停 戦 後 35 年 間 に 非 武 装 地 域 で 起 こした 銃 砲 射 撃 事 件 は 実 に 9,890 件 にのぼる 1970 年 代 以 降 アメリカは 二 つの 朝 鮮 政 策 によって 停 戦 状 態 ( 分 断 状 態 )を 固 定 化 する 一 方 で 戦 争 準 備 緊 張 激 化 を 推 し 進 めてきた 特 に 作 戦 計 画 5027 にもとづいて 1976 年 に 始 まったチ-ム スピリット 軍 事 演 習 は 20 万 の 軍 隊 を 動 員 し 核 戦 争 を 想 定 した 世 界 の 軍 事 演 習 の 中 で 最 大 規 模 の 演 習 である チ-ム スピリット 軍 事 演 習 はその 後 乙 支 (ウルチ)フリ-ダム ガ-ディアン フォ- ル イ-グル キ- リゾルブなど 名 称 を 変 え 毎 年 行 われている 2013 年 に 行 われたフォ-ル イ-グル(Foal Eagle) 軍 事 演 習 は 予 算 にして 韓 国 の1 年 分 の 軍 事 費 を 費 やし 米 軍 約 1 万 3,500 人 韓 国 軍 約 21 万 人 が 動 員 され 世 界 最 高 水 準 の 戦 闘 能 力 を 有 するとされる F22 ステルス 戦 闘 機 と B52 爆 撃 機 B-2 爆 撃 機 原 子 力 空 母 と 原 子 力 潜 水 艦 が 投 入 され イギリスやオーストラリアといった 朝 鮮 戦 争 時 に 国 連 軍 と して 参 加 した 国 の 軍 隊 も 加 わっている 核 先 制 攻 撃 のための 軍 事 演 習 である 朝 鮮 戦 争 を 想 定 したアメリカの 作 戦 計 画 で 代 表 的 な 計 画 は 作 戦 計 画 5027 作 戦 計 画 5030 新 作 戦 計 画 5026 作 戦 計 画 8022 である これらの 作 戦 の 特 徴 は 核 兵 17
器 の 使 用 を 前 提 にした 作 戦 計 画 核 先 制 攻 撃 を 想 定 した 作 戦 計 画 だという 点 にある - 平 和 条 約 締 結 を 拒 否 し 停 戦 状 態 を 維 持 してきたアメリカ 朝 鮮 側 の 提 案 1954 年 10 月 最 高 人 民 会 議 第 8 回 会 議 - 祖 国 統 一 にかんするアピ-ルを 発 表 ( 北 南 協 商 にもとづく 統 一 法 案 ) 1955 年 8 月 平 和 的 祖 国 統 一 のための 対 策 案 提 示 ( 北 南 当 局 代 表 者 会 議 の 開 催 朝 鮮 問 題 の 平 和 的 調 停 のための 極 東 会 議 の 開 催 等 ) 1962 年 10 月 段 階 的 統 一 方 案 提 示 ( 第 1 段 階 - 米 軍 撤 退 北 南 平 和 協 定 締 結 北 南 の 軍 隊 を 10 万 もしくはそれ 以 下 に 縮 小 ) 1963 年 9 月 共 和 国 創 建 15 周 年 平 壌 市 慶 祝 報 告 大 会 で 米 軍 撤 退 北 南 不 可 侵 協 定 締 結 北 南 の 軍 隊 を 10 万 もしくはそれ 以 下 に 縮 小 する 提 案 以 後 朝 鮮 は 機 会 あるごとに 停 戦 協 定 を 順 守 し 平 和 条 約 締 結 のためのアピ-ルを 発 表 している 1973 年 3 月 15 日 北 南 調 節 委 員 会 で 北 南 間 の 緊 張 状 態 の 緩 和 と 軍 事 的 対 置 状 態 解 消 の ための 5 項 目 対 策 案 提 示 ( 北 南 平 和 協 定 締 結 等 ) 1974 年 1 月 最 高 人 民 会 議 第 5 期 第 3 回 会 議 - 朝 米 平 和 条 約 締 結 のため 会 談 開 催 を 提 案 ( 米 国 会 に 送 る 手 紙 ) 1984 年 1 月 中 央 人 民 委 員 会 最 高 人 民 会 議 連 合 会 議 - 朝 米 平 和 条 約 締 結 のため 3 者 会 談 開 催 を 提 案 1986 年 6 月 共 和 国 政 府 声 明 - 朝 鮮 半 島 の 非 核 平 和 地 帯 化 を 提 案 7 月 に 外 交 部 声 明 - 具 体 化 案 提 示 1996 年 2 月 外 交 部 代 弁 人 声 明 - 共 和 国 政 府 が 1994 年 4 月 に 提 案 した 新 しい 平 和 保 障 体 制 樹 立 案 ( 朝 米 暫 定 協 定 締 結 案 )を 具 体 化 2002 年 10 月 外 交 部 代 弁 人 声 明 - 朝 米 不 可 侵 条 約 の 締 結 を 提 案 アメリカは 朝 鮮 側 の 提 案 を 60 年 間 一 貫 して 拒 否 してきた ブッシュ 大 統 領 は 朝 鮮 を 2001 年 2 月 に テロ 支 援 国 家 ならずもの 国 家 2002 年 1 月 には 悪 の 枢 軸 に 指 定 した 2002 年 には 朝 鮮 に 対 する 核 先 制 攻 撃 を 政 策 決 定 し た オバマ 大 統 領 も 現 在 に 至 るまで 核 先 制 攻 撃 政 策 を 変 更 していない - 朝 米 平 和 条 約 締 結 の 必 要 性 1 朝 米 北 南 の 合 意 事 項 である (アメリカの 義 務 ) - 朝 鮮 戦 争 停 戦 協 定 の 合 意 事 項 - 朝 米 共 同 声 明 (1993 年 6 月 11 日 ) 朝 米 基 本 合 意 文 (1994 年 10 月 21 日 ) 朝 米 共 同 コ ミュニケ(2000 年 10 月 12 日 ) 2005 年 9.19 合 意 (6 者 会 談 ) 18
朝 米 共 同 声 明 - 核 兵 器 不 使 用 内 政 不 干 渉 朝 鮮 の 平 和 統 一 支 持 朝 米 基 本 合 意 文 - 朝 鮮 半 島 の 非 核 化 平 和 と 安 全 のため 共 同 努 力 アメリカは 核 兵 器 を 使 用 せず 核 兵 器 で 脅 かさないことの 公 式 保 証 提 供 朝 米 共 同 コミュニケ- 朝 米 関 係 改 善 停 戦 協 定 を 平 和 保 障 体 制 へと 変 更 敵 対 的 意 思 を 持 っていないことを 宣 言 9.19 合 意 - 平 和 的 な 方 法 による 朝 鮮 半 島 の 検 証 可 能 な 非 核 化 (1 項 ) 北 東 アジア 地 域 の 永 続 的 な 平 和 と 安 定 のための 共 同 の 努 力 を 約 束 直 接 の 当 事 者 は 適 当 な 話 合 い の 場 で 朝 鮮 半 島 における 恒 久 的 な 平 和 体 制 について 協 議 する(4 項 ) - 北 南 の 合 意 事 項 1972 年 7 月 4 日 北 南 共 同 宣 言 1991 年 12 月 13 日 北 南 合 意 書 ( 和 解 不 可 侵 協 力 交 流 ) 1992 年 1 月 20 日 朝 鮮 半 島 の 非 核 化 に 関 する 北 南 共 同 声 明 2000 年 6 月 15 日 北 南 共 同 宣 言 2007 年 10 月 4 日 北 南 共 同 宣 言 南 と 北 は 現 在 の 休 戦 体 制 を 終 息 させ 恒 久 的 な 平 和 体 制 を 構 築 していくべきとの 認 識 を 同 じくし 直 接 関 連 した3カ 国 または4カ 国 の 首 脳 らが 朝 鮮 半 島 地 域 で 会 い 終 戦 を 宣 言 する 問 題 を 推 進 するため 協 力 していくことにした 2 北 南 朝 鮮 人 民 海 外 同 胞 の 切 なる 願 いである 祖 国 統 一 を 実 現 するため 取 り 払 わなけれ ばならない 大 きな 壁 である 植 民 地 40 年 朝 鮮 分 断 から 68 年 停 戦 協 定 締 結 から 60 年 の 歴 史 の 重 さ= 我 慢 の 限 界 3 周 辺 諸 国 東 南 アジア 世 界 の 平 和 と 安 全 繁 栄 を 左 右 する 焦 眉 の 問 題 である 現 実 化 した 核 戦 争 の 脅 威 を 直 視 1994 年 の 核 危 機 の 時 当 時 の 駐 韓 米 軍 司 令 官 は 朝 鮮 半 島 で 全 面 戦 争 が 再 発 した 場 合 死 者 は 100 万 人 にも 上 り うちアメリカ 人 も 8 万 人 から 10 万 人 が 死 亡 する アメリカが 自 己 負 担 する 費 用 は 1000 億 ドルを 超 える 戦 争 当 事 国 や 近 隣 諸 国 でも 財 産 破 壊 や 経 済 活 動 中 断 による 損 害 は 1 兆 億 ドルを 上 回 るだろう と 予 測 した 자료 2 정전협정을 무용지물로 만든것은 미국이다.(로동신문 2013.3.11)발취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방대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을 동원하여 벌리는 독수리 합동 군사연습이 날이 갈수록 그 도발적성격을 뚜렷이 드러내고있다.내외호전광들의 북침전쟁 연습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에는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였으 며 민족의 운명은 심히 위협당하고있다. 19
현 사태와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대변인성명을 통해 호전광들의 북침전쟁연습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가는 3월 11일부터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여오던 조선정전협정의 모든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버리게 될것이라는 단호한 립장을 천명하였다.이것은 북침야망을 추구하면서 정전협정을 란폭하게 유린하는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의 책동에 대처하여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기 위한 응당한 자위권행사이다. 조선정전협정은 교전측 쌍방사이에 발생하는 군사적충돌을 방지할수 있는 법률적장치로서의 기능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하였으며 조선반도에서 정전체계는 사실상 다 파괴되였다.그것은 미국과 그에 추종한 남조선괴뢰들의 끊임없는 북침전쟁도발책동이 빚어낸 필연적후과이다. 조성된 사태앞에서 우리가 더이상 정전협정에 구속되여 날로 짙어지는 북침의 불구름을 앉아 보고만 있을수 없다는것은 명백하다.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적들의 전쟁책동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유명무실해진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게 될것이라는 립장을 표명한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대변인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음이 없이 임의의 시기,임의의 대상에 대하여 정의의 타격을 가하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할것이라고 선언한것은 적들의 침략책동을 더이상 용납치 않으려는 우리 혁명무력의 최후결전의지의 분출이다. 우리 공화국은 자위적인 당당한 전략로케트 및 핵무기보유국이며 모든 전쟁방식에 다 준비되여있다.적대세력과의 최후의 결전에서 다시는 정전이란 있을수 없으며 오직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무조건항복만이 있을것이다. 자료 3 정전협정백지화는 조선반도의 전쟁상태를 끝장내기 위한 정의의 대결단(조선 중앙통신사보도,2013.3.24) 발취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조미대결전의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기로 한것은 날이 갈수록 가증되는 미국의 대조선압살책동에 대처한 정의의 자위적대응이며 조국통일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추동하는 력사적인 대결단으로 된다. 1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미국에 의해 유명무실해진 협정에 우리가 더이상 구애될 필요가 없게 된 현실로부터 불가피하게 취한 자위적대응조치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초강경대응조치에 대하여 정전협정은 호상 합의하여 이루어진것만큼 일방적으로 무효화할수 없다. 고 하면서 그 무슨 위반 으로 여론을 몰아가고있는것은 언어도단이다. 정전협정은 쌍방이 합의하여 파기하는것이 아니며 어느 일방이 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백지화되게 되여있다. 전쟁은 예고없이 일어나는것이다. 정전협정에 전혀 구속되지 않은 미국의 침략위협이 날로 포악무도해지는데 대처하여 나라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하는 실제적인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2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전면대결전으로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책동을 끝장내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선택이다. 미국의 대조선정책은 사회주의조선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기 위한 제도전복정책이며 정전협정은 그 실현을 위한 주되는 공간이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조선반도에서 항시적인 대결과 전쟁상태를 유지하며 우리를 힘으로 압살하기 위한 반공화국전략실현에 악용하여왔다.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에서의 새 전쟁발발을 막을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로 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책동이 각 방면에서 더는 참을수 없는 상태로 날로 20
심화되고있는 속에서도 정전협정에 계속 구속된다면 지나온 반세기이상의 온갖 장애와 불행,비극을 또다시 겪어야 할것이다. 정전상태를 그대로 두고서는 강성국가건설은 물론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과 민족의 부흥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이 세기와 세기를 이어지는 전쟁위협속에서 우리가 얻게 된 결론이다. 3 정전협정백지화결단은 랭전의 유물을 청산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이다. 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는 심각한 군사력학적불균형이 조성되여있다. 주권국가의 합법적권리인 인공지구위성발사까지 그 무슨 도발 로 매도하면서 유엔거수기를 동원하여 횡포한 제재압박책동을 강행하는것과 같이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날로 확대하고있는 반공화국압살책동은 초보적인 공정성과 원칙은 고사하고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판을 치는 현실을 적라라하게 반영한것이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할수 없으며 조선반도의 지속적인 불안정과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주변대국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것이 지난 60 년간의 력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였다. 세계 그 어디에도 조선반도처럼 방대한 핵전략무력이 집중전개되여있고 매일과 같이 합동전쟁연습을 비롯한 화약내풍기는 군사행동들이 벌어지는 전쟁지대는 없다. 조선반도평화는 세계평화의 한 부분이다. 조선전쟁은 곧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주요국가들과 지역이 말려드는 지역전쟁,세계전쟁이며 조선반도평화보장을 떠난 세계평화보장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허울만 남은 조선정전협정을 더이상 존속시켰댔자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보장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으며 렬강들을 포함한 지역나라들의 관계에 악순환만 조성되고 발전이 제약당한다는것은 력사가 말해주는 진리이다. 평화와 발전을 주제로 하는 21 세기 세계적인 정치,경제,군사활동의 최대중요거점인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일촉즉발의 항시적인 전쟁요인이 존재하는것은 현시대발전의 기본흐름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리롭지 못하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나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 보나 조선반도정전상태는 더이상 지속될수 없다. 정전협정의 백지화는 조선반도평화보장을 자주권수호를 위한 중요과제로 내세우고 그를 위해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고있는 공화국의 철의 의지를 다시금 보여주고있다.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기 위한 온갖 적대세력들의 준동이 위험한 상태로 번져지고있는 오늘 우리의 선택도 명백해졌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과 반미대결전의 최후승리에 대한 확신을 안고 조국통일과 인류의 평화위업을 위한 판가리결사전에 돌입하였다. 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으로,총을 내대면 대포로,핵으로 위협하면 그보다 더 위력한 정밀핵타격수단으로 맞선다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변의 립장이며 백두산식대응방식이다. 자료 4 유엔군사령부 를 해체하는것은 조선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필수적요구(외무성비망록,2012.1.14)발취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데 대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립장과 노력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정전상태를 지속시키고있는 배후에는 유엔군사령부 라는 랭전의 유령이 있다. 이 유령은 최근 미국의 새로운 국방전략에 따라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인 아시아태평양지역 에 불구름을 몰아오는 침략전쟁도구로 되살아나려 하고있다. 1 21
미국은 새로운 국방전략에 따라 유엔군사령부 를 다국적련합기구 로 둔갑시켜 아시아판나토의 모체로 삼으려 하고있다. 미국이 2012년 1월에 처음으로 발표한 새 국방전략의 숨은 목적은 아시아의 다른 대국이 저들에게 대적할수 있는 세력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포위환을 형성하고 군사적으로 억제하는데 있다.이를 위하여 미국은 앞으로 10년안에 해외에 전진배비한 미군무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집중시키려 하고있다.동시에 이 지역안에서 미국과 각기 쌍무적인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을 점차 나토와 같이 통일적인 작전지휘체계를 갖춘 다무적인 군사동맹에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를 다그치고있다. 미국이 최근에 와서 유엔군사령부 의 기능을 되살려내려 하고있는데는 또한 변천된 정세하에서 남조선을 아시아태평양지배를 위한 전초기지로,침략전쟁의 하수인으로 더욱 확고히 틀어쥐려는 전략적타산이 깔려있다. 남조선에서 반미자주기운이 고조되고 특히 군통수권이라고 할수 있는 작전지휘권을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을데 대한 압력이 높아지게 되자 미국은 하는수없이 1994년에 평시작전지휘권을 남조선측에 반환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또한 2015년에 가서는 전시작전지휘권도 넘겨주게 되여있다.그에 따라 미국이 남조선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는 도구로 되여있던 미국남조선 련합군사령부 도 해체되게 되여있다. 그렇다고 하여 저들의 아시아태평양전략상요충인 남조선에 대한 군통수권을 순순히 놓아줄 미국이 결코 아니다. 미국이 남조선무력에 대한 실제적인 통제권을 계속 거머쥐고 휘두를수 있는 대안 으로 고안해낸것이 바로 유엔군사령부 부활책인것이다. 2 유엔군사령부 는 원래 유엔성원국들의 총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이 유엔의 이름만 도용해온 부당한 기구이다. 유엔군사령부 가 유엔이 관할하는 기구가 아니라 순전히 미국의 전쟁도구라는데 대하여서는 력대 유엔사무총장들도 공식 인정하였다. 1994년 6월 부트루스 갈리유엔사무총장은 련합사령부 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자기의 통제하에 있는 부속기구로 설립한것이 아니며 그것은 미국의 지휘하에 있게 되였다. 고 인정하였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장에게 보낸 유엔사무총장의 1994년 6월 24일부 편지) 1998년 12월 코피 아난유엔사무총장은 미국이 조선전쟁에 파견한 무력이나 그 사령부에 대해 나의 선임자들중 그 누구도 유엔의 이름과 결부시키도록 그 어느 나라에도 허락한것이 없다. 고 밝혔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게 보낸 유엔사무총장의 1998년 12월 21일부 편지) 2004년 7월 27일과 2006년 3월 6일 유엔대변인은 유엔군사령부 는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군대 라고 확인하였다. 유엔군사령관 을 임명할수 있는 권한도 유엔이 아니라 미국정부가 가지고있으며 유엔군 의 모자를 쓰고있는 남조선주둔 미군의 축감이나 증강문제도 유엔이 아니라 전적으로 미국정부가 결정한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변천된 유엔의 구성을 놓고보아도 유엔군사령부 는 더더욱 유엔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미국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오늘의 유엔은 미국이 제멋대로 유엔군사령부 를 조작해내던 1950년대의 유엔이 아니다.우리 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여 당당한 정성원국이 된지도 20년이 넘었으며 우리와 함께 유엔군 과 마주앉아 조선정전협정에 서명한 체약일방인 중국이 유엔안전보장리사회 상임리사국으로서 대표권을 행사한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문점에 아직도 유엔기발이 버젓이 걸려있는것은 시대착오의 산물로서 유엔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3 22
유엔군사령부 는 이미 유엔총회로부터 해체선고를 받은 시대의 오물이다. 1975년 11월 유엔총회 제30차회의에서는 유엔군사령부 를 해체할데 대한 문제와 관련한 2건의 결의가 채택되였다.결의 3390(xxx)B 호는 유엔의 진보적성원국들이 발기한것으로서 유엔군사령부 를 무조건 즉시 해체할데 대한 결정이고 결의 3390(xxx)A 호는 미국이 발기한것으로서 정전을 관리할수 있는 다른 장치가 마련되면 1976년 1월 1일까지 유엔군사령부 를 해체할수 있다는 내용이였다. 미국이 이처럼 유엔군사령부 의 조건부적해체론을 들고나온것은 물론 광범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무조건 즉시 해체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것은 미국자체도 유엔군사령부 의 비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못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측면에서도 유엔군사령부 는 백해무익한 랭전의 유물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공고한 평화문제는 군사령관들보다 한급 높은 정치회의에서 론의하게 되여있다.정전협정의 체결당사자인 유엔군사령부 의 실제적인 정치적상급은 유엔이 아니라 미국정부이다. 조선반도에서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에로 이행시키기 위한 유관측들사이의 론의와 합의가 많았지만 유엔군사령부 의 존재를 전제로 한 방도는 그 어디에도 언급된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사령부 가 오늘까지 존속되여오고 이제와서는 더우기 다국적무력의 전쟁도구로 되살아나려 하고있는것은 조선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견지에서 절대로 간과할수 없는 문제이다. 미국은 마치 우리 공화국이 국방력을 강화하고있는것이 지역정세를 긴장시키는 요인으로 되는것처럼 떠들고있지만 그것은 저들의 아시아태평양전략의 침략성을 가리우기 위한 얕은 오그랑수에 불과하다. 유엔군사령부 를 즉시 해체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유지하는가 마는가,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가 아니면 랭전의 부활을 꾀하는가를 가늠할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될것이다. 자료 5 조선전쟁과 일본 日 本 人 の 戦 争 参 加 岡 崎 官 房 長 官 ( 朝 鮮 戦 争 当 時 )の 米 軍 の 出 動 が 国 連 の 讐 察 措 置 である 以 上 一 部 の 人 が 占 領 軍 の 命 令 によつて 戦 闘 行 為 その 他 に 従 事 することは 当 然 であるという 一 九 五 〇 年 七 月 一 日 の 記 者 会 見 での 言 明 のように 日 本 政 府 は 国 連 軍 の 名 の 米 軍 の 命 令 による 日 本 人 の 朝 鮮 戦 争 参 加 は 公 然 とみとめた 朝 鮮 戦 争 開 始 直 後 の 一 九 五 〇 年 七 月 六 日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国 人 民 軍 総 司 令 部 はつ ぎのような 発 表 をおこなった 人 民 軍 部 隊 の 進 撃 に 狼 狽 した 敵 は 日 本 軍 国 主 義 者 共 を 参 加 させている 水 原 東 方 で 殲 滅 され た 敵 屍 体 の 中 から 三 十 余 名 の 日 本 人 将 校 が 発 見 された と < 日 刊 建 設 通 信 一 九 五 〇 年 七 月 七 日 号 > 同 年 十 月 十 四 日 には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国 外 相 が 国 連 総 会 議 長 およぴ 国 連 安 保 理 事 23
会 議 長 にたいし 朝 鮮 動 乱 に 数 百 名 の 日 本 兵 が 参 加 している と 通 告 国 際 法 国 連 憲 章 違 反 だと 非 雑 した たとえばまた ワシントンニ 日 発 UP= 共 同 によると 二 十 五 年 十 一 月 二 日 の 極 東 委 員 会 でソ 連 代 表 ウラジミル バズイキン 氏 は 日 本 軍 が 朝 鮮 戦 線 で 米 軍 に 使 われていると 非 難 した 声 明 をよ みあげ 朝 鮮 の 軍 事 行 動 で 日 本 軍 が 米 軍 に 使 用 されていることはポツダム 宣 言 および 一 九 四 七 年 六 月 十 九 日 と 同 四 八 年 二 月 十 二 日 の 極 東 委 員 会 の 決 定 に 違 反 する と 抗 議 した このような 日 本 人 の 朝 鮮 戦 争 参 戦 にたいする 朝 鮮 中 国 の 抗 議 はあげればかぎりないほどである 国 連 軍 捕 虜 のなかに 日 本 人 がいたことはたとえば 一 九 五 一 年 十 二 月 十 八 日 朝 中 人 民 軍 と 国 連 軍 との 捕 虜 交 換 合 同 委 員 会 で 人 民 軍 側 の 示 した 国 連 軍 の 捕 虜 名 簿 中 に 日 本 人 がふく まれていることでも 明 らかである 共 産 側 記 者 団 が 述 べたところとして 報 道 されたところでは タニヤマ ヨシオ( 米 第 二 十 四 師 ) ツイ キョヒト( 同 ) ヤスイ タツクニ( 同 )の 三 名 の 名 前 があげられ ている 日 本 人 捕 虜 について 板 門 店 にて 八 月 十 八 日 金 宗 淵 特 派 員 発 朝 鮮 中 央 通 信 は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者 は 日 本 軍 閥 を 朝 鮮 戦 争 に 利 用 しているー 日 本 人 捕 虜 朝 鮮 中 央 通 信 社 記 者 に 語 る と 題 するつぎの 通 信 を 伝 えている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者 は 朝 鮮 戦 争 を 挑 発 したのち かれらの 占 領 下 にある 日 本 の 領 土 と 港 湾 を 侵 略 戦 争 のための 陸 海 空 軍 の 基 地 として 利 用 したばかりでなく かれらの 庇 護 のもとに 再 生 されて いる 日 本 の 軍 需 工 業 とともに 日 本 の 人 的 資 源 までも 朝 鮮 人 民 に 反 対 する 侵 略 戦 争 にくりだしてき たということは 周 知 の 事 実 である 吉 田 政 府 をそそのかしてアメリカ 帝 国 主 義 者 が 再 生 されている 日 本 軍 閥 を 朝 鮮 戦 争 に 積 極 的 に 動 員 させた 犯 罪 的 事 実 は 今 般 送 還 されるいわゆる 国 連 軍 捕 虜 のうちにふくまれている 日 本 人 捕 虜 たちの 談 話 によっていちだんとあきらかに あばきだされている 記 者 は 某 宿 所 にとどまってい る 二 名 の 日 本 人 捕 虜 筒 井 清 人 ( 山 口 県 下 関 市 出 身 当 年 二 十 三 歳 )と 安 井 竜 文 ( 大 阪 府 布 施 市 出 身 当 年 二 十 五 歳 )に 会 ったがかれらはアメリカ 帝 国 主 義 侵 略 軍 隊 に 参 加 して 朝 鮮 戦 争 に 出 動 してから 捕 虜 になるまでの 経 過 について 語 った 安 井 は 一 九 四 九 年 末 アメリカ 軍 第 二 十 四 師 団 六 十 三 部 隊 に 編 入 されて 朝 鮮 戦 争 がはじまった 直 後 自 分 の 所 属 していた 六 十 三 部 隊 とともに 朝 鮮 戦 線 に 派 遣 されたが かれが 所 属 していた 部 隊 だけでも 数 十 人 の 日 本 人 がいたという 日 本 人 をアメリカ 軍 に 編 入 させる 徴 集 事 業 は 各 府 県 ま たは 市 の 行 政 機 関 を 通 じておこなわれ 府 県 市 行 政 機 関 の 推 せんがあった 者 のみがアメリカ 軍 に 雇 傭 され 月 給 は 日 本 の 貨 幣 で 三 千 円 であった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は 雇 傭 した 日 本 人 たちを 朝 鮮 戦 争 開 始 前 までは 軍 隊 内 で 炊 事 員 またはその 他 の 雑 役 に 使 用 したが 朝 鮮 戦 争 が 起 こってからは 軍 隊 内 でも 重 要 な 位 置 につかせた 安 井 は 白 分 がアメリカ 軍 に 参 加 したあとの 経 過 についてつぎのように 語 った わたくしは 朝 鮮 戦 争 がはじまったのち すなわち 一 九 五 〇 年 九 月 二 十 三 日 大 阪 府 でアメリカ 軍 に 参 加 し アメリカ 軍 第 一 師 団 第 十 一 連 隊 第 二 大 阪 捜 索 隊 に 配 属 されて 朝 鮮 戦 線 に 派 遣 された のち 偵 察 任 務 にあたるようになった アメリカ 軍 は 日 本 人 の 容 姿 と 顔 が 朝 鮮 人 とよく 似 ているの で われわれに" 国 防 軍 の 服 を 着 せて 偵 察 隊 に 使 用 し わたくしの 属 していた 第 十 一 連 隊 だけ 24
でも 数 十 名 の 日 本 人 が 捜 索 隊 に 雇 傭 されていた わたくしが 一 九 五 一 年 九 月 四 日 に 捕 虜 になる その 時 まですなわち 朝 鮮 に 派 遣 されてから 一 年 間 に 第 二 大 隊 捜 索 隊 に 所 属 されていた 七 名 の 日 本 人 のうちわたしだけが 生 き 残 ってあとはみんな 犬 死 にした われわれを 捜 索 隊 に 利 用 しながら もアメリカ 軍 はわれわれを 人 種 差 別 待 遇 した 捕 虜 になつたのちわれわれは 朝 中 側 から 優 待 さ れたが アメリカ 軍 捕 虜 たちは 同 じ 収 容 所 内 にいながら われわれに 差 別 的 態 度 であたった 捕 虜 になってから 二 年 近 くの 生 活 は 他 国 である 朝 鮮 にきて 日 本 人 がなんのために 犠 牲 になる 必 要 があるかということをあらためて 考 えざるをえなかった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と 吉 田 一 味 にだまされて 朝 鮮 にまでひきずられてきたことを 後 悔 したし わたくしをだました 連 中 をうらんだ 筒 井 と 安 井 の 談 話 は アメリカ 帝 国 主 義 者 が 日 本 を 自 分 らの 軍 事 基 地 として 利 用 することにと どまらず 日 本 人 民 を 侵 略 戦 争 の 大 砲 のえじきに すでに 利 用 しているという 事 実 をいっそうはっ きりとバクロし 立 証 している < 朝 鮮 通 信 一 九 五 三 年 八 月 三 十 一 日 号 > 小 山 内 宏 朝 鮮 戦 争 とヴェトナム 戦 争 ( 雑 誌 日 本 )によれば 驚 くことは 国 連 軍 の 損 害 中 日 本 人 の 戦 死 四 十 八 名 捕 虜 三 名 さえあったことである < 一 九 六 五 年 七 月 号 六 〇 ぺージ>とある 朝 鮮 戦 争 に 参 加 した 日 本 人 は 陸 上 だけでなく 海 上 から 空 軍 にまでおよんだ たとえば 空 軍 関 係 旧 軍 人 で 現 在 日 航 の 幹 部 K 氏 は 朝 鮮 戦 争 がはじまった 一 九 五 〇 年 の 冬 鶏 鳴 杜 ( 戦 後 翼 を 失 ったパイロットたちが 元 田 中 飛 行 学 校 長 田 申 不 二 雄 を 中 心 に 組 織 していた 団 体 )という 発 信 人 の 電 報 を 受 収 って 朝 鮮 戦 争 に 参 加 したとつぎのような 事 実 を 明 らかにしている 電 文 は ヒコウキニノレルスグコイ というのだった 田 中 の 指 揮 所 にGHQのオコンネル 中 佐 と V コステロ 大 佐 が 来 て 人 員 の 召 集 を 頼 んだ これはGHQの 最 高 命 令 だ 飛 行 機 操 縦 士 の 再 訓 練 をせよ 月 四 万 円 から 五 万 円 出 す まず 五 人 集 めろ 飛 行 時 間 四 千 五 百 時 間 以 上 の 経 験 者 で 人 選 は 極 めて 優 秀 な 者 に 限 り 秘 密 を 厳 守 せよ と 云 った そこで 田 中 不 二 雄 中 尾 純 利 佐 竹 仁 森 田 勝 一 崎 川 五 郎 氏 が 集 められた 集 合 場 所 は 新 橋 の 地 下 鉄 駅 前 で 午 後 一 時 に 行 くと ジープが 迎 えに 来 て 検 須 賀 海 軍 病 院 へ 連 れて 行 かれた そこでは 異 常 なほど 厳 重 な 検 査 を 受 けた 七 月 三 日 採 用 合 格 通 知 が 来 たが 森 田 勝 一 氏 だけは 適 性 失 格 で 結 局 四 人 が 合 格 し た 七 月 四 日 厚 木 へ 連 れて 行 かれた 白 動 車 内 は 米 士 官 たちが 取 囲 み 日 本 人 作 業 員 や 米 兵 に 見 せぬようにしていた 最 初 リンク トレーニングからはじめて 訓 練 を 受 けた 用 語 が 分 らなくて 困 った コンタクト ウエーザー とは 何 のことか 分 からず のちになって 有 視 界 飛 行 と 納 得 する ような 始 末 だった 日 木 人 には 絶 対 に 会 うな と 云 われた 食 堂 にも 行 けなかった 訓 練 後 平 塚 市 の 一 軒 家 に 隔 離 された 一 月 九 万 円 を 貰 い 年 二 回 ボーナスが 十 万 円 ずつ 出 た 二 十 六 年 一 月 から B26,B17 などでマニラ 台 湾 京 城 などへ 空 輸 作 業 に 使 われた これは 朝 鮮 戦 争 が 終 るまで 続 けられたが 何 を 運 ばされたか 分 かつていない 自 分 たちがやったことは 絶 対 にしゃべっ てはいけないと 厳 重 に 念 を 押 された 25
朝 鮮 戦 争 前 後 の 占 領 軍 常 傭 労 働 者 数 系 統 別 年 月 総 数 事 務 系 技 能 系 宿 舎 系 船 員 水 先 案 内 系 25 年 5 月 217.942 73.505 114.904 27.604 1.929 6 月 216.943 73.407 113.919 27.709 1.908 7 月 218.181 73.436 114.163 28.695 1.187 8 月 237.470 80.097 126.880 28.226 2.267 9 月 243.509 84.503 129.215 27.405 2.363 10 月 259.831 89.453 140.680 27.047 2,651 11 月 264.209 92.044 142.575 27.846 2.734 12 月 271.415 93.787 148.667 26.314 2.647 26 年 1 月 271.415 95.718 146.749 26.340 2.608 2 月 279.680 100.260 150.402 26.168 2.850 3 月 282.954 104.160 150.707 25.948 2.885 4 月 288.449 107.418 152.910 24.948 3.173 5 月 293.273 110.627 154.718 24.631 3.297 6 月 296.898 112.719 148.299 32.598 3.282 7 月 226.173 81.528 140.923 980 2.730 各 月 一 日 現 在, 常 傭 のみ 当 時 の 米 第 八 軍 司 命 官 リッジウェイ 大 将 は 本 国 帰 還 後 回 想 の 中 で 日 本 におけるPD 調 達 に よる 車 輌 修 理 および 再 生 役 務 の 実 績 なかりせば 朝 鮮 事 変 は 三 ヵ 月 間 も 維 持 できなかったであろ う とのべている < 調 達 庁 占 領 軍 調 達 史 役 務 編 二 四 七 ぺージ> 朝 鮮 戦 争 で 日 本 が 果 たさせ られた 役 割 りがいかに 大 きいものであったかはこの 一 語 をもってしても 明 らかである しかも 以 上 みてきたのはPDによる 役 務 調 達 だけであり いわゆる 朝 鮮 戦 争 特 需 といわれた 土 嚢 用 麻 袋 毛 布 綿 布 衣 類 など 繊 維 関 係 トラック 鉄 道 貨 車 蒸 気 機 関 車 その 他 の 車 輛 乾 電 地 などの 運 輸 機 械 類 ナパーム 弾 用 タンク 航 空 機 燃 料 タンク 有 刺 鉄 条 鋼 柱 有 刺 鉄 線 鋼 製 組 立 家 屋 ドラム 缶 燃 料 タンクなど 金 属 製 品 などの 兵 器 軍 需 品 生 産 に 従 事 した 日 本 人 労 働 者 は ふくまれていないのである 日 本 人 による 兵 員 物 資 輸 送 しかも 調 達 庁 の 発 表 によっても 三 百 八 十 一 名 の 死 傷 者 が 出 ている 調 達 庁 の 公 表 によるこれ らの 特 殊 作 業 に 従 事 した 者 のうち 二 十 六 年 一 月 までのあいだに 死 亡 負 傷 業 務 上 羅 病 した 者 はつぎのとおりである < 同 右 書 五 七 六 ぺージ> (a) 特 殊 港 湾 荷 役 者 = 業 務 上 死 亡 一 名 業 務 上 疾 病 - 七 十 九 名 その 他 - 二 十 一 名 (うち 死 亡 者 三 名 を 含 む) 計 - 百 一 名 (b) 特 殊 船 員 = 業 務 上 死 亡 - 二 十 二 名 業 務 上 疾 病 - 二 十 名 私 傷 死 - 四 名 私 傷 病 - 二 百 八 名 26
計 - 二 百 五 十 四 名 (c)その 他 朝 鮮 海 域 等 において 特 殊 輸 送 業 務 に 従 事 中 死 亡 した 者 - 二 十 六 名 ( 港 湾 荷 役 - 四 名 船 員 - 二 十 二 名 ) わずか 半 年 間 の 公 表 されたものだけで 五 十 数 名 の 戦 死 者 があったのだから 朝 鮮 戦 争 全 期 間 に 戦 死 あるいは 負 傷 した 日 本 人 の 数 はかなり 大 きい 数 にのぼったであろう 朝 鮮 戦 争 の 全 期 間 を 通 じて 米 軍 の 軍 事 輸 送 に 当 たった 日 本 人 乗 組 みのLSTは 約 五 十 隻 乗 組 員 は 約 二 千 名 といわれている このLSTは 船 長 以 下 全 員 日 本 人 船 員 が 乗 組 み 佐 世 保 神 戸 横 浜 から 朝 鮮 のあらゆる 港 に 向 かって 部 隊 戦 車 車 靹 兵 器 その 他 の 軍 需 物 資 を 運 んだ そし て 仁 川 上 陸 作 戦 や 興 南 撤 退 作 戦 などにも 参 加 した 当 時 LSTに 乗 組 んで 軍 事 輸 送 に 当 たったA 氏 ( 横 浜 在 住 )に 仁 川 上 陸 作 戦 興 南 撤 退 作 戦 に 参 加 した 体 験 を 語 ってもらおう 仁 川 上 陸 作 戦 とは 国 連 軍 と 李 承 晩 かいらい 軍 が 人 民 軍 によって 釜 山 周 辺 地 区 まで 追 いまくら れたとき マッカーサーがこれをまきかえすためにおこなった 奇 襲 作 戦 で 一 九 五 〇 年 九 月 十 五 日 マッカーサーは 太 平 洋 におけるその 全 兵 カならびに 他 の 地 域 或 の 兵 力 の 一 分 まで 動 員 し 戦 艦 ミズーリ 号 以 下 七 ヵ 国 の 艦 船 二 百 六 十 一 隻 (その 国 別 内 訳 は 米 国 一 九 四 隻 英 国 一 二 隻 オ ーストラリアニ 隻 ニュージランドニ 隻 フランス 一 隻 韓 国 一 五 隻 日 本 人 乗 組 米 船 三 二 隻 ) < 朝 日 新 聞 一 九 五 〇 年 九 月 十 七 日 > それを 支 援 する 軍 用 機 五 百 機 以 上 四 万 人 以 上 の 兵 力 を 投 入 した 大 規 模 な 作 戦 であった この 仁 川 上 陸 作 戦 の 部 隊 輸 送 に 当 たった A 氏 はつぎのように 語 っている 仁 川 上 陸 作 戦 に 参 加 した 日 本 人 乗 組 みのLSTは 五 十 隻 故 障 中 のものもいそいで 修 理 して 全 部 参 加 させた これらのLSTは 仁 川 上 陸 作 戦 の 一 週 間 ほどまえに 神 戸 に 集 結 され 米 軍 が 接 収 していた 港 の 岩 壁 につけた そこへ 第 二 次 大 戦 で 南 方 の 作 戦 に 参 加 した 実 戦 経 験 をもつといわ れる 海 兵 隊 の 精 鋭 が 一 万 五 千 トンの 大 型 輸 送 船 でテキサスからやってきた この 米 海 兵 隊 は 神 戸 で 輸 送 船 からおろされ 戦 車 車 輛 などとともに 全 部 LSTに 分 乗 させられ 朝 鮮 に 向 かった L STは 全 部 まとまって 船 団 を 組 んで 出 帆 したが 米 海 兵 隊 員 も 指 探 官 も 船 長 も 船 員 も 行 く 先 は 知 らなかった 沖 縄 近 くで 急 にコースを 北 にかえた そこではじめて 仁 川 上 陸 作 戦 に 向 かうのだと 聞 いた 船 団 のまわりを 米 英 カナダの 艦 隊 が 護 衛 していた その 護 衛 している 駆 逐 艦 が 仁 川 上 陸 作 戦 のことを 連 絡 してまわった 米 兵 も われわれ 日 本 人 もぴっくりした そのころ 釜 山 もあぶ ないときだったからである 仁 川 上 陸 作 戦 の 前 日 仁 川 沖 に 結 集 した そして 上 陸 をまった 第 六 艦 隊 と 航 空 機 で 激 しい 仁 川 攻 撃 をやった そして 翌 日 上 陸 した われわれもそのあとで 仁 川 港 外 の 月 尾 島 に 上 陸 してみた このときは 上 陸 作 戦 がおわるまで 一 週 間 いてこの 作 戦 に 参 加 した < 聞 きとり>と この 上 陸 作 戦 のさい 機 雷 原 掃 海 のため 旧 日 本 海 軍 軍 人 が 参 加 したこともよく 知 られたことであ る それだけでなく この 上 陸 作 戦 そのものが 旧 日 本 軍 軍 人 の 助 言 によるものだといわれる 27
朝 鮮 戦 争 の 軍 事 輸 送 に 参 加 したのはLSTだけでなく 占 領 軍 調 達 史 も 明 らかにしているように 調 達 庁 が 雇 傭 して 米 軍 に 提 供 した 船 員 が C1 型 とよばれる 三 千 トン 級 の 海 軍 貨 物 船 三 干 トン 級 のタンカー 小 型 のひきぶね 船 FSとよばれる 小 型 貨 物 船 LCM LSMとよばれる 小 型 上 陸 用 舟 艇 などに 配 船 され 戦 争 に 参 加 協 力 した その 数 は 占 領 軍 調 達 史 では 常 備 船 員 約 三 千 名 と なっているが 一 番 多 いときには 神 奈 川 県 内 だけで 三 千 人 ぐらいもおり 全 国 では 一 万 名 にも 達 す るだろうといわれている このうち 多 いときは 神 奈 川 の 船 員 だけで 二 千 名 ぐらいは 朝 鮮 にゆきっき りで 現 地 で 輸 送 警 備 水 先 案 内 などにあたったといわれる さきにふれた 戦 死 者 はこの 作 業 中 機 雷 にふれたりなどして 死 亡 したものである 七 各 種 労 働 者 の 動 員 日 本 人 労 働 者 は 海 上 輸 送 だけでなく 陸 上 での 兵 器 の 整 備 修 理 通 信 関 係 業 務 等 のために PD 工 場 LR 工 場 からの 出 張 という 形 で 朝 鮮 にもおくられた 鉄 道 専 門 員 も 朝 鮮 に 渡 って 戦 争 に 協 力 させられた 米 軍 は 電 通 労 働 者 も 朝 鮮 戦 争 に 動 員 した すなわち 一 九 五 〇 年 七 月 使 用 不 能 になっていた 福 岡 ー 対 馬 ー 釜 山 間 の 日 韓 間 海 底 ケーブル を 朝 鮮 戦 争 で 使 用 するため 米 軍 は 総 司 令 官 覚 書 にもとづく 総 司 令 部 通 信 命 令 で 海 底 ケーブルの 新 設 や 修 理 を 命 じた 看 護 婦 の 召 集 朝 鮮 戦 争 には 日 赤 看 護 婦 も 国 連 軍 看 護 婦 として 召 集 された 日 本 はこの 面 でも 朝 鮮 戦 争 に 協 カさせられたのである 共 産 党 の 苅 田 アサノ 元 議 員 が 国 会 で 明 らかにしたところによれば 一 九 五 一 年 九 月 二 十 六 日 の 日 赤 第 五 十 六 回 通 常 総 会 で 島 津 忠 承 社 長 は 二 十 五 年 からはじまった 朝 鮮 事 変 にた いして 日 赤 看 護 婦 の 派 遣 要 求 があったので 本 杜 はこれに 全 面 的 に 協 力 し 九 州 地 方 の 各 支 部 から 第 一 次 五 十 四 人 第 二 次 二 十 五 人 第 三 次 十 七 人 を 交 替 派 遣 し 現 在 六 十 三 人 が 国 連 軍 病 院 に 勤 務 いたしております と 演 説 している < 衆 議 院 厚 生 委 員 会 議 事 録 一 九 五 二 年 六 月 二 日 日 赤 は 朝 鮮 戦 争 勃 発 と 同 時 に 米 軍 協 力 体 制 をとったのである 開 戦 直 後 の 一 九 五 〇 年 七 月 二 十 日 付 日 赤 新 聞 で 伊 藤 副 社 長 は 朝 鮮 問 題 と 日 赤 の 進 む 遣 と 題 するつぎの 談 話 を 発 表 して 救 護 班 派 遣 医 薬 品 輸 送 などの 方 針 を 示 した 日 赤 が 戦 傷 病 者 や 一 般 戦 災 者 救 済 のため 救 護 班 を 派 遣 するということは 人 道 主 義 から 当 然 である また 韓 国 人 の 一 部 から 熱 烈 に 希 望 もでている 生 活 様 式 も 著 しい 相 違 がなく 言 語 も 容 易 に 通 ずる 日 赤 救 護 班 が 歓 迎 されることは 当 然 であろう ただ 朝 鮮 は 南 北 とも 赤 十 字 条 約 に 加 盟 しておらず 派 遣 救 護 員 への 条 約 上 の 保 障 がない 28
ので 日 赤 としては 現 地 責 任 当 局 の 何 らかの 保 障 をとりつけておきたい また 派 遣 員 に 対 する 食 糧 の 調 達 宿 舎 の 準 傭 等 も 整 えておかねばいけないし 医 療 薬 品 衛 生 材 料 の 輸 送 も 事 前 に 十 分 な 見 透 しをえておきたい と この 方 針 が 日 赤 看 護 婦 の 赤 紙 召 集 となったのである 日 赤 はこのほか 朝 鮮 戦 争 開 始 半 月 後 の 七 月 十 日 には 横 浜 港 から 止 血 剤 強 心 剤 など 三 トンを 韓 国 赤 十 字 あてに 送 り 出 した のをはじめ 国 連 軍 将 兵 のための 献 血 運 動 などさまざまの 医 療 協 力 をおこなった 一 九 五 〇 年 九 月 二 十 八 日 には 国 民 運 動 として 献 血 運 動 を 開 始 したが 米 侵 略 軍 に 日 本 人 の 血 液 を 提 供 する 大 宣 伝 のために 献 血 第 一 号 にときのミス 日 本 山 本 富 士 子 第 二 号 に ボクシング 界 の 王 者 ピストン 堀 口 といわれた 堀 口 恒 男 つづいて 経 済 安 定 本 部 の 周 東 長 官 岡 崎 官 房 長 官 同 夫 人 さらに 自 由 党 民 主 党 社 会 党 の 代 議 士 を 動 員 して 献 血 させ 国 民 に それにつづくことを 求 めた 今 日 しばしば 問 題 になる 血 液 銀 行 も 朝 鮮 戦 争 の なかで 生 まれたのである 以 上 朝 鮮 戦 争 における 日 本 の 人 的 協 力 についてのべてきた こ のほか 日 本 は 米 軍 の 作 戦 基 地 となり 日 本 の 工 業 は 米 軍 の 兵 器 および 軍 需 物 資 の 生 産 と 修 理 のために 全 面 的 に 動 員 された 29